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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drophenia(1979)

“’모드족’은 1960년대 영국의 가난한 백인 노동자 계층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다. 당시 영국의 젊은이들은 모드족과 ‘로커족(Rockers)’들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기성 세대에 대한 반항과 일탈이라는 점만 빼곤 둘은 모든 면에서 대립을 이루었다. 로커족들은 머리를 길게 길러 머릿기름을 잔뜩 바르고, 가죽 재킷을 입고 가죽 부츠를 신고, 육중한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녔으며, (당연하게도!) 시끄러운 록 음악을 듣고, 헤로인을 복용했으며 ‘클럽 59’를 본거지로 삼았다. 반면 모드족들은 유별날 정도로 외모에 집착해 깔끔한 헤어스타일, 최신 유행의 옷차림으로 거리를 누볐으며 가죽 잠바 대신 파카를 주로 입었고, 모터사이클 대신 스쿠터(scooter)를 타고 다녔고, 록 음악 대신 모던 재즈나 리듬 앤 블루스를 주로 들었으며 헤로인 대신 암페타민(Amphetamine)이라는 각성제를 복용했으며 ‘카나비 스트리트 (Carnaby Street)’를 본거지로 삼았다.”

이쯤이 대충의 모드족에 대한 정의이고 보다 자세한 정보를 위해 여기를 방문하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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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drophenia movie” by [1].. Licensed under Wikipedia.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모드족의 시조라 할 수 있는 The Who 가 1973년 발표한 록오페라 앨범 Quaderphenia 를 기초로 만든 영화다. 그룹이 그들을 따라다닌 팬의 이야기를 기초로 썼다는 이 앨범은 그들의 걸작 Tommy 와 같은 하나의 컨셉트앨범으로 전체 앨범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고 이 영화는 그 줄기를 따라가고 있다. 1964년 모드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는 Jimmy Cooper 는 직장에 다니고는 있지만 다만 그것은 모드족의 생활이 유지될 만큼만 돈을 벌면 그만인 직장이다. 스쿠터, 음악, 친구들, 그리고 Blues 라 불리는 환각제 … 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록커들과 사사건건 시비를 붙던 Jimmy와 그 패거리들은 급기야 길거리에서 몇몇 록커를 폭행하는데 그중에는 Jimmy 의 어릴 적 친구도 끼어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갈등은 동물들의 영역싸움과 다를 바 없는 거칠고 비이성적인 것이었다. 항상 이상한 패션과 음악에 심취해 있는 Jimmy를 부모는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Jimmy 가 마음이 뺏겨 있는 Steph는 나름대로 Jimmy에게 호감을 보인다. Bank Holiday 에 브라이튼의 해변에 모드족과 록커족이 모여든다. 이 과정에서 두 진영은 심각한 패싸움을 벌이고 경찰이 출동하여 사태를 진압한다. Jimmy는 이 소요의 흥분에 젖어 Steph 과 골목길에서 성관계를 갖지만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법정에서 Jimmy는 우상이었던 Ace Face(The Police의 Sting)와 연대감을 느끼고 뿌듯한 마음에 집에 돌아왔지만 부모와 직장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듣고는 직장을 때려치워 버린다. 그런데 이런 그를 환영해 줄줄 알았던 친구들이 웬일인지 Jimmy에게 시큰둥하고 그새 Steph 는 그의 친구와 어울려 다닌다. 상심한 Jimmy는 브라이튼으로 돌아가 그날의 승리감과 성적 쾌감을 곱씹어보지만 그것은 한 순간의 덧없는 희열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는 그의 우상이었던 Ace Face 가 호텔 벨보이로, 조직의 순응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목격하고 뼈 아린 배신감을 느낀다.

http://www.modrevival.net/
http://en.wikipedia.org/wiki/Quadrophenia_(film)

[펌]Monthy Python

몬티파이돈과 관련되어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이라곤

1.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지는 받고 싶지 않은 이메일을 유래는 명확히 모르지만 ‘스팸메일’이라고 부르는 것.

