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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house

클래식을 배운 송라이터인 Iva Davies가 70년대에 Flowers라는 이름을 결성한 호주밴드에서 기원한다. Roxy Music 과 David Bowie에서 영향받은 이 밴드는 1980년 처음 ‘Can’t Help Myself’라는 히트곡을 낸다. 이듬해 같은 이름의 다른 미국 밴드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밴드 이름을 데뷔앨범의 제목이었던 Icehouse로 바꾼다. Iva Davies는 솔로 활동에 주력하기 위해 1982년 밴드를 해산했다가 라인업을 재정비하여 재결성한다. 1988년 그룹의 최고 히트곡인 ‘Electric Blue’가 미국 차트에 오른다.

소개하는 비디오는 The Kingdom은 Roxy Music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흔적이 남아있다. 흥미롭게도 역시 Roxy Music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또 하나의 80년대 밴드 Roaring Boys의 Heart of Stone과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다.

뮤직비디오

장기하가 선택한 첫 번째 앨범 : Roxy Music의 [Siren]

“제가 1집을 준비할 때 외국 밴드 중 가장 마음속에 있던 기준이 된 밴드예요. 잘 짜여진 음악인데, 굉장히 ‘골 때리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게 제가 딱 하고 싶었던 스타일의 음악이거든요. 저는 음악을 들을 때 어떤 범주에 들어가는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떤 경계에 있는 음악을 좋아하죠. 록시 뮤직의 보컬은 너무 느끼해서 웃기기도 하고 무대 매너도 아주 독특해요. 그래서 더 섹시한 것 같아요. 이 앨범은 대부분 전위적인 이들의 앨범 중에 유일하게 팝적인 느낌이 강한 음반이에요. 저 같은 사람이 듣기에 딱이죠. 수록곡 중 ‘Love Is The Drug’는 제가 거의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형태의 대중음악 중 하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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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an Duran 블로그에 올라온 Roxy Music DVD 리뷰

One of the most influential bands of all time, Roxy Music gets a well-deserved and expertly produced career retrospective in this new DVD. Originally broadcast by the BBC in late 2008, the documentary covers the entire active recording career of the band as well as their recent reunions. The DVD expands on the original broadcast with nearly a half hour of additional interviews, as well as three previously unreleased live tracks from a 2006 London concert. 전문보기

영국 테크노의 역사

영국 테크노의 역사는 곧 테크노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국의 테크노의 태동에서 변천을 거쳐 현재의 대중화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비단 테크 노만이 영국 대중 음악의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경향을 대변해온 장르는 아니겠지만, 테크노의 변천 추이를 되짚어 보면 7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모든 영국 대중 음악의 기술적인 발자취와 거의 상통한다는 점에서 진보정신의 순수한 모태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테크노의 기원과 기본적인 틀은 독일에서부터 시작됐지만 그 형식의 다양성과 실용성을 갖춰 다각적인 테크노의 붐을 일으킨 것은 영국의 몫이었다.
영국이 공업으로 일어선 나라이고 온갖 공장들이 각처에 즐비하게 흩어져 있다지만 소규모 전자 제품이나 악기를 만드는데는 그다지 신통한 재주가 없었던 관계로 영국의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악기를 구입할 수 밖에 없었고 웬만큼 악기레 이블의 협찬을 받거나 밴드의 지명도가 있기 전까진 사구려 중고 악기에 의존하는 뮤지션들이 많은 것이 음악 강국 영국의 현실이었다.

그런 탓에 영국의 테크노는 테크노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선 중견 뮤지션들이나 비교적 생활이 윤택했던 인텔리 출신의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시작될수 밖에 없었고, 그런 탓에 대중 지향보다는 아트록과 결합되거나 뮤지션의 화려한 테크닉을 선보이기 위한 솔로 앨 범의 도구로 이용될 뿐이었다(독일과는 달리 젊은 뮤지션들 사이에 테크노 바람이 일기까 지는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굳이 조그마한 바(bar)나 클럽에서 공연을 할 이유가 없었던 부유한 테크노 뮤지션들의 대개는 아트 스쿨 혹은 공학도 출신이었는데 그런탓에 실존적이고 실용적인 사운드를 표출하기 보다는 자기 도취적이고 약물과 연계를 맺은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들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사이키델릭과 아트록의 붐에 편승해 등장한 전자 사운드를 표출하는 여러 실력파 밴드들은 첨단기기에 대한 연구를 거듭한 끝에 기계적 비트와 갖가지 다양한 효과음을 실전에 활용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테크노 취향의 음악들로 방향을 우회하게 된다. 70년대 초 공간과 시간에 대한 묘사를 담은 호크윈드(Hawkwind)를 비롯한 스페이스 록 밴드들이 바로 영국 테크노의 시발점인 셈이다.

