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ing Heads의 첫 라이브 공연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Psycho Killer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이 비디오는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의 감독이었던 마이크 밀스(Mike Mills)가 감독하고, ‘레이디버드’나 ‘작은 아씨들’과 같은 수작에 연이어 출연했던 배우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이 주연을 맡았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한 평범한 여성이 일상생활 속에서 무관심,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이 차례대로 밀려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마치 영화 ‘그라운드혹데이(Groundhog Day)’처럼 반복적이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일상을 절묘한 무대 세팅을 통해 재치 있게 묘사하고 있다.
a few days later
뮤비를 심심할 때마다 봤는데 자꾸 보다보니까 생각나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The Office라는 미드다. 직장인의 일상을 가짜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찍으면서 그 속에서 웃음 포인트를 찾았던 드라마. 다만, 이 드라마는 원래 영국의 괴짜 셀럽 리키저베이스가 창조한 영드 The Office가 원본이다. 그런데 각설하고 이 뮤비는 영드보다는 미드가 연상되는 질감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색감하며 주연배우가 드나드는 집도 전형적인 미국풍 – 내 기준에서는 – 이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이 뮤비에서의 주연은 미드 오피스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어느 누군가가 매일 출퇴근 할 때에 겪었을 법한 – 물론 거기에 조금 더(?) 아니 훨씬 더(?) 과장된 – 인간적 갈등이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직장에 출근하는 행위는 견고하게 조립된 톱니바퀴 가득한 기계장치에 우리 몸을 끼워 맞추는 행위다. 나태하고 리버럴한 인간의 품성에 걸맞은 행위가 아님은 분명하다.
(R.E.M.의)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가 캐롤린플레이스(Carolin Place)에 나타났고, 우리는 퀸세이 식당들의 똥 냄새가 공기를 오염시키는 가운데 뒷마당에서 차를 마셨다.
“이 동네가 싫어요.” 내가 마이클에게 말했다.
“그럼 왜 여기 사세요?” 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처음 Everyday is like Sunday를 들었을 때 정말 부러웠어요.”
그는 계속해서 자신도 솔로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솔로 활동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말했다. “나는 The Smiths가 최소 30장 정도는 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수 송대관 씨가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 하셨다고 한다. 적지 않은 나이이긴 하지만 급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기억하기로 그는 지방 소도시의 이발소 직원이었다가 가수의 꿈을 안고 상경하여 어렵게 1975년 발표한 ‘해 뜰 날’이라는 메가톤급 히트곡으로 성공하여 본인이 작사한 그 가사만큼이나 그대로 해가 떴던 삶을 살았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또한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배우자의 잘못된 투자로 인해 가산을 탕진하였지만, 한 번도 배우자를 탓하지 않았던 분으로도 기억하고 있다.
‘해 뜰 날’이 유난히 주목을 받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바로 The J. Geils Band의 1982년 히트곡 Centerfold1의 멜로디가 ‘해 뜰 날’의 멜로디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미국의 팝송을 표절했으면 했지 미국 가수가 우리 노래를 표절했을까’라고 생각하던 시절엔 이를 그저 우연의 일치 정도로 여기며 소심한 국뽕을 들이켰을 뿐이다.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이런 영상도 있고 또 이 영상을 보면 ‘해 뜰 날’ 역시도 ELP가 1972년 발표한 노래와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당시에는 표절에 관한 소송도 없었고 그러니 진실은 알 수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Centerfold는 ‘잡지의 한 가운데에 접어 넣은 페이지’라는 의미로 가사는 학창 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성인이 되어 뒤적거리던 성인잡지에서 센터폴드의 모델로 발견하다는 다소 슬픈 사연의 내용 ↩
Sting만큼 그룹 활동과 솔로 활동에서 모두 엄청난 음악적/상업적 성공을 거둔 뮤지션도 그리 많지 않다. 레게에 기초한 펑크락 밴드 The Police로 다섯 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으면서 내놓은 음반 하나하나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큰 호응을 얻었고 1983년 Synchronicity를 내놓으며 그룹 활동의 정점을 찍었다. 그 이후 그는 슬슬 솔로 활동을 예열하더니 1985년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를 내놓으며 밴드 리더에서 솔로 뮤지션으로 부드럽게 넘어가 버렸다.
