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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ja & H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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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이른바 Blaxploitation Film 의 절정기에 만들어진 걸작으로 간주되고 있다. Blaxploitation 에 대해 좀 지루한 설명이 필요한데 이 단어는 ‘흑인(Black)’과 ‘착취(Exploitation)’의 합성어이다. 다만 흑인을 착취하는 필름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과도한 섹스씬이나 폭력씬 등으로 흥행을 노리는’ 장르라는 의미의 Exploitation Film 중에서도 흑인관객을 주로 타겟으로 삼는 영화가 바로 Blaxploitation Film 인 것이다. 이렇게 철저히 마이너적 감성으로 만들어진 터라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퀀틴타란티노 등에 의해 재조명되기도 했다.

Hess Green 박사는 저명하고 부유한 인류학자이다. 그는 George Meda 라는 새 조수를 고용하게 된다. George 는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Hess 를 칼로 찌르고 권총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피를 마시는 아프리카의 멸종한 종족인 Myrthia – 이런 종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 의 칼에 찔린 Hess 는 오히려 불멸의 삶을 얻게 되지만 피에 굶주린 일종의 뱀파이어가 되고 만다. 이후 그 앞에 George 의 아름다운 아내 Ganja Meda 가 등장한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Ganja 역시 Myrthia 의 저주에 걸리고 만다.

배우이자 소설가, 극작가인 Bill Gunn 은 형편없는 예산으로 뱀파이어 영화를 만들어야만 했고 그는 뻔한 뱀파이어 영화대신 아프리칸-아메리칸 문화의 메타포가 예리하게 새겨진 이 초현실주의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당초 길이에서 뭉텅이로 잘려나가 8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라서 그런지 극의 진행은 가끔씩 빠르다 못해 어이없는 전개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결점은 비전형적이면서도 재기 넘치는 에피소드를 통해 상쇄되고 있다. 이보다 더 엄청난 비용을 들이면서도 사람을 어이없게 만드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상징이나 메타포 – 이 영화에서 피는 곧 아프리칸-아메리칸의 뿌리, 즉 아프리카로의 회귀를 의미한다(고들 한다) – 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결국 그런 것들은 우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고나서야 찾을 것들이다. 이야기가 없는 영화들이 관객들을 혼란시키는 상징과 메타포로 떡칠을 하고 아트 필름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이 영화의 미덕은 장르 영화의 교묘한 비틀기로 우선 이야기 면에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상징이나 메타포는 그 후 비평가의 몫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재기 넘치는 유사한 작품을 한참 후에 남미의 ‘엘마리아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영화는 온갖 난도질에다가 제목마저 Double Possession, Blood Couple, Black Vampire 등 질 낮은 수준으로 교체되어 개봉되곤 하였다고 하니 보통 고생한 작품이 아니다.

Dust D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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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서북쪽에 위치한 나미브 사막에 한 백인 여행자가 나타난다. 그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과 섹스를 나누다가 돌연 목을 비틀어 죽여 버리고 손가락을 떼어낸 후 그녀의 피로 정체모를 의식을 치룬 후 집에 불을 질러버린다. 한 시골의 마법사는 그의 정체를 물어온 경찰에게 그는 마음먹은 대로 사람들의 몸을 옮겨 다닐 수 있는 악령, 일명 Dust Devil 이라고 일러준다. 한편 남편과 대판 싸운 웬디는 차를 몰아 집을 떠난다. 연쇄살인자 또는 악령일지도 모를 이 이상한 사내를 태운 그녀 역시 남자의 매력에 빠져 그와 하룻밤 섹스를 즐긴다. 무심코 뒤진 그의 가방에서 나온 피가 얼룩진 손가락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차를 몰아 달아나지만 악령은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장르의 혼합 – 스릴러, 오컬트, 서부극, 로드무비 – 은 독립영화의 독특할 실험정신을 통해 화학적으로 융합되어 있다. 무미건조한 갈색톤의 화면은 광활한 사막이 상징하고 있는 인간의 고독을 잘 필터링하고 있다. 페이스는 같은 장르의 영화보다 느슨하고 배경음악은 서사적이면서도 묵시론 적이다. Hardware 를 통해 컬트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Richard Stanley 가 1992년 만든 작품으로 극장 개봉시 애초 필름이 뭉텅이로 잘려나가 8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었지만 감독의 재편집을 통해 103분 짜리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DJUNA의 영화평

