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보관물: Glam rock

각종 장르 설명

다음은 음악전문 도서출판 꾼의 브리티시 모던 록과 Hot Music 1996년 6월의 내용중 일부입니다

1. Ambient

70년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만들어낸 장르로써 90년대 들어 다시 관심을 끌고있다. 거의 명상음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음의 변화가 적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일관 하는데 이런 사운드는 청취자의 취향에의 잠재의식 속의 어두운 일면과 청자들의 청력을 몇시간동안 차지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뮤지션으로는 Brian Eno, Aphex Twin, Orb등이 있다.

2. Arsequake

87년에서 83년의 브로드 바톰드 브레이스(Broad-Bottomed Brace)로 지칭된 그룹들, 즉 The Young Gods, Big Black 이 그 대표적인 부류이다. 극단적인 기계음과 강렬한 비트, 기괴함을 주무기로 하는 헤비 록을 추구한다.

3. Baggy

황량한 인디 현상을 내포하고 있는 음악 부류로서 이펙트 페달과 끊어질 듯 이어지는 노래로 구성되어 있으며 거기에 더하여 드러머의 백 비트가 어우러진다. Shoegazing이 중산층을 겨냥한 음악가라고 한다면 Baggy는 명백히 노동자 계층을 위한 음악 분야이며 동시에 침체된 분야라 할 수 있다. The Stone Roses, Happy Mondays, Charlantans, Blur 등이 이에 속한다.

4. Drip Rock

Stephen ‘Tin Tin’ Duppy, Prefab Sprout, Felt, Aztec Camera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분야로 이 장르의 음악에는 여러가지가 복합되어져 있지만 대체적으로 싱어로 꽉 채운 듯한 음악과 로맨틱스럽게 꾸민 듯한 풍이 얽혀 있는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5. Dub

레게 음악과 트립 합의 중간쯤 된다고 할까? 세상에서 가장 환상에 잘 빠져들게 만들어주는 장르로 살인과 같은 세상의 여러 추악함을 잊게 해준다. 이 분야의 음악이 긍정적으로 적용할 때는 듣는이의 머리 속을 재정리 할 수 있게하지만 부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때는 나태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마약과도 같은 이 음악의 대표 밴드로는 Tortois가 있다.

6. Glam Rock

David Bowie, Marc Bolan 으로 대표되어지는 음악 장르로 기괴한 분장과 화장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으며, 70년대 초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뒤에는 Wizzard, The Sweet, Gary Glitter, The Bay City Rollers등이 활동했는데 이들이 노쇠함에 따라 점점 사그라 들어가고 있다.

7. Indie Rock

펑크 록이 인디 레이블에서 발표되면서 대규모 레코드사나 거창한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은 7인치 레코드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 소규모 레코드 회사들이 인디 록의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인디 록은 어떤 형태로든 메이저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인디 록이라고 할 수 없다. 요즘의 인디 라는 것은 찢어진 청바지와 가죽 옷을 몇년동안 입고 싸구려 맥주를 플라스틱 컵에 마시는 사람들을 말한다. 대표 밴드를 꼽는다는 것이 무의미하나 어떤 잡지에서는 스톤 로지스를 최고로 꼽고 있다.

8. Jungle

계속되는 음악의 발전은 특히 댄스 음악의 분야에서 그 강세가 돋보이는데 레이브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형태인 정글은 BPM 250 이상의 극단적인 빠름과 일정한 포인트음의 딜레이 효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미 외국에서는 중요 장르로 자리집은 만큼 그 파급 속도가 빠른 이 장르에는 Goldie 라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있다.

9. Merseybeat

초기 레코드사의 횡포가 점차 심해지는 가운데, 리버풀은 비틀즈의 성공이후 즉시 여타 밴드들로 꽉 채워졌다. 그 결과 Gerry & The Pacemakers, Billy J.Kramer & The Dakotas 등이 머시비트류로 구분되어졌다. 이 장르는 로큰 롤과 재즈의 한 형태인 스키플(Skiffle), 컨트리적인 하모니가 조화된 장르로서 블루톤스(Bluetones), 라스(Lars), 캐스트(Cast) 등이 이 장르의 인물로 분류된다.