그뒤 2025년 현재까지 열다섯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는 등 – 분량이 밴드 활동 시기의 세배! –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다작 활동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의 솔로곡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단연 그의 솔로 2집 Nothing Like the Sun의 세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뉴올리언스 출신의 째즈 뮤지션 브랜포드 마살리스(Branford Marsalis)의 쓸쓸한 소프라노색서폰 연주가 곡 전면에 깔리는 ‘뉴욕에서의 영국인(Englishman in New York)’ 을 꼽을 것이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가사가 계속 반복되는 – BTS가 주체성을 강조하기 이전에 이미 스팅이 강조하고 있었다 – 이 노래가 만들어진 스토리는 곡의 매력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일전에 트위터에서 누군가 같은 영어권에서 살면서 “I’m an alien, I’m a legal alien”이라고 푸념하는 스팅이 오만하다는 투의 트윗을 해서 다른 이들의 어그로를 끈 적이 있는데 – 지금은 그 트윗을 지웠는지 안보임 – 트위터에서 몇몇이 지적했다시피 이 노래는 스팅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 부분적으로는 자기 이야기기도 하지만 – 그가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영국인 이야기다.
1978년 당시 만담가로 활동하던 그는 뉴욕으로 공연을 위해 떠났다가 아예 뉴욕에 정착하게 된다. 뉴욕에서도 저예산으로 제작된 햄릿(1976년)의 배우로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85년 The Bride라는 이름의 고딕로맨스 영화에 잴허스(Zalhus) 박사 역으로 출연하는데2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찰스 프랑켄슈타인 남작 역을 맡은 스팅이었다. 쿠엔틴의 재치있는 입담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스팅은 1987년 쿠엔틴에 관한 노래 Englishman in New York을 발표한다.
노래 가사를 보면 곡의 주인공은 뉴욕에 와서도 영국식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영국식 액센트도 그대로이고, 신사는 절대 뛰지 않고 걷는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쿠엔틴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가사가 그의 정체성에 대한 뉘앙스만 약간 풍길 뿐이다. 쿠엔틴은 생전에도 게이 해방운동을 냉소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동성애 자체가 범죄인 영국에서 그가 일종의 생존의 수단으로 냉소주의를 택한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하기에 노래는 이방인(지역 혹은 성적정체성)으로서의 주체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냥 가볍게 들을 수 있는 한 독특한 이주민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Quentin’s a friend of mine and someone I admire greatly because I think he’s one of the most courageous people I’ve ever met. He has lived his life in an individual way in a society that is vicious and malevolent. But he is a hero in a feminine way. So that’s a song about the feminine qualities than can exist in man without being negative.” “쿠엔틴은 제 친구이고 제가 매우 존경하는 사람인데, 제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용감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악하고 악의적인 사회에서 개인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적인 방식으로 영웅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부정적이지 않고도 남성에게 존재할 수 있는 여성적인 특성에 대한 노래입니다.” ~ Timeout, 1987년 10월
스팅의 타임아웃과의 인터뷰 중 쿠엔틴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인터뷰에서 스팅은 “게이인 것이 신체적으로 위험한 시기에 그는 화려한(flamboyantly) 게이였고 가장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쿠엔틴의 동성애자로서의 혼란과 위험성에 대한 극복 수단은 유머(혹은 냉소)였다. 일종의 생존하기 위한 생계수단이었다. 또한 스팅이 언급하는 바와 같이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구분짓지 않기 또한 중요한 태도인데, 이러한 자세가 필요함은 전에 소개한, (역시) 뉴욕에서의 한 게이바의 군무를 묘사한 조잭슨의 Real Men이란 곡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See the nice boys dancing in pairs
Golden earring, golden tan, and blow wave in their hair
Sure, they’re all straight, straight as a line3
All the gays are macho, can’t you see the leather shine?
멋진 남자들이 짝을 지어 춤추는 걸 보세요
금빛 귀걸이, 황금빛 태닝, 그리고 머리카락에 불어오는 웨이브
물론, 그들은 모두 스트레이트합니다. 일직선 춤라인처럼요
게이들은 모두 마초예요, 가죽이 빛나는 걸 못 보나요?
뮤직비디오는 완연한 째즈 풍의 곡에 맞게 뉴욕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흑백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4 지금 봐도 멋진 스타일의 스팅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주인공 쿠엔틴 크리스프가 등장하고, 브랜포드 등 연주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교차하지는 않는다. 다들 뉴욕을 배회하는 이방인들일 뿐이다.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브랜포드는 쓸쓸히 홀로 길을 걸어간다.5 이러한 흑백화면의 비디오가 80년대말 여러 인기 뮤지션들의 영상의 트렌드로 쓰였는데 언뜻 생각나는 것은 펫숍보이스와 마돈나다. 이 비디오도 모두 화려하다(flamboyant).
