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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 Man(리포맨,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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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 Man CD 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MCA.. Licensed under Wikipedia.

이 영화는 현대 자본주의의 존립근거가 신용사회, 즉 ‘상호간의 믿음’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리고자 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우주인의 UFO 라는 것이 반드시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접시 모양이 아니라 자동차 모양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영화일 수도 있다.

“뭐 재밌으면 됐잖아”

라고 감독이 한마디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펑크 음악에 대한 애정이 유난할 것 같은 – 그래서 실제로 차기작으로 펑크씬에서의 로미오와 줄리엣인 시드와 낸시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 감독 Alex Cox 가 바로 그 펑크적 감성으로(“연주 못하는 게 뭐? 신나면 되잖아?”) 만들었고 의도한 바대로 영화사에서 Rocky Horror Picture Show 등과 함께 대표적인 컬트 아이콘이 되었다.

찰리쉰과 따로 떼어놓으면 모르겠지만 옆에 두면 형제인줄 알 것 같은 에밀리오에스테베즈가 질풍노도의 펑크족에서 현대 신용사회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은 Repo-Man(Repossesing Man의 준말로 자동차를 할부로 사고 할부금을 갚지 않는 사람들의 차를 다시 ‘재소유’ 즉 뺏어오는 직업을 의미한다고)으로 변신한 Otto 역을 맡았고, 따분하고 지저분한 중년을 대표하는 듯한 외모의 소유자 Harry Dean Stanton 이 밤낮으로 일하면서도 변변히 모아둔 것도 없는 중년 리포맨 Bud 역을 맡으면서 에밀리오와 투탑을 이루고 있다.

어쨌든 이 둘을 축으로 차를 뺏어오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 자주 들르는 편의점에서 이어지는 펑크족 강도들과의 만남, 외계인 시체를 트렁크에 실은 채 정처 없이 떠도는 과학자와 이를 뒤쫓는 정부기관 간의 해프닝 등이 상영시간 내내 골고루 배합되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 그저 스쳐지나가는 장면이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 있는데 Otto 가 이전에 친구였던 펑크족 강도들을 슈퍼마켓에서 맞닥뜨리는 그 짧은 몇 초에 매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슈퍼마켓의 진열장의 상품들이 하얀 포장에 그저 Food, Milk 등만 쓰여 있다는 점이다. 선진화된 미래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저러지 않을까 싶은 그런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던 이 장면은 어느 블로거에 따르면 스폰서가 붙지 않은 탓에 억지로 찍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 한편으로 어쩌면 감독이 초창기 애드버스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한편으로 이와 반대로 토마토 공격대 2탄에서는 스폰서가 붙어야 영화 펀딩이 되는 영화계의 현실을 비꼬아 아예 노골적으로 상품광고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 Bud 가 Otto 에게 ‘믿음’이 기반을 두는 신용사회가 맘에 든다면서 러시아에서는 이런 사회를 꿈이나 꾸겠냐고 일갈하는 장면이 있는데 매우 의미심장한 대화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결국 끊임없이 주입되는 과잉소비의 지출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할부소비나 외상을 조장해왔고 오늘날 이러한 왜곡된 지불행태 없이는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없음을 잘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리포맨은 바로 그러한 소비와 지불의 간극에서의 갈등을 해결하는 ‘응달 속의’ 집달리 들인 것이다. Bud 가 자본주의의 더러운 쓰레기나 치우는 마름이면서도 자본주의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점 때문이다.

아키라, AKIRA(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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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Tokyo Akira” by https://github.com/prideout/effects-salad. Licensed under Wikipedia.

원작자 오토모가츠히로가 작품의 독립성을 위하여 별도의 위원회(일명 “아키라 위원회”)까지 구성하여 제작한 이 영화는 원작의 인기에 못 미치는 일본의 흥행성적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는 저패니메이션이라는 신천지를 소개한 컬트 영상이 되어 일본으로 금의환향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장장 12권에 달하는 장편만화 원작을 120여 분에 담아낸 탓에 영화는 마치 만화속의 인물들에게 “시간이 없으니 어서들 부지런히 연기해주세요”라고 몰아붙이는 느낌이다. 요즘같아서는 당연히 ‘반지의 전쟁’처럼 3부작 쯤으로 늘였겠지.

