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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s One

+1은 Ulf Alvedahl (aka Hull Alvvalley), Thomas Larsson, Thoth, Caj Ehrling, Magnus Wahl (aka Bonk Wahl)의 멤버로 구성된 스웨덴의 신쓰팝 밴드다. 그들은 1985년가 1986년 간에 걸쳐 세 곡의 노래를 스웨덴 차트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1985년 Young Europeans라는 이름의 정규앨범과 싱글 (I Don’t Want To Be Left Alone) Tonight, Nevermore (다양한 리믹스 형태로), Young Europeans (7”)를 내놓았다.

p.s. 그룹의 이름은 +1이지만 공식적으로는 Plus One이라 발음하지 않는다 한다. 노래가 세계시장에서 통할 법 한데도 다른 나라 차트에 오르지 않은 것에는 이러한 애매한 그룹명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뮤직비디오

1. (I Don’t Want to Be Left Alone) Tonight 3:37
2. Peace Army (Long Version) 2:51
3. Indian Shadow 4:24
4. Thousand Reasons 3:54
5. (I Don’t Want to Be Left Alone) Tonight (Maxi Cut) 2:12
6. Young Europeans 2:26
7. Nevermore 4:25
8. P.I. 3:34
9. Arabian Princess 3:34
10. Peace Army (Short Version) 0:57
11. Soldier 2:55

Private Lives

만약 공룡을 여러 시대로 나눌 수 있다면 뉴웨이브 밴드들도 그러하다. Private Lives 가 존재했던 시기는 확실히 뉴로맨틱스가 R&B와 모타운 사운드로부터 영감을 얻기 시작했던 80년대 중반에 해당하였다. Tears for Fears, Howard Jones, the Human League 와 같은 영국 아티스트들이 신디사이저에 기반을 둔 그들의 음악에 블루아이드쏘울의 요소들을 도입하는가 하면 Nik Kershaw, Paul Young, the Style Council 같은 이들은 아예 블루아이드쏘울을 전면적으로 차용하였다.

Private Lives 는 80년대 후반 Johnny Hates Jazz, Living in a Box 등과 같은 소피스티팝의 선구자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룹은 거의 잊혀진 그룹이 되었다. 보컬 John Adams 와 키타를 맡은 Morris Michael 이 핵심적인 두 멤버로 자리잡았던 이 밴드는 댄스리듬과 쏘울풀한 감성에 기반을 둔 뉴웨이브 그루브를 바탕으로 사랑과 상실감에 관한 이야기를 노래했다. Fiction Factory의 Kevin Patterson 처럼 Adams 도 깊고 독특한 유럽 스타일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이 목소리는 그룹의 최고 히트곡 “Living in a World (Turned Upside Down)” – 난잡한 애정관계로 인해 괴로워 하고 마침내 자살을 생각하는 한 소녀에 관한 이 노래는 이 밴드가 노래하고자 하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 에서 가장 빛을 발하였다. “Living in a World” 는 전국적인 히트곡은 아니었지만 아름답고 슬픈 신디사이저 멜로디와 Adams 의 호소력있는 보컬로 말미암아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라디오 애청곡이 되었다.

1984년 밴드는 그들의 유일한 LP Prejudice & Pride 를 EMI 를 통해 내놓았다. 이 앨범에는 싱어 Kiki Dee 와 Kajagoogoo 의 베이시스트 Nick Beggs 등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고 그룹은 1986년 해체되었다. Adams 는 Tom Robinson 의 “Nothing Like the Real Thing” 을 프로듀스했다. 앨범의 희귀성과 뛰어난 음악성으로 말미암아 Prejudice & Pride 은 뉴웨이브의 열광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마치 클래식 자동차와 같은 콜렉터스아이템이 되었다.

Private Lives 가 뉴웨이브 뮤직씬에 미친 영향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필리핀이나 일본에서의 그들에 대한 컬트적인 추종은 계속되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4 Prejudice & Pride EMI

Track Listing

1 River to a Sea
2 No Chance You’ll Pay
3 Living in a World Adams
4 Stop
5 God Only Knows
6 Break the Chains
7 Don’t Wanna Cry (Any More)
8 Win (You’ve Got To)
9 Break the Whole Thing Down
10 Prejudice and Pride

뮤직비디오 보기
기타 싱글 디스코그래피 보기

Power Station

요즘 이들의 음악이 좋다. Robert Palmer의 기름진 목소리, 락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연주, 리드미컬한 드러밍. 공연을 보거나 합주를 하면 정말 재밌을 것 같은 곡들을 만들었던 그룹이다. 다시 재결합해서 한국에 공연을 올 수 있을까?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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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station publicityphoto” by http://www.duran2.net/eng/gallery.htm. Licensed under Wikipedia.

수퍼그룹 Power Station은 Duran Duran의 John Taylor와 Andy Taylor, Chic의 드러머였던 Tony Thompson, 그리고 싱어 Robert Palmer로 구성되었다. 처음에 그것은 John의 아이디어였다. John은 그룹을 조직하기 전부터 Robert Palmer의 친구였고 그의 음악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의 당초 Power Station에 대한 오리지날 컨셉은 한 앨범에 여러 명의 싱어들이 노래하는 일종의 객원싱어 개념이었지만 단기간내 그런 프로젝트가 성사될지는 미지수였다.

