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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ring Boys

웬만한 80년대 음악 팬일지라도 Roaring Boys라는 이름은 낯설다. 소위 one hit wonder의 대열에 합류한 House Of Stone이라는 곡이 이들의 유일한 히트곡이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소폭의 히트였기 때문에 특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Roxy Music 스타일의 뉴웨이브 싱글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매력적인 곡으로 그들의 음악성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1986년 미국에서 발매된 셀프타이틀 앨범이 이들의 유일한 정규앨범이다.

 뮤직비디오

Run D.M.C.

Run-D.M.C. 는 사운드와 스타일면에서 랩음악의 기초를 다진 주요한 아티스트이다. 이들 트리오의 헤비메틀 음악을 이용한 샘플링과 강렬한 비트는 이전의 랩음악에 비해 보다 터프하고 위협적이었다. 음악의 내용 역시 Public Enemy처럼 보다 정치색을 띄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처음으로 여러 곡이 빼곡히 들어찬 앨범을 발매함으로써 이전의 싱글 위주의 랩음악을 앨범위주의 음악스타일로 발전시켰다.

멤버들 셋은 당시 노동계급 출신 아이들에 의해 주도되던 힙합계에서는 특이하게도 뉴욕 자치구의 중산층 계급 출신들이었다. Run(본명 Joseph Simmons, 1964년 11월 14일생)은 ’80년대 초 힙합 매니지먼트 회사인 Rush 프러덕션을 운영하던 Russell Simmons과 형제간이다. Russell은 ’80년대 중반 Rick Rubin과 함께 Def Jam이라는 선구자적인 레이블을 만들었다. Russell은 그의 동생과 친구 Darryl McDaniel(1964년 5월 31일생)가 랩듀오를 결성하도록 격려하였다. 이들은 Run D.M.C.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198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턴테이블을 스크래치하는 역을 맡을 친구 Jason Mizell(무대이름 Jam Master Jay, 1965년 1월 21일생)을 끌어들여 3인조로 진용을 갖추었다.

1983년 Run D.M.C. 는 첫싱글 “It’s Like That” / “Sucker M.C.’s”을 Profile 레코드사에서 발표하였다. 이 싱글은 그 당시의 다른 랩들과는 달리 파워풀한 비트와 대담한 보컬 – 각각이 서로의 라인을 마치고 오버랩시키는 형태로 녹음된 – 로 진행되는 곡이었다. 이 곡은 R&B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고 두번째 싱글 “Hard Times” / “Jam Master Jay.”역시 인기를 얻었다. 1984년초 “Rock Box”와 “30 Days”가 연이어 발표되었다. 이어서 그룹의 데뷔앨범 – 앨범명이 붙지 않은 – 이 발표되었다.

1985년 두번째 앨범 King of Rock이 발매될 즈음 Run D.M.C. 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인기있는 래퍼들이 되어 있었다. 앨범명에서도 암시되고 있듯이 그들은 헤비메틀의 거칠고 두터운 드럼 루프 등을 그들의 음악에 도입함으로써 록앤롤과 랩의 장벽을 깨부수고 있었다. 이 앨범에서는 “King of Rock”, “You Talk Too Much”, “Can You Rock It Like This” 등이 R&B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룹은 또한 Krush Groove – Kurtis Blow, the Beastie Boys, the Fat Boys 등도 출연했던 – 라는 랩무비에도 출연하였다.

Run D.M.C.의 락과 랩을 넘나드는 휴전랩적인 시도는 1986년 발표된 세번째 앨범 Raising Hell을 통해 메인스트림에서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는데 Aerosmith의 Steven Tyler와 Joe Perry가 녹음작업에 참여한 “Walk This Way”는 팝차트 4위까지 오르며 랩을 백인들의 가시권에 올려다 놓았다. “Walk This Way”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Raising Hell은 R&B 차트에서 1위에 오른, 팝차트 10위에 진입한, 그리고 플래티넘을 기록한 최초의 랩앨범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Run D.M.C. 는 메인스트림에서 성공을 거둔 최초의 랩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된것이다.