Obsession

이 영화는 제목 자체가 일종의 눈속임이다. 브라이언드팔머의 1976년작인 이 영화는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딸이 유괴되어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된 한 부동산업자의 과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묘사하며 일종의 심리극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영화는 어느 한 순간 초자연적인 장르로 노선전환을 하는 가 싶더니 종국에는 치밀한 음모에 주인공이 희생된 범죄 미스터리로 막을 내린다. 영화의 플롯 자체가 어느 노선으로 향하여도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게끔 신축성이 있는지라 결말을 어떻게 꾸며도 나름대로 재밌었을 영화였다. 하지만 “히치콕의 인정받지 못한 아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감독답게 히치콕의 명작 ‘버티고’의 플롯을 고스란히 베껴왔다는 비난을 받은 – 심지어 음악까지도 ‘버티고’의 음악을 맡았던 버나드 허먼이 맡았다고 한다 – 영화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개인적으로는 ‘버티고’의 스토리가 기억나지 않은 덕에 영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로케이션, 조연들의 호연, 깔끔하게 처리된 음악, 서스펜스를 몰고 가는 연출력 등이 나름 매력 포인트이고 분위기로는 도널드서덜랜드 주연의 ‘Don’t Look Now’가 떠올랐고, 영화의 여러 상징과 설정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Old Boy’, 그리고 범인의 설정에서는 패트릭스웨이즈 주연의 ‘Ghost’ 가 떠올랐다. 흥행 면에서는 같은 해 개봉된 드팔머의 또 다른 작품 Carrie 에 훨씬 못 미쳤다.

Carrie

소름끼치는 틴에이저 공포물 Carrie 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펄프픽션의 대가 Stephen King 의 원작을 바탕으로 Brian De Palma 가 만든 작품이다. 펄프픽션의 대가와 B급 영화의 귀재가 만났으니 그 결과물은 당연히 기대를 충족시켜줄만한 양질의 공포영화로 귀결되었다. 거기에 Sissy Spacek 의 소름끼치는 연기는 영화의 시너지를 극대화시켰다.

Stephen King 의 자전적 에세이 <유혹하는 글쓰기>에 보면 이 원작의 탄생비화가 소개되고 있다. 애초 King 자신이 너무 진부한 소재라 생각하여 쓰레기통으로 처넣은 스크립트를 아내가 꺼내어보고 좋은 소재라며 격려해주었고 이에 분발하여 장편으로 완성한 것이었다. 또한 캐리의 캐릭터를 구상하는데 도움(?)을 준 이들이 소개되는데 King 은 그의 고교시절 왕따를 당했던 두 소녀를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다른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King 역시 희대의 살인자 Ed Gein 을 모델로 하지 않았는가 생각했었다. Ed Gein 은 어릴 적부터 광신적인 기독교도였던 어머니의 틀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살아오다 가족들이 모두 죽은 후 여자시체의 살갗으로 옷을 해 입으며 여성이 되고자 했던 그야말로 초엽기적인 인물이었다. 그 인생이 너무나 드라마틱하기에 그의 인생의 파편들이 각각 텍사스전기톱살인사건, 싸이코, 양들의 침묵 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Carrie 를 보면 Ed Gein 의 경우와 상당히 일치하는 가정환경임을 알 수 있다. Carrie 의 어머니 역시 Ed Gein 의 어머니가 그러했을 것처럼 딸에게 극단적으로 섹스에 대한 혐오감을 강요한다. 이는 결국 Carrie 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데 걸림돌 으로 작용하고 왕따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극단이 또 하나의 극단을 낳게 만든 꼴이 되고 만 것이다. King 에 따르면 그가 모델로 삼았던 바로 그 동급생의 어머니에게서 그러한 종교적 보수성을 느꼈다고 하니 Ed 의 어머니가 극단적이었을 따름으로 상상외로 이러한 꼴통적인 가정환경이 극히 드문 현상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감탄할만한 점은 초경의 공포과 돼지 피라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두 소재가 ‘빨간 색’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교집합으로 형성하면서 관객들에게 ‘끔찍했던 학창시절’을 상기시키는 극대화된 공포를 경험하게 만드는 연출솜씨이다. Amy Irving, William Katt 등 조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Silver Streak

