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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Joel / Songs in the Attic

Billy Joel - Songs in the Attic.jpg
Billy Joel – Songs in the Attic”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Columbia.. Licensed under Wikipedia.

Billy Joel 이 지난 1977년 The Stranger를 발표하고 갑작스레 폭발한 인기는 새로운 서정의 음유시인이라는 닉네임을 그에게 부여하며 히트곡 Just The Way You Are, The Stranger, Only The Good Die Young, She’s Always a Woman등 사랑스런 연가풍의 곡들의 연이은 히트행진이 이뤄지게 됐습니다.

70년대 초반 이름없는 작곡자로 이곳 저곳을 전전하여 곡들을 발표하던 밤무대의 피아니스트에게 다가온 이 성공은 정말 엄청난 상업적 축복이었습니다.

The Strangers의 대성공이후 그는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락커로서의 이미지를 심으려는 시도가 1978년 앨범 52nd Street 에서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Big Shot , My Life에서 오히려 70년대 전반을 이끌었던 음유시인의 이미지가 엷어지고, 보다 강렬하고 밝은 분위기를 노래하는 신호탄이 되었지만 한번 달궈진 그의 성공은 식을 줄읋 모르고 1980년 본격적인 락앨범을 표방한 Glass Houses를 발표, 전미앨범차트를 석권하며 You Maybe Right, It’s Still Rock’n’Roll To Me, Sometimes a Fantasy 같은 커다란 힛싱글을 양산했습니다. 물론, 초기앨범을 좋아하던 일부 고정 팬들은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의 성공가도에는 끝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1981년 그는 단 6명의 어쿠스틱 세션을 편성하여 그가 초기에 고생하고 탐미했던 그러나, 서정적이고 관조적이던 일련의 추억이 든 11곡을 1장의 공연실황앨범으로 꾸몄습니다. 앨범 제목 그대로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다락방(attic)같은 외진 곳에서 다시 찾아낸 그런 잊혀진 곡들이었습니다.

다시 예전의 음유시인으로 되돌아간 Billy의 모습은 무명시절 초기앨범 Cold Spring Habor, Turnstiles, Street Serenade 에 삽입되어 묻혀진 곡들로서 그의 전공인 피아노와 하모니카 가는대로 고민하는 젊은 시절을 반추하는 듯, Miami 2017, 낭만적인 분위기의 Say Goodbye To Hollywood(히트차트 20위), 그만의 서사시 Captain Jack, 그리고 그의 새로운 스탠다드 발라드가 되어버란, 외로운 피아노와 보칼로 만든 She’s Got a Way(히트차트 19위)등을 싣고 공연실황으로 채택된 것입니다. 이 앨범에서 그의 이미지는 Piano Man에서 하모니카와 어쿠스틱 피아노를 연주하던 그것으로 돌아간 것듯 합니다.

이 앨범이후 그는 사회성이 짙은 Nylon Curtain ( Allentown, Pressure수록) , 초기녹음기술로 되돌아간 고색한 분위기 앨범 An Innocent Man ( Tell Her About It, Uptown Girl 수록)을 발표하여 그의 다양한 재능이 여러 각도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의 성공가도에 한 점 휴식과도 같은, 그래서 과소평가되기도 한 앨범 Song In The Attic 에서 우리는 외롭고, 쓸쓸한 한 음유시인의 젊은 시절 추억의 히스토리에 귀기울일 수 있습니다.

1. Miami 2017 (Seen the Lights Go Out on… (Joel) – 5:05
2. Summer, Highland Falls (Joel) – 3:03
3. Streetlife Serenader (Joel) – 5:17
4. Los Angelenos (Joel) – 3:48
5. She’s Got a Way (Joel) – 2:44
6. Everybody Loves You Now (Joel) – 3:10
7. Say Goodbye to Hollywood (Joel) – 4:25
8. Captain Jack (Joel) – 7:16
9. You’re My Home (Joel) – 3:07
10. The Ballad of Billy the Kid (Joel) – 5:28
11. I’ve Loved These Days (Joel) – 4:35

written by Suntae

Electric Light Orchestra / Discovery

ELO가 맘에 드는 점은 고상한 “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소위 프로그레시브하게 밴드를 이끌고 갈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지만 결국 그룹의 리더 Jeff Lynne은 그들의 음악적 방향을 비틀즈풍의 팝스타일로 결정하였고 80년대 ELO의 노선를 예고하는 이 앨범에서 그러한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 시대 라디오를 옆에 끼고 살았던 분들이라면 누구나 ELO의 Midnight Blue를 들으며 멜랑꼬리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이 노래는 특히 국내에서 인기가 많았었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국내음악 취향이 댄쓰뮤직보다는 소위 슬로우템포의 발라드 취향이었기 때문에 특히나 그러했다. 이외에도 이 앨범에는 Last Train To London이라는 환상적인 디스코트랙, Need Her Love와 같은 발라드, Don’t Bring Me Down과 같은 락앤롤 곡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차곡 차곡 쌓여 있다. (sticky)

