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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켜는 고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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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발표된 애니메이션 <첼로 켜는 고슈>를 보다 심도 깊게 즐기기 위해서는 원작자인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베토벤 교향곡 6번에 대한 사전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미야자와 겐지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교육자이자 소설가다. 하지만 그보다는 부유한 집안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군국주의로 치닫던 시대적 조류를 거부하고 농촌에 정착하여 새로운 농사법을 연구하는 등 농촌에서의 삶의 질 개선에 헌신한 농부이자 개혁가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바로 주인공 고슈가 첼로 연주자임에도 그는 농촌에서의 조용한 삶을 즐기는 독신자였다는 점이 겐지의 삶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흔히 “전원(田園)”으로 알려진 베토벤 교향곡 6번은 이 애니메이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음악이다. 어느 시골에서 예정된 연주경연에 참가할 교향악단이 연주할 음악이 바로 전원생활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베토벤 교향곡 6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슈는 이 악단에서 실력이 쳐져 구박을 당하는 첼리스트다. 그런 고슈의 구원자는 바로 자연이다. 고양이, 쥐, 너구리 등이 밤마다 나타나 고슈의 연주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은근슬쩍 부추기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고슈에게 있어 자연은 삶의 터이자 예술에 대한 영감이자 그 조련사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겐지의 자연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63분의 짧은 상영시간에 간단한 플롯이지만 겐지의 소박한 삶에 대한 애정과 베토벤 교향곡 6번이 화학적으로 융합하며 흥겨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소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80년대 저패니메이션

80년대 저패니메이션, 그 중심과 주변

1980-1989 저패니메이션, 만화와 텔레비전과 영화의 삼위일체

산업이자 상품으로서의 저패니메이션에 대해 수직적으로 돌아보기, 80년데애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주변 관련 산업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그런 일본 내에서의 역량 축적을 바탕으로 세계에 수출되기 시작한 저패니메이션은 오늘날 세계어가 될 수 있었다.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과 관련 산업의 변화/발전에 관한 일지.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킨
<우주전함 야마모토>
80년대 전야 1978년 마츠모토 레이지 감독의 <우주전함 야마모토.사랑의 전사들>이 완성되었다. 이 영화는 입장료 수익 20억 1천만엔 이라는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일본영화 산업에서 애니메이션은 10년간 계속되어온 불황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처럼 보였다. 76년에는 8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개봉되었고. 그 이듬해인 77년에는 그 두배에 가까운 14편이 개봉되었다. 이후 매년 평균 30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개봉되었다.

1980년 도쿄무비신사에서 프랑스 DIC와 합작으로 「율리시즈31」을 만들어 프랑스에서 방영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LA에서는 일본서적 전문점 ‘BOOKS NIPPON’이 오픈되었다. 이 서점에서는 책 뿐만 아니라 만화책과 비디오도 소개되었다. 미국에서는 웨스트 코스트를 중심으로 ‘저패니메이션 오타쿠’ 들이 탄생하였다.

1981년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가 토쿄무비신사와 합작으로 「명탐정 홈즈」(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제작이 개시되었다.일본 순정영화의 거장 야마다 오지가 일본 스탭과 중국 텐진시 공예미술 설계원과의 합작으로 중일 합작 아니메 <슘마오 이야기 타오타오>를 완성하였다.

1982년 텔레비전에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를 방영하였다. 홍콩, 대만, 태국에서 일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이 방송되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유럽에서 저패니메이션 붐이 불기 시작하였다.

1983년 <환마대전>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였다. 텔레비젼에서 「기갑창세기 모스피다」와 「아공대작전 스랑그루」. 「미래경찰 우라시맨」이 방영되어 ‘아니메 오타쿠’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을 거둔
미야자키의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19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등장하였다. 미야자키의 이 애니메이션은 흥행에서도 크게 성곡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다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서 그 해 일본 비평가 집계 7위에 올랐다(1위는 이타미 주조의 <장례식>). <초시공요새 마크로스>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되었다. 그 후 ‘마크로스’가 시리즈화되면서 애니메이션 ‘원본’이 영화, 비디오, 텔레비전, 컴퓨터 게임으로 다양하게 상품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85년 애니메이션이 OVA(오리지날 비디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메가존 23」이 저패니메이션업계 전체에 새로운 도전이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저패니메이션을 받아들인 것은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저패니메이션 전문지 「야마투 YAMATU」가 간행되기 시작하였으며. 밀라노에는 저패니메이션 관련자료를 취급하는 전문점이 등장 하였다. 미국에서「초시공요새 마크로스」와 「기갑창세기 모스피다」.「초시공 기사단 사잔크로스」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어 커다란 화제를 불러모았다.. 