한편 그 당시 John은 연인인 Bebe Buel이 T. Rex의 Bang a Gong (Get It On)을 리메이크했으면 하고 바랬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곡을 훵키버전으로 만들기 위해 Tony Thompson과 합류하였다. 그러나 John과 Bebe가 연인관계가 깨져버려 이는 무산되었다. 한편 John과 Andy는 이미 Some Like It Hot과 Murderess의 데모작업을 진행하였는데 Some Communication이라는 곡의 싱어로 Robert Palmer가 초대되었다. 마침내 Bernie Edwards는 전앨범에 Robert Palmer가 싱어로 참여할것을 제의했다.

1985년 2월 Power Station은 Saturday Night Live에서 데뷔무대를 가졌다. 3월말 Some Like It Hot이 영국챠트에 등장해 14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미국에선 6위까지 올랐다. 앨범은 4월에 영미 챠트에 첫등장하였다. 그리고 이어 6월에는 Bang a Gong (Get It On)을 히트시켰다. 세번째 싱글은 Murderess였다.

애초 Power Station은 공연을 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연이은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공연에 대한 유혹은 너무 커져갔다. 그러나 Palmer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연 10일째 되던 날 공연단을 떠났다. 공연투어의 싱어는 Silverhead란 그룹의 싱어였던 Michael Des Barres로 대체되었다. 그 당시 John은 이 프로젝트가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당초 Duran Duran 의 Alter Ego의 개념으로 출발한 그룹이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가을에 그룹의 마지막 싱글인 Communication이 발매되었다. 미국에서는 Top 40에 들었지만 영국에서는 75위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전작의 성공에 비해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공연도 차츰 시들어졌고 마침내 그룹은 그 종착점에 도달하였다. John Taylor는 Duran Duran으로 돌아갔지만 Andy Taylor는 솔로 활동을 위해 Duran Duran에 합류하지 않고 Sex Pistols의 기타리스트였던 Steve Jones와 공동작업에 들어갔다.

디스코그래피
1985 The Power Station 33 1/3 Capitol
1985 The Power Station Capitol
1996 Living in Fear Chrysalis

링크
Fan Page

Pet Shop B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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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shopboys turku finland 1997a” by Mrdisco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Neil(본명: Neil Francis Tennant, 54년 생)과 Chris(본명: Christopher Sean Lowe, 59년 생)는 1981년에 만나 서로가 추구하는 음악성이 유사함을 알고 처음에는 West End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그 전에 Neil은 1 TV Books나 Smash Hits 같은 대중지의 기자였으며 Chris는 밴드 활동을 하며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었다. 그 후 ’83년 미국의 댄스 뮤직 프로듀서이며 작곡, 편곡에 능한 Bobby Orlando을 만나 레코드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Neil의 나이가 31세 이었을 때 Neil은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기위해 싱글을 발표했었던 레이블 Epic을 떠나 ‘Parlophone’으로 이적하면서 Smash Hits (매주 50만부 이상씩 팔리는 최고 부수의 청소년용 음악 잡지)을 떠났다.

명 프로듀서 Stephen Hague (New Order, Siouxie & The Banshees, Erasure의 프로듀서)의 터치로 재 녹음된 싱글 “West End Girls”는 단숨에 영국 차트 No.1 그 후 미국, 캐나다 등을 휩쓸며 세계 각국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 곡은 최근에 East 1 DJ Space 등 여러 밴드들에 의해 리메이크 됨) 1위를 차지한 기분이 어땠냐는 질문에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 그저 차 한잔 마시는 기분이다.”라고 쉽게 말하는 대단한 배짱을 지닌 Pet Shop Boys는 그 후로도 여러 번 차를 마시는 기분을 경험했다. 즉 No.1 싱글 들을 포함한 수많은 히트 곡 들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love Comew Quickly, opportunities로 시작되어 heart, It’s A Sin, always On My Mind를 지나 최근의 dj Culture와 was It Worth It?까지 무려 20여 곡 정도를 히트시켰으니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앨범 “Please”, “Actually”, “미니 LP Disco”, “Introspective”, Behaviour” 그리고 베스트 앨범 “Discography” 그리고 앨범 타이틀을 한 단어로 만드는 실험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앨범 타이틀을 간단하고 별 뜻 없어 보이지만 실은 복합적인 의미로 쓸 수 있는 단어들로 만든다. 간단하나 그 앨범의 성격에 적합하고 자주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단어들이다. 온갖 비웃음을 들으며 30세가 넘는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프로 아티스트의 길로 들어서 결국 최정상의 위치에 군림할 줄이야 그 누가 알았으랴만은, 그의 이러한 성공은 닐을 따르는 많은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면 그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87년 Pet Shop Boys는 BPI Awards에서 west End Girls로 최우수 싱글상을 수상했고 또한 Ivor Novello Awards에서 같은 곡으로 Best International Hit 상을 수상했다.

Pet Shop Boys는 Music Video에도 대단한 정성을 들인다. “Television”, “It Couldn’t Happen Here”, “Live” 싱글 모음인 “Videography”까지 이들의 비디오는 위트 있고 때로는 차가운 느낌과 함께 조롱 섞인 말, 보통의 비디오와는 틀린 분위기와 전개방식, 연극적 구성, 다루기 꺼리는 AIDS나 Homo Sexual, Prostitution 등을 주제로 한 풍자적인 것들이 많다. 비디오에 관계된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함께 그 동안 음반을 제작하면서 많은 행운이 따랐다. 최고의 프로듀서들인 Stephen Hague, Julian Mendelsohn, Lewis A. Martinee, Trevor Horn, Harole Faltermeyer, Brother In Rhythm 등이 기꺼이 Per Shop Boys의 음악 제작에 참여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모두 좋게 나타났다.

