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영화

올해의 즐거움 : 映畵편

Vertigo [1958]
오랫동안 최고의 걸작으로 군림하던 ‘시민 케인’을 최근 이 영화가 앞서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면에서 B급 추리 영화나 만들던 감독으로 여겨지던 알프레드 히치콕이 재평가되고 그의 작품이 최고의 걸작 자리에 오르는 과정 또한 그의 영화만큼이나 극적이다. 이 영화 또한 창조자의 권위회복 과정처럼 평범한(?) 스릴러에서 복잡한 알레고리가 담겨져 있는 걸작으로 재평가되기에 이르렀다.

Les yeux sans visage [1960]
제목은 ‘얼굴 없는 눈’이라는 의미다. 사고로 얼굴이 심하게 손상된 딸을 위해 한 외과의사가 젊은 여성을 납치하여 그의 얼굴을 딸에게 이식하려 한다는 끔찍한 설정의 공포물이다. 설정에서부터 그 진행과정, 그리고 결말이 빤하게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는 정밀하고도 스산한 연출이 매력적이기에 지루하지 않다. 여배우의 얼굴마저도 극의 설정과 잘 어울린다.

Saturday Night & Sunday Morning [1960]
프랑스 영화에 ‘누벨바그’가 있었다면 영국 영화에도 ‘뉴웨이브’가 있었다. 이 시기 영화는 주로 영국 노동계급의 날것의 삶이, 그 단조로운 일상에 어울리는 흑백 톤에 담겨져 전해졌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전형적 패턴을 담고 있다. 제조업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주인공은 얼굴이 잘 생긴 덕에 동료 아내와 바람도 피우고 예쁜 아가씨도 사귄다. 뻔한 결말이지만 그게 또 우리네 진솔한 삶이기도 하다.

Lawrence Of Arabia [1962]
영화 초반, 우물의 주인인 오마샤리프가 저 멀리서 낙타를 몰아 우물을 맘대로 사용하는 피터오툴 일행을 해치는 롱테이크가 이 영화가 무척 지루할 것이며 그만큼 뛰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신격화가 지나치다는 평가가 있기도 하지만 T. E. 로렌스만큼 현대의 모험성애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영화를 70mm로 극장에서 관람한 사람이 부럽다.

Apocalypse Now [1979]
미국인이 베트남전을 회고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애국주의적이거나 냉소적이거나 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식이든 가해자로서 취할 적당한 태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근사하게 취해야할 태도는 진지하게 그 전쟁이 부조리했음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당사국으로서는 이 영화처럼 반쯤 미친 상태에서 회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큐를 보면 제작진이나 출연진 모두 다들 그런 상태였다.

Don Giovanni [2014]
작년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가진 공연 비디오를 올여름 메가박스에서 가져와 상영하였다. 상영하는 날 객석에 나를 포함, 총 세 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음악적 유산 중에 가장 뛰어난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흐린 토요일에 극장에 앉아 돈지오반니를 본다는 것은 조금은 이상한 행동이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실황을 직접 볼 수 있기를.

Martian [2015]
어딘가에서 낙오될 수 있는 경우로는 가장 먼 곳에서 낙오된 인간이 바로 이 화성인 멧데이몬일 것이다.(그래비티의 산드라블록의 기록을 깸)1 그럼에도 불구하고 맷은 산드라보다 더 유쾌한 마음으로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화성의 주인이 된다. 영화는 그 긍정의 힘을 발랄한 70년대 디스코와 믹스하여 연출했다. 안전한 영화문법이기는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그래비티보다 중량감은 덜했다.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2015]
‘20세기 최고의 대중문화 아이콘이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유색인종 히어로 핀과 여자 제다이 레이를 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데 달려 있다 할 것이다. 특히 레이는 레아 공주의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이미지를 바꿔야 할 임무가 있다. 일단은 그 과제는 다음 시리즈의 과제로 남겨놓은 것 같고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BB8이었다.

Sicario [2015]
강간, 매춘, 마약, 납치, 살인이 일상인 미국 국경과 인접해 있는 멕시코의 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즈, 그 곳에서의 범죄소탕을 위해 세 명이 의기투합하는데 이들이 꾸는 꿈은 서로 다르다. 규정에 매달리는 바른생활 FBI 케이트, 목표를 위해 惡의 힘의 균형을 허용하는 CIA 책임자 맷, 정체불명의 남자 알레한드로. 이 삼각구도의 긴장감이 매우 탄탄하다. 시카리오는 멕시코에서 ‘암살자’란 의미로 쓰인다고.

Mad Max: Fury Road [2015]
스타워즈의 레이가 새로운 여전사로 등극하는 과제를 다음 에피소드로 미뤘다면 퓨리오사는 이번 에피소드에 그 임무를 110% 수행했다. 멜깁슨 없이는 ‘앙꼬 없는 찐빵’같았을 영화가 새로운 매드맥스 톰하디에 의해 세대교체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새 영웅 퓨리오사가 그 왕좌를 완벽하게 넘겨받아 영화 그 자체가 환골탈태를 거쳤기에 나는 이 영화를 단연 올해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하는데 주저함이 없다.(감상문 읽기)

