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보관물: 로맨스

Purple Rain(1984)

프린스는 마이클잭슨과 함께 80년대 흑인음악 – 어쩌면 전체 팝음악 – 의 양대산맥을 이루던 걸물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마이클잭슨은 건전한 가수, 프린스는 퇴폐적인 가수의 이미지를 상반되게 가지고 있었다. 물론 후에 마이클잭슨이 더 변태적으로 사회에서 낙인찍히긴 했지만 ….

1984년 Prince 가 자주색의 이미지로 포장된 Purple Rain 이라는 앨범과 동명의 영화를 들고 나왔던 그 시기가 그의 음악경력에서는 최고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이후에도 이에 필적할만한 음악적/상업적 성과를 낸 앨범들을 발표하기는 하였으나 그의 존재감이 그렇게 눈부신 시기는 이전이나 이후에 찾아볼 수 없었다. Purple Rain 과 When Doves Cry 라는 최대의 히트곡일지라도 나머지 곡들이 히트곡에 묻어간다는 느낌이 없이 제각각 빛을 발하는 앨범이 바로 Purple Rain 이다. 그리고 이 앨범의 수록곡들이 착실히 연주되고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영화가 바로 동명의 영화 Purple Rain 이다.

앨범과 같은 해인 1984년에 공개되었으나 프린스는 이미 우리나라 검열당국에게 찍혀 Let’s Go Crazy 와 Darling Nikki 가 금지곡으로 분류되었으니 만큼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가 공개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다만 해외 연예계 소식을 전하는 TV프로그램 등 다른 매체에서 이 영화의 부분장면을 맛보기로나마 볼 수 있었을 따름이다(삼성 비디오플레이어 선전에서도 이 영화의 자료를 썼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이 영화는 프린스를 위한, 프린스에 의한, 프린스의 영화이다. 음악이 영화를 설명해주기 위해 쓰였다는 느낌보다는 영화가 음악의 (퍼포먼스의) 빈 공간을 메워주기 위해 땜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프린스의 반자전적인 스토리라고 하는 오이디프스컴플렉스적인 갈등과 반목, 그리고 Apollonia 라는 야심만만하고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양념일 뿐이고 역시 프린스의 화려하고 육감적인 노래와 공연이 이 영화의 줄기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심정이 “감독님 참 밸도 없으십니다^^”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을 정도다. 여하튼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점수를 매기라 한다면 100점 만점에 공연은 100점이고 드라마는 50점인데 공연이 전체 영화의 80%는 차지하는 것 같으니 100*80%+50*20% 해서 90점이라는 높은 점수가 나오는 상황이 되고 만다. 🙂

결국 아무려나 영화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영화가 신나고 재미난 경우가 비단 이 영화뿐이겠는가. 그래서 B급 영화가 인기를 얻는 것이고 컬트가 있는 것이고 우리네 인생이 삼류라는 것 아니겠는가.

비록 요즘의 레트로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많이 놀림당하기는 하지만 – 대표적으로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 – 프린스와 80년대 음악의 팬이라면 이 영화의 심히 부담스러운 당시의 패션과 춤들, 그리고 프린스의 그 거창한 모터사이클이 전혀 촌스럽다거나 유치하지 않게 다가올 것이다. 프린스 사단이었던 The Time 의 Jungle Love 와 Apollonia 6 의 Sex Shooter 등도 즐거운 볼거리이고 일종의 악역으로 등장한 The Time 의 리더 Morris Day 도 썩 훌륭한 연기를 – 어쩌면 프린스보다 한수 위의 – 보여주었다.

Breakin’ 2: Electric Boogaloo(1984)

세상 참 모를 일이다. 이 영화가 나온 1984년만 하더라도 힙합댄스, 브레이킨과 같은 거리의 춤은 흑인들과 같은 타고난 몸을 가진 이들이나 추는 춤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나 했는데 지금은 비보이네 뭐네 하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분야의 지존으로 불리고 있으니 말이다.

Breakin2.jpg
Breakin2“. Via Wikipedia.

