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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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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album cover” by Derived from a digital capture (scan/photo) of the album/CD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record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regardless..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Heart (Heart album)“>Fair use via Wikipedia.

1985년 7월 6일 Heart의 여덟 번째 스튜디오 앨범 Heart가 발매되었다. Ron Nevison이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로스엔젤리스에 있는 레코드플랜트와 소살리토에 있는 레코드플랜트에서 1985년 1월에서 4월까지 녹음됐다. 시애틀에 기반을 둔 이 고참 밴드에게는 이 앨범이 오랫동안 함께 했던 에픽(Epic) 레코드사를 떠나 캐피톨(Capitol) 레코드사와 협업한 첫 작품이었다. 밴드는 이 앨범을 위해 이전과 달리 Bernie Taupin, Martin Page, Holly Knight과 같은 외부의 작곡가들을 고용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보다 라디오 친화적인 멜로디로 무장한 이 앨범에서는 “What About Love?” (#10 Pop), “Never” (#4 Pop), “Nothin’ At All” (#10 Pop) 등이 인기를 얻었다. 게다가 “These Dreams”는 밴드의 첫 1위곡이 되었다. 앨범은 빌보드 탑200의 1위에 올랐고 차트에는 92주간 머물렀다. RIAA는 이 앨범을 4x 플래티넘으로 인증했다.

Thease Dreams 뮤직비디오

Power Station

요즘 이들의 음악이 좋다. Robert Palmer의 기름진 목소리, 락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연주, 리드미컬한 드러밍. 공연을 보거나 합주를 하면 정말 재밌을 것 같은 곡들을 만들었던 그룹이다. 다시 재결합해서 한국에 공연을 올 수 있을까?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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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station publicityphoto” by http://www.duran2.net/eng/gallery.htm.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Power Station (band)“>Fair use via Wikipedia.

수퍼그룹 Power Station은 Duran Duran의 John Taylor와 Andy Taylor, Chic의 드러머였던 Tony Thompson, 그리고 싱어 Robert Palmer로 구성되었다. 처음에 그것은 John의 아이디어였다. John은 그룹을 조직하기 전부터 Robert Palmer의 친구였고 그의 음악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의 당초 Power Station에 대한 오리지날 컨셉은 한 앨범에 여러 명의 싱어들이 노래하는 일종의 객원싱어 개념이었지만 단기간내 그런 프로젝트가 성사될지는 미지수였다.

한편 그 당시 John은 연인인 Bebe Buel이 T. Rex의 Bang a Gong (Get It On)을 리메이크했으면 하고 바랬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곡을 훵키버전으로 만들기 위해 Tony Thompson과 합류하였다. 그러나 John과 Bebe가 연인관계가 깨져버려 이는 무산되었다. 한편 John과 Andy는 이미 Some Like It Hot과 Murderess의 데모작업을 진행하였는데 Some Communication이라는 곡의 싱어로 Robert Palmer가 초대되었다. 마침내 Bernie Edwards는 전앨범에 Robert Palmer가 싱어로 참여할것을 제의했다.

1985년 2월 Power Station은 Saturday Night Live에서 데뷔무대를 가졌다. 3월말 Some Like It Hot이 영국챠트에 등장해 14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미국에선 6위까지 올랐다. 앨범은 4월에 영미 챠트에 첫등장하였다. 그리고 이어 6월에는 Bang a Gong (Get It On)을 히트시켰다. 세번째 싱글은 Murderess였다.

애초 Power Station은 공연을 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연이은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공연에 대한 유혹은 너무 커져갔다. 그러나 Palmer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연 10일째 되던 날 공연단을 떠났다. 공연투어의 싱어는 Silverhead란 그룹의 싱어였던 Michael Des Barres로 대체되었다. 그 당시 John은 이 프로젝트가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당초 Duran Duran 의 Alter Ego의 개념으로 출발한 그룹이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가을에 그룹의 마지막 싱글인 Communication이 발매되었다. 미국에서는 Top 40에 들었지만 영국에서는 75위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전작의 성공에 비해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공연도 차츰 시들어졌고 마침내 그룹은 그 종착점에 도달하였다. John Taylor는 Duran Duran으로 돌아갔지만 Andy Taylor는 솔로 활동을 위해 Duran Duran에 합류하지 않고 Sex Pistols의 기타리스트였던 Steve Jones와 공동작업에 들어갔다.