  1. 지금 생각해보니 ‘금단의 혹성’의 박사 모녀는 더 멀리 낙오되긴 했다

첼로 켜는 고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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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uche AMJuJu”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1982년 발표된 애니메이션 <첼로 켜는 고슈>를 보다 심도 깊게 즐기기 위해서는 원작자인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베토벤 교향곡 6번에 대한 사전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미야자와 겐지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교육자이자 소설가다. 하지만 그보다는 부유한 집안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군국주의로 치닫던 시대적 조류를 거부하고 농촌에 정착하여 새로운 농사법을 연구하는 등 농촌에서의 삶의 질 개선에 헌신한 농부이자 개혁가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바로 주인공 고슈가 첼로 연주자임에도 그는 농촌에서의 조용한 삶을 즐기는 독신자였다는 점이 겐지의 삶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흔히 “전원(田園)”으로 알려진 베토벤 교향곡 6번은 이 애니메이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음악이다. 어느 시골에서 예정된 연주경연에 참가할 교향악단이 연주할 음악이 바로 전원생활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베토벤 교향곡 6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슈는 이 악단에서 실력이 쳐져 구박을 당하는 첼리스트다. 그런 고슈의 구원자는 바로 자연이다. 고양이, 쥐, 너구리 등이 밤마다 나타나 고슈의 연주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은근슬쩍 부추기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고슈에게 있어 자연은 삶의 터이자 예술에 대한 영감이자 그 조련사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겐지의 자연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63분의 짧은 상영시간에 간단한 플롯이지만 겐지의 소박한 삶에 대한 애정과 베토벤 교향곡 6번이 화학적으로 융합하며 흥겨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소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Mad Max : Fury Road 感想文

A man muzzled, standing and pointing a gun in one direction. A woman crouched beside him pointing her gun in the opposite direction. The title in large letters fills back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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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영화팬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이 안겨졌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Mad Max 시리즈의 4편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전편보다 더 강력한 하드코어 액션과 탄탄한 시나리오, 그리고 시대선도적인 페미니즘 세계관까지 얹어져서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초신경 자극 헤비메탈 무비’가 탄생하여 최고의 수작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일흔이 되신 조지 밀러 님께서 이 정도의 박력과 진보적인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계신 것을 보니 나이 탓만 하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질 따름이다.

지금 온라인에서는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다”, “아니다. 너희들의 오버이고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다”, “국내의 얼치기 꼴페미와는 다른 진짜 페미니즘 영화다” 등 페미니즘 함유량을 두고 말이 많지만 이 글에서 그 논쟁에 숟가락을 얹을 생각은 없다. 다만 예술이란 사회적 맥락과 수용자의 시각에 상호 조응하여 메시지가 전파되거나 발전하기 때문에 기계적 규정화는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을 말해두고 싶다. 발표 당시에는 여성 해방적 메시지를 담고 있던 ‘오만과 편견’이 오늘 날에는 로맨틱 코미디가 된 것이 그 좋은 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의 테두리에 두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그 장르를 뛰어넘는 ‘로드 무비’로서의 미덕을 살펴보고 싶다. “분노의 도로”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이 영화는 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 상에서 캐릭터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로드 무비 고유의 본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희한하게 뭉친 구성원들은 서로 반목하고 조력하다가 어느덧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스스로의 정신적 굴레로부터도 치유된다. 그러한 면에서 영화는 ‘스탠바이미’나 ‘델마와 루이스’와 닮아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임모탄 조의 씨받이” 중 막내인 치도를 들 수 있다. “The Fragile”이라는 예명이 붙을 만큼 연약해서 탈출을 포기했다고 했던 그녀는 급기야 사령관 퓨리오사가 임모탄 조를 처치하는데 도움을 줄만큼 성장하게 된다. 맥스 역시 여정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받는다. 환상으로 나타나던 딸의 모습은 그를 옳은 길로 인도하고 최후에 미소 짓게 만든다. 이미 없어져 버린 “녹색의 땅”을 찾아 헤매고 소금사막을 건너려던 퓨리오사는 결국 시타델로 돌아가자는 맥스의 조언을 수용하며 고통을 우회하지 않고 직시하게 된다.

시타델을 탈출했다가 결국 무수한 희생을 치르면서 다시 원점인 시타델로 돌아온 꼴이 되고 말았지만 – 게다가 그들의 접수한 권력을 어떻게 써먹을 것인지에 대한 궁리도 없지만 – 정신적으로는 모두들 성장하고 치유를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시타델로의 회군은 개개인의 성장이 일반대중으로까지 전파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발전적이다. 또한 부발리니 여전사 할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씨앗이 시타델에 온전히 옮겨졌다는 점에서,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미덕을 갖추고 있는 영화지만 또한 영화의 액션에 대한 상찬을 빼놓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이 영화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풍성한 액션으로 멋지게 포장되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무성 영화가 우리가 현재 쓰는 영상언어 문법을 만들어냈다고 믿는다”고 감독이 이야기했듯이 이 영화는 자질구레한 배경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그 시간을 액션으로 채워 넣었다는 점에서 무성영화의 미덕을 성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특히 감독이 언급한 버스터 키튼의 작품 중에서 ‘The General’과 닮았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텔마와 루이스’와 ‘The General’을 오버랩시킨 영화다.

최근 본 영화들 단평

A Charlie Brown Christmas(1965)

Charles M. Schulz가 그린 유명한 만화 Peanuts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1965년 CBS 채널을 통해 방영된 TV단편 애니메이션이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상업주의에 의해 오염되었다고 생각하는 – 그런데 이 작품의 스폰서는 코카콜라였다 – 찰리 브라운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우울하게 지냈다가 그 의미를 찾아내고 친구들과 함께 기뻐한다는 단순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만화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와 정감 있는 캐릭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째즈 피아니스트의 Vince Guaraldi이 주도한 뛰어난 사운드트랙이 백미다.

