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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eils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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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eils Band 1973” by Premiere Talent Associates (management) – eBa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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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발표한 음악으로만 그들을 접했던 입장에서는 다소 의외인데 애초에 J. Geils Band는 블루스 밴드로 음악 경력을 시작한 밴드라고 한다. 또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실인데 당연하게도 밴드의 리더는 기타리스트 J. Geils라고 한다.(나는 여태 싱어였던 Peter Wolf라고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그들의 싱글은 강렬한 락비트가 특징인 Come Back이었다. 뭔가 비장한 톤으로 “다시 돌아와”라고 외치는 모습이 80년대 풍의 허세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 곡은 밴드가 1980년 발표한 Love Stinks에 수록되어 있는데, 같은 이름의 타이틀 싱글 Love Stinks는 80년대를 추억하는 영화 Wedding Singer에서 주인공이 결혼식 피로연에서 부르기도 한다. 또한 기억에 남는 곡은 1981년에 발매된 앨범 Freeze Frame – 이 앨범은 카세트테잎으로 구매했었다 – 에 담긴 동명의 싱글 Freeze Frame 이다. 이 노래는 당시 우리나라의 한 청소년 대상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퀴즈 꼭지를 시작할 때 배경음악으로 써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이 앨범에는 밴드의 최대 히트곡 Centerfold가 담겨있다. 이 곡은 밴드의 싱글 중 유일하게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무려 6주간이나 머물렀다.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여인이 성인잡지의 전면화보에 등장한 것을 발견하고 괴로워하는 한 남성의 시각을 담은 이 곡은 가수 송대관의 히트곡 ‘해뜰날’과 멜로디가 비슷하다 하여 “逆표절이 아니냐?”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우리나라에서만) 한편 개인적으로는 같은 앨범에 담긴 Angel In Blue를 좋아한다. 제목은 “우울한 천사”라고 번역할 수 있는 곡인데 스트리퍼로 살아가는 여인의 삶과 감정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AllMusic의 리뷰에서는 이 곡이 ‘Centerfold의 연장선상의 곡이다’라고도 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수긍이 되기도 한다. 음악적으로는 빠른 리듬의 Centerfold와 달리 미드 템포의 구슬픈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다. 1983년 싱어 Peter Wolf가 음악적 입장의 차이를 이유로 그룹을 떠나자 밴드의 인기는 빠르게 식었다. 결국 1985년 밴드는 해산했다. 솔로로 나선 Wolf는 Lights Out이란 노래로 반짝 인기를 얻었다.

Jackson, J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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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Jackson3” by David Gans – http://www.flickr.com/photos/dgans/1471908742/in/faves-24788065@N02/.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1955년 8월 11일 영국 Burton-upon-Trent 출생
스타일 College Rock, Pop/Rock, New Wave

뉴웨이브 뮤직의 기수로 불리는 Elvis Costello와 Graham Parker 등과 함께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Joe Jackson은 1979년 등장하여 주목할만한 활동을 펼치면서 “뉴웨이브의 Duke Ellington”이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전부터 레게, 빅밴드 시설의 스윙풍의 재즈와 각 나라의 토속적이고 이색적인 음악을 섭렵, 폭넓은 음악적 재능을 닦았다. 매튼온트렌트에서 태어나 포츠마우스에서 자란 그는 11세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몇년 뒤에는 피아노를 독학으로 익혔다. 이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 영국의 왕립음악원에서 정통 작곡 공부를 했고 졸업 후에는 Arms & Legs라는 그룹을 조직하여 활동하는 한편, 데뷔앨범 Look Sharp를 발표했다. 이때가 1978년 초, 반응이 좋자 David Kershenbaum의 주선으로 A&M 사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첫싱글 Is She Really Going Out With Him?이 톱20 히트를 냈고 자신의 밴드를 조직하여 공연에 들어갔다.

이후 1980년 초엔 2집 I’m The Man을, 그 해말엔 3집 Beat Crazy를 발표하고 밴드를 해산했다. 그리고는 스윙콤보 밴드를 이끌고 4집 Jumpin’ Jive를 1981년 6월에, 1년후인 1982년 6월엔 5집 Night And Day를 발표하여 Real Man과 그래미 후보에 오른 Steppin’ Out을 히트시켰다. 그후 그는 1983년의 영화 Mike’s Murder의 사운드트랙을 맡아 기량을 과시했고 1984년에는 6집 Body And Soul을 발표하여 You Can’t Get What You Want를 크게 히트시켰다.

디스코그래피
1979 Look Sharp! A&M
1979 I’m the Man A&M
1980 Beat Crazy A&M
1981 Jumpin’ Jive A&M
1982 Night and Day A&M
1983 Mike’s Murder Soundtrack A&M
1984 Body & Soul A&M
1986 Big World A&M
1987 Will Power A&M
1988 Tucker A&M
1988 Live…1980-1986 A&M
1989 Blaze of Glory A&M
1991 Laughter & Lust Virgin
1994 Night Music Virgin
1997 Heaven & Hell Sony Classical
1999 Symphony 1 Sony Classical
2000 Summer In The City: Live In New York Sony Classical
2000 Night and Day II Sony Classical
2001 Look Sharp! [Bonus Tracks] A&M
2001 I’m the Man [Bonus Track] A&M

링크
Official Site
The Joe Jackson Archive

Love shows that God has a sense of humor – Stranger Than Fiction 가사 중에서

Joy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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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Division promo photo” by Source (WP:NFCC#4). Licensed under Wikipedia.