디스코그래피
1985 The Power Station 33 1/3 Capitol
1985 The Power Station Capitol
1996 Living in Fear Chrysalis

링크
Fan Page

U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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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Gelsenkirchen August 3rd 2009” by SteBo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20년간의 활동기간 동안 비평적인 면과 상업인 면 양쪽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되는 밴드 중의 하나인 U2는 예술적과 상업적이라는 음악산업의 양 면에서 그들의 활동기간 동안 성공적인 행보를 계속해왔다.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의 밴드의 초기 시절부터 현재까지 U2는 여타 다른 락밴드들이 벗어날 수 없었던 전통적인 한계로부터 자유를 부루짖어 왔으며 또한 자유로웠다. 독창적인 사운드에 진솔한 가사와 사회도전적인 메시지를 섞은 음악을 들려 줌으로써 U2는 비평가들은 물론 다른 동료 락 밴드로부터 존경을 얻어왔으며 전세계적으로 광적인 그들의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U2는 1976년 14세의 Larry Mullen, Jr.(Drum)가 자신이 다니던 학교인 Dublin’s Mount Temple School의 게시판에 새로운 밴드의 멤버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면서 시작 되었다. Mullen(drum), Adam Clayton(Bass), Paul Hewson(“Bono”, vocals), Dave evans(“The Edge”, guitar), Dick(Dave의 형, guitar) 이렇게 5명은 한데 뭉쳐 “Feedback”이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 하지만 연습도 제대로 시작하기전 Dick은 다른 밴드에 가입하게 위해 밴드를 떠난다. “Feedback”은 밴드의 이름을 “The Hype”라 바꾸고 주말과 방과 후 연습을 시작하게 되고 진실한 우정과 조화를 이뤄간다. 연습을 시작한지 18개월 후 밴드에게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1978년 3월 한 contest에 참가하게 되는데 거기서 그들은 입상을 하게 되고 CBS 레코드사의 Jackie Hayden을 만나게 된다. “The Hype”의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은 Hayden은 그들에게 데모 앨범을 내자는 제의를 하게 된다. contest가 끝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The Hype”는 밴드명을 U2바꾸고 그들의 매니저로 Paul McGuinness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들은 학교 밖으로 그들의 활동영역을 넓혀가게 되고 가능한한 더블린 주위에서 많은 연주를 하며 지역 팬들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1979년 9월 U2는 계속된 연주 활동을 기반으로 그들의 첫 싱글 “U2:3″를 발표한다. 이 싱글은 아일랜드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다. 이 인기에 힘입어 U2는 그해 12월 영국 공연을 감행하고 팬과 비평가의 주목을 끌기 위해 애쓰지만 유료 관객 9명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남기게 되고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아일랜드로 돌아온다. 다시 아일랜드에서 좀더 큰 규모의 공연을 계속하며 1980년 두 번째 싱글 “A day with out me”가 성공을 거둔 뒤 U2의 가능성에 매력을 느낀 “Island Records”와 1980년 3월 계약을 체결하고 세계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다. 그리고 그해 10월 그들의 대망의 첫 앨범[Boy]가 발매된다. 이 앨범은 영국과 아일랜드 양국의 음악지에서 ‘신선하고 새로운 음악’이라는 열광적인 평을 얻어낸다. 이 앨범의 가사는 그 당시 다른 락 밴드들이 기피하던 믿음, 삶, 죽음, 정신적인 면등을 다뤘다.