Jim Carrey 가 9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이라면 Gen Wilder 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자리매김하여도 어색하지 않다. 멜브룩스, 우디알렌 등 당대의 코미디 대가들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였던 그는 상업성과 작품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점에서 Jim Carrey, 또는 다른 이전/이후의 코미디언보다도 행운아 내지는 실력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Jim Carrey 도 생각 없는 코미디 몇 편을 찍은 후에는 The Truman Show, Man On The Moon 등을 통해 품격을 높이고 있지만). 여하튼 이 곱슬머리에 엄청 큰 코, 그리고 토끼눈처럼 동그란 파란 눈동자의 이 사나이가 1976년 골라잡은 작품은 Love Story 의 감독 Arthur Hiller 가 메가폰을 잡은 코미디 블록버스터 Silver Streak 이다. 단지 지루해지고 싶어서 비행기 대신 기차를 골라잡은 George Caldwell(Gene Wilder)은 뜻하지 않게 Hilly Burns(Jill Clayburgh)과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한참 무드가 무르익을 무렵 창밖으로 떨어지는 시체를 목격하게 되면서 그의 ‘지루했으면 했던’ 기차여행은 비행기 여행이 비할 바가 안 되는 익사이팅한 모험으로 변신한다. 같은 기차에서 무려 세 번이나 밖으로 떨어지는 불운을 겪지만 굴하지 않고 ‘악의 세력’을 몰아내는 그의 모습은 제임스 본드가 지닌 불굴의 정신을 연상시킨다. 적당한 미스테리, 자못 심각한 스턴트액션, 그리고 진와일더 특유의 유머코드 등이 잘 결합되어 시간가는 것을 별로 못 느끼게 만드는 웰메이드 액션스릴러코미디물이다.

The Omega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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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mega-Man-Poster” by allposters. Licensed under Wikipedia.

소련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그 사이에 낀(?) 미국이 엉뚱하게 세균병기의 공격을 받게 된다. 미국을 비롯한 지구는 오염되고 사람들은 호흡마비 등의 증상을 보이며 죽어간다. 인류의 멸망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Robert Neville 박사(Charlton Heston)는 자신이 개발하여 아직 실험단계에 있던 백신을 맞고 살아나지만 살아남은 어떤 이들은 심하게 오염되어 낮에는 잠을 자고 어둠을 틈타 활거 하는 변종인간, 일종의 뱀파이어가 되고 만다. 이들 무리의 우두머리 Matthias (Anthony Zerbe)는 인류가 도구의 사용으로 멸망을 초래하였음을 지적하며 반달리즘적인 파괴행위를 일삼는다. 한편으로 Neville을 그러한 타락한 문명의 상징으로 지목하며 그를 없애려 한다. 낮에는 거리를 활보하다 밤에 자신만의 은둔처로 숨어버리는 Neville 의 외로운 삶은 우연히 만난 정상적인 여인 Lisa과 그 친구들을 통해 구원받는다. 하지만 Matthias 일행의 집요한 폭력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오히려 Lisa 일행까지 위협을 당한다. The Quiet Earth(1985) 와 Dawn Of The Dead(1978) 를 교묘히 섞어놓은 듯한 – 그런데 실제로는 본 작품이 가장 먼저 만들어져(1971년) 그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후계작이라 할 수도 있겠다 ― 독특한 분위기 SF 인 이 작품은 인류가 냉전과 핵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던 시점에 제작되었다는 시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화 초반 텅빈 LA 거리는 ‘혹성탈출’에서의 망가진 자유의 여신상 만큼이나 – 이미 한차례 인류멸망의 좌절을 ‘혹성탈출(1968)’에서 경험한 바 있는 Charlton Heston 의 기용은 적절한 캐스팅이라 할 수 있다 – 충격적이었고 이 후 이 씬은 The Quiet Earth, 28Days Later 등에서 답습된다. 현재 Will Smith 를 내세워 영화의 원작 제목인 I Am Legend 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가 개봉예정이라 한다.