1986년 <천공의 성 라퓨타>가 완성되었다. 미야자키는 이 에니메이션으로 흥행 뿐만 아니라 여전히 비평가들로부터도 사랑을 받았다. 그해 일본 비평가 집계 7위에 올랐다(1위는 구마이 케이의 <바다와 독약>). 또한 <붉은 안경>이 등장하였다. OVA로 완성된 「장귀병 MD 가이스트」,「메가존 23파트2 비밀이.에.요」, 「그레이 디지틀 타겟」이 화제작이 되었다.이 해 일본에 <에이리언2>가 등장하였는데, 저패니메이션 ‘오타쿠’ 사이에서는 ‘<건담>을 모방하였다’ 고 크게 화제가 되었다. 제임스 카메론은 자신이 저패니메이션 팬이라고 대답하면서 부분적인 영향을 시인하였다. 그러나 <에이리언 2>는 또한 이후 저패니메이션의 하드고어와 하드코어 분야의 원형이 되었다.

1987년 <요수도시>가 등장하여 하드고어와 하드코어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하나의 완성을 이루었다. 그리고 <오네아미스의 날개 왕립우주군>이 완성되었다 비디오 아니메 OVA로 「로보트 카니발」.「블랙 매직 M-66」.「트와이라이트 Q 미궁사건 파일 538」,「버블검 크라이시스」가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가 하드고어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일본 사회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이후 하드고어 저패니메이션의 이미지를 전세계에 알린 ‘결정판’이 되었다. 이 해 6월 홍콩에서 <천공의 성 라퓨타>가 개봉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홍콩은 저패니메이션의 아시가 교두보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계간 잡지 「아니그마」가 창간되어 미국 저패니메이션 오타쿠들의 컬트잡지가 되었다.

제1기 건담의 완결
<기동전사 건담-역습의 샤아>
1988년 저패니메이션의 역사에서 88년은 기념비적인 해가 될 것이다. 이 해에<이웃의 토토로>와 <아키라>, 그리고 <기동전사 건담 – 역습의 샤아>가 모두 개봉되었다. <이웃의 토토로>는 그 해 일본 비평가 집계 1위를 하였으며, 동시에 흥행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아키라>는 일본에서 보다는 서방세계에서 크게 평가 받았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엔고’ 경제로 인하여 저패니메이션은 해외에서의 하청작업이라는 형태의 제작 시스템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그 대신 거꾸로 미국과의 합작 에니메이션은 줄어들었다. <아키라>의 만화책이 미국과 유럽에서 ‘컬트 코믹’이 되었으며. 올 칼라의 호화양장본 만화책 『AKIRA』는 일본으로 역수입되었다. 뒤이어 <아키라>가 전세계에 개봉하였고. 사이버 저패니메이션의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키라>는 수많은 국제 환타스틱 영화제에 초대되었다.

토리야마 원작의
<드래곤볼 시리즈>
1989년 <마녀 우편배달부>가 개봉되었다.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반 미야자키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이 작품은 비평가 집계 5위에 올랐다(1위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검은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가 등장하여 저패니메이션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또한 <비너스 전기>와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가 완성되었다. OVA로는 2부작으로 구성된「미궁 이야기」가 철학적 테마와 사회 비판적인 주제의식으로 오토모 카츠히로의 새로운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었다. 약 10년 전만 해도 일본영화 총제작편수 중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율은 2.2퍼센트였으나 이 해의 집계로는 무려 20.1퍼센트를 기록함으로써 애니메이션이 일본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실감나게 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어린이 코믹 잡지 「PIF」에서 인기투표로 역대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선정했는데,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부문에 「드래곤 볼」이 선정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이 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의 절반이 저패니메이션 이었다. 미국의 PC통신 네트워크에 C&A(Comics &Anima Forum)사이트 하에 저패니메이션 포럼이 개설되었고, 가장 인기있는 사이트 중의 하나가 되었다.