이어진 앨범 Tougher than Leather(1987)은 Run D.M.C.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는 등 축제 분위기 속에서 발매되었다. 이 영화는 ’70년대 흑인영화(Blaxploitation films : 흑인관객을 대상으로 흑인이 주연을 맡은 B급 영화로 퀜틴타란티노가 이러한 경향의 영화에 열렬한 팬이었다 함. 그러한 애정의 표시로 그는 재키브라운이라는 영화를 찍었음)의 패러디였다. 그러나 이 즈음 랩의 트렌드는 바뀌어 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힙합 팬들은 Public Enemy와 같은 하드코어적이고 보다 정치적인 색채를 띈 래퍼들을 선호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Run D.M.C. 와 같은 크로스오버적인 래퍼들은 아닌 것이다. 영화는 실패했고 앨범은 간신히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히트싱글은 나오지 않았다.

Tougher than Leather의 2년 후 Run D.M.C. 는 Bank from Hell이라는 앨범으로 돌아왔다.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하지 못하였고 멤버들은 알콜 중독(Daniels), 강간(Simmons) 등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Daniels가 술을 끊고 Simmons의 강간 혐의가 기각되자 둘은 크리스챤이 되었다. 1993년 Down with the King은 종교적 색채를 띈 가스펄 앨범이 되고 말았다. 여기엔 수많은 동료 랩아티스트들이 참여했는데 Public Enemy, EPMD, Naughty by Nature, A Tribe Called Quest, Neneh Cherry, Pete Rock, KRS-1 등이 그들이다. 타이틀트랙은 R&B차트 탑10에 진입하였다. 오랜 스튜디오 작업후에 2000년 그들은 Crown Royal로 팬들에게 다시 그들의 모습을 드러냈다.

디스코그래피
1984 Run-D.M.C. Profile/Arista
1985 King of Rock Profile/Arista
1986 Raising Hell Profile/Arista
1988 Tougher than Leather Profile/Arista
1990 Back from Hell Profile/Arista
1993 Down with the King Profile/Arista
1999 Crown Royal Ari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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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Page

Roxy Music

Roxy Music - TopPop 1973 03.png
Roxy Music – TopPop 1973 03” by AVROBeeld En Geluid Wiki – Gallerie: Toppop 1973.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아트락과 프로그레시브 그리고 아방가르드가 적절히 접목되었던 이색그룹 “Roxy Music”의 청사진이 그려진 것은 1970년 11월, 브라이언 페리의 두뇌에서 시작되었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오랜 친우인 베이시스트 그래험 심슨과 록시뮤직에 동승할 인재들을 서서히 캐스팅하기 시작했으며, 그 노력의 소산으로 키보디스트 브라이언 이노와 목관악기의 귀재 앤드류 메케이, 그리고 나이브한 드러머 덱스터 로이드와 나이스 출신의 키타리스트 데이빗 오우 리스트 등을 규합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워낙 다양한 개성의 인재들이 모였던 부작용으로 1972년에 선보인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을 전후해서 데이빗과 덱스터가 그룹을 등졌고, 그 후임으로 이미 로컬그룹(Smokestack)에서 명성을 높이고 있던 휠 멘저네러(키타)와 폴 탐슨(드럼)이 가입,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는다. 킹크림슨의 철학적인 가사담당으로 널리 알려졌던 피터 신훨드의 제작으로 등장했던 록시뮤직의 첫앨범은 [Virginia Plain]과 [Pyjamarama] 같은 히트곡을 배출하면서 영국챠트 1위에 오르는 성공적인 거보를 내딛었다.이후 다소의 멤버교체를 단행하여 발표했던 73년초의 2집 [For Your Pleasure], 73년 말의 3집 [Stranded](당시 18세였던 천재 에드윈 좁슨 가입), 74년의 4집 [Country Life], 75년의 5집 [Siren], 76년의 6집이자 실황앨범이었던 [Viva Roxy Music] 등에 이르기까지 5년동안에 예지가 번뜩였던 6매의 명반을 토해낸후 더욱 실험적인 사운드를 구사하기 위해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79년에 재결성되어 [Manifesto]를 발표)휠 맨저내러는 [Diamond Head]를, 앤디 메케이는 존 케이지의 제자답게 전위적인 작품세계를 [In Search Of Eddie Riff]를 통해 각각 노출했으며, [Quiet Sun : Mainstream]이라든가 [801 : Live]같은 진취적인 실험앨범의 주역으로 역시 “록시뮤직” 패밀리들이 참여했고, 브라이언 페리는 수많은 솔로앨범을 통해 리더의 역량을 과시하기 했다.