“누가 뭐라든 내 자신이 되라”……. 살면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주제다.
그는 한 예술학교에서 누드모델로 일했고 급료는 교육부가 지불하여서 결국 자신도 일종의 공무원이라고 쿠엔틴이 비꼬는 투로 표현한 것에서 책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
이 영화에는 또한 Flashdance를 통해 1980년대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러나 이후의 인상적인 필르모그래피를 이어가지 못한 제니퍼 빌즈(Jennifer Beals)가 출연한다고 한다 ↩
조잭슨은 “그래 그들은 다 똑바르지(straight). 줄만큼이나.”에서는 straight의 중의적 의미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고 있다 ↩
“역사상 최고의 콘서트 필름입니다!” 토론토 인터내셔널페스티벌에서 토킹헤즈의 새롭게 리마스터된 콘서트 다큐멘터리 스탑메이킹센스의 시사회에서 이 베테랑 감독이 선언했다. 리는 그룹이 이십여년만에 처음으로 대중에 전체 밴드의 모습으로 나타난 영상회와 질의응답 시간의 사회를 맡아줄 것을 요청받았다.
몇년 동안 팬들은 멤버인 데이빗번, 티나웨이마우스, 크리스프란츠, 제리해리슨에게 재결성해줄 것을 애걸해왔다. 그러나 월요일의 이벤트는 이 락커들이 서로 한 방에 모일 수는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테스트였을 것이다. 번과의 마지막 만남이 “20여년 전”이었다는 프란츠는 그가 2020년 내놓은 생동감있는 회고록 리메인인러브에서 회고하길 번은 그룹의 공동작업에 대해 반복적으로 단독의 작곡인 것으로 간주했었고, 1991년 모두를 놀라게 하는 밴드의 해산을 주도했다. 그리고 나머지의 바람과 반해서 EMI의 카탈로그에 완전한 소유권에 서명해버렸다. 한편 웨이마우스는 이전에 번을 “트럼프주의자”이자 “거래적”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TIFF에서 잠복해있던 드라마는 재빨리 잠재워졌다. 리의 사회 하에 상영 후의 인터뷰는 최대한 밝고 공손했다. “역사상 최고의 콘서트 필름입니다!” 그는 다시 선언해서 그룹이 그들의 음악과 영상의 유산을 축하며 미소짓게 만들었다.
“토킹헤즈는 너무나 뛰어난 밴드이고 우리가 라인업을 확장했을 때… 우리는 다른 차원으로 옮겨갔었습니다.” 프란츠가 말했다. “자화자찬해서 미안한데 우리 밴드 멤버가 오늘밤 다시 함께 한 것이 너무 좋아요.”
CBGB의 열기 속에서 구성된 토킹헤즈는 1970년대 뉴욕에서 협조적이고 매혹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운드에 집중하는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인 라이브 연주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는 그들을 보다 전통적인 가사-코러스-가사 위주의 동료 뮤지션과 차별화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특히 피어오브뮤직(1979)에서 종합적인 텍스쳐를 락에 결합하고 차기작 리메인인라잇(1980)과 스피킹인텅스(1983)에서는 아프리카의 그루브에 영감을 받은 복합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는 등 스튜디오 마술에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토킹헤즈는 비록 2021년이 되어서야 평생공로상으로 처음 그래미를 받기는 했지만 드물게도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성공적이었다.
1984년 발표한 스탑메이킹센스는 그들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라이브 공연을 소중하게 담아냈다. 이 획기적인 필름은 당신을 토킹헤즈가 스피킹인텅스 투어로 3일 밤을 연주하는 로스엔젤레스의 판타지스 극장으로 데려간다. 당시 그룹은 쇼에서 라인업을 서서히 확장하면서 보다 풍부하게 실연하는 사운드나 장엄한 연출법 등을 선보였다.
당신이 스탑메이킹센스를 처음 접했든 반복적으로 시청을 했든 (해리슨이 감리를 맡은) 리마스트된 사운드를 포함한 복각판은 당신을 즉시 그들의 연주장으로 데려간다. IMAX에서 극단적으로 친밀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그는 너무 땀이 흥건하네요!” 번의 근접 샷에서 내 이웃 하나가 말했다.) 극장의 팬들은 “버닝다운더하우스”에 원 모양으로 회전했고 “원스인어라이프타임”에서는 리는 좌석을 차고 일어난 이들에 합류했다. “라이프디어링워타임”의 연주 동안 번의 모습에에는 다시 한번 계단에서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지금 이걸 봤을 때 난 이게 극장에 오는 이유야!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번이 “내 랩탑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라고 농담하기 전에 이야기했다.
