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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Marr – The Messeng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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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싱어였던 MorrisseyThe Smiths가 해체하자마자 – 혹은 그 이전부터 이미 – 만반의 준비를 해서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등 확실한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아간 반면, 기타리스트였던 Johnny Marr는 단숨에 솔로 커리어를 쌓아가지는 않았다. 밴드가 해체된 이후 그는 The Pretenders, The The, Talking Heads 와 같은 동시대의 걸출한 밴드들의 작업을 도와주는 활동부터 시작했다. 그러던 중 New Order의 Bernard Sumner와 Electronic이라는 멋진 유닛을 결성하여 1991년 이후부터 세 개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으며 음악적으로 매우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이후 다시 Modest Mouse 등의 밴드들과 함께 활동하며 Morrissey와는 다른 궤적의 음악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던 그가 마침내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2013년 그의 이름을 온전하게 건 첫 솔로 스튜디오 앨범으로 내놓은 작품이 이 The Messenger다.1 Morrissey의 특징적인 보컬 덕분에 살짝 The Smiths 2기의 냄새가 났던 반면에 이 앨범에서 뭔가 The Smiths의 흔적을 찾기는 무리다. 시간 상으로도 그들의 마지막 앨범으로부터 너무 긴 시간이 흘러 기타 사운드도 The Smiths 당시의 찰랑찰랑 사운드와도 거리가 멀고 보컬도 Johnny Marr가 직접 맡고 있어 분위기도 완연하게 다르다. 여하튼 Johnny Marr가 말하기를 이 앨범은 그의 옛날 팬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다른 종류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나를 따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난 그들을 즐겁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2 피치포크는 평하길 이같은 기준으로 보자면 앨범은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이 표현이 냉소적이든 아니든 나 역시도 그 의견에 공감한다.

Morrissey – I Am Not a Dog on a Chai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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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HDTracks에서 고음질 음원으로 구입하여 듣고 있다. 80년대 뮤지션 중에서 지금도 꾸준하게 앨범을 내고 있는 솔로 아티스트들을 꼽자면 생각나는 이들이 Talking Heads의 David Byrne, The Jam과 The Style Council의 Paul Weller, 그리고 The Smiths의 Morrissey 정도다. 모즈는 내가 듣고 있는 이 앨범을 작년에 발표했고 올해 또 새로운 앨범 Bonfire of Teenagers를 발표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참으로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분인데. 암튼 전체적인 톤은 ‘아 모리씨 솔로 앨범이구나’하는 느낌이다. 앨범 제목과 동명의 곡을 지금 듣고 있는데 앨범 제목과 동일해서 그런지 더 귀에 쏙 들어오는 느낌이긴 하다. 그리고 이전 곡에서는 상당히 강한 여성 백보컬을 사용해서 인상적이었다. What Kind of People Live in These Houses?라는 곡은 왠지 The Smiths 의 찰랑거리는 쟁글팝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여하튼 전체적인 곡들의 보컬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 사실 David Byrne의 보컬은 ‘이미 좀 나이 들었다’라는 느낌인데 – 톤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갖가지 기행(?)을 용서해줄 마음이 조금은 생긴다. 고집 꺾고 조니 마나 다른 멤버들과 화해하고 완전체로 내한공연을 펼쳐준다면 그의 모든 기행을 다 용서해주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까?

Strangeways, Here We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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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ths – Strangeways here we come”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The Smiths가 대중음악계에 – 특히 영국의 대중음악계에 –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활동한 시기는 실질적으로 80년대에 국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정규 앨범도 네 개뿐이다. Strangeways, Here We Come은 이러한 그들의 짧은 밴드 활동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다. 영국에서 1987년 9월 28일 발매된 이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2위에 올라 17주간 머물렀다.

The Smiths는 이 앨범을 1987년 3월부터 앨범 출시 전까지 영국 서머셋州 버킹턴의 울홀(Wool Hall) 스튜디오에서 녹음하였다. 모든 곡의 작곡은 Johnny Marr, 가사는 Morrissey가 맡는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Morrissey는 이 앨범에서 처음으로 악기를 연주하는데 “Death of a Disco Dancer“에서의 피아노 연주가 그것이다. 작업이 끝날 즈음 Johnny Marr는 그룹을 떠나고 밴드는 해체된다.