여하튼 이 작품은 그러한 거리의 춤을 소재로 한 몇 안 되는 전문영화이다. 전작의 호응에 힘입어(?) Kelly, Ozone, Turbo 의 세 주요인물을 그대로 기용하여 해도 넘어가기 전에 2편을 제작해버리는 그 순발력이 놀랍다. 전편을 보진 못했으나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 춤과 노래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라 스토리, 캐릭터는 초절정으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Kelly 는 부잣집 딸에 백인이면서도 Ozone, Turbo 와 같은 흑인댄서들과 친하게 지낸다. 한편 이들은 미러클이라 부르는 커뮤니티센터에서 자원봉사로 춤을 가르치고 있다. 이 땅이 탐이 난 한 개발업자가 쇼핑센터로 재개발하고자 하나 이를 안 Ozone 과 마을사람들이 모금을 하여 마침내 자신들의 커뮤니티센터를 지킨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도심재개발에서의 공공성과 상업성 간의 갈등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공공성 강화 및 근린주구운동이라는 자못 심각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는 영화의 주된 소비층으로 예상되는 빈민가 흑인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았을 소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의도야 어떻든지 간에 청문회 자리에서 Ozone 이 ‘인민(people)’, ‘공공(public)’, ‘공동체(community)’, ‘근린(neighborhood)’ 등을 외쳐가며 자본가에게 대항하는 모습은 무슨 좌익 성향의 뉴시네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각설하고 영화는 역시 춤에 초점이 맞추어진 만큼 사실 위와 같은 스토리는 심하게 말하면 곁가지에 불과할 수도 있을 정도로 상영시간의 많은 시간을 춤에 할애하고 있다. 카메라는 팝핀, 브레이킨, 째즈댄스 등 주인공들의 현란한 춤 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프레드아스테어의 그 유명한 벽과 천장을 타며 춤추던 장면을 패러디한 장면도 눈에 띈다. Ollie & Jerry 의 Electric Boogaloo 등 – 본인의 페이보릿이기도 – 화려한 사운드트랙이 양념 역할을 하고 있다. 춤 이외에 나머지 출연진들의 연기나 의상들이 민망할 정도여서 오히려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전편의 3천6백만 달러에 달하는 국내 흥행성적을 기대하며 급조된 후편이었지만 정작 흥행은 7백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Electric Boogaloo’ 라는 제목은 조잡한 후편이라는 놀림감으로 여러 응용사례를 통해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한다.

Once(2006)

이 영화에서는 개인적으로 참 반가운 배우가 출연한다. 주인공 Glen Hansard가 바로 그다. 비록 그의 이름은 알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The Commitments에서 키타 주자 Outspan 역을 맡았던 배우기 때문이다. The Commitments 가 1991년 작이고 이 영화가 2006년 작이므로 15년 만에 다시 영화에 출연한 셈이다. 세월은 거스를 수 없는 법. 천진난만하던 외모가(당시 얼굴 보기) 이제 많이 연륜이 묻어나온다(지금 얼굴 보기).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실연에 아픔을 간직한,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한 아일랜드 남자가 우연히 피아노를 즐겨 치는 체코 여자를 알게 되고 서로의 교감을 나누며 데모 음반을 한 장 완성한 후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난다는 내용이다.

음악 하는 이들을 모아서 음반을 완성하는 과정이 얼핏 앞서 언급한 The Commitments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The Commitments가 밴드의 구성에서 빚어지는 웃음과 갈등을 여러 캐릭터의 시선을 통해 다면적으로 엮어가는 반면 이 작품은 거의 주인공의 개인적 실연의 경험과 역량에 의존하는 편이다. 스타일 면에서 The Commitments 가 우스운 비극이라면 Once는 서글픈 희극이라 할 수 있다.

Alaistair Foley는 이 작품에서 The Commitments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키타 실력과 노래 실력을 맘껏 선보인다. 오히려 너무 음악이 ‘맘껏’ 연주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깔끔하고 매력있는 음악 영화다.