아키라라는 상상초월의 절대존재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초능력자들의 대결을 중심으로 카네다와 K 의 모험과 로맨스가 3차 대전이후 재건된 네오도쿄에서 펼쳐진다. 냉정하다 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웅장한 화면 – 네오도쿄의 건물들은 만화에서보다 영화에서 더 미래주의적으로 그려져 있다 – 이 이전의 저패니메이션과 차별화되어 내용에 걸맞는 형식미를 뽐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앞서 말했듯이 짧은 러닝타임 – 원작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 으로 인해 사건의 설명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각 캐릭터간의 갈등과 대립이 생뚱맞은 측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데츠오와 다른 초능력자들 간의 대립의 이유, 카네다가 데츠오를 죽이려는 이유, 부패한 정치인 네즈와 혁명가 류가 함께 일한 이유 등이 영화에서는 모호하고 – 나같이 머리나쁜 사람은 원작 만화를 읽어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 – 결정적으로 원작에서 19호로 불리며 극의 큰 축을 담당했던 신흥종교의 교주는 어이없게도 사이비 교리를 외치다가 데츠오가 파괴한 다리에 떨어져 죽는 식의 엑스트라로 전락하고 만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러한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키라는 저패니메이션을 뛰어넘어 사이버펑크라는 SF의 하위장르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걸작임에는 틀림없다. 원작자의 과학문명에 대한 비관적 입장이 형상화된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디스토피아였고 이는 당시 몇몇 걸출한 SF 등과 함께 훗날의 SF 의 경향을 주도하는 데에 한 몫 담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문명비판의 메시지와 함께 추축국이었던 일본의 패배와 전후 고속성장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피로감을 나타낸 작품이기도 하다. 좌익이 되었건 우익이 되었건 일본의 전후세대는 빠르게 변화하는 문명 속에서 가치관의 혼란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느꼈고 그러한 혼란은 좌우익 모두에게 무정부주의, 염세주의적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러한 열망을 네오도쿄의 폭파와 미지의 생명 탄생이라는 사건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Six Degrees Of Sepa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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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ld Sutherland (1095412255)” by Alan LightDonald Suth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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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의 미국판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플랜 키트리지와 오이사 키트리지 부부는 미술품 거래상을 하면서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전형적인 상류층이다. 어느 날 그들의 투자자와 저녁식사를 위해 집을 나서려는 중 자신들의 자녀와 친구라는 한 흑인청년을 맞이하게 된다. 불쑥 찾아온 이 청년은 화려한 언변과 음식솜씨로 이들을 사로잡는데 스스로를 영화배우 시드니 포이티에의 아들 폴 포이티에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오이사는 다음날 아침 폴이 한 낯선 남자와 침실에서 완전나체로 성행위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둘을 내쫓는다. 이후 이들 주위친구들도 동일인물에게 비슷한 사기를 당하게 되고 이들은 정체불명의 폴이 누구인지를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한다. 영화제목 Six Degrees Of Separation 은 전혀 낯선 사람일지라도 여섯 단계만 거치면 알게 된다는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인간관계에 대한 이론을 의미한다. 결국 폴의 매력에 빠졌다가 피해 아닌 피해를 입은 이들은 어느 사이 서로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조사를 하게 되고 이는 상류층의 만남에서 좋은 입담거리가 되고 만다. 그러면서도 거리의 흑인청년이었던 폴이 얼마나 쉽게 그들의 고귀하고 차별적인 공간에 스며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지조차 못한다. 결국 폴과의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은 오이사는 폴을 도와주려 애쓰지만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딸의 진지한 대화요구는 거절하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한다. 실력파 배우들의 연기가 감칠맛 나면서 연극작품을 영화화하여 다분히 연극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 부르주아의 위선을 비웃으면서도 어느새 그 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에 동화되게끔 만드는 매력을 풍기는 작품이다. 그들의 폴의 미스터리에 대한 입담 장면은 마치 에큘 포와르가 용의자들을 응접실에 모여 놓고는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코르트 말테제 : 사마르칸트의 황금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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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to Maltese à Grandvaux (version)” di Flickr user Vasile Cotovanu (vasile23)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orto_Maltese_%C3%A0_Grandvaux.jpg. Con licenza CC BY 2.5 tramite Wikimedia Commons.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위고 프라트(Hugo Pratt)가 창조해낸 코르트 말테제(Corto Maltese) 시리즈는 온갖 사상과 폭력이 어지럽게 나뒹굴던 20세기 초반 유럽과 아시아를 무대로 작가의 알터에고(Alter Ego)인로맨틱한 반항아코르트 말테제의 모험을 다룬, 12편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미테랑 전(前)프랑스 대통령, 움베르토 에코 등 수많은 지성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수준 높은 작품성을 지녔던 이 작품은 땡땡, 잉칼 등의 명작들과 함께 유럽의 대중문화의 자존심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이 프로젝트는 1997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공동작업을 통해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Ellipsanime, RAI Fiction, France Cinema, Neuroplanet 등 유수의 관련업체들이 참가하였고 이 결과 ‘The Ballad Of Salt Sea’, ‘The Celts’, ‘More Romeos More Juliets’, ‘Banana Conga’ 등 총 10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극장판 ‘La Cour Secrete Des Arcanes’는 2002년 9월에 개봉되었으며, 뒤이어 2003년 9월에는 TV시리즈가 방영되었다. 여기 소개하는 ‘The Golden House Of Samarkand’ 역시 이때의 기획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무대는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오스만 제국이 세브르조약으로 인해 소멸되어가는 시점에 터키 민족주의자들과 아르메니아계 볼셰비키의 대립이 극한에 치닫던 중앙아시아이다. 베네치아에서 보물지도를 손에 얻은 말테제는 보물이 숨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마르칸트로 발길을 옮기지만 여정 중에 그와 똑같은 외모를 지닌 잔악한 민족주의자 쉐브케로 오인 받아 이런 저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감옥에 갇혀있던 그의 친구 라스푸틴 – 실존했던 이 기묘한 러시아 신부는 잔악하지만 말테제에겐 가장 친한 친구로 등장한다 – 를 구해 결국 사마르칸트에 도착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묘한 환상이었다.