Apocalypse Now(1979)

Joseph Conrad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를 각색하여 Francis Ford Coppola가 만든 작품. 흔히 反戰을 주제로 한 영화로 간주되고 있으나 단순히 그러한 정치적 틀로 묶어둘 수 없는, 인간의 존재의의와 광기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베트남전의 영웅 Walter E. Kurtz 대령이 “건강하지 않은(unsound)”방법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판단을 한 군 수뇌부가 Willard 대위를 암살자로 파견하지만, 그 여정 도중에 대위 자신과 관객은 대체 누가 건강하지 않고 누가 미쳤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게 된다.

Hearts of Darkness : A Filmmaker’s Apocalypse(1991)

위에 소개한 Apocalypse Now 제작과정의 뒷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Coppola 감독의 아내 Eleanor Coppola가 공동감독으로 참여한 이 다큐를 보면 영화라는 하나의 예술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알 수 있다.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 등을 담은 이 작품은 예산, 날씨, 소품, 배우, 언론 – 언론은 제작기간이 길어지자 “Apocalypse When?”등의 헤드라인으로 감독을 조롱한다 – 등 어느 것 하나 감독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걸작이 탄생했는지를 입체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La Dolce Vita(1960)

Federico Fellini의 영화는 흔히 “아트 필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드라마적 요소가 강해 감상하기에 그리 낯설지 않다. 감독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Marcello Mastroianni가 주연한 이 영화는 삼류연예잡지사의 기자로 일하는 주인공이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 이탈리아 사회가 겪고 있던 변화의 흐름과 이에 따른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영상에 담고 있다. 영화 첫머리에 예수 상을 헬리콥터로 나르는 장면은 – 독일 영화 “굿바이 레닌”이 오마쥬한 –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Taxi Driver(1976)

뉴욕에서 택시 운전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소모하는 택시 기사 Travis에 관한 이야기. 해병대 출신의 노동계급인 Travis는 선거 캠프에서 활동하는 인텔리 Betsy와 사귀는 과정에서 계급적 문화적 괴리감 탓에 헤어지고 난 후 내면으로 침잠하게 되고 스스로를 兵器化하여 도시의 오물들을 청소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언뜻 이후 1980년대 일본에서 제작된 “鉄男”을 연상시킨다. 어쨌든 10대 창녀를 구원하겠다는 그의 정의감은 새로운 폭력을 불러온다. 사운드트랙의 째즈 연주와 뉴욕 거리, 그리고 배우들이 잘 어우러진 영화.

The Avengers(2012)

마블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함께 위기를 돌파하고 악인을 물리친다는 설정으로 만들어진 영화. 어릴 적 즐겨봤던 “슈퍼특공대”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언뜻 화학적으로 융합될 것 같지 않은 여러 캐릭터들이 나름의 에피소드로 무난하게 섞이게 만든 연출역량을 높이 살만하다. 특히 미국의 50년대 애국주의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의 설정은 나름 흥미로웠다. 다만 헐크의 설정은 미숙한 면이 있는데 – 처음엔 이성을 잃어 아군을 공격하다 나중엔 이성도 잃지 않으며 헐크로 분하는 – 영화 흐름상 불가피한 면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Kingsman: The Secret Service(2015)

모두들 열광하면서 볼 적에 안 보고 조그만 재상영관에서 끝물에 본 작품. 많은 여인들이 Colin Firth의 “수트빨”에 환호하였는데 과연 그의 캐릭터는 여러모로 간지 나는 캐릭터였다. 이런 캐릭터는 특히 영국 스파이물에서 전형적이긴 하지만 특히 이 영화에서는 전형적인 ‘Chav’식 옷차림의 Eggsy와 대비되면서 관객들에게 더 선명하게 부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코믹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지라 스토리 자체는 이해가 그리 어렵지 않고 역시 눈요깃거리는 양복 수트빨, 화려한 액션씬, 80년대 팝 위주의 사운드트랙이다.

The Stone Roses: Made of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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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Roses-17-07-2012 Milan” by Alfio66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The Stone Roses데뷔 앨범이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거의 시차 없이 발매되었다는 사실은 참 흥미롭다. Madchester 운동은 고사하고 펑크락에 대한 인지도조차 현저히 떨어지는 우리의 음악청취 풍토에서 좀 느닷없는 면이 있었다. 당시에 어떤 광팬의 입김에 의한 것인지 몰라도 여하튼 이러한 사소한 에피소드는 당시 돌장미가 얼마나 큰 인기를 얻었던가를 잘 보여주는 한 사례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60년대 음악을 펑크적으로 풀어내고 싶지만 ‘60년대 밴드도 아니고 펑크밴드도 아닌 80년대 밴드’일 뿐이라는 이언 브라운의 자평에 딱 들어맞게 그들의 음악은 80년대 풍이면서도 당시 어느 밴드와도 견줄 수 없는 그들만의 개성이 담겨 있었다. 사이먼앤가펑클을 연상시키지만 명백히 그들은 포크밴드가 아니었고 매드체스터의 그루브를 담고 있었지만 동시대 매드체스터 밴드와는 또 다른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겨우 겨우 1994년 2집 Second Coming을 내놓았지만 매니지먼트를 비롯한 온갖 문제 등 때문에 해체의 길을 걸어야 했던 이 밴드는 그 후 팬들에게 일종의 전설로 남았다. 그리고 팬들은 그들의 음악을 육성으로 듣는 순간은 해체 이후 거의 16년이 되어가는 시점까지 기다려야 했다. 2011년 10월 14일 The Sun은 돌장미가 일련의 라이브 공연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전했고 이 소문은 그 해 사실이 되었다.