음악적으로 Marr는 이전에 그들의 음악을 특징졌던 “징글쟁글(jingle jangle)” 사운드를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예를 들면 The Beatles의 White Album 등으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했다. 밴드는 신디싸이저 섹서폰과 드럼머신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엔지니어 Stephen Street의 증언에 따르면 녹음작업은 늘 술파티로 끝났다고 하지만 Marr는 늘 그렇진 않았다고 변명했다.

리드 싱글은 “Girlfriend in a Coma“였다. Morrissey 특유의 냉소적 반전(反轉)이 녹아들어간 가사와 유머러스한 곡진행이 인상적이다. “Paint a Vulgar Picture“에서 Morrissey의 신랄함이 극에 달하는데 음반 산업의 상업성을 쌩얼 그대로 까고 있다. “I won’t share you with the drive and the dreams inside”라는 가사가 담긴 “I Won’t Share You”가 그룹의 마지막 앨범 마지막 트랙이라는 점도 시사적이다.

앨범 타이틀은 맨체스터의 악명 높은 Strangeways 감옥에서 따왔다(지금은 이름을 바꿨다). “Here we come”은 영화 Billy Liar의 “Borstal, here we come”이라는 대사에서 따왔다. 앨범 커버는 Morrissey의 작품으로 ‘에덴의 동쪽’의 출연배우 Richard Davalos가 James Dean을 바라보는 장면을 잘라내어 흐리게 하여 만들었다. 후에 WEA가 밴드의 컴필레이션을 만들 때에도 다시 이 배우의 사진이 쓰인다.

다른 앨범에 비해 음악적 평가가 좀 떨어지긴 하지만 이 앨범 역시 The Smiths의 레전드 필청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Slant 매거진은 “최고의 80년대 앨범”에서 이 앨범을 69위로 선정하였고, 나아가 뉴뮤직익스프레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개의 앨범”에서 이 앨범을 47위에 선정하였다. 그리고 Morrissey와 Marr는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이 앨범을 밴드의 최고의 앨범으로 여기고 있다.

Meat Is Mu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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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tMurder”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MorrisseyThe Smiths 멤버들이(나머지 멤버들이 자발적인 채식주의자인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락밴드임에도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은 락밴드에게 의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부순다. 이러한 편견을 파괴하게 되는 밴드의 가장 공공연한 선언이 바로 1985년 발표된 밴드의 2집 Meat is Murder다. Morrissey가 내한공연을 가졌을 적에 그는 앨범 명과 같은 제목의 노래를 연주 목록에 포함시켜 처연한 목소리로 불렀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커다란 눈망울의 소가 클로즈업 된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다. 육식을 좋아하는 스미쓰 팬들은 불편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이 노래를 들어야 했다.

이러한 다소는 마이너한 주장이 노골적으로 담긴 앨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eat is Murder는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밴드의 작품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이 되었다.(미국에서는 차트 110위까지 올랐다. 미쿡에서는 여전히 듣보잡) 하지만 Rolling Stone은 2003년 이 앨범을 The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296위에 선정하면서 그 뛰어난 음악성을 칭송하였다.(까탈스러운 평론가 Robert Christgau는 이 앨범에 C+ 등급을 매겼다)

1984년 데뷔 앨범의 프러덕션이 다소 실망스러웠던 Morrissey는 기타를 맡은 Johnny Marr와 함께 직접 앨범을 프로듀스하기로 결정하였다. 엔지니어링은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에서 처음 만났던 Stephen Street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정식 크레딧에는 프로듀싱을 “The Smiths”가 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Rourke와 Joyce는 자신들의 악기 연주의 믹싱 과정에서의 사운드레벨에 대한 조언을 하는 정도만 허락받았을 뿐이다.

앨범 트랙의 내용은 이전 앨범보다 더욱 더 정치적이고 직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Meat Is Murder”가 대표적인 작품이고 그 외에도 “The Headmaster Ritual”이나 “Barbarism Begins at Home”은 체벌에 대한 강한 혐오를 드러낸 작품이다. 음악적으로 밴드는 보다 실험적이 되었는데 “Barbarism Begins at Home”에서는 펑크(funk)적인 긴 후반부 연주를 시도하기도 했다.(베이스 Andy Rourke는 Level 42의 Mark King이라도 된 양 신나게 베이스를 연주한다)

Morrissey는 이즈음에서의 각종 인터뷰에서도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공격 대상에는 대처 정부도 있었지만 동료 뮤지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Band Aid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누구나 에티오피아인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걸 영국인에게 매일매일의 고문으로 주입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죠.”라고 대답하였다.