리드싱어 Ian Curtis가 죽기전 밴드의 이름으로 발매된 앨범이 오직 하나밖에 없었던 Joy Division은 팝뮤직씬에 믿기지 않을 만큼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1977년 어느날 키타리스트 Bernard Albrecht(Bernard Sumner)는 베이시스트 Peter Hook과 함께 Stiff Kittens라는 밴드를 조직했다. 그들은 보컬에 Ian Curtis와 드러머 Steve Brotherdale을 영입하여 Warsaw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였다. 이들은 Buzzcocks 등의 써포트밴드로 라이브 활동을 시작하였다. 몇개의 데모를 만든 후에 Brotherdale이 그룹을 떠났다. Stephen Morris가 빈 자리를 메꿨다.

그해 말경 그들은 Warsaw Pakt라는 펑크밴드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Joy Division이라고 바꿨다. – Karol Cetinsky의 2차대전에 관한 소설 The House of Dolls에서 영감을 얻은 이 이름은 나찌 병사들에게 매춘을 하도록 강요받았던 여자 부대원들을 일컫는 슬랭이다. – 주로 북부지방에서 공연을 했던 1978년 그들은 그룹의 매니저가 된 Rob Gretton, Factory 레코드사의 오너이자 TV저널리스트였던 Tony Wilson 등의 지지자를 얻게 된다. 그 해 이들은 셀프타이틀 앨범을 녹음했다. 펑크의 클래식으로 남을 뻔했던 이 앨범은 몇몇 곡에 씬써싸이저를 덧씌운 스튜디오 엔지니어의 행동에 화가 난 멤버들이 LP를 전부 폐기시켜버림으로써 전설속으로 사라졌다.(Warsaw라 이름붙여진 이 앨범의 브트렉이 떠돌기도 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첫발매된 앨범은 밴드의 자체 라벨인 Enigma를 통해 발매된 EP An Ideal for Living이다.

그룹은 Martin Hannett과 함께 레코딩을 시작하여 1979년 7월 그들의 오랜 친구인 Tony Wilson의 Factory 레이블을 통해 Unknown Pleasures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평론가의 찬사를 얻었고 꽤 오랜 기간 영국의 인디챠트에 머물렀다. 영국의 펑크붐에 자극받은 미국의 Warner Bros가 계약을 제의했으나 밴드는 이를 무시했다. 그해 그들의 라이브쇼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인기의 이면에는 아이러니칼하게도 Curtis의 심약한 건강도 한몫했는데 그는 공연중에 종종 발작증세를 일으키곤 했다. 점점 더 그의 정상적인 스테이지에서의 제스쳐와 진짜 발작간에 구분이 모호해졌다. 공연이 지속됨에 따라 Curtis는 점점 더 약해져갔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그룹은 유럽 공연에 돌입했다. 그러나 몇몇 공연은 Curtis 때문에 취소되었다.

그룹은 공연을 마친 후 두번째 LP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4월에 Love Will Tear US Aprart를 내놓았다. 5월초 한차례 공연후에 그룹은 미국 공연전에 2주일간의 휴식에 들어갔다. 그러나 출발 이틀전인 1980년 5월 18일 Curtis는 그의 집에서 스스로 목을 매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Curtis가 죽기전 그룹은 멤버중 한명만 그룹을 떠나더라도 밴드를 해체하기로 약속했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1980년 여름 바야흐로 그룹의 인기가 막 치솟하 오르기 시작했다. 재발매된 Love Will Tear Us Apart는 영국 싱글 챠트 13위까지 오르는 등 그룹의 최대 히트곡으로 부상했다. 8월에 발매된 Closer는 매출이 급상승하여 챠트 6위까지 오르게 된다. 여름이 가기 전에 Unknown Pleasures까지 챠트에 등장했다.

Joy Division의 또다른 위대한 면은 살아남은 멤버들의 후속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Bernard Summer가 주축이 된 멤버들은 1980년 1월 New Order를 조직했다. Curtis의 유작 컴필레이션 성경의 Still이 Joy Division의 이름으로 발매되어 영국챠트 5위까지 올랐다. New Order는 80년대 중반 그들만의 싸운드로 만개하기까지 Curtis와 Joy Division의 그늘을 벗어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초기 앨범에서 Joy Division의 때를 벗기지 못한 그들은 더이상 음습함과 Isolation을 그룹의 음악적 방향으로 삼기를 거부하고 Groove로 전향하여 일렉트로닉 뮤직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이 후에도 Sumner는 Pet Shop Boys의 Neil Tenant, The Smiths의 Johny Marr 등과 함께 Electronic이란 프로젝트밴드를 통해, 다른 멤버들은 Monaco, Revenge, The Other Two 등 사이드프로젝트를 조직하여 정력적인 음악활동을 펼쳤다.