2013년 6월 발표된 The Stone Roses: Made of Stone은 밴드의 재결합을 기념하여 만든 다큐멘터리다. This is England라는 영국 사회의 속살을 거침없이 드러냈던 영화를 감독한 바 있는 Shane Meadows가 이 다큐의 감독을 맡았다. 다큐는 밴드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여 보여주며 밴드가 어떤 음악을 추구했고 팬들은 그들의 어떤 모습을 사랑하는지를 조명한다. 재결합 공연의 팬들의 설렘, 감동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큐는 일본 공연 즈음에서 막을 내리지만 밴드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밴드가 스스로를 향수어린 7080밴드로 남을지 아니면 21세기에도 여전히 흥행력을 가지고 있는 밴드임을 증명할지를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중음악은 21세기에 그리 많은 발전이 없어 음악계는 여전히 U2나 Prince와 같은 뮤지션 들로부터 수혈을 받아야 할 상황이니 만큼 후자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

The Importance of Being Morris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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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rissey Live at SXSW Austin in March 2006” by mrmatt @ flickr – http://www.flickr.com/photos/mrmatt/http://www.flickr.com/photos/mrmatt/116581062/.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영국의 TV방송국인 Channel 4가 2002년 찍어서 2003년 방영한 Morrissey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The Importance of Being Morrissey라는 제목은 아마도 Oscar Wilde의 희곡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에서 따왔을 것이다.1 이 다큐멘터리는 스스로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면서도 The Smiths의 열렬한 팬인 J. K. Rowling의 인터뷰를 비롯하여, 음악사의 또 다른 거물들인 Bono와 Chrissie Hynde, 그의 친구들, 심지어 그의 어릴 적 이웃 아저씨까지 동원하여 Morrissey에 대한 입체적인 인물조명을 시도한다. Morrissey가 New York Dolls의 팬이었다는 잘 알려진 사실에서부터 Nationcal Front Disco라는 곡으로 촉발된 “모리씨 국수주의자설”에 대한 본인의 해명, 그의 모호한, 그렇지만 레코드 회사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주장되는 성적(性的) 이미지, 그리고 그의 저택의 소개까지, 그의 팬이라면 궁금해 할 다양한 사실들이 나열된다. 하지만 이 필름에 대한 imdb 페이지에서 한 독자가 썼듯이 여전히 그의 정치적 입장은 모호하거나, 더 나아가서 그 독자의 표현에 따르면 모순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다. 모든 유명인들에게 선명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할 수는 없으나 사실 The Smiths 정도의 비중을 가진 밴드의 리드 싱어였고 The Queen Is Dead라는 도발적인 음반으로 정치적 논쟁을 촉발한 인물이라면 조금 더 정치적 입장을 밝힐 책임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큐멘터리 보기

  1. Morrissey가 Oscar Wilde의 팬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빤하지만 멋진” 노래 All Out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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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Poster”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IMP Awards. Licensed under Wikipedia.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의역 : 존재감 없는 이의 행복)’1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2012년 작품이다. 좋아하던 이모와의 말못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Charlie(Logan Lerman)와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 남자만 사귀는 Sam(Emma Watson), 동성애자로서 학교의 인기 스포츠 선수를 사랑하며 괴로워하는 Sam의 이복 오빠 Patrick(Ezra Miller)를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성장영화다. 19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Charlie와 Sam 둘 다 The Smiths를 좋아하는 팬으로 설정되어 있는지라 80년대 인디 음악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The Smiths의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Asleep은 Charlie의 주제곡처럼 쓰여 그의 불안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80년대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귀가 호사할 만한 영화인데, 한편 의외의 80년대 곡이 등장하기도 한다. 바로 인디와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팝발라드 그룹 Air Supply의 All Out Of Love. 카셋테잎에 노래를 녹음해줘서 본인의 취향을 상대방에게 과시하던 80~90년대인지라 Sam은 Charlie에게 이 노래를 추천해준 것이다. Sam은 Charlie에게 “빤하지만 멋진(kitsch and brilliant)” 곡이라고 했고 Charlie는 헤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감정을 넣어 따라 부르면서 Sam의 의견에 동의한다. The Smiths, David Bowie, Nick Drake를 즐겨듣는 주인공들에게는 Air Supply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빤한 멜로디에 빤한 가사, 그렇지만 그런 빤한 것이 또 우리 인생이다.

영화에서 The Smiths의 Asleep이 자신의 새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Charlie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고, David Bowie의 Heroes가 그 새장을 벗어나서 느끼는 자유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All Out Of Love는 Sam을 그리워하면서도 데이트 신청도 못하고 쭈뼛대는 Charlie의 우유부단함을 대변하는 노래일 것이다. 비록 앞서의 두 개의 곡의 비해 비중은 작고 작가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빤하지만 공감이 가는 애정관계의 복선은 – Sam과 Charlie 사이를 부단히 끼어드는 노이즈들 – ‘인생은 원래 삼류’라고 말하고 있고 당연히 그 배경음악은 All Out Of Love가 제격이다.