인간적인 풋풋한 연주보다는 치밀하게 계산된 극단적인 표현양식을 추구한 이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화제를 모으자 각종 전자음악을 구사하는 밴드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했고 그 중 74년은 테크노와 전자 사운드의 기념비적인 해로 일렉트로폰(Electrophon)의 Zygoat, 세븐스 웨이브(Seventh Wave)의 Things to come등의 명반들과 브라이언 이노의 초기 앰비 언트적인 작품들이 속출한 시기였다.

특히, 브라이언 이노는 글램적인 요소가 다분한 록시 뮤직(Roxy Music)에서의 활동을 끝 으로 각종 프로젝트 결성에 열을 올리게 되는데 로버트 프립, 로버트 와트와 펼친 일련의 작품들은 스페이스 록 차원이 아닌 그 이상의 진보성과 의미를 지닌 작업들이었다. 이후 패트릭 모라즈, 릭 웨이크만, 마이크 올드필드, 릭 라이트 등의 건반 연주자와 리퓨지, 킹덤 컴 등의 밴드들이 신서사이저/키보드로만 일관된 음반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테크노의 기법상의 발전을 도모하는 계기로 두번째 변혁이었던 것이다. 그후 78년경 브라이 언 이노가 표방한 앰비언트에 대한 연구, 천재 뮤지션 에디 좁슨등이 발견되면서 신서사이저 와 드럼 머쉰을 통한 원맨 밴드 붐이 가열됐고 테크노는 매니어들 음악의 최상의 선택으로 끊임없는 지지를 얻게 된다.

80년대 이후 테크노는 영국 대중음악 신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다시금 인식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바로 댄스 음악과의 접목을 통하면서부터다. 이것은 70년대 말엽까지의 매니어 취향, 혹은 극단적인 실험 음악 형태의 테크노를 벗어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으로 변모했다 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왜 이러한 테크노의 댄스 뮤직화의 시발점이 하필 영국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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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Big Ben Phone box” by , wiki+spam@eindruckschinderdomain.de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2.5 via Wikimedia Commons.

그것은 앵글로 색슨족의 자기 우월주의와 타인종, 문화에 대한 배타적인 사고방식에서 이유 를 찾을 수 있다. 흑백이 공존하는 그리고 식민지 작업을 통해서 많은 인종을 거느리고 있 었던 영국이었지만 유독 백인 위주의 문화만이 토착화 되면서 영국에는 흑인의 그루브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그런 연유로 마땅한 댄스음악이 생성될 수 없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은 안팎으로 상황이 좋았다. 댄스음악 빈곤에 대한 자기 반성과 함께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던 디스코가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쳐 주춤하면서 전자 음악의 힘을 빌기 시작한것이다(아울러 영국에는 많은 수의 악기들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다소간의 흑인 음악을 추구하는 가수들은 디스코로 패셔너블한 부분들에 관심을 갖던 모던 보이들은 뉴 웨이브(New Wave)로 각각 제 갈길을 찾기 시작했다. 두가지 음악은 공존하면서 기술적인 많은 부분들을 협력하기 시작했는데 이 즈음부터 테크노는 그 세력을 독일에서 영국으로 옮겨오기 시작한 것이다.