어느 정도 자신들의 능력에 확신을 갖게 되자 이들은 주위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제작 참여 요청을 신중히 고려, 서서히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반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88년 영국 밴드 Eighth Wonder의 첫 히트 싱글 I’m Not Scared를 쓰고 프로듀스 해 주었으며, 싱글 what Have I Done To Deserve This에 참여한 Dusty Springfield에게 고마움을 느껴 Dusty의 새 싱글 nothing Has Been Proved를 ‘Julian Mendelsohn’과 공동으로 프로듀스 해 주었고 ‘Liza Minelli’의 싱글 losing My Mind에 이어 앨범 “Results”를 ’89년에 역시 Julian과 함께 제작했고 Dusty의 새 싱글 in Private를 제작했고 앨범 “Reputation”의 절반 가량을 담당했다.

또한 Neil의 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던 밴드인 New Order 출신의 Bernard Sumner와 The Smiths의 Johnny Marr가 만든 프로젝트 밴드 Electronic의 앨범에도 참여 getting Away With It과 parience Of A Saint에 게스트 보컬로 한 몫을 했으며 영화 “Cool world” 삽입곡인 Electronic의 싱글 disappointed에도 참여하였으며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 Crying Game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여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진정한 엔터테이너, 대기만성형의 천재들 Pet Shop Boys 이제는 너무나도 친숙한 이름이 되어버린 영국밴드 Pet Shop Boys. 이들은 기존의 음악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등장한 센세이셔널한 듀오이다. 대중적인 인식으로는 고급스럽지 않은 댄스 뮤직을 고급스럽게 만들었으며 심각하지 않았던 가사를 심각하게 하였고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얼마 안 되는 의식 있는 아티스트들의 하나이다. Pet Shop Boys는 아마도 대부분의 국내 팝 팬들에게는 외국에서 큰 히트를 몇 개 기록한 평범한 댄스 뮤직 밴드로 인식되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위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훨씬 높은 곳에 있다. 그것은 이들의 히트곡들의 차트 순위 외에도 비평가들의 격찬,콘서트에서의 대단한 열기, 팬들의 환호가 다른 밴드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크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출처 : http://user.chollian.net/~sory1316/

디스코그래피

1986 Please (EMI America)
1987 Actually (EMI America)
1988 Introspective [US] (EMI America)
1990 Behavior (EMI America)
1993 Very (Capitol)
1993 Relentless (Parlophone)
1994 Very/Relentless (EMI America)
1994 Seriously [CD/Vinyl Single] (Capitol)
1996 Bilingual (Atlantic)
1999 Nightlife (Sire)
1999 Nightlife [Limited Edition] (Sire)
2000 Mini (EMI)
2000 Bilingual (Sire)
2002 Release(Parlophone)
2005 Back to Mine(DMC)
2005 The Battleship Potemkin(EMI)
2006 Fundamental(EMI)
2006 Concrete [live](EMI)
2008 Concrete: In Concert at the Mermaid Theatre [live](EMI)
2009 Yes(Astralwerks)
2012 Elysium
2013 Electric
2016 Super
2020 Hotspot

링크
팬페이지
그들의 음악파일을 얻을 수 있는 곳
The Pets Files

Pet Shop Boys 소개글 하나

“난 PSB를 좋아해”
“그래? 그 사람들 게이 아닌가?” (그리고는 수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상대편)

현대사회의 유행이나 흐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특히 연예산업은 ‘변화’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몇십년간 음악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는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한다. 현 팝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그리고 아티스트의 특성을 살린 그러한 음악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가 요구되는 가운데서도 PSB는 1980년대 초반부터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디스코/테크노 사운드를 주무기로 치열한 팝시장의 경쟁에 나서서 큰 성공을 거두며 현재까지도 단 한번의 음악적 외도 없이 그 음악만을 고집해오고 있다. 그 결과로 현재 Synth Pop계에서 PSB의 존재는 매우 독보적이다.

그들이 86년 두 번째 싱글 ‘West End Girls’를 들고 나와서 미국 차트 1위를 차지하던 때 필자는 갓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 당시 유일하게 빌보드 차트를 소개해주던 ‘2시의 데이트’의 애청자였던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듣고는 단번에 반해버렸다. 잔잔한, 어찌 들으면 힘없이 중얼거리는 듯한 보컬, 그러한 보컬을 탄탄히 받쳐주는 영국식 테크노 사운드. 당시 미국 팝을 주로 듣던 나로서는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곧 듀란듀란, 컬쳐클럽등 영국의 뉴웨이브 사운드에 마음을 뺏긴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94년, 미국에 잠시 머물면서, 틈만 나면 레코드가게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느 날 우연히 플라스틱마저 온통 주황색으로된, 매우 눈에 띄는 시디케이스를 진열대에서 발견하고는 무심코 집어들고 그것이 바로 펫샵보이즈의 그 당시 최신앨범인 였다. 그 앨범에서 가장 유명했던 싱글 ‘Go West’의 사운드가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손에 들었던 앨범을 내려놓을까 하다가 특이한 케이스를 보고 구입을 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광(狂)적인 팬이 되어 있다니 참 아이러니 하다. 아무튼 우연히 그렇게 집어든 시디에 온통 정신을 빼앗겼고, 그제야 펫샵보이즈의 이전 앨범들에게도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디스코/테크노만을 꾸준히 추구해온 그들의 음악세계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음을 깨달았다.