이 노래는 미국에서는 1980년 발표되어 당시 빌보드 핫100 차트 2위까지 올랐다. 이 곡은 Air Supply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Lost In Love에 수록되어 타이틀곡과 함께 큰 인기를 얻었는데 앨범 수록곡 중에서 가장 높은 차트 순위에 오르기도 한 곡이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VH1은 2003년 이 곡을 ‘100곡의 가장 위대한 러브송’ 리스트에서 92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리듬 기타와 백킹 보컬을 맡았던 Graham Russell이 전반부를 부르고 메인 보컬을 맡았던 Russell Hitchcock이 후렴구를 부르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홍콩의 Alan Tom이 리메이크 하는 등 많은 이들이 다시 부르기도 했다.

Air Supply의 노래 듣기
영화의 주요장면 보기
Alan Tom 버전으로 듣기

  1. Wallflower는 꽃이름인 동시에 “(파티에서 파트너가 없어서) 춤을 추지 못하는 인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즉 Charlie처럼 학교에서 왕따당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에서 Patrick이 Charlie를 새 친구로 맞아들이며 “You’re wallflower.”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장면도 등장한다.

‘Stop Making Sense’에 관한 Chris Frantz의 인터뷰

Rolling Stone이 Stop Making Sense에 관해 Chris Frantz와 인터뷰한 기사 Talking Heads on ‘Stop Making Sense’: ‘We Didn’t Want Any Bulls–t’을 번역했다(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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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making sense poster original”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moviegoods.com/movie_poster/stop_making_sense_1984.ht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우리는 엉터리를 원하지 않았어요.” Talking Heads의 드러머였던 Chris Frantz가 밴드의 영향력 있는 1984년의 콘서트 필름 Stop Making Sense에 대해 입을 열었다. “우리는 클리쉐를 원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들이 기타 솔로를 할 때 사람들의 손가락의 클로즈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시선이 오래 머물러 있는 카메라를 원했어요. 그럼으로써 당신은 뮤지션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 수 있습니다.”

그룹이 추가적인 퍼커션, 키보드, 기타 등의 확대된 라인업으로 Speaking In Tongues의 순회공연을 하는 와중에 할리우드의 팬터지스(Pantages) 극장에서 가진 세 번의 쇼를 필름에 담은 것은 1983년 겨울이었다. 그 영화에서 – 후에 ‘양들의 침묵’으로 오스카를 수상한 Jonathan Demme가 감독한 – 그룹이 원하는 한가지는 당시 MTV에서의 여하한의 것들에 완전히 반대되는 다른 것이었다. 이 필름은 뮤지션의 얼굴들을 길고 오랜 클로즈업으로 구성되어 있고, 청중을 거의 보여주지 않으며, 안무를 과장하기 위해 드라마틱한 조명을 썼다. Frantz, 보컬 David Byrne, 기타/키보드 Jerry Harrison, 그리고 베이스 Tina Weymouth로 구성된 그룹은 자금의 대부분을 그들 스스로 조달했고 Stop Making Sense가 출시될 즈음 이러한 집요함은 히트로 보상받았다. 팬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문자 그대로 복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지난 주, Stop Making Sense가 디지털로 나온 지 30주년이 되었고 또한 미국의 다양한 극장에서 재발매 되었다. 롤링스톤은 최근 여전히 그의 아내 Tina Weymouth와 Tom Tom Club이라는 이름으로 레코딩 활동을 하고 있는 드러머와 함께 하며 이 필름이 어떻게 30년이나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당신이 Stop Making Sense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Talking Heads에 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칭찬들? 영화는 그 모든 발언들이 사실임을 증명했다.[웃음] 우리는 그 작업에 일했던 이들이 너무나 멋지게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무척 행운이었다. 난 그 쇼를 보기 위해 1,000 불이라도 지불하겠다.[웃음]

어쨌든 그 영화를 위한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나왔나요?

우리는 모두 그 특별한 투어를 기록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그 공연을 배우기 위해 약 한달 간 연습했어요. 우리가 여정에 오를 바로 그 시점에, Jonathan Demme가 그의 당시 여자친구 Sandy McLeod와 우리 공연에 와서 “우린 이 쇼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멋진데”라고 생각했죠. Jonathan Demme는 당시 신인 감독이었죠. 그는 우리가 매우 좋아하는 Melvin and Howard라는 영화를 마쳤어요. Jonathan은 우리보다 그리 더 많이 나이먹지도 않았고 당시에 매우 핫했어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요.

Jonathan은 어떻게 장면을 구성했죠?

당시에 그는 Swing Shift라는 Goldie Hawn을 위한 영화의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 영화의 첫 장면을 본 후 그녀는 그녀가 등장하는 모든 씬을 완전히 다시 찍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밴드를 쫓아다니면서 밴드 멤버들이 무엇을 하는가, 언제 카메라가 그들을 담아야 하는 가에 대해 노트를 만드는 것은 Sandy McLeod의 일이었죠. 그녀는 Jonathan이 Goldie랑 씨름을 하고 있을 동안 우리를 몇 달이나 따라다녔어요.

당시 당신들은 워너 브로스의 지원을 얻었나요?