앨범 발표 후 이들은 영국과 아일랜드를 벗어나 유럽과 미국에 투어를 나서게 되고 이로인해 전 세계적으로 그들의 음악의 추종자들을 만들어 나간다. ‘bubblegum pop’ 밴드들이 만연하던 80년대 초 음악씬에서 U2의 출현은 하나의 혁신이었으며 그들 또한 그들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81년 1월 U2는 그들의 2번째 앨범 [October]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발매 1주후 영국차트 11위에 등극한다. 이 앨범은 약간의 기독교적 색채를 가진 앨범이었고 “With a shout”, “Gloria”같은 곡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아담을 제외한 나머지 세 멤버는 크리스찬이었고 이들 셋은 더블린에서 “Shalom”이라는 종교단체에 가입하게 된다. 이 단체의 활동에서 세 멤버들은 락적인 삶의 방식과 종교적인 믿음 사이에서 의문을 갖게 되고 이로인해 아담과 약간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이 둘을 조화시키고 그들 자신들의 개인적인 믿음을 희생시키지 않고 음악을 계속해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의 밴드내의 혼란은 [October]저조한 판매 실적으로 나타났고 크게 주목받은 싱글 없이 U2라는 이름을 더욱 널리 알리는데는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도 잠시 1983년 U2의 본격적인 세계시장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인 세 번째 앨범 [War]가 발매된다. 이 앨범은 그 당시 만연하던 버블검 사운드에 대한 전면적으로 반기를 든 음악을 들려주었으며 가사와 음악 또한 더욱 진보적이었다. 이 앨범은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이 앨범에서 처음으로 보노는 “Sunday, Bloody Sunday”라는 노래에서 북아일랜드에 대해 노래했으며 “폴란드 자유노조 대표 바웬사”에게 바친 다는 부제가 붙은 이 앨범의 첫 싱글 “New year’s day”는 영국 차트 10위에 도달하고 미국 차트 50위 권에 육박하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그들의 첫 히트 싱글이 되었다. 또한 이 노래의 비디오 클립은 미국 MTV에서 자주 방영되어 밴드를 소개하고 새로운 팬을 확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또한 앨범의 홍보를 위한 투어도 활발히 진행하였다. 이 투어 중 ‘Red rocks amphitheatre’에서의 모습을 담아 [Under a blood red sky]라는 그 들의 첫 라이브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영국 차트 1위에 등극하고 84년 1월에는 플래티넘을 획득한다.

위의 두 앨범의 성공으로 U2는 “롤링스톤지”로부터 “올해의 밴드”라는 칭호를 받게되고 “Island Records”와의 재계약에서 좀더 창조적인 권한과 금전적인 보수를 얻어내게 된다. 이러한 성공을 한껏 느끼고 있을때 U2는 음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되고 그를 위해 새로운 프로듀서로 그 유명한 “Roxy Music”출신의 Brian Eno와 Daniel Lanois를 영입하고 그들의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준비한다.

1984년 10월 네 번째 앨범 [The unforgettable fire]가 발매된다. 이 앨범은 U2를 관록의 밴드로 세상에 소개한다. 전작의 도전적인 자세는 Martin luther king, Jr.을 위한 “Pride(in the name of love)”와 약물에 빠져 고생하고 있는 보노의 친구에 대해서 노래한 “Bad”에서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앨범은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싱글 “Pride”는 UK Top 5에 U.S. Top 50에 등극했다. 다른 싱글 “The unfotgettable fire”는 영국 차트 8위에 오르게 된다. 이때 롤링스톤지는 U2에게 “80년대의 밴드”라는 칭호를 부여했고 “세계 락 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가는 유일한 밴드일 것이다”라고 평했다. 4년여 동안의 투어 뒷편으로 그들의 앨범과 싱글들은 계속된 판매량 증가로 그들을 80년대 중반의 국제적인 스타로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성적에 힘입어 “The live aid”와 “Conspiracy of hope”같은 모금운동에도 참여하게 된다.

대망의 1987년이 되어서 그들의 최고의 앨범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5번째 앨범 [The Joshua tree]가 발표된다. 이 앨범은 미국과 영국 앨범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다. “With or without you”와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가 미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이 중 “With or…..”는 영국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 이때 U2는 Beatles, The who에 이어 락밴드로는 세 번째로 TIME지 커버를 장식하게 되며 Time에서는 U2를 공연이 항상 매진이며 표를 구하기 힘들다 하여 “Rock’s hottest ticket”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이 앨범으로 Grammy Award에서 “Album of the year”와 “Best rock performance” 두 개 부문을 수상하게 된다. 실로 U2는 명실상부한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밴드가 된 것이다.