Joy Division의 어둡고 음습한 싸운드는 The Cure, Tears For Fears, Echo and the Bunnymen, 그리고 보다 최근의 아티스트로는 Nine Inch Nails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독특한 드러밍과 꿈꾸는 듯한 키타싸운드, Curtis의 카리스마적인 보컬스타일, 자학적인 가사 등이 Gothic 밴드들에게 미친 영향또한 심대했다. 또한 Joy Division의 존재로 말미암아 Manchester의 인디라벨이었던 Factory 레코드사는 영국 음악씬에 주요한 위치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들은 Big in Japan, Echo and the Bunnymen, Cabaret Voltaire 등을 발굴해내는 등 New Wave 싸운드의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디스코그래피
1979 Unknown Pleasures [Qwest]
1980 Closer [Qwest]
1999 Preston Warehouse 28 February 1980 [live] [Factory]
2001 Les Bains Douches [live] [Factory]

링크
Joy Division Central

Journey

80년대 팝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A.O.R.(Adult Oriented Rock) 혹은 Arena Rock의 번성이었다. 이러한 음악 경향은 7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하였는데 70년대 하드락과 헤비메틀을 구사하였던 밴드들의 음악이 인기를 얻으면서 음악이 좀더 라디오 친화적이고 상업화되었고, 이러한 일련의 경향을 A.O.R.로 묶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의 음악을 구사했던 대표주자들은 Journey, REO Speedwagon, Boston, Foreigner, Styx 등을 들 수 있고 이들의 선두에는 Journey가 있었다.

1973년 결성된 Journey는 Neal Schon 이라는 기타리스트를 축으로 조직된 락밴드이다. ’70년대 초반 Santana에 몸담기도 했었던 이 천재 아티스트는 연주자들을 모아 샌프랜시스코의 한 래디오 콘테스트에 The Original Unit란 이름으로 참가하였고 이 라인업이 1975년 째즈락 성격이 강했던 Journey란 타이틀의 앨범을 내놓았다.

1977년 그룹은 Steve Perry라는 강력한 음색의 보컬리스트를 맞아 들였다. ’78년 내놓은 이들의 네 번째 앨범 Infinity는 1년 동안 백만장이 팔리면서 Steve Perry의 유용성을 증명해주었다. 몇 번의 멤버교체를 통해 라인업을 재정비한 Journey는 라이브 앨범 Captured(1981년)와 Escape(1981년)을 들고 나오면서 화려한 ’80년대의 전성기를 예고하였다. 특히 Escape에서는 Who’s Crying Now, Don’t Stop Believin’, Open Arms 등이 크게 히트하면서 그룹의 인기를 정상에 올려놓는 효자 노릇을 담당하였다. 이들 세 곡은 Steve Perry의 섬세하면서도 힘있는 보컬의 묘미가 절묘하게 살아난 수작들로 A.O.R.의 특징을 잘 드러낸 싱글들이다.

1983년 발표한 Frontiers에서는 Seperate Ways가 인기를 얻었다. Steve Perry가 더블플래티넘이 된 솔로앨범 Street Talk(1984년)를 내놓은 뒤 그룹은 다시 뭉쳐 새 앨범 Raised on Radio를 내놓았다. 그러나 앨범 홍보를 위한 순회공연을 다녀온 Journey는 돌연 해산을 결정한다. Steve Perry는 오랜 은둔의 시기를 보냈고 Schon은 싱어 John Waite와 함께 Bad English를 결성하였다. Steve Perry는 1994년 솔로앨범을 내놓으며 대중음악계에 복귀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75 Journey Columbia
1976 Look Into the Future Columbia
1977 Next Columbia
1978 Infinity Columbia
1979 Evolution Columbia
1980 Departure Columbia
1981 Captured [live] Columbia
1981 Escape Columbia
1982 Tron [Part Soundtrack] CBS
1983 Frontiers Columbia
1985 Dream After Dream [Sony US] Sony
1986 Raised on Radio Columbia
1996 Trial By Fire Columbia
2001 Journey Continues Sony
2001 Arrival Columbia