아무도, 특히 우리 싱어 David Byrne이, 언급하지 않은 한가지는 영화 제작은 밴드가 지불했다는 사실입니다. 네. 우리는 워너 브로스에게 빚을 냈어요. 그러나 이는 우리의 로열티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우리 넷은 그 돈을 게워낸 것입니다. 우린 당시 저축도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에 우리의 노후대비 저축을 쏟아 부은 것이고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했고 그런 행동을 기꺼워했죠. 우리는 그 돈을 다시 찾았을 뿐 아니라 위대한 영화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넓은 개방공간 대신 시골의 작은 대학극장이나 아트하우스에서 상영한다는 것도 밴드의 결정이었어요. 그것이 실행되었을 뿐 아니라 성공적이었던 것이 한 이유죠. 영화는 아트 상영관에서 장기 상영할 수 있었어요. 청중이 계속 찾아올 거에요.

밴드가 개인적으로 나온다는 아이디어는 언제 나온 것인가요?

그것은 투어가 시작되기 전에 다 결정된 거에요. 그것은 일종의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일의 재생이죠. 내 생각에 David이 하고 싶었던 것은 David으로 시작해서 그가 밴드에 Tina가 합류하도록 초대하고 Chris를 초대하고 Jerry를 초대하고 Steve Scales를 초대하는 등의 것이 아니었을 거에요. 그라나 그렇지는 않았죠. 실제 벌어진 상황은 Tina, David, 그리고 내가 뉴욕으로 옮긴 후 밴드를 시작하자는 생각을 갖게 된 거죠. 난 David에게 이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확신시켰어요. 난 Tina에게 밴드에 합류하라고 요청했죠. 내가 Jerry Harrison에게 밴드에 합류하라고 요청했고요. 그러니 그것 일종의 재생이에요. 그러나 그것은 영화의 내러티브로써 아주 잘 작동했어요.

드럼 루프에 맞춘 “Psycho Killer” 연주에서의 David 의 인트로에 대해 어떤 것이 기억나십니까?

David이 그 작업을 혼자 힘으로 했어요. 난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마치 “내가 이 일을 할거야”라 하는 것 같았죠. 그건 잘 됐어요.

당신이 무대에 오를 때 잠시 헤드폰을 듣던데요. Jonathan이 지시한 것인가요?

아뇨. 헤드폰으로 난 템포를 듣고 있었어요. 우리는 사흘 동안 찍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각 노래가 같은 템포로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죠. 그래서 나는 처음에 들을 수 있는 일종의 딸깍 거리는 트랙을 고안해냈죠. 때때로 라이브를 할 때 당신은 조금 빨라질 수 있어요. 특히 펑크, 뉴웨이브 스타일에서는 말이죠. 청중은 햄머링을 좋아하고 생생한 공연을 하는 것을 좋아하죠. 그래서 우리는 너무 생생하지 않도록 확인해야만 했어요.

영화는 밴드 멤버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합니다. 어떤 것이 당신이 좋아하는 장면이죠?

Tina는 영화 내내 진짜 천사 같고 위대해 보입니다. 그리고 Bernie Worrell이 무엇을 하는지 아는 이를 이상하게 흘겨보는 장면을 사랑합니다.[웃음] Bernie는 바라보기에 유쾌한 친구입니다. David은 내내 놀라웠어요.

David이 “Life During Wartime“을 부를 때 드럼 쪽으로 와서 놀랐습니까?

그가 전혀 떨어지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그는 많이 움직였어요. 알다시피. 그는 진정 대단한 퍼포머입니다. 또는 적어도 그때는요.

그룹은 어떻게 안무를 연습했나요?

모두가 각자의 것을 연습했습니다. [백업 싱어들은] 대단했죠. Edna [Holt], Lynn [Mabry]는 정말 놀라웠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의상에 열광하지는 않았어요. 알다시피 그들은 멋진 흑인 여성들이고 한껏 차려 입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David은 그들을 마치 요가 옷 같은 것을 입혔어요. 그들은 익숙해졌고 난 근사했다고 생각해요.

의상에 관련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David이 말하길 “난 모든 사람이 중성적인 색으로 입었으면 좋겠는데 누군가가 지나치게 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에요.”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는 당신 인생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흰색 양복을 입고 나타났죠.[웃음]

그게 놀라웠나요?

우리는 그가 그렇게 입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양복이 실제로 만들어질 때까지 어떻게 생길 것이라는 것은 몰랐죠. 놀라웠어요. 정말 웃겼죠.[웃음]

양복에 관한 아이디어는 뭐였나요?

우리는 투어 전에 일본에 간 적이 있어요. 그리고 David은 언제나 그게 주인공이 굉장히 큰 사각형 옷을 입는 일본의 노 극장 의상에 기초한 것이라고 말했죠. 기모노 스타일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양복과 비슷한.

그래서 Jonathan Demme은 지시를 많이 했나요?

아뇨. 그는 담기만 했어요. 우리에게 지시한 유일한 이는 기술적으로 프로듀서였던 Gary Goetzman으로부터였어요. Gary는 “카메라를 쳐다보지 말고 빌어먹을 코 후비지마.”라고 말했죠. 그가 우리 받은 지시였어요.[웃음]

왜 청중 장면은 영화의 처음과 끝에만 등장하나요?

그 아이디어는 마치 관람자가 극장에서 가장 좋은 좌석을 차지하는 것처럼 관람자에게 상영된다는 것입니다. 극장에서의 최고의 좌석은 청중이 보이지 않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가 밴드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콘서트를 보는 것 같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상영됐을 때 사람들이 극장에서 춤을 춘다는 것을 듣고 놀랐나요?

난 그 장면을 실제로 보고 “와 멋지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은 Rocky Horror Picture Show이후로[웃음] 처음 보는 것이었죠. 많은 청중의 참여가 있었지만 다른 종류의 것인.

