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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ked Eyes – Fuel for the Fire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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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ked Eyes의 최대 히트곡 Always Something There to Remind Me는 사실 리메이크다. 작곡은 Burt Bacharach와 Hal David가 했고 Sandie Shaw가 1964년 싱글로 발매하였다. 여하튼 그러한 고색창연한 노래를 현대적 신쓰 연주로 재탄생시킨 Naked Eyes에게도 박수를 보낼 일이다. 각설하고 Fuel for the Fire는 이 신쓰 듀오가 Always Something There to Remind Me가 담긴 성공적이었던 데뷔 앨범 Burning Bridges에 이어 1년 만에 내놓은 스튜디오 앨범이다. 1집에 이어 이 앨범에도 캐치한 멜로디의 곡들로 채워져 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곡은 역시 앨범 첫 곡으로 사용한 (What) In the Name of Love다. 이 곡은 빌보드 핫100차트에 39위까지 올랐다. 앨범은 빌보드 탑200 차트에 최고 83위에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은 그들의 데뷔앨범에서의 성적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앨범 커버마저 너무 음침해)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던 Arthur Baker는 듀오를 위해 싱글 Sacrifice의 리믹스 버전도 만들어줬으나, 레코드 회사에서는 후속 싱글을 발매해주지 않았다. 듀오는 이어지는 이런 푸대접 탓에 결국 밴드를 해산하고 말았다.

아래의 트랙리스트는 Cherry Records에서 일곱 곡의 보너스트랙을 함께 담아 CD로 발매한 앨범의 트랙리스트다

1. (WHAT) IN THE NAME OF LOVE
2. NEW HEARTS
3. SACRIFICE
4. EYES OF A CHILD
5. ONCE IS ENOUGH
6. NO FLOWERS PLEASE
7. ANSWERING SERVICE
8. ME I SEE IN YOU
9. FLYING SOLO
10. FLAG OF CONVENIENCE BONUS TRACKS

11. (WHAT) IN THE NAME OF LOVE (EXTENDED VERSION)
12. SACRIFICE (ARTHUR BAKER 12″ VERSION)
13. IN THE NAME OF LOVE (BYRNE & FISHER MIX)
14. TWO HEADS TOGETHER
15. FUEL FOR THE FIRE (DEMO)
16. BABES IN ARMOUR (DEMO)
17. SACRIFICE (DEMO)

Ghostbu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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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ostbusters cover” by Film at a Glance. Licensed under Wikipedia.

“Ghostbusters“는 Ray Parker, Jr.가 1984년 Bill Murray 주연의 동명의 영화 주제가용으로 녹음한 노래다. 1984년 6월 16일 빌보드 핫100 차트 68위로 데뷔한 이 곡은 같은 해 8월 11일 차트 정상에 올라 3주간 머물렀다. 또한 영국 싱글 차트에는 같은 해 9월 16일 정상에 올라 역시 3주간 머물렀다. 이 곡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뮤직 오리지널송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Stevie Wonder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에게 양보해야 했다.

Parker에 따르면 영화의 주제가를 만들어야 하는 프로듀서들이 그에게 협조를 의뢰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영화의 타이틀이 가사에 알맞게 녹아들어가게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Parker는 심야 TV방송에서 어느 지방의 서비스를 위한 싸구려 광고를 보고 영화에서도 가상의 비즈니스를 위해 비슷한 광고를 한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곡을 일종의 가짜 광고 음악용이라 생각하고 만들게 된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뮤직비디오 역시 싸구려 광고의 분위기가 나는 코믹호러 풍의 비디오다.

한편 Huey Lewis는 이 곡이 자신의 “I Want a New Drug”과 유사하다며 Parker를 고소했고(노래 들어보기) 이 분쟁은 법정 밖에서 해결됐다. 또한 Lindsey Buckingham은 한 인터뷰에서 애초 자신이 이전에 National Lampoon’s Vacation이라는 영화를 위해 만든 “Holiday Road”의 성공 덕분에 Ghostbusters의 음악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사운드트랙용 뮤지션이라는 딱지가 싫어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한편 개봉한지 30주년이 된 올해 여름 Ghostbusters가 재개봉될 예정이다.