한편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싱글의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싱글로만 발표한 “Shakespeare’s Sister”는 차트에서 성공적이지 않았다. 앨범의 유일한 싱글 “That Joke Isn’t Funny Anymore”는 49위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How Soon Is Now?”는 원래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의 B면 수록곡이었는데 북미의 댄쓰클럽과 얼터너티브 래디오에서 인기를 얻어 북미에서 발매된 앨범에 함께 수록되었다. 결국 이 노래는 영국에서도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차트 24위까지 올랐다.

앨범 커버로도 늘 이야깃거리를 주는 The Smiths의 이번 앨범 커버는 베트남전에 참가한 군인인 Michael Wynn을 찍은 1967년 작품이다. 원래 그의 철모에 적혀 있는 글은 “Make War Not Love” 였지만 “Meat Is Murder”로 교체되었다. 오리지널 이미지는 Emile de Antonio의 1968년 다큐멘터리 In the Year of the Pig에서 빌려 온 것이다.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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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itwasreallynothing UKorig”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Rough Trade..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그가 벌거벗을 것을 본 마지막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Morrissey는 “나를 잔인한 세계로 끌어들인 그 의사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The Smiths의 많은 초기 싱글들이 그렇듯이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역시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십대의 성경험에 관한 이야기다. 이 노래의 경우에는 따분한 동네에서 벌어지는 삼각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알려지기로는 Associates의 리드 싱어 Billy Mackenzie와 Morrissey와의 짧은 인연에 관한 노래라 여겨지기도 한다. 1984년 8월 24일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 과 “How Soon Is Now?” 의 B면에 수록되어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17위까지 올랐다. 밴드가 Top of The Pops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에 Morrissey가 셔츠를 열어젖혔는데 그의 가슴에는 “Marry Me”라고 적혀 있었다. 이 노래의 가사 중 일부다. 후에 The Smiths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Hatful of Hollow와 Louder Than Bombs에 수록되었다. The Smiths의 엄청난 팬인 OutKast의 André 3000은 한번은 이 곡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롤링스톤은 이 곡을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서 431위에 선정했다.

뮤직비디오

The Smiths의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에 관해 당신이 모르는 20가지 사실

이 글에서 요약 발췌

The Smiths의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이 30년 전인 1984년 2월 20일 발매되었다. 이 앨범의 탄생에는 부족한 예산 등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오늘 날에는 완벽한 클래식으로 전 세계 락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글에서 당신이 모를 수도 있는 이 앨범에 대한 20가지 트리비아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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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iths The Smiths” by http://www.amazon.co.uk/Smiths/dp/B00002496V/ref=sr_1_1?ie=UTF8&s=music&qid=1273132134&sr=8-1. Licensed under Wikipedia.

1. 커버의 사진은 Andy Warhol이 프로듀스한 1968년 영화 Flesh의 스틸 중에서 배우 Joe Dallesandro의 모습이다.

2. 밴드는 처음에는 The Teardrop Explodes의 前기타리스트와 함께 Troy Tate라는 제목의 앨범을 녹음했었다. Morrissey가 “우리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바르게 해냈고 보면 알 것이다.”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John Porter와 함께 전체를 다시 녹음해야 했다.

3. 나중에 Mike & The Mechanics에 합류한 Paul Carrack이 이 앨범의 키보드를 치고 있다.

4. Morrissey는 가사 때문에 What Difference Does It Make?이 가장 싫어하는 스미쓰의 곡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안이하고 다소 쑥스러운…”

5. Suffer Little Children에서 들리는 여성의 웃음소리는 Pretty Girls Make Graves에서 “Oh really?”라고 말하는 부분은 몇몇 쏘스에 따르면 녹음 당시 Morrissey의 여자친구였던 Annalisa Jablonska 의 것이라 한다.