링크

Official Site
Steve Perry Fan Club
Lyrics

Jones, Howard

Howard Jones - 7-10-08.jpg
Howard Jones – 7-10-08” by Mikesfox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Howard Jones는 신서사이저의 발달에 힘입은 원맨밴드, 즉 스튜디오에서 뿐만 아니라 무대에서도 모든 악기를 혼자 다루는 음악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존재였다. 인류 문명의 최첨단인 컴퓨터 음악을 만들면서도 인간미가 담긴 음악을 표현해냈던 Howard Jones는 논리가 아니면 거부하는 기계를 통해 가장 비논리적일 수 있는 감성을 멋지게 표현하여 팝스계를 장악한 스타였다.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이 후 14년간을 클래식 피아노만을 배웠다. 그러나 14세 때 맨체스터 음악학교를 중퇴하여 클래식 공부를 그만 두었고, 일정한 직업 없이 아내와 함께 야채 행상을 하는 등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이런 그가 일렉트로닉 뮤직에 손을 대게 된 것은 아내의 교통 사고 보상금으로 신서사이저를 받으면서부터 였다. 악기를 손에 넣은 그는 자신의 음악적 지식과 재능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 1984년 데뷔 앨범 Human’s Lib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이 앨범은 발매 즉시 영국 챠트 1위에 올랐고 New Song, What’s Love, Hide And Seek와 같은 히트곡을 연속으로 챠트에 올려 놓았다.

1985년 2집 Dream Into Action에서는 Life In One Day가 전세계적으로 히트하여 Thomas Dolby를 제치고 테크노 팝의 대표주자로 각광받게 되었다. 이 밖에도 Things Can Only Get Better가 빅히트를 기록하였고, 1986년 말 3집 One To One을 발표하였다. 그 뒤로도 그는 꾸준히 활동하면서 성실한 자세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펼친 바 있다. 그러나 네 번째 앨범 Cross That Line 이후 침체기에 빠져있는 듯해서 그를 아끼는 팬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7-Mar-84 Humans Lib
08-Dec-84 The 12″ Album
23-Mar-85 Dream Into Action
25-Oct-86 One To One
01-Apr-89 Cross That Line
30 Mar 92 In The Running
05-Jun-93 The Best Of…
27 Aug 93 (Working In The Backroom)
4 Mar -96 Live Acoustic America
20-Aug-97 (Angels and Lovers)
22-Feb- 99 People
10 July 00 Perform
01 Aug 00 Pefawm

링크

http://www.howardjones.com/

Lyrics

Jones, Grace

남성적인 이미지와 거의 매조키즘에 가까운 무대 연출로 자신만의 개성을 창출한 매혹의 흑인 아티스트. Grace Jones는 Jamaica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12세가 되던 해 미국으로 이민해 왔다. 목사이자 정치가였던 엄격한 아버지에 의해 복장과 생활방식, 그리고 정신까지 통제당하는 유년시절을 보냈던 Grace는 성인이 되면서 아버지의 엄격함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노출이 없는 의상을 강요받고 TV와 영화, 심지어는 음악까지도 허용되지 않는 생활을 당해야 했던 그녀가 패션모델이자 영화배우, 그리고 파격적인 이미지를 특징으로 하는 가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21살에 Syracuse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면서 Philadelphia의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하고 뉴욕과 파리에서 모델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1977년 Island社와 계약을 맺고 그녀의 첫 번째 앨범인 Portfolio를 낸다. 짧게 자른 머리, 광분한 듯한 분장, 그리고 화려한 의상 등으로 마치 조각을 보는 듯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그녀는 독특한 남성적인 이미지와 거의 매조키즘에 가까운 무대 연출로 자신만의 개성을 창출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와 같은 파격적인 이미지는 그녀와 결혼 한 프랑스의 아티스트 Jean-Paul Goode이 그녀의 이미지를 완화시켜 대중적인 이미지로 다듬으면서 훨씬 부드러워 지고, 이를 통해 그녀는 더 광범위한 대중들을 자신의 팬으로 갖게 된다.

1981년 Grace는 Nightclubbing 앨범을 발표하고 순회공연에 오르는데, 그녀의 이 앨범에는 그녀의 가장 큰 히트곡인 “Pull Up to the Bumper”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이 앨범은 David Bowie와 같은 New Wave 뮤지션들에 의해 쓰여진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징을 갖기도 한다.

한편 배우이기도 했던 그녀는 84년 Conan the Destroyer에, 85년에는 007 시리즈 중에 하나인 A View to a Kill에 출연하며 80년대 중반까지 가수이자 배우로서 절정기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85년에 발표된 앨범 Slave to The Rhythm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87년부터는 그녀의 인기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음반은 대체로 잘 팔리고 있었으나 그녀 생활의 또 다른 문제들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공하지 못한 공포 영화 Vamp에서 흡혈귀로 출연 한 것을 마지막으로 87년부터 90년까지 그녀는 경제적 파산 상태로 인한 소송사건으로,
코카인 소지 혐의의 재판으로 뉴스란에 나오는 것 이외에는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89년, 그녀는 소속사를 옮겨 Bulletproof Heart를 발표하고 순회 공연을 하는 등 재기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지만 실패한다. 그녀가 대중적 인기를 다시 얻게 된 것은 91년 Island社와 재계약을 맺고 Sex Drive를 발표하여 타이틀곡을 댄스 차트 1위에 올려 놓았을 때였다.

또한 그녀는 92년 그해 박스 오피스 성공작인 영화 Eddie Murphy’s Boomerang에 출연하여 배우로서의 인기도 다시 얻게 된다. 그녀가 발표한 가장 최근의 앨범으로는 98년에 나온 Private Life : The Compass Point Sessions이 있다.