뮤직비디오
Ghostbusters Vs. I Want a New Drug

Vi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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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sons-victory”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the record label..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1984년 6월 22일 The Jacksons의 열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Victory가 에픽 레코드사를 통해서 출시되었다. Michael Jackson, Jackie Jackson, Marlon Jackson, Randy Jackson, Tito Jackson, David Paich, 그리고 Steve Porcaro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83년 11월 11일부터 1984년 5월 7일까지 뉴욕, LA 등 다양한 도시의 다양한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1983년 봄의 “모타운 25” TV 스페셜에서의 The Jacksons의 재결합 공연 이후 그룹은 3년 전에 발표한 Triumph 이후의 새 앨범을 내놓을 것을 결심했다. 이 앨범은 여섯 명의 잭슨 형제가 모두 참여한 유일한 앨범이 되었다. 또한 Michael Jackson이 리드 싱어로 전체적으로 참여한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Jacksons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형제들 사이에서의 경쟁심 때문에 그룹으로써의 앨범이라기보다는 각 멤버들의 솔로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는 앨범의 성경이 강했다. 다만 Jermaine Jackson은 마이클과 듀엣을 하기도 했고, 마이클은 다른 세 곡에서 백그라운드 보컬을 맡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는 Mick Jagger가 함께 노래한 “State Of Shock”이 팝 차트 3위 R&B 차트 4위에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이외에도 “Torture” (#17 Pop, #12 R&B)와 “Body” (#47 Pop, #39 R&B)등이 인기를 얻었다. 앨범은 빌보드 탑200 차트에서 4위까지 올랐고 R&B 앨범 차트에서는 2위까지 올랐다. 앨범의 홍보를 위해서 일명 Victory Tour도 진행되었다. 순회공연이 끝난 후에 Michael과 Marlon은 그룹을 떠난다. 남은 넷은 계속하여 The Jacksons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몇 장의 앨범을 더 냈다.

발매당시 우리나라의 팝음악 잡지 음악세계에서는 특별부록으로 카셋테잎으로 된 이 앨범을 줬다.

Toture 노래 듣기

Purpl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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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purplerain”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amazon.com.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6월 25일 Prince의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Purple Rain”이 발매됐다. Prince가 직접 프로듀스하고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퍼스트애비뉴와 웨어하우스, 뉴욕에 있는 레코드플랜트, 그리고 헐리우드의 선셋사운드 등에서 녹음한 이 앨범은 Prince의 영화 데뷔작 Purple Rain의 사운드트랙의 성격으로 제작된 앨범이다. 또한 Prince & The Revolution이란 이름을 내걸고 낸 첫 앨범이다. 노래의 녹음은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나이트클럽 퍼스트애비뉴에서 라이브 쇼를 가진 1983년 8월 3일부터 시작됐다. 이 공연은 밴드의 기타리스트 Wendy Melvoin 의 데뷔 무대였다. 이 공연에서 “I Would Die 4 U” (#8 Pop, #11 R&B), “Baby I’m A Star”, 그리고 “Purple Rain”이 녹음됐다. 이 녹음은 약간의 사후 재녹음만을 거친 채 최종 앨범에 수록되었다. 영화와 앨범의 서두를 여는 “Let’s Go Crazy” (#1 Pop and R&B)는 Prince의 연습실인 웨어하우스(The Warehouse)에서 녹음됐다. “Take Me With U” (#25 Pop, #40 R&B)는 영화의 여주인공이자 Apollonia 6의 리드싱어 Apollonia Kotero와의 듀엣으로 부른 곡으로 당초 Apollonia 6의 앨범에 수록할 예정이었지만 Prince가 마음을 바꿔 “Purple Rain”에 수록했다. 영화 개봉 4주전에 발매된 앨범은 평론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적이었다. 백밴드 The Revolution과 함께 한 이 앨범은 이전의 원맨밴드의 형식보다 질적으로 더욱 풍부한 음악을 선보였다. 다중적인 레이어로 두터워진 기타 사운드, 얼음 같이 차가운 신디싸이저 이펙트, 드럼머쉰 등 현대적인 악기 응용이 R&B 사운드에 덧입혀졌다. 이 앨범은 빌보드 탑200 차트에서 24주 연속하여 1위에 머물렀고 R&B 앨범 차트에는 19주 연속으로 1위에 머물렀다. 그래미상 시상식에서는 ‘듀오 또는 그룹에 의한 베스트 락보컬 퍼포먼스’를 포함하여 2개의 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상했다. “Purple Rain”은 2011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12년 미의회 도서관에 “현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중요함”의 명목으로 국립 레코딩 등기소에 등재되었다.

Born in the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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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Born1984”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Columbia..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6월 4일 Bruce Springsteen의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 “Born In The USA”가 발매되었다. Jon Landau, Chuck Plotkin, Bruce Springsteen, 그리고 Steve Van Zandt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82년 1월부터 1984년 3월에 걸쳐 뉴욕에 있는 파워스테이션과 힛팩토리(The Hit Factory)에서 녹음되었다. 1982년 발표된 Springsteen의 이전 앨범 “Nebraska”는 평론가의 찬사를 얻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썩 훌륭한 결과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Springsteen은 새 앨범을 준비하면서 음악적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좀 더 많은 청취자 층을 확보해야하는 도전에 직면하였다.