1. Shine a Little Love (Lynne) – 4:43
2. Confusion (Lynne) – 3:42
3. Need Her Love (Lynne) – 5:11
4. The Diary of Horace Wimp (Lynne) – 4:17
5. Last Train to London (Lynne) – 4:32
6. Midnight Blue (Lynne) – 4:19
7. On the Run (Lynne) – 3:55
8. Wishing (Lynne) – 4:13
9. Don’t Bring Me Down (Lynne) – 4:02

Young,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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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Young by Zoran Veselinovic” by Zoran Veselinovic (note the photographer’s name is corrected here) – http://www.flickr.com/photos/56492970@N07/5705650710/in/photostream.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Hey! If we can solve any problem”

로 시작되는 잔잔한 발라드 Every time You Go Away 를 Hall & Oates 의 곡으로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 노래는 원래 Paul Young 의 노래인 것이다. 날카로운 송곳 머리와 뾰족한 턱과 코가 인상적이었던 영국 젊은이 Paul Young 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불렀던 잊혀진 오리지널을 다시 살려내어 자기만의 색깔을 입힘으로써 명성을 얻은 가수이다.

그는 영국에서 Simply Red 의 Mick Hucknall 과 함께 소위 “파란 눈의 쏘울(blue-eyed soul/pop)” 분야에서 가장 인정받는 가수였다. 그의 가장 큰 재능은 – 자신이 직접 곡을 쓰기도 했지만 – R&B 클래식 중 팬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진 곡들을 발굴해내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데에 있었다. 앞서 언급한 Every time You Go Away 가 대표적인 경우였고 그의 또다른 히트곡 I’m Gonna Tear Your Playhouse Down 역시 Ann Peebles 의 흘러간 곡을 춤추기 알맞게 리메이크한 곡이다.

1959년 1월 17일 런던에서 출생한 Paul Young 의 첫 음악경력은 여러 로컬밴드에서의 베이스 혹은 키타 담당이었다. 그가 처음 보컬로 나선 것은 The Streetband 라는 뉴웨이브 밴드에서 였고 1978년 Toast 라는 곡이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밴드가 해체된 뒤 Young 은 Q-Tips 라는 쏘울밴드를 조직했다.

1982년 그들은 CBS와 계약을 체결했는데 회사의 관심은 Young 의 쏠로활동이었고 이로 인해 Q-Tips 의 해체는 가속화되었다. 결국 팀은 해체되었고 The Royal Family 라는 Young 의 백밴드가 새로이 구성되었다. 그의 솔로 싱글 Iron Out the Rough Spots 가 1982년 말 발표되었고 연이어 Nicky Thomas 의 레게팝 히트곡인 Love of the Common People 의 리메이크를 발표했다. 두곡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았으나 Marvin Gaye 의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곡인 Wherever I Lay My Hat (That’s My Home) 가 인기를 얻었고 이로 인해 데뷔앨범 No Parlez 의 판매도 호조를 보였다. 1984년 Young 은 유명한 프로젝트 밴드 Band Aid 에 참가하여 Do They Know It’s Christmas? 를 부른다. 이 곡은 국제적인 인기를 누렸고 이 기세를 몰아 Young 은 I’m Gonna Tear Your Playhouse Down 으로 연예계에 본격적으로 복귀하였다. 1985년 2집 The Secret of Association 이 발매되었고 이 앨범에는 그의 최고의 히트곡 Every time You Go Away 가 수록되어 있었다. 이 곡은 1980년 발매된 Hall & Oates 의 앨범에 수록된 곡이었다. 불과 5년 전에 발표된 곡을 리메이크(!)해서 확실한 자신의 곡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었던 모양이다. Young 은 3집부터는 자신만의 곡을 쓰는데 주력했고 1986년 Between Two Fires 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 앨범은 메이저 히트곡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의 화려한 나날들이 점점 색을 바래갔다. 이후 1990년 새 앨범을 내놓기까지 나머지 80년대는 그에게 있어서는 침묵의 시기였다.