원작이 워낙 방대한 실제 역사적 사실과 가상의 역사적 사실(?)이 혼재되어 있는지라 – 심지어 원작에는 말테제와 스탈린이 친구로 묘사되기까지 한다 – 애니메이션은 불가피하게 여러 부분을 생략하고 있다. 따라서 이 방대한 스토리를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 원작만화를 통해 보충수업을 해야 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애니메이션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도 깊이 있는 밀도의 화면을 통해 미적 쾌락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얼핏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지만 그와는 또 다른 풍미를 지니고 있다.

험프리 보가드와 체게바라를 섞어놓은 듯한 자유인 코르트 말테제는 견고하게 짜여져있는 조직사회에 얽매여 있는 현대인이라면 한번쯤 꿈꾸고 싶은 삶을 산, 마치 실존했던 인물처럼 구체성을 띤 인물이었다. 때문에 유럽 권에서는 크리스찬 디오르의 향수모델로 채택될 만큼 생생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다. 그래서 그의 모험을 뒤따르다보면 문득 에릭 홉스봄이 묘사했던 치열했던 20세기 초반에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동참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듯이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20세기의 신화와 전설이다.

위고 프라트 소개

Phantom of the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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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 of the Paradise movie poster“. Via Wikipedia.

Brian De Palma 는 Carrie, Scarface, Dressed To Kill 과 같은 공포/스릴러/액션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지만 가끔 Home Movies 와 같은 어처구니없는(그러나 배꼽 빠지게 웃긴) 코미디를 만들기도 했고 이 작품과 같이 지극히 컬트스러운 락뮤지컬을 만들기도 했다. <컬트>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만든 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보다 한 해 먼저 만들어졌고, 그 영화의 주요캐릭터로 전대미문의 컬트적 캐릭터인 Dr. Frank N. Furter 와 상당히 유사한 Beef 까지 등장하니만큼 컬트적 요소는 두루 갖추었으나 그 명성은 The Rocky 에 훨씬 미치지 못하니 이야말로 진정한(!) 컬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음악계의 흥행사 Phil Spector 의 분신이 아닐까 생각되는 Swan 은 어느 날 자신이 직접 작곡한 Winslow 의 노래를 듣고는 그의 차기 프로젝트 Paradise 에 써먹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Winslow 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그의 악보를 훔치고 그를 감옥에 처넣어버린다. 앙심을 품고 감옥을 탈출한 Winslow 가 Swan 의 레코딩을 방해하려 하지만 오히려 사고로 그의 얼굴만 망신창이가 된다. 추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Swan 을 찾아가는데 Swan 은 감언이설로 그를 속여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계약으로 그를 옭아맨다. 그리고 Winslow 가 맘에 들어 하던 여가수 Phoenix 가 노래를 하게 하겠다는 약속마저 저버리고 호들갑스러운 글램락 가수 Beef 가 노래를 부르게 한다. 이를 안 Winslow 의 끔찍한 복수가 시작되고 이어 Swan 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대중음악계의 이면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파우스트, 오페라의 유령 등의 에피소드와 결합되면서 좌충우돌의 컬트적 락뮤지컬로 태어났다. 영화속의 락밴드 The Juicy Fruits 나 Phoenix, Winslow 등이 들려주는 락넘버가 시원시원하다. Beef 역의 Gerritt Graham 은 Palma 의 초기작에 자주 등장하였고 후에 1979년 그의 또 다른 컬트 무비 Home Movies에서 완고하고 어이없는 청년 역으로 열연하였다.