한편 그녀는 AIDS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상하던 시절에 자신의 많은 동료들을 이 병으로 잃어 버린 후 AIDS 환자들의 권익과 구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tube music

디스코그래피

1997 Nightclubbing
1985 Best – Island Life
1980 Warm Leatherette
1968-06 Private Life: The Compass Point Sessions

Johnny Hates Jazz

Johnny Hates Jazz 2014.jpg
Johnny Hates Jazz 2014” by Andrew Hurleyhttps://www.flickr.com/photos/andrewhurley/14543582032.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1987년 봄 Jonny Hates Jazz란 긴 이름의 팝트리오가 Virgin 레코드사에서 싱글로 발매된 Shattered Dreams란 곡으로 팝계를 강타했다. 이 곡은 전 세계의 팝챠트를 휩쓸었는데 영국에서는 5위, 미국에서는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여름에 들어서자 두번째 싱글 I Don’t Want To Be A Hero(한때 우리나라에서 금지곡이었던)가 출시되었고 영국에서 11위 미국에서 33위까지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1월에 발표된 세번째 싱글 Turn Back The Clock역시 영국에서 12위까지 올랐다. 이듬해 1월 데뷔앨범 Turn Back The Clock이 발매되었는데 영국에서는 일찌감치 앨범챠트 1위에 오르는 등 전세계 앨범챠트에 랭크되었다. 2월 이어진 싱글 Heart Of Gold는 영국 탑20에 진입하였다. 그러나 밴드의 마지막 싱글인 Don’t Day It’s Love는 48위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영국인인 Clark Datchler (vocals, piano)[80년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꽃미남], Calvin Hayes (keyboards)와 미국인 Mike Nocito (bass)로 구성된 Johnny Hates Jazz는 오랜 친구들로 구성된 그룹이었다. 그들은 실제로도 Jazz를 매우 싫어했던 그들의 친구 Johnny에서 착상을 얻어 밴드명을 지었다. 실제로 그들 스스로도 Jazz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Clack의 아버지는 The Stargazers나 The Polka Dots와 같은 그룹에서 활동했던 유명한 째즈 뮤지션이었다.

Johnny Hates Jazz의 첫싱글은 Me And My Foolish Heart였다. 이곡은 1986년 RAK 레코드사에서 발매되었는데 이미 전부터 Calvin과 Mike는 이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 등으로 일하고 있었고 Calvin의 아버지가 오너였다. 싱글 발매 이후 그들은 메이저 레코드사와의 계약을 위해 노력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음악관계자들의 눈에 띈 Ronnie Scott’s Jazz Club에서의 공연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되었다.

’86년 말 Virgin과 계약을 맺은 그들은 두번째 싱글 Shattered Dreams를 발매하여 그들의 화려한 성공이 시작되었다. 스튜디오에서의 풍부한 작업경험은 그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었는데 그들은 직접 곡을 쓰고, 연주하고, 엔지니어와 프로듀서까지도 도맡을 정도였다. 이러한 밑바탕은 멜로딕하고 깔끔한 팝을 추구하는 이들 이웃집 형같은 이미지의 세 젊은이의 음악경력이 탄탄대로가 될것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자고 일어나보니 그들은 유명해졌다.

그러나 급작스런 성공은 밴드에 심각한 균열을 불러일으켰다. 1988년 여름 돌연 밴드의 프론트맨 Clark Datchler가 탈퇴하였다. 예정되었던 세계공연은 취소되었다. 2년 뒤 Clark은 이에 대해 “그것은 굉장한 경험이었어요. 그렇지만 난 내 자신이 계속해서 타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죠. 우리 셋은 매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룹의 작곡자로써 난 내곡을 멋대로 뒤바꿔버리는 사람들에 분개하고 있었죠. 모든 상황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내가 계속해야할 이유가 없더군요.”라고 말했다.

Clark은 솔로활동에 들어갔고 Mike와 Calvin은 Clark없이 그룹활동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새 보컬리스트가 필요했다.

“우리는 Clark이 떠난 것을 과소평가할 수 없었죠. 그는 뛰어난 작곡가이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우린 그를 잃었죠. 우리는 그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건 대단한 펀치였죠.”

결별 이후 Mike가 한 말이다.

밴드는 여러명의 보컬리스트를 물색해나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들은 Clark이상의 카리스마를 가진 프론트맨을 구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결국 역시 친구이자 음악가이면서 데뷔앨범의 엔지니어를 담당했던 Phil Thornalley에 주목했다.