Klute

Alan J. Pakula 의 ‘패러노이아 삼부작’ 중 가장 이른 1971년 제작된 스릴러물. John Klute (Donald Sutherland)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친구 Tom Gruneman 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의 유일한 단서는 Tom 이 편지를 보내곤 했다던 뉴욕의 콜걸 Bree Daniels (Jane Fonda). 남성에게 적대적인 그녀를 설득하여 Tom 의 흔적을 찾으려 애쓰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져만 간다. 형식은 스릴러이지만 실제로는 무뚝뚝한 존과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던 브리와의 사랑이야기에 가깝다. 묘한 인연으로 만난 둘이지만 점차 서로를 아끼게 되는 전개과정이 제법 귀엽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과일가게로 둘이 쇼핑하러 간 장면에서의 제인폰다의 애틋한 표정연기와 존의 옷자락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극의 품격을 높여주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이 시기 베트남전에 대해 소리 높여 비난했던 제인폰다는 반전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의 심볼로 부상되었고 극 중에서도 남성으로부터 독립하고자 몸부림치는 도시여성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 덕분에 그녀는 그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The Last House on the 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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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HousePoster“. Via Wikipedia.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웨스 크레이븐의 1972년 감독 데뷔작. 꽃다운 나이의 두 소녀가 철없이 마약장수로 보이는 꼬마에게 접근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변을 당하게 된다. 그 꼬마는 네 명의 탈옥수의 일행이었던 것이다. 강간과 납치, 그리고 끝내는 잔인한 살육까지 자행하는 탈옥수들의 눈에서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들이 살육을 자행했던 그 숲의 건너편에는 피해자 중 한 소녀의 집이 있었고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그 집에서 일박을 청한다.

우연히 악당들의 대화를 들은 소녀의 어머니는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고 끔찍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영화는 B급 영화의 미덕을 살려 폭력적인 면에서 나름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납치당한 소녀에게 바지에 오줌을 싸보라고 을러대는가 하면 두 소녀가 성관계를 갖게 하며 이를 즐기는 등 엽기적인 – 그러나 실제 상황이라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을 – 장면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부모들의 복수극도 못지않게 엽기적인데 -사실 엄마의 복수극이 가장 엽기적인데너무 잔인한(!) 스포일러라 생략 -특히 소녀의 아버지가 악당에게 사용하는 전기톱은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에서 사용되기 2년 전에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이 방면의 선구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처녀성을 잃고 숨진 딸을 위해 복수하는 부모라는 설정에 있어 잉마르 베르히만의 The Virgin Spring 과 비교되기도 한다는데 – 이 영화가 잉마르 영화의 리메이크라고 하거나 또는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거나 등등 – ,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주제는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이런 저런 상황으로 변주되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처녀성은 ‘절대’선(善)을, 강간은 ‘절대’악(惡)을 의미하니 악을 응징하는 보복은 정당성을 획득하고 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과정 역시 악과 마찬가지로 폭력적이라는 의미에서 받아들이는 독자나 관객에게 극적쾌감을 안겨주니 이 이상 더 좋은 플롯이 어디 또 있겠는가 말이다. 결국 만드는 이나 수용하는 이나 아무런 죄책감 없이 폭력의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반합의 변증법적 구도이다.

반면 감독 웨스 크레이븐은 이 영화의 제작의도가 당시 미국이 치루고 있던 베트남전을 보면서 느낀 “폭력의 실상에 대한 내 인식이 반영된 영화”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들은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어떠한 폭력도 용서될 수 없다는’ 평화적인 메시지로 수렴되어야 할 텐데 정말 그러할지는 오리무중이다. 다만 폭력적인 영화가 상영되는 주말에 그 인근에서 폭력범죄가 감소한다는 희한한 조사결과도 있는 만큼 이 영화가 상영된 극장 인근에서 감독이 의도한 효과가 있을 개연성도 있겠다.