Electric Dreams(1984)

Blade Runner(1982년)의 진지한 팬이 들으면 약간 기분 나쁠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80년대 팝의 가벼움과 발랄함을 한껏 담고 있는 Electric Dreams(1984년)는 어떤 면에서 Blade Runner와 통하는 영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Blade Runner의 원작은 Philip K. Dick의 “안드로이드는 전자 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이다 그리고 Electric Dreams에서는 자유의지를 갖게 된 컴퓨터가 모니터에 양떼가 장애물을 뛰어넘는 꿈을 꾸는 장면이 나온다. 🙂

무엇보다 두 영화가 가지는 공통점은 인공물이 인간과 같아지려는 욕망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풀잇법에서는 차이가 분명하다. Blade Runner는 상징적 은유를 통해 인간조차도 (미지의 신이 창조한) 안드로이드일 수 있다는 음울한 메시지와 환원론을 전달하는 반면 Electric Dreams는 자유의지를 갖게 된 컴퓨터가 자살(?)을 통해 자신의 예외성을 포기함으로써 두 남녀의 사랑의 완성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맺는다.

결국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첨단시대에 어울리는 첨단의 음악, Culture Club, Heaven 17, ELO, Human League 등이 선사하는 신쓰팝(Synth Pop)이다. Georgio Moroder가 편곡한 Duel 이 흐르면서 컴퓨터와 여자주인공이 협연하는 장면은 꽤 유명한 명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로맨틱컴퓨터’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되었었다.

[소설]잃어버린 얼굴(The Bourne Identity, 1980)

Ludlum - The Bourne Identity Coverart.png
Ludlum – The Bourne Identity Coverart” by From Amazon..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Robert Ludlum이 1980년 발표한 스파이 스릴러로 원제는 그 유명한 The Bourne Identity다. Jason Bourne이라는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사나이의 모험과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이후 The Bourne Supremacy(1986년), The Bourne Ultimatum(1990년)까지 총 3부작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이다.

비록 2002년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기는 했지만 이 영화는 사실 원작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전직 킬러’라는 설정만을 따왔을 뿐 이야기는 상당부분 원작과 다르다. 이렇듯 원작과 영화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첫째, 복잡한 내러티브의 원작을 한정된 상영시간의 영화에 담을 수 없는 점. 둘째, 냉정시대를 배경으로 한 원작을 2002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으로 옮기기에는 관객들의 정서가 많이 달라졌다는 점. 셋째, 위 둘의 이유와 연장선상에서 Carlos라는 Bourne의 천적을 영화에서는 제외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원작에서 등장하는 Carlos는 Carlos Jackal이라 알려진 실존인물 Ilich Ramirez Sanchez을 염두에 둔 캐릭터다. 이 작품에서 Bourne은 냉전시대 악명 높은 극좌 테러리스트였던 그와 라이벌로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암살작전의 암호명이었던 트레이드스톤은 바로 Carlos의 검거작전의 암호명이다. 이러한 구도로 인해 원작은 선악의 경계가 모호했던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악의 구도를 명확히 하고 있다. 또 하나 차이가 나는 캐릭터는 바로 Marie의 존재감이다. 영화에서 수동적이고 어찌 보면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던 Marie는 원작에서 적극적으로 Bourne의 정체성을 찾아주려는 똑똑한 경제학 박사로 등장한다. 그녀의 본업이 국제금융투기집단의 횡포를 막으려는 캐나다 정부요원이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요컨대 짧은 상영시간의 영화에 담을 수 없었던 많은 디테일들이 소설에는 담겨져 있으므로 영화를 재밌게 본 분이라면 충분히 그 재미를 즐길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국내에서는 고려원에서 1992년 1부를 발표한 이래 3부까지 총 여섯 권이 발간되었다. 다만 절판되어서 번역본으로 읽으시려면 헌 책방을 뒤지시는 방법밖에는 없을 듯 하다.

* 번역본 표지에 등장하는 Richard Chamberlain의 모습은 1988년 옮겨진 TV시리즈의 한 장면이다.

참고사이트
http://en.wikipedia.org/wiki/The_Bourne_Identity_%28novel%29
http://blog.naver.com/hidehiro/100006575946
http://pennyway.net/264

Against All Odds(1984)

Againstalloddscover.jpg
Againstallodds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Virgin, Atlantic.. Licensed under Wikipedia.

주제가에 이만큼 파묻힌 영화가 있을까?80년대대중의 감성을날카롭게 자극했던 유명감독 Taylor Hackford에(사관과 신사의 그 감독)Jeff Bridges, Rachel Ward, James Woods 등 유명배우들이 멕시코 환상적인 경치의 휴양지며유적지 돌아가며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Against All Odds 라는 표현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오로지 Phill Collins 의 애절한 발라드로만 기억될 뿐이다.