1981년 영화감독 Paul Schrader는 Bruce Springsteen에게 자신의 영화 Born in the U.S.A.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줄 것을 제안했다.1 Springsteen은 대본을 대충 보고 영화 제목으로 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이 노래를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Nebraska”를 만들 당시 벌써 완성했고 당초에는 그 앨범에 수록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앨범의 다른 곡들의 우울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수록곡에서 제외됐다. 비슷한 이유로 이미 완성된 “Cover Me”와 “I’m on Fire” 같은 곡들이 앨범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그 작업들이 모여 “Born In The USA”가 탄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앨범의 수록곡은 이전의 앨범의 수록곡에 비해 더 밝아졌다. 신디싸이저를 통한 어레인지먼트와 팝 친화적인 멜로디가 보강되었다. 가사는 미국인의 꿈을 좇는 보통 미국인의 일상생활에서의 삶을 그리고 있다. 결과는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성공적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Dancing In The Dark” (#2 Pop), “Glory Days” (#5 Pop), “Born In The USA”(#9 Pop) 등을 포함하여 무려 일곱 개의 탑10 싱글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Michael Jackson의 Thriller 그리고 Janet Jackson의 Rhythm Nation 1814와 동일한 기록이다. Bruce Springsteen and the E Street Band는 1984년 6월 29일부터 1985년 10월 2일까지 전 세계 순회공연에 나섰다.

유명한 앨범 커버에는 성조기의 줄무늬 벽을 배경으로 Springsteen이 청바지를 입고 뒤춤에 빨간 캡을 쑤셔 넣고 있는 뒷모습이 실려 있다. 이 빨간 야구 모자는 원래 Springsteen의 친구 Lance Larson의 아버지의 것이었다고 한다. Larson은 아버지의 죽음 후에 그 모자를 Springsteen에게 주었고 Springsteen은 친구의 선친을 기리기 위해 이 앨범 사진을 찍을 때 그 모자를 사용했다. 청바지 차림의 몸매 좋은 Springsteen의 이러한 이미지는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불가피하게 당시의 시대적 조류, 즉 로널드 레이건과 람보로 대표되는 애국주의적 이미지와 겹치게 되었다. “백인 노동자 영웅”

84주간 탑10에 머문 이 앨범은 미국에서만 1천5백만 장 가량 팔려 그해에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고 Springsteen은 이 앨범을 통해 생애 최초로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락보컬 퍼포먼스’ 상을 수상했다. The Village Voice는 비평가를 대상으로 하는 연례 설문조사를 통해 “Born In The USA”를 ‘그해의 베스트 앨범’으로 선정하였다. 롤링스톤은 이 앨범을 ‘The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85위에 올렸다. Slant 매거진은 2012년 이 앨범을 ‘Best album of the 1980s’에서 35위에 선정하였다.

Side one
1. “Born in the U.S.A.” 4:39
2. “Cover Me” 3:27
3. “Darlington County” 4:48
4. “Working on the Highway” 3:11
5. “Downbound Train” 3:35
6. “I’m on Fire” 2:37
Side two
1. “No Surrender” 4:00
2. “Bobby Jean” 3:46
3. “I’m Goin’ Down” 3:29
4. “Glory Days” 4:15
5. “Dancing in the Dark” 4:00
6. “My Hometown” 4:34

  1. 이 영화는 결국 1987년 Michael J. Fox 주연으로 Light of Day라는 이름으로 극장에 개봉되었다.