다시 셋이 된 그들은 그룹 활동을 지속해나갔다. “new” Johnny Hates Jazz는 1989년 9월 싱글 Turn The Tide를 발매하였다. 그러나 큰 히트는 기록하지 못했다. 게다가 싱글 발매에 이은 두번째 앨범의 발표가 쉽지 않았다. 반면 Clark은 1990년 솔로앨범 Raindance를 발표했다. 1991년 7월 마침내 밴드의 두번째 앨범 Tali Stories가 발매되었고 두 개의 싱글이 발매되었지만 상업적인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디스코그래피

1987 Turn Back the Clock Virgin

Track Listing
01. Shattered Dreams (3:25)
02. Heart Of Gold (3:20)
03. Turn Back The Clock (4:29)
04. Dont Say It’s Love (3:42)
05. What Other Reason (3:19)
06. I Don’t Want To Be A Hero (3:37)
07. Listen (3:44)
08. Different Seasons (3:30)
09. Don’t Let It End This Way (3:40)
10. Foolish Heart (3:34)

링크

Fan Page

Joan Jett & The Black Hearts

1976년 5명의 여성들로 구성되어 LA에서 펑크록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하던 Runaway그룹의 리더이자 키타리스트였던 조안 제트는 1979년 그룹이 해체되자 자신의 그룹인 Joan Jett & The Black Hearts를 만들었다. 60년대부터 제작자로 명성이 높은 리치 코델과 케니 러구너의 매니지먼트로 활동을 펼친 조안 제트는 독일의 바이올라 레이블과 계약한 후 데뷔 앨범 Bad Reputation을 발표했다. 그 당시 그 녀는 본국인 미국에서보다 유럽에서 더 인기가 높았으므로 독일에서 앨범을 발표했는데 히트작이 되지는 못했다. 이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밴드를 갖기 위해 멤버들을 모아 블랙하츠를 결성하고 활동 무대를 뉴욕으로 옮겼다.

뉴욕에서 보드위크 레이블과 계약한 조안 제트는 두번째 앨범 I Love Rock’n’Roll을 1982년 초에 발표해 타이틀곡이 7주 동안 1위를 지키는 빅히트 싱글이 되었다. 또한 이 앨범에서 타미제임스의 히트곡 Crimson & Clover를 리바이벌해 히트시켰고 Do You Wanna Touch Me도 20위까지 올려놓았다. 1983년 세번째 발표한 Album은 평범한 히트곡 Fake Friends만을 남겨 놓았다.

디스코그래피

1980 Joan Jett
1981 Bad Reputation
1981 I Love Rock & Roll
1982 I Love Playing with Fire Cherry
1983 Album
1984 Glorious Results of a Misspent Youth
1986 Good Music
1988 Up Your Alley
1990 The Hit List
1991 Notorious
1994 Pure and Simple
1999 Fetish

링크

Official Site

Jets, The

The Jets는 Tonga에서 미네아폴리스로 이주해 온 이민자 가족으로 구성된 가족그룹이다(총 8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정말 대가족이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들마저 18명의 자식들 중에서 고른 것이라 한다). 1986년과 1989년 사이에 The Jets는 몇 개의 댄스팝 싱글을 히트시키며 인기를 얻었다(Crush On You, You Got It All, Rocket 2 U 등). 또한 몇 개의 정규앨범을 발표했는데 이 중에 데뷔앨범인 셀프타이틀(1986)과 Magic(1987)이 골드와 플래티넘을 획득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틴팝 아티스트들처럼 이들의 생명력도 그리 길지 않았다. 지지부진한 명맥을 이어오던 그들은 1997년 Love Will Lead the Way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최근 그 대가족 중에서 자라난 어린 아이들이 새로운 그룹을 조직하였다 한다. 여하튼 이들을 떠올릴 때면 어쩐지 외관상 특징 때문에 같은 틴팝 계열의 라틴음악을 했던 Menudo가 겹쳐지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여타 80년대 틴팝 그룹보다는 한 차원 높은 퀄리티를 보여준 그룹이 아닌가 싶다.

멤버 : Leroy, Eddie, Eugene, Haini, Rudy, Kathi, Elizabeth, and Moana Wolfgramm

디스코그래피
1986 The Jets [MCA]
1986 Christmas with the Jets [MCA]
1987 Make It Real [MCA]
1987 Magic [MCA]
1989 Believe [MCA]
1995 Love People [Liberty Park]
1997 Love Will Lead the Way [Shadow]
Cross the Line [MCA]
So True [MCA]

링크
Official Site(maybe)

Jesus And Mary Chain, The

“누구나 튠도 멜로디도 없는 노이즈로 곡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음악에는 멜로디가 있다.” The Jesus And Mary
Cha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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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Upside Down이 나왔을 때 각 언론사들은 모처럼의 기사거리에 흥분하며 곧 두 분파의 글들을 써대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좋고 나쁜 평들은 시대를 앞서는 사건에 있어서 늘 행해왔던 일이 아니었던가… 보위가 그랬고 프린스 역시… 흐..–; 이처럼 로큰롤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 불려질만한 크나큰 반향과 노이즈 기타의 선발주자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를 마련, 그에 어울리는 무대 매너와 여러 시끄런 사건 등으로 독보적 아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팝의 위대함을 증명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밴드, 수많은 관련 밴드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던 이들은 퍼펙트 멜로디를 지향하는 팝 그룹으로 불려지길 희망했다.

