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ael Stipe와 Morrissey의 만남

A close-up of Stipe holding a microphone
By Kris Krug @ https://www.flickr.com/photos/kkhttps://www.flickr.com/photos/kk/2332841534/, CC BY-SA 2.0, Link

(R.E.M.의)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가 캐롤린플레이스(Carolin Place)에 나타났고, 우리는 퀸세이 식당들의 똥 냄새가 공기를 오염시키는 가운데 뒷마당에서 차를 마셨다.
“이 동네가 싫어요.” 내가 마이클에게 말했다.
“그럼 왜 여기 사세요?” 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처음 Everyday is like Sunday를 들었을 때 정말 부러웠어요.”
그는 계속해서 자신도 솔로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솔로 활동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말했다. “나는 The Smiths가 최소 30장 정도는 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리시 자서전, 227~228쪽]

A Taste of Honey

Tasteofhoney1961.jpg
Fair use, Link

샐포드(Salford)에 사는 10대 여학생 주인공 조(Jo)1의 홀어머니 헬렌(Helen)은 철없는 40대 여성이다. 미혼모로 아이를 낳아 키우기는 했지만, 딸에게 별 애정도 없이 연하의 남성과 함께 매일 클럽과 댄스홀에서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밀린 월세를 내지 않으려고 딸과 함께 야반도주를 서슴지 않는 도덕성이 결여된 여성이다.2 조는 그런 어머니와 새 피난처로 도망가는 도중 흑인 선원 – 정확하게는 화물선의 요리사 – 지미의 도움을 받게 되고 이것을 인연으로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 와중에 헬렌이 남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그를 떠날 기세고 남자친구도 항해때문에 곧 그를 떠날 예정이지만, 그는 남자친구에게 특유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며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개의치 않겠다. 그냥 지금만 내곁에 있어줘’라고 당차게 말한다. 지미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지만 3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조는 자신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견디는데 익숙해있는 듯 했다. 그의 이런 마음 상태는 끝내 그의 모친이 결혼을 하기 위해 자신을 떠나는 순간에 겉으로 나타난다.

Helen “Aren’t you sorry to see me go? 네가 떠나는 것이 슬프니?”
Jo “I’m not sorry and I’m not glad.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

조의 모친이 떠나고난 후 그는 신발가게 점원일도 구하고 새로운 거처도 구하여 – 방은 크지만 집은 무척 낡은 –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는 언젠가 신발가게 들렀던 제프(Geoff)를 우연히 축제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고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 이 부분은 영화에서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아마도 개봉 당시에는 여전히 센세이셔널한 내용이기에 그랬던 것으로 짐작된다. – 거처가 없는 그와 동거하게 된다. 그뒤 임신을 알게된 제프는 조에게 ‘그를 사랑하냐’고 물었는데 조는 ‘나는 사랑을 싫어한다’라는 말로 다시 특유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어쨌든 조는 제프와 같이 지내며 그나마 우울한 임신, 엄마에게 버림받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우울한 사실을 잊으며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낀다.

Shelagh Delaney.jpg
By Getty Images – Immediate source: http://bainesandfricker.net/blog/?p=492, Fair use, Link

The Smiths의 Morrissey가 디자인한 밴드의 컴필레이션 앨범 Louder Than Boms의 표지 그림에도 등장하는 영국 극작가 셸라흐 딜라니(Shelagh Delaney)가 A Taste of Honey라는 이름4희곡을 19세의 나이에 써서 무대에 올렸고, 이 작품은 그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셀라흐와 감독을 맡은 토니 리차드슨(Tony Richardson)5이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하여 1961년에 영화로 내놓았다. 실제 영화를 찍은 배경도 실내 세트를 제외하고는 맨체스터(Manchester), 살포드(Salford), 블랙풀(Blackpool) 등에서 촬영해서 사실감을 더 높였다. 산업화된 벽돌 도시의 우울한 풍경, 더러운 강물, 그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6

20세기 중반 영국에서 계급, 인종, 성관계 동의 연령, 성별, 성적지향, 사생아에 대해 논평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키친싱크 사실주의의 걸작으로 남기도 한 이 희곡과 영화는 모리시가 쓴 많은 초기 가사에 영감을 주었고, Louder Than Boms 앨범의 수록곡이기도 한 “This Night Has Opened My Eyes”는 조의 곤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솔로 시절에 발표한 “Alma Matters”에는 조의 대사를 직접 인용하기도 한다.

