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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 Rain(1984)

프린스는 마이클잭슨과 함께 80년대 흑인음악 – 어쩌면 전체 팝음악 – 의 양대산맥을 이루던 걸물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마이클잭슨은 건전한 가수, 프린스는 퇴폐적인 가수의 이미지를 상반되게 가지고 있었다. 물론 후에 마이클잭슨이 더 변태적으로 사회에서 낙인찍히긴 했지만 ….

1984년 Prince 가 자주색의 이미지로 포장된 Purple Rain 이라는 앨범과 동명의 영화를 들고 나왔던 그 시기가 그의 음악경력에서는 최고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이후에도 이에 필적할만한 음악적/상업적 성과를 낸 앨범들을 발표하기는 하였으나 그의 존재감이 그렇게 눈부신 시기는 이전이나 이후에 찾아볼 수 없었다. Purple Rain 과 When Doves Cry 라는 최대의 히트곡일지라도 나머지 곡들이 히트곡에 묻어간다는 느낌이 없이 제각각 빛을 발하는 앨범이 바로 Purple Rain 이다. 그리고 이 앨범의 수록곡들이 착실히 연주되고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영화가 바로 동명의 영화 Purple Rain 이다.

앨범과 같은 해인 1984년에 공개되었으나 프린스는 이미 우리나라 검열당국에게 찍혀 Let’s Go Crazy 와 Darling Nikki 가 금지곡으로 분류되었으니 만큼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가 공개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다만 해외 연예계 소식을 전하는 TV프로그램 등 다른 매체에서 이 영화의 부분장면을 맛보기로나마 볼 수 있었을 따름이다(삼성 비디오플레이어 선전에서도 이 영화의 자료를 썼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이 영화는 프린스를 위한, 프린스에 의한, 프린스의 영화이다. 음악이 영화를 설명해주기 위해 쓰였다는 느낌보다는 영화가 음악의 (퍼포먼스의) 빈 공간을 메워주기 위해 땜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프린스의 반자전적인 스토리라고 하는 오이디프스컴플렉스적인 갈등과 반목, 그리고 Apollonia 라는 야심만만하고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양념일 뿐이고 역시 프린스의 화려하고 육감적인 노래와 공연이 이 영화의 줄기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심정이 “감독님 참 밸도 없으십니다^^”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을 정도다. 여하튼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점수를 매기라 한다면 100점 만점에 공연은 100점이고 드라마는 50점인데 공연이 전체 영화의 80%는 차지하는 것 같으니 100*80%+50*20% 해서 90점이라는 높은 점수가 나오는 상황이 되고 만다. 🙂

결국 아무려나 영화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영화가 신나고 재미난 경우가 비단 이 영화뿐이겠는가. 그래서 B급 영화가 인기를 얻는 것이고 컬트가 있는 것이고 우리네 인생이 삼류라는 것 아니겠는가.

비록 요즘의 레트로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많이 놀림당하기는 하지만 – 대표적으로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 – 프린스와 80년대 음악의 팬이라면 이 영화의 심히 부담스러운 당시의 패션과 춤들, 그리고 프린스의 그 거창한 모터사이클이 전혀 촌스럽다거나 유치하지 않게 다가올 것이다. 프린스 사단이었던 The Time 의 Jungle Love 와 Apollonia 6 의 Sex Shooter 등도 즐거운 볼거리이고 일종의 악역으로 등장한 The Time 의 리더 Morris Day 도 썩 훌륭한 연기를 – 어쩌면 프린스보다 한수 위의 – 보여주었다.

Against All Odds(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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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stallodds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Virgin, Atlantic.. Licensed under Wikipedia.

주제가에 이만큼 파묻힌 영화가 있을까?80년대대중의 감성을날카롭게 자극했던 유명감독 Taylor Hackford에(사관과 신사의 그 감독)Jeff Bridges, Rachel Ward, James Woods 등 유명배우들이 멕시코 환상적인 경치의 휴양지며유적지 돌아가며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Against All Odds 라는 표현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오로지 Phill Collins 의 애절한 발라드로만 기억될 뿐이다.

