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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dy Vanishes

이 영화는 제목이 잘 지어진 사례로 뽑힐 만하다. ‘숙녀가 사라지다’라는 신문의 사건사고 헤드라인과 같은 제목은 극 초반부터 도대체 등장인물 중 어느 여인이 실종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제목 하나로 극 초반의 서스펜스를 유지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히치콕의 영화는 애매하거나 상징적이기 보다는 ‘밧줄’, ‘새’, ‘이창’, ‘기차의 이방인’ 등 직선적이고 영화의 핵심이 되는 제목을 선호한다.

각설하고 기차 안에서의 실종사건의 미스터리와 로맨틱코미디가 적절히 가미된 이 코믹스릴러는 히치콕의 영국 체류기간의 말미를 장식한 작품 중 하나로 헐리웃의 시선을 끌 정도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예비신부 Iris Henderson (Margaret Lockwood)은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다. 이 과정에서 친절한 중년의 여성 Miss Froy (Dame May Whitty)를 만나는데 잠깐 잠이 든 사이 Miss Froy 가 사라지고 없었다. Iris 는 그녀를 찾아 헤매지만 기차 안의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본적조차 없다고 부인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인데 우연히 호텔에서 다투었던 젊은 음악가 Gilbert (Michael Redgrave)가 그녀를 돕고 나선다.

중심이 되는 미스터리나 스크루볼코미디와 함께 히치콕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총격장면도 볼거리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끼어들길 꺼리는 영국인의 무뚝뚝함과 이기심이 신랄하게 비난받는 설정도 흥미롭다.

설국열차(코믹스)

“오랜 냉전의 끝에 지구가 얼어붙는다. 어리석은 인류가 기후 무기를 이용해 지구를 영하 85도의 얼음 행성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영원히 지구 위를 돌 수 있도록 만들어진 1001량의 초호화판 설국 열차에 탑승하는 것이다. 황금칸으로부터 꼬리칸까지 모든 객차는 계급에 따라 나누어져 있으며, 채소와 육류를 기를 수 있는 자급자족 차량까지 구비되어 있다. 설국열차는 지구의 축소판이다. 모든 것은 권력층의 독재에 의해 관리되며, 꼬리칸의 일반인들은 더러운 환경에서 고통받으며 죽어가고, 황금칸은 자포자기의 퇴폐와 향락에 휩싸여 타락해간다. 장 마르크 로셰트의 유려한 그림체를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는 <설국열차>는 모두 세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판 1권은 <설국열차>, 한국판 2권은 <설국열차: 측량사>와 <설국열차: 횡단>을 모두 담고 있다.”

대략적인 책 소개이다.

열차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예술작품이 의외로 꽤 된다. 열차탈취를 소재로 한 20년대 블록버스터 영화인 버스터키튼 주연의 ‘The General’, 아서힐 감독의 ‘Silver Streak’, 웨스앤더슨 감독의 ‘The Darjeeling Limited(2007)’,  고전이 된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그리고 휴고프라트의 걸작만화 코르트말테제 시리즈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이르기까지……

열차는 다양한 상징으로 활용된다. 액션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공간에서부터, 고향으로 떠나 타지로 가는 인간의 고독감과 두려움의 상징, 흘러가는 삶에 대한 은유, 그리고 남근의 형태를 가진데서 착안된 권력상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다양한 활용 용례에서 공통적으로 끄집어 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열차는 ‘달리고 있다는 것’ 이다. 달리지 않는 열차는 흥미가 없다. 그저 좁고 답답한 기계일 뿐이다. 달리는 기차는 그 속도감과 한정된 공간이 주는 긴장감으로 인해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이 극대화되는 적절한 장치이기 때문에 예술가들로부터 사랑받는 공간이 된 것이다.