이유를 되짚어 보자면 첫째, 노래가 너무 명곡이었다(갑자기 “따봉”을 외치던 그 광고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따봉”은 기억하는데 그 쥬스의 브랜드는 기억 못하는 그런 철저히 실패한 광고). 둘째, 느와르란 장르는 80년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당대의 스타 Jeff Bridges, Rachel Ward가 전라의 연기를 펼치는가 하면 걸출한 느와르 배우 Richard Widmark가 측면지원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80년대의 왠지 들뜬 분위기는 안티히어로와 팜므파탈이 매력을 발산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관객들은 차라리 같은 해 나온 코믹한 형사물 Beverly Hills Cop의 손을 들어주었다. 셋째, 결정적으로 영화가 수렴되는 맛이 없고 산만하다. 남미의 환상적인 피난처에서의 두 연인의 뼈를 불사르는 사랑에서 느닷없이 LA로 건너뛰더니 주인공 Terry는 악당들을 한방에 보낼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쥐고 있음에도 별 이유도 없이 악당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만다.

그럼 영화가 재미없었냐 하면 ‘정말’ 재미있다. 적당한 긴장감, 멋지게 펼쳐지는 경치, 유치하지만 그래서 볼만한 로맨스(또는 육욕), 적당히 건드려지는 물질문명의 야욕 등 느와르의 구성요소를 모두 갖추었고 나름 잘 믹스도 시켰다. 문제는 이러한 통속성이 잘 어우러져 화학적으로 융합이 되어야 하는데 조금씩 삐끗 하다는 느낌이 이질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아무려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Rachel Ward의 뒤로 흐르는 주제가가 이 모든 것을 보상해준다. 몇 안 되는 80년대 느와르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으신 분에게 추천. 물론 ‘제대로’ 된 80년대 느와르를 원하시면 Body Heat 를 추천.

Quadrophenia(1979)

“’모드족’은 1960년대 영국의 가난한 백인 노동자 계층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다. 당시 영국의 젊은이들은 모드족과 ‘로커족(Rockers)’들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기성 세대에 대한 반항과 일탈이라는 점만 빼곤 둘은 모든 면에서 대립을 이루었다. 로커족들은 머리를 길게 길러 머릿기름을 잔뜩 바르고, 가죽 재킷을 입고 가죽 부츠를 신고, 육중한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녔으며, (당연하게도!) 시끄러운 록 음악을 듣고, 헤로인을 복용했으며 ‘클럽 59’를 본거지로 삼았다. 반면 모드족들은 유별날 정도로 외모에 집착해 깔끔한 헤어스타일, 최신 유행의 옷차림으로 거리를 누볐으며 가죽 잠바 대신 파카를 주로 입었고, 모터사이클 대신 스쿠터(scooter)를 타고 다녔고, 록 음악 대신 모던 재즈나 리듬 앤 블루스를 주로 들었으며 헤로인 대신 암페타민(Amphetamine)이라는 각성제를 복용했으며 ‘카나비 스트리트 (Carnaby Street)’를 본거지로 삼았다.”

이쯤이 대충의 모드족에 대한 정의이고 보다 자세한 정보를 위해 여기를 방문하실 것.