출처불명

아키라, AKIRA(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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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Tokyo Akira” by https://github.com/prideout/effects-salad. Licensed under Wikipedia.

원작자 오토모가츠히로가 작품의 독립성을 위하여 별도의 위원회(일명 “아키라 위원회”)까지 구성하여 제작한 이 영화는 원작의 인기에 못 미치는 일본의 흥행성적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는 저패니메이션이라는 신천지를 소개한 컬트 영상이 되어 일본으로 금의환향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장장 12권에 달하는 장편만화 원작을 120여 분에 담아낸 탓에 영화는 마치 만화속의 인물들에게 “시간이 없으니 어서들 부지런히 연기해주세요”라고 몰아붙이는 느낌이다. 요즘같아서는 당연히 ‘반지의 전쟁’처럼 3부작 쯤으로 늘였겠지.

아키라라는 상상초월의 절대존재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초능력자들의 대결을 중심으로 카네다와 K 의 모험과 로맨스가 3차 대전이후 재건된 네오도쿄에서 펼쳐진다. 냉정하다 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웅장한 화면 – 네오도쿄의 건물들은 만화에서보다 영화에서 더 미래주의적으로 그려져 있다 – 이 이전의 저패니메이션과 차별화되어 내용에 걸맞는 형식미를 뽐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앞서 말했듯이 짧은 러닝타임 – 원작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 으로 인해 사건의 설명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각 캐릭터간의 갈등과 대립이 생뚱맞은 측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데츠오와 다른 초능력자들 간의 대립의 이유, 카네다가 데츠오를 죽이려는 이유, 부패한 정치인 네즈와 혁명가 류가 함께 일한 이유 등이 영화에서는 모호하고 – 나같이 머리나쁜 사람은 원작 만화를 읽어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 – 결정적으로 원작에서 19호로 불리며 극의 큰 축을 담당했던 신흥종교의 교주는 어이없게도 사이비 교리를 외치다가 데츠오가 파괴한 다리에 떨어져 죽는 식의 엑스트라로 전락하고 만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러한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키라는 저패니메이션을 뛰어넘어 사이버펑크라는 SF의 하위장르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걸작임에는 틀림없다. 원작자의 과학문명에 대한 비관적 입장이 형상화된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디스토피아였고 이는 당시 몇몇 걸출한 SF 등과 함께 훗날의 SF 의 경향을 주도하는 데에 한 몫 담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문명비판의 메시지와 함께 추축국이었던 일본의 패배와 전후 고속성장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피로감을 나타낸 작품이기도 하다. 좌익이 되었건 우익이 되었건 일본의 전후세대는 빠르게 변화하는 문명 속에서 가치관의 혼란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느꼈고 그러한 혼란은 좌우익 모두에게 무정부주의, 염세주의적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러한 열망을 네오도쿄의 폭파와 미지의 생명 탄생이라는 사건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설국열차(코믹스)

“오랜 냉전의 끝에 지구가 얼어붙는다. 어리석은 인류가 기후 무기를 이용해 지구를 영하 85도의 얼음 행성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영원히 지구 위를 돌 수 있도록 만들어진 1001량의 초호화판 설국 열차에 탑승하는 것이다. 황금칸으로부터 꼬리칸까지 모든 객차는 계급에 따라 나누어져 있으며, 채소와 육류를 기를 수 있는 자급자족 차량까지 구비되어 있다. 설국열차는 지구의 축소판이다. 모든 것은 권력층의 독재에 의해 관리되며, 꼬리칸의 일반인들은 더러운 환경에서 고통받으며 죽어가고, 황금칸은 자포자기의 퇴폐와 향락에 휩싸여 타락해간다. 장 마르크 로셰트의 유려한 그림체를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는 <설국열차>는 모두 세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판 1권은 <설국열차>, 한국판 2권은 <설국열차: 측량사>와 <설국열차: 횡단>을 모두 담고 있다.”

대략적인 책 소개이다.