10. New Romantics

60년대 초반 처음으로 시작된 이후 상류층과 같이 되고 싶은 욕망이 패션으로 발달된 장르이다. 그후 Spandau Ballet 가 인기를 끄는동안 영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18세기의 댄디나 공립 학교 학생들처럼 보일 정도로 이 장르의 인기는 대단했다. 깔끔하고 귀족적인 외모와 낭만적인 멜로디, 퇴페적인 분위기로 한 시대를 풍미 했었다. 대표 밴드로는 Abc, Duran Duran, Japan 등이 있다.

11. New Wave

70년대 말 한창 득세하고 있던 펑크는 그 과격함과 무례함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 받기 시작하였고, 세상은 펑크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달리 많이 변했다. 사람들은 좀더 살기 좋아짐에 따라 듣기 좋은 것을 찾기 시작했고 그런 취향에 편승해서 아름답고 편안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들이 등장했다. 이 장르에는 XTC, The Knack 등 우리 귀에 친숙한 밴드들이 많이 들어 있다.

12. Pub Rock

주로 퍼브 록이라는 말은 주로 펑크 록 등장 이전인 70년대 전반에 클럽의 소규모 형태인 퍼브(Pub)를 중심으로 충실한 라이브 활동을 행했던 브리즐린 슈워츠와 독스 디럭스 등을 일컫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음악 장르로서는 과거의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퍼브에서 연주하는 뮤지션이라면 누구라도 퍼브록커이며, 퍼브록은 록에서 리듬 앤 블루스, 컨트리까지의 음악 장르를 불문하고 펼쳐졌다

13. Riot Grrrl

맹렬 여성 붐과 때를 같이한 페미니즘을 한단계 발전시킨 장르이다. 공격적이고 남자들을 능가하는 펑크에 기반을 둔 강력한 음악이 이들의 특징이다.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불안을 대변한 장르로써 음악잡지의 평이나 그 밖의 모든 구속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 음악의 한 사조이다. 대표적인 밴드로는 Hole, Seven Years Bitch, Babes In Toyland 등이 있다.

14. Romo

로모가 로맨틱 모더니즘을 뜻하고 있음을 상기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글램 록과 나르시즘, 뉴 웨이브 등으로 치장하고 싸구려 신서사이저와 값싼 립스틱에 대한 향수 등으로 그 속에 절대성을 내포하고 있다. 짙은 화장과 성을 종잡을 수 없는 외모등은 이들의 커다란 특징이다. 대표 밴드로는 Orlando, Hollywood 등이 있다.

15. Shoegazing

흔히 드림 팝이라고 불리우는 이 장르는 몽롱한 분위기와 퇴페적인 나른함을 특징으로 한다. 노이즈와 멜로디의 결합이라는 말로 설명되는 이 장르는 My Blood Valentine 이라는 대표적인 밴드를 가지고 있다.

16. Synth Pop

그룹 Cars 와 Gary Numan에 의해 쉽게 유명해진 음악 장르로 신디 팝이 뜻하는 바는 즉 OMD를 의미한다고 할 정도로 OMD는 이 장르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전기타자수들처럼 쇠잔해져가고 있는 이 분야는 현재 샘플러의 활동만이 눈에 보인다. 대표적인 밴드로는 Depeche Mode, Yazoo, Human League, Erasure 등이 있다.

17. Techno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하에 원래는 Detroit’s Derrick May, Kevin Saunderson과 Juan Atkins 에 의해서 만들어진 음악이다. 이 장르는 시카고의 하우스 사운드 보다도 더 최면적이며 반복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요즘 거의 모든 전자 음악에 이용되어지고 있는 음악의 분야이다.

18. Trance

엔지니어 혹은 컴퓨터 음악을 하던 이들이 클럽에서 당시 유행하던 터크노 같은 음악보더 좀더 공격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 시초가 되었던 이 장르는 듣는 와중에 사람의 정신을 빼놓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대뵤적인 밴드로는 Chemical Brothers, 808 State 등이 있다.