디스코그래피
1983 No Parlez Columbia
1985 The Secret of Association Columbia
1986 Between Two Fires Columbia
1990 Other Voices Columbia
1993 Crossing Columbia
1995 Reflections Vision Music
1997 Paul Young East/West
2003 Love Will Tear Us Apart Colum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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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kovic, Weird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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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YankovicByKristineSlipson” by Kristine Slipson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Yankovic이란 이름이 낯선 사람일지라도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그런 친숙함을 느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의 엽기 카피머쉰 “Weird Al”(이름부터 엽기 코드를 채택하고 있음) Yankovic은 자신의 오리지널곡 보다는 이미 차트에서 명성을 날린 바 있는 곡들을 교묘하게 변조하여 부름으로써 – 심지어는 뮤직비디오마저 엽기적으로 모방함으로써 – 그 정체성을 창조해낸 가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스타일은 흔히 Comedy Rock 또는 Song Parody라 불리우는데 굳이 패로디라는 형식상의 특징이 아니라면 그는 Frank Zappa나 Denis Leary와 같은 weird한 음악계열과 동류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곱살부터 아코디언을 연주하기 시작한 그는 폴카스타일 – 보헤미안 음악에서 비롯된 매우 빠른 박자의 춤곡 스타일 – 의 스타인 Frank Yankovic(인척관계 없음)의 전통의 계승자라고도 할 수 있다.

Alfred Matthew Yankovic이 본명인 Yankovic은 1959년 10월 23일 캘리포니아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데모테잎을 제작하는 등 음악 캐리어를 쌓아나가던 그는 대학에 입학한 후 – 건축전공 – 한 캠퍼스 라디오 방송국에서 활동하면서부터 “Weird Al”이라는 별명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79년 The Knack의 히트곡 My Sharona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My Bologna라는 패로디곡을 제작하였다. 이 곡은 의외의 호응을 얻으면서 – 심지어 The Knack 의 멤버들조차 맘에 들어했단다 [국내 어느 탑아티스트와 비교되네] – 그의 본격적인 음악인생이 시작되었다.

1980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Yankovic은 Another One Rides the Bus을 내놓았다(오리지널이 어떤 곡인지는 이미 짐작하셨으리라…). 이어지는 I Love Rocky Road를 내놓은 후 그는 Scotti Bros와 계약을 체결하고 1983년 데뷔앨범 “Weird” Al Yankovic을 내놓았는데 이 앨범에서는 Toni Basil의 히트곡 Mickey를 패로디한 Ricky가 인기를 얻었다. 이어 내놓은 뮤직비디오도 MTV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의 성공은 무었보다도 뮤직비디오의 효율적인 활용에서 기인한다. 그는 음악에서뿐 아니라 뮤직비디오에서도 익살스러운 패로디(사실 풍자라고 해석하기에는 좀 뭐하고 메이저가 교묘하게 뒤틀리는 일탈적 모습에 쾌감을 느끼는 마이너적인 감성에 호소한 측면이 많다)로 원작을 교묘하게 비틈으로써 MTV의 주요단골 메뉴가 되었다는 점이 그에게는 큰 이득이었다. 또한 MTV는 그의 개인적인 페르소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는데 그의 하와이언셔츠와 긴 곱슬머리, 그리고 약간은 어벙벙한 그의 표정은 그만의 코믹한 트레이드마크로 십분활용되었다. Michael Jackson이 Beat It으로 큰 인기를 얻은 후 Yankovic은 곧장 Eat It을 대항(?)하였는데 코믹한 뮤직비디오는 엄청한 인기를 얻게 되고 싱글 또한 차트의 상위에 오랜 기간 머물러 있었다.Eat It이 담겨져 있는 앨범 In 3-D에는 이외에도 Police, Greg Kihn Band 등의 곡을 패로디한 곡과 Polkas on 45 등이 인기를 얻었다.

