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저패니메이션

80년대 저패니메이션, 그 중심과 주변

1980-1989 저패니메이션, 만화와 텔레비전과 영화의 삼위일체

산업이자 상품으로서의 저패니메이션에 대해 수직적으로 돌아보기, 80년데애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주변 관련 산업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그런 일본 내에서의 역량 축적을 바탕으로 세계에 수출되기 시작한 저패니메이션은 오늘날 세계어가 될 수 있었다.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과 관련 산업의 변화/발전에 관한 일지.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킨
<우주전함 야마모토>
80년대 전야 1978년 마츠모토 레이지 감독의 <우주전함 야마모토.사랑의 전사들>이 완성되었다. 이 영화는 입장료 수익 20억 1천만엔 이라는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일본영화 산업에서 애니메이션은 10년간 계속되어온 불황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처럼 보였다. 76년에는 8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개봉되었고. 그 이듬해인 77년에는 그 두배에 가까운 14편이 개봉되었다. 이후 매년 평균 30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개봉되었다.

1980년 도쿄무비신사에서 프랑스 DIC와 합작으로 「율리시즈31」을 만들어 프랑스에서 방영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LA에서는 일본서적 전문점 ‘BOOKS NIPPON’이 오픈되었다. 이 서점에서는 책 뿐만 아니라 만화책과 비디오도 소개되었다. 미국에서는 웨스트 코스트를 중심으로 ‘저패니메이션 오타쿠’ 들이 탄생하였다.

1981년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가 토쿄무비신사와 합작으로 「명탐정 홈즈」(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제작이 개시되었다.일본 순정영화의 거장 야마다 오지가 일본 스탭과 중국 텐진시 공예미술 설계원과의 합작으로 중일 합작 아니메 <슘마오 이야기 타오타오>를 완성하였다.

1982년 텔레비전에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를 방영하였다. 홍콩, 대만, 태국에서 일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이 방송되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유럽에서 저패니메이션 붐이 불기 시작하였다.

1983년 <환마대전>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였다. 텔레비젼에서 「기갑창세기 모스피다」와 「아공대작전 스랑그루」. 「미래경찰 우라시맨」이 방영되어 ‘아니메 오타쿠’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을 거둔
미야자키의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19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등장하였다. 미야자키의 이 애니메이션은 흥행에서도 크게 성곡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다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서 그 해 일본 비평가 집계 7위에 올랐다(1위는 이타미 주조의 <장례식>). <초시공요새 마크로스>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되었다. 그 후 ‘마크로스’가 시리즈화되면서 애니메이션 ‘원본’이 영화, 비디오, 텔레비전, 컴퓨터 게임으로 다양하게 상품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85년 애니메이션이 OVA(오리지날 비디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메가존 23」이 저패니메이션업계 전체에 새로운 도전이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저패니메이션을 받아들인 것은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저패니메이션 전문지 「야마투 YAMATU」가 간행되기 시작하였으며. 밀라노에는 저패니메이션 관련자료를 취급하는 전문점이 등장 하였다. 미국에서「초시공요새 마크로스」와 「기갑창세기 모스피다」.「초시공 기사단 사잔크로스」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어 커다란 화제를 불러모았다.. 

1986년 <천공의 성 라퓨타>가 완성되었다. 미야자키는 이 에니메이션으로 흥행 뿐만 아니라 여전히 비평가들로부터도 사랑을 받았다. 그해 일본 비평가 집계 7위에 올랐다(1위는 구마이 케이의 <바다와 독약>). 또한 <붉은 안경>이 등장하였다. OVA로 완성된 「장귀병 MD 가이스트」,「메가존 23파트2 비밀이.에.요」, 「그레이 디지틀 타겟」이 화제작이 되었다.이 해 일본에 <에이리언2>가 등장하였는데, 저패니메이션 ‘오타쿠’ 사이에서는 ‘<건담>을 모방하였다’ 고 크게 화제가 되었다. 제임스 카메론은 자신이 저패니메이션 팬이라고 대답하면서 부분적인 영향을 시인하였다. 그러나 <에이리언 2>는 또한 이후 저패니메이션의 하드고어와 하드코어 분야의 원형이 되었다.

1987년 <요수도시>가 등장하여 하드고어와 하드코어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하나의 완성을 이루었다. 그리고 <오네아미스의 날개 왕립우주군>이 완성되었다 비디오 아니메 OVA로 「로보트 카니발」.「블랙 매직 M-66」.「트와이라이트 Q 미궁사건 파일 538」,「버블검 크라이시스」가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가 하드고어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일본 사회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이후 하드고어 저패니메이션의 이미지를 전세계에 알린 ‘결정판’이 되었다. 이 해 6월 홍콩에서 <천공의 성 라퓨타>가 개봉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홍콩은 저패니메이션의 아시가 교두보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계간 잡지 「아니그마」가 창간되어 미국 저패니메이션 오타쿠들의 컬트잡지가 되었다.

제1기 건담의 완결
<기동전사 건담-역습의 샤아>
1988년 저패니메이션의 역사에서 88년은 기념비적인 해가 될 것이다. 이 해에<이웃의 토토로>와 <아키라>, 그리고 <기동전사 건담 – 역습의 샤아>가 모두 개봉되었다. <이웃의 토토로>는 그 해 일본 비평가 집계 1위를 하였으며, 동시에 흥행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아키라>는 일본에서 보다는 서방세계에서 크게 평가 받았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엔고’ 경제로 인하여 저패니메이션은 해외에서의 하청작업이라는 형태의 제작 시스템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그 대신 거꾸로 미국과의 합작 에니메이션은 줄어들었다. <아키라>의 만화책이 미국과 유럽에서 ‘컬트 코믹’이 되었으며. 올 칼라의 호화양장본 만화책 『AKIRA』는 일본으로 역수입되었다. 뒤이어 <아키라>가 전세계에 개봉하였고. 사이버 저패니메이션의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키라>는 수많은 국제 환타스틱 영화제에 초대되었다.

토리야마 원작의
<드래곤볼 시리즈>
1989년 <마녀 우편배달부>가 개봉되었다.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반 미야자키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이 작품은 비평가 집계 5위에 올랐다(1위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검은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가 등장하여 저패니메이션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또한 <비너스 전기>와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가 완성되었다. OVA로는 2부작으로 구성된「미궁 이야기」가 철학적 테마와 사회 비판적인 주제의식으로 오토모 카츠히로의 새로운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었다. 약 10년 전만 해도 일본영화 총제작편수 중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율은 2.2퍼센트였으나 이 해의 집계로는 무려 20.1퍼센트를 기록함으로써 애니메이션이 일본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실감나게 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어린이 코믹 잡지 「PIF」에서 인기투표로 역대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선정했는데,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부문에 「드래곤 볼」이 선정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이 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의 절반이 저패니메이션 이었다. 미국의 PC통신 네트워크에 C&A(Comics &Anima Forum)사이트 하에 저패니메이션 포럼이 개설되었고, 가장 인기있는 사이트 중의 하나가 되었다.

출처불명

80년대 저패니메이션”에 대한 2개의 생각

  1. 니케

    로봇물을 좋아해서 꽤 많이 본 편인데, 나름 재미있게 본 건 건담보다는 단쿠가 & 패트레이버에요.
    로봇 합체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왜 단쿠가를 열심히 봤는지 (심지어는 다이나믹 콩콩 미니백과까지 장만해서 소장하고 있었죠)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네요.
    패트레이버는 특히 직장인의 애환이 담겨있어서 커서는 감정이입을 하면서 봤더랬죠.
    그러구보니 하드코어나 하드고어도 좀 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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