  1. Rita Tushingham라는 배우가 호연을 선보이는데 이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었다.
  2. Dora Bryan이라는 배우가 매우 실감나게 연기한다. 필르모그래피를 찾아보니 꽤 관록이 있는 배우였다.
  3. 영화에서 그가 타고 떠나는 배는 Manchester Liners라는 해운사의 대형 화물선이었다
  4. 사실 개인적으로 이 이름을 들을 때마다 뇌리에서는 같은 이름의 흑인 여성 듀오가 히트시킨 Sukiyaki가 연주된다.
  5. Look Back in Anger (1959), The Entertainer (1960), A Taste of Honey (1961), 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 (1962) 등 50~60년대 영국 영화의 리얼리즘 사조를 주도한 감독이다
  6. 영화에서 제프는 길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조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아이들은 늘 그가 어디에 있는지 대답을 해준다. 신기한 노릇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조의 아이들의 미래를 보여주려는 의도였을까?

Morrissey – I Am Not a Dog on a Chain [2020]

Morrissey - I Am Not a Dog on a Chain.png
By Source, Fair use, Link

어제 HDTracks에서 고음질 음원으로 구입하여 듣고 있다. 80년대 뮤지션 중에서 지금도 꾸준하게 앨범을 내고 있는 솔로 아티스트들을 꼽자면 생각나는 이들이 Talking Heads의 David Byrne, The Jam과 The Style Council의 Paul Weller, 그리고 The Smiths의 Morrissey 정도다. 모즈는 내가 듣고 있는 이 앨범을 작년에 발표했고 올해 또 새로운 앨범 Bonfire of Teenagers를 발표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참으로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분인데. 암튼 전체적인 톤은 ‘아 모리씨 솔로 앨범이구나’하는 느낌이다. 앨범 제목과 동명의 곡을 지금 듣고 있는데 앨범 제목과 동일해서 그런지 더 귀에 쏙 들어오는 느낌이긴 하다. 그리고 이전 곡에서는 상당히 강한 여성 백보컬을 사용해서 인상적이었다. What Kind of People Live in These Houses?라는 곡은 왠지 The Smiths 의 찰랑거리는 쟁글팝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여하튼 전체적인 곡들의 보컬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 사실 David Byrne의 보컬은 ‘이미 좀 나이 들었다’라는 느낌인데 – 톤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갖가지 기행(?)을 용서해줄 마음이 조금은 생긴다. 고집 꺾고 조니 마나 다른 멤버들과 화해하고 완전체로 내한공연을 펼쳐준다면 그의 모든 기행을 다 용서해주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까?