19. Trip Pop

흔히 브리스톨 사운드로 불리우는 이 장르는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장르이다. 테크노와 엠비언트, 60년대의 블루스, 재즈에 힙합 리듬이 섞인 이 장르는 퇴페적이고 나른한 분위기로 음악 팬들을 사로 잡으며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브리스톨 3총사로 불리우는 Massive Attack, Tricky, Postishead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0. Hardcore Punk

하드코어 펑크의 시초는 77년, 스토이크온 토렌트 결성을 모태로한 디스체야지의 앨범 “Why”부터 였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영국의 하드코어 운동에 가세했고, 이어 익스플롭티드의 앨범 “Troops Of Tomorrow”와 버빙검 출신의 4인조 그룹 G.B.H.의 앨범이 이러한 부류에 편승하였다. 84년 카오스 UK가 앨범 “Short Sharp Shock”를 공개했고, 85년에는 Amebix가 앨범 “Arise!”를 내놓아 하드코어 펑크 흐름을 계승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형성은 점차 메틀 사운드가 가미되면서 구체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86년에는 Conflict가 앨범 “The Ungovemable Force”를 발표하면서 주류를 형성하였고, 87년에는 네이팜 데스가 앨범 “Skam”을, 89년에는 스나이프가 동명 타이틀 앨범을, 88년 Heresy가 “Voice Your Opinion”으로 91년에는 Extreme Noise Terror가 강력한 하드코어 사운드가 깃든 앨범으로 주목 받는다. 그러나 하드코어 펑크는 사운드의 극단적인 요소로 인해 더 이상 자리매김 하지 못한다.

http://community.shinbiro.com/@stage/genre/etc.htm#1

Glam Rock

영화 Velvet Goldmine으로 인하여 어느새 친숙한 장르가 되어버린 글램락은, 7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다. 글램락의 대표적인 특징은 기발한 의상과 기본적이고 단순한 Rock n’ Roll 리듬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다. 60년대 말에서 70년 대 초는 록음악 과도기의 절정이었다. 록음악이 음악적 허약기를 거쳐 회복하는 시기였다. 그 발전은 음악의 발전이 으례히 그러하듯, 기존의 음악에 대항하는 위반과 도발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즈음의 하드록 밴드나 프로그레시브 밴드의 음악에 식상해진 일부 사람들은, 록음악이 최고였고, 한껏 차려입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되었던, 50년대 말 60년대 초의 음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한계를 인식하여 뿌리를 찾으려는 시도였지만 동시에 뿌리 자체를 풍자하는 움직임이기도 하였다.

록은 연극적인 것이 되었으며, David Bowie는 그러한 경향을 좀더 가다듬고 기술적으로 완성시켰다. 기본으로 돌아가고, 화려하게 치장하자,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바로 글램락이다. 글램락 탄생의 주역은 글램락의 왕자라고 불리는 Marc Bolan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 어쿠스틱 음악을 하던 Tyrannosaurus Rex (Marc Bolan, Micky Finn) 는 이름을 T-Rex로 바꾸고, 보다 기계적인 음이 들어간 음악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크게 히트를 쳐 글램락 시기를 열어가기 시작하였다. Velvet Goldmine은 David Bowie를 모델로 하였지만, 실제로 글램락을 얘기할 때는 그보다는 Marc Bolan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에는 견해 차이가 있다. 어느 쪽에서는 David Bowie와 Lou reed를 글램락의 중심 인물로 보기도 하다.