그해 10월 U2는 그들이 정상에 서기 까지 그들에게 영향을 준 미국 뮤지션들에 대한 트리뷰트성의 앨범이자 6번째 앨범 [Rattle and hum]을 발표한다. 이 앨범 역시 영, 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다. 비비킹과의 연주, 밥 딜런과의 가사 공동 작업, 비틀즈의 커버곡 수록, 빌리할리데이에 관한 노래등등…이 앨범은 동명의 기록 영화에 사운드 트랙이다. 이 앨범에 대한 활동 후 밴드 멤버들은 잠시 휴식기를 가진다. 그리고 1990년 말에 새로운 앨범 작업을 위해 베를린에 모인다.

1991년 11월 그들은 어찌보면 상당히 모험적이고 인더스트리얼 계열의 기타 사운드와 피드백,일렉트로닉 댄스 비트를 가미한 7번째 앨범 [Achung Baby]를 발표한다. 하지만 이때까지 팬들과 비평가들은 과거의 그들의 음악에 대한 추억보다는 새로운 변화를 반기는 입장이었다. “그들의 새로운 행보, 지칠 줄 모른는 실험정신, 발빠른 시대 음악 변화의 수용”이라는 멋진 미사여구로 말이다. 이 앨범 발표 후 가진 ‘Zoo tv’ 투어에서 그들은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한 볼거리와 아직은 그들의 음악이 ‘좋다’라는 평을 받는 시기였기 때문에 투어는 성황리에 끝나게 되었다. 2백 50만이라는 관객 수와 함께…. 그들의 8번째 앨범 [Zooropa]는 1993년 3월 더블린에서 레코딩 되었다. 이 앨범에서 에지는 프로듀서라는 직함을 달게 되고 “Numb”에서는 리드보컬을 맡게 된다. 앨범 발매에 따른 투어 후 U2는 “Batman forever”등의 사운드 트랙 작업에 참여했고 Passenger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그들의 프로듀서 Brian Eno와 결성하여 [Original soundtrack 1]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앨범은 비평적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U2는 1996년 초 새로운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그들은 이 앨범에서 Prodigy나 Chemical brothers 풍의 일렉트릭 사운드를 수용하고 싶어했고 정말 그렇게 했다. 앨범 발매전 인터넷에 공개된 그들의 새 노래는 가히 충격이었다. 팬들사이에서는 “U2가 댄스 음반을 만든다”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 새노래는 바로 “Discotheque”였다. [POP]이 1997년 3월 발매되었을 때 일렉트릭 댄스의 영향은 소문처럼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충격 때문인지 이 앨범은 처음에는 차트상에서 성적이 괜찮았으나 전작들에 비해 너무나 빠르게 차트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그들은 엄청나게 발전된 볼거리로 포장된 “POP mart”투어를 행하고 아직 그들은 건재하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투어 후 그들은 북 아일랜드로 관심을 돌리고 활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98년 9월 그들의 베스트 앨범 [U2: The best of 1980-1990]을 발표한다. 1999년 초 그들은 Brian Eno와 Daniel Lanois를 프로듀서로 두고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2000년 초 U2는 보노가 각본에 참여하고 Mel gibson, Milla Jovovich등이 출연하고 그들의 절친한 친구인 Wim Wenders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The Million Dollar Hotel”의 사운드 트랙에 참여하여 “Stateless,” “The First Time”, “The Ground Beneath Her Feet”세곡의 노래를 들려준다.

디스코그래피
1980 Boy (Island)
1981 October (Island)
1983 War (Island)
1983 Under a Blood Red Sky [live] (Island)
1984 The Unforgettable Fire (Island)
1985 Wide Awake in America [live] (Island)
1987 The Joshua Tree (Island)
1988 Rattle & Hum (Island)
1991 Achtung Baby (Island)
1993 Zooropa (Island)
1997 Pop (Island)
2000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Interscope)
2000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Universal)
2000 Hasta la Vista, Baby: Live From Mexico City (U2 Limited )
2004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Interscope)

링크
U2 Community
Rock On The Net

최근소식
U2가 그들의 통산 12번째 앨범을 발표할 계획을 밝혔다. No Line on the Horizon이라는 제목의 이 앨범은 북미에서 2009년 3월 3일 발매될 것이라 한다. Brian Eno, Daniel Lanois, Steve Lillywhite가 프러덕션을 돕는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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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Miller Band / Circle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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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leoflove” by Scan.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Circle of Love (Steve Miller Band album)“>Fair use via Wikipedia.

