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티팝(sophisti-pop)이라는 멋진 장르가 막 꽃을 피우던 1984년 탄생한 앨범이다. 1980년대 초중반 뉴웨이브 시대에서 발전한 팝 음악 하위 장르인 소피스티 팝은 째즈와 쏘울의 요소를 섞은 캐치한 멜로디의 팝사운드, 차분한 연주, 다소 건조한 듯한 보컬 등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한 면에서 이 앨범은 음악, 가수의 외모, 앨범 커버 등등 모든 것이 이른바 ‘세련미 넘치는 부드러운 소피스티 팝’을 지향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소피스티 팝의 원형은 Roxy Music으로 거론되기 때문에1 이 장르의 발전은 예의 영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1984년 즈음에는 차차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등지에서 멋진 소피스티팝 앨범이 생산되던 시기였다. 기억하기로 그 해에 The Blue Nile의 A Walk Across the Rooftops나 Joe Jackson의 Body and Soul 등이 발매되었고, 그다음 해인 1985년에 Double의 Blue나 Prefab Sprout의 Steve McQueen 등 그 장르의 명반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아직은 샤데와 같이 여성 보컬을 전면으로 내세운 소피스티팝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이후 반갑게도 Basia, Swing Out Sister, Everything but the Girl 등 여성 보컬을 무기로 하는 멋진 뮤지션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샤데는 그 두텁고 독특한 음색으로 말미암아 그중에서도 독자적인 위치를 점하였는데, 이 앨범에서는 이미 그런 특색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소피스티 팝은 1980년대 후반 절정을 이루게 된다.
런던의 파워플랜트 스튜디오에서 6주 동안 녹음하여 완성한 이 앨범은 다소 발랄한 신디싸이저 연주보다는 차분한 색소폰과 키보드 연주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주가 다소 허스키한 샤데의 보컬과 환상적인 케미를 이루어 독특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가장 매력적인 트랙은 누가 뭐래도 Smooth Operator고 이후의 트랙들은 그 곡에서 반보 혹은 한보 정도의 차이를 두고 저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The Smiths는 데뷔앨범 The Smiths의 녹음작업을 처음에 런던의 왜핑(Wapping) 지역에 위치한 엘레펀트스튜디오에서 시작했다. 당시의 프로듀서는 소속사 러프트레이드가 선택한, The Teardrop Explodes의 기타리스트였던 트로이 테이트(Troy Tate)였다. 밴드 멤버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가 프로듀싱을 맡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녹음은 뜻대로 잘 진행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는 낙후한 지역인 왜핑에 위치한 열악한 스튜디오의 작업 여건이 한몫했다. 자니마의 회고에 따르면 스튜디오는 지하에 있었고 에어컨도 없는 그 곳에서 찌는 듯한 더위에 기타 튜닝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자니마는 그럭저럭 작업을 해나갔지만, 모리시는 결과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1
그래서 러프트레이드와 밴드는 대안으로 Roxy Music의 2집 For Your Pleasure에서 베이스기타를 담당했었던 존 포터(John Porter)를 선택했다. 모시시가 회고하길 존은 매우 친절하고 이해심이 깊었고 녹음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좋은 지침이 되는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존이 만든 앨범 The Smiths는 The Smiths답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리시의 사견으로 마이크의 드럼 연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벼락과도 같은 음색이었고 앤디의 베이스 연주 역시 “울려 퍼지는 듯이 자신감 있는(pealing swagger) 연주”였는데, 존의 프로듀싱의 결과물은 창백하고(pasty) 얇았기(thin) 때문이었다고 한다.2 프로듀서가 밴드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편, 자니마의 회고에 따르면 모리시와는 다른 의견과 좀 더 깊은 내막이 있었는데 애초에 러프트레이드와 존 포터는 마이크 존스를 다른 드러머로 교체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니와 모리시는 이를 거절했다.3 어쨌든 자니의 의견으로는 존은 풍부한 경험이 있는 실력 있는 뮤지션이었기 때문에 금방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앨범 제작 과정의 모든 요소를 고려해서 밴드 전체의 실력을 함양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4 특히 This Charming Man의 녹음 당시의 결과물에 대해 자니는 존의 실력을 극찬했는데5 모리시의 냉소적인 의견과는 완연하게 다른 의견이었다.