디스코그래피
1972 Roxy Music Virgin
1973 For Your Pleasure Virgin
1973 Stranded Virgin
1974 Country Life Virgin
1975 Siren Virgin
1976 Viva! Virgin
1979 Manifesto Virgin
1980 Flesh + Blood Virgin
1982 Avalon Virgin
1983 The High Road [live] Reprise
1990 Heart Still Beating [live] Virgin
2000 Valentine [live]
2001 Live Pilot
2001 Live Roxy Music Album At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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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싸이트
Lyrics

Romeo Void

Romeo Void.jpg
Romeo Void” by www.RomeoVoid.net.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Romeo Void“>Fair use via Wikipedia.

라인업 : Debora Iyall(Vocals), Benjamin Bossi(Saxophone), Peter Woods(Guitar), Frank Zincavage(Bass)

79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뉴웨이브 계열 그룹으로 당시 Post-Punk라는 신조류에 주목하고 있던 415 레코드에 스카우트 되어 81년에 메이저 데뷔했다. 다소 선이 굵은 편이지만 매력적인 보컬의 – 언뜻 Siouxsie & the Banshees의 Siouxsie Sioux를 연상시킨다 – 여성 싱어 Debora Iyall 을 중심으로 섹스폰이나 퍼커션을 도입하여 독특한 음악세계를 추구한 그룹이다. 작곡은 Peter Woods와 Frank Zincavage, 가사는 Debora Iyall, 팀의 독특한 칼라는 섹스폰의 Benjamin Bossi에 의해 주도되어 조화로운 역할분담이 이루어졌던 이 그룹의 히트곡은 “A Girl In Trouble”, “Never Say Never” 등이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1 It’s a Condition [415]
1982 Benefactor [Columbia]
1984 Instincts [Columbia]
1992 Warm, In Your Coat [Columbia/Le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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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bora Iyall Fan Page
Biography

Rockwell

강박증 환자가 불렀음직한 노래 “Somebody’s Watching Me”가 발표되었을 때 정작 곡 자체보다는 ‘코러스 부분에 Michael Jackson이 참가했다’, ‘Rockwell이 Motown 레코드사의 창립자인 Berry Gordy의 아들이다’ 와 같은 가쉽이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사실들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본인도 이러한 사태를 미리 예견하였는지 이름을 아예 Rockwell – 그의 고등학교 시설 밴드의 이름이었다 한다 – 로 바꿔버렸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음악 그 자체로 평가받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 하다. 사실 그는 그의 아버지도 모르게 Motown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첫 싱글 “Somebody’s Watching Me”는 앞서 말했듯이 Micael Jackson이 코러스로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던 곡이다. 마치 트왈라잇존의 주제음악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멜로디와 Rockwell의 강박적인 읊조림, 하이톤의 후렴구가 묘한 조화를 이룬 이 싱글은 싱글차트에서는 탑텐을, R&B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뒤이은 발라드 Knife가 커다란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팝팬들의 정서에 맞는 가요 스타일의 멜로디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비슷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를 얻었던 곡으로는 Falco의 Jeanny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성공가도는 여기까지였다. 뒤이은 싱글들은 외면을 받았고 앨범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One Hit Wonders의 일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디스코그래피
1984 Somebody’s Watching Me [Motown]
1985 Captured [Motown]
1986 The Genie [Mo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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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body’s Watching Me 비디오 리뷰

Richie, Lionel

Lionel Richie 2012 2.jpg
Lionel Richie 2012 2” by Georges Biard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Lionel Richie(본명 Lionel Brockman Richie, Jr., 1949년 6월 20일 생) 는 80년대에 가장 성공한 남성 솔로 가수였다. 이 기간 동안 그와 대적할만한 상대는 Michael Jackson 과 Prince 정도였다. Richie 는 같은 흑인이면서도 앞서의 두 사람들보다 더욱 백인적인 – R&B라기보다는 어덜트컨템포러리에 가까운 – 색채를 띠며 팝차트를 누비고 다녔는데 무려 13개의 싱글이 1981년과 1987년 사이에 탑10에 올랐고 그 중 다섯 곡은 1위를 차지했다.

