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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t Is Mu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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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tMurder” by Source.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Meat Is Murder“>Fair use via Wikipedia.

MorrisseyThe Smiths 멤버들이(나머지 멤버들이 자발적인 채식주의자인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락밴드임에도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은 락밴드에게 의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부순다. 이러한 편견을 파괴하게 되는 밴드의 가장 공공연한 선언이 바로 1985년 발표된 밴드의 2집 Meat is Murder다. Morrissey가 내한공연을 가졌을 적에 그는 앨범 명과 같은 제목의 노래를 연주 목록에 포함시켜 처연한 목소리로 불렀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커다란 눈망울의 소가 클로즈업 된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다. 육식을 좋아하는 스미쓰 팬들은 불편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이 노래를 들어야 했다.

이러한 다소는 마이너한 주장이 노골적으로 담긴 앨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eat is Murder는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밴드의 작품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이 되었다.(미국에서는 차트 110위까지 올랐다. 미쿡에서는 여전히 듣보잡) 하지만 Rolling Stone은 2003년 이 앨범을 The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296위에 선정하면서 그 뛰어난 음악성을 칭송하였다.(까탈스러운 평론가 Robert Christgau는 이 앨범에 C+ 등급을 매겼다)

1984년 데뷔 앨범의 프러덕션이 다소 실망스러웠던 Morrissey는 기타를 맡은 Johnny Marr와 함께 직접 앨범을 프로듀스하기로 결정하였다. 엔지니어링은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에서 처음 만났던 Stephen Street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정식 크레딧에는 프로듀싱을 “The Smiths”가 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Rourke와 Joyce는 자신들의 악기 연주의 믹싱 과정에서의 사운드레벨에 대한 조언을 하는 정도만 허락받았을 뿐이다.

앨범 트랙의 내용은 이전 앨범보다 더욱 더 정치적이고 직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Meat Is Murder”가 대표적인 작품이고 그 외에도 “The Headmaster Ritual”이나 “Barbarism Begins at Home”은 체벌에 대한 강한 혐오를 드러낸 작품이다. 음악적으로 밴드는 보다 실험적이 되었는데 “Barbarism Begins at Home”에서는 펑크(funk)적인 긴 후반부 연주를 시도하기도 했다.(베이스 Andy Rourke는 Level 42의 Mark King이라도 된 양 신나게 베이스를 연주한다)

Morrissey는 이즈음에서의 각종 인터뷰에서도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공격 대상에는 대처 정부도 있었지만 동료 뮤지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Band Aid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누구나 에티오피아인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걸 영국인에게 매일매일의 고문으로 주입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죠.”라고 대답하였다.

한편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싱글의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싱글로만 발표한 “Shakespeare’s Sister”는 차트에서 성공적이지 않았다. 앨범의 유일한 싱글 “That Joke Isn’t Funny Anymore”는 49위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How Soon Is Now?”는 원래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의 B면 수록곡이었는데 북미의 댄쓰클럽과 얼터너티브 래디오에서 인기를 얻어 북미에서 발매된 앨범에 함께 수록되었다. 결국 이 노래는 영국에서도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차트 24위까지 올랐다.

앨범 커버로도 늘 이야깃거리를 주는 The Smiths의 이번 앨범 커버는 베트남전에 참가한 군인인 Michael Wynn을 찍은 1967년 작품이다. 원래 그의 철모에 적혀 있는 글은 “Make War Not Love” 였지만 “Meat Is Murder”로 교체되었다. 오리지널 이미지는 Emile de Antonio의 1968년 다큐멘터리 In the Year of the Pig에서 빌려 온 것이다.

The Importance of Being Morris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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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rissey Live at SXSW Austin in March 2006” by mrmatt @ flickr – http://www.flickr.com/photos/mrmatt/http://www.flickr.com/photos/mrmatt/116581062/.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영국의 TV방송국인 Channel 4가 2002년 찍어서 2003년 방영한 Morrissey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The Importance of Being Morrissey라는 제목은 아마도 Oscar Wilde의 희곡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에서 따왔을 것이다.1 이 다큐멘터리는 스스로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면서도 The Smiths의 열렬한 팬인 J. K. Rowling의 인터뷰를 비롯하여, 음악사의 또 다른 거물들인 Bono와 Chrissie Hynde, 그의 친구들, 심지어 그의 어릴 적 이웃 아저씨까지 동원하여 Morrissey에 대한 입체적인 인물조명을 시도한다. Morrissey가 New York Dolls의 팬이었다는 잘 알려진 사실에서부터 Nationcal Front Disco라는 곡으로 촉발된 “모리씨 국수주의자설”에 대한 본인의 해명, 그의 모호한, 그렇지만 레코드 회사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주장되는 성적(性的) 이미지, 그리고 그의 저택의 소개까지, 그의 팬이라면 궁금해 할 다양한 사실들이 나열된다. 하지만 이 필름에 대한 imdb 페이지에서 한 독자가 썼듯이 여전히 그의 정치적 입장은 모호하거나, 더 나아가서 그 독자의 표현에 따르면 모순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다. 모든 유명인들에게 선명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할 수는 없으나 사실 The Smiths 정도의 비중을 가진 밴드의 리드 싱어였고 The Queen Is Dead라는 도발적인 음반으로 정치적 논쟁을 촉발한 인물이라면 조금 더 정치적 입장을 밝힐 책임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큐멘터리 보기