어쨌든 모리시의 불만과 별개로 앨범은 상업적으로는 무척 성공적이었다. 앨범은 당시 영국 차트에서 2위까지 올랐는데, 당시 1위는 Thompson Twins의 Into The Gap이었다. 이 앨범은 Hold Me Now와 Doctor! Doctor! 등이 인기를 얻은, Thompson Twins의 매력적인 뉴웨이브 사운드의 정점을 찍은 앨범이었다. 한편 밴드의 앨범이 1위까지 오르지 못한 이유에 대한 좀더 가슴 아픈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 모리시의 회고에 따르면 러프트레이드의 Richard Boon이 모리시에게 “우리가 1위를 할 수도 있었는데 카셋테잎을 때맞춰 찍어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6 결국 소속사가 차트 진입의 요령은 아는데 그렇게 할 의지가 없었다는 업계의 비밀을 소속사 뮤지션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물론 모리시와 자니는 마이크와 앤디를 신뢰했지만, 그들을 밴드의 창작 활동에 동일한 기여를 하는 동료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리시와 자니는 이 즈음에 이미 밴드 멤버들 사이의 이익 분배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둘의 주장에 따르면 마이크와 앤디에게도 이에 대해 협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인된 문서가 없었고 후에 이는 멤버들 간의 법적 논쟁의 씨앗이 된다. ↩
Some Great Reward1는 Depeche Mode의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으로 1984년 9월 24일 Mute Records 를 통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이 무엇보다도 특별한 이유는, 이 앨범에 DM의 모든 역대 싱글 중 가장 인상적인 곡 중 하나인 People Are People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도 DM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곡이 바로 이 곡이다. 예전에 어떤 글에선가 고인이 된 신해철 씨도 어린 시절 이 곡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어쨌든 그만큼 이 곡을 포함한 DM의 음악은 기존의 다른 락음악과는 다른, 신개념의 “악기”인 샘플러 Synclavier를 전폭적으로 활용한 새로운 음악의 형식과 멜로디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 앨범에는 또 하나의 소중한 곡이 있는데 바로 Somebody. 데이브간(David Gahan) 대신에 마틴고어(Martin Gore)가 부른 이 곡은 DM의 곡들을 통틀어서도 그렇고 팝역사를 통틀어서도 그렇고 가장 아름다운 팝발라드 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명곡이다. 너무 반전(反轉) 없는 지고지순한 가사라는 점이 흠이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에 그게 매력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직장에서 이른바 “원어민” 교사로부터 영어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팝송을 듣고 리스닝을 하는 수업에서 이 곡을 선곡한 적이 있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빼어난 미모의 코리안어메리칸 여자 교사였는데 나중에 회사에서 잘 나가던 한 엘리트 직원과 결혼했다.2
또 하나의 명곡이 Somebody 바로 다음에 나오는데 바로 Master And Servant. 귀의 좌우를 때려주는 리듬감있는 전주와 “Forget all about equality”라는 가사 등이 인상적인 이 곡은 주인과 하인이라는 관계설정이 연인관계에도 적용되는 그런 상황이 그려지는 노래다. 다만, 데이브간은 그런 취지로 생각하긴 했는데 마틴고어와 알란와일더는 단순히 섹스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상하관계에서의 지배에 관한 노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직설적인 내용 때문에 발표 당시 우리나라에서 금지곡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금지곡이든 아니든 어차피 DM의 음반이 우리나라에 라이센스로 발매되는 경우가 희귀했으니 큰 차이는 없었다.
앨범의 커버는 방금 결혼식을 마친 듯 정장과 웨딩드레스를 갖춰 입은 남녀가 커다란 공장으로 보이는 곳에 서있는 사진이 쓰였다. 이들은 Somebody에서의 가사처럼 지고지순한 사랑을 맹세하며 건전하고(?)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이어갈 커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양념으로 Master And Servant처럼 뭔가 익사이팅한 게임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최근 Mad Men이라는 미드를 즐겨보는데 여기에서 주인공 Don Draper 부부가 어쩌면 그런 외줄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는 커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모두가 이상적인 남편감이라 생각하는 Don, 그만큼 유혹도 많고 그는 그걸 뿌리치지 못한다(뿌리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완벽한 아내인 Betty는 그런 남편의 외도에 대해 감을 잡지만, 그의 치명적인 매력 때문에 그를 뿌리치지 못하는 상황이 현재까지 내가 본 에피소드에서의 상황이다. 삶이란 그렇게 복잡하다.