Richie 는 원래 70년대 후반 매우 성공적인 The Commodores의 일원이었다. 여기서 그는 섹서폰을 맡았고 가끔 보컬과 작곡을 맡기도 했다. 그가 쓴 곡은 “Easy,” “Three Times a Lady,” , “Still” 과 같은 듣기 편한 발라드였다. 이 곡들 중 뒤의 두 곡은 그룹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되기도 했다. 작곡에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던 Richie 가 Kenny Rogers 의 히트곡 “Lady”를 작곡해주고 Diana Ross 와 함께 “Endless Love”를 부르면서 점점 Richie 는 그룹생활에 싫증을 내기 시작하였다. 1981년 말 Richie 는 그룹을 떠났다.

이후 그의 솔로 경력은 적어도 80년대에 있어서만큼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놀라운 성과를 낳았다. “Truly”, “All Night Long (All Night)”, “Hello” 등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해내며 앨범을 수백만 장씩 팔아치웠다. 특히 앨범 Can’t Slow Down 이 1984년 그래미에서 그해의 앨범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상세 내용 보기) 그러한 인기여세를 몰아 그는 1984년 LA 올림픽에서 폐막식 공연을 장식했다.

1985년 팝역사에 하나의 획을 긋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것은 Michael Jackson 과 공동작곡한 자선 싱글 “We Are the World” 였다. 영국이 주도한 Band Aid에 대한 일종의 대항마 성격의 이 자선 싱글은 거물급 팝스타들이 총출동하여 아프리카의 기아에 대한 전 세계의 참여를 독려하였다.(비록 그것이 자선적 성격에 그치고 말았지만) 하지만 이는 Artists United Against Apartheid 와 같은 더욱 급진적인 노래운동을 낳는 가교가 되기도 했다.

여하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Richie 에게 이 순간이 절정의 순간이었다. 이후 앨범은 여전히 인기 있었지만 Can’t Slow Down 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여전히 그는 앨범을 내며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화려했던 80년대, 그 시절의 스포트라잇은 그이 것이 아니다.

디스코그래피
1982 Lionel Richie Motown
1983 Can’t Slow Down Motown
1986 Dancing on the Ceiling Motown
1996 Louder Than Words Mercury
1998 Time Mercury
2001 Renaissance Island
2002 Encore [International Version] [live] Mercury
2004 Just for You Island
2004 Encore [U.S. Version] [live] Island
2004 Just for You [UK 14-track Version] Universal/Merc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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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onel Richie Worldwide Headquarters

Revenge

Revenge 는 New Order 의 베이시스트 Peter Hook 의 사이드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상업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즉 Hook 자신은 Joy Division 과 New Order에서 이룬 성과를 한 단계 뛰어넘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나 양자의 장점 어느 한 부분에도 만족할만한 성취도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은 1990년 런던의 한 파티에서 라이브공연을 하며 데뷔했다. 그 해 데뷔앨범 One True Passion을 내놓았다. 싱글 Pineapple Face 의 비디오가 선정적인 장면 때문에 방영금지되었다. 1992년 EP Gun World Porn을 내놓았다. 1992년 Revenge 가 해체된 후 Hook 은 New Order 로 돌아왔다. 1997년 Hook 은 다시 Monaco 라는 사이드프로젝트를 재개했다.

Member : Peter Hook(base/vocal), Dave Hicks (guitar), Chris “CJ” Jones (keyboards)

디스코그래피

1990 One True Passion Capitol
1992 Gun World Porn Capitol
2001 Handle With Care Brennus
2005 No Pain No Gain Live 1991 L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