1960년대말 Urban Blues 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공유한 Boz Scaggs와 수준높은 앨범을 연이어 발표한 Steve Miller에게 Mr.Space Cowboy 란 별명이 붙었던 것은 그가 1973년에 발표한 앨범 The Joker의 대성공이후 앙징맞고 장난스런 그의 기타락 사운드 게다가 멜로디가 강하면서도 블루스 기반을 잃지않는 그만의 개성이 동 앨범의 싱글 Spce Cowboy 의 명칭과 맞닥뜨려 그에게 70년대 중반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그 후 Fly Like An Eagle, Book of Dreams 를 발표후 4년간의 결코 짧지않은 공백기를 가지고 상당 기간 공을 들여 그의 Space Blue Rock의 변함없는 재치가 번득인 새 앨범 Circle of Love이 발표된 것은 1981년 겨울입니다.앨범은 전보다 기타사운드를 중점을 두었고 음향효과를 위해 신디사이저를 많이 가미한 것이외에는 전 앨범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습니다. 단 5곡으로 세련된 편곡이 정제된 앨범 Circle of Love 는 대중의 기대감 속에 발표되었지만 Heart Like a Wheel만이 작은 히트를 기록한 채 앨범은 제대로 골드도 기록하지 못하고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져갔습니다.인트로의 앙징맞고 리듬강한 기타 프레이즈가 너무나 인상적인 Heart Like a Wheel, 그의 변함없는 텁텁한 사랑타령 Circle of Love, …. 게다가 그가 야심차게 구상한, 런닝타임 16분짜리 앨범 하이라이트 Macho City 는 그 강한 락사운드와는 별개로 오히려 그를 사랑했던 옛 팬들을 당황하게 한 것 같습니다.그의 음악은 변함없건만 취향은 이미 뉴 웨이브와 댄스 뮤직에 편향된 당시 시기가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시류를 가미한 다음 앨범 Abracadabra (1982년)가 다시 히트차트 수위에 오르며 그의 마지막 전성기를 달아오르게 합니다.그 후 몇 장의 앨범으로 갈수록 팬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던 그는 1993년 공식적으로 Wide River를 끝으로 공식활동을 접고있는 상태입니다.혹자는 결코 한 카테고리에 정의키 쉽지않은 그의 음악을 Sharp Punky Melodic Rock 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의 70년대 상업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자기만의 개성을 지닌 멋진 기타리스트이자 싱어 송라이터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재 그의 음악을 아끼는 저같은 사람에게는 잊지못할 멜로디로 남아있습니다.

1. Heart Like a Wheel (Miller) – 3:59
2. Get on Home (Traditional) – 4:02
3. Circle of Love (Miller) – 2:15
4. Baby Wanna Dance (Miller) – 6:29
5. Macho City (Miller) – 16:26

written by Suntae

Billy Joel / Songs in the At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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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Joel – Songs in the Attic”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Columbia..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Songs in the Attic“>Fair use via Wikipedia.

Billy Joel 이 지난 1977년 The Stranger를 발표하고 갑작스레 폭발한 인기는 새로운 서정의 음유시인이라는 닉네임을 그에게 부여하며 히트곡 Just The Way You Are, The Stranger, Only The Good Die Young, She’s Always a Woman등 사랑스런 연가풍의 곡들의 연이은 히트행진이 이뤄지게 됐습니다.

70년대 초반 이름없는 작곡자로 이곳 저곳을 전전하여 곡들을 발표하던 밤무대의 피아니스트에게 다가온 이 성공은 정말 엄청난 상업적 축복이었습니다.

The Strangers의 대성공이후 그는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락커로서의 이미지를 심으려는 시도가 1978년 앨범 52nd Street 에서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Big Shot , My Life에서 오히려 70년대 전반을 이끌었던 음유시인의 이미지가 엷어지고, 보다 강렬하고 밝은 분위기를 노래하는 신호탄이 되었지만 한번 달궈진 그의 성공은 식을 줄읋 모르고 1980년 본격적인 락앨범을 표방한 Glass Houses를 발표, 전미앨범차트를 석권하며 You Maybe Right, It’s Still Rock’n’Roll To Me, Sometimes a Fantasy 같은 커다란 힛싱글을 양산했습니다. 물론, 초기앨범을 좋아하던 일부 고정 팬들은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의 성공가도에는 끝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1981년 그는 단 6명의 어쿠스틱 세션을 편성하여 그가 초기에 고생하고 탐미했던 그러나, 서정적이고 관조적이던 일련의 추억이 든 11곡을 1장의 공연실황앨범으로 꾸몄습니다. 앨범 제목 그대로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다락방(attic)같은 외진 곳에서 다시 찾아낸 그런 잊혀진 곡들이었습니다.