앨범은 DM의 본국인 영국에서조차 BBC와 교회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던 Blasphemous Rumours3로 막을 내린다. 이곡에서 가장 흥미로운 가사는 “I don’t want to start any blasphemous rumours. But I think that God’s got a sick sense of humour.”다. 우리가 좀더 유머 감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풀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금지곡도 지정되고 연인관계도 파탄이 나고 관세로 인한 상호파멸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신이시여 유머 감각을 키우시길.
ヴィジターズ(비지터스, Visitors)는 1984년 5월 21일에 EPIC·소니에서 발매한 사노 모토하루(佐野元春)의 4번째 정규 앨범이다. 이미 3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통해 일본에서 이른바 AOR(Adult-oriented rock)이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한1 사노는 좀더 본격적으로 서구적인 음악을 시도하고 싶어서였는지 이 앨범의 작업을 위해 1984년 5월부터 1년간 뉴욕에 체류하면서 현지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고, 이 과정에서 뉴욕문화 및 미국음악의 요소를 이 앨범에 많이 포함시켜 완성하였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앨범이 두 개가 있다. 바로 Joe Jackson이 1982년 발표한 Night and Day, Talking Heads가 1980년 발표한 Remain In Light. 사노의 비지터스는 이방인이 뉴욕에 방문하여 음악에 뉴욕이라는 도시를 담았다는 점에서 전자를2, 흑인이 아닌 인종이 – 서구음악을 빨리 수입하는 일본마저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 랩, 힙합 등 흑인음악을 받아들여 절충주의적 태도를 취했다는 점에서 후자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세 앨범 모두가 공간적 배경은 뉴욕이다.3 뉴욕은 공간이자 영감이었던 것이다.
첫 트랙 Complication Shakedown에서 사노는 곧바로 본격적인 랩을 시도하면서 앨범의 청자에게 신선한 느낌을 안겨준다. 이어진 곡 Tonight은 뉴욕 거리를 배회하는 화자의 입을 통해 뉴욕이라는 도시를 찬양하는데 Joe Jackson의 Steppin’ Out에서의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세 번째 트랙 Wild On The Street에서 사노는 다시 랩을 시도하는데 R&B적인 감성까지 가미되어 후배 쿠보타 토시노부(久保田 利伸)의 원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네 번째 트랙 Sunday Morning Blue는 존 레논(John Lennon)의 죽음을 소재로 한 노래다.4 비틀즈 풍의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다섯 번째 트랙 Visitors는 앨범명과 동일한 트랙. 이 곡에서는 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구술(spoken word)’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한층 토킹헤즈가 발표한 앞서 언급한 앨범 중에서의 트랙 Listening Wind를 연상케 한다. 가사 중에 ‘クロスワードパズル解きながら 今夜もストレンジャー(크로스워드 퍼즐 풀면서 오늘밤도 이방인)’이라는 부분이 공감가는 대목이다. 여섯 번째 트랙 Shame은 또다시 비틀즈를 연상시키는 편안한 멜로디가 특징인 곡이다. 일곱 번째 Come Shining은 전주가 맘에 드는데 80년대를 풍미한 뉴웨이브/신스팝에서의 경쾌하고 캐치한 멜로디가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트랙 New Age도 랩이 주조를 이루는 트랙이다. 긴장감 있는 베이스 연주가 맘에 든다.
사노 자신이 말하길 이 앨범은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순수한 팝아트” 또는 “가장 언어적인” 앨범이다. 어쨌든 어찌 보면 당시 일본의 대중음악계에서도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발매 당시 오리콘 차트에서는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연간 24위를 기록하는 등의 준수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제26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도 ‘우수 앨범상’을 수상했다. 일본의 음악 전문 잡지 뮤직 매거진에서 2019년 4월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선정한 일본 음악 100대 명반 리스트에서는 28위로 선정됐다. 과문하지만 일본음악계에서도 이러한 전폭적인 서구적인 흑인음악의 채택으로 크게 성공한 경우는 이후 90년대 우타다 히카루(宇多田 ヒカル)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5
그럼에도 아직까지 노래는 일본 가요풍의 멜로디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그의 히트 앨범 썸데이(サムデイ)만 해도 아직까지는 일본 가요풍의 팝 요소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
The Smiths가 1984년 11월 2일에 Rough Trade Records를 통해 발매한 컴필레이션앨범이다. 앨범에는 밴드의 초기 활약을 잘 설명해주는 싱글들이 The Associates의 Billy Mackenzie를 겨냥한 노래라는 설이 있는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에서부터 영화 프리티인핑크의 수록곡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에 이르기까지 16곡의, 밴드의 음악적 풍부함을 밀도 있게 느낄 수 있는 곡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또한 앨범 수록곡은 주로 1983년 BBC Radio 1 세션에서 녹음된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정규앨범 버전이나 싱글과는 다른 변주들이 팬들에게 주는 의미 또한 각별하다.