  1. Morrissey가 Oscar Wilde의 팬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신이 The Queen Is Dead에 대해 모르는 25가지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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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Queen-is-Dead-cover“. Via Wikipedia.

1. 2003년 Morrissey는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가 그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말했다.

2.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은 New York Dolls의 Lonely Planet Boy라는 노래를 기반으로 가사를 만든 노래다. “오, 넌 날 태워서/네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러 나왔지/내가 너에게 내가 가는 곳을 말했을 때/언제나 내게 너무 멀다고 말했지/그러나 어떻게 너는/내 집으로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것인지/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그리고 난 난 혼자 일뿐이야.”

3. The Queen is Dead의 워킹타이틀은 ‘길로틴 위의 마가렛(Margaret on the Guillotine)’1이었다.

4. Linda McCartney2는 Frankly, Mr Shankly의 피아노를 쳐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5. Oscar Wilde의 인용 “재능이 있는 사람은 빌리고, 천재는 훔친다(Talent borrows, genius steals)”는 Bigmouth Strikes Again 싱글의 끝나는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6. 앨범 시작 부분의  Take Me Back to Dear Old Blighty 클립은 1962년 필름 The L-Shaped Room에서의 Cicley Courtneidge 캐릭터가 부른 것이다.

7. Bigmouth Strikes Again에서 들리는 고음의 백킹 보컬은 Morrissey가 불렀지만 Ann Coates라고 크레딧에 적혔다.

8. Frankly Mr Shankly의 오리지널 레코딩은 테잎의 기술적 결함 때문에 망가졌다. 그래서 다시 녹음되었다. 새 버전은 앨범이 끝날 때까지도 완성되지 않아서 John Porter가 Morrisey의 보컬을 녹음하고 믹싱해서 완성했다.

9. Some Girls Are Bigger Than Others는 브릭스턴 아카데미에서 열린 1986년의 The Smiths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딱 한번 라이브로 불리었다. Morrissey는 또한 가사를 추가했는데 “가게 바닥에 / 달력이 있었다. / 눈처럼 명백한 / (마치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10.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의 신쓰 스트링은 Jonny Marr가 이뮬레이터 샘플러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그리고 크레딧에는 ‘Hated Salford Ensemble’이라고 적었다.

11. 커버는 Morrissey가 디자인했는데 Alain Delon이 주연한 1964년 프랑스 영화 L’ Insoumis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12. The Queen Is Dead에서 “그래서 스폰지와 녹슨 스패너를 가지고 / 그 장소로 뛰쳐 들어가서 / 그녀는 말했지 / “난 알아. 그리고 넌 노래할 수 없어.” / 난 말했지 “그건 아무 것도 아냐. – 넌 내가 피아노 치는 걸 봐야 돼.””란 가사는 1982년 어느날 버킹햄 궁전에 뛰어들어 여왕과 대화를 나눈 Michael Fagan을 참조한 것이다.

13. Some Girls Are Bigger Than Others의 도입부에서 볼륨이 살짝 줄어드는 것은 고의적인 것이었다. Stephen Street는 마치 ‘약간 문이 열렸다 닫히고 다시 열려서 방으로 걸어들어오는 것’과 같이 들리도록 하고 싶었다.

14.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는 1986년 John Peel’s Festive Fifty3 정상을 차지한 두 번째 The Smiths의 곡이었다.

15.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 싱글 커버에서 점프하는 사람은 In Cold Blood를 쓴 젊은 Truman Capote다.