이후에도 그의 창작욕(?)은 끊일 줄 몰라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유머는 잘 봐주어도 Naked Gun류의 휴지통 유머에 가까우나 의외로 그를 사랑하는 팬들도 꽤 있는 것 같아 급기야 Yankovic Box Set를 사고야 말겠다는 사람까지 목격한 적이 있다. 🙂

디스코그래피
1983 Weird Al Yankovic Scotti
1984 In 3-D Scotti
1985 Dare to be Stupid Scotti
1986 Polka Party Scotti
1988 Even Worse Scotti
1989 UHF Rock ‘n Roll
1990 Peter & the Wolf/Carnival of The Animals,… Columbia
1992 Off the Deep End Scotti
1993 Alapalooza Scotti Bros.
1995 The TV Album Scotti Bros.
1996 Bad Hair Day Scotti Bros.
1999 Running with Scissors Volcano

링크
Yankovic.org

W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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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mFreedom7InchEuropeanSingleCover” by Scan. Licensed under Wikipedia.

죠지 마이클, 그리고 앤드류 리즐리. 짧은 기간 이토록 선굵은 활동을 펼쳤던 듀오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공식적인 만 4년의 활동 동안 3장의 앨범과 10여개가 넘는 탑 탠 싱글을 남긴 웸. 이들의 전설은 수년이 지난 현재에도 변함없이 유효하다. 1963년 동갑나기인 죠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는 13살 때 처음 만나 10년 이상 동고동락 해온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둘도없는 음악 파트너이다.

이들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앤드류의 형제들과 스카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했고 훗날 1,2집에 수록될 수많은 곡들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여러 부분에 걸쳐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발신하고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수년의 시간을 흘려보낸 82년, 본격적인 프로 뮤지션이 되고자 20파운드를 투자해 데모 테입을 제작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CBS레코드와 계약, 4장의 싱글과 83년 7월 대망의 데뷔 앨범 ‘판타스틱’을 발표하게 된다.

죠지 마이클과 스티브 브라운이 공동 프로듀서한 이 앨범은 놀랍게도 발매와 동시에 1위로 직행, 웸은 영국 댄스 음악의 최강자이자 아이돌 스타로 단숨에 뛰어오른다. 84년 11월 발표된 2집 ‘ Make It Big ‘ 은 영국 차트 정상에 오른 것은 물론 솔로 작품 ‘ Careless Whisper’ 까지 선보인 죠지 마이클은 단숨에 이 시대에 가장 잘 나가는 싱어송 라이터로 떠 오른다. 싱글과 앨범의 연이은 성공으로 85년 2월 브릿 어워드의 베스트 브리티쉬 그룹으로 선정된 웸은 여세를 몰아 빌보드 앨범과 싱글 챠트를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4월에는 서방계 팝 밴드론 최초로 죽의 장막 중국을 방문하여 공연을 갖기도 했으며 그 기록들은 ‘프리덤’의 뮤직비디오에 담은 바 있다. 같은해 12월 조지 마이클은 색다른 기록 한가지를 세우게 된다. 웸의 새로운 싱글 ‘I’m Your Man’ 크리스마스만 되면 울려퍼지는 ‘라스트 크리스마스’와 밴드 에이드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 ?’ 백 보컬로 참여한 엘튼 존의 ‘니키타’ 등 그의 목소리가 담긴 네곡이 싱글 차트 상위권에 랭크된 것. 영국 팀으로는 드물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의 4개 부분을 석권하며 쾌적의 86년을 맞이한 웸이었지만 이들의 주변에선 괴이한 소문들이 하나 둘씩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팀이 해체할 것’ ‘조지 마이클이 솔로로 나서게 될것’ 등등.. 그러한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조지 마이클은 ‘Carless Whisper’ 에 이은 두 번째 솔로 싱글 ‘A Different Corner’ 를 발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의 해체를 알리는 충격의 매스컴 발표가 있게 된다.

86년 8월 웸은 3번째 정규 앨범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 을 끝으로 공식적인 모든 활동을 마감한다. 학창시절 친구로 구성된 듀오였던 탓에 누구도 팀웍을 의심한바 없었지만 결국 음악적인 견해 차이와 내적 불균형이 원인이 되어 5년간의 화려했던 활동을 추억으로 접어두고, 86년 충격적인 해체 선언과 갈라서기를 시작하게 된 웸! 아주 오랜만에 새롭게 생각해보는 웸의 존재, 이들은 이제 추억이 아니라 전설에 가깝다. 왬은 없지만 조지마이클은 아직 팝계에 남아있다,, 베스트앨범이 2장이 나왔을정도로 그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도 언제 사라질진 아무도 모른다..20여년의 세월이 흐른뒤에도 지금까지 이어온 역사를 이어가기 바랄뿐이다.