David-Bowie Early.jpg
David-Bowie Early” by Rik Walton – http://www.flickr.com/photos/rikwalton/2259388449/ http://www.rikwalton.com.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David Bowie는 1969년 Space Oddity로 히트를 쳤지만, 72년 그는 Ziggy Stardust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의 밴드 The Spiders From Mars (Mick Ronson (G), Trevor Bolder (B), Mick Woodmansey (D)) 와 함께 활동을 시작하였다. Mott The Hoople은 그때까지의 앨범 3장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해 밴드를 해체할 분위기에 있었지만, David Bowie가 그들에게 써준 곡 ‘All the Young Dudes’의 성공으로 복귀하였다. Roxy Music(Bryan Ferry, Phil Manzanera, Brian Eno, Andy Mackay, Paul Tompson, Graham Simpson)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Bryan Ferry는 얼마 동안은 이런 겉치레를 거부하였으나 Roxy Music과 함께하면서부터 화려한 옷과 분장의 쾌락을 재발견하였다. Slade와 Sweet도 사랑 받은 글램락 밴드였다. 특히 Slade는 그 짧은 괴상한 앞머리로 그 당시 뭇 소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Alice Cooper가 그의 밴드와 함께 이 흐름에 합류하였다. 이들 글램락 밴드들(특히 Sweet)은 기상천외한 무대의상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무대 위에서 공공연한 동성애적 행위를 하였는데 그들 중 실제로 동성애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 ‘쇼’의 일부였던 것이다. 1973년은 말 그대로 글램락의 전성기였다. Gary Glitter, T-Rex, Slade 등은 ‘Do you wanna touch me’. ’20th century boy’ 등 잇달아 히트곡을 발표하였고, Bowie도 ‘Life on Mars’라는 히트곡을 낸다. 글램락은 영국을 휩쓸었지만, 모두에게 환영 받은 건 아니었다. Marc Bolan과 Slade는 물론이고, 그 굉장한 David Bowie조차도, ‘진짜 음악 팬’이라는 무리들에게 비웃음을 받았다. 그들은 화려한 머리모양과 복장을 경멸했기 때문이었다. 헤진 청바지가 그들의 복장이었다. Bowie가 복권(?)한 것은 펑크 밴드들이 그를 추앙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1974년을 시작으로 글램락은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Gary Glitter는 은퇴를 선언하였고, Slade는 발라드를 내기 시작했다. Marc Bolan은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David Bowie는 ‘Diamond Dogs’ 를 냈는데, 그의 글램락 캐리어는 1972년의 앨범 ‘Ziggy Stardust’ (혹은 Aladin Sane) 에서 절정을 이루어 이미 쇠퇴하고 있었다. 그리고 1975년, 글램락은 실질적으로 끝이 났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이 시기의 글램락은 몇 년 후에 크게 일어나는 punk와 뉴 웨이브 음악의 바탕을 이룬다. 미국 펑크 음악의 시초는 Velvet Underground나 Stooges를 치지만, T-Rex나 Alice Cooper의 음악에서도 펑크 분위기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cf.)글램락이 크게 인기를 끌자, 그 아류도 족족 생겨났다. Elton John도 그 아류 중 한명이었는데, 말하자면 글램락의 화려함과 기상천외함, 음악적 특징 가운데 ‘기상천외함’에서만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그가 발표한, 글램락 분위기를 살짝 풍기려다 아주 마는 ‘Rocket Man’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어쩔 수 없는 졸작이다.

주요 아티스트

Marc Bolan
David Bowie
Gary Glitter
The New York Dolls
Roxy Music
Slade
Sweet
T. Rex

주요 앨범들

David Bowie: Rise & Fall of Ziggy Stardust [1972]
The New York Dolls: New York Dolls [1973]
David Bowie: Hunky Dory [1972]
Mott the Hoople: All the Young Dudes [Columbia] [1972]
Eno: Here Come the Warm Jets [1974]
David Bowie: Changesbowie [1990]
Iggy & The Stooges: Raw Power [1973]

Roxy Music

Roxy Music - TopPop 1973 03.png
Roxy Music – TopPop 1973 03” by AVROBeeld En Geluid Wiki – Gallerie: Toppop 1973.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아트락과 프로그레시브 그리고 아방가르드가 적절히 접목되었던 이색그룹 “Roxy Music”의 청사진이 그려진 것은 1970년 11월, 브라이언 페리의 두뇌에서 시작되었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오랜 친우인 베이시스트 그래험 심슨과 록시뮤직에 동승할 인재들을 서서히 캐스팅하기 시작했으며, 그 노력의 소산으로 키보디스트 브라이언 이노와 목관악기의 귀재 앤드류 메케이, 그리고 나이브한 드러머 덱스터 로이드와 나이스 출신의 키타리스트 데이빗 오우 리스트 등을 규합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워낙 다양한 개성의 인재들이 모였던 부작용으로 1972년에 선보인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을 전후해서 데이빗과 덱스터가 그룹을 등졌고, 그 후임으로 이미 로컬그룹(Smokestack)에서 명성을 높이고 있던 휠 멘저네러(키타)와 폴 탐슨(드럼)이 가입,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는다. 킹크림슨의 철학적인 가사담당으로 널리 알려졌던 피터 신훨드의 제작으로 등장했던 록시뮤직의 첫앨범은 [Virginia Plain]과 [Pyjamarama] 같은 히트곡을 배출하면서 영국챠트 1위에 오르는 성공적인 거보를 내딛었다.이후 다소의 멤버교체를 단행하여 발표했던 73년초의 2집 [For Your Pleasure], 73년 말의 3집 [Stranded](당시 18세였던 천재 에드윈 좁슨 가입), 74년의 4집 [Country Life], 75년의 5집 [Siren], 76년의 6집이자 실황앨범이었던 [Viva Roxy Music] 등에 이르기까지 5년동안에 예지가 번뜩였던 6매의 명반을 토해낸후 더욱 실험적인 사운드를 구사하기 위해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79년에 재결성되어 [Manifesto]를 발표)휠 맨저내러는 [Diamond Head]를, 앤디 메케이는 존 케이지의 제자답게 전위적인 작품세계를 [In Search Of Eddie Riff]를 통해 각각 노출했으며, [Quiet Sun : Mainstream]이라든가 [801 : Live]같은 진취적인 실험앨범의 주역으로 역시 “록시뮤직” 패밀리들이 참여했고, 브라이언 페리는 수많은 솔로앨범을 통해 리더의 역량을 과시하기 했다.