The Smiths의 가장 잘 알려진 히트곡으로 꼽히는 This Charming Man 역시 Peel Session에서 나온 곡으로 훌륭하다. 싱글보다 더 침울한 곡으로, 음악적으로는 Blowin’ Your Mind! 시대의 밴 모리슨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Rourke의 베이스라인이 모든 것을 이끌어가며, 그가 역대 가장 과소평가된 베이스 연주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Still Ill’도 다르다. 하모니카 솔로로 시작하고 끝나는데, 밴드의 데뷔작인 The Smiths의 버전보다 더 완벽한 곡이다. 이것이 Still Ill의 결정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Is ‘Hatful of Hollow’ the definitive album by The Smiths?]
한편 BBC Radio 1 세션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면
1950년대와 60년대에 영국의 팝, 포크, 재즈 아티스트는 상업적으로 발매되는 음반의 형태보다는 BBC 라디오에서 들을 가능성이 더 높았고, 아예 없었다면 회사를 위해 녹음한 독점 세션의 형태로 들을 수도 있었다. [중략] BBC가 소유한 스튜디오와 극장(주로 런던 주변)에 매일 음악가들을 모아 콘서트 공연을 하거나 엄격한 시간 내에 몇 곡을 녹음하게 하여 방송 시간을 채워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중략] 60년대 후반에 런던에서 만들어낸 화제성 덕분에 예약된 일부 아티스트는 레코드 계약을 맺기도 전에 BBC 세션을 하나 이상 녹음할 기회를 얻었다. [중략] 다른 녹음 기회에 방해받지 않는 음악가들을 위한 이 국가적 플랫폼을 운영하는 BBC 라디오 진행자의 전형적인 사례는 존필(John Peel)이었다. ‘필 세션’은 명예의 상징이자 음반 계약을 찾거나 적어도 어떤 종류의 지속적인 청취권을 찾는 티켓이 되었고, 필이 이러한 기회를 관리한 기간은 1967년부터 2004년 사망할 때까지였으며, 60년대 후반 ‘언더그라운드’ 시대와 10년 후 펑크 시대에 록이 재부팅된 시기는 취향 선도자로서의 시기였다. [중략] 한때 BBC 라디오 세션은 일종의 행정적 예외였고 아티스트가 최신 상업적 발매분을 최소한 한 번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통과해야 하는 장애물에 불과했지만 (그리고 영국에서 유일한 방송 네트워크에서) 이제는 아티스트를 위한 일종의 트로피가 되었고 잠재적인 취향 선도자가 후원에 대한 미덕을 보여주는 방법이 되었다. BBC 자체는 아티스트를 ‘추천’할 수 없었지만 개별 진행자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A Short History of ‘the BBC session’)
이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에서 7위에 올랐고 차트에 46주 동안 머물렀다. 2000년에 Q 매거진은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국 앨범 100장” 목록에서 44위에 올렸다.
앨범 커버의 원본 사진은 작가 장 콕토의 사망 20주년을 기념하는 프랑스 잡지 Libération의 1983년 7월호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사진은 콕토의 책 “Le Livre Blanc”에서 Gilles Decroix가 찍은 콕토의 그림을 어깨에 문신으로 새긴 팬 Fabrice Collette의 모습이다.
1.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2.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3. These Things Take Time
4. This Charming Man
5. How Soon Is Now?
6. Handsome Devil
7. Hand In Glove
8. Still Ill
9.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10. This Night Has Opened My Eyes
11. You’ve Got Everything Now
12. Accept Yourself
13. Girl Afraid
14. Back To The Old House
15. Reel Around The Fountain
16.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
The Pale Fountains의 음악이 여타의 쟁글팝(jangle pop) 뮤지션의 음악과 달리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들의 트럼펫, 플룻 등의 관악기 사용이라 생각한다. 이 악기 구성은 보컬 Mick Head의 허공에 읊조리는 듯한 하이톤 보컬과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이러한 어쿠스틱 사운드는 Burt Bacharach, Love, Bossa nova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적고 있다.