보컬을 담당하는 1954년생의 Neil Tennant는 역사를 공부한 사학도이고, 키보드를 연주하는 Christopher Lowe는 1959년생으로서 건축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들은 81년도에 팀을 결성했고 1983년 프로듀서 Bobby Orlando를 만나 첫 녹음을 하는데 그때 녹음한 곡이 ‘One more chance’와 ‘Opportunities’ 그리고 ‘West end girls’였다. 이들의 음악은 곧 런던을 중심으로한 영국의 클럽과 디스코에서 많은 팬들을 확보하게 되고 1985년에 그들은 EMI와 계약, 첫 싱글 ‘Opportunities’ (Let’s make lots of money)를 발표하게 되나 마이너 히트에 그치고 만다. 그 다음해 다시 발표한 싱글 ‘West end girls’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그리고 마침내는 미국마저 정복하게 된다. 1986년 봄에 발표된 그들의 첫 앨범 에서의 음악적 방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Synth pop(신디사이저를 위주로한 테크노팝)이 바로 그것이다. 그후 1987년 국내에도 잘 알려진 싱글 ‘It?s a sin’을 필두로한 앨범 , 그리고 1988년의 앨범 에서의 싱글 ‘It?s alright’, ‘Always on my mind’, ‘Domino dancing’ 등 역시 데뷔 당시의 음악적 성향을 그대로 간직한 앨범들이었다. 펫샵보이즈의 천재성이 가장 잘 드러난 앨범은 아마도 1990년 발표한 앨범 가 아닌가 싶다.

게이로 커밍아웃하다.

이 앨범에서는 히트싱글인 ‘Being boring’과 ‘So hard’에서 나타난 우수에 찬 테크노 사운드가 압권이다. 흥겨운 테크노사운드 외에도 그 뒤에 숨겨진 어두운 색깔 역시 간과 할 수 없는 그들의 인기 요인이다. 이러한 암울하고 우수에 서린 사운드에는 분명히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필자 나름대로 열심히 그들의 자료를 모아보았다. 그러던 가운데 충격적인 소식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로 닐 테넌트와 크리스 로우가 대중 앞에 자신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당당히 발표한 것이다. 어떤 아티스트가 음악을 만들 때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내면의 표출이 아닐까한다. 본의든 아니든 그 아티스트의 음악에는 그 아티스트의 생각과 자아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들의 사회 비판적인 가사와 우울한 테크노사운드, 동성애를 노래한 사랑 노래등은 Gay문화가 잘 발달한 영국사회에서도 어쩔 수 없이 외면당하고 비판당해야 하는 동성애자로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1991년 그들은 이제까지의 활동을 결산하는 의미의 히트곡 모음집인 를 발표했다. 그들이 게이임을 떳떳이 밝힌 후에 그들은 앨범 의 발표로 이제까지 음악적 방향의 큰 전환을 꾀한다.

이제까지의 그들의 어두운 일면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밝고 긍정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 비판에 초점을 두었던 그들의 메시지는 좀더 과감하게 자신들의 삶과 사랑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미국 게이 밴드의 대명사인 Village People(YMCA로 유명한)의 ‘Go west’를 리바이벌한 곡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서 West는 San Francisco를 의미한다는 의견이 지배적) 앨범 는 또 한번 세계적으로 Pet Shop Boys 열풍을 일으켰고 히트곡 ‘Go west’, ‘I wouldn’t normally do this kind of thing’, ‘Can you forgive her’ 등은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뮤직비디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작들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는 그 동안 발표한 싱글의 b-side에 수록해왔던, 그들의 천재성이 번득이는 다소 실험적인 테크노로 구성된 2장짜리 앨범 로 비평가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한편 팬들에게는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후 세계 순회공연, 데이빗 보위 등과의 음악활동 등의 재충전의 기간을 마치고 1996년에 최근 앨범인 을 발표, 서정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는 ‘Before’와 밝은 분위기의 ‘Se a vida e’가 히트를 기록했다.

PSB에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라이브 공연이다. PSB는 기타,드럼, 베이스, 키보드, 보컬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밴드가 아니고 99% 프로그래밍과 반복에 의지한 Synth Pop밴드이기 때문에 무대에는 항상 덩그러니 키보드 하나가 놓여져 있을 뿐이다.

PSB가 라이브를?

첫 세계공연이었던 ‘Performance’에서 PSB는 이 빈 공간을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실험적인 내용의 ‘연극’으로 채웠다.

이들의 이러한 시도는 ‘PSB가 라이브를?’ 이라며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던 비평가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았고 뮤지션들의 라이브가 반드시 큰 볼륨의 음악과 흥분한 팬들로 이루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것이었다. 대부분의 게이 뮤지션들이 앨범자체에는 그다지 그들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지만 팬들과 직접 호흡하는 공연에서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보여주기 마련이다. 앨범 Very발표 후 가진 세계공연 ‘Discovery’는 ‘Performance’와는 달리 전용 콘서트 구장에서 벌인 대규모의 공연이었다. 10여명의 남녀댄서들이 거의 나체로 등장하여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춤동작을 선보이는 등 이 공연에서 PSB는 매우 게이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Bilingual발표 이후 런던의 Savoy극장에서 작은 규모로 가졌던 공연 ‘somewhere’에서도 남성흑인 댄서 한 명이 등장하는데 예외 없이 여성으로 분장했다가 남성으로 분장했다가 하면서 무대를 꾸며나간다.