디스코그래피
1972 Roxy Music Virgin
1973 For Your Pleasure Virgin
1973 Stranded Virgin
1974 Country Life Virgin
1975 Siren Virgin
1976 Viva! Virgin
1979 Manifesto Virgin
1980 Flesh + Blood Virgin
1982 Avalon Virgin
1983 The High Road [live] Reprise
1990 Heart Still Beating [live] Virgin
2000 Valentine [live]
2001 Live Pilot
2001 Live Roxy Music Album Atco

링크
참고싸이트
Lyrics

Bowie, David

David-Bowie Chicago 2002-08-08 photoby Adam-Bielawski-cropped.jpg
David-Bowie Chicago 2002-08-08 photoby Adam-Bielawski-cropped” by Photographer: Photobra|Adam Bielawski
Derivative work: Y2kcrazyjoker4David-Bowie_Chicago_2002-08-08_photoby_Adam-Bielawski.jpg.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47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한 데이빗 보위(David Bowie; 본명 David Robert Jones)는 영국의 가장 위대한 록스타 중 한명으로 9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슈퍼스타이다. 3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팝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그는 항상 새로운 문화적 트랜드의 가장 전위에 있었으며 음악적인 면에서도 아방가르드적인 실험정신과 도전을 추구해 왔다. 물론 어떤 면에서 그의 행적은 상당 부문 마케팅 상술의 일종-이를 테면 70년대 충격적인 ‘게이선언’등-으로 비춰지는게 사실이지만 ‘지기 스타더스트’로 상징되는 ‘스페이스 록’, 그리고 기존의 권위와 성정체성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특유의 글래머러스한 분위기는 60∼70년대 수많은 젊은이들과 전위적인 예술가들을 열광시키며 새로운 경향을 형성했었다.

데이빗 보위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모는 그가 태어날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형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꽤나 과격한 성격이었던지 그는 거리에서 싸움질을 하다가 왼쪽 눈의 동공이 영구적으로 확장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행히도 음악이라는 분출구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척 베리(Chuck Berry), 팻츠 도미노(Fats Domino),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같은 미국의 선구적인 록뮤지션들을 접하며 자란 그는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색소폰 연주까지 익히기 시작한다(보위의 색소폰 실력은 73년도에 발표한 루 리드(Rou Reed)의 [Walk on The Wild Side]에서 발휘되었다).

브롬리 기술 고등학교(Bromley Technical High School)에서 상업미술을 공부한 그는 콘-라즈(Kon-Rads)라는 밴드를 만들었다가 다시 동창인 조지 언더우드(George Underwood)와 함께 64년에 킹 비스(King Bees)를 조직해 영국 차트에 랭크된 싱글 ‘Liza Jane’을 발표한다. 그리고 10월에는 다시 런던을 근거지로 하고 있던 매니쉬 보이스(Manish Boys)에 들어가 EMI의 팔로폰 레이블과 계약을 맺는다.

이듬해에 그는 매니쉬 보이스를 떠나 로우어 써드(The Lower Third)를 조직하고 [You’ve Got A Habit of Leaving]을 발표한다. 66년에 로우어 써드는 파이 레코드(Pye Records)로 자리를 옮기고 그는 데이빗 존스라는 이름 대신 데이빗 보위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데이빗 보위 앤 로우어 써드(David Bowie & The Lower Third)는 파이 레코드에서 [Can’t Help Thinking about Me](66)를 발표(미국에서는 워너 브러더스에서 발매)하지만 앨범을 내놓자마자 보위는 솔로 아티스트로 전향해 66년 5월 솔로 싱글앨범 [Do Anything You Say]를 선보인다.