음반의 수록곡을 감상하고 있다보면 묘하게 겹치는 뮤지션이 있는데 후배 뮤지션인 Belle and Sebastian이다. 아마도 이들 음악의 교집합으로 앞서 언급한 Burt Bacharach가 발전시킨 영국에서의 챔버팝(chamber pop) 스타일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Mick의 보컬과 Belle의 Stuart Murdoch의 보컬이 가녀린 하이톤이라는 점도 비슷하다.(굳이 따지자면 Mick의 보컬이 좀더 파워풀하다)
1985년에 스미쓰가 발표한 ‘육식은 살인이다‘ 커버. (1) 같은 모노톤 (2) 타이틀을 세로로 배치한 점 (3) 등장인물이 군인이라는 점이 닮았다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Rough Trade., Fair use, Link
앨범 커버는 당시 영국에서 같은 시기 활동한 The Smiths의 모노톤 커버 아트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제3세계의 저항군과 같은 느낌이 드는 이 청년의 표정은 사뭇 비장해 그 사연이 궁금했다. 영화의 한 장면인지 아니면 실제 상황의 한 장면인지? 뒤에 서있는 두 남자의 표정도 뭔가에 놀랐거나 불안한 표정이어서 한층 사진에 긴박감이 더 느껴진다. 그래서 인공지능 성능도 테스트할겸 커버의 사연에 대해 챗지피티와 요즘 잘 나가는 DeepSeek에게 물어보았다.
“이 이미지는 The Pale Fountains의 앨범 Pacific Street 커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지 자체는 종종 예술적이거나 상징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찍은 사진인지 아니면 영화 장면인지 확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앨범 커버에 사용된 사진은 역사적인 자료나 영화의 한 장면일 가능성이 있으니, 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미지를 제공한 사람의 설명이나 공식 출처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ChatGPT]
The Pale Fountains의 1984년 앨범 Pacific Street의 커버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실제 상황을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밴드의 리더인 Michael Head와 그의 형 John Head가 어린 시절에 찍은 사진으로, 리버풀의 한 거리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밴드의 리버풀 뿌리와 그들이 자라난 환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로, 앨범의 음악적 정서와도 잘 어울립니다. 앨범 커버는 밴드의 멤버들이 아닌, 어린 시절의 형제 사진을 사용함으로써 독특한 감성과 향수를 자아내는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이는 The Pale Fountains의 음악이 지니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성격과도 잘 맞아떨어집니다.[DeepSeek]
질의 결과 챗지피티는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딴데가서 알아보라고 하고 딥식은 마이크 형제의 어린 시절의 사진이라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 진실은 결국 고전적인(?!)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서 알아냈다. 이 커버의 원본은 스탈린주의의 소비에트에 반대하여 봉기한 1956년 헝가리 혁명을 찍은 사진들 중 마리오드비아시(Mario De Biasi)라는 작가가 찍은 한 소년병의 모습이다. 제국주의를 반대했던 사회주의 종주국이 사회주의 형제국(!?)을 침략한 그 비극이 불안한 눈동자에서 느껴진다.
어쨌든 다시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앨범의 베스트트랙은 아무래도 앨범의 두번째 트랙 Something on My Mind다. 누군가가 이 노래를 유튜브에 장폴벨몽도(Jean-Paul Belmondo)와 진서버그(Jean Seberg)가 주연을 맡은 Breathless의 영상에 덧힙여 올려놓았다.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 공유한다. 영상의 댓글에는 그들의 음악이 얼마나 뛰어났는가에 대한 추종자들의 회고가 이어지고 있는데 그들의 라이브공연을 1984년에 목격한 한 사용자의 댓글이 흥미로워 여기 소개한다.
I remember seeing them live at the Lyceum theatre around 1984 supporting Orange Juice, the show was opened by Black also from Liverpool. The pf were unique, the LP was quite orchestrated, the songs were stripped down to the basics with live trumpet 🎺 and still sounded golden. OJ were cool and funky and this was the best gig to witness in London in 1984.