현재 PSB가 진행중인 프로젝트중 게이 커뮤니티에 의미 있는 것이라면 1950년대 당시 찰리 채플린에 견주될 정도로 연극과 음악, 영화 등에 있어서 두각을 보인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영국의 Noel Coward 추모앨범 <20th century blues>(이 앨범은 Noel Coward가 만든 곡들을 엘튼존, 폴 메카트니, PSB등의 거물급 뮤지션들이 다시 녹음한 앨범이다)의 기획을 Neil Tennant가 맡았다는 것이다. Noel Coward는 당시 시대가 시대인 만큼 대중에 공개되길 꺼려했지만 그 자신은 게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여 년이 넘는 활동기간동안 꾸준히 자신들의 음악만을 고집해온 Pet Shop Boys.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85년 데뷔앨범이나 최근의 앨범이나 사운드나 구성 면에서는 아무런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이다. 가히 시대를 초월한 그들의 음악세계에 존경심을 감출 수 없다. PSB는 모르긴 몰라도 게이 커뮤니티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밴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David Bowie나 Elton John과 같은 거물급도 있지만 사실 그들은 ‘일반을 가장한 이반’의 이미지가 강하다. 노래 내용도 평범한 일반들의 것이고 그들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소문도 그들 주위에 허다했다. 하지만 PSB는 가십으로 유명한 런던연예계에서 성실한 게이뮤지션으로서 자신들의 삶과 사랑을 노래하면서 범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현재도 쉬지 않고 창작활동을 하는 거의 유일한 밴드가 아닐까 싶다.

원문보기

Psykosonik

시카고에 자리잡은 Wax Trax 레코드사는 My Life With the Thrill Kill Kult, Ministry 와 같은 인더스트리얼 뮤지션들의 둥지로 유명한 회사이다. 그러나 Psykosonik 은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이 잘생긴 4인조는 1993년 데뷔앨범을 내놓았다. 그 당시는 “레이브(rave)”씬이 서서히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오고 있었는데 Utah Saints 나 2 Unlimited 와 같은 언더그라운드-테크노가 점점 팬 층을 넓혀가고 있던 시기였다. Psykosonik 은 이러한 테크노적인 요소를 위해 신디사이저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그럼에도 그들의 기반은 명백힌 팝적인 것이었다. 스타일에 있어서는 The Shamen이나 Information Society와 상당히 겹친다. 그들이 내놓은 싱글 “Welcome to My Mind”와 “Silicon Jesus” 는 2년 여 전에 인기를 끌었던 EMF 나 Jesus Jones 의 팬 층과 많이 겹칠만한 그런 느낌들의 곡이다. 문제는 그 싱글들이 나온 시점은 Nirvana 와 Green Day 가 공중파를 휩쓸고 있던 시점이라는 것이다. 결국 곡 자체는 훌륭했으나 시기적으로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1995년 내놓은 2집 Unlearn에서 팀은 키타를 맡은 Paul Sebastien 과 키보드를 맡은 Daniel Lenz, 2인조로 재편되었다. 이들의 사운드는 1집에 비해 큰 변화는 없다. 여전히 강한 댄스비트와 아날로그 신디 사운드가 듣기에 편안한 신쓰팝 사운드로 재현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대중적 인기로부터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고 대중음악가에게 그것은 매우 치명적인 것이었기에 2집을 끝으로 그들은 뮤직씬에서 사라진다.

디스코그래피

1993 Psykosonik TVT
1995 Unlearn Wax Trax

Prince

Prince at Coachella 001.jpg
Prince at Coachella 001” by Micahmedia at en.wikipediaOwn work (Original caption: “I created this work entirely by myself”)
Transferred from en.wikipedia to Commons by User:Magnus Manske using CommonsHelper..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이름 : Prince, O(+>, TAFKAP, The Artist formely known as Prince, The Artist
본명 : Prince Roger Nelson (later Prince Rogers Nelson)
생년월일 + 고향 : June 7, 1958 in Minneapolis, MN, USA

프린스와 섹쓰는 그 자체로 자웅일체처럼 느껴진다. 그의 다인종적인 외모와 퍼플레인 시절의 연보라색의 화사한 의상의 결합은 그야말로 그만의 섹쓰 왕국의 프린스의 모습 그 자체였다. 물론 I would die for you같은 노래에서는 섹쓰가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지만 그건 그가 때로는 다른 것도 생각한다는 말이지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Sheila E, Vanity, The Revolutions를 거느렸던 이 왕자는 그의 신하들을 음악계 곳곳에 배치시켜 80년대 흑인음악에 프린스표 음악을 유포하였다. Sheila E의 Glamorous Life나 Chaka Khan의 I Feel For You는 챠트를 뒤흔들며 프린스의 음악이 얼마나 대중에게 흡입력이 있는가를 증명해주었다.