Tina Turner – Private Da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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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aTurnerPrivateDancer” by http://www.allmusic.com/album/private-dancer-mw0000196120.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5월 29일 Tina Turner의 다섯 번째 솔로 앨범 “Private Dancer”가 발매되었다. John Carter 등 4개의 프로덕션 팀이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유명한 애비로드 스튜디오 이외에도 런던이나 영국의 다른 도시 스튜디오 등 다양한 곳에서 1983년 9월부터 약 7개월에 걸쳐 녹음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Tina Turner는 1976년 Ike Turner와 이혼한 후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경력을 계속 쌓아오던 중이었다. 새 매니저 Roger Davies의 도움으로 캐피톨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Tina는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서면서 앨범도 만들기 전에 버림받을 뻔 했었다. 그러나 운명은 David Bowie가 뉴욕에서 임원들과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바뀌었다.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 David Bowie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 Tina Turner를 보러 갈 예정이에요.”라 말했고 임원들은 The Ritz에서 Tina의 공연을 함께 보았다. 열정적인 공연을 본 그들은 그녀를 버리려는 당초 생각을 바꾸고 즉시 그녀를 스튜디오에 투입했다. Tina는 Al Green의 고전 “Let’s Stay Together”를 커버하기 위해 Heaven 17의 Martyn Ware, Ian Craig Marsh와 함께 작업했다. 이 노래는 R&B 차트 3위, 팝 차트 26위에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 싱글의 성공 덕택에 캐피톨 레코드사는 그녀에게 정식 앨범의 취입을 요구했다. 앨범에는 많은 정상급 뮤지션들이 힘을 보탰는데 이 중에는 Jeff Beck, Wilton Felder, Joe Sample, Dire Straits, The Fixx 등이 있다. “Private Dancer”에서는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What’s Love Got To Do With It”를 비롯하여 다섯 개의 싱글이 연속으로 히트했다. 앨범은 빌보드 R&B 앨범 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문다. 탑200에는 3위까지 올랐다. 1985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는 6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레코드오브더이어’ 등을 포함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2천만 장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Let’s Dance

1983년 4월 14일 David Bowie의 열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Let’s Dance”가 발매되었다. Nile Rodgers와 David Bowie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82년 겨울 뉴욕시에 있는 파워스테이션에서 녹음되었다. Nile Rodgers는 이 앨범을 위해 Chic의 동료였던 Bernard Edwards(베이스), Tony Thompson(드럼) 등의 최고급 수준의 연주자들을 모았다. 특히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블루스 기타리스트 Stevie Ray Vaughn에게 리드 기타를 맡기기도 했다. 앨범은 단 3주 동안에 녹음을 마쳤는데 이 앨범은 Bowie의 앨범 중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앨범이 되었다. 타이틀 곡 “Let’s Dance”는 핫100 싱글 차트 1위에 올랐으며 “China Girl”과 “Modern Love”도 각각 10위와 14위에까지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Bowie는 1983년 이 앨범의 판촉을 위해 “Serious Moonlight World Tour” 라는 이름의 순회공연을 가졌다. 1983년 9월 12일 뱅쿠버에서 열린 공연은 홈비디오로 제작됐는데 그래미상의 “최고의 뮤직비디오”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Wham! / Make It Big

정말 재미있는 사실은 Make It Big이라는 앨범 타이틀이 실제로 이 앨범을 통해 엄청난 성공을 맛본 듀오 Wham!에 대한 주술이나 예언이라도 되는 것 처럼 들린다는 사실이다. 1983년에 발매된 그들의 데뷔앨범 Fantastic!이 미쳐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싸운드, 마치 하드라커같아 보이는 그들의 가죽점퍼 차림의 앨범커버 등이 메이저로의 진입이 아직은 시기상조임이 증명된 작품이라면 본 작품 Make It Big은 1년이라는 시차가 무색할만큼 일취월장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앨범커버에 등장한 듀오의 모습부터가 속된 말로 “촌티를 벗은” 모습이었다. 음악적으로는 보다 급격한 신장세를 나타냈는데 이전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마냥 즐거운 발랄함과 단순한 멜로디에서 벗어나 완급을 조절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타이틀곡 Wake Me Up Before You Go-Go는 전작의 음악스타일과 유사한 작품이었으나 곧바로 이어지는 Everything She Wants는 미드템포에 쏘울적인 분위기로 한껏 멋을 부린 작품으로 그들의 성숙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앨범에서는 위의 두 싱글이외에도 Heartbeat, Freedom, Careless Whisper 등이 크게 히트하여 소위 80년대 컴필레이션에는 빠지지 않은 필청음악이 되었다. 특히 이 앨범에서 George Michael은 뛰어난 작곡실력 등 그의 음악적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Wham!이 단순한 핀업스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였는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두 멤버간의 역할의 비대칭은 듀오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1. Wake Me up Before You Go-Go (Michael) – 3:50
2. Everything She Wants (Michael) – 5:01
3. Heartbeat (Michael) – 4:42
4. Like a Baby (Michael) – 4:12
5. Freedom (Michael) – 5:01
6. If You Were There (Isley/Isley/Jasper) – 3:38
7. Credit Card Baby (Michael) – 5:08
8. Careless Whisper (Michael/Ridgeley) – 6:30

