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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eche M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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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erecke dm“. Via Wikipedia.

인구 20만명에 극장이라고 하나 밖에 없던 변두리마을에서 데뷔앨범의 수록곡 대부분을 작곡한 빈스가 디페쉬모드를 나가겠다고 하자 주변사람들은 혹시 그룹이 깨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했지만 그 는 “나보다 더 뛰어난 송라이터 마틴이 있으니 그런 걱정은 필요가 없다”고 우려를 잠재웠다.사실 그의 말대로 디페쉬 모드는 오늘날까지 건재하다. 빈스는 이후에 1982년 Yazoo를 결성하여 활동 하다가 1983년 다시 해산,1985년도에 오늘날의 Erasure란 그룹을 탄생시켜서 활동중에 있다.

앤디가 그룹을 탈퇴하고 나온후 디페쉬모드의 음악은 마틴의 독특한 작곡법으로 오늘날까지의 많은 히트를 거두어 왔다.디페쉬모드는 곧 새 키보드플레이어 앨런와일더(Alan Wilder)를 영입하여 다시금 진용을 갖춘다.당시만 해도 앨런와일더는 임시 멤버같은 처지였지만 이후 그가 리코일 (Recoil)이란 프로젝트 활동을 하기 위해 잠시 탈 퇴한 것을 빼면 최근까지 세 멤버들과 희노애락을 같이 해오게된다.

팝적인 단순미를 선호하는 빈스 클락의 취향과과는 현격히 차이를 보이는 앨런 와일더의 셈세한 감각은 1982년의 두번째 앨범’A broken Frame’과 다음해 발표한 세번째 앨범 ‘Construction Time Again’그리고 “People are People”의 세계적인 히트로 유명해진 앨범 ‘Some Great Reward'(review)에 이르기 까지 마틴 고어의 드라마틱한 작곡이나 데이빗 간의 깊고 어두운 목소리와 함께 신스 팝의 새로운 지 평을 얻었다.특히 ‘Some Great Reward’는 “People are People”외에도 “Blasphemouse Rumours”, “Master And Servant”등의 싱글들로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연이은 앨범들 즉 ‘Black Celebration’,’Music For The Masses’는 디페쉬 모드의 전성기를 장식한 작품들 이다.

1986년에 발표된’Black Celebration’은 그다지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마치 한편의 멜로드라마와 같은 멋진 구성미를 갖추어 그들의 프로그레시브한 면을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다. 이듬해의 ”Music For The Masses’는 그때까지 가장 커다란 상업적 성과를 거둔 작품이었다. 초창기 앨범들의 곡을 썼던 빈스의 활발한 댄스음악적 스타일에 비해 마틴이 맡게 된 디페쉬 모드 의 사운드는 진지하고 엄숙해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디페쉬모드의 음악적 개성이 되었다.

80년대 중반까지 매년 1장씩 꾸준히 전개되었던 이들의 사운드는 나날이 발전해 가는 새로운 기종의 신서사이저 덕으로 보다 커진 스케일의 새로운 곡들을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표현법으로 선보여왔다. 이들의 계속되는 실험적인 전자사운드는 많은 비판과 사춘기 소년 소녀들을 노리는 음악으로까지 평가절하 되기도 하였는데 90년 초에 발표한 역작 ‘Violator’는 그런 이미지를 단번에 일축해 버렸다.

다니엘 밀러 대신 플러드(Flood)와 함께 제작했던 ‘Violator’에서는 “Policy Of Truth”, “Personal Jesus”, “Enjoy the Silence”, “World In My Eyes”등이 싱글로 사랑을 받았다. 예전의 작품들과는 전혀 색다른,세련되고 어두운 분위기와 뉴 웨이브 모델로 새로운 팬들을 끌어 들이기도 한 ‘Violator’의 세계적인 성공은 이후 1993년 발표한’Songs of Faith & Devotion’ 을 발매 첫주 빌보드 차트의 정상에 올려놓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I Feel You”, “Walking In My Shoes”,”In Your Room”등의 메가 히트로 ‘Songs Of Faith & Devotion’은 비틀즈의 첫번째 앤솔로지 앨범이 나오기 이전까지 1993년 유일하게 미국 차트에서 넘버원을 기록한 영국앨범이었다.