이유를 되짚어 보자면 첫째, 노래가 너무 명곡이었다(갑자기 “따봉”을 외치던 그 광고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따봉”은 기억하는데 그 쥬스의 브랜드는 기억 못하는 그런 철저히 실패한 광고). 둘째, 느와르란 장르는 80년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당대의 스타 Jeff Bridges, Rachel Ward가 전라의 연기를 펼치는가 하면 걸출한 느와르 배우 Richard Widmark가 측면지원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80년대의 왠지 들뜬 분위기는 안티히어로와 팜므파탈이 매력을 발산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관객들은 차라리 같은 해 나온 코믹한 형사물 Beverly Hills Cop의 손을 들어주었다. 셋째, 결정적으로 영화가 수렴되는 맛이 없고 산만하다. 남미의 환상적인 피난처에서의 두 연인의 뼈를 불사르는 사랑에서 느닷없이 LA로 건너뛰더니 주인공 Terry는 악당들을 한방에 보낼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쥐고 있음에도 별 이유도 없이 악당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만다.

그럼 영화가 재미없었냐 하면 ‘정말’ 재미있다. 적당한 긴장감, 멋지게 펼쳐지는 경치, 유치하지만 그래서 볼만한 로맨스(또는 육욕), 적당히 건드려지는 물질문명의 야욕 등 느와르의 구성요소를 모두 갖추었고 나름 잘 믹스도 시켰다. 문제는 이러한 통속성이 잘 어우러져 화학적으로 융합이 되어야 하는데 조금씩 삐끗 하다는 느낌이 이질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아무려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Rachel Ward의 뒤로 흐르는 주제가가 이 모든 것을 보상해준다. 몇 안 되는 80년대 느와르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으신 분에게 추천. 물론 ‘제대로’ 된 80년대 느와르를 원하시면 Body Heat 를 추천.

Quadrophenia(1979)

“’모드족’은 1960년대 영국의 가난한 백인 노동자 계층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다. 당시 영국의 젊은이들은 모드족과 ‘로커족(Rockers)’들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기성 세대에 대한 반항과 일탈이라는 점만 빼곤 둘은 모든 면에서 대립을 이루었다. 로커족들은 머리를 길게 길러 머릿기름을 잔뜩 바르고, 가죽 재킷을 입고 가죽 부츠를 신고, 육중한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녔으며, (당연하게도!) 시끄러운 록 음악을 듣고, 헤로인을 복용했으며 ‘클럽 59’를 본거지로 삼았다. 반면 모드족들은 유별날 정도로 외모에 집착해 깔끔한 헤어스타일, 최신 유행의 옷차림으로 거리를 누볐으며 가죽 잠바 대신 파카를 주로 입었고, 모터사이클 대신 스쿠터(scooter)를 타고 다녔고, 록 음악 대신 모던 재즈나 리듬 앤 블루스를 주로 들었으며 헤로인 대신 암페타민(Amphetamine)이라는 각성제를 복용했으며 ‘카나비 스트리트 (Carnaby Street)’를 본거지로 삼았다.”