2. 몬티파이돈과의 과거력은 모르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12 몽키즈(12 Monkeys)’, ‘바론의 대모험(The Adventures of Baron Munchausen)’, ‘피셔킹(The Fisher)’, ‘브라질(Brazil)’ 등의 영화감독, 테리 길리엄(Terry Gilliam)은 알 것이다.

몬티 파이튼(Monty Python)은 한 사람이 아니라, 다섯 명의 영국인과 한 명의 미국인으로 구성된 영국의 코메디 집단이다.

이들은

마이클 팔린(Michael Palin)
테리 존스(Terry Jones)
존 클리스(John Cleese)
그레헴 채프맨(Graham Chapman)
에릭 이들(Eric Idle)
테리 길리엄(Terry Gilliam)

으로…

마이클 팔린(Michael Palin), 테리 존스(Terry Jones), 존 클리스(John Cleese), 그레헴 채프맨(Graham Chapman), 에릭 이들(Eric Idle)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릿지 대학가에서 당시 레뷔(revue)라는 시사 풍자 익살극 공연을 통해 유명해지면서 코메디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테리 길리엄(Terry Gilliam)은 미국의 삽화가/만화가로 이들의 TV 프로그램 ‘나는 서커스(Flying Circus)’에서 애니메이션을 담당하고 이후 이들의 영화들에서 대본 및 감독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1969년 10월 5일부터 1974년 12월 5일까지 영국 BBC 방송에서 방영된 ‘몬티 파이튼의 나는 서커스(Monty Python’s Flying Circus)’로 활동을 시작하여 이후 다수(?)의 영화를 제작했다.

몬티 파이튼의 나는 서커스(Monty Python’s Flying Circus)
뭔가 완전히 다른 것(And Now for Something Completely Different)(1972)
몬티 파이튼과 성배(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1975)
브라이언의 일생(Life of Brian)(1979)
인생의 의미(The Meaning of Life)

이들의 코메디는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을 만큼 컬트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전한 사고방식에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느끼기에 불쾌하거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내용 또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기상천외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종교, 성차별, 민족감정, 인종차별과 같이 타부시 되어온 소재들을 대놓고 다루기도 하고 개걸스레 먹다가 배가 터져죽는 장면을 묘사하는 등 매우 지저분하거나 불경스러운 소재들을 자유롭게 다루고 있다. 로빈 윌리엄(Robin William), 짐 캐리(Jim Carrey) 등 미국의 유명 코메디언들도 이들의 팬이며, 미국의 유명 TV 코메디 프로그램 ‘토요일 밤 라이브(Saturday Night Live)’도 ‘나는 서커스(Flying Circus)’의 형식을 빌려왔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http://altamira.egloos.com/470425,  http://www.intriguing.com/mp/

 

Harold and Maude

영화역사상 가장 기괴한(?) 연인으로 기록될만한 자격이 있는 Harold 와 Maude 가 – 이 정도의 포쓰로 기괴한 연인으로 언뜻 생각나는 정도는 Ghost World 의 이니드와 세이모어 정도 – 펼치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수시로 엄마나 소개팅 상대 앞에서 자살 연기를 펼치는 십대소년 Harold 의 또 하나의 취미는 낯선 사람의 장례식에 참가하는 것. 그런데 거기에서 똑 같은 취미를 가진 한 이상한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어려보이기는(?) 하지만 낼 모레면 여든이 된다는 Maude 할머니. 수시로 남의 차를 훔쳐 타고 말라 비틀어져 가는 가로수가 불쌍하다며 숲으로 옮겨 심는 대담한 짓을 서슴지 않는 혈기왕성한 이 노인네는 죽음을 동경하는 Harold 와 달리 너무나 열정적인 삶의 예찬자이다. 이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감정은 마침내 우정에서 사랑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두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 영화에서의 이들의 사랑이 변태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성장배경, 삶에 대한 태도, 나이 등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두 캐릭터를 관통하고 있는 공통점, 이른바 경직되고 속물적인 부르주아적 가치관에 대한 냉소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설정 때문이다. 이는 동시대 영화로 크게 논쟁이 되었던 Easy Rider 나 M.A.S.H 등이 보여주었던 시대정신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가 선명하게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Maude 역을 맡은 Ruth Gordon 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연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을 당시 실제로 75세였던 이 노배우는 앙증맞은 표정, 발랄한 몸동작, 멋진 노래솜씨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Maude 의 캐릭터를 재현해내고 있다. 또한 상대역인 Harold 역의 Bud Cort 역시 장난기 넘치는 동그랗고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체제와 삶에 반항하는 질풍노도의 십대를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배우의 호연은 삶을 거부하는 십대와 죽음을 거부하는 팔십대라는 선명한 대비 속에 펼쳐지는 갖가지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를 통해 더욱 빛나고 있다. Harold 가 Maude 의 팔에 새겨진 문신(수용소에서 새겨진)을 발견하는 장면, 둘이 Harold 의 바보 같은 군인 삼촌 – 경직된 보수세력을 상징하는 – 을 속이는 장면, 가로수를 옮겨 심기위해 과속으로 달리면서 경찰을 따돌리는 장면 등은 이 영화의 명장면들이다.