영화에서의 Tom Tom Club 부문은 순회공연의 정기적인 레퍼토리였나요?

네. 당시 “Genius of Love“가 큰 인기였어요. 그게 또 David이 그의 큰 양복으로 갈아입을 기회를 주기도 했죠.

그리고 당신이 마이크를 쓸 기회도 줬고요.

네. 내가 영화에서 유일한 바람이라면 나에게 마이크를 좀 더 줬더라면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알다시피 난 그저 흥분했을 뿐이에요. 무슨 말을 하겠어요.

한 Talking Heads 웹사이트는 당신이 싸인한 Stop Making Sense 블루레이 카피를 사은품으로 주던데요. 지금 당신들은 다들 사이가 좋나요?

Tina와 나는 사이가 좋고요.[웃음] Jerry와도 사이가 좋고요. David과는 내 짐작에 “이메일 친교”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사실은 꽤 오랫동안 그를 개인적으로는 보지 못했어요. 그건 나의 결정이 아니라 그의 결정이고요. 그는 이메일로 유지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쨌든 난 그 게임을 할 수 있어요.[웃음] 난 이메일에 답장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하나의 밴드 안에서 활동할 수 없을지라도 여전히 때때로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있죠. 그들은 우리에게 블루레이를 보냈고 우리는 싸인을 해서 되돌려보냈죠.

음악적으로 당신과 Tina의 다음 작업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앨범을 위한 Tom Tom Club 기본 트랙이 여섯 개 정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독일 식으로 “Chris und Tina”로 부르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 중이죠. 음악은 록앤롤이나 펑크(funk)와 반대인 완전한 일렉트로닉이고 독일풍입니다. Kraftwerk 의 영향을 받았죠. 그게 현재 우리가 생각중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Theme”이라는 이전에 발표되지 않았던 연주곡이 온라인에 떠돌던데요. 그 곡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요?

멋진 노래죠. Beach Boys의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에요. 아마 Talking Heads가 존재하던 당시의 첫 6개월 간 연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적절한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The Shirts 에 있던 한 친구의 작은 지하실에 스튜디오 녹음한 것은 있어요. 우리는 녹음을 많이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녹음을 연습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부르클린으로 가서 The Shirts 덕택에 그들의 작은 지하실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있었죠. 우리는 그 곡 말고도 몇 곡 더 녹음했어요. 나는 최근에 테잎들로 구워서 그것들을 디지털로 변환했어요. 그리고 그것들은 놀랍도록 좋아요.

그것들을 발매할 예정인가요?

아마도 언젠가는요. 현재까지는 계획이 없어요. 그러나 그럴 수도 있고요. 그것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우리가 결코 발표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는 그게 그렇게 좋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40년 후에 그것들을 듣고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빌어먹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네. 굉장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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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Strummer: The Future Is Unwri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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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Strummer” by Masao Nakagamihttp://www.flickr.com/photos/goro_memo/776514749/.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Punk를 정확히 언제 누가 발명(!)하였는지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The Clash가 그 많고 많은 펑크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밴드들 중 하나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펑크밴드의 중심에는 Joe Strummer가 있었다. 영국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터키, 멕시코 등을 돌아다며 컸던 Joe는 영국으로 돌아와 부모와 떨어져 그의 형과 함께 기숙학교에 다니며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Joe가 불의의 심장마비 사고로 운명을 달리 한 2002년으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The Future is Unwritten은 이 독재적이고, 한편으로 인간적이고, 한편으로 급진적이었던, 그리고 스스로는 뮤직씬에서 한 번도 섹시심볼이었던 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이 잘 생기고 매력적인 인간의 다양한 인간적 모습, 그의 음악, 그리고 그가 꿈꾸던 세상을 그 주변인들과 팬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생시켰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가 The Clash로 옮겨가기 전에 만들었던 The 101’ers에서 함께 음악을 한 이들, 이 시절 버려진 주택을 점거하여 같이 살던 이들, Mick Jones를 포함한 The Clash의 멤버들, 그를 영화에 출연시킨 Jim Jarmusch, 함께 영화에 출연한 Steve Buscemi, 그의 팬이었던 John Cusack, Matt Dillon, Bono 등등. 이들은 The Clash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를 추억하기도 한다.

The Clash는 “무정부주의적”이라 불리던 – 사실은 무정부주의적이라기보다는 “주의”에 얽매이지조차 않은 철저한 체제부정에 가까웠지만 – Sex Pistols에 비해 확실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행동을 요구했고 가사는 직선적이었다. 이러한 분명한 정치적 태도는 후에 밴드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됨에 따라 그들을 옥죄는 모순의 씨앗이 되었고, Joe는 그런 이유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방황하게 된다.

Joe의 이런 모습에서 전에 다른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았던 또 하나의 위대한 아티스트 George Harrison의 방황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비록 정치적 입장은 다소 차이가 있었고, 그 방황의 대안 역시 달랐지만 무절제한 쇼비즈니스에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황폐하기 만들기보다는 보다 진실한 삶을 추구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둘의 태도는 유사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죽었단 사실도 닮았다.