다시 예전의 음유시인으로 되돌아간 Billy의 모습은 무명시절 초기앨범 Cold Spring Habor, Turnstiles, Street Serenade 에 삽입되어 묻혀진 곡들로서 그의 전공인 피아노와 하모니카 가는대로 고민하는 젊은 시절을 반추하는 듯, Miami 2017, 낭만적인 분위기의 Say Goodbye To Hollywood(히트차트 20위), 그만의 서사시 Captain Jack, 그리고 그의 새로운 스탠다드 발라드가 되어버란, 외로운 피아노와 보칼로 만든 She’s Got a Way(히트차트 19위)등을 싣고 공연실황으로 채택된 것입니다. 이 앨범에서 그의 이미지는 Piano Man에서 하모니카와 어쿠스틱 피아노를 연주하던 그것으로 돌아간 것듯 합니다.

이 앨범이후 그는 사회성이 짙은 Nylon Curtain ( Allentown, Pressure수록) , 초기녹음기술로 되돌아간 고색한 분위기 앨범 An Innocent Man ( Tell Her About It, Uptown Girl 수록)을 발표하여 그의 다양한 재능이 여러 각도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의 성공가도에 한 점 휴식과도 같은, 그래서 과소평가되기도 한 앨범 Song In The Attic 에서 우리는 외롭고, 쓸쓸한 한 음유시인의 젊은 시절 추억의 히스토리에 귀기울일 수 있습니다.

1. Miami 2017 (Seen the Lights Go Out on… (Joel) – 5:05
2. Summer, Highland Falls (Joel) – 3:03
3. Streetlife Serenader (Joel) – 5:17
4. Los Angelenos (Joel) – 3:48
5. She’s Got a Way (Joel) – 2:44
6. Everybody Loves You Now (Joel) – 3:10
7. Say Goodbye to Hollywood (Joel) – 4:25
8. Captain Jack (Joel) – 7:16
9. You’re My Home (Joel) – 3:07
10. The Ballad of Billy the Kid (Joel) – 5:28
11. I’ve Loved These Days (Joel) – 4:35

written by Suntae

Dire Straits / Making Movies

Making Movies.png
Making Movies” by http://covers.a-go.in/?artist=Dire%20Straits&album=1980%20Making%20Movies.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Making Movies“>Fair use via Wikipedia.

1970년대 후반은 역시 디스코의 시대였습니다. 구미 동성연애자 클럽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는 억측(?)이 아니라도 그 유연한 몸 동작에 슬금슬금 흔들어대는 리듬의 규칙적인 향연에 구미 유럽 모두가 미치광이처럼 함몰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도나 섬머, 칙 게다가 심플한 팝사운드(비지스)나 R&B블루스 펑크의 리듬밴드마저 속속들이 모두 이 흥겨운 리듬에 앨범 판매고를 열중시키던 그 때…..영국에서 건너온 한 락그룹…..이름 그대로 무일푼에다가 가진 재주라고는 블루스 락음악을 정통으로 연주할 줄 밖에는 큰 메릿이 없었던 얼치기(?) 집단과 같은 그들 4인조에게 진정한 락의 부활을 고대하던 락 매니아와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름 Dire Straits ……. 고집불통 대머리처럼 생긴 교사출신의 기타리스트겸 작곡가 Mark Knopfler의 블루스락에 기반을 둔 그 고생창연한 음악들에 락 팬들은 하나의 비젼을 느낀 것 같았습니다.그들의 음악이미지와는 별 어울리지도 않았을 제목 Sultans Of Swing (스윙의 제왕)에서 물흐르듯 유연하고 매끈한 노플러의 기타와 허스키한 고색이 깃들인 보칼에 상업성에 찌든 미국팬들은 락에 대한 예우의 차원으로 인기차트 상위권에 그들의 공식데뷰앨범과 그 기막힌 곡을 등록시켜주었습니다.이에 음반사는 기존에 그와 동생 데이빗 노플러가 작곡해놓은 여러 곡들을 재빨리 녹음하여 갓 씯어낸 여름 복숭아같은 상큼한 그들의 2번째 앨범 Communique를 발매하였읍니다.