In the Heat of the Night, The Thomas Crown Affair 등 문제작을 선보였던 Hal Ashby 가 감독을 맡았고 Cat Stevens 가 음악을 담당해주었다.

Silent Movie

폭음 때문에 경력을 망쳐버린 영화감독 Mel Funn(Mel Brooks)은 재기하기 위해 빅픽쳐스의 사장을 찾아간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신작은 바로 ‘무성영화’. 어이없어하는 사장에게 흥행을 위해 빅스타를 섭외하겠다고 큰소리친다. 그리고는 어리숙한 동생들 Eggs 와 Bell 을 데리고 스타들에게 다짜고짜 쳐들어간다. 한편 빅픽쳐스를 합병하고자 노리고 있는 거대재벌 Engulf & Devour 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온갖 비겁한 수를 다 부린다. 그래도 그 와중에 Mel Funn 은 걸출한 스타들을 영입하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영화는 성공을 거둔다. Marcel Marceau, Paul Newman, Burt Reynolds, Liza Minnelli, Anne Bancroft, James Caan 등 당대의 스타들이 Mel Funn 의 영입대상으로 실명 등장한다. 특히 Marcel Marceau 는 판토마임의 대가답게 아름다울 정도의 멋진 마임을 선보이고, Anne Bancroft 는 그 우아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이경규식의 눈깔 돌리기 묘기를 선보인다. 영화는 극 속에서처럼 실제로 무성영화이다.

Network

거장 시드니루멧의 강력한 힘과 후광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테마들이 그야말로 유기적으로 팽팽하게 연결되어 저마다 빛을 발하고 있다. TV가 현대 매스미디어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의 중심 다국적기업의 존재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고 만난 남녀의 이유 있는 불륜, 청춘을 바친 직장을 떠나는 직장인의 자아상실, 반문화의 상업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놀라운 생존력, 시청률이라는 정체불명의 숫자놀음을 감싸고 벌어지는 비정한 인간관계 등 따로 떼놓아도 장편영화 한편이 너끈히 나올 소재들이 이 영화 한편에 경이롭게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산만함이 없이 떡하니 중심이 분명하다. 모든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분명한 색깔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의욕 넘치는 젊은 중역 다이애나 역의 패이더너웨이와 노련한 보도부장 맥스 역의 윌리엄홀덴의 연기는 동선 자체도 훌륭한 연기다 싶을 정도로 치밀하고 섬세하다.

UBS 의 인기 앵커였던 하워드빌은 시청률이 떨어지자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날 판이다. 오랜 직장동료이자 같은 방송국의 보도부장 맥스슈마허는 술김에 방송에서 자살한다고 말하면 시청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농을 건넨다. 다음날 뉴스에서 하워드는 정말 방송에서 자살하겠다고 선언해버린다. 방송국이 발칵 뒤집힌 가운데 센세이셔널리즘을 추구하는 다이애나크리스틴슨은 UBS를 합병한 CCA의 점령군 프랭크해킷을 설득해 하워드의 뉴스를 버라이어티쇼로 전환시켜버린다. 시청자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는 효과덕분에 하워드빌쇼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저널리즘을 훼손하였다고 생각한 맥스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이애나는 더 힘을 얻어 극좌 테러리스트의 테러 장면을 시리즈로까지 제작한다. 그 와중에 둘은 연인사이가 된다.