열차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예술작품이 의외로 꽤 된다. 열차탈취를 소재로 한 20년대 블록버스터 영화인 버스터키튼 주연의 ‘The General’, 아서힐 감독의 ‘Silver Streak’, 웨스앤더슨 감독의 ‘The Darjeeling Limited(2007)’,  고전이 된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그리고 휴고프라트의 걸작만화 코르트말테제 시리즈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이르기까지……

열차는 다양한 상징으로 활용된다. 액션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공간에서부터, 고향으로 떠나 타지로 가는 인간의 고독감과 두려움의 상징, 흘러가는 삶에 대한 은유, 그리고 남근의 형태를 가진데서 착안된 권력상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다양한 활용 용례에서 공통적으로 끄집어 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열차는 ‘달리고 있다는 것’ 이다. 달리지 않는 열차는 흥미가 없다. 그저 좁고 답답한 기계일 뿐이다. 달리는 기차는 그 속도감과 한정된 공간이 주는 긴장감으로 인해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이 극대화되는 적절한 장치이기 때문에 예술가들로부터 사랑받는 공간이 된 것이다.

‘설국열차’에서의 열차는 제 스스로 달린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기계 스스로 무한궤도를 질주한다. 멸망한 지구를 돌고 있는 이 열차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인간들. 어찌 보면 더 이상의 희망도 없는데 꼬리 칸의 사람들뿐 아니라 황금 칸의 사람들까지도 무슨 이유로 살고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은 이 지구 역시 차갑고 생명체 없는 우주에서 무한궤도로 돌고 있는 또 하나의 설국열차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삶도 그들의 삶만큼이나 부질없고 희망 없는 것 일수도 있다. 어쩌면 – 상당히 믿을 만 할 정도로 – 작가가 의도한 설국열차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 자체일 것이다.

‘설국열차’에서는 계급간의 갈등을 꼬리 칸을 떼어내 버림으로써 해결한다. 상당히 편리한 해결방식이다. 현실의 지배계급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현실은 더욱 복잡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현실에서의 피지배계급은 작품에서처럼 열차 꼬리에 매달려 죽을 날만 기다리는 기생계급이 아니라 지배계급을 위해 노동하는 생산자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설국열차는 꼬리 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열차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화나 무리한 은유가 원작의 품격을 해칠 만큼의 단점은 아니다. 모든 예술작품에서의 추상화와 단순화, 그리고 일반화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단순화로 인한 단점은 특유의 장치설정에서 비롯되는 극적 긴장감으로 무난히 상쇄된다.

아무튼 특유의 유럽적 감성으로 무장한 이 독특한 작품에 대한민국의 봉준호 감독이 눈독을 들이고서는 영화화하려 하고 있고 2010년 쯤이면 그 결과물을 볼 수 있다니 자못 기대가 된다.

VENUS戰記(Venus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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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us Wars” by Derived from a digital capture (photo/scan) of the VHS or DVD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film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regardless.. Licensed under Wikipedia.

야스히코 요시카즈 감독/각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금성이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서 많은 이들이 이주를 하여 살아가고 있는 어느 미래. 이 행성은 이스탈과 아프로디아라는 두 개의 자치구로 나뉘어져 있다. 아프로디아의 수도 이오에서 모터사이클 경기가 있던 어느 날 이스탈은 이오를 침략하여 하루 만에 아프로디아를 점령하고 만다. 반항기 많은 모터사이클 선수 히로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이스탈에 저항하고 우연한 기회에 저항군에 합류하게 된다. 스산한 이미지의 금성이 두텁게 묘사되고 있고 화면구성이 박진감 넘친다.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한 편.

