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e the Pres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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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1], Fair use, Link

버나드 썸너(Bernard Sumner)와 자니 마(Johnny Marr)의 프로젝트 일렉트로닉이 1996년 내놓은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밴드 이름이 표방한 대로 일렉트로닉한 분위기, 자니 마의 강렬한 기타 사운드, 썸너의 청량한 보컬 등이 90년대 얼터너티브락의 바이브와 자연스럽게 결합하며 듣기에 즐거운 작품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 1993년 New Order가 내놓은 Republic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13개 트랙 중 7개는 썸너와 마가 만들었고, 나머지 6개는 Kraftwerk의 전 멤버인 칼 바르토스(Karl Bartos)와 공동으로 작업했다. 칼을 추천한 이는 베를린에서 레코드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던 마와 썸너의 친구 마크 리더(Mark Reeder)였다. 둘은 마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뒤셀도르프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들은 칼이 일렉트로닉 뮤직의 선구자였기 때문에 기대가 컸고, 칼은 최신의 기술을 알고 싶어했다.

처음에 둘은 칼을 만나기 전에 그와 당시의 최신 기술인 모뎀 라인을 통해 파일을 주고받는 식으로 작업하는 장면을 상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칼과 카페에 만나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어떻게 레코딩을 할지 물었을 때 그들은 놀랐다고 한다. 칼이 “간단하지. 우리는 악기를 가지고 잼을 하는 거야.”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칼은 그들에게 스튜디오를 보여주고 클래프트베르크가 어떻게 작업했는지 시연했다고 한다.

셋이 의기투합한 이후1 칼은 자니 마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집에 마련한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같이 작업하면서 마는 칼로부터 독일의 작곡가나 철학자 등 독일 역사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그들은 클럽에 가서 당시의 음악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칼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스미쓰 멤버의 집에서 클래프트베르크 멤버가 속옷 차림으로 부엌을 오가는 그런 삶이었다.2

하지만, 이 앨범 작업 당시 그들의 삶은 모든 것이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버나드는 토니 윌슨(Tony Wilson)이 벌려놓은 하시엔다(The Haçienda)에서 벌어진 갱단의 폭력 이슈를 해결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종종 미팅에 불참해야 했다. 자니 마 역시 스미쓰와 관련한 여러 회의에 끌려다녀야 했다. 결국 그 문제는 법정으로 가게 된다.3 여러모로 쉽지 않은 작업 환경에서 탄생한 앨범인 셈이다.4

개인적으로 가장 캐치하다고 생각하는 트랙은 첫 번째 트랙 Forbidden City고5 일렉트로닉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꿀맛은 세 번째 트랙 Dark Angel이다. 한편 강렬한 락비트의 일렉트로닉 넘버 Until the End of Time는 네 가지 다른 버전으로 일렉트로닉의 메일링리스트(mailing list)에 공개됐다고 한다. 메일링리스트라니 90년대스럽다. 영국 앨범 차트 8위에까지 올랐고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143위까지 올랐다.

  1. 일렉트로닉 도원결의!
  2. Set The Boy Free, 326-327pp
  3. 드러머 마이크 조이스가 모리시와 자니 마를 상대로 그룹 수익의 동등지분을 요구한 그 분쟁이었다.
  4. 같은책, 332p
  5. New Order의 Regret와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다. 약간 늘어지는 버전?

Johnny Marr & Talking Heads

토킹헤즈가 그들의 새 앨범을 파리에서 나와 함께 작업하자고 제안하였다. [중략] 그들은 우리 세대에서 너무나 중요한 밴드였고, 예술적 독창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 최고의 밴드 중 하나라는 희귀한 업적을 이루었다. 난 그들의 음악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그들의 앨범에 기여해달라고 요청받은 것에 대해 기뻤고 흥분했다. [중략] 앨범을 프로듀싱한 스티브 릴리화이트(Steve Lillywhite)가 작업실에 있었는데, 내가 알던 이여서 반가웠다. [중략] 나는 간헐적인 퍼커션과 드럼 그루브를 한동안 들었다. 그리고 기타 코드 두어 개가 흐른 후 티나 웨이머스의 베이스라인이 흘렀다. [중략] 나는 내 손가락에서 노니는 트랙에로의 접근을 개념화하기 위해 뇌를 비워냈다. [중략]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중략] 난 겁에 질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으로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머리를 식혔다. 파리 거리를 걸었다. [중략] 난 너무 아끼고 있었다. 그냥 내 것을 던져 넣으면 된다. [중략] 스튜디오로 돌아와서 깁슨-335 12현 일렉트릭을 꼽고 스티브에게 테잎을 다시 틀어달라고 했다. 인트로가 시작되고 생각 없이 내 머리에 떠오르는 처음 것을 연주했다. 스티브는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중략] 데이빗이 그의 영리한 가사와 보컬을 더했고 그 곡은 (Nothing But) Flowers가 되었다. [Set The Boy Free, 273-275pp]