16. Bigmouth Strikes Again에서 “그리고 그녀의 워크맨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라는 부분은 종종 Morrissey에 의해 라이브에서 “그리고 그녀의 아이팟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로 업데이트되기도 한다. Placebo의 커버에서는 워크맨이 ‘디스크맨’으로 보청기가 ‘메가 드라이브’로 바뀌었다.

17. 제이콥스 스튜디오의 제약조건과 곡에서의 독특한 드럼 루프를 만들고자 하는 Stephen Street의 욕망 때문에 The Queen Is Dead 의 스네어와 베이스 드럼은 심발즈와 탐스와는 별도로 녹음되었다.

18. 앨범 타이틀은 미국 작가 Hubert Selby의 1964년 소설 Last Exit To Brooklyn에서 따왔다.

19. The Queen Is Dead이 NME에서 2013년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에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Morrissey와 Johnny Marr가 애정하는 앨범은 사실 Strangeways Here We Come이다.

20.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의 싱글 발매분은 B면 곡 끝에 “ARTY BLOODY FARTY / “IS THAT CLEVER”…JM”이라는 가사가 있다. 이 가사는 B면 곡 Rubber Ring에서 들을 수 있는데 JM은 Johnny Marr를 의미한다.

21.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는 The Smiths 싱글 중 최초로 프로모션용 비디오를 만든 노래다.

22. Irvine Welsh의 영향력 있는 소설 Trainspotting의 한 챕터는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에서 따서 지었다.

23. The Bigmouth Strikes Again 싱글 릴리스에는 James Dean의 사진이 있다.

24.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의 릴리스 버전은 원래 데모로 녹음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좋아 그대로 쓴 것이다.

25. 원래 Kirsty MacColl이 Bigmouth Strikes Again의 백킹 보컬을 소화했지만 Johnny Marr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최종 믹스에서 빠지고 Morrissey의 고음 백킹 보컬로 교체되었다.

앨범 소개 보기

  1. 이게 아쉬웠는지 Morrissey는 같은 이름의 노래를 발표한다 : 역자주
  2. Paul McCartney의 아내이기도 했던 가수 : 역자주
  3. BBC 래디오1 쇼에서 청취자들의 투표로 매년 뽑는 가장 인기 있는 50곡의 싱글 차트. 1986년 차트 보기. : 역자주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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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itwasreallynothing UKorig”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Rough Trade..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Fair use via Wikipedia.

1984년 그가 벌거벗을 것을 본 마지막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Morrissey는 “나를 잔인한 세계로 끌어들인 그 의사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The Smiths의 많은 초기 싱글들이 그렇듯이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역시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십대의 성경험에 관한 이야기다. 이 노래의 경우에는 따분한 동네에서 벌어지는 삼각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알려지기로는 Associates의 리드 싱어 Billy Mackenzie와 Morrissey와의 짧은 인연에 관한 노래라 여겨지기도 한다. 1984년 8월 24일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 과 “How Soon Is Now?” 의 B면에 수록되어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17위까지 올랐다. 밴드가 Top of The Pops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에 Morrissey가 셔츠를 열어젖혔는데 그의 가슴에는 “Marry Me”라고 적혀 있었다. 이 노래의 가사 중 일부다. 후에 The Smiths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Hatful of Hollow와 Louder Than Bombs에 수록되었다. The Smiths의 엄청난 팬인 OutKast의 André 3000은 한번은 이 곡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롤링스톤은 이 곡을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서 431위에 선정했다.

뮤직비디오

The Smiths의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에 관해 당신이 모르는 20가지 사실

이 글에서 요약 발췌

The Smiths의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이 30년 전인 1984년 2월 20일 발매되었다. 이 앨범의 탄생에는 부족한 예산 등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오늘 날에는 완벽한 클래식으로 전 세계 락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글에서 당신이 모를 수도 있는 이 앨범에 대한 20가지 트리비아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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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iths The Smiths” by http://www.amazon.co.uk/Smiths/dp/B00002496V/ref=sr_1_1?ie=UTF8&s=music&qid=1273132134&sr=8-1.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The Smiths (album)“>Fair use via Wikipedia.

1. 커버의 사진은 Andy Warhol이 프로듀스한 1968년 영화 Flesh의 스틸 중에서 배우 Joe Dallesandro의 모습이다.

2. 밴드는 처음에는 The Teardrop Explodes의 前기타리스트와 함께 Troy Tate라는 제목의 앨범을 녹음했었다. Morrissey가 “우리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바르게 해냈고 보면 알 것이다.”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John Porter와 함께 전체를 다시 녹음해야 했다.