‘설국열차’에서의 열차는 제 스스로 달린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기계 스스로 무한궤도를 질주한다. 멸망한 지구를 돌고 있는 이 열차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인간들. 어찌 보면 더 이상의 희망도 없는데 꼬리 칸의 사람들뿐 아니라 황금 칸의 사람들까지도 무슨 이유로 살고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은 이 지구 역시 차갑고 생명체 없는 우주에서 무한궤도로 돌고 있는 또 하나의 설국열차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삶도 그들의 삶만큼이나 부질없고 희망 없는 것 일수도 있다. 어쩌면 – 상당히 믿을 만 할 정도로 – 작가가 의도한 설국열차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 자체일 것이다.

‘설국열차’에서는 계급간의 갈등을 꼬리 칸을 떼어내 버림으로써 해결한다. 상당히 편리한 해결방식이다. 현실의 지배계급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현실은 더욱 복잡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현실에서의 피지배계급은 작품에서처럼 열차 꼬리에 매달려 죽을 날만 기다리는 기생계급이 아니라 지배계급을 위해 노동하는 생산자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설국열차는 꼬리 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열차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화나 무리한 은유가 원작의 품격을 해칠 만큼의 단점은 아니다. 모든 예술작품에서의 추상화와 단순화, 그리고 일반화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단순화로 인한 단점은 특유의 장치설정에서 비롯되는 극적 긴장감으로 무난히 상쇄된다.

아무튼 특유의 유럽적 감성으로 무장한 이 독특한 작품에 대한민국의 봉준호 감독이 눈독을 들이고서는 영화화하려 하고 있고 2010년 쯤이면 그 결과물을 볼 수 있다니 자못 기대가 된다.

The General

각종 소품의 활용에 있어 천재적인 솜씨를 지닌 Buster Keaton 이 기차를 가지고 화려한 마법을 펼친 1927년 산 작품이다. 1924년 또 하나의 걸작 The Navigator에서 배를 활용하여 극적효과를 극대화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는 Buster Keaton 은 남북전쟁 당시 실제로 있었던 한 사건을 소재로 하여 이 초유의 액션 영화를 창조하였다.

기관차 General 의 기관사인 Johnny Gray(Buster Keaton)는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군대에 지원하려 하지만 기관사로서의 역할이 더욱 쓸모 있다는 징병기관의 판단에 따라 지원을 거부당한다. 거부사유를 모르는 Johnny 는 이 사실로 인해 애인 Annabelle Lee 에게 조차 겁쟁이로 비난받는다. 어느 날 Johnny는 Annabelle까지 탄 기차를 몰고 가는데 북군 첩자들이 이 기차를 Annabelle 을 인질로 삼은 채 탈취한다. Johnny 는 홀로 그들을 추격하고 여러 아찔한 상황을 맞으며 마침내 남군 지역으로 기차를 가져오고 북군의 습격계획까지 알리는 등 공을 세운다. 당연히 오해가 풀린 애인과의 입맞춤으로 해피엔딩.

Buster Keaton 은 Charlie Chaplin 과 비교할 때 정치적 올바름이랄지 페이소스랄지 하는 보다 심오한 부분에서는 뒤쳐질지 몰라도 그것이 그의 천재성을 폄하시키지는 못한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기가 막힌스턴트 – 모든 스턴트는 그가 직접 하였다 – 와스펙터클한 장면의과감한 도입 등- 열차가 다리로 떨어지는 장면은 실제 열차로 찍었는데 무성영화 시절 최고의 제작비가 들었다 한다 –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낸 그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한영화적 상상력은 이후 수많은 영화인들의 교과서가 되었기 때문이다(그의 절대 팬인 성룡을 비롯하여).