카바레 볼테어, 조이디비전으로 시작된 뉴 테크노 사운드의 움직임은 휴먼 리그(Human League), 뉴오더(New Order), ABC, 하워드 존스(Howard jones),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등 팝과 테크노 댄스를 혼합한 음악들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영국 음악의 부흥은 시작됐다. 하지만 80년대 중반까지 펼쳐진 일련의 음악들은 테크노라는 의미보다는 전자음악, 뉴 웨이브라는 의미로 통용될 뿐이고 또 확실히 기계에 의존하는 부분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80년대 말 앰비언트라는 장르와 인디펜던트라는 의미, 매니어용 댄스라는 구분이 알려지면서 대도시 클럽과 소규모 공연장을 중심으로 분파가 갈려지기 시작했고 테크노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거듭됐다. 유투(U2)와 데이빗 보위(David Bowie) 같은 대스타들이 새로운 조류와 브라이언 이노 같은 대 뮤지션을 섭렵하여 자랑스레 대중앞에 섰고 테크노 는 단숨에 인디펜던트 음악에서 오버그라운드, 메인스트림으로 돌변하게 되었다.

믹싱 DJ나 스튜디오 맨에 불과하던 사이드 뮤지션들이 모두 거리로 뛰쳐나와 관중을 포섭 하기 시작했고 하나 둘씩 스타밴드들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모던록/얼터너티브란 모호함을 함축한 장르가 가세하면서 상승세의 테크노 뮤지션들까지 덩달에 매체에 알려지 게 되었고 그들 역시 상종가를 누리면서 모던록 스타들의 뒤안길에서 믹싱 작업을 조달하 던 테크노 보이를 청산하고 서서히 전면에 나설 채비를 해가고 있었다. 록 음악에서 제휴 한 과격한 행동과 사운드를 선보이기 시작한 프로디지(Prodigy)나 케미컬 브러더스(Chemical Brothers)와 같은 팀들이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빅히트를 하게 되자 테크노는 완연한 대중 가요로 정착되게 된다.

테크노가 완연한 인기를 얻을 즈음 영국에선 괴이한 현상이 발병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무분별한 장르의 탄생이었던 것이다. 테크노의 수직 상승이 장르 탄생의 모태가 된 셈인데 덥(Dub), 트랜스(Trance), 레이브(Rave), 트립 합(Trip Hop),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 하드코어 테크노(Hardcore Techno), 신스 팝(Synth Pop)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는 수많은 장르들이 탄생했고 단명했으며 다른 장르와 연대하여 또 다시 생성했고 장르에 관한 설명서 가 있어야 할 정도로 너무나 많은 장르와 명칭에 혼란을 겪게 됐다. 90년대 말로 치닫는 현재의 테크노는 이제 브릿팝(Brit Pop)이라는 화두를 무참히 잠재우고 영국을 넘어 세계 각지에 그 세력을 확장 시키고 있는 영국 대중 음악의 최고의 장르이자 글로벌 사운드가 되어있다.