Corto Maltese : La cour secrete des Arcanes

이유는 잘 모르겠다. 원제를 굳이 번역하면 ‘비밀의 정원’ 인데 실제 내용은 코르트 말테제의 다른 에피소드 ‘시베리아’이다.(내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여하튼 – 내가 틀렸으면 글을 나중에 수정할 일이고 – 이 작품은 우고 프라트의 유명한 만화 ‘코르트 말테제(Corto Maltese)’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를 2002년 영화화한 작품이다. 짜르의 황금을 실은 채 시베리아 철도를 오가는 열차를 탈취하기 위해 온갖 정치세력들이 모여들고 코르트 말테제 역시 중국의 한 정치집단 홍등과 함께 그 모험에 합류한다. 그의 오랜 친구 라스푸틴, 그리고 신비한 동양여인 상하이 리가 이 모험의 축을 이루고 시대착오적인 군벌지도자 웅게른 장군, 미스테리한 세미노바 공작부인 등이 비중 있는 조연을 꿰차고 있다. 주요군벌마다 잔뜩 무장한 기차를 몰며 전투를 벌인다는 박진감 있는 스토리가 큰 매력인데 우주선을 몰며 우주전쟁을 벌인다는 버전으로 만들어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다른 에피소드처럼 이번에도 역시 황금은 코르트의 차지가 되지 않지만 코르트는 언제나처럼 (약간은 유치한) 로맨스를 가슴에 간직한 채 또 다시 먼 길을 떠난다(상황설정이 그지없이 민망하지만 코르트에게는 그럴싸하게 어울린다). 음악도 멋있고 영상도 일품이다.

코르트 말테제 : 사마르칸트의 황금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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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to Maltese à Grandvaux (version)” di Flickr user Vasile Cotovanu (vasile23)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orto_Maltese_%C3%A0_Grandvaux.jpg. Con licenza CC BY 2.5 tramite Wikimedia Commons.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위고 프라트(Hugo Pratt)가 창조해낸 코르트 말테제(Corto Maltese) 시리즈는 온갖 사상과 폭력이 어지럽게 나뒹굴던 20세기 초반 유럽과 아시아를 무대로 작가의 알터에고(Alter Ego)인로맨틱한 반항아코르트 말테제의 모험을 다룬, 12편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미테랑 전(前)프랑스 대통령, 움베르토 에코 등 수많은 지성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수준 높은 작품성을 지녔던 이 작품은 땡땡, 잉칼 등의 명작들과 함께 유럽의 대중문화의 자존심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이 프로젝트는 1997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공동작업을 통해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Ellipsanime, RAI Fiction, France Cinema, Neuroplanet 등 유수의 관련업체들이 참가하였고 이 결과 ‘The Ballad Of Salt Sea’, ‘The Celts’, ‘More Romeos More Juliets’, ‘Banana Conga’ 등 총 10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극장판 ‘La Cour Secrete Des Arcanes’는 2002년 9월에 개봉되었으며, 뒤이어 2003년 9월에는 TV시리즈가 방영되었다. 여기 소개하는 ‘The Golden House Of Samarkand’ 역시 이때의 기획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무대는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오스만 제국이 세브르조약으로 인해 소멸되어가는 시점에 터키 민족주의자들과 아르메니아계 볼셰비키의 대립이 극한에 치닫던 중앙아시아이다. 베네치아에서 보물지도를 손에 얻은 말테제는 보물이 숨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마르칸트로 발길을 옮기지만 여정 중에 그와 똑같은 외모를 지닌 잔악한 민족주의자 쉐브케로 오인 받아 이런 저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감옥에 갇혀있던 그의 친구 라스푸틴 – 실존했던 이 기묘한 러시아 신부는 잔악하지만 말테제에겐 가장 친한 친구로 등장한다 – 를 구해 결국 사마르칸트에 도착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묘한 환상이었다.

원작이 워낙 방대한 실제 역사적 사실과 가상의 역사적 사실(?)이 혼재되어 있는지라 – 심지어 원작에는 말테제와 스탈린이 친구로 묘사되기까지 한다 – 애니메이션은 불가피하게 여러 부분을 생략하고 있다. 따라서 이 방대한 스토리를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 원작만화를 통해 보충수업을 해야 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애니메이션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도 깊이 있는 밀도의 화면을 통해 미적 쾌락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얼핏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지만 그와는 또 다른 풍미를 지니고 있다.

험프리 보가드와 체게바라를 섞어놓은 듯한 자유인 코르트 말테제는 견고하게 짜여져있는 조직사회에 얽매여 있는 현대인이라면 한번쯤 꿈꾸고 싶은 삶을 산, 마치 실존했던 인물처럼 구체성을 띤 인물이었다. 때문에 유럽 권에서는 크리스찬 디오르의 향수모델로 채택될 만큼 생생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다. 그래서 그의 모험을 뒤따르다보면 문득 에릭 홉스봄이 묘사했던 치열했던 20세기 초반에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동참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듯이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20세기의 신화와 전설이다.