이쯤이 대충의 모드족에 대한 정의이고 보다 자세한 정보를 위해 여기를 방문하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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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drophenia movie” by [1].. Licensed under Wikipedia.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모드족의 시조라 할 수 있는 The Who 가 1973년 발표한 록오페라 앨범 Quaderphenia 를 기초로 만든 영화다. 그룹이 그들을 따라다닌 팬의 이야기를 기초로 썼다는 이 앨범은 그들의 걸작 Tommy 와 같은 하나의 컨셉트앨범으로 전체 앨범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고 이 영화는 그 줄기를 따라가고 있다. 1964년 모드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는 Jimmy Cooper 는 직장에 다니고는 있지만 다만 그것은 모드족의 생활이 유지될 만큼만 돈을 벌면 그만인 직장이다. 스쿠터, 음악, 친구들, 그리고 Blues 라 불리는 환각제 … 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록커들과 사사건건 시비를 붙던 Jimmy와 그 패거리들은 급기야 길거리에서 몇몇 록커를 폭행하는데 그중에는 Jimmy 의 어릴 적 친구도 끼어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갈등은 동물들의 영역싸움과 다를 바 없는 거칠고 비이성적인 것이었다. 항상 이상한 패션과 음악에 심취해 있는 Jimmy를 부모는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Jimmy 가 마음이 뺏겨 있는 Steph는 나름대로 Jimmy에게 호감을 보인다. Bank Holiday 에 브라이튼의 해변에 모드족과 록커족이 모여든다. 이 과정에서 두 진영은 심각한 패싸움을 벌이고 경찰이 출동하여 사태를 진압한다. Jimmy는 이 소요의 흥분에 젖어 Steph 과 골목길에서 성관계를 갖지만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법정에서 Jimmy는 우상이었던 Ace Face(The Police의 Sting)와 연대감을 느끼고 뿌듯한 마음에 집에 돌아왔지만 부모와 직장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듣고는 직장을 때려치워 버린다. 그런데 이런 그를 환영해 줄줄 알았던 친구들이 웬일인지 Jimmy에게 시큰둥하고 그새 Steph 는 그의 친구와 어울려 다닌다. 상심한 Jimmy는 브라이튼으로 돌아가 그날의 승리감과 성적 쾌감을 곱씹어보지만 그것은 한 순간의 덧없는 희열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는 그의 우상이었던 Ace Face 가 호텔 벨보이로, 조직의 순응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목격하고 뼈 아린 배신감을 느낀다.

http://www.modrevival.net/
http://en.wikipedia.org/wiki/Quadrophenia_(film)

Splash(1984), Mannequin(1987)

80년대 대중문화의 분위기를 표현하라면 무언가 잔뜩 부풀어 있고 유치한 듯 하면서도 흥겨웠던 분위기였다(물론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은 지극히 암울했지만). 특히 영미권의 대중문화는 흥겨운 뉴웨이브 음악, 어깨가 잔뜩 올라간 옷과 헤어밴드 등의 화려한 패션 등이 이러한 분위기를 한껏 부추겼다. 영화 역시 이 시기에는 팝적인 분위기가 만발하였고 많은 대중취향의 영화가 장르를 불문하고 코믹하고 경쾌하게 그려졌다. 여기 소개하는 두 편의 영화 모두 그러한 기운이 한껏 느껴지는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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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 ver2” by www.impawards.com. Licensed under Wikipedia.

Splash(1984)와 Mannequin(1987) 이 두 편의 영화는 당대의 스타였던 톰행크스, 앤드류맥카시, 다릴한나, 그리고 킴캐드럴(섹스앤더시티에서 밝히는 그 누님) 등을 주연으로 기용한 로맨틱코미디다. 이 두 영화는 또한 중요한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데 바로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두 연인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Splash 에서의 히로인은 인어이고 Mannequin 에서의 히로인은 마네킹이었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Splash 는 잘 아시다시피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그리고 Mannequin 은 그러한 맥락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일종의 현대판 로맨스 동화인 셈이니 영화가 재미만 있다면 얼마든지 익스큐즈해줄 설정이고 실제로 두 영화 모두 재미는 보장한다. 한편으로 두 영화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은막에서 재현하고 있는데 급진적인 여성해방론자라면 약간은 짜증이 날만도 한 스토리이다. 역시 다릴한나가 출연한 또 하나의 80년대 로맨스코미디 Roxanne 에서는 못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성공하는 데도 그 반대의 경우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 영화계의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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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quin movie poster” by The post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Metro-Goldwyn-Mayer.. Licensed under Wikipedia.

어쨌든 두 연인 모두 세간의 사람들에게 들킬 새라 조마조마한 사랑을 나누게 되고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개인적으로 아이디어의 참신성은 떨어지지만 극의 밀도감이나 폭소를 자아내는 몇몇 에피소드가 뛰어난 Splash 가 더욱 맘에 든다. 또 결국 남자가 여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를 따른다는 점에서도 약간은 여성해방론자의 구미에도 맞을 일일지도 모르겠다.

* Splash 에서 영화 마지막에 감미로운 주제가 Rita Coolidge 의 Love Came For Me 가 깔리면서 두 연인이 해저를 헤엄치면서 인어왕국으로 가는 장면은 제법 감동적이다. 한편 Mannequin 의 주제가는 그 유명한 Starship 의 Nothing’s Gonna Stop Us Now 이다.