6. 많은 이들이 왜 The Smiths가 전설적인 맨체스터의 인디 레이블 Factory에서 발매되지 않았는지 의아하는데, 엄청난 팬이이자 Morrissey의 친구이기도 했던 Tony Wilson에 따르면 당시 레이블이 분쟁 중에 있었기 때문에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Morrissey에 따르면 Wilson은 Johnny Marr의 연주에 대해 “이 모든 Byrds의 곡들은 이미 연주되고 또 연주되었었다.”라고 했다고.(비웃는 톤인듯? – 역주)

7. Reel Around The Fountain의 멜로디에 대해 Johnny Marr는 “난 R&B 곡 Handy Man의 Jimmy Jones 스타일로 연주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8. The Smiths의 작업 타이틀은 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이었다.

9. John Porter와 함께 한 맨체스터의 플루토 스튜디오에서의 첫 녹음은 단지 6일이었다. 이 기간에 대부분의 녹음을 끝낸다. 그러나 Rough Trade가 그 뒤에 Sire 레코드사와 배급에 관한 계약을 해지한다. 이는 사운드에 살을 더 붙일 수 있는 예산이 남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10. 총 녹음비용은 6,000파운드가 소요됐다.

11. The Smiths는 Thompson Twins를 누르며 영국 차트 2위까지 오른다. Rough Trade의 한 쏘스에 따르면 “1위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당시 카세트를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12. 오리지널 앨범에서 싱글로 발매된 것은 겨우 두 곡이다.: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정규앨범 발매 후) 와 Hand In Glove (정규앨범 발매 전).

13. Morrissey는 Rough Trade의 사장 Geoff Travis과 John Porter에게 투자한 예산 때문에 앨범이 “맘에 들만큼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은 어쨌든 발매했다.

14. Hand In Glove의 가사는 극작가 Shelagh Delaney와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Leonard Cohen에 대한 언급이 있다.

15. Suffer Little Children는 라이브에서 딱 한번 연주됐다. 1982년 10월 4일 맨체스터의 The Ritz에서 열린 The Smiths의 생애 최초의 공연에서였다.

16. 앨범의 두 엔지니어 중 하나였던 Neill King은 지금은 북 캘리포니아의 와인 산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17. 최초의 트랙리스트에는 The Smiths의 발매 전에 싱글로 발매됐던 This Charming Man이 없었다. 이 노래는 나중에 영국의 카세트 버전에 보너스트랙으로 들어갔고, 미국 발매 시에는 모든 앨범에 들어갔다.

18. 앨범의 Hand In Glove 버전은 그들의 데뷔 싱글의 리믹스 버전인데, 밴드 스스로 Stockport에 있는 스트로베리스튜디오에서 250파운드를 들여 프로듀스한 작품이다.

19. What Difference Does It Make?는 프로모션 비디오없이 발매되었는데, Morrissey가 비디오는 “매우 빨리 소멸”하게 될 어떠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20. Morrissey는 Hand In Glove에서의 “우리가 비록 넝마 뒤에 숨겨져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무엇인가다.”라는 2행시가 가장 좋아하는 스미쓰의 가사라고 말했다.

Simon LeBon의 트윗

며칠 전에 듀란듀란의 싱어 싸이몬 르봉이 재밌는 트윗들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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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연주된 것도 아닌데 갑자기 The Smiths의 How Soon Is Now?가 생각났다면서 가사를 흥얼거린 – 사실은 트윗한 – 것이었다. 그 트윗을 보면 싸이몬 르봉이 “순이는 요즘 어때?”를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언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이를테면 Morrissey가 Union Of The Snake를 부르는 장면이 상상이 안 되는 것처럼). 다른 팔로워들도 재미있었는지 90여 차례 리트윗됐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이들이 “You shut your mouth”라고 멘션했다.

Morrissey 공연 후기 간단하게…

 출처 : @Kihang

처음 The Smiths의 존재를 안 것은 198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들의 존재를 거의 최초로 알린 이로 기억하는 복X주 씨의 글을 어느 음악잡지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다.(그 분도 어제 공연에 왔을까?) 글도 글이지만 멤버 네 명이서 반코트를 챙겨 입은 모습이 여느 메탈밴드는 물론이고 비슷한 음악을 하는 인디/뉴웨이브 계열과도 다른 분위기를 풍겨 인상적이었다.