그러나, 1집과의 복사판같다는 일부 팬들의 비아냥에 힘이 빠진 건지 Lady Writer정도가 소규모 히트를 기록하며 앨범은 겨우 골드를 넘어서는 기대이하의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결과……이 그룹의 과도기는 의외로 일찍 찾아왔습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Mark Knopfler의 아이디어는 표면적으로 볼 때에는 그리 새로운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굳이 바뀐 점을 드러내면 첫째, 기존 락과 블루스에 충실한 편곡에 새로운 색채 곧 키보드및 건반악기(건반주자 Roy Bittan 영입)를 추가할 정도였습니다. 둘째, 곡의 길이가 전에 비해 길어저서 약 40분분량의 LP에 단 6곡만 삽입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당시 일부 록 평론가들은 초기 그들의 텁텁한 락사운드의 특징이 사그러진 미숙성된 곡들이라 과소평가를 했습니다.그러나, 이 앨범은 후에 발표되는 Love Over Gold에서의 보다 복잡하고 관조적인 락 프로그레시브 사운드와 80년대 중반의 마이다스 히트앨범 Brothers In Arms에서의 보다 화려해진 멜로디라인으로 가는 신호탄임을 몇 년뒤에야 대중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런 음악적인 배경의 산고를 거친 후, 2집의 상업적 부진과 새로운 고민뒤 2년만에 발표한 앨범이 오늘 제가 아끼며 소개드리는 그들의 3집 `MAKING MOVIES’ 가 발표되었다고 볼 수 있죠.너무나 단순하고 투박하기까지하게 순색으로 채색된 앨범 자켓이 특징인 이 앨범 발표시기를 노플러음악의 첫번째 변화기로 비평가들이 이야기합니다.보다 복잡해진-인생과 기계문명등에 함몰된 인간의 딜레머 등- 가사내용, 화려해진 리듬라인……… 그러나, 제가 이 앨범을 다이어스츠레이츠 앨범중 가장 아끼는 이유는 그의 작곡실력이 한 단계 높아진 점이었습니다.Romeo & Juliet, Tunnel Of Love , Skateaway, Solid Rock, Les Boy(발표당시 국내 금지곡)….등등 단 한 곡도 빠뜨리기 아까운 곡의 향취가 성숙된 노플러의 작곡실력을 유감없이 발휘된 것입니다.

역시 bootleg으로 구입한 이 앨범(1981년)….첫 곡 Tunnel Of Love를 들었을 때 인트로부분이 저는 판이 녹음이 잘못되어 건반악기의 튀는 미스인 줄 알았습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멜로디…40년대 뮤지컬 작곡가 Richard Rodgers의 곡 The carousel waltz 도입부를 인용한 참신한 기획을 몰라보고. 역동적인 그의 기타와 보칼이 8분이 넘어가는 곡의 길이가 물리적인 시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아님을 입증하는 듯했습니다.감칠맛나는 읇조리는 듯한 그의 보칼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가 백미인 신세계의 사랑타령 Romeo & Juliet , 당시 히트차트에서 70위권을 기록한 유일한 상업적 히트곡 Skateaway-이 곡의 도입부 드럼에 의한 페이드인과 후반부 블루스 기타 흐름의 페이드아웃은 정말로 모달 재즈의 그것을 보는 듯이 혀를 내두르죠. 너무 멋졌습니다.

Solid Rock에서는 변함없는 락의 정신을 혼자 부르짓 듯, 마지막 곡 Les Boy에서는 칸츄리 락의 앙징맞음까지 선보이며…………마크 노플러는 아마 이 앨범부터 상업적인 압박 아니 실패에서 자유로와 진 것 같았습니다.일종의 컨셉트 앨범, 한 편의 앨범제작을 한 쳔의 영화와 대비하며 흐르는 듯이 돌아가는 인생을 되새기는 듯한 가사가 주종을 이루며 이런 그의 관조적인 락의 히스토리는 다음앨범 Love Over Gold(1983년)을 단지 5곡으로 구성시키며 프로그레시브와 재즈 스타일 영역에 까지 손을 내밀며 절정을 이룹니다. 오히려 1985년 Brothers In Arms의 상업적인 성공이 무척 어리둥절 했을 정도이니까요.