그러나 커다란 성공뒤에 그들은 몇가지 위기를 겪게 되는데, 1993년에서 다음해로 이어지는 ‘Devotion Tour’로 고어와 플레처는 지칠대로 지쳤고 임시 멤버로 들어와 눌러앉아서는 그들과 13년간 이나 함께 생활해 온 앨런 와일더는 탈퇴를 선언했다. 데이빗 간 역시 정서적으로 문제가 심각해져서 자해를 하거나 약물과다복용으로 경찰에 연행되는 등 안좋은 일들은 연달아 일어난다라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악재가 이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1996년 데이빗 간이 약물에서 벗어났다는 공식적인 발표와 함께 그들은 새앨범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통산 12번째 앨범인 ‘Ultra’는 4년간의 스튜 디오 작업의 결과물이다. 프로듀서는 또한번 바뀌 었는데, 수년간 디페쉬 모드의 곡들을 리믹스해왔던 밤 더 베이스(BAMB THE BASS)의 배후세력 팀 심논(Tim Simenon)이 바로 그이다. 힙합 리듬을 차용하여 또 한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첫 싱 글 “Barrel Of A Gun”에서 특히 팀의 역량은 십분 드러난다. 기발매된 이 싱글의 리믹스들 중 두개는 언더월드(UNDERWORLD)에 의해 만들어지기도했다.사근사근한 댄스 비트에 드라마를 싣고 있는 “It’s No Good”이나, 신비로운 흐름을 가진 “Uselink” 와 “Useless” 의 연결, 그리고 페달 스틸 기타가 한껏 애수를 느끼게 하는 “The Bottom Line”, “Home”, “Free- state”, “Insight”등 지금까지 토탈3천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한 베테랑답게 이번 앨범에서도 그들은 그 어둡고 깊은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펼쳐내고 있다.

이들의 히트곡들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인기있는 수많은 그룹들에 의해서 다시 리메이크되어서 Tribute Album형태로 나오기도 했는 데 이앨범에 참가한 그룹들을 보면,Smashing Pumpkins,The Cure,Rammstein등의 소위 잘나가고 있는 쟁쟁한 그룹들이 참가하였고 인터뷰에서도 DM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한편 98년10월에 이들의 3번째 베스트 앨범격이 되는 ’86-98 싱글베스트’ 앨범을 내놓고 다시 새 로운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최근발표한 이 베스트 앨범에선 그야말로 히트중의 히트곡만을 모아 놓은듯하며 여태까지 DM의 앨범을 단 한장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이앨범 한장이면 충분할것으로 보 일만큼 팬들에게 만족스런 앨범이 될것이다.

2001년 Exciter와 함께 돌아온 그들이 이제는 어느새 거장의 소리를 듣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디스코그래피
1981 Speak and Spell Sire
1982 A Broken Frame Sire
1983 Construction Time Again Sire
1984 People Are People [US] Sire
1984 Some Great Reward Sire
1986 Black Celebration Sire
1987 Music for the Masses Sire
1990 Violator Sire
1991 We Just Can’t Get Enough [live] MTT
1993 Songs of Faith & Devotion Sire
1993 Songs of Faith & Devotion Live Sire
1995 Depeche Mode Mute
1997 Ultra Reprise
1998 Speak & Spell [Germany] EMI
2001 Exciter Warner
2005 Playing The Angel Sire/Reprise/Mute
2006 Touring the Angel: Live in Milan [CD/DVD] Reprise / Wea
A Broken Frame [10 Tracks] Mute
2009 Sounds of the Universe Capit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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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wded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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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wded-house1” by Andwhatsnext, aka Nancy J Price – http://andwhatsnext.com/band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72년 Brian Timothy Finn, Phil Judd, Mike Chunn, Miles Golding, Mike Howard는 New Zealand에서 Split Enz를 조직했다. Finn과 Judd의 주도아래 그들은 서서히 인기를 얻어갔다. 이들의 음악에 매료된 Roxy Music의 Phil Manaznera는 그들을 London으로 데려가서 녹음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룹이 지속된 12년 동안 그들은 몇몇 히트곡을 보유하게 되었고 원래의 라인업은 대폭 교체되었다. 교체멤버 중에는 후에 Crowded House의 주축멤버가 된 드러머 Paul Hester와 Neil Finn(Tim Finn의 형제)이 포함되어 있었다. 1985년 Neil Finn과 드러머 Paul Hester는 베이시스트 Nick Seymour와 함께 새로운 그룹 Crowded House를 조직했다. 이듬해 그들은 셀프타이틀 앨범을 내놓았다. 이앨범에서는 Something So Strong과 Don’t Dream It’s Over가 크게 히트했고 마침내 1987년 2월 이 앨범은 미국차트 탑40에 진입하여 마침내 12위까지 진입하였다.