성(性)을 주요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마돈나와 비교할 수 있는 그는 백인 취향의 건전한 음악을 생산해냈던 마이클잭슨과는 마치 음악계의 마틴루터킹과 말콤엑스같은 지형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80년대 흑인 음악의 무협지를 읽는 듯한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Bio from 오이뮤직

” 실험정신과 선정성의 결합, Prince ”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와 흑인들의 전유뮬로 여겨졌던 소울 음악이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가를 증명해 보인 뛰어난 음악인 프린스. 혹자들로 부터 같은 58년 생인 마이클 잭슨과 함께 흑인 음악의 진정성을 백인들에게 팔아먹은 이단아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는 분명히 20세기 말 등장한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 가운데 한 명이다.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등 다양한 악기에 고루 능한 멀티 뮤지션이기도 하고 그에 앞서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이다. 시대를 앞선 음악성으로 인해 비난과 외면을 당했으나 ’84년의 [퍼플 레인] 사운드 트랙이 영화의 성공과 별개로 히트를 기록해 그는 새삼 재조명 받기에 이르렀다. 타이틀 트랙 외에 ‘When Doves Cry’, ‘I Would Die 4 U’ 등이 연이어 히트했고 앨범 자체도 천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해 다이아먼드 레코드를 수여 받았다. 실험정신과 선정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음악 세게는 사실 그가 미네소타 주의 중산층 출신이라는 치명적인 결점으로 말미암아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그는 쾌락과 예술 두가지를 추구하지만 열정과 젊음이 지나친 다작과 방종 그리고 절제의 부족으로 식어 들어가 NPG와의 활동 시작 이후 그의 음악이 지니는 에술적 가치와 대중적 인기가 고루 하강 곡선을 기록했다. [Love Sexy] 앨범을 통해 자신의 누드를 파격적으로 공개하기도 했으나 고향 미네소타 주 몇몇 음반 소매상들은 그의 앨범을 진열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89년 5월 9일의 일이다. 프린스는 [워너]를 통해 ’96년까지 활동했는데 레이블과의 불화로 스스로의 뺨에 노예(slave)라고 새기고 다니기도 했으며 자기 이름을 부정해 스스로를 남성과 여성의 상징을 조합해 만든 이상한 기호 뒤로 은폐해 결국 TAFKAP(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라 불리기도 했다. 소속사를 BMG로 옮기면서 [Emancipation(해방)]이라는 타이틀의 3CD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적 이후 발표한 [Rave Un2 The Joy Fantastic]은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난 속에 발매된 지 2년도 안 되어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 그는 요즘 디지털 시대에 힘 입어 인터넷 상에서 신곡을 발표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78 For You
1979 Prince
1980 Dirty Mind
1981 Controversy
1982 1999
1984 Purple Rain
1985 Around The World In A Day
1986 Parade
1987 Sign O’The Times
1988 Lovesexy
1989 Batman
1990 Grafitty Bridge
1991 Diamonds And Pearls
1992 o( + >
1993 Gold Nigga
1993 The Hits / The B-Sides
1994 1-800-New-Funk
1994 Come
1995 Exodus
1995 The Gold Experience
1996 Girl6
1996 Chaos And Disorder
1996 Emancipation
1998 Crystal Ball
1998 The Truth
1998 Kamasutra
1998 New Power Soul
1999 The Vault… Old Friends 4 Sale
1999 Rave Un2The
1999 Crystal Ball [Limited Edition]
2001 The Beautiful Experience [Bellmark]
2001 The Rainbow Children
2002 One Nite Alone…Live!
2004 Musicology
2004 The Chocolate Invasion
2004 The Slaughterhouse
2006 3121
2007 Planet Earth
2009 Lotusflow3r
2009 MPLSound
2010 20Ten
2014 Plectrumelectrum
2014 Art Official Age
2015 HITnRUN Phase One
2015 HITnRUN Phase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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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 프린스 게시판
드림위즈 Prince 소개
Online Fan Community

Pretenders, The

Pretenders Dec 81.JPG
Pretenders Dec 81” by Ohconfuciu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미국 태생의 여성락아티스트, 크리시 하인드(Chrissie Hynde : 심플마인즈 짐커의 아내)가 이끄는 4인조 뉴웨이브 그룹 프리텐더즈의 탄생은 1979년에 이루어졌다. 수준높은 평론과 날카로운 비평으로 유명한 영국 팝계의 유력지 NME(New MusicalExpress)에서 음악평론을 쓴 바 있는 크리시 하인드는 1952년생으로 어릴 때부터 영국을 동경하여 1973년 고향인 아크론을 떠나 영국으로 건너갔다. 생계 유지를 위해 가게 점원으로 일하던 그녀는 우연히 NME지의 기고가 닉크 켄트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그의 추천으로 NME지에 글을 쓰게된 크리시는 날카로운 비평으로 인정받게 되고 오래지 않아 그녀 사진이 직접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녀는 독자적인 레코드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던 데이브 힐의 눈에 띄어 그의 후원 아래 멤버들을 모아 1979년 프리텐더즈를 조직하였다. 그 해 말 이들은 싱글 Stop Your Sobbing과 Brass In Pocket을 발표하였다.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이들에게 시련이 닥쳐오는데 80년 6월 키타를 담당했던 James Scott이 갑자기 사망하더니 81년에는 그룹을 탈퇴했던 Peter Pardon역시 세상을 등지고 만다. 이러한 와중에 크리시는 딸을 출산하였고 싱글로 발표한 Back On The Chain Gang이 미국 챠트 5위까지 랭크되는 히트곡이 되었다. 이들 음악의 특징인 전형적인 뉴웨이브 싸운드에 60년대 말의 순수했던 락과 리듬앤블루스를 적절히 가미시킨 로맨틱한 싸운드를 구사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크리시 하인드의 청량감있는 보컬과 깔끔한 연주가 이러한 그들의 싸운드를 잘 뒷받침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0 Pretenders (Sire)
1981 Pretenders II (Sire)
1984 Learning to Crawl (Sire)
1986 Get Close (Sire)
198 The Pretenders Live (Warner)
1990 Packed! (Sire)
1994 Last of the Independents (Sire)
1995 The Isle of View [live] (Warner)
1999 Viva el Amor (W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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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페이지
Archives Cool