창작의 어려운 과정이 짧게 서술되어 있는 재밌는 일화라 소개한다. Talking HeadsThe Smiths라는 희소한 조합을 만들어낸 계기는 자니마가 밴드를 떠나고 난 이후의 토킹헤즈가 그를 세션 연주자로 초대했던 덕분이었다. 토킹헤즈의 드러머 크리스 프란츠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를 초대하자는 생각은 자니마의 친구였던 스티브 릴리화이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자니는 연주를 쉽고 아름답게 해냈고 함께 와인을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1 한편, 자니마의 회고록에서 후술하는 부분을 읽어보면 자니마는 이런 활동 때문에 오히려 The Smiths 해체의 주범으로 욕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어쨌든 두 밴드 모두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조합의 곡이 탄생해주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 물론 The Smiths가 존속했더라면 어떠한 앨범이 더 나왔을지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Johnny Marr – The Messeng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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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싱어였던 MorrisseyThe Smiths가 해체하자마자 – 혹은 그 이전부터 이미 – 만반의 준비를 해서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등 확실한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아간 반면, 기타리스트였던 Johnny Marr는 단숨에 솔로 커리어를 쌓아가지는 않았다. 밴드가 해체된 이후 그는 The Pretenders, The The, Talking Heads 와 같은 동시대의 걸출한 밴드들의 작업을 도와주는 활동부터 시작했다. 그러던 중 New Order의 Bernard Sumner와 Electronic이라는 멋진 유닛을 결성하여 1991년 이후부터 세 개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으며 음악적으로 매우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이후 다시 Modest Mouse 등의 밴드들과 함께 활동하며 Morrissey와는 다른 궤적의 음악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던 그가 마침내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2013년 그의 이름을 온전하게 건 첫 솔로 스튜디오 앨범으로 내놓은 작품이 이 The Messenger다.1 Morrissey의 특징적인 보컬 덕분에 살짝 The Smiths 2기의 냄새가 났던 반면에 이 앨범에서 뭔가 The Smiths의 흔적을 찾기는 무리다. 시간 상으로도 그들의 마지막 앨범으로부터 너무 긴 시간이 흘러 기타 사운드도 The Smiths 당시의 찰랑찰랑 사운드와도 거리가 멀고 보컬도 Johnny Marr가 직접 맡고 있어 분위기도 완연하게 다르다. 여하튼 Johnny Marr가 말하기를 이 앨범은 그의 옛날 팬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다른 종류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나를 따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난 그들을 즐겁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2 피치포크는 평하길 이같은 기준으로 보자면 앨범은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이 표현이 냉소적이든 아니든 나 역시도 그 의견에 공감한다.

Paul Weller와 Johnny Marr가 한 무대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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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Weller at the No Cactus Festival in Belgium” by Marcelo Costahttp://www.flickr.com/photos/maccosta/3711789229.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Paul WellerJohnny Marr가 지난 3월 27일 한 무대에 서서 공연을 펼쳤다는 소식이다. 런던의 로얄알버트홀에서 열린 이 공연은 암에 걸린 청소년들을 위한 기금마련을 취지로 하는 2015 Teenage Cancer Trust shows의 일부분이었다. 새 앨범의 신곡들도 몇 곡 선보였던 Paul Weller는 Johnny Marr를 소개하면서 “X나 대단하거나 재앙이 될 것이다(This will be either be fucking great or a disaster)”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다. 함께 무대에 선 두 거장이 연주한 곡은 Junior Walker & The Allstars’‘(I’m A) Roadrunner’. Johnny Marr는 이 날 공연에서 The Smiths, Electronic, 그리고 솔로 시절의 곡들을 팬들에게 선사하였다고 한다. 보다 자세한 소식은 여기로.