3. 나중에 Mike & The Mechanics에 합류한 Paul Carrack이 이 앨범의 키보드를 치고 있다.

4. Morrissey는 가사 때문에 What Difference Does It Make?이 가장 싫어하는 스미쓰의 곡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안이하고 다소 쑥스러운…”

5. Suffer Little Children에서 들리는 여성의 웃음소리는 Pretty Girls Make Graves에서 “Oh really?”라고 말하는 부분은 몇몇 쏘스에 따르면 녹음 당시 Morrissey의 여자친구였던 Annalisa Jablonska 의 것이라 한다.

6. 많은 이들이 왜 The Smiths가 전설적인 맨체스터의 인디 레이블 Factory에서 발매되지 않았는지 의아하는데, 엄청난 팬이이자 Morrissey의 친구이기도 했던 Tony Wilson에 따르면 당시 레이블이 분쟁 중에 있었기 때문에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Morrissey에 따르면 Wilson은 Johnny Marr의 연주에 대해 “이 모든 Byrds의 곡들은 이미 연주되고 또 연주되었었다.”라고 했다고.(비웃는 톤인듯? – 역주)

7. Reel Around The Fountain의 멜로디에 대해 Johnny Marr는 “난 R&B 곡 Handy Man의 Jimmy Jones 스타일로 연주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8. The Smiths의 작업 타이틀은 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이었다.

9. John Porter와 함께 한 맨체스터의 플루토 스튜디오에서의 첫 녹음은 단지 6일이었다. 이 기간에 대부분의 녹음을 끝낸다. 그러나 Rough Trade가 그 뒤에 Sire 레코드사와 배급에 관한 계약을 해지한다. 이는 사운드에 살을 더 붙일 수 있는 예산이 남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10. 총 녹음비용은 6,000파운드가 소요됐다.

11. The Smiths는 Thompson Twins를 누르며 영국 차트 2위까지 오른다. Rough Trade의 한 쏘스에 따르면 “1위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당시 카세트를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12. 오리지널 앨범에서 싱글로 발매된 것은 겨우 두 곡이다.: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정규앨범 발매 후) 와 Hand In Glove (정규앨범 발매 전).

13. Morrissey는 Rough Trade의 사장 Geoff Travis과 John Porter에게 투자한 예산 때문에 앨범이 “맘에 들만큼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은 어쨌든 발매했다.

14. Hand In Glove의 가사는 극작가 Shelagh Delaney와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Leonard Cohen에 대한 언급이 있다.

15. Suffer Little Children는 라이브에서 딱 한번 연주됐다. 1982년 10월 4일 맨체스터의 The Ritz에서 열린 The Smiths의 생애 최초의 공연에서였다.

16. 앨범의 두 엔지니어 중 하나였던 Neill King은 지금은 북 캘리포니아의 와인 산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17. 최초의 트랙리스트에는 The Smiths의 발매 전에 싱글로 발매됐던 This Charming Man이 없었다. 이 노래는 나중에 영국의 카세트 버전에 보너스트랙으로 들어갔고, 미국 발매 시에는 모든 앨범에 들어갔다.

18. 앨범의 Hand In Glove 버전은 그들의 데뷔 싱글의 리믹스 버전인데, 밴드 스스로 Stockport에 있는 스트로베리스튜디오에서 250파운드를 들여 프로듀스한 작품이다.

19. What Difference Does It Make?는 프로모션 비디오없이 발매되었는데, Morrissey가 비디오는 “매우 빨리 소멸”하게 될 어떠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20. Morrissey는 Hand In Glove에서의 “우리가 비록 넝마 뒤에 숨겨져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무엇인가다.”라는 2행시가 가장 좋아하는 스미쓰의 가사라고 말했다.

Morrissey가 평가한 The Ramones

뉴욕돌스와 패티스미쓰는 뉴욕의 늪들과 하수도들에서도 어떠한 생명이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뉴욕의 클럽씬에서 배출한 중에 어떤 칭찬이라도 받을만한 이들이다. 레이몬즈는 적절하거나 중요한 어떠한 것도 더하지 않은 완전한 듣보잡이고 바로 정리되어 잊혀져야 할 이들이다. – 스티브 모리씨, 킹스로드, 스트렛퍼드, 맨체스터
The New York Dolls and Patti Smith have proved that there is some life pumping away in the swamps and gutters of New York and they are the only acts which originated from the N.Y. club scene worthy of any praise. The Ramones have absolutely nothing to add that is of relevance or importance and should be rightly filed and forgotten—Steve Morrissey, Kings Road, Stretford, Manchester.[출처