http://myhome.shinbiro.com/~www098/techno2[1].html

Techno

★ 테크노의 역사

테크노는 말 그대로 기술(技術)이란 의미의 ‘Technology’ 에서 따온 단어이다. 20세기의 대표적인 발명품인 컴퓨터의 탄생은 음악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바로 신디사이저라는 첨단 악기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테크노 음악도 이와 발맞추어 탄생하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 영국의 록시 뮤직 (Roxy Music), 브라이언 이노 (Brian Eno), 독일의 탠저린 드림 (Tangerin Dream), 크라프트베르크 (Kraftwerk) 등 유럽 지역의 진보 성향 뮤지션들은 신디사이저를 도입해 더욱 실험적인 음악을 발표했는데 이들이 만들어낸 전위적이면서 신비주의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뒤에 등장하는 테크노 음악의 기초가 되었다. 이러한 초기 테크노 음악은 70년대 후반 디스코, 펑크라는 신조류의 영향을 대거 수용한 형태로 변모하게 된다. 테크노 팝이라고도 불리우던 이 당시 테크노 음악은 팝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사운드로 전과는 달리 대중적인 인기 또한 얻을수 있었다. 버글즈 (Burgles), 게리 뉴만 (Gary Numan), 울트라복스 (Ultravox), 휴먼 리그 (Human League) 등이 당시 주목받던 뮤지션들이다. 한층 발전된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예전의 실험적인 사운드에서 탈피하여 뉴웨이브 (New Wave), 뉴 로맨틱 (New Romantic), 댄스, 팝 사운드를 차용한 신스 팝 (Synth Pop)은 80년대 초반 대중 음악계의 주류로 새롭게 부각되었다. 현재까지 최고의 신스 팝 밴드로 인기 정상을 누리고 있는 디페쉬 모드 (Depeche Mode), 역시 디페쉬 모드를 거친 빈스 클락 (Vince Clark)이 결성했던 야주 (Yazoo, 훗날 이레이저 Erasure로 발전됨), 유리스믹스 (Eurythmics), 하워드 존스 (Howard Jones)등의 음악은 당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레이저, 프랭키 고즈 투 헐리웃 (Frankie Goes To Hollywood), 팻 샵 보이즈 (Pet Shop Boys), 아트 오브 노이즈 (Art Of Noise)등 영국 신스 팝 계열의 뮤지션들이 더욱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80년대 중반에 와서 테크노는 다양한 세분화를 이루게된다. 샘플링 머쉰같은 전자 악기들이 보편화되면서 새로운 음악적 실험이 이뤄지는데 대표적인 댄스 뮤직인 하우스 (House), 기계적인 인더스트리얼 (Industrial) 경향의 음악은 이 시기에 와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테크노라고 부르는 것들은 거의 90년대에 등장한 테크노 음악을 일컫는다. 현재의 테크노는 엠비언트 (Ambient), 애시드 재즈 (Acid Jazz), 트랜스 (Trance), 드럼 앤 베이스 (Drum and Bass), 하드코어 테크노 (Hardcore Techno), 트립 합 (Trip-Hop) 등 마치 세포 분열을 연상케 할만큼 수많은 하위 장르로 파생되고 있다.

★ 대표적인 90년대 테크노 뮤지션

불협화음, 전위적인 구성, 파괴적인 기계음 등, 세기말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프로디지 (Prodigy)는 단연 90년대가 낳은 최고의 테크노 밴드이다. (1997년, 테크노 뮤지션으로는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 프로디지와 함께 영국 테크노의 3인방으로 군림하는 케미컬 브러더즈 (Chemical Brothers)와 형제 듀오 오비탈 (Orbital), 이외에도 영화 ‘트레인스포팅’에 삽입된 ‘Born Slippy’로 유명해진 언더월드 (Underworld), 테크노의 불모지였던 미국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모비 (Moby, 영화 ‘007 네버다이’에 참여) 프랑스의 대프트 펑크 (Daft Funk), 에어 (Air), 독일의 아타리 틴에이지 라이엇, 트립-합을 정착시킨 영국의 혼성듀오 포티쉐드 (Portishead) 등은 90년대 테크노 음악의 붐을 주도한 대표적인 뮤지션들이다.

★ 국내의 경우

정통 테크노 음악이라고 부를 만한 시도를 국내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달파란 (시나위, H2O를 거친 베이시스트 강기영의 예명)이 발표한 독집 음반 ‘휘파람 별’ 이나 조동익의 영화음악 모음집 ‘Movie’에 수록된 ‘일탈’, ‘현기증’ 등 일부곡 정도랄까 ? 흔히 일반인들이 테크노라고 생각하는 음악들은 대개 댄스 음악에 테크노적인 요소를 양념처럼 첨가한 것 뿐이다. 멜로디가 강조된 음악을 선호하는 국내 정서와 이와는 반대인 90년대 테크노 음악과의 간격은 생각보다 크다.

이제 테크노는 세기말을 맞이하는 1999년, 중요한 문화 현상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했다.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 없이 테크노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듯 보인다. 하지만 테크노의 미래가 지금처럼 밝을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다양한 음악적인 실험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앞서 등장했다 소멸한 여러 장르의 음악들 처럼 테크노 음악도 같은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뮤지션들도 기억하겠지만.