디스코그래피
1983 Fantastic! Columbia
1984 Make It Big Columbia
1986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 Columbia

링크
Wham Shake!

Tiff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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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ffany-las-vegas-hilton-1993-04-24” by Dtobia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어느 시대에나 ‘10대’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생동감 혹은 반항적인 세대이다. 특히 대중문화가 사회전체의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는 20세기, 그 중에서도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대중음악계에서 10대는 가장 주요한 수요층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중음악의 코드 역시 10대의 감수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럼에도 대중음악의 생산자는 아직까지는 기껏해야 20대가 주축을 이루었는데 이는 10대가 정상적인 음악교육 등을 통해 대중음악의 주체적인 생산자로 나서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80년대 전까지만 해도 10대의 대중음악인들은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서는 서서히 그 기류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팝음악계의 거대 레이블의 등장과 이들의 철저한 사전기획에 의해 조련된 10대들은 이전에 거쳐야 했던 음악의 통과의례 없이도 기술의 발전과 마케팅으로 어느 정도 윤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80년대에 이러한 10대 파워의 대표주자는 Debbie Gibson, Martika, New Kids on the Block, New Edition 등이 있었고 지금 소개하는 Tiffany 역시 대표적인 10대 파워였다.

Tiffany Renee Darwish 는 1971년 10월 2일 오클라호마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즐겨 불렀고 LA의 한 컨트리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 우연히 컨트리뮤직의 베테랑인 Hoyt Axton 과 Mae Axton 의 눈에 띄게 된다. 이후 몇 년간 Tiffany 는 TV쇼나 Jerry Lee Lewis, George Jones 등 컨트리스타들의 오프닝공연에 출연하였다.

1986년 Tiffany 는 매니저 George Tobin 과 계약을 맺고 그의 도움으로 MCA 와 레코딩 계약을 맺게 된다(Tobin은 그녀를 독재적이라 하리만큼 철저히 관리했고 이것이 후에 갈등으로 이어진다). 1987년 데뷔앨범 Tiffany 가 나왔고 즉각 순회공연에 들어갔다.

즉각적인 반응은 없었지만 MTV가 그녀의 싱글 “I Think We’re Alone Now”를 틀어대기 시작하자 팬층은 빠른 속도로 늘어갔고 앨범은 팝차트 정상에 오르게 된다. 이어진 싱글 “Could’ve Been” 역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불행은 집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Tiffany 의 어머니는 그녀가 실종되었다는 신고를 하는가 하면 매니저가 그녀를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Tiffany 는 그런 어머니에 대항하여 법적자유를 주장하였고 매니저 Tobin 의 편을 들었다. 그 와중에도 the Beatles 의 커버 “I Saw Her Standing There” 가 차트 정상에 올랐다(그녀의 순회공연의 오프닝밴드로 한 무명의 10대 밴드가 기회를 잡았는데 그들이 바로 New Kids on the Block 이었다).

1988년 2집 Hold an Old Friend’s Hand 가 발표되었는데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미 Tiffany 의 팬층이 비슷한 스타일인 New Kids on the Block 으로 급격히 이동하였음을 의미하는 신호였다. 3집 New Inside 는 발매되자마자 바로 청중의 뇌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꾸준히 앨범을 내놓은 그녀는 2002년에는 플레이보이의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번갯불과 같은 반짝 성공은 한편으로 허망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많은 10대들에게, 그리고 그 10대를 활용하고자 하는 기획사에게 기회의 땅에 대한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이후 90년대는 앞서의 경험을 교훈삼은 수많은 10대 가수들이 난무하게 된다. 물론 그 중에 살아남은 이들은 극히 소수이지만….

디스코그래피
1987 Tiffany MCA
1988 Hold an Old Friend’s Hand MCA
1990 New Inside MCA
2000 Dreams Never Die
2000 The Color of Silence Eure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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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Site
Online Fan Club

S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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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e in boston“. Licensed under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나이지리아 국적의 아버지와 영국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난 Sade Adu(본명 Helen Folesade Adu)는 유아시절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나이지리아에서 런던으로 옮겼다. 비주얼아트를 공부했던 그녀의 열정은 패션디자인보다는 음악에 집중되어 있었다. 80년대에 그녀는 째즈그룹 Pride에서 음악경력을 시작했다. 80년대 중반 Stuart Matthewman, Andrew Hale, Paul S Denman, Sade Adu로 구성된 Pride는 이름을 Sade로 바꿔버렸다.