Morrissey – Viva Hate

Morrissey-Viva Hate.jpg
By Source, Fair use, Link

MorrisseyThe Smiths를 떠난 후 처음으로 내놓은 스튜디오앨범이다. The Smiths는 밴드 명을 제목으로 한 데뷔앨범은 1984년 내놓은 이래 1987년 마지막 앨범 Strangeways, Here We Come에 이르기까지 매년 한 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았는데 이 앨범이 1988년 발매되었으니 역시 1년마다 앨범 한 개씩 내놓는 그 습관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햇수로는 1년이지만, The Smiths의 마지막 앨범과의 시간 갭은 6개월이라고 하니 이미 그룹이 해체되기 전부터 앨범 작업을 차곡차곡 준비해놓은 것 같다. Johnny Marr의 빈 자리는 the Durutti Column의 Vini Reilly가 맡았다. 프로듀서는 The Smiths 시절 같이 작업했던 Stephen Street를 기용하여 전체적인 톤은 상당 부분 The Smiths의 연장선상에 있다. 앨범에서는 Everyday Is Like Sunday와 Suedehead가 특히 사랑받았다. 재밌는 것이 I Don’t Mind If You Forget Me는 그룹을 떠나 Morrissey가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만든 Johnny Marr에 관한 곡이라고 한다. 앨범 마지막 곡인 Margaret On the Guillotine은 아마도 음 ……(노래 마지막에 길로틴이 덜컹하고 내려오는 소리를 효과음으로 넣었다) 앨범 커버는 The Smiths 시절에는 영화의 한 장면이나 유명 작가 등의 사진을 쓰던 것과는 달리 Morrissey의 사진을 크게 줌인해서 박아넣었고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이 스타일은 그의 솔로 앨범 커버의 특징이 된다.

1. “Alsatian Cousin”
2. “Little Man, What Now?”
3. “Everyday Is Like Sunday”
4. “Bengali in Platforms”
5. “Angel, Angel Down We Go Together”
6. “Late Night, Maudlin Street”
7. “Suedehead”
8. “Break Up the Family”
9. “The Ordinary Boys”
10. “I Don’t Mind If You Forget Me”
11. “Dial-a-Cliché”
12. “Margaret on the Guillotine”

모리시, 비니 라일리, 그리고 비바헤이트

Meat Is Murder

MeatMurder.jpg
MeatMurder” by Source.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MorrisseyThe Smiths 멤버들이(나머지 멤버들이 자발적인 채식주의자인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락밴드임에도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은 락밴드에게 의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부순다. 이러한 편견을 파괴하게 되는 밴드의 가장 공공연한 선언이 바로 1985년 발표된 밴드의 2집 Meat is Murder다. Morrissey가 내한공연을 가졌을 적에 그는 앨범 명과 같은 제목의 노래를 연주 목록에 포함시켜 처연한 목소리로 불렀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커다란 눈망울의 소가 클로즈업 된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다. 육식을 좋아하는 스미쓰 팬들은 불편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이 노래를 들어야 했다.

이러한 다소는 마이너한 주장이 노골적으로 담긴 앨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eat is Murder는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밴드의 작품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이 되었다.(미국에서는 차트 110위까지 올랐다. 미쿡에서는 여전히 듣보잡) 하지만 Rolling Stone은 2003년 이 앨범을 The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296위에 선정하면서 그 뛰어난 음악성을 칭송하였다.(까탈스러운 평론가 Robert Christgau는 이 앨범에 C+ 등급을 매겼다)

1984년 데뷔 앨범의 프러덕션이 다소 실망스러웠던 Morrissey는 기타를 맡은 Johnny Marr와 함께 직접 앨범을 프로듀스하기로 결정하였다. 엔지니어링은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에서 처음 만났던 Stephen Street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정식 크레딧에는 프로듀싱을 “The Smiths”가 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Rourke와 Joyce는 자신들의 악기 연주의 믹싱 과정에서의 사운드레벨에 대한 조언을 하는 정도만 허락받았을 뿐이다.

앨범 트랙의 내용은 이전 앨범보다 더욱 더 정치적이고 직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Meat Is Murder”가 대표적인 작품이고 그 외에도 “The Headmaster Ritual”이나 “Barbarism Begins at Home”은 체벌에 대한 강한 혐오를 드러낸 작품이다. 음악적으로 밴드는 보다 실험적이 되었는데 “Barbarism Begins at Home”에서는 펑크(funk)적인 긴 후반부 연주를 시도하기도 했다.(베이스 Andy Rourke는 Level 42의 Mark King이라도 된 양 신나게 베이스를 연주한다)

Morrissey는 이즈음에서의 각종 인터뷰에서도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공격 대상에는 대처 정부도 있었지만 동료 뮤지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Band Aid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누구나 에티오피아인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걸 영국인에게 매일매일의 고문으로 주입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죠.”라고 대답하였다.