이제 TV는 더 이상 솔직해질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치부마저 상업화시키는 ‘반문화의 상업화’의 정점에 오르게 된다. 하워드빌은 방송중에 CCA가 아랍계 자본에 먹힐 것이라며 애국적 호소를 하게 되자 회사중역들은 그의 무한질주에 분노를 느낀다. CCA의 최고경영자 젠슨은 그를 불러 민족과 민주주의는 실종된 지 오래며 그 자리를 다국적기업이 채우고 있음을 일갈한다. 다국적기업이라는 새로운 신 내림을 받은 하워드는 점점 더 자기 폐쇄적으로 침몰해가고 젠슨을 제외한 나머지 중역들은 그의 존재에 심각한 위기를 느낀다. 완벽한 시나리오, 완벽한 배역, 완벽한 완급조절 등 Dog Day Afternoon 등과 함께 시드니루멧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El Topo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은유와 상징으로 인해 소위 지적인 관객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도입부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El Topo(우리말로 두더지를 의미하며 감독 Alejandro Jodorowsky가 배역을 맡았다)는 벌거숭이 아들과 함께 정처 없이 떠돌다가 한 마을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한 여인 Mara를 괴롭히고 있는 무법자들을 처치한다. 뱀과 같은 유혹의 혀를 가진 그 여인의 꾐에 빠진 El Topo 는 아들을 수도사에게 맡긴 채 사막에서 여러 무림의 고수들과 대결을 하여 최고의 무림 고수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마침내 모든 무림 고수들을 처단하지만 홀연히 나타난 또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진 Mara 는 그를 배신한다.

총상을 입은 El Topo 는 수년이 흐른 어느 날 동굴 속의 현자로 부활하고 그 동굴 속에는 영화 Freaks 의 흉측한 장애자들을 연상시키는 주민들로 가득 차있었다. 난쟁이 여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오랜 기간의 근친상간으로 말미암은 것이었고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되었다는 것이다. El Topo 는 수도승의 복장을 한 채 마을주민들을 구원할 터널을 파기로 결심한다(그래서 주인공 이름이 ‘두더지’일지도 모르겠다). 마을로 가서 터널을 팔 돈을 버는 과정에서 El Topo 와 난쟁이 여인은 마을이 도덕적으로 파탄했음을 알게 된다.

난쟁이 여인은 이런 마을로 다시 돌아와야 되는지 의문을 품지만 El Topo 는 공명심에 이 충고를 무시한다. 우연히 그 마을에는 El Topo 가 버린 아들이 신부가 되어 돌아와 그들을 만나게 되고 복수심에 불탄 아들은 El Topo 가 터널을 다 판 그 순간 죽일 것을 결심한다. 터널을 다 판 후 아들은 도덕적 갈등으로 복수를 포기한다. 동굴 속의 주민들이 마을로 내려갔지만 마을 주민들은 혐오감을 나타내며 그들을 살육한다. 분노에 찬 El Topo 는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라버린다.

종잡을 수 없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종횡무진 하는 이 작품에 담긴 기독교적, 불교적 메타포는 관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작품은 그러한 메타포에 앞서 – 감독이 의도하였던 하지 않았던지 간에 – 이른바 ‘남성성’의 어리석음을 각인시키고 있다. 영화 초반부 El Topo는 여인의 꾐에 빠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영화 후반 이번에는 여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헌신과 희생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마저 실패하자 자기 성질 못 이기고 자살을 택한다. 결국 어느 길이든 순리를 역류한 그의 삶은 파탄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택하자면 그는 Let It Be 의 자세를 택하여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John Lennon 이 이 영화의 팬으로 판권을 샀다고 한다).