67년에는 그의 솔로 데뷔앨범 [The World of David Bowie]를 발표해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앨범 판매량은 미미했다. 이렇게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단명해버린-그러나 수년 후에 메이저 레이블에서 재발매되면서 뒤늦게 히트하는-[The Man Who Sold The World], [Hunky Dory]등 몇몇 앨범을 계속 만들어내던 그에게 본격적으로 대중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은 72년 미국 시장으로 진출해 재발표한 [Spacy Oddity]의 공이 크다. 이 앨범은 ‘스페이스 록(Space Rock)’이라는 신조어를 팝씬에 대두시키며 커다란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이보다 몇 달 앞서 발표한 문제작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또한 스페이스록과 글램록(Glam Rock)의 시초가 된 음반이다. 짙은 화장과 밤무대에나 어울릴 듯한 빤짝이 의상, 망사 스타킹, 하이힐, 심할 때는 드레스로 몸을 휘감고 등장한 중성적인 데이빗 보위의 퍼포먼스는 당시의 성정체성을 일거에 무너뜨리기 충분했고 21세기가 되면 모든 사람들의 성구별이 모호해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가 될 것이라는 보위의 말 또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퍼져나갔다. 이무렵 보위는 RCA 레코드사에서 재이슈시킨 [The Man Who Sold The World](90년대에 너바나 가 타이틀곡을 리메이크해 히트시키기도 했다)의 재킷에 여왕으로 분장한 채 등장하기도 했다. 열풍처럼 불어닥쳤던 글램록은 루 리드 , 이기 팝(Iggy Pop) , 브라이언 이노(Brion Ino), 퀸(Queen) , 토킹 헤즈(Talking Heads), 휴먼 리그(Human League) , 컬처 클럽(Culture Club) , 프리텐더스(The Pretenders), 듀란 듀란(Duran Duran), 소닉 유스(Sonic Youth),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kins) 등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정작 데이빗 보위는 2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글램록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양성애적인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그는 이후 거의 모든 무대에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서기 시작했다).

1975년에 이르러 싱글 ‘Fame’이 최초로 US 차트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올렸으며 소울과 펑크(Funk)의 퓨전앨범 [Young American]도 골드를 기록하는 등 그의 인기가 치솟아갔다. 그러나 이와 때를 같이 해 보위는 더 이상 앨범 제작도 투어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은퇴를 선언한다. 그 동안에도 ‘Fame’, ‘Changes’ 등은 여전히 팬들에게 애청되고 있었으며 ‘Velvet Goldmine’같은 곡은 UK 차트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은퇴 선언이 무색하게도 이듬해에 보위는 [Station To Station]을 발표해 UK 차트(5위)와 US 차트(3위) 톱텐에 올려놓고 미국 순회공연에 나서는데 투어 도중 이기 팝 을 비롯한 몇몇 뮤지션들과 매사추세츠 호텔에서 마리화나를 흡연하다 체포되어 2천달러의 벌금을 물기도 한다. 77년에는 브라이언 이노와의 합작품 [Low]에서 어둡고 밀도 높은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선사했으며 [The Man Who Fell The Earth]로 “US Academy SF Fantasy Horro Films Award”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앰비언트 음악의 대가로 기억되는 브라이언 이노와 보위는 80년 초반 몇몇 작품에서 합작하지만 두 사람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뛰어난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다.