Mystery Train(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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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ery Train” by http://www.impawards.com/1989/posters/mystery_train_ver2.jpg. Licensed under Wikipedia.

브릿팝 그룹 Pulp 의 Jarvis Cocker 가 그의 노래에서 ‘모든 사람들은 여행자들을 싫어한다(Everybody Hates Tourists)’고 독설을 내뱉긴 했지만 사실 여행자들은 불쌍한 존재다. 도시가 표방하고 있는 하나의 상징을 쫓아 불나방처럼 찾아들지만 그것은 멀리서 보았을 때나 아름다웠을 신기루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일본인 남녀가 찾은 썬 스튜디오가 대표적인 예다. 수많은 명가수들이 녹음했다는 스튜디오는 관광 가이드가 잰 걸음으로 가이드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허름하고 좁은 공간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또 다른 여행자는 더욱 심하다. 죽은 남편의 관과 함께 로마로 향하는 한 여인 – 바로 로베르토베니니의 아내인 그 여배우 – 은 비행편의 문제로 억지로 멤피스에 머물게 된 것이다. 잡화상의 호객행위 때문에 원하지도 않던 잡지책을 잔뜩 사들고 길을 헤매는 와중에 엉뚱한 사기꾼에게 20달러까지 뜯긴 신세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토박이들의 이야기다. 이들에게 멤피스는 여행자들이 느끼는 그 어떤 상징성으로 다가오기보다는 그저 서로 아옹다옹하고 을러대는 지루한 삶의 터전일 뿐이다. 잡화점 주인을 살해하고 도망 다니다 호텔로 피신을 온 두 백인과 한 흑인에 관한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밀도 깊게 만들어진 에피소드라고 생각된다. 유명한 공상과학 TV 시리즈에서 제목을 따온 이 에피소드에서 결국 이방인들은 제 갈 길을 알아서 찾아가는데 정작 토박이들은 갈 길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 이 영화는 서부영화의 명배우 Lee Marvin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감독 Jim Jarmusch, 음악 John Lurie, 그리고 극중 라디오 DJ 로 목소리가 등장하는 Tom Waits 가 한결같이 Lee Marvin 의 아들들인 것 마냥 그를 빼다 닮았고 급기야 이를 의식한 Jim Jarmusch 가 이들을 모아 무슨 비밀단체를 결성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모여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 세 번째 에피소드에는 고인이 된 The Clash 의 Joe Strummer 가 문제아 Johnny 로 등장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엘비스만큼이나 위대한 이 인물이 엘비스를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했고, 또 그 영화를 그가 죽은 이 시점에서 감상하자니 왠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여인이 목격한 엘비스의 유령만큼이나 묘한 이질감과 쓸쓸함이 느껴진다.

Happiness

‘행복’이라는 인간본연의 철학적 주제에 해당하는 거창한 제목의 이 영화는 과연 그 제목에 걸맞게 행복의 에센스를 파고들지는 못하였을지라도 우리가 어떻게 엉뚱한 것들을 붙잡고 행복이라고 우기고 있는지에 대한 몇 가지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마치 우디알렌의 ‘한나와 그 자매들’을 연상시키는 세 자매의 에피소드를 축으로 그녀들의 부모, 남편과 애인, 그리고 이웃집 사람들을 차례로 등장시키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고민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첫째 언니의 남편이 지니고 있던 아동에 대한 동성애적 감정을 다소 호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개봉 당시 격론에 휘말려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 변태적 성욕을 지닌 아버지와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는 열한 살짜리 어린 아들 역을 맡은 소년의 연기였다. 그에 반해 허영의식에 찌들어 살던 그의 아내의 감정변화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이 없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결국 막판에 이 소년은 자위행위를 통한 오르가즘을 통해 ‘행복’에 도달하는데 보는 내 입장에선 약간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물론 소년의 잘못이 아니고 감독의 잘못이다. 그럴 거면 제목이 너무 거창했기 때문이다.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1946년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 뜨내기 건달, 학대받는 아내, 둘의 공모, 이를 모르는 그리스인 남편, 느와르가 갖추어야할 기본문법을 착실히 갖춰놓고 진행되는 이 영화는 성행위의 적나라한 묘사로 인해 개봉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런 구설수 때문에 국내에서는 ‘우편 배달원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는 개봉제목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고 바꾸는 해프닝도 있었다(대체 우편 배달원과 포스트맨의 차이가 뭐람).  하지만 영화는 노골적인 성애영화라거나 – 물론 웬만한 성애영화보다도 성적묘사가 탁월하다 – 전통적인 느와르하고는 약간 다른 노선을 걷는다. 영화는 둘의 범죄행위가 과연 죽음으로 단죄 받을 만큼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살짝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범죄의 요소만 빼고 본다면 서로 다른 성격의 상처받은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적 성격도 강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극의 진행은 이 건달과 남편 살해범이라는 두 커플이 해피엔딩을 맺을지도 모르는 희망을 관객에게 넌지시 암시한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서 일어나는 어이없는 사고는 ‘마치 인간은 미워하지 못해도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라고 관객을 희롱하는 것만 같다. 잭니콜슨의 애절한 눈물연기가 인상적인 라스트신이었다.