1971년 당시로서는 생경한 심야영화로 개봉되어 컬트팬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었던 작품으로 영화산업의 볼모지인 멕시코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난 걸작이다. Alejandro Jodorowsky는 이후 그래픽노블의 대가 뫼비우스와 함께 종교적 SF ‘잉칼’을 만드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The China Syndrome(차이나신드롬)

Kimberly Wells (Jane Fonda)는 비록 가벼운 흥미위주의 뉴스를 다루는 일을 맡고 있지만 좀 더 심각한 주제를 손대고 싶어 하는 야심찬 방송기자다. 어느 날 그녀는 카메라맨 Richard Adams (Michael Douglas)와 함께 지역의 핵발전소에 대해 홍보성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 찾아갔다가 우연히 뭔가 불길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가벼운 지진으로 인해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가장 끔찍한 사고인 ‘멜트다운(melt down)’ – 소위 China Syndrome 이라 부르는 – 직전까지 이르렀다가 엔지니어 Jack Godell (Jack Lemmon)에 의해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Richard 는 이 상황을 몰래 필름에 담아와 방송하려하지만 경영진은 발전소 운영회사와의 마찰을 우려하여 방송을 보류한다. Kimberly 와 Richard 는 핵전문가의 도움으로 뭔가 불길한 일이 진행됨을 알게 되고 Jack 역시 발전소에 기본적으로 결함이 있음을 알게 된다. Jack 은 상부에 이를 보고하고 원자로를 멈추려 하지만 회사는 이윤의 감소를 우려하여 이를 만류한다. 분노한 Jack 이 증거를 Kimberly 에게 넘기려 했지만 회사는 이를 막으려 하고 마침내 Jack 은 발전소의 지휘실을 점거하고  kimberly 와의 인터뷰를 통해 진실을 폭로하려 한다. 그 순간 회사가 부른 기동타격대가 Jack 을 살해하여 또 한 번 진실을 은폐한다.

핵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극에 달하던 70년대 말 이 영화는 은유나 비유가 아닌 직설화법으로 핵의 위험성, 민영화의 위험성, 방송의 공공적 역할, 그리고 내부고발의 합당성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는 실제로 엔지니어이기도 했던 작가 Mike Gray 가 실제 발생했던 유사사고를 바탕으로 한 사실감 넘치는 시나리오와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던 Michael Douglas 와 진보적 연예인으로 알려진 Jane Fonda 의 열성이 결합된 결과이다. 이러한 결과 Jack 이 추적자들에 쫓겨 발전소로 도망오고 마침내 지휘실을 점거하여 인터뷰하는 그 과정을 따라간 몇 분은 웬만한 스릴러를 능가하는 긴박감을 유지하고 있다. 메시지를 설파하는 매체이면서도 긴장감과 극적쾌감을 주는 수작이다. 또한 실제로 영화가 개봉된 이후 몇 주 후 펜실베니아 주에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kramer vs. kramer)

기혼 여성의 자아실현, 가정 내에서의 배우자들의 가사분담, 이혼부부의 육아문제 등 경제성장에 따라 가정의 기능에 새로운 해석을 내려야만 했던 선진국의 당시 시대상이 투영된 드라마이다. 직장 일에 온 힘을 쏟는 남편 테드, 그로 인해 소외감을 느껴 떠나버린 아내 조애나, 남겨진 아들 빌리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생활이 펼쳐진다. 가사와 직장을 병행해야 하는 남자는 점차 가사에는 익숙해지지만 회사업무에는 악영향을 미쳐 결국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 와중에 헤어진 아내는 일곱 살 난 아들의 양육권을 요구한다. 어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가족 간의 갈등에 대해 깔끔한 연출과 수준 높은 배우들의 연기로 호평을 얻은 작품