Prefab Sprout

’80 ~ ’90년대 영국에서 크게 사랑받았던 Prefab Sprout는 미국에서는 거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싱어/송라이터 Paddy McAloon은 그 시대에 위대한 작곡가로까지 칭송받았던 인물이다. 비평은 McAloon을 Elvis Costello, Paul McCartney, Cole Porter 등과 비교하였지만 수줍은 성격의 McAloon은 대중앞에 나서기를 꺼려했다.

Prefab Sprout는 1977년 뉴캐슬에서 McAloon과 베이스를 치던 동생 Martin에 의해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그들의 팬중 하나였던 Wendy Smith가 백보컬로 가세하였고 첫싱글 “Lions in My Own Garden (Exit Someone)”을 1982년 7월 발매하였다. 그들의 데뷔앨범 Swoon은 1984년 발매되었는데 곡들은 예측불가능한 멜로디와 불가해한 가사로 메꿔져 있었다. Swoon의 발매 직후 드러머 Neil Conti가 그룹에 가세하였다. 1985년 그들의 두번째 앨범 Steve McQueen(미국에서는 법적인 문제로 인하여 Twon Wheels Good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에서는 Thomas Dolby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Dolby는 그들의 기묘한 분위기를 좀더 부드럽게 바꿨다. 또한 그의 키보드 싸운드는 앨범의 싸운드를 풍부하게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가사는 여전히 불투명했지만 독해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 앨범에서는 “When Love Breaks Down” 가 인기를 얻었다.

1988년에 발매된 3집 From Langley Park to Memphis은 그들의 앨범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이 되었다. “The King of Rock and Roll”이 크게 히트하였고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기를 얻어 소위 One Hit Wonder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의 대학 라디오에서는 Bruce Springsteen의 노래를 패러디한 “Cars and Girls”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1985년에 시도하려다 미뤄왔던 어쿠스틱 프로젝트를 진행시켜 1989년 Protest Songs란 타이틀로 앨범을 출시하였다.

1990년 Jordan: The Comeback은 – McAloon이 Jesse James와 Elvis Presley에 관한 컨셉앨범이라고 표현하였던 – 비평가들의 큰 호평을 얻게 된다. 그러나 다소 호사스럽고 장식적이었던 프로듀스 때문에 미국에서는 상업적으로 실패하였다.(반면 영국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 ‘92년 발표되었던 베스트앨범 A Life of Surprises도 비슷한 운명을 걸었다.

많은 팬들은 실제로 이 시기가 Prefab Sprout의 실질적인 해체기라고 간주하였다. 실제로 Conti가 밴드를 떠났다. 그러나 McAloon은 몇장의 앨범을 낼 수 있을 정도의 곡들을 써댔고 – 몇몇 곡은 실지 녹음까지도 했었고 – 이러한 노력으로 ‘97년 또다시 Andromeda Heights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 발매되지 않았지만 영국에서는 호평속에 판매되었다. 현재 그룹은 실제로 McAloon 형제의 듀엣 형태로 유지되고 있지만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4 Swoon Epic
1985 Steve McQueen Kitchenware
1985 Two Wheels Good Epic
1988 From Langley Park to Memphis Epic
1989 Protest Songs Kitchenware
1990 Jordan: The Comeback Epic
1997 Andromeda Heights Epic
2001 The Gunman and Other Stories E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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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Site

Pop, Iggy

Iggy Pop - pinkpop87.jpg
Iggy Pop – pinkpop87” by Yves Lorson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Iggy Pop.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이기 팝은 미시건 주 앤 아르버 태생이다. 그의 첫 밴드인 이구아나스(The Iguanas) 시절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1970년 『재즈 & 팝』지의 인터뷰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는데 그의 괴상한 성격이 유년시절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렸을 땐 몹시 불행했고, 지극히 수줍음이 심했어요. 항상 망상 속에서 살았는데, 18세 무렵 교통사고로 같이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죽거나 다친 적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난 상처하나 입지 않았어요.”

1960년대 중반부터 이기는 시카고와 디트로이트에서 이구아나스와 프라임 무버즈 등의 멤버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블루스 음악인 샘 레이와도 연주활동을 했다.

“난 시카고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흑인 소울 밴드를 했는데, 마지막으로 그 지역에서의 음악활동을 청산했지요. 샘 레이 외에 조니 영이나 피트 윌링포드 등도 훌륭한 뮤지션이지만 함께 연주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 있었어요.”