둘의 유사점이 또 있다면 바로 음악적인 면에서 서구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들여와 밴드의 음악적 지향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Joe는 자메이카에서 레게를, George는 인도의 전통음악을 도입하여 각각의 음악세계와 접목하였고 이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매우 성공적이었다. 특히 Joe의 레게와 펑크의 결합은 反인종주의를 지향하는 밴드의 정치적 태도가 음악적 형식으로도 성공적으로 구현됐다는 특징이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아쉬운 점은 이 점이다. 어떻게 The Clash가 다른 펑크밴드와 달리 정치적 지향과 음악적 형식을 유기적으로 통합시키는 계기인 레게를 접했고, 그것을 그들의 음악에 도입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많지 않다.1960~70년대 영국이라는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정치적, 지리적, 인종적 위치와 그런 격변이 The Clash의 음악과 어떻게 상호작용하였는지를 좀 더 조명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DVD는 다큐멘터리 본 작품이외에 별도로 다큐멘터리에 싣지 않은 인터뷰들을 담고 있다. 이 인터뷰의 내용이 또 상당해서 별도의 콘텐츠로 여겨질 만하다. 내용도 별도로 챙겨볼 필요가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Martin Scorsese가 우연히 The Clash의 음악을 듣고 푹 빠졌고, 이들의 음악에서 그의 걸작 Raging Bull을 만드는데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에피소드였다. The Clash와 Raging Bull 이라니.

최근 본 영화 몇 편의 短評

Doubt
최근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긴 여운이 남았던 작품. 카톨릭 학교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둘러싸고 교장 수녀와 사제가 겪는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등 연기력 뛰어난 배우들의 열연으로 긴장감이 화면에 꽉 차는 느낌이었다. 특히 아들을 지키고자 하는 어머니 역으로 바이올라 데이비스는 10분 정도의 짧은 출연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을 뚜렷하게 각인한다. 최근 ‘사건의 전후가 데칼코마니처럼 접히는 그런 스릴러를 만들면 재밌겠다’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 작품이 어느 정도 그런 분위기다. 영화의 첫 장면과 끝 장면이 잘 포개진다.

Brokeback Mountain
이안 감독의 명성을 높였던 또 하나의 수작. 거친 서부의 사나이들이지만 동성애 관계에 휘말린(말 그대로) 두 남자의 인생을 다룬 작품. 아름다운 풍광, 두 배우의 멋진 연기, 안타까운 사연 등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지만 오랜 세월을 짧은 상영시간에 담느라 영화가 좀 서두른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오히려 먼저 저 세상으로 간 히스 레저의 비극적인 삶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그의 연기를 보며 기분이 묘했다. 영화 속에서 이혼한 아내로 나오는 미쉘 윌리엄스도 실제로는 히스 레저와 연인이었고 그의 죽음 뒤에도 오랫동안 방황했던 것으로 알려져 더 안타까웠다.

Arthur
부잣집 바람둥이 아써가 가족의 정략결혼을 앞두고 가난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국 진실한 사랑을 찾게 된다는 코미디. 통속적인 스토리지만 더들리 무어, 라이자 미넬리의 매력적인 연기와 버트 바카락이 작곡한 멋진 주제가 Best That You Can Do 때문에 보고 있자면 저절로 흥이 나는 작품. “When you get caught between the moon and New York city”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팝송 가사 중 하나다.

Matewan
메이트원이라는 탄광도시에서 펼쳐지는 20세기 초 미국의 노동운동을 다룬 영화. 감독 John Sayles가 근처를 들렀다가 이 무용담을 듣고 영화화했다고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탄광도시의 모습은 전설적인 미국의 노동영웅 Mother Jones의 평전에서 그리던 것과 거의 유사하다. 회사는 노동자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임대료를 받는다. 그의 노동도구, 그의 집, 그리고 가재도구까지. 이에 분노하여 백인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회사는 유색인종 노동자를 데려온다. 전국노조에서 파견된 조 캐너헌이 백인 노동자와 유색인종 간의 갈등을 봉합하면서 투쟁을 본궤도로 올려놓으려 한다. 미국영화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걸작이라 할만한 작품.

Searching For Sugarman
로드리게즈라는 1970년대의 가수가 있었다. 디트로이트에서 두 장의 앨범을 냈지만 아무도 모른다. 놀랍게도 이역만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그의 음악이 흘러들어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후대 음악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당시 남아공은 전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지라 로드리게즈는 그 사실을 모르고, 남아공의 팬들은 그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후에 한 기자가 그의 행적을 추적하던 중에 그가 살아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남아공에 데려온다. 팬들은 콘서트 장에서 10여분이 넘는 기립박수로 그를 응원한다. 이런 놀라운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다. 더 놀라운 사실은 로드리게즈는 그러한 열광적인 호응을 뒤로 한 채 다시 디트로이트에 돌아와 노동자로서의 삶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전설적인 가수이기도 하지만 노동의 가치를 알고 노동자들을 위해 살아가고자 했던 노동영웅이기도 한 분이다.

Thin Red Line
Terrence Malick의 1999년 작. 2차 대전 와중에 태평양의 한 섬을 둘러싸고 의미 없는 살육을 반복하는 상황을 묘사한 영화다. 이 영화의 전투씬에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의 화면처럼 그 동안의 시점과는 또 다른 박진감 있는 화면으로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거기에다 담긴 메시지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과 같은 고루한 관점이 아닌, 보다 차원 높은 철학적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사줄만 하다. 영화의 메시지는 이미 제목에서 드러나 있는데, ‘얇고 붉은 선’은 원래 크림 전쟁 당시 러시아군에 무모하게 대항했던 소수의 英-佛-트루크 연합군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들의 전투는 무의미한 희생자만을 낳은 사상 최악의 졸전으로 평가받는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