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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ensed To 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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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월 7일 Beastie Boys의 데뷔 앨범 “Licensed To Ill”이 빌보드 탑200 차트 정상에 올라 7주간 머물렀다. 1986년 11월 15일 발매된 이 앨범은 최초로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한 랩LP로써 빌보드 R&B 차트 2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Rick Rubin과 Beastie Boys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85년 초에서 1986년 말까지 뉴욕에 있는 Chung King House Of Metal에서 녹음됐다. 이 앨범은 당시 막 인기를 얻고 있던 힙합, 랩 등과 락음악의 샘플링을 혼합하여 이 서브장르를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하였다. 발매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어 첫 2주 동안 백만 장이 팔려나간 이 앨범에서는 많은 히트곡이 쏟아져 나왔는데 “(You Gotta) Fight For Your Right (To Party)”과 “Brass Monkey” 등이 특히 큰 인기를 끌었다. “No Sleep To Brooklyn”에서는 Slayer의 Kerry King이 가세하여 리드기타를 연주하였고 뮤직비디오에서도 글램메탈을 패러디하는 식으로 등장한다. 이 제목은 Motörhead의 “No Sleep ‘til Hammersmith” 앨범에 대한 조롱이다. King이 이 곡에 참여한 것은 당시 Rick Rubin이 Slayer의 앨범도 프로듀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룹은 원래 이 앨범의 제목을 “Don’t Be A Faggot”으로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컬럼비아 레코드사는 이 제목이 동성애 혐오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후에 밴드의 멤버 Adam Horovitz는 그 제목에 대해 사과했다). 앨범의 유명한 커버는 David Gambale (aka “World B. Omes”)의 작품인데 산허리에 추락하고 있는 보잉 727 제트기의 일러스트레이션이다.(실제로 1986년 3월 멕시코의 시에라마드레오리엔탈 산에서 보잉 727 추락사고가 있었다) 비행기의 끝부분에 등록번호 “3MTA3”이 적혀 있는데, 이는 사실 트릭으로 거울에 비추어 보면 “EAT ME”를 의미하는 일종의 암호다.

Straight Outta Comp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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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ight Outta Compton은 미국의 힙합 그룹 N.W.A,의 첫 스튜디오 앨범으로 1988년 8월 8일, 그룹의 멤버인 Eazy-E의 레코드 레이블인 Ruthless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타이틀의 Compton은 그룹 멤버들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의 Compton시를 의미한다. 프러덕션은 Dr. Dre이 DJ Yella와 Arabian Prince 등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1 이 앨범은 지극히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표현으로2 점철되어 있는, 소위 “갱스터랩”의 선구적인 앨범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웨스트코스트힙합(West Coast hip hop)의 특징을 형성시키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 앨범은 이러한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기에는 어려운 제약조건에도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이 앨범은 방송의 도움이 없이도 – 방송에 나갈 처지가 안 되니.. 가사를 죄다 삑~ 처리할 수도 없고 – 300만장 이상이 팔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성공은 사실 FBI가 앨범 트랙 중 하나인 “Fuck tha Police”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담은 편지를 레코드사에 보낸 사실 등이 오히려 광고가 된 측면도 있다. 가사적인 측면에서 흑인의 흑인에 대한 범죄를 미화한 측면이 있는 평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흑인들의 도시 생활의 현실을 풍자했다는 평가도 우세하다. 앨범은 돈만 밝히는 여성에 대한 비난도 있는가 하면 – 물론 성차별적인 뉘앙스도 있다 – , 앞에서는 “노 드럭”을 외치며 쇼가 끝나면 마약을 찾는 위선적인 뮤지션에 대한 풍자, 방송국의 검열로 인한 뮤지션들의 어려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들은 중 가장 뛰어난 랩 레코드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왜 가사에 불쾌함을 느끼는지 알아요. 하지만 공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나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어요.” Sinéad O’Connor

Express Yourself 뮤직비디오

  1.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프러덕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가사는 주로 Ice Cube와 MC Ren이 만들었다

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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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01-mika” by Mikamote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랩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변천과정을 거쳤는가. 랩의 탄생은 DJ들로부터 비롯된다. 1970년대 미국, 특히 뉴욕시에는 Disco열풍이 불어서 많은 DJ들이 흑인빈민가 등지의 거리에서 댄스파티를 열곤 했다. 이들은 DJ Smokey, Kool DJ D같은 DJ들이었는데, 랩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한 DJ는 바로 Kool DJ Herc였다. Kool DJ Herc는 다른 DJ들같이 Disco레코드를 틀어주는 대신,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R&B 또는 Funk Dance레코드를 주로 틀어주었다. 그런데, Herc가 특이했던 것이, 그는 노래를 트는 대신에, 간주부분(Break-beat)을 계속 반복하여 틀어주곤 했다. 그 간주부분에 사람들은 춤을 추기 시작 했고, 이들을 Herc는 “b-boys”, 또 그들이 추는 춤을 “b-boying”, 또는 “Break-Dancing”이라고 불렀다. 한편, Kool DJ Herc는 자신의 파티에 항상 MC를 데리고 다녔는데, Coke La Rock라는 이름의 이 MC의 역할은 음악 중간 중간에 마이크로 춤을 추는 사람들의 흥을 돋구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곧 “MC’ing”이었고, 나중에 “rapping” 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즉, 랩의 탄생이다. 참고로, 같은 시대에 DJ Hollywood 또한 Kool DJ Herc와 같은 스타일로 DJing을 했는데, 그는 자신이 MC역할도 했다.