* 놀랍게도 Split Enz의 바이오그래피 Stranger Than Fiction 전권을 스캔해놓은 페이지가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6 Crowded House Capitol
1988 Temple of Low Men Capitol
1991 Woodface Capitol
1993 Together Alone EMI-Capitol
1998 Woodface [UK Bonus CD] EMI

Vega, Suz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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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zanneVegaLebanonNH” by Mattge3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싱어/쏭라이터 Suzanne Vega는 뉴욕의 스패니쉬할렘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그녀의 노래 중 많은 부분은 바로 이 거대하고 다양한 문화적 지형을 가지고 있는 도시에서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명성은 영국의 뉴웨이브 아티스트들과 함께 한 작업에서부터였다. 1985년 발표된 그녀의 데뷔앨범은 미국의 비평가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일반청중들로부터도 지지를 얻었다. 그녀의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11위에까지 올랐다. 미국 청중들은 1986년 영화 Pretty in Pink에 그녀의 노래가 수록되고 나서야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4월에 발매된 그녀의 두번째 앨범 Solitude Standing은 아동학대를 주제로 한 싱글 Luka가 크게 히트하면서 탑20에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이 앨범에는 또한 그녀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어준 Tom’s Dinner가 수록되어 있다. 이 노래는 발표 당시에는 소폭의 인기를 얻는데 그쳤으나 1990년 영국의 샘플링팀 DNA가 아카펠라인 원곡에 적절한 리듬과 연주를 삽입하여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탑텐에 오르는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디스코그래피
1985 Suzanne Vega [A&M]
1987 Solitude Standing [A&M]
1990 Days of Open Hand [A&M]
1992 99.9?F. [A&M]
1993 In Concert [live] [One World]
1996 Nine Objects of Desire [A&M]
2001 Songs In Red and Gray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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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

A blue-tinted photograph of musicians in front of an industrial background. From left to right: a long-haired male stands with his back to the camera playing bass guitar, a middle-aged Caucasian male sings into a microphone, a middle-aged Caucasian male plays behind a black-and-silver drum set on a riser, and a guitar player is mostly cropped from the extreme left of the photo.
By Flickr user Stark (Stefano Andreoli) – https://www.flickr.com/photos/scaccia/39502728/, CC BY-SA 2.0, Link

한창 헤비메틀이 기승을(?) 부리던 80년대 우리나라에서 R.E.M은 일부 80년대판 모던락 팬들에게서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전설의 밴드였다. 필자가 그들의 음악을 처음 접한 것도 기껏해야 80년대 말 명동 수입 씨디 가게에서 구한 Eponymous를 통해서 였다. R.E.M의 초기 다섯장의 앨범에 대한 Greatest Hits의 성격을 띄고 있었던 이 앨범을 통해 접한 그들의 음악은 이전에 필자가 접했던 뉴웨이브 음악이나 헤비메틀과는 또다른 무언가가 담겨져 있었다. 뉴웨이브라고 부르기에는 무겁고 메틀이라 부르기에는 발랄한 묘한 중도노선을 걷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이른바 모던락이니 얼터너티브니 하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 이들 음악은 사실 칼리지락이라고 부르면 딱 알맞을 스타일의 음악이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소위 지성팬 또는 열성팬들의 지지를 얻었다는 데서 착안한 칼리지락은 장르상으로는 한 테두리에 두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지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R.E.M, Talking Heads, Television 등으로 대표되는 칼리지락의 선구자들의 면면을 보면 구분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즉, 우선 키타를 중심으로 한 키타팝 내지는 키타락 위주의 싸운드를 뽑아낼 수 있다. 흔히 jangle pop이라고도 불리는 이 음악의 특성은 명칭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쟁쟁거리는 키타싸운드를 그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싸운드는 소위 초기 뉴웨이브 밴드들로 불리웠던 많은 밴드들의 – 특히 미국의 – 주된 특징이기도 하다.