Johnny Marr, I Feel You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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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Marr University of Salford 2012 crop” by University of Salford Press Office – Derived from File:Johnny Marr University of Salford 2012.jpg (cropped and straightened), original source Flickr: Johnny Marr 9.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The Smiths의 기타리스트였던 Johnny MarrDepeche Mode의 히트곡 I Feel You을 커버하여 뮤직비디오로 제작했다는 소식을 그의 페이스북 계정에 알려왔다. 풀 동영상은 곧 올릴 계획이라고.

Video for Johnny’s Record Store Day cover of Depeche Mode’s “I Feel You” coming soon…(출처)

Easy Money

The Smiths의 기타리스트였던 Johnny Marr가 신곡 Easy Money의 비디오를 발표했다. 이 곡은 워너 뮤직 그룹을 통해 10월 6일 영국, 그리고 10월 7일 전 세계로 발매될 그의 새 앨범 Playland의 수록곡이다. David Barnes가 감독을 맡은 비디오는 Marr가 손님이 별로 없는 펍에서 연주를 하다가 카지노, 편의점 등을 배회하는 씬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디오 보기

당신이 The Queen Is Dead에 대해 모르는 25가지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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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Queen-is-Dead-cover“. Via Wikipedia.

1. 2003년 Morrissey는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가 그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말했다.

2.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은 New York Dolls의 Lonely Planet Boy라는 노래를 기반으로 가사를 만든 노래다. “오, 넌 날 태워서/네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러 나왔지/내가 너에게 내가 가는 곳을 말했을 때/언제나 내게 너무 멀다고 말했지/그러나 어떻게 너는/내 집으로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것인지/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그리고 난 난 혼자 일뿐이야.”

3. The Queen is Dead의 워킹타이틀은 ‘길로틴 위의 마가렛(Margaret on the Guillotine)’1이었다.

4. Linda McCartney2는 Frankly, Mr Shankly의 피아노를 쳐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5. Oscar Wilde의 인용 “재능이 있는 사람은 빌리고, 천재는 훔친다(Talent borrows, genius steals)”는 Bigmouth Strikes Again 싱글의 끝나는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6. 앨범 시작 부분의  Take Me Back to Dear Old Blighty 클립은 1962년 필름 The L-Shaped Room에서의 Cicley Courtneidge 캐릭터가 부른 것이다.

7. Bigmouth Strikes Again에서 들리는 고음의 백킹 보컬은 Morrissey가 불렀지만 Ann Coates라고 크레딧에 적혔다.

8. Frankly Mr Shankly의 오리지널 레코딩은 테잎의 기술적 결함 때문에 망가졌다. 그래서 다시 녹음되었다. 새 버전은 앨범이 끝날 때까지도 완성되지 않아서 John Porter가 Morrisey의 보컬을 녹음하고 믹싱해서 완성했다.

9. Some Girls Are Bigger Than Others는 브릭스턴 아카데미에서 열린 1986년의 The Smiths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딱 한번 라이브로 불리었다. Morrissey는 또한 가사를 추가했는데 “가게 바닥에 / 달력이 있었다. / 눈처럼 명백한 / (마치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10.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의 신쓰 스트링은 Jonny Marr가 이뮬레이터 샘플러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그리고 크레딧에는 ‘Hated Salford Ensemble’이라고 적었다.

11. 커버는 Morrissey가 디자인했는데 Alain Delon이 주연한 1964년 프랑스 영화 L’ Insoumis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12. The Queen Is Dead에서 “그래서 스폰지와 녹슨 스패너를 가지고 / 그 장소로 뛰쳐 들어가서 / 그녀는 말했지 / “난 알아. 그리고 넌 노래할 수 없어.” / 난 말했지 “그건 아무 것도 아냐. – 넌 내가 피아노 치는 걸 봐야 돼.””란 가사는 1982년 어느날 버킹햄 궁전에 뛰어들어 여왕과 대화를 나눈 Michael Fagan을 참조한 것이다.

13. Some Girls Are Bigger Than Others의 도입부에서 볼륨이 살짝 줄어드는 것은 고의적인 것이었다. Stephen Street는 마치 ‘약간 문이 열렸다 닫히고 다시 열려서 방으로 걸어들어오는 것’과 같이 들리도록 하고 싶었다.

14.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는 1986년 John Peel’s Festive Fifty3 정상을 차지한 두 번째 The Smiths의 곡이었다.

15.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 싱글 커버에서 점프하는 사람은 In Cold Blood를 쓴 젊은 Truman Capote다.