Quadrophenia movie.jpg
Quadrophenia movie” by [1].. Licensed under Wikipedia.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모드족의 시조라 할 수 있는 The Who 가 1973년 발표한 록오페라 앨범 Quaderphenia 를 기초로 만든 영화다. 그룹이 그들을 따라다닌 팬의 이야기를 기초로 썼다는 이 앨범은 그들의 걸작 Tommy 와 같은 하나의 컨셉트앨범으로 전체 앨범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고 이 영화는 그 줄기를 따라가고 있다. 1964년 모드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는 Jimmy Cooper 는 직장에 다니고는 있지만 다만 그것은 모드족의 생활이 유지될 만큼만 돈을 벌면 그만인 직장이다. 스쿠터, 음악, 친구들, 그리고 Blues 라 불리는 환각제 … 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록커들과 사사건건 시비를 붙던 Jimmy와 그 패거리들은 급기야 길거리에서 몇몇 록커를 폭행하는데 그중에는 Jimmy 의 어릴 적 친구도 끼어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갈등은 동물들의 영역싸움과 다를 바 없는 거칠고 비이성적인 것이었다. 항상 이상한 패션과 음악에 심취해 있는 Jimmy를 부모는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Jimmy 가 마음이 뺏겨 있는 Steph는 나름대로 Jimmy에게 호감을 보인다. Bank Holiday 에 브라이튼의 해변에 모드족과 록커족이 모여든다. 이 과정에서 두 진영은 심각한 패싸움을 벌이고 경찰이 출동하여 사태를 진압한다. Jimmy는 이 소요의 흥분에 젖어 Steph 과 골목길에서 성관계를 갖지만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법정에서 Jimmy는 우상이었던 Ace Face(The Police의 Sting)와 연대감을 느끼고 뿌듯한 마음에 집에 돌아왔지만 부모와 직장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듣고는 직장을 때려치워 버린다. 그런데 이런 그를 환영해 줄줄 알았던 친구들이 웬일인지 Jimmy에게 시큰둥하고 그새 Steph 는 그의 친구와 어울려 다닌다. 상심한 Jimmy는 브라이튼으로 돌아가 그날의 승리감과 성적 쾌감을 곱씹어보지만 그것은 한 순간의 덧없는 희열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는 그의 우상이었던 Ace Face 가 호텔 벨보이로, 조직의 순응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목격하고 뼈 아린 배신감을 느낀다.

http://www.modrevival.net/
http://en.wikipedia.org/wiki/Quadrophenia_(film)

Splash(1984), Mannequin(1987)

80년대 대중문화의 분위기를 표현하라면 무언가 잔뜩 부풀어 있고 유치한 듯 하면서도 흥겨웠던 분위기였다(물론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은 지극히 암울했지만). 특히 영미권의 대중문화는 흥겨운 뉴웨이브 음악, 어깨가 잔뜩 올라간 옷과 헤어밴드 등의 화려한 패션 등이 이러한 분위기를 한껏 부추겼다. 영화 역시 이 시기에는 팝적인 분위기가 만발하였고 많은 대중취향의 영화가 장르를 불문하고 코믹하고 경쾌하게 그려졌다. 여기 소개하는 두 편의 영화 모두 그러한 기운이 한껏 느껴지는 영화들이다.

Splash ver2.jpg
Splash ver2” by www.impawards.com. Licensed under Wikipedia.

Splash(1984)와 Mannequin(1987) 이 두 편의 영화는 당대의 스타였던 톰행크스, 앤드류맥카시, 다릴한나, 그리고 킴캐드럴(섹스앤더시티에서 밝히는 그 누님) 등을 주연으로 기용한 로맨틱코미디다. 이 두 영화는 또한 중요한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데 바로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두 연인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Splash 에서의 히로인은 인어이고 Mannequin 에서의 히로인은 마네킹이었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Splash 는 잘 아시다시피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그리고 Mannequin 은 그러한 맥락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일종의 현대판 로맨스 동화인 셈이니 영화가 재미만 있다면 얼마든지 익스큐즈해줄 설정이고 실제로 두 영화 모두 재미는 보장한다. 한편으로 두 영화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은막에서 재현하고 있는데 급진적인 여성해방론자라면 약간은 짜증이 날만도 한 스토리이다. 역시 다릴한나가 출연한 또 하나의 80년대 로맨스코미디 Roxanne 에서는 못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성공하는 데도 그 반대의 경우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 영화계의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Mannequin movie poster.jpg
Mannequin movie poster” by The post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Metro-Goldwyn-Mayer.. Licensed under Wikipedia.

어쨌든 두 연인 모두 세간의 사람들에게 들킬 새라 조마조마한 사랑을 나누게 되고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개인적으로 아이디어의 참신성은 떨어지지만 극의 밀도감이나 폭소를 자아내는 몇몇 에피소드가 뛰어난 Splash 가 더욱 맘에 든다. 또 결국 남자가 여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를 따른다는 점에서도 약간은 여성해방론자의 구미에도 맞을 일일지도 모르겠다.

* Splash 에서 영화 마지막에 감미로운 주제가 Rita Coolidge 의 Love Came For Me 가 깔리면서 두 연인이 해저를 헤엄치면서 인어왕국으로 가는 장면은 제법 감동적이다. 한편 Mannequin 의 주제가는 그 유명한 Starship 의 Nothing’s Gonna Stop Us Now 이다.