지금 그는 그룹을 스투디오 앨범 On Every Street를 마지막으로(공연실황앨범은 제외) 해체시키며 재즈분야를 돌아 이제 솔로앨범 Sailing To Philadelphia 를 발표하며 완전히 칸츄리 블루그라스 퓨젼으로 편향된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음악 장르라는 담벼락이 의미없는 것 같죠.1980년 말에 발표된 Dire Straits의 숨겨진 걸작앨범 MAKING MOVIES 를 감상할 때마다……. 어찌보면 그의 고집스런 블루스기타와 읖조리는 엉성한 듯한 허스키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독한 인간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진솔한 연기의 영화배우 그것과 너무나 똑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1. Tunnel of Love (Knopfler) – 8:11
2. Romeo and Juliet (Knopfler) – 6:01
3. Skateaway (Knopfler) – 6:40
4. Expresso Love (Knopfler) – 5:12
5. Hand in Hand (Knopfler) – 4:48
6. Solid Rock (Knopfler) – 3:27
7. Les Boys (Knopfler) – 4:08

Written by Suntae

ZZ Top

ZZ Top Live.jpg
ZZ Top Live” by Craig ONeal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ZZ Top Live.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지지 탑(ZZ Top)의 음악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다면? 정답은 블루스와 록이다. 또한 텍사스와 멤피스이다. 모래 바람과 말발굽 소리, 싸구려 선글라스와 딱 달라붙는 블루진을 입은 남자, 아름다운 여인들과 빠르고 멋진 자동차… 이 정도면 여러분도 대충 짐작이 될 것이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빌리 기븐스(Billy Gibbons)의 기타와 더스티 힐(Dusty Hill)의 베이스, 그리고 멤버 중 유일하게 긴 수염을 가지고 있지 않은 프랭크 비어드(Frank Beard)의 드럼이 조화롭게 녹아있는 그들의 앨범 안에 들어있다. 70년 말, 데뷔 앨범인 [ZZ Top’s First Album]을 포함해 2000년 현재까지 총 12장의 정규앨범과 3장의 베스트 앨범, 한 장의 블루스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하는 동안 많은 음악적 변화를 모색하려 시도했던 그들은 94년 발표한 [Antenna]에서 다시금 70년대의 지지 탑을 연상케 하는 부기우기 사운드로 돌아간 [Rhythmeen]의 연장선상에 있는 [XXX]까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텍사스 사운드를 충실히 들려주고 있다. 지지 탑은 76년 발표한 앨범 [Tejas]부터 새로운 음악적 모험을 시도했었는데, 83년 발표한 앨범 [Eliminator]에서는 신서사이저 사운드를 도입하기 시작해 댄스, 팝적인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주었으나, 90년 발표한 앨범 [Recycler]에서는 너무나도 일렉트로닉적 사운드 메이킹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여 지지 탑의 팬들을 실망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다시 초기의 지지 탑 사운드로 돌아온 빌리 기븐스는 이점에 대해 “우리들은 여러 음악 스타일을 노래하려 하였으나,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지지 탑만의 개성을 증명할 수 있는 요소를 삽입해 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따라 계속해서 동일한 요소들을 지켜왔다”고 말하고 있다.

changgo.com에서 전제

사족 : 이들의 트레이드마크는 아무래도 두 기타리스트의 기다란 턱수염이다. 그런데 정작 턱수염을 기르지 않은 드러머가 “턱수염”(Beard)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70 ZZ Top’s First Album Warner
1972 Rio Grande Mud Warner
1973 Tres Hombres Warner
1975 Fandango Warner
1976 Takin’ Texas to the People London
1976 Tejas Warner
1979 Deguello Warner
1981 El Loco Warner
1983 Eliminator Warner
1985 Afterburner Warner
1990 Recycler Warner
1994 Antenna RCA
1996 Rhythmeen RCA
1999 XXX RCA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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