한편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싱글의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싱글로만 발표한 “Shakespeare’s Sister”는 차트에서 성공적이지 않았다. 앨범의 유일한 싱글 “That Joke Isn’t Funny Anymore”는 49위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How Soon Is Now?”는 원래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의 B면 수록곡이었는데 북미의 댄쓰클럽과 얼터너티브 래디오에서 인기를 얻어 북미에서 발매된 앨범에 함께 수록되었다. 결국 이 노래는 영국에서도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차트 24위까지 올랐다.

앨범 커버로도 늘 이야깃거리를 주는 The Smiths의 이번 앨범 커버는 베트남전에 참가한 군인인 Michael Wynn을 찍은 1967년 작품이다. 원래 그의 철모에 적혀 있는 글은 “Make War Not Love” 였지만 “Meat Is Murder”로 교체되었다. 오리지널 이미지는 Emile de Antonio의 1968년 다큐멘터리 In the Year of the Pig에서 빌려 온 것이다.

The Importance of Being Morrissey

Morrissey Live at SXSW Austin in March 2006.jpg
Morrissey Live at SXSW Austin in March 2006” by mrmatt @ flickr – http://www.flickr.com/photos/mrmatt/http://www.flickr.com/photos/mrmatt/116581062/.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영국의 TV방송국인 Channel 4가 2002년 찍어서 2003년 방영한 Morrissey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The Importance of Being Morrissey라는 제목은 아마도 Oscar Wilde의 희곡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에서 따왔을 것이다.1 이 다큐멘터리는 스스로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면서도 The Smiths의 열렬한 팬인 J. K. Rowling의 인터뷰를 비롯하여, 음악사의 또 다른 거물들인 Bono와 Chrissie Hynde, 그의 친구들, 심지어 그의 어릴 적 이웃 아저씨까지 동원하여 Morrissey에 대한 입체적인 인물조명을 시도한다. Morrissey가 New York Dolls의 팬이었다는 잘 알려진 사실에서부터 Nationcal Front Disco라는 곡으로 촉발된 “모리씨 국수주의자설”에 대한 본인의 해명, 그의 모호한, 그렇지만 레코드 회사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주장되는 성적(性的) 이미지, 그리고 그의 저택의 소개까지, 그의 팬이라면 궁금해 할 다양한 사실들이 나열된다. 하지만 이 필름에 대한 imdb 페이지에서 한 독자가 썼듯이 여전히 그의 정치적 입장은 모호하거나, 더 나아가서 그 독자의 표현에 따르면 모순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다. 모든 유명인들에게 선명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할 수는 없으나 사실 The Smiths 정도의 비중을 가진 밴드의 리드 싱어였고 The Queen Is Dead라는 도발적인 음반으로 정치적 논쟁을 촉발한 인물이라면 조금 더 정치적 입장을 밝힐 책임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큐멘터리 보기

  1. Morrissey가 Oscar Wilde의 팬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신이 The Queen Is Dead에 대해 모르는 25가지

(원문 보기)

The-Queen-is-Dead-cover.png
The-Queen-is-Dead-cover“. Via Wikipedia.

1. 2003년 Morrissey는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가 그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말했다.

2.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은 New York Dolls의 Lonely Planet Boy라는 노래를 기반으로 가사를 만든 노래다. “오, 넌 날 태워서/네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러 나왔지/내가 너에게 내가 가는 곳을 말했을 때/언제나 내게 너무 멀다고 말했지/그러나 어떻게 너는/내 집으로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것인지/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그리고 난 난 혼자 일뿐이야.”

3. The Queen is Dead의 워킹타이틀은 ‘길로틴 위의 마가렛(Margaret on the Guillotine)’1이었다.

4. Linda McCartney2는 Frankly, Mr Shankly의 피아노를 쳐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5. Oscar Wilde의 인용 “재능이 있는 사람은 빌리고, 천재는 훔친다(Talent borrows, genius steals)”는 Bigmouth Strikes Again 싱글의 끝나는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6. 앨범 시작 부분의  Take Me Back to Dear Old Blighty 클립은 1962년 필름 The L-Shaped Room에서의 Cicley Courtneidge 캐릭터가 부른 것이다.