1984년경에 오렌지 주스를 지원하는 라이시엄 극장에서 라이브로 공연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공연은 리버풀 출신의 블랙이 오프닝을 맡았습니다. pf는 독특했고, LP는 꽤 오케스트라가 잘 짜여 있었고, 노래는 라이브 트럼펫으로 기본으로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황금빛으로 들렸습니다. OJ는 멋지고 펑키했고 이것은 1984년 런던에서 목격할 수 있는 최고의 공연이었습니다.
A Walk Across the Rooftops는 스코틀랜드의 락밴드 The Blue Nile의 데뷔앨범이다. 이 앨범은 1984년 4월 30일 영국의 린(Linn) 레코드사와 미국의 A&M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됐다. 애초 이들의 데뷔 싱글은 “I Love This Life”로 1981년 발매되었다. 밴드는 주로 글래스고에서 연주를 하거나 데모 레코딩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린 레코드사와 일한 적이 있는 Calum Malcolm와 함께 작업한 “Tinseltown in the Rain”을 회사에서 듣게 되었고 이것이 앨범 계약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밴드는 1983년에 5개월에 걸쳐 에딘버러 동쪽에 위치한 캐슬사운드(Castlesound)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녹음했다. 이 앨범이 처음 발매되었을 당시에는 영국 앨범차트 80위까지 오르기는 했지만 큰 호응이 없었으나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서서히 명성을 얻게 되었고 열광적인 팬덤이 형성되기도 했다. Stay와 Tinseltown in the Rain은 싱글로 발매되어 각각 영국 싱글차트 97위와 87위에까지 올랐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노래는 두 번째 트랙 Tinseltown in the Rain이다. 이 노래의 이 후렴구는 캐치하면서도 단순명료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Do I love you? Yes, I love you
Will we always be happy go lucky?
한편 Heatwave 라는 곡에서는 이런 가사가 등장하는데 마치 지금의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적 위기를 예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흥미롭기도 하다.
Heatwave, heatwave
Are we rich or are we poor?
Does it matter anymore?
이렇듯 앨범의 다른 수록곡들도 단순하면서도 도시의 이런저런 풍경을 묘사하는 선명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어 그들의 다소 난해한 코드 진행의 멜로디에 담백함을 가미해줘서 좋은 조합을 이루고 있다.
Naked Eyes의 최대 히트곡 Always Something There to Remind Me는 사실 리메이크다. 작곡은 Burt Bacharach와 Hal David가 했고 Sandie Shaw가 1964년 싱글로 발매하였다. 여하튼 그러한 고색창연한 노래를 현대적 신쓰 연주로 재탄생시킨 Naked Eyes에게도 박수를 보낼 일이다. 각설하고 Fuel for the Fire는 이 신쓰 듀오가 Always Something There to Remind Me가 담긴 성공적이었던 데뷔 앨범 Burning Bridges에 이어 1년 만에 내놓은 스튜디오 앨범이다. 1집에 이어 이 앨범에도 캐치한 멜로디의 곡들로 채워져 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곡은 역시 앨범 첫 곡으로 사용한 (What) In the Name of Love다. 이 곡은 빌보드 핫100차트에 39위까지 올랐다. 앨범은 빌보드 탑200 차트에 최고 83위에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은 그들의 데뷔앨범에서의 성적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앨범 커버마저 너무 음침해)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던 Arthur Baker는 듀오를 위해 싱글 Sacrifice의 리믹스 버전도 만들어줬으나, 레코드 회사에서는 후속 싱글을 발매해주지 않았다. 듀오는 이어지는 이런 푸대접 탓에 결국 밴드를 해산하고 말았다.