지독히 무례한 소음들, 공연장의 폭동야기 등이 전부 일 것이라는 비관적 관망에서도 섹스 피스톨스 이후의 충격이라는 그럴듯한 타이틀로 연일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신인 밴드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은 결과일 것인데 어느 정도는 쇼 비즈니스 적 계획 이었음을 시인하고 초창기 제대로 연주가 가능했던 멤버가 없었다는 레이드형제의 황당한 발언도 어쩌면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여하튼 인기와 명성을 거머쥐고 더해서 저주의 대상이었던 이들의 성공이 길게 이어지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남다른 멜로디 애호가였던 레이드형제의 주장(거의 자만심 가득한)이 먹혀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이들의 사운드가 보편적으로 들리겠지만 이들이 이룩한 업적은 같은 맥락의 밴드에게는 교과서나 다름없는 애티튜드를 정의한 것이었고 슈게이징의 방향을 제시한 가장 큰 영향력 내의 밴드로 대접받고있는 실정이다.

80년대 초 스코틀랜드 이스트 킬브라이드 출신인 William Reid : 기타, 보컬 Jim Reid : 보컬, 기타 Douglas hart : 베이스 Murray Dalglish : 드럼 (드럼 파트가 좀 복잡한데, 초창기 멤버 머레이 댈글리쉬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 프라이멀 스크림의 바비 길레스피로 교체했으나 바비도 곧 본업이었던 자신의 밴드로 되돌아가 다시 John Moor교체되었다. 바비 길레스피는 첫 앨범 발표당시까지 밴드에 속해 있었음.)

4인조의 The Jesus And Mary Chain이라는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마리화나의 단어를 농담조로 대치한 밴드 명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마리화나와 지저스 그리고 하나의 감타사는 이들 음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용구이다. 84년 당시 런던의 한 클럽인 Living Loom에 출연하며 Alan McGhee의 눈에 들어 Creation레이블과 계약 최초의 싱글 Upside Down을 발표하게된다. 크리에이션의 대표였던 앨런 맥기는 지저스 앤 메리 체인 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단한 안목과 수완가로서 라이드, 슬로우다이브, 스워브드라이버, 마이 블러디 발렌 타인, 프라이멀 스크림, 부 래들리스, 심지어 초창기 오아시스마저도 이곳에 적을 두고있었으니 그 유명한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앨범도 물론 포함하고 있다. 레이블을 방문해 보면 더 많은 밴드들이 눈에 띄지만 앞의 예 만으로도 레이블의 색깔을 충분히 짐작했으리라 보면서….. Upside Down발표와 지나칠 정도의 피드백을 구사하던 이들은 곧바로 세간의 이목을 받으며 명성과 성공을 동시에 얻게되었고 큰 이상의 소유자였던 레이드형제의 레이블 이적으로 크리에이션과의 인연은 접는 듯 보인다.

워너 산하의 Blanco Y Negro레이블로 이적한 밴드는 곧바로 첫 앨범 Psychocandy로 결정타를 때렸다. 파열음으로 이루어진 사운드에 메마른 보이스는 드론과 허무, 자기파괴 등을 여과 없이 선보이며 무대 위에서는 내성적 밴드이미지로 고개를 떨군다던가 심지어 관중에게서 뒤돌아서 연주하는 모습 등… 하나같이 관심을 끌고도 남을 행동을 보여주었다.(사실 레이드형제는 매우 내성적이라 한다.)

무대에서 자신의 악기와 사운드스케이프에 대부분을 할애 할 뿐, 그런 모습을 보면 관중과의 교감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사실 슈게이징 (슈게이져)이란 말도 그런 모습을 비꼬는 대서 생겨난 말이라지만 밴드의 음악에 대한 자세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좋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슈게이징 음악을 한다는 것은 사운드의 질에 심혈을 기울이는 연주자의 태도로 보면 될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무대 매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여지가 없다. 어차피 음악은 사운드에 관련한 것이니까. 음악을 만들며 어떻게 보여 줄 것인지부터 생각하는 밴드가 (클럽, TV 등에 나오는.. 악기를 지녔건 춤을 추던 상관없이.) 대부분인 요즘의 세태를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요거시 나쁘다는 말이 아니며 어차피 공연에 대한 밴드 및 관중의 취향은 모두가 제각각 이니… 그래도 생각은 해볼 문제다.

암튼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의 필살의 노이즈와 무대매너의 결합체인 Psychocandy 앨범은 음악사적인 면과 기타플레잉의 새로운 형태를 논할 때면 그 시작으로 거론하고있다.