7. Bigmouth Strikes Again에서 들리는 고음의 백킹 보컬은 Morrissey가 불렀지만 Ann Coates라고 크레딧에 적혔다.

8. Frankly Mr Shankly의 오리지널 레코딩은 테잎의 기술적 결함 때문에 망가졌다. 그래서 다시 녹음되었다. 새 버전은 앨범이 끝날 때까지도 완성되지 않아서 John Porter가 Morrisey의 보컬을 녹음하고 믹싱해서 완성했다.

9. Some Girls Are Bigger Than Others는 브릭스턴 아카데미에서 열린 1986년의 The Smiths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딱 한번 라이브로 불리었다. Morrissey는 또한 가사를 추가했는데 “가게 바닥에 / 달력이 있었다. / 눈처럼 명백한 / (마치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10.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의 신쓰 스트링은 Jonny Marr가 이뮬레이터 샘플러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그리고 크레딧에는 ‘Hated Salford Ensemble’이라고 적었다.

11. 커버는 Morrissey가 디자인했는데 Alain Delon이 주연한 1964년 프랑스 영화 L’ Insoumis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12. The Queen Is Dead에서 “그래서 스폰지와 녹슨 스패너를 가지고 / 그 장소로 뛰쳐 들어가서 / 그녀는 말했지 / “난 알아. 그리고 넌 노래할 수 없어.” / 난 말했지 “그건 아무 것도 아냐. – 넌 내가 피아노 치는 걸 봐야 돼.””란 가사는 1982년 어느날 버킹햄 궁전에 뛰어들어 여왕과 대화를 나눈 Michael Fagan을 참조한 것이다.

13. Some Girls Are Bigger Than Others의 도입부에서 볼륨이 살짝 줄어드는 것은 고의적인 것이었다. Stephen Street는 마치 ‘약간 문이 열렸다 닫히고 다시 열려서 방으로 걸어들어오는 것’과 같이 들리도록 하고 싶었다.

14.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는 1986년 John Peel’s Festive Fifty3 정상을 차지한 두 번째 The Smiths의 곡이었다.

15.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 싱글 커버에서 점프하는 사람은 In Cold Blood를 쓴 젊은 Truman Capote다.

16. Bigmouth Strikes Again에서 “그리고 그녀의 워크맨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라는 부분은 종종 Morrissey에 의해 라이브에서 “그리고 그녀의 아이팟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로 업데이트되기도 한다. Placebo의 커버에서는 워크맨이 ‘디스크맨’으로 보청기가 ‘메가 드라이브’로 바뀌었다.

17. 제이콥스 스튜디오의 제약조건과 곡에서의 독특한 드럼 루프를 만들고자 하는 Stephen Street의 욕망 때문에 The Queen Is Dead 의 스네어와 베이스 드럼은 심발즈와 탐스와는 별도로 녹음되었다.

18. 앨범 타이틀은 미국 작가 Hubert Selby의 1964년 소설 Last Exit To Brooklyn에서 따왔다.

19. The Queen Is Dead이 NME에서 2013년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에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Morrissey와 Johnny Marr가 애정하는 앨범은 사실 Strangeways Here We Come이다.

20.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의 싱글 발매분은 B면 곡 끝에 “ARTY BLOODY FARTY / “IS THAT CLEVER”…JM”이라는 가사가 있다. 이 가사는 B면 곡 Rubber Ring에서 들을 수 있는데 JM은 Johnny Marr를 의미한다.

21.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는 The Smiths 싱글 중 최초로 프로모션용 비디오를 만든 노래다.