Spandau Ballet / Pa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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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dau Ballet – Parade Coverart” by From Amazon..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우아하고 표준적인 락 앨범이다. 그들의 작품 중에서도 R&B와 재즈의 엣센스를 가장 강하게 도입한 퓨전적 작품이다. 별로 무거운 타악기가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신디사이저의 사용 비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드럼, 퍼커션, 피아노, 그리고 베이스를 내추럴하게 잘 다루면서, 설득력 있는 Tony Hadley 의 보컬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물론 요소요소에는 동성애자 Gary Kemp 의 기타와 Steve Norman 에 의한 강력한 플레이가 배치되고 있어 얄밉게 멋 부린 연출의 넘버. 레코딩만을 위해 스튜디오에 2개월간 두문불출해 완성되었다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진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물론, 8곡 모두가 동성애자 Gary Kemp 의 펜에 의한 넘버. 전작“True” 에서부터 표현하기 시작한 스트레이트하고 한편으로 선율적인 멜로디 라인의 구성은 결국은 Gary Kemp 가 목표로 한 미국적 라이브 감각의 어프로치를 본 작으로 원숙하게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멜로디 지향은 발라드 넘버에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어“I'LL FLY FOR YOU”, “WITH THE PRIDE”, 그리고 앨범을 매듭짓는 “ROUND AND ROUND”의 3곡은 그“TRUE” 이상의 완숙도를 느끼고 다른 5곡에도 곡마다 멜로디를 존중하는 세심한 궁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 자신도 본 작을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듯이 적어도 팬의 10인중 5명은 지금도 애청 반으로서 들 것임에 틀림없다. 그만큼의 자신 있는 작품이기도 해 걸작으로서의 평가가 높은 본 작이 미국 시장을 포함 세계적인 히트에 연결되지 않았다고 하는 멤버의 분노가 당시 계약하고 있던 Chrysalis 레코드로 향해졌다. 프로모션 불충분으로서 소송까지 이어져 수렁화한 것은 아시는 분도 많을 것이다. 그 후 그들은 소니에 이적해 이 실패로부터 회복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인기도 하강선을 더듬어 90년에는 해산에 이르러 버렸다. 긴 것 같고 짧았던 10년이라고 하는 활동 기간 중 5년째라고 하는 가장 빛을 발하고 있었던 시기에 만들어진 본 작 “PARADE”. 찬반양론 있겠지만 그들이 남긴 최고 걸작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여담이지만, LP반은 반접기의 좌우 양면형 사양이 되어 있고 좌우 양면의 센터부에 게재된 멤버의 쇼트가 함부로 칵코와.

[written by ERIRIN 2003.4.10.]

Prince / Purple Rain

프린스는 음악적 능력을 검증 받기도 전부터 상스러운 뮤지션으로 평가절하됐고, 적어도 대중들에게는 혐오감을 주는 가수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 ‘섹스 중독증에 걸리지 않았으면 십중팔구 성적 결핍이 분명하다’란 여론이 지배적이었고, ‘정신 병원 진찰 요망’이란 외지 평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프린스를 얕잡아본 매스컴과 음해 세력들은 모두 ’84년을 기점으로 살며시 프린스의 지지 세력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바로 ’84년을 대변하는 앨범 「Purple Rain」때문이었다. 「Purple Rain」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한 장의 영화 음악 이전에, 고만고만한 음악이 판을 치는 ’80년대 초반을 평정하는 의미를 담은 중량감있는 앨범이 됐다. 마이클 잭슨이 상업적 파급력을 가지고 시대의 영웅 자리를 꿰찼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실력있는 뮤지션의 품귀 현상이 이어지던 팝 음악계의 공황기였다. 프린스는 프로듀서, 송라이팅, 노래, 연주는 물론 영화의 주연까지 맡은「Purple Rain」를 통해 완벽한 천재성을 피력했고, 대규모 사단(레볼루션, 더 타인, 실라 이, 시나 이스턴)을 지휘하며 팝 음악계에 많은 볼거리와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 음악적인 혁신과 파급 효과는 상업적인 성공으로도 이어져 앨범이 24주가 차트 정상에 올랐고, 〈Let’s Go Crazy〉가 2주간, 〈When Doves Cry〉가 5주간 싱글 차트 정상에, 타이틀곡〈Purple Rain〉2위, 〈I Would Die 4 U〉8위, 〈Take Me With You〉25위에 오르는 등 5곡의 싱글 히트곡을 쏟아냈다. 「Purple Rain」의 열기가 아직 수그러들기 전인 ’86년 6월, 프린스는 1년만에 새로운 앨범 「Around The World In A Day」를 발표했고, 또 다시 차트 정상에 올랐다. ’80년대 중반 프린스는 주체할 수 없는 창작열에 불탔고, 세상은 능력있는 그를 원하고 있었다.(이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