사운드를 살펴보자. 초기부터 첫 앨범까지는 그야말로 노이즈의 홍수다. 지저분하게만 들릴지 모르는 초기 사운드는 그들 나름의 섬머 팝적인 분위기가 전체를 이루고 있다 봐야할 것이고 팝적인 멜로디 라인도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스투지스와 비치보이스에 열광했었고 벨벳 언더그라운드 적 이미지도 노렸던 이들은 주술적, 환각적 로맨스 등을 표현했다 할 수 있겠는데 후반기로 갈수록 그 비중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Psychocandy와 Darklands까지의 색깔은 기타의 피드백과 멜로디의 조화에서 오는 짜릿하고 혼란한 더해서 경쾌하기도 한 사운드이고 그다지 팝적인 멜로디 라인은 느껴지지 않고 있다. 이들의 두 번째 앨범 Darklands는 전채적으로 느려지고 사이키델리적 분위기로 말미암아 Psychocandy와는 이질감도 느껴지는 음악이지만 그 주제가 기타 노이즈 인 것만은 일치하고 있다.

이제 세 번째 앨범에 와서는 바로 팝적인 멜로디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이들이 데뷔작으로 끝나는 밴드가 아니란 걸 보여준 아주 중요한 앨범 Automatic은 경쾌한 로큰롤과 넘치는 멜로디, 노이즈와 멜로디의 결합은 이 앨범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로큰롤 비트에 멜로디 훅으로 가득한 Blues From A Gun이나 Between Planets, Head On에서 느껴지는 경쾌한 노이즈록과 깔끔한 느낌의 Half Way To Crazy의 감미로운 멜로디 등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의 가장 팝적이라는 찬사를 받는 앨범이다. 같은 맥락에서 발표된 네번째 앨범 Honey’s Dead역시 유사한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히트 곡이며 댄스플로어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그루브한 곡 Reverence를 포함하고있는 앨범이다. 이들의 리듬과 퍼펙트 멜로디에 대한 추구는 각각 슈거큐브스 와 콕토 트윈스에 가졌던 애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두 앨범으로 레이드형제의 멜로디에 대한 주장과 확신에 가득 찼던 모습 등이 그저 호기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결과를 얻었다.

당시 이와 같은 컨셉의 음악이 얼마나 유행이었냐 하면 ‘퍼지 박스를 지니고 있다’라는 밴드가 생겨남은 물론 노이즈를 내세우는 슈게이징 밴드가 수도 없이 탄생했고 데이빗 보위마저도 그와 같은 분위기에서 틴 머신이란 밴드를 결성했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노이즈로 가득했던 러쉬의 초기작품, 좀 늦었지만 블리치의 거친 기타 노이즈(Glind주법의), 그나마 조용조용한 스페이스멘 3, 전자와 비슷한 류의 스피리츄얼라이즈드, 그중 멜로디적이라 불려지던 라이드, Head On 을 커버했던 픽시스, 크리에이션과 베가스 뱅큇소속의 무수한 밴드들…. 이 당시 분위기가 이러했었다.

이제 Stoned & Dethroned에 와서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첫 앨범 발표 후 꼭 10년이 되는 다섯번째 앨범으로 슈게이징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개인적으로 200점의 점수를 갖는 앨범이다. 차분해진 구성과 나른함 그리고, 허무그 모든 표현은 아름다운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고 이제껏 이룩해 왔던 기타의 테크닉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그야말로 수작이다. 이 앨범에선 암울한 이미지의 포크 곡들로 유명한 밴드, 마지 스타의 보컬리스트 Hope Sandoval과 함께 한 Sometimes Always의 사랑싸움이 내용인 곡과 윌리엄의 자전적 노래인 Between Us, These Days, 죽음이 소재인 Never Saw It Coming, Everybody I Know, 시적인 느낌의 God Help Me, You’ve Been A Friend, 나른함이 베어 나오는 Wish I Could, 상큼한 팝적감각이 돋보이는 Till It Shines 등 기타로 이루어진 컨트리와 포크, 블루스 필의 어느 곡하나 빼놓을 수 없는 앨범.

최근의 신보로는 98년에 발표한 Munki가 있으며 어느 정도 긴 공백기 이후에 완성된 앨범으로 Upside Down만을 발표하고 돌아섰던 크리에이션 레이블과의 새로운 계약하의 결과물로서 초기에 그들을 인정해주었던 레이블과의 만남을 뜻하는 것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겠다. 역시나 중 후반기보다는 초창기 사운드에 근접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며 기타 피드백도 많아진 앨범이다.

15년이 넘도록 음악을 해오면서 센세이셔널한 이미지 등을 만들어 왔던 것이 이들의 행적이었다. 분노의 노이즈 사운드를 어떨 땐 환각적 피드백의 사이키델리아, 또는 허무와 드론의 느낌으로 표현되어온 이들의 음악에는 언제나 멜로디가 따라다니고 있었으며 노이즈를 위해서가 아닌 노이즈를 사용하는 방식을 택해 그 이상을 실현한 밴드였다. 레이드 형제는 계속 창작 활동을 할거라는 자신감으로 차있으며 그 결과 물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충만해 있다. 원래도 아니었지만 더 이상의 논란에는 눈 하나 까닥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겠다는 이들의 호언장담과 창의력을 난 믿는다.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은 실력과 명성이 일치하는 몇 안되는 슈게이징 밴드일 것이다.

-노모어- (천리안 두레마을) (2000. 3.31)

출처 : That Do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