16. Bigmouth Strikes Again에서 “그리고 그녀의 워크맨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라는 부분은 종종 Morrissey에 의해 라이브에서 “그리고 그녀의 아이팟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로 업데이트되기도 한다. Placebo의 커버에서는 워크맨이 ‘디스크맨’으로 보청기가 ‘메가 드라이브’로 바뀌었다.

17. 제이콥스 스튜디오의 제약조건과 곡에서의 독특한 드럼 루프를 만들고자 하는 Stephen Street의 욕망 때문에 The Queen Is Dead 의 스네어와 베이스 드럼은 심발즈와 탐스와는 별도로 녹음되었다.

18. 앨범 타이틀은 미국 작가 Hubert Selby의 1964년 소설 Last Exit To Brooklyn에서 따왔다.

19. The Queen Is Dead이 NME에서 2013년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에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Morrissey와 Johnny Marr가 애정하는 앨범은 사실 Strangeways Here We Come이다.

20.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의 싱글 발매분은 B면 곡 끝에 “ARTY BLOODY FARTY / “IS THAT CLEVER”…JM”이라는 가사가 있다. 이 가사는 B면 곡 Rubber Ring에서 들을 수 있는데 JM은 Johnny Marr를 의미한다.

21.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는 The Smiths 싱글 중 최초로 프로모션용 비디오를 만든 노래다.

22. Irvine Welsh의 영향력 있는 소설 Trainspotting의 한 챕터는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에서 따서 지었다.

23. The Bigmouth Strikes Again 싱글 릴리스에는 James Dean의 사진이 있다.

24.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의 릴리스 버전은 원래 데모로 녹음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좋아 그대로 쓴 것이다.

25. 원래 Kirsty MacColl이 Bigmouth Strikes Again의 백킹 보컬을 소화했지만 Johnny Marr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최종 믹스에서 빠지고 Morrissey의 고음 백킹 보컬로 교체되었다.

앨범 소개 보기

  1. 이게 아쉬웠는지 Morrissey는 같은 이름의 노래를 발표한다 : 역자주
  2. Paul McCartney의 아내이기도 했던 가수 : 역자주
  3. BBC 래디오1 쇼에서 청취자들의 투표로 매년 뽑는 가장 인기 있는 50곡의 싱글 차트. 1986년 차트 보기. : 역자주

Johnny Marr의 새 앨범 소식

현재 The Smiths의 재결합에 관한 최신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은 가라앉고 있다. Johnny Marr가 – 전문가적인 타이밍으로 – 그의 솔로 데뷔 앨범 The Messenger를 발표하는 완벽한 타이밍으로 잡기로 결정했다.

1987년 The Smiths와 결별하면서 The The, Modest Mouse, The Cribs 와 함께 연주하면서( Electronic이나 Johnny Marr and the Healers와 같은 새로운 밴드들도 결성하면서) Marr는 그만의 새로운 것을 시작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2005년 미국으로 옮긴 이후, Marr는 베를린과 맨체스터에서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 유럽을 여행했고, 이 여행으로 감정이 고양되어 앨범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앨범의 아이디어는 유럽에서의 나의 경험과 성장에 관한 것이다.” 그의 설명이다. “당신이 당신의 사는 곳에서 멀어지면 그것에 대해 쓸 것을 강요받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게 향수병이거나 혹은 보다 객관적이 되거나 그런 이유에 관계없이.”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윤기있는 기타 러쉬, 에코가 실린 드럼, 바로 느낄 수 있는 캐치함, 그리고 층진 코러스가 특징인 The Right Thing Right다. 또한 아마도 Johnny Marr가 실제로 “우후”를 연발하는 모습이 유일하게 녹음된 순간일 것이다. 뭘 더 바래?

• The Messenger는 워너뮤직을 통해 2월 25일 발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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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Johnny Marr “이 정부가 물러나면, 밴드를 재결성하겠다.”

2월 29일 열린 NME Awards에서 The Smiths를 재결성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한 Johnny Marr의 발언이다.

이번 주에 재결성하진 않겠다. 아마도 정부가 물러나면. 만약 이 정부가 물러나면, 밴드를 재결성하겠다. 어때? 공정한 거래다. 그렇지 않아? 나라는 더 좋아질 거고. 그렇지? 이 연립정부가 물러나면 하겠다.
We won’t be reforming this week. Maybe if the government stepped down. If this government stepped down, I’ll reform the band. How’s that? That’s a fair trade, isn’t it? I think the country would be better off, don’t you? I’ll do it if the coalition steps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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