1984년 Sade의 첫싱글 Your Love Is King은 유럽과 북미에서 호평을 받았다. 1985년 내놓은 데뷔앨범 Diamond Life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전체적인 음악풍은 쏘울풀하면서도 째즈에 영감을 받은 스타일로 대부분의 곡이 Sade와 그녀의 밴드멤버들이 작곡한 것이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앨범에 수록된 Smooth Operator는 국제적인 히트를 기록하였고 그 해 Grammys 어워드에서는 그룹이 Best New Artist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Sade는 이어 후속앨범 Promise를 내놓았고 싱글 The Sweetest Taboo가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그룹은 Style Council, Ray Davies, Jerry Dammers, 그리고 David Bowie 등이 참여한 영화 Absolute Beginners의 싸운드트랙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2년 그들은 Love Deluxe를 발표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4 Diamond Life [Epic]
1985 Promise [Epic]
1988 Stronger Than Pride [Epic]
1992 Love Deluxe [Epic]
2000 Lovers Rock [E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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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Page

Richie, Lio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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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onel Richie 2012 2” by Georges Biard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Lionel Richie(본명 Lionel Brockman Richie, Jr., 1949년 6월 20일 생) 는 80년대에 가장 성공한 남성 솔로 가수였다. 이 기간 동안 그와 대적할만한 상대는 Michael Jackson 과 Prince 정도였다. Richie 는 같은 흑인이면서도 앞서의 두 사람들보다 더욱 백인적인 – R&B라기보다는 어덜트컨템포러리에 가까운 – 색채를 띠며 팝차트를 누비고 다녔는데 무려 13개의 싱글이 1981년과 1987년 사이에 탑10에 올랐고 그 중 다섯 곡은 1위를 차지했다.

Richie 는 원래 70년대 후반 매우 성공적인 The Commodores의 일원이었다. 여기서 그는 섹서폰을 맡았고 가끔 보컬과 작곡을 맡기도 했다. 그가 쓴 곡은 “Easy,” “Three Times a Lady,” , “Still” 과 같은 듣기 편한 발라드였다. 이 곡들 중 뒤의 두 곡은 그룹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되기도 했다. 작곡에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던 Richie 가 Kenny Rogers 의 히트곡 “Lady”를 작곡해주고 Diana Ross 와 함께 “Endless Love”를 부르면서 점점 Richie 는 그룹생활에 싫증을 내기 시작하였다. 1981년 말 Richie 는 그룹을 떠났다.

이후 그의 솔로 경력은 적어도 80년대에 있어서만큼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놀라운 성과를 낳았다. “Truly”, “All Night Long (All Night)”, “Hello” 등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해내며 앨범을 수백만 장씩 팔아치웠다. 특히 앨범 Can’t Slow Down 이 1984년 그래미에서 그해의 앨범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상세 내용 보기) 그러한 인기여세를 몰아 그는 1984년 LA 올림픽에서 폐막식 공연을 장식했다.

1985년 팝역사에 하나의 획을 긋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것은 Michael Jackson 과 공동작곡한 자선 싱글 “We Are the World” 였다. 영국이 주도한 Band Aid에 대한 일종의 대항마 성격의 이 자선 싱글은 거물급 팝스타들이 총출동하여 아프리카의 기아에 대한 전 세계의 참여를 독려하였다.(비록 그것이 자선적 성격에 그치고 말았지만) 하지만 이는 Artists United Against Apartheid 와 같은 더욱 급진적인 노래운동을 낳는 가교가 되기도 했다.

여하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Richie 에게 이 순간이 절정의 순간이었다. 이후 앨범은 여전히 인기 있었지만 Can’t Slow Down 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여전히 그는 앨범을 내며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화려했던 80년대, 그 시절의 스포트라잇은 그이 것이 아니다.