1. (WHAT) IN THE NAME OF LOVE
2. NEW HEARTS
3. SACRIFICE
4. EYES OF A CHILD
5. ONCE IS ENOUGH
6. NO FLOWERS PLEASE
7. ANSWERING SERVICE
8. ME I SEE IN YOU
9. FLYING SOLO
10. FLAG OF CONVENIENCE BONUS TRACKS
11. (WHAT) IN THE NAME OF LOVE (EXTENDED VERSION)
12. SACRIFICE (ARTHUR BAKER 12″ VERSION)
13. IN THE NAME OF LOVE (BYRNE & FISHER MIX)
14. TWO HEADS TOGETHER
15. FUEL FOR THE FIRE (DEMO)
16. BABES IN ARMOUR (DEMO)
17. SACRIFICE (DEMO)
1984년 6월 22일 The Jacksons의 열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Victory가 에픽 레코드사를 통해서 출시되었다. Michael Jackson, Jackie Jackson, Marlon Jackson, Randy Jackson, Tito Jackson, David Paich, 그리고 Steve Porcaro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83년 11월 11일부터 1984년 5월 7일까지 뉴욕, LA 등 다양한 도시의 다양한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1983년 봄의 “모타운 25” TV 스페셜에서의 The Jacksons의 재결합 공연 이후 그룹은 3년 전에 발표한 Triumph 이후의 새 앨범을 내놓을 것을 결심했다. 이 앨범은 여섯 명의 잭슨 형제가 모두 참여한 유일한 앨범이 되었다. 또한 Michael Jackson이 리드 싱어로 전체적으로 참여한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Jacksons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형제들 사이에서의 경쟁심 때문에 그룹으로써의 앨범이라기보다는 각 멤버들의 솔로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는 앨범의 성경이 강했다. 다만 Jermaine Jackson은 마이클과 듀엣을 하기도 했고, 마이클은 다른 세 곡에서 백그라운드 보컬을 맡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는 Mick Jagger가 함께 노래한 “State Of Shock”이 팝 차트 3위 R&B 차트 4위에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이외에도 “Torture” (#17 Pop, #12 R&B)와 “Body” (#47 Pop, #39 R&B)등이 인기를 얻었다. 앨범은 빌보드 탑200 차트에서 4위까지 올랐고 R&B 앨범 차트에서는 2위까지 올랐다. 앨범의 홍보를 위해서 일명 Victory Tour도 진행되었다. 순회공연이 끝난 후에 Michael과 Marlon은 그룹을 떠난다. 남은 넷은 계속하여 The Jacksons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몇 장의 앨범을 더 냈다.
발매당시 우리나라의 팝음악 잡지 음악세계에서는 특별부록으로 카셋테잎으로 된 이 앨범을 줬다.
1984년 6월 25일 Prince의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Purple Rain”이 발매됐다. Prince가 직접 프로듀스하고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퍼스트애비뉴와 웨어하우스, 뉴욕에 있는 레코드플랜트, 그리고 헐리우드의 선셋사운드 등에서 녹음한 이 앨범은 Prince의 영화 데뷔작 Purple Rain의 사운드트랙의 성격으로 제작된 앨범이다. 또한 Prince & The Revolution이란 이름을 내걸고 낸 첫 앨범이다. 노래의 녹음은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나이트클럽 퍼스트애비뉴에서 라이브 쇼를 가진 1983년 8월 3일부터 시작됐다. 이 공연은 밴드의 기타리스트 Wendy Melvoin 의 데뷔 무대였다. 이 공연에서 “I Would Die 4 U” (#8 Pop, #11 R&B), “Baby I’m A Star”, 그리고 “Purple Rain”이 녹음됐다. 이 녹음은 약간의 사후 재녹음만을 거친 채 최종 앨범에 수록되었다. 영화와 앨범의 서두를 여는 “Let’s Go Crazy” (#1 Pop and R&B)는 Prince의 연습실인 웨어하우스(The Warehouse)에서 녹음됐다. “Take Me With U” (#25 Pop, #40 R&B)는 영화의 여주인공이자 Apollonia 6의 리드싱어 Apollonia Kotero와의 듀엣으로 부른 곡으로 당초 Apollonia 6의 앨범에 수록할 예정이었지만 Prince가 마음을 바꿔 “Purple Rain”에 수록했다. 영화 개봉 4주전에 발매된 앨범은 평론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적이었다. 백밴드 The Revolution과 함께 한 이 앨범은 이전의 원맨밴드의 형식보다 질적으로 더욱 풍부한 음악을 선보였다. 다중적인 레이어로 두터워진 기타 사운드, 얼음 같이 차가운 신디싸이저 이펙트, 드럼머쉰 등 현대적인 악기 응용이 R&B 사운드에 덧입혀졌다. 이 앨범은 빌보드 탑200 차트에서 24주 연속하여 1위에 머물렀고 R&B 앨범 차트에는 19주 연속으로 1위에 머물렀다. 그래미상 시상식에서는 ‘듀오 또는 그룹에 의한 베스트 락보컬 퍼포먼스’를 포함하여 2개의 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상했다. “Purple Rain”은 2011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12년 미의회 도서관에 “현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중요함”의 명목으로 국립 레코딩 등기소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