상영회 이후 리는 동기부여 감독 역을 맡았다. “모두 환영해주세요. 전세계적으로 기록을 세울 예정입니다.” 토킹헤즈 101으로서 부분적으로 발매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기에 리는 타임라인과 함께 1983년 어떻게 촬영했는지에서부터 밴드와 청중이 2023년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이르기까지 질의를 진행했다. 특별히 웨이마우스의 그의 베이스 스타일에 친밀감을 보이며 리는 그에게 이 필름에서 맘에 드는 연주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봐요 스파이크” 그가 대답했다. “그건 마치 내 아이들 중 누구를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고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같아요.”
토킹헤즈의 발언이나 팬의 질문은 – 예를 들면 “완전 새로운 관객에게 이 상징적인 영화를 상영하니 어떤 느낌인가요?”와 같은 – 이 방안에 하나의 단어를 남겼는데 ‘사랑’이다. 리는 다시 강조했다. “사랑!” 리는 항상 같은 정서를 공유한 것만은 아닌 이들 밴드 구성원을 위한 치료의 힘이 있는 주문이라도 되는양 소리쳤다. “영원하다!” 그는 그들의 유산에 대한 확신감으로 반복했다. “풍부하고 세심한 사운드!” 그는 그룹이 기뻐할 정도로 강조하였다.
“이 필름이 힘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로 당신은 스테이지 위에서 우리가 무척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해리슨의 말이다.
“제가 거기에 사랑이란 단어를 다시 넣어도 될까요?” 리가 물었다. “사랑! 사랑!”
“사랑과 즐거움, 그리고 청중이 ‘당신도 이 중 하나야’라고 말하고 있어요.” 해리슨이 이어나갔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당시의 놀라운 감정이 다시 떠오르곤 합니다.”
토킹헤즈는 리를 좀 더 자주 만나야 하고 이는 그들에게 좋은 일일 것이다.
게일블레커가 디자인한 아이코닉한 빅수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번은 일본에서 그의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는 극장에서 동작과 부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실제 삶보다 크다고 이야기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난 생각했는데 오~! 내 양복도 역시 커야겠구나.” 번이 말하자 폭소가 터졌다.
“오늘은 정말 컸어요.” 프란츠가 대꾸했다.
웨이마우스는 필름을 찍기전에 “모든 곡의 악보를 따고, 각 연주자가 무엇을 하는지, 누가 움직이는지를 알기 위해” 밴드와 함께 몇주간 여행했던 비주얼 컨설턴트 샌디맥레오드에게 고마움을 표했는데 “내 생각에 그게 실제 촬영에서 굉장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밴드는 또한 팀의 노력으로 스탑메이킹센스의 감독으로 많은 신뢰를 받았던 조나단드미에게도 칭찬을 쏟아부었다.
“난 그가 이것을 일종의 합주 필름이라고 보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번이 고인이 된 감독에 대해 말했다. “당신은 많은 배우를 가지고 있어요. 당신은 하나하나의 캐릭터에 대해 알게 되죠. 그리고 당신은 그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하는지 바라봅니다. 나는 나많의 세상이 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본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프란츠가 덧붙였다. “조나달은 우리를 많이 신뢰했어요. 우리가 하는 것이 영화로 만들 가치가 있고 또한 그것이 미래에 기억될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해줬죠.”
리는 아쉽게도 밴드 멤버들이 어떻게 이제 잘 지내게 됐는 지에 대해서나 라이브를 위한 재결합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번은 다만 최근 사람들에게 그가 그룹을 끝내게 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고 그것을 “꼴 사나운 해체”라고 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한다. 토킹헤즈의 이전의 2002년 공개 석상에서 프란츠는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게 밴드가 “행복한 끝맺음”의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한 바 있다. TIFF는 보다 행복한 것이 되었다.
“마술같아요.” 웨이마우스는 스탑메이킹센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감상은 그 밤 그 자체에게도 쉽게 적용될 것이다. “모든 것이 특별해요. 당신이 우리와 청중 사이에 대해 이야기한 그 사랑, 팀웍, 우리 동료, 영화를 찍은 동료. 모든 것이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