Kiss Me Deadly

장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누벨바그 감독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바 있는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1955년작. 느와르 필름의 최전성기에 만들어진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미키 스필레인 원작의 인기 탐정 마이크 해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미스테리한 미녀의 죽음, 구사일생한 터프가이 탐정,그 터프가이를 배신하는 또다른 미스테리의 여인,그리고 그의 섹시한 여비서 등 거칠고 을씨년스러운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안티히어로에 팜므파탈이 동시에 등장하니 뭐 더 할말이 없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하였다는 크리스티나라는 여인을 태워준 탐정 마이크 해머는 그녀를 뒤따르던 악당들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난후 ‘나를 기억해 달라’는 크리스티나의 마지막 말을 힌트삼아 사건을 역추적 한다. 이 와중에 정체모를 악당들은 그를 을러대고 주위 사람들은 하나둘씩 죽어간다. 서로 죽고 죽이는 와중에 욕심 많은 여인의 호기심이 빚은 비극이 끔찍하면서도 자못 희극적이다.

p.s. 1) 이 영화의 일어제목은 어이없게도 『키스로 죽여줘キッスで殺せ!』 라고 한다.
2) 한편 한 영화사가에 따르면 미국개봉 판과 유럽개봉 판의 마지막 장면이 다르다고 한다.

人狼(인랑;Jin-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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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Roh-The-Wolf-Brigade”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movieposterdb.com/poster/567d14c5. Licensed under Wikipedia.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의 감독 오시이 마로루가 기획하고 각본을 쓰고 ‘아키라’, ‘공각기동대’의 캐릭터를 담당한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감독한 1998년 작. 감독의 첫 연출작으로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 영화제, 캐나다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전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한 일본사회에서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자치경, 수도경, 공안부라는 일종의 가상의 공안/첩보 조직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암투를 통해 조직논리와 인간성의 상실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공각기동대나 아키라를 연상시키는 리얼리즘적인 터치와 입체적인 시점 등을 통해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그림으로 표현된 극영화인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며 이러한 표현형식은 자못 심각한 작품의 주제와 잘 매치된다. 또한 ‘빨간 두건 소녀’의 동화를 다중적인 메타포로 활용하여 자칫 빤해 보이는 조직 내 암투의 단선구조를 보완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한계로는 인간병기로 규정 지워진 특기대의 후세가 가지는 심적 갈등에 대한 묘사가 심도 깊지 못한 반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체력안배에 실패했다는 느낌이고, 보다 근본적으로 그러한 주제는 굳이 일본의 전후 혼란상에 빗대지 않더라도 로보캅 등 허다한 SF 를 통해 이미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주제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His Girl Friday

잘 나가던 기자 Hildy Johnson 이 어느 날 전남편이자 전 직장 Morning Post 의 사장인 Walter Burns(Cary Grant)에게 내일이면 새 약혼자 Bruce Baldwin 과 결혼하여 도시를 떠난다고 통보하러 간다. 야비하고 야심만만한 월터는 그런 그녀를 그냥 보내지 않고 무슨 수든지 써서라도 신문사에 남겨놓으려고 한다. 때마침 정신이상자 Earl Williams 의 살인사건으로 인한 사형이 개시되려 하는 판이고 월터는 이 사건의 부당함을 알기에 그를 집행유예 시키려고 맘먹고 있지만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민주당 출신의 주지사는 유색인종의 표를 의식해 – 우연히도 얼은 흑인경찰을 살해했다 – 그를 사형시키려 한다. 힐디의 호기심을 교묘히 자극하여 마지막 기사를 위해 기자실에 올려 보낸 월터는 새 신랑 브루스를 야비한 술수로 감옥에 처넣어버린다. 그 와중에 얼은 탈옥하여 기자실로 숨어들고 이를 발견한 힐디는 특종을 잡으려는 욕심에 신랑의 존재도 까맣게 까먹고 일에 집중하게 된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저널리즘의 하이에나적인 습성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 대의민주주의의 교묘한 패러독스 등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스크루볼 코미디의 정석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감독의 공력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 케리그란트의 과장된 코믹연기도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볼거리. The Thing, The Big Sleep, Scarface 등을 만든 거장 하워드혹스의 1940년 작.