80년대 초반 그는 [Just A Gigolo]라는 지저분한 영화에 출연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 부인 앤젤라와 이혼하는 등 불운한 시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얼마 후 퀸 과 함께 한 싱글 ‘Under Pressure’가 히트하고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 이 피쳐링한 [Let’s Dance](83)가 플래티넘을 기록하면서 어려움을 넘긴다. 또 영화 [캣 피플]의 사운드트랙을 제작해 찬사를 받았으며 브로드웨이 뮤지컬 [Elephant Man]에 등장하는 한편 프랑스의 여배우 까뜨린 드뇌브와 함께 영화 [The Hunger]에 출연하는 등 배우로서의 재능도 과시했다. 80년대에 들어서 그는 70년대만한 인기는 누리지 못했지만 매우 바쁜 행보를 계속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이전에 “정신적 퇴폐가 빚어낸 소음”이니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다”고 개탄했던 평론가들이 서서히 그에게 호감을 표시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85년도에는 “Live Aid Concert” 무대를 빛냈는가 하면 퓨전재즈 그룹인 팻 매시니 밴드(Pat Metheny Band)와 영화 [The Falcon And The Snowman]의 테마곡 ‘This Is Not America’를 녹음하고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의 믹 재거(Mick Jagger)와 함께 ‘Dancing in The Street’를 리메이크해 US 차트 톱텐에 올려놓는다. 87년에 발표한 [Never Let Me Down] 또한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고 골드를 기록하는 등 히트 행진을 계속하였으며 5월에는 앨리슨 모이엣(Alison Moyet), 빅 컨트리(Big Country), 테렌스 트렌트 다비(Terence Trent D’Arby) 등을 게스트로 초대해 글래스 스파이더(Glass Spider) 투어를 대대적으로 벌인다.

8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그는 리브스 가브렐스(Reeves Gabrels 리드기타), 토니 세일즈(Tony Sales 베이스, 보컬), 헌트 세일즈(Hunt Sales 드럼, 보컬) 등의 라인업으로 새 밴드 틴 머신(Tin Machine)을 결성한다. 틴 머신은 셀프타이틀 앨범 [Tin Machine](89)과 [Tin Machine Ⅱ](91)를 발표하지만 별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 채 얼마 못가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보위는 다시 솔로로 활동을 개시해 [Black Tie White Noise](93), 브라이언 이노와의 콜라보레이션 [Outside](95) 등을 발표해 노익장을 과시했다. 97년 1월 그의 50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마련한 “매디슨 스퀘어 가든 콘서트” 실황은 [Earthling]이란 앨범으로 제작됐으며 99년 9월에는 그의 최근작 [Hours]가 발매돼 시들지 않는 뮤지션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changgo.com

디스코그래피
1969 Man of Words/Space Oddity Mercury
1969 Space Oddity/Man of Words/Man of Music Atlantic
1969 Space Oddity Virgin
1970 The Man Who Sold the World Virgin
1971 Hunky Dory Virgin
1972 The Rise & Fall of Ziggy Stardust Virgin
1973 Aladdin Sane Virgin
1973 Pin-Ups Virgin
1974 David Live Rykodisc
1974 Diamond Dogs Virgin
1975 Young Americans Virgin
1976 Station to Station Virgin
1977 Low Virgin
1977 Heroes Virgin
1978 Prokofiev’s Peter and the Wolf RCA
1978 Stage [live] Rykodisc
1979 Lodger Virgin
1980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 Virgin
1982 Christiane F. Wir Kinder [Original… RCA
1983 Let’s Dance Virgin
1984 Tonight Virgin
1987 Never Let Me Down Virgin
1990 The Rise & Fall of Ziggy Stardust [Bonus… Rykodisc
1993 Black Tie White Noise Virgin
1995 Outside Virgin
1995 The Buddha of Suburbia Virgin
1995 Christiane F./Baal/Rarities Remembering
1997 Earthling Virgin
1998 Space Oddity [Bonus Tracks] Rykodisc
1999 Outside [Australia] BMG
1999 Low [Bonus Tracks] Virgin
1999 Heroes [Bonus Tracks] Virgin
1999 Let’s Dance [Bonus Tracks] Virgin
1999 Hours Virgin
2000 Outside [Import Bonus Tracks] MVP Japan
2000 Earthling [Australia Bonus CD] BMG
2001 Hours [Japan Bonus Track] EMI
2001 Rarest Live MF
2002 Rarest One Bowie [Bonus Tracks] [live] Japanese
2002 Heathen [Japan Bonus Track] Japanese
2002 Heathen Columbia
2002 Heathen [Bonus Disc] ISO
2002 Heathen [12×12 Special Package] ISO
2002 The Rise & Fall of Ziggy Stardust [30th… Virgin
2002 Heathen [SACD] ISO/Columbia
2002 David Live at the Tower Philadelphia
2002 Lodger [Bonus Tracks] Ryko

관련링크
Official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