그 뒤 외국에서 어렵사리 그들의 앨범을 구한 것이 라이브 앨범인 Rank. 그때가 1986년 아니면 87년으로 기억하는데 그들이 해산한 것이 1987년이었으니 시기적으로는 조금 늦게 그들의 음악을 접한 셈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 The Smiths의 음악은 나의 짧고 얇은 음악 듣기의 역사에 한 귀퉁이를 차지하였다. 정규앨범은 물론 국내 라이선스로 나오진 않았지만 90년대엔 수입CD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 확인해보니 Rank의 발매년도는 1988년. 내가 그 앨범을 얻었을 때는 이미 해산하였다.

Morrissey의 솔로 활동은 유명한 밴드 출신의 솔로 커리어 중에서도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듯하다. The Smiths 나긋나긋한 음악이 약간 하드코어적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팬들의 팬덤도 여전했다. 차트에 오르는 곡은 거의 없었던 것 같지만 팬들이나 모리씨나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Your Arsenal을 가장 좋아했다. The Smiths와 모리씨 사운드가 가장 화학적으로 잘 결합했다는 생각이 든다.

2012-05-06 033
기념품을 팔던 부쓰

어제의 공연은 그러니까 햇수로 따지면 그들을 안지 27년쯤 되어서야 과거의 프론트맨을 겨우 볼 수 있었던 공연이었던 셈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목소리의 상태를 유지하고 어느 정도 상업적 인기를 유지하여 마침내 동북아 먼 곳 서울에까지 공연을 와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그 역시도 자신의 커리어에서 코리아에 오게 될지 몰랐다는 취지의 말을 공연 중에 한 것으로 기억난다. 몰랐겠지.)

공연장은 예상했던 바, 관객의 적어도 1/3이상이 외국인이었다. 동행한 이에게 말했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에 이렇게 많아지지 않았더라면 모리씨의 공연은 더 지연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인 관객들도 예상보다 많았던지라 크지 않은 공연장이었지만 적어도 중년의 성긴 머리처럼 객석이 비지 않아 보일 정도의 밀도는 됐다. 게다가 스탠딩 앞의 반응은 손 한번 잡아달라는 애타는 팬심까지 연출하였다.

그 덕분인지 공연은 나름 탄력을 받아 탄탄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모리씨의 음색은 깔끔했고 셋리스트는 – 다른 나라에서의 셋리스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 적당한 강약을 유지하며 흐름을 탈 수 있도록 진행되었다. The Smiths 시절 곡이 네 곡 소개되었는데 역시 예상했던 대로 모리씨는 Meat Is Murder와 I Know It’s Over를 불렀고, 사실 이 두 곡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퍼포먼스는 Let Me Kiss You에서 연출되었다. 신체적으로 열등한 한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눈을 감고 네가 신체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연상하면서 내가 키스하게 해달라’는 예의 모리씨스러운 가사의 곡인데, ‘눈을 뜨면 네가 신체적으로 경멸하는 누군가를 볼 것이다’라는 가사 부분에서 모리씨가 웃통을 벗어젖히고 셔츠를 관객석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덕분에 그곳은 난투장으로 돌변. 🙂

첫 곡으로 소개되지 않았던 First Of The Gang To Die는 예상대로 앵콜에서 등장했다. 기분상의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사운드가 왠지 헤비하지 않아서 곡 자체는 앵콜곡에 어울렸지만 왠지 대미를 장식하기에는 부족한 공허함이 있었다. 게다가 앵콜곡은 단 한 곡.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1시간 20분에 불과한 공연에 앵콜이 한 곡 밖이었니 27년을 기다린 보상심리를 채우기는 조금은 부족했다.

다시 오라 모리씨. 두 번 와라!

Setlist
How Soon Is Now?
You Have Killed Me
Everyday Is Like Sunday
Alma Matters
You’re the One for Me, Fatty
Shoplifters of the World Unite
I’m Throwing My Arms Around Paris
Speedway
To Give (The Reason I Live)(Frankie Valli cover)
Meat Is Murder
Let Me Kiss You
Black Cloud
I Will See You in Far-Off Places
I Know It’s Over
Ouija Board, Ouija Board
When Last I Spoke to Carol
One Day Goodbye Will Be Farewell
Last Night I Dreamt That Somebody Loved Me
First Of The Gang To 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