예쁜 금자씨, 이제는 평안히 쉬소서

어제 모처럼 주말에 쉬었던 관계로 영화 한편 감상하였습니다.

감상한 영화는 ‘친절한 금자씨’ 영화 제목 자체가 심상치 않아 인구에 회자되고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건방진 금자씨’로 패러디되기까지 했던 영화라 왠지 감상 전부터 이미 친숙해있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입소문에 비해 대중의 코드와는 괴리가 있는, 즉 흥행요소가 별로 없는 영화였다는 심증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의 장르를 표현하자면 ‘잔혹 여인극장 코미디 버전’이라고 할까요? 소싯적 오전 시간 라디오나 TV에서 종종 들려오던 목소리 기억하시죠? “금자씨는 제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 더더욱 저며 오는 모성애를 부둥켜안고 울어야만 했다” 뭐 이런 유의 신파조의 읊조림 말이죠.

시대배경은 2004년 임에도 의도적으로 펼쳐지는 과장된 복고풍의 미장센, 화장, 그리고 의상은 비정상적인 캐릭터, 그리고 줄거리와 함께 영화를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줄거리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볼까요? 이 영화는 줄거리를 이야기해봤자 특별히 스포일러랄 게 없을 만큼 처음부터 패를 까놓고 진행됩니다. 올드보이 식의 반전을 기대한다면 실망이 크실 겁니다. 다만 영화 중간 중간에 배치되어 있는 의외의 장면에 대한 당혹감으로 극적 긴장감을 채워가고 있죠. 복수심의 원천이 올드보이가 까닭모를 구속에 대한 호기심이었다면 금자씨에서는 모성애입니다. 복수심이 이성이 아닌 본능에서 연유하는 것이라면 모성애야말로 가장 큰 복수심의 원천이겠죠.(복수는 나의 것은 부성애였죠? 아마?)

그러나 역시 이 영화에서 줄거리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스타일’입니다. 이영애가 어떻게 변하였는가?, 권총은 왜 그렇게 예쁘게 만들어야 했는가?, 복수를 끝낸 이들은 왜 핏빛 케익을 즐겼는가?(일종의 카니발 의식?) 등등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유머코드는 사실은 대중성을 의식한 감독의 타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존 문명세계에서는 인간의 죄악을 사법체계에 의존하지만 영화라는 장르는 끊임없이 사적인 복수극에 유혹을 느낍니다. 더티해리 시리즈에서는 크린트이스트우드가 형사임에도 불구하고 법이 아닌 총에 의존하여 복수극을 감행하고,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같은 초능력자들도 법이 아닌 자신의 초인성을 수단으로 복수를 감행합니다. 금자씨 역시 감옥에서 다져진 냉철하고 초인적인 의지로 상황을 돌파해내죠.

결국은 복수를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그 카타르시스는 배트맨의 복수극처럼 허망합니다. 복수를 끝낸 후 빨간 아이섀도를 지우면서 자신의 복면을 벗어버리지만 관객인 저로서는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아쉬움이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절대 악인 한 명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지만 슈퍼맨 있다고 세상이 평화로워지지 않듯이 금자씨가 복수를 했다고 유괴라는 범죄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남는 것은 배트맨이나 슈퍼맨에서 볼 수 있는 스펙타클 정도일 텐데 금자씨가 그나마 기대고 있는 것은 스타일과 블랙유머일뿐이죠. 금자씨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보여줬던 막가파적 액션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예뻐서일까요?

The Adventures of Buckaroo Banzai Across the 8th Dimension!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고 의외의 호화배역들이 – 피터웰러, 존리스고, 엘렌버킨, 제프골드브럼 등!! – 좌충우돌하는 스토리상에서 우왕좌왕하는 꼴이 영락없이 컬트의 반열에 오르리라 기대되었고 당연하다는 듯이 컬트무비의 자격을 획득한 작품이다. 이 출연진들을 가지고 첫개봉시 1984년 LA 올림픽 와중에 단 일주일 상영하고 막을 내렸다니 망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락가수, 무술의 고수, 신경외과의사, 물리학자, 그리고 비밀첩보원까지(!) 호화찬란한 배경을 깔고 있는 버칼루반자이(피터웰러)와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에밀리오리자도 박사(존리스고)사이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란이 큰 줄기이긴 한데 밴드공연 와중에 자살을 시도하는 여자(엘렌버킨)의 이야기, 난데없이 등장하는 외계인 등 시종일관 결말을 가늠할 수 없는 좌충우돌 모험극이다.

결론은.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