디스코그래피
1982 Lionel Richie Motown
1983 Can’t Slow Down Motown
1986 Dancing on the Ceiling Motown
1996 Louder Than Words Mercury
1998 Time Mercury
2001 Renaissance Island
2002 Encore [International Version] [live] Mercury
2004 Just for You Island
2004 Encore [U.S. Version] [live] Island
2004 Just for You [UK 14-track Version] Universal/Mercury

링크
Lionel Richie Worldwide Headquarters

Quarterflash

Quarterflash의 탄생은 리드 보컬 Rindy Ross와 리드 기타 Marv Ross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같은 대학시절 캠퍼스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Seafood-mama라는 스쿨밴드를 조직하여 주말에는 클럽에서 연주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1980년 이들은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8트랙 테이프 레코더와 믹싱콘솔을 구입, 지하실에서 Harden My Heart라는 데모 테잎을 레코딩하여 고향인 오레곤의 로컬레이블로 보냈는데 이것이 의외의 반응을 얻어 싱글 판매고 1만장을 넘어섰다. 이후 게펜 레이블의 데이빗 게펜에게 스카웃되어 Seafood-mama 시절의 멤버를 정리하고 새로운 라인업으로 구성된 Quarterflash를 조직하였다. 1981년 10월 데뷔앨범 Quarterflash를 발표하여 Harden My Heart를 이은 Find Another Fool, Valerie, Right Kind Of Love 등 앨범에 수록된 거의 모든 곡이 방송가를 누비는 등 크게 히트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1 Quarterflash David Geffen
1983 Take Another Picture David Geffen
1985 Back into Blue David Geffen
Girl in the Wind Epic

Prefab Sprout

’80 ~ ’90년대 영국에서 크게 사랑받았던 Prefab Sprout는 미국에서는 거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싱어/송라이터 Paddy McAloon은 그 시대에 위대한 작곡가로까지 칭송받았던 인물이다. 비평은 McAloon을 Elvis Costello, Paul McCartney, Cole Porter 등과 비교하였지만 수줍은 성격의 McAloon은 대중앞에 나서기를 꺼려했다.

Prefab Sprout는 1977년 뉴캐슬에서 McAloon과 베이스를 치던 동생 Martin에 의해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그들의 팬중 하나였던 Wendy Smith가 백보컬로 가세하였고 첫싱글 “Lions in My Own Garden (Exit Someone)”을 1982년 7월 발매하였다. 그들의 데뷔앨범 Swoon은 1984년 발매되었는데 곡들은 예측불가능한 멜로디와 불가해한 가사로 메꿔져 있었다. Swoon의 발매 직후 드러머 Neil Conti가 그룹에 가세하였다. 1985년 그들의 두번째 앨범 Steve McQueen(미국에서는 법적인 문제로 인하여 Twon Wheels Good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에서는 Thomas Dolby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Dolby는 그들의 기묘한 분위기를 좀더 부드럽게 바꿨다. 또한 그의 키보드 싸운드는 앨범의 싸운드를 풍부하게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가사는 여전히 불투명했지만 독해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 앨범에서는 “When Love Breaks Down” 가 인기를 얻었다.

1988년에 발매된 3집 From Langley Park to Memphis은 그들의 앨범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이 되었다. “The King of Rock and Roll”이 크게 히트하였고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기를 얻어 소위 One Hit Wonder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의 대학 라디오에서는 Bruce Springsteen의 노래를 패러디한 “Cars and Girls”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1985년에 시도하려다 미뤄왔던 어쿠스틱 프로젝트를 진행시켜 1989년 Protest Songs란 타이틀로 앨범을 출시하였다.

1990년 Jordan: The Comeback은 – McAloon이 Jesse James와 Elvis Presley에 관한 컨셉앨범이라고 표현하였던 – 비평가들의 큰 호평을 얻게 된다. 그러나 다소 호사스럽고 장식적이었던 프로듀스 때문에 미국에서는 상업적으로 실패하였다.(반면 영국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 ‘92년 발표되었던 베스트앨범 A Life of Surprises도 비슷한 운명을 걸었다.

많은 팬들은 실제로 이 시기가 Prefab Sprout의 실질적인 해체기라고 간주하였다. 실제로 Conti가 밴드를 떠났다. 그러나 McAloon은 몇장의 앨범을 낼 수 있을 정도의 곡들을 써댔고 – 몇몇 곡은 실지 녹음까지도 했었고 – 이러한 노력으로 ‘97년 또다시 Andromeda Heights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 발매되지 않았지만 영국에서는 호평속에 판매되었다. 현재 그룹은 실제로 McAloon 형제의 듀엣 형태로 유지되고 있지만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4 Swoon Epic
1985 Steve McQueen Kitchenware
1985 Two Wheels Good Epic
1988 From Langley Park to Memphis Epic
1989 Protest Songs Kitchenware
1990 Jordan: The Comeback Epic
1997 Andromeda Heights Epic
2001 The Gunman and Other Stories Epic

링크
Official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