Clerks

비번인 가게 점원 Dante Hicks 는 12시까지만 가게를 봐달라는 사장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열었다. 애인 Veronica 가 놀러왔는데 섹스 상대 숫자 때문에 싸우고 예전 애인이었던 Caitlyn 은 아시아 디자이너와 결혼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완벽한 달걀을 찾는다는 손님은 바닥에 온통 계란을 늘어놓고 이상한 짓을 다하고 사장은 뒤늦게 먼 도시로 떠나버린 것으로 드러난다. 마틴스콜세스의 ‘After Hours’ 가 가게 안에서 펼쳐지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Dante Hicks 의 하루는 그야말로 엉망진창 그 자체다. Kevin Smith 에 늘 등장하는 ‘제이와 조용한 밥’이 이번에도 예외없이 등장하고 ‘조용한 밥’ – Kevin Smith 본인 – 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침묵을 지키다 최후의 순간에 주인공에게 깨달음을 주는 몇 마디를 건넨다. 이런 저런 재치 있는 대화가 땅콩 까먹는 것 같은 재미를 주는 영화.

El Topo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은유와 상징으로 인해 소위 지적인 관객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도입부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El Topo(우리말로 두더지를 의미하며 감독 Alejandro Jodorowsky가 배역을 맡았다)는 벌거숭이 아들과 함께 정처 없이 떠돌다가 한 마을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한 여인 Mara를 괴롭히고 있는 무법자들을 처치한다. 뱀과 같은 유혹의 혀를 가진 그 여인의 꾐에 빠진 El Topo 는 아들을 수도사에게 맡긴 채 사막에서 여러 무림의 고수들과 대결을 하여 최고의 무림 고수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마침내 모든 무림 고수들을 처단하지만 홀연히 나타난 또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진 Mara 는 그를 배신한다.

총상을 입은 El Topo 는 수년이 흐른 어느 날 동굴 속의 현자로 부활하고 그 동굴 속에는 영화 Freaks 의 흉측한 장애자들을 연상시키는 주민들로 가득 차있었다. 난쟁이 여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오랜 기간의 근친상간으로 말미암은 것이었고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되었다는 것이다. El Topo 는 수도승의 복장을 한 채 마을주민들을 구원할 터널을 파기로 결심한다(그래서 주인공 이름이 ‘두더지’일지도 모르겠다). 마을로 가서 터널을 팔 돈을 버는 과정에서 El Topo 와 난쟁이 여인은 마을이 도덕적으로 파탄했음을 알게 된다.

난쟁이 여인은 이런 마을로 다시 돌아와야 되는지 의문을 품지만 El Topo 는 공명심에 이 충고를 무시한다. 우연히 그 마을에는 El Topo 가 버린 아들이 신부가 되어 돌아와 그들을 만나게 되고 복수심에 불탄 아들은 El Topo 가 터널을 다 판 그 순간 죽일 것을 결심한다. 터널을 다 판 후 아들은 도덕적 갈등으로 복수를 포기한다. 동굴 속의 주민들이 마을로 내려갔지만 마을 주민들은 혐오감을 나타내며 그들을 살육한다. 분노에 찬 El Topo 는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라버린다.