요컨대 이 작품의 미덕은 공포영화라는 장르의 하위장르 중에서 현실에 근접한 일종의 ‘리얼리즘적인 공포영화’(내 마음대로 장르 규정하였음)의 한 축을 형성하였다는 점이다. 동 시대의 다른 공포영화들이 ‘엑소시스트’와 같은 초자연적인 소재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처럼 좀비/괴수 영화 장르로 약진할 때에 웨스 크레이븐은 나름대로 현실에 기반을 둔 사회적 이슈로 승부를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감독의 장기는 이 후 ‘공포의 계단’이나 ‘스크림’ 등에서 십분발휘되었다.

한편 이 영화는 2007년 개봉예정으로 리메이크 작업 중이라고 한다.(2009년에 발표됨)

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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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 (1962)” by The post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Warner Bros. Pictures.. Licensed under Wikipedia.

캐시 베이츠가 Misery에서 식칼로 관객들을 위협하기 28년 전에 이미 베티 데이비스가 특유의 그 가공할(!) 눈매 하나만으로도 – 이 시점에서 Bette Davis Eyes 를 BGM으로? – 관객을 넉아웃시켰다. Kiss Me Deadly 등으로 B급 무비의 거장으로 떠오른 로버트 알드리치의 1962년 작으로 연예계에 종사하던 자매의 갈등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이 몸서리치는 공포영화를 창조해냈다.

Baby Jane 은 춤과 노래의 신동으로 가족의 자랑거리임은 물론 자신을 캐릭터로 한 인형이 나올 정도의 아역스타이다. 그런 그녀를 무대 뒤에서 바라보는 언니 Blanche 는 분노의 눈물을 삼킨다. 세월은 흘러 둘이 성인이 되었을 즈음에 상황은 역전이 되었다. Blanche 는 최고의 흥행배우로 성장했고 Jane 은 천덕꾸러기 싸구려 배우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언니 Blanche 는 그런 동생을 감싸준다. 그러던 어느 날 끔찍한 교통사고 Blanche 가 하반신 불수가 되면서 그녀의 연기 인생을 막을 내린다. 사람들은 Jane 이 질투심에 일으킨 사건이라고 수군거린다. 세월이 흘러 초로의 여인들이 된 자매는 한집에 살면서 옛 추억을 곱씹으며 세월을 보내지만 어느 날 Jane 의 행동이 이상해지면서 영화는 급반전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테마를 공포영화의 소재로 사용한 감독의 가치전복적인 발상이 놀라운 영화이지만 그러한 반문화적인 쾌감에만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탄탄한 구성과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 – 특히 김완선보다 더 무서운 눈의 소유자 베티 데이비스의 연기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눈살이 찡그려질 정도다 – 등에 힘입어 독특하고 매혹적인 한편의 가족공포물의 걸작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또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충격적인 라스트신은 그 충격이 가히 찰턴 헤스턴이 절망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혹성탈출’ 급이라 할만하다.

Kiss Me Deadly

장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누벨바그 감독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바 있는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1955년작. 느와르 필름의 최전성기에 만들어진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미키 스필레인 원작의 인기 탐정 마이크 해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미스테리한 미녀의 죽음, 구사일생한 터프가이 탐정,그 터프가이를 배신하는 또다른 미스테리의 여인,그리고 그의 섹시한 여비서 등 거칠고 을씨년스러운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안티히어로에 팜므파탈이 동시에 등장하니 뭐 더 할말이 없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하였다는 크리스티나라는 여인을 태워준 탐정 마이크 해머는 그녀를 뒤따르던 악당들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난후 ‘나를 기억해 달라’는 크리스티나의 마지막 말을 힌트삼아 사건을 역추적 한다. 이 와중에 정체모를 악당들은 그를 을러대고 주위 사람들은 하나둘씩 죽어간다. 서로 죽고 죽이는 와중에 욕심 많은 여인의 호기심이 빚은 비극이 끔찍하면서도 자못 희극적이다.

p.s. 1) 이 영화의 일어제목은 어이없게도 『키스로 죽여줘キッスで殺せ!』 라고 한다.
2) 한편 한 영화사가에 따르면 미국개봉 판과 유럽개봉 판의 마지막 장면이 다르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