이후 이기는 도어스(The Doors)의 공연에 영감을 얻었고, 68년에 자신만의 허무주의적 음악관에 걸맞는 밴드 스투지스(The Stooges)를 결성했다. 이 때까지 이기는 드럼을 연주했는데, 스투지스를 결성하며 보컬과 기타를 담당했다. 그리고 기타리스트 론 애쉬톤이 베이스를, 스코트 애쉬톤이 드럼을 담당했는데, 얼마후 베이시스트 데이브 알렉산더가 기타리스트로 가입하여 이기는 보컬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선배격인 도어스의 싱어 짐 모리슨과 같은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이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전위적인 쇼맨십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이상야릇한 무대 액션을 하며 노래를 하는 동안 밴드는 엄청난 볼륨으로 화음을 실어 원초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그의 무대 액션은 단순한 쇼맨십이라기에는 심오한 부분이 많았다. 그의 행위는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스투지스는 처음부터 청중들로부터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점차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미시건 주와 일리노이 주를 비롯한 중서부 지역에서 팬들을 확보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러한 결과로 스투지스는 일렉트라 음반사와 레코딩 계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스투지스는 일렉트라 음반사를 통해 69년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과,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존 케일이 프로듀스한 1970년 2집 「Funhouse」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때 이기의 약물복용과 관련하여 스투지스는 해체하게 되었고, 이기의 활동도 중단되고 말았다.

72년 이기는 동갑내기이면서 음악적 동료인 데이빗 보위의 도움으로 데이빗 보위의 홈 타운 런던에서 새 앨범을 제작하게 되었다. 앨범 제작에는 역시 스투지스의 멤버였던 론 애쉬톤과 스코트 애쉬톤, 그리고 데이브 알렉산더를 대신한 기타리스트 제임스 윌리엄슨이 함께 했다.

새로운 재기 앨범인 73년 3집 「Raw Power」는 ‘이기 앤드 더 스투지스'(Iggy And The Stooges)라는 아티스트 이름으로 컬럼비아 음반사를 통해 73년에 발표되었다. ‘핵폭탄으로부터 도망한 아이의 모습과 같은 앨범’이라는 이기의 표현대로 이 앨범은 허무주의 찬가 등으로 팬들의 가슴에 뜨거운 공명을 불어넣었다. 또한 빌보드 앨범 차트에도 상위권에 진입할 만큼 상업적 성공도 거둔 명반이 되었다.

하지만 76년 4집 「Metallic K.O」을 마지막으로 다시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이기는 데이빗 보위가 소속된 RCA에서 데이빗 보위의 지원을 받으며 77년 통산 4집 「The Idiot」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데이빗 보위와 공동 작곡한 노래들과, 데이빗 보위가 리메이크(스티비 레이 본의 노래)한 등이 포함되어 있다. 77년에는 또 버진 음반사를 통해 5집을 발표하는데, 역시 데이빗 보위와 공동작곡을 했다. 77년에는 또 「Kill City」 6집으로 선보였다.

78년에는 RCA 음반사를 통해 첫 라이브 앨범, 통산 7집으로 선보였으며, 아리스타 음반사를 통해 79년 8집 「New Values」, 「Soldier」, 그리고 과 「Party」를 발표했다. 1980년에 「No Fun」이라는 타이틀로 앨범을 발매했고. 81년엔 앨범 「Party」를 낸다.

이기는 82년 12집 「Zombie Birdhouse」를 내놓으며 활약을 펼치지만 계속 마약문제가 뒤따랐고, 결국 다시 활동은 중단 되었다. 하지만 이 기간인 84년에 RCA 음반사를 통해 편집음반을 발매했다.

공연에서 이기는 마치 래퍼처럼, 노래한다.

“잘 먹어서 혈색 멀끔한 자식들아. ~~””

청중들은 이러한 언동을 그저 신비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기는 ‘통제불능의 과잉행동장애를 보이지만, 이러한 이미지도 무대를 벗어나면 사라진다.

약 4년간의 공백후 이기는 마약문제를 해결하고, A&M 음반사를 통해 86년 통산 14집을 내놓았는데, 데이빗 보위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에는 존스도 참여하여 이기와 함께 곡을 썼다. 이기의 독특하고 왕성한 활동은 다시 시작된다. 데이빗 보위처럼 이기는 뮤지션일 뿐만 배우’이기도 하다. 우리는 “니코” “시드와 베이비” “하드웨어” “돈의 색깔”(The Color “크로우 2″(Crow 2)에서 이기의 연기를 접할 수 있다.

디스코그래피
1977 The Idiot Virgin
1977 Lust for Life Virgin
1978 TV Eye [live] RCA
1979 New Values Buddha
1980 Soldier Buddha
1981 Party Buddha
1982 Zombie Birdhouse IRS
1984 Choice Cuts RCA
1986 Blah Blah Blah A&M
1988 Instinct A&M
1990 Brick by Brick Virgin
1993 American Caesar Virgin
1995 We’re Not Talking About Commercial Shit Sky Dog
1995 Wake Up Suckers Sky Dog
1995 Live at the Ritz NYC (1986) New Rose Blues
1995 Live at the Channel, Boston MA 1988 ROIR
1996 Naughty Little Doggie Virgin
1997 Heroin Hates You [live] Other People’s
1997 King Biscuit Flower Hour [live] King Biscuit
1999 Avenue B [US] Virgin
1999 Avenue B [Japan Bonus Tracks] EMI
2000 Live EMI-Capitol
2000 Live in NYC King Biscuit
2001 Beat ‘Em Up Virgin
2001 Hippodrome, Paris ’77 [live] R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