위고 프라트 소개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

마녀는 누군가의 이름을 바꿔서 그를 지배한다. 우리가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호명하는 행위는 그 사물을 정의하는 가장 기본적인 시작단계이다. 이름 모를 새나 이름 모를 꽃에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우리는 그 새나 그 꽃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또는 그것들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붙여진 그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그것들을 우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명확한 의지표현이다.

치이로라는 이름이 과분하다며 센으로 이름을 바꿔버린 마녀 유바바의 행동은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인 지배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센은 부모님이 지어주었을 자신의 본명을 계속 기억함으로써 자신을 노예로 부리고 부모님을 돼지로 둔갑시킨 유바바의 지배에 저항한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 준 하쿠의 본명을 알려줌으로써 그의 해방을 도모하기도 한다.

<앨리스의 이상한 모험>과 <오즈의 마법사>의 일본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히야오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삿날 길을 잘못 들어버리는 바람에 겪게 되는 정령(精靈)들의 목욕탕에서의 한바탕 소동은 히야오가 이전부터 관심을 가져오던 주제, 즉 어린 소녀의 성장기와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가 적절히 결합된 한편의 판타지다. 버블경제의 몰락으로 쇠락해버린 버려진 유원지라는 공간의 설정이 흥미롭다. 다만 개인적으로 컴퓨터그래픽과 수작업으로 그려진 그림간의 미스매치가 다소 눈에 거슬린다.

人狼(인랑;Jin-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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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Roh-The-Wolf-Brigade”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movieposterdb.com/poster/567d14c5. Licensed under Wikipedia.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의 감독 오시이 마로루가 기획하고 각본을 쓰고 ‘아키라’, ‘공각기동대’의 캐릭터를 담당한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감독한 1998년 작. 감독의 첫 연출작으로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 영화제, 캐나다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전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한 일본사회에서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자치경, 수도경, 공안부라는 일종의 가상의 공안/첩보 조직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암투를 통해 조직논리와 인간성의 상실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공각기동대나 아키라를 연상시키는 리얼리즘적인 터치와 입체적인 시점 등을 통해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그림으로 표현된 극영화인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며 이러한 표현형식은 자못 심각한 작품의 주제와 잘 매치된다. 또한 ‘빨간 두건 소녀’의 동화를 다중적인 메타포로 활용하여 자칫 빤해 보이는 조직 내 암투의 단선구조를 보완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한계로는 인간병기로 규정 지워진 특기대의 후세가 가지는 심적 갈등에 대한 묘사가 심도 깊지 못한 반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체력안배에 실패했다는 느낌이고, 보다 근본적으로 그러한 주제는 굳이 일본의 전후 혼란상에 빗대지 않더라도 로보캅 등 허다한 SF 를 통해 이미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주제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Yellow Subma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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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bs” by United Press International (UPI Tele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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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프레슬리는 미끈하게 잘 빠진 외모덕에 록앤롤의 황제 역할뿐 아니라 영화에서의 감미로운 남자주인공 역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동급의 영국 록앤롤의 황제격인 비틀즈는 그런 로맨틱한 영화하고는 멤버수에 있어서나 스타일에 있어서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공연여행을 소재로 한 좌충우돌 코미디 A Hard Day’s Night 같은 독특한 형식의 영화들을 찍기도 했고 뒤에 몬티파이튼 팀의 일원을 통해 The Rutles 라는 코미디로 재해석되기도 했다. 이 영화 Yellow Submarine 도 분명히 비틀즈 영화이다. 제목도 그들의 노래제목에서 따왔을 뿐 아니라 그들이 출연한다. 다만 직접 출연하는 게 아니라 만화 캐릭터로……. 오늘날 미국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유명인들에게 캐릭터의 목소리를 맡기기도 하고 아예 캐릭터의 스타일 설정에서부터 그들을 염두에 두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68년만 하더라도 그리 흔한 시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여하튼 페퍼랜드를 차지하려는 블루미니의 음모에 맞서 싸우는 비틀즈의 활약상을 그린 이 애니메이션은 사이키델릭한 화면과 영국식 유머가 적절한 비율로 배합된 수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