Roxy Music / S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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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xysiren”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the record label..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아트 록과 글램 록의 사생아’라는 또 하나의 세평을 만들어낸 이 밴드가 와해되기 직전(물론 뒤에 재결합했지만) 발표한 이 앨범은 그들 특유의 복잡 미묘한 분위기를 대폭 간소화했다. 브라이언 페리(Brian ferry)는 이전의 그 미래주의적이고 데카당스한 지향을 거두고 그 대신 상큼하고 유쾌한 크루닝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당시의 빅 히트작인 디스코풍의 Love Is Drug,이완된 컨트리 풍의 End Of The Line만 들어도 충분하다. 그 점에서 이 앨범은 당시의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앨범과 더불어 지극히 ‘1970년대적’이다. 때는 ’60년대의 낭만적인 잔치가 끝나고 잔칫상에는 날이 갈수록 파리만 들끓고 있을 때다. 물론 아트 록과 헤비 메탈로 가득찬 잔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록시 뮤직은 이 복잡 미묘한 시기를 한편으로 경배하고 한편으로 비웃었고, 이제 드디어 맥이 빠졌다. 기타, 드럼, 베이스 뿐만 아니라 신서사이저, 바이올린, 색소폰, 오보에 등이 줄지어 등장하는 이들의 마지막 ‘지성적 키치’가 그 맥빠짐의 증거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많은 이들이 이 앨범을 ’70년대 록의 고전’으로 꼽는 이유도 어렴풋이 이해된다.(신현준)

@표지속의 저 인어는 Mick Jagger의 동거녀인 Jerry Hall양이다.(아직도 같이 사는진 모르겠지만….)

Roxy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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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xy Music – TopPop 1973 03” by AVROBeeld En Geluid Wiki – Gallerie: Toppop 1973.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아트락과 프로그레시브 그리고 아방가르드가 적절히 접목되었던 이색그룹 “Roxy Music”의 청사진이 그려진 것은 1970년 11월, 브라이언 페리의 두뇌에서 시작되었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오랜 친우인 베이시스트 그래험 심슨과 록시뮤직에 동승할 인재들을 서서히 캐스팅하기 시작했으며, 그 노력의 소산으로 키보디스트 브라이언 이노와 목관악기의 귀재 앤드류 메케이, 그리고 나이브한 드러머 덱스터 로이드와 나이스 출신의 키타리스트 데이빗 오우 리스트 등을 규합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워낙 다양한 개성의 인재들이 모였던 부작용으로 1972년에 선보인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을 전후해서 데이빗과 덱스터가 그룹을 등졌고, 그 후임으로 이미 로컬그룹(Smokestack)에서 명성을 높이고 있던 휠 멘저네러(키타)와 폴 탐슨(드럼)이 가입,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는다. 킹크림슨의 철학적인 가사담당으로 널리 알려졌던 피터 신훨드의 제작으로 등장했던 록시뮤직의 첫앨범은 [Virginia Plain]과 [Pyjamarama] 같은 히트곡을 배출하면서 영국챠트 1위에 오르는 성공적인 거보를 내딛었다.이후 다소의 멤버교체를 단행하여 발표했던 73년초의 2집 [For Your Pleasure], 73년 말의 3집 [Stranded](당시 18세였던 천재 에드윈 좁슨 가입), 74년의 4집 [Country Life], 75년의 5집 [Siren], 76년의 6집이자 실황앨범이었던 [Viva Roxy Music] 등에 이르기까지 5년동안에 예지가 번뜩였던 6매의 명반을 토해낸후 더욱 실험적인 사운드를 구사하기 위해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79년에 재결성되어 [Manifesto]를 발표)휠 맨저내러는 [Diamond Head]를, 앤디 메케이는 존 케이지의 제자답게 전위적인 작품세계를 [In Search Of Eddie Riff]를 통해 각각 노출했으며, [Quiet Sun : Mainstream]이라든가 [801 : Live]같은 진취적인 실험앨범의 주역으로 역시 “록시뮤직” 패밀리들이 참여했고, 브라이언 페리는 수많은 솔로앨범을 통해 리더의 역량을 과시하기 했다.

디스코그래피
1972 Roxy Music Virgin
1973 For Your Pleasure Virgin
1973 Stranded Virgin
1974 Country Life Virgin
1975 Siren Virgin
1976 Viva! Virgin
1979 Manifesto Virgin
1980 Flesh + Blood Virgin
1982 Avalon Virgin
1983 The High Road [live] Reprise
1990 Heart Still Beating [live] Virgin
2000 Valentine [live]
2001 Live Pilot
2001 Live Roxy Music Album Atco

링크
참고싸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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