Corto Maltese : La cour secrete des Arcanes

이유는 잘 모르겠다. 원제를 굳이 번역하면 ‘비밀의 정원’ 인데 실제 내용은 코르트 말테제의 다른 에피소드 ‘시베리아’이다.(내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여하튼 – 내가 틀렸으면 글을 나중에 수정할 일이고 – 이 작품은 우고 프라트의 유명한 만화 ‘코르트 말테제(Corto Maltese)’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를 2002년 영화화한 작품이다. 짜르의 황금을 실은 채 시베리아 철도를 오가는 열차를 탈취하기 위해 온갖 정치세력들이 모여들고 코르트 말테제 역시 중국의 한 정치집단 홍등과 함께 그 모험에 합류한다. 그의 오랜 친구 라스푸틴, 그리고 신비한 동양여인 상하이 리가 이 모험의 축을 이루고 시대착오적인 군벌지도자 웅게른 장군, 미스테리한 세미노바 공작부인 등이 비중 있는 조연을 꿰차고 있다. 주요군벌마다 잔뜩 무장한 기차를 몰며 전투를 벌인다는 박진감 있는 스토리가 큰 매력인데 우주선을 몰며 우주전쟁을 벌인다는 버전으로 만들어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다른 에피소드처럼 이번에도 역시 황금은 코르트의 차지가 되지 않지만 코르트는 언제나처럼 (약간은 유치한) 로맨스를 가슴에 간직한 채 또 다시 먼 길을 떠난다(상황설정이 그지없이 민망하지만 코르트에게는 그럴싸하게 어울린다). 음악도 멋있고 영상도 일품이다.

Silver Streak

Jim Carrey 가 9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이라면 Gen Wilder 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자리매김하여도 어색하지 않다. 멜브룩스, 우디알렌 등 당대의 코미디 대가들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였던 그는 상업성과 작품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점에서 Jim Carrey, 또는 다른 이전/이후의 코미디언보다도 행운아 내지는 실력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Jim Carrey 도 생각 없는 코미디 몇 편을 찍은 후에는 The Truman Show, Man On The Moon 등을 통해 품격을 높이고 있지만). 여하튼 이 곱슬머리에 엄청 큰 코, 그리고 토끼눈처럼 동그란 파란 눈동자의 이 사나이가 1976년 골라잡은 작품은 Love Story 의 감독 Arthur Hiller 가 메가폰을 잡은 코미디 블록버스터 Silver Streak 이다. 단지 지루해지고 싶어서 비행기 대신 기차를 골라잡은 George Caldwell(Gene Wilder)은 뜻하지 않게 Hilly Burns(Jill Clayburgh)과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한참 무드가 무르익을 무렵 창밖으로 떨어지는 시체를 목격하게 되면서 그의 ‘지루했으면 했던’ 기차여행은 비행기 여행이 비할 바가 안 되는 익사이팅한 모험으로 변신한다. 같은 기차에서 무려 세 번이나 밖으로 떨어지는 불운을 겪지만 굴하지 않고 ‘악의 세력’을 몰아내는 그의 모습은 제임스 본드가 지닌 불굴의 정신을 연상시킨다. 적당한 미스테리, 자못 심각한 스턴트액션, 그리고 진와일더 특유의 유머코드 등이 잘 결합되어 시간가는 것을 별로 못 느끼게 만드는 웰메이드 액션스릴러코미디물이다.

Strangers on a Train(1951)

미스터리 소설이나 영화로 밥 먹고 사는 이들이라면 늘 어떻게 범죄를 완벽하게 저지를 것인가에 대해 – 물론 상상 속에서 뿐이지만 – 강박적으로 고민할 것이다. 알프레드히치콕의 이전 작품 Shadow Of A Doubt에서 은행원 가장은 이웃집 사람과 매일 저녁 완전범죄의 플롯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알프레드히치콕과 지인들의 대화는 이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역시 Rope처럼 완전범죄를 꿈꾸는 한 괴짜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로 테니스 선수인 가이헤인즈가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브르노안토니로부터 교차살인 제안을 받는다. 즉 서로가 죽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서로가 죽여주자는 제안이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완전히 타인인 상대의 적을 죽이면 경찰수사가 혼선에 빠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해버리지만 그 이후 가이헤인즈에게 불행이 잇따른다.

레이몬드챈들러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1951년작.

완전범죄, 교차살인, 열차 등의 소재가 상황은 다르지만 완전범죄를 한 젊은이가 어떤 열차에 타고 있는 유명정치인을 암살하기 위해 서로 교차하게 될 반대노선의 열차 안에 시한폭탄을 장치한다는 모리무라세이지의 소설을 연상시킨다.

참고사이트 : http://hitchcock.tv/mov/strangers_on_a_train/trai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