22. Irvine Welsh의 영향력 있는 소설 Trainspotting의 한 챕터는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에서 따서 지었다.

23. The Bigmouth Strikes Again 싱글 릴리스에는 James Dean의 사진이 있다.

24.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의 릴리스 버전은 원래 데모로 녹음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좋아 그대로 쓴 것이다.

25. 원래 Kirsty MacColl이 Bigmouth Strikes Again의 백킹 보컬을 소화했지만 Johnny Marr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최종 믹스에서 빠지고 Morrissey의 고음 백킹 보컬로 교체되었다.

앨범 소개 보기

  1. 이게 아쉬웠는지 Morrissey는 같은 이름의 노래를 발표한다 : 역자주
  2. Paul McCartney의 아내이기도 했던 가수 : 역자주
  3. BBC 래디오1 쇼에서 청취자들의 투표로 매년 뽑는 가장 인기 있는 50곡의 싱글 차트. 1986년 차트 보기. : 역자주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Williamitwasreallynothing UKorig.gif
Williamitwasreallynothing UKorig”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Rough Trade..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그가 벌거벗을 것을 본 마지막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Morrissey는 “나를 잔인한 세계로 끌어들인 그 의사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The Smiths의 많은 초기 싱글들이 그렇듯이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역시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십대의 성경험에 관한 이야기다. 이 노래의 경우에는 따분한 동네에서 벌어지는 삼각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알려지기로는 Associates의 리드 싱어 Billy Mackenzie와 Morrissey와의 짧은 인연에 관한 노래라 여겨지기도 한다. 1984년 8월 24일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 과 “How Soon Is Now?” 의 B면에 수록되어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17위까지 올랐다. 밴드가 Top of The Pops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에 Morrissey가 셔츠를 열어젖혔는데 그의 가슴에는 “Marry Me”라고 적혀 있었다. 이 노래의 가사 중 일부다. 후에 The Smiths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Hatful of Hollow와 Louder Than Bombs에 수록되었다. The Smiths의 엄청난 팬인 OutKast의 André 3000은 한번은 이 곡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롤링스톤은 이 곡을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서 431위에 선정했다.

뮤직비디오

The Smiths의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에 관해 당신이 모르는 20가지 사실

이 글에서 요약 발췌

The Smiths의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이 30년 전인 1984년 2월 20일 발매되었다. 이 앨범의 탄생에는 부족한 예산 등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오늘 날에는 완벽한 클래식으로 전 세계 락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글에서 당신이 모를 수도 있는 이 앨범에 대한 20가지 트리비아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The Smiths The Smiths.jpg
The Smiths The Smiths” by http://www.amazon.co.uk/Smiths/dp/B00002496V/ref=sr_1_1?ie=UTF8&s=music&qid=1273132134&sr=8-1. Licensed under Wikipedia.

1. 커버의 사진은 Andy Warhol이 프로듀스한 1968년 영화 Flesh의 스틸 중에서 배우 Joe Dallesandro의 모습이다.

2. 밴드는 처음에는 The Teardrop Explodes의 前기타리스트와 함께 Troy Tate라는 제목의 앨범을 녹음했었다. Morrissey가 “우리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바르게 해냈고 보면 알 것이다.”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John Porter와 함께 전체를 다시 녹음해야 했다.

3. 나중에 Mike & The Mechanics에 합류한 Paul Carrack이 이 앨범의 키보드를 치고 있다.

4. Morrissey는 가사 때문에 What Difference Does It Make?이 가장 싫어하는 스미쓰의 곡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안이하고 다소 쑥스러운…”

5. Suffer Little Children에서 들리는 여성의 웃음소리는 Pretty Girls Make Graves에서 “Oh really?”라고 말하는 부분은 몇몇 쏘스에 따르면 녹음 당시 Morrissey의 여자친구였던 Annalisa Jablonska 의 것이라 한다.