아키라, AKIRA(1987)

Neo-Tokyo Akira.jpg
Neo-Tokyo Akira” by https://github.com/prideout/effects-salad. Licensed under Wikipedia.

원작자 오토모가츠히로가 작품의 독립성을 위하여 별도의 위원회(일명 “아키라 위원회”)까지 구성하여 제작한 이 영화는 원작의 인기에 못 미치는 일본의 흥행성적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는 저패니메이션이라는 신천지를 소개한 컬트 영상이 되어 일본으로 금의환향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장장 12권에 달하는 장편만화 원작을 120여 분에 담아낸 탓에 영화는 마치 만화속의 인물들에게 “시간이 없으니 어서들 부지런히 연기해주세요”라고 몰아붙이는 느낌이다. 요즘같아서는 당연히 ‘반지의 전쟁’처럼 3부작 쯤으로 늘였겠지.

아키라라는 상상초월의 절대존재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초능력자들의 대결을 중심으로 카네다와 K 의 모험과 로맨스가 3차 대전이후 재건된 네오도쿄에서 펼쳐진다. 냉정하다 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웅장한 화면 – 네오도쿄의 건물들은 만화에서보다 영화에서 더 미래주의적으로 그려져 있다 – 이 이전의 저패니메이션과 차별화되어 내용에 걸맞는 형식미를 뽐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앞서 말했듯이 짧은 러닝타임 – 원작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 으로 인해 사건의 설명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각 캐릭터간의 갈등과 대립이 생뚱맞은 측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데츠오와 다른 초능력자들 간의 대립의 이유, 카네다가 데츠오를 죽이려는 이유, 부패한 정치인 네즈와 혁명가 류가 함께 일한 이유 등이 영화에서는 모호하고 – 나같이 머리나쁜 사람은 원작 만화를 읽어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 – 결정적으로 원작에서 19호로 불리며 극의 큰 축을 담당했던 신흥종교의 교주는 어이없게도 사이비 교리를 외치다가 데츠오가 파괴한 다리에 떨어져 죽는 식의 엑스트라로 전락하고 만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러한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키라는 저패니메이션을 뛰어넘어 사이버펑크라는 SF의 하위장르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걸작임에는 틀림없다. 원작자의 과학문명에 대한 비관적 입장이 형상화된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디스토피아였고 이는 당시 몇몇 걸출한 SF 등과 함께 훗날의 SF 의 경향을 주도하는 데에 한 몫 담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문명비판의 메시지와 함께 추축국이었던 일본의 패배와 전후 고속성장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피로감을 나타낸 작품이기도 하다. 좌익이 되었건 우익이 되었건 일본의 전후세대는 빠르게 변화하는 문명 속에서 가치관의 혼란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느꼈고 그러한 혼란은 좌우익 모두에게 무정부주의, 염세주의적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러한 열망을 네오도쿄의 폭파와 미지의 생명 탄생이라는 사건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Battle Beyond the Stars

스타워즈(1977)와 ‘7인의 사무라이’(아니면 이 영화를 패러디한 ‘황야의 7인’)을 짬뽕하여 철저히 흥행을 노리고 만든, 그러나 참 심심한 작품. 제작 로저 코먼 프러덕션, 시나리오 존세일즈, 미술감독 제임스카메론, 조지페파드(A특공대의 맏형)와 로버트본(‘황야의 7인’에도 출연했던)의 쌍끌이 조연 등 나름대로 호화진용이었다. 하지만 음악에서부터 너무 스타워즈를 베낀 티를 역력한데다 전투장면은 왜 그리도 어둡고 두서없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결정적으로 주인공 Shad 역을 맡은 리차드토마스는 정갈하게 머리빗은 70년대 회사원풍의 가녀린 외모를 하고서는 어찌 그리 죽도 못먹은 사람마냥 힘없이 연기하는지 보는 사람이 지루할 정도이다.(뺨에 점은 또 왜 그리도 커보이는지) 다만 네스토라 불리는 외계인 캐릭터 설정은 나름 볼만 했다. 그러나 어쨌든 나름대로 틈새시장을 노린 이 작품은 로저 코먼이 80년대 내놓은 영화중 가장 좋은 흥행성적을 남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