1976년 7월 24일 발행된 멜로디메이커에 당시 17살이었던 Morrissey가 기고한 칼럼 중 일부다. 아쉽게도 아직 많은 이들이 The Ramones를 기억하고 있다. 🙂

Morrissey 공연 후기 간단하게…

 출처 : @Kihang

처음 The Smiths의 존재를 안 것은 198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들의 존재를 거의 최초로 알린 이로 기억하는 복X주 씨의 글을 어느 음악잡지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다.(그 분도 어제 공연에 왔을까?) 글도 글이지만 멤버 네 명이서 반코트를 챙겨 입은 모습이 여느 메탈밴드는 물론이고 비슷한 음악을 하는 인디/뉴웨이브 계열과도 다른 분위기를 풍겨 인상적이었다.

그 뒤 외국에서 어렵사리 그들의 앨범을 구한 것이 라이브 앨범인 Rank. 그때가 1986년 아니면 87년으로 기억하는데 그들이 해산한 것이 1987년이었으니 시기적으로는 조금 늦게 그들의 음악을 접한 셈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 The Smiths의 음악은 나의 짧고 얇은 음악 듣기의 역사에 한 귀퉁이를 차지하였다. 정규앨범은 물론 국내 라이선스로 나오진 않았지만 90년대엔 수입CD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 확인해보니 Rank의 발매년도는 1988년. 내가 그 앨범을 얻었을 때는 이미 해산하였다.

Morrissey의 솔로 활동은 유명한 밴드 출신의 솔로 커리어 중에서도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듯하다. The Smiths 나긋나긋한 음악이 약간 하드코어적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팬들의 팬덤도 여전했다. 차트에 오르는 곡은 거의 없었던 것 같지만 팬들이나 모리씨나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Your Arsenal을 가장 좋아했다. The Smiths와 모리씨 사운드가 가장 화학적으로 잘 결합했다는 생각이 든다.

2012-05-06 033
기념품을 팔던 부쓰

어제의 공연은 그러니까 햇수로 따지면 그들을 안지 27년쯤 되어서야 과거의 프론트맨을 겨우 볼 수 있었던 공연이었던 셈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목소리의 상태를 유지하고 어느 정도 상업적 인기를 유지하여 마침내 동북아 먼 곳 서울에까지 공연을 와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그 역시도 자신의 커리어에서 코리아에 오게 될지 몰랐다는 취지의 말을 공연 중에 한 것으로 기억난다. 몰랐겠지.)

공연장은 예상했던 바, 관객의 적어도 1/3이상이 외국인이었다. 동행한 이에게 말했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에 이렇게 많아지지 않았더라면 모리씨의 공연은 더 지연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인 관객들도 예상보다 많았던지라 크지 않은 공연장이었지만 적어도 중년의 성긴 머리처럼 객석이 비지 않아 보일 정도의 밀도는 됐다. 게다가 스탠딩 앞의 반응은 손 한번 잡아달라는 애타는 팬심까지 연출하였다.

그 덕분인지 공연은 나름 탄력을 받아 탄탄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모리씨의 음색은 깔끔했고 셋리스트는 – 다른 나라에서의 셋리스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 적당한 강약을 유지하며 흐름을 탈 수 있도록 진행되었다. The Smiths 시절 곡이 네 곡 소개되었는데 역시 예상했던 대로 모리씨는 Meat Is Murder와 I Know It’s Over를 불렀고, 사실 이 두 곡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퍼포먼스는 Let Me Kiss You에서 연출되었다. 신체적으로 열등한 한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눈을 감고 네가 신체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연상하면서 내가 키스하게 해달라’는 예의 모리씨스러운 가사의 곡인데, ‘눈을 뜨면 네가 신체적으로 경멸하는 누군가를 볼 것이다’라는 가사 부분에서 모리씨가 웃통을 벗어젖히고 셔츠를 관객석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덕분에 그곳은 난투장으로 돌변. 🙂

첫 곡으로 소개되지 않았던 Firs Of The Gang To Die는 예상대로 앵콜에서 등장했다. 기분상의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사운드가 왠지 헤비하지 않아서 곡 자체는 앵콜곡에 어울렸지만 왠지 대미를 장식하기에는 부족한 공허함이 있었다. 게다가 앵콜곡은 단 한 곡.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1시간 20분에 불과한 공연에 앵콜이 한 곡 밖이었니 27년을 기다린 보상심리를 채우기는 조금은 부족했다.

다시 오라 모리씨. 두 번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