종잡을 수 없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종횡무진 하는 이 작품에 담긴 기독교적, 불교적 메타포는 관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작품은 그러한 메타포에 앞서 – 감독이 의도하였던 하지 않았던지 간에 – 이른바 ‘남성성’의 어리석음을 각인시키고 있다. 영화 초반부 El Topo는 여인의 꾐에 빠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영화 후반 이번에는 여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헌신과 희생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마저 실패하자 자기 성질 못 이기고 자살을 택한다. 결국 어느 길이든 순리를 역류한 그의 삶은 파탄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택하자면 그는 Let It Be 의 자세를 택하여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John Lennon 이 이 영화의 팬으로 판권을 샀다고 한다).

1971년 당시로서는 생경한 심야영화로 개봉되어 컬트팬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었던 작품으로 영화산업의 볼모지인 멕시코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난 걸작이다. Alejandro Jodorowsky는 이후 그래픽노블의 대가 뫼비우스와 함께 종교적 SF ‘잉칼’을 만드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Immortel Ad Vitam

불어권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만화가이면서 종합예술인을 지향하는 Enki Bilal 이 자신의 걸작으로 불리는 소위 ‘니코폴 3부작’을 직접 감독을 맡아 영화한 작품이다. 독수리 머리를 한 신 Horus,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당했다가 Horus 에게 이용당하는 – 또는 구원받는 – Nikopol, 수수께끼의 여인 Jil 은 원작에도 이 영화에도 모두 등장하여 중심 스토리를 구성한다. 다만 그 역할은 많은 차이가 난다. 몇 년에 걸쳐 꾸준히 발표되어 마침내 3부작을 이룬 원작은 영화 한편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스토리와 상징적인 은유를 담고 있기 때문에 부득불 Enki 는 비슷한 설정을 새 스토리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장소는 원작의 파리 대신 뉴욕. 뉴욕 하늘에 언젠가 모르게 피라미드 모양의 거대한 우주선이 떠있고 그 안에는 동물머리를 한 고대 이집트의 신들이 머물고 있다. 영원한 삶을 박탈당할 위기에 있는 Horus 에게 단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는 Nikopol 의 몸속에 들어가 자신의 영원성을 이어줄 – 즉 아기를 낳아줄 – 여인을 찾는데 그가 바로 Jil 이다. 이러한 연유로 원작에서 일종의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역할을 했던 Horus 는 대를 잇는데혈안이 된 신으로 나오고,나름대로 정치적인 행보를 걸으면서 전체주의 사회를 새로운 평등사회로 탈바꿈시켰던 Nikopol 은 그저 호텔방에 누워 섹스나 하는 기둥서방으로 변신하고 만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것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이 아닌가 싶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은 영화 캐릭터에서 아예 3D로 만들어진 캐릭터와 실제 배우간의 눈에 거슬리는 부조화이다. 어떠한 연유에서였는지 3D 캐릭터는 눈에 띄게 둔탁하여 극의 몰입을 방해하였고 이는 작화에 있어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Enki 에게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실수 – 또는 불가항력? – 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패착은 – 이 또한 불가항력이겠지만 – 관객들에게 너무나 불친절한 내러티브이다. 제5원소와 비슷한 분위기이면서도 – 물론 이 영화에도 Enki 가 많은 도움을 줬다지만 – 제5원소의 나름의 신화적인 분위기에서도 단순한 내러티브가 주는 상업적 고려를 이 영화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다. 그렀더라면 골수팬들일 유럽 관객을 타깃으로 했어야 할 터인데 앞서 말했듯이 배경도 뉴욕으로 옮기고 언어도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좌충우돌이다. 뭐 이렇게 된 이상 또 누군가가 나서서 몇 년 후에 저주받은 걸작으로 레벨업 시켜줄지 모르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감독으로서의 Enki 의 역량은 아직 만화가로서의 Enki 의 그것에 비해 떨어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