6. 많은 이들이 왜 The Smiths가 전설적인 맨체스터의 인디 레이블 Factory에서 발매되지 않았는지 의아하는데, 엄청난 팬이이자 Morrissey의 친구이기도 했던 Tony Wilson에 따르면 당시 레이블이 분쟁 중에 있었기 때문에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Morrissey에 따르면 Wilson은 Johnny Marr의 연주에 대해 “이 모든 Byrds의 곡들은 이미 연주되고 또 연주되었었다.”라고 했다고.(비웃는 톤인듯? – 역주)

7. Reel Around The Fountain의 멜로디에 대해 Johnny Marr는 “난 R&B 곡 Handy Man의 Jimmy Jones 스타일로 연주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8. The Smiths의 작업 타이틀은 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이었다.

9. John Porter와 함께 한 맨체스터의 플루토 스튜디오에서의 첫 녹음은 단지 6일이었다. 이 기간에 대부분의 녹음을 끝낸다. 그러나 Rough Trade가 그 뒤에 Sire 레코드사와 배급에 관한 계약을 해지한다. 이는 사운드에 살을 더 붙일 수 있는 예산이 남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10. 총 녹음비용은 6,000파운드가 소요됐다.

11. The Smiths는 Thompson Twins를 누르며 영국 차트 2위까지 오른다. Rough Trade의 한 쏘스에 따르면 “1위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당시 카세트를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12. 오리지널 앨범에서 싱글로 발매된 것은 겨우 두 곡이다.: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정규앨범 발매 후) 와 Hand In Glove (정규앨범 발매 전).

13. Morrissey는 Rough Trade의 사장 Geoff Travis과 John Porter에게 투자한 예산 때문에 앨범이 “맘에 들만큼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은 어쨌든 발매했다.

14. Hand In Glove의 가사는 극작가 Shelagh Delaney와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Leonard Cohen에 대한 언급이 있다.

15. Suffer Little Children는 라이브에서 딱 한번 연주됐다. 1982년 10월 4일 맨체스터의 The Ritz에서 열린 The Smiths의 생애 최초의 공연에서였다.

16. 앨범의 두 엔지니어 중 하나였던 Neill King은 지금은 북 캘리포니아의 와인 산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17. 최초의 트랙리스트에는 The Smiths의 발매 전에 싱글로 발매됐던 This Charming Man이 없었다. 이 노래는 나중에 영국의 카세트 버전에 보너스트랙으로 들어갔고, 미국 발매 시에는 모든 앨범에 들어갔다.

18. 앨범의 Hand In Glove 버전은 그들의 데뷔 싱글의 리믹스 버전인데, 밴드 스스로 Stockport에 있는 스트로베리스튜디오에서 250파운드를 들여 프로듀스한 작품이다.

19. What Difference Does It Make?는 프로모션 비디오없이 발매되었는데, Morrissey가 비디오는 “매우 빨리 소멸”하게 될 어떠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20. Morrissey는 Hand In Glove에서의 “우리가 비록 넝마 뒤에 숨겨져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무엇인가다.”라는 2행시가 가장 좋아하는 스미쓰의 가사라고 말했다.

Morrissey가 평가한 The Ramones

뉴욕돌스와 패티스미쓰는 뉴욕의 늪들과 하수도들에서도 어떠한 생명이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뉴욕의 클럽씬에서 배출한 중에 어떤 칭찬이라도 받을만한 이들이다. 레이몬즈는 적절하거나 중요한 어떠한 것도 더하지 않은 완전한 듣보잡이고 바로 정리되어 잊혀져야 할 이들이다. – 스티브 모리씨, 킹스로드, 스트렛퍼드, 맨체스터
The New York Dolls and Patti Smith have proved that there is some life pumping away in the swamps and gutters of New York and they are the only acts which originated from the N.Y. club scene worthy of any praise. The Ramones have absolutely nothing to add that is of relevance or importance and should be rightly filed and forgotten—Steve Morrissey, Kings Road, Stretford, Manchester.[출처]

1976년 7월 24일 발행된 멜로디메이커에 당시 17살이었던 Morrissey가 기고한 칼럼 중 일부다. 아쉽게도 아직 많은 이들이 The Ramones를 기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