Pumping Iron

동명의 책의 저자이기도 한 George Butler가 Robert Fiore 와 함께 공동으로 감독한 1976년산 다큐멘터리다. 바디빌딩의 이면에 대한 관찰기이면서 인간의 끊임없는 경쟁심에 대한 관찰기이기도 하다. 1975년 바디빌더 아놀드슈왈제네거는 이미 바디빌딩 계에서 신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혈혈단신으로 건너온 그는 프로 바디빌딩의 최고를 가리는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벌써 5년 동안이나 1등을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승리를 위한 그의 집착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작품 곳곳에 배치된 인터뷰에서 설명되고 있는데 그는 대회를 위하여 경쟁자에게 잘못된 조언을 하는가 하면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는 냉혹함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어느 리뷰에는 몇몇 장면이 조심스럽게 연출되기도 했다니 사실여부는 모르겠다). 여하튼 이런 그에게는 수많은 도전자가 있었고 그 중 하나는 떠오르는 바디빌더 루 페리그노도 있었다. 극성스러운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으로 몸을 다져가는 이 어린 바디빌더는 신화에 도전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만다. 마침내 아놀드는 6번째 미스터 올림피아의 자리를 차지하고는 은퇴를 선언하여 루의 재도전은 물거품이 되고만다. 스포츠를 소재로 하고 있는 등 여러 면에서 1994년 작 Hoop Dreams 와 비교될 수 있다. Hoop Dreams 는 흑인주거지역에서 NBA 의 꿈을 키우고 살아가는 두 소년의 관찰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Hoop Dreams 가 좀 더 사회모순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반면에 Pumping Iron 은 바디빌딩에 대한 일반의 선입견을 없애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신화가 된 아놀드의 심층적 취재보다는 그의 아름다운 근육들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그 후 그들의 행보다. 아놀드는 ‘코난’과 같은 몇 개의 바보 같은 영화에 출연한 이후 액션 영화의 단골주인공에서 마침내 캘리포니아 주지사라는 거물이 되었다. 루는 헐크로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나 이후의 작품출연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Slaughterhouse-Five

Original movie poster for the film Slaughterhouse-Five.jpg
Original movie poster for the film Slaughterhouse-Five”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City on Fire. Licensed under Wikipedia.

Kurt Vonnegut Jr.가 썼다는 원작에 대한 사전정보도 없이 영화 첫 장면을 보는 순간 ‘뮤직박스’유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과거와 이를 반추하는 현재가 교차되는 스타일의 영화이겠거니 생각했다. 처음 얼마간은 이러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약간 어리바리한 주인공 Billy Pilgrim 의 과거의 공간은 전쟁터 한가운데의 참호 속이었고 현재의 공간은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을 쓰고 있는 그의 집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이 단순히 ‘Lone Star’에서 볼 수 있었던 솜씨 좋은 연출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주인공 Billy 는 과거를 회상하는 게 아니라 실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시간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재밌는 발상을 시작으로 영화는 종반으로 갈수록 트랠파마도어라는 황당한 행성의 등장 등 처음의 전쟁영화 장르에서 블랙코미디, SF 까지 잡탕으로 섞인 다양한 장르적 실험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이미 솜씨 좋은 원작이 지니고 있었을 멋진 개성이 ‘스팅’이나 ‘내일을 향해 쏘아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헨리오리엔트의 세계’를 감독했던 거장 조지로이힐의 뛰어난 연출력과 만나면서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영화의 메시지는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에 전쟁포로로 머물렀던 Billy 의 경험을 통해 전쟁에서의 살육에는 어떠한 명분도 있을 수 없다는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제목 제5도살장(Slaughterhouse Five)은 주인공이 일했던 도살장이기도 하지만 1945년 2월 13일 연합군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받고난 후의 드레스덴의 처참한 몰골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Five 라는 단어는 마치 우주선의 이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Billy 가 나중에 찾아가게 되는 – 또는 되었다고 주장되어지는 – 트래팔마도어의 달표면과 같은 거친 표면은 또 바로 폭격 직후의 이 드레스덴을 연상시킨다. 그 황량한 별에서의 Billy 의 새로운 사랑은 절망 속에서의 희망이라는 여운을 남겨준다. 굴렌굴드의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를 배경으로 눈길을 걸어가던 Billy 의 모습을 담은 첫 장면이 오랜 여운을 남기며, Catch 22 나 M.A.S.H 같은 영화와 잘 어울리는 삼총사가 될 것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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