칼리지락(college rock)의 대표주자들의 또 하나의 특징을 들자면 소위 지성파 밴드라고 불리웠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먹물 많이 드신 양반들이 아무 음악이나 골라들을 수는 없고 소위 내용과 형식면에서 일정정도 지적 만족감을 채워줄 수 있는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R.E.M은 바로 그러한 지적인 오만을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밴드였던 것이다.

R.E.M의 음악적 성향을 정의해주는 용어는 이외에도 많다. 이른바 Post Punk로 분류되기도 하고 그들의 후기(최근의 음악)는 확실한 얼터너티브 밴드로 자리매김하는 등 시대를 넘어선 다양한 장르를 포괄(사실 스타일을 바꾼 건 별로 없다. 시대가 그들을 달리 불렀을 뿐일지도). 여하튼 80년대 언더그라운드에 머물러 있던 garage 운동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내면서 얼너티브라는 90년대를 대표하는 락장르의 대선배로 불리우기 까지 그들의 공헌도는 혁혁하였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디스코그래피

1982 Chronic Town (IRS)
1983 Murmur, 2 (IRS)
1984 Reckoning (IRS)
1985 Fables of the Reconstruction (IRS)
1986 Life’s Rich Pageant (IRS)
1987 Document (IRS)
1988 Green (Warner)
1988 Eponymous
1991 Out of Time (Warner)
1991 Audio-Visual (Import)
1992 Automatic for the People (Warner)
1994 Monster (Warner)
1996 New Adventures in Hi-Fi (Warner)
1998 Up (Warner)
1999 Star Profiles (Master Dance)
2001 Rev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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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페이지

Chapman, T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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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y Chapman 3” by Hans Hillewaert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흑인 여가수라면 뚱뚱한 체구에 쏘울풀한 가스펠을 불러 젖히거나 섹시한 몸을 흔들며 댄스팝을 들려주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가수가 흑인에다가 여성이라면 소위 ‘지성’보다는 ‘감성’에 의존할 것이라고 치부해버린다는 사실이다. 물론 상당수의 흑인 여가수가 그러한 현실이 사실이지만 여기 소개하는 Tracy Chapman 은 그러한 선입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물이다.

사실 그녀의 걸어온 삶을 살펴보면 교회에서 성가대로 활동하다가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가수로 데뷔하였다는 흔해 빠진 흑인 여가수의 성공스토리와는 사뭇 다른 구석이 있다. 클리블랜드의 노동계급의 동네에서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 기타를 배우며 자신의 곡을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Tufts 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인류학과 아프리카학을 배웠다. 대학에서 포크락에 매료된 그녀는 커피하우스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학우의 우연찮은 도움으로 레코드 관계자의 눈에 띈 그녀는 Neil Young, Joni Mitchell 등과 일한바 있는 Elliot Roberts와 매니저 계약을 맺고 1987년 Elektra와 레코드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80년대 후반 싱어-송라이터의 포크적 전통을 회복한 그녀의 데뷔앨범의 엄청난 성공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그녀는 이 앨범에서 심플한 멜로디에 선명성을 띈 가사에 실어 자신의 생각을 매우 신선하고 파워풀하게 전파하였다. 이 앨범에서는 “Fast Car”가 싱글차트 6위에 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 그래미는 그녀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비롯한 4개의 트로피를 안겨주어 그녀와 그녀의 앨범을 한껏 칭송하였다.

그녀가 앨범을 낼 당시에 Tracy와 같이 프로패갠더적 행동가를 자처하는 가수는 거의 씨가 말라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녀의 성공은 90년대 10,000 Maniacs나 R.E.M. 기타 컬리지락 씬에서 활동하던 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른’ 가수들 의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한껏 고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집에서 너무 많이 꿀맛을 본 가수들이 의례 그렇듯이 그녀 또한 이어지는 앨범들에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고 – 여전히 비평은 호의적이었지만 – 1996년 네 번째 앨범에서 탑텐싱글 “Give Me One Reason”을 히트시키며 차트 일선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지난해인 2002년에도 신보 Let It Rain을 내며 시들지 않는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8 Tracy Chapman Elektra
1989 Crossroads Elektra
1992 Matters of the Heart Elektra
1995 New Beginning Elektra
2000 Telling Stories Elektra
2001 Telling Stories [Bonus CD] WEA
2002 Let It Rain Elektra
2002 Let It Rain [Australian Bonus Track] W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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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racy Chap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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