그런데, 그가 MCing을 하던 중, 반복했던 말들중 하나가 “..hip, hop..”이어서, “hip hop”이 랩을 지칭하는 표현들 중 하나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Herc의 뒤를 이어 많은 DJ들과 MC들이 Herc의 스타일 을 발전시키며 랩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 이들중에는 유명한 Afrika Bambaataa(아프리카어매리컨의 해방을 꿈꾸었던 라스파타리아니안)도 있어서, 그는 자신의 Zulu Nation을 형성 하여, 랩과 DJing을 발전시켰다. 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70년대 후반, 1978년 Suger Hill Gang이 “Rapper’s Delight”란 첫 랩싱글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다음해에 Sequence는 “Funk You Up”이라는 노래로 랩을 더욱 대중화 시켰고, 1980년 Kurtis Blow는 “The Breaks”란 노래로 랩으로서는 첫 Gold를 기록했다.1982년에 Afrika Bambaataa는 그의 Soul Sonic Crew와 함께 “PlanetRock”을 시작으로 신디사이져와 드럼머신에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하는 Electro Funk 시대(그는 이러한 시도를 멀리 바다 건너 독일의 Kraftwerk의 스타일을 차용한 것인다. 그 당시 많은 이들은 Kraftwerk의 음악을 일종의 써커쓰 정도로 치부하고 있을 시기였다.)를 시작하였다. 특히 Afrika Bambaataa는 sampling을 그의 “Looking for the Perfect Beat”에서 처음 본격 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역시 1980년대를 장식하였던 래퍼로 Run-DMC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It’s Like That”이란 노래로 랩에 도시 빈민가 흑인들의 힘든 삶을 본격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으며, 1986년에는 락가수Aerosmith와 “Walk This Way”를 발표하면서 랩의 대중화에 기여했다(이 노래는 당시 타이틀곡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랩음반에 처음 타이틀곡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곡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랩의 대중화에 기여한 또다른 그룹은 바로 Beastie Boys이다. 그들은 “Licensed To Ill”앨범을 발표함으로써 백인들사이에도 랩 음악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 서부에서 등장한 랩스타일이 바로 갱스터랩이다. 이 스타일의 랩은 먼저 가사에서 LA 중심부의 갱들 싸움(Gangwar) 과 힘든 삶을 표현했으며, Gangsta Rap의 시작은 N.W.A.의 1988년 도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동부 랩의 대표주자인 Public Enemy는 미국사회에서 흑인은 철저한 약자이며 갱스터라는 존재부여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는 파티풍의 춤추기 좋은 랩스타일도 그 발전을 보았으니, 그 대표적인 래퍼는 MC Hammer의 “U Can’t Touch This”나, 백인 래퍼 Marky Mark and the Funky Bunch 의 “Good Vibration”, Vanila Ice의 Ice Ice Baby, 또는 Kriss Kross의 “Jump”를 들 수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은 과거 히트곡의 샘플링을 통하여 부수적인 이익을 노리려는 상업적인 속셈이 눈에 두드러졌다.

1990년대에 들어서 랩은 그 스타일의 다양성과 가사의 내용에 있어서 많은 발전이 있었고, 또 그 과격함에 대해 미국사회로부터 많은 비난도 받 게 되었다. 주 공격대상은 가사의 과격함, 폭력조장, 여성비하 표현등이었으며, Ice-T의 노래 “Cop Killer”는 미국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고, 경찰관을 쏜 사건에서 범인 십대소년이 2Pac의 “2Paclypse Now”앨범을 듣고있었다는 데에 당시 부통령 Dan Quayle이 2Pac과 랩 전반에 대해 비난했고, 2 Live Crew는 1989년도 앨범 “As Nasty As They Wanna Be”로 Florida주에서 외설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2Pac과 Notorious B.I.G.간의 마찰이 2Pac이 출소후 Deathrow음반사로 옮기면서 결국은 Deathrow사와 Badbay사,그리고 East Coast와 West Coast간의 마찰로 번져, 한동안 랩계에 큰 문제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두 래퍼 2Pac과 Notorious B.I.G.의 죽음 으로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두 래퍼의 죽음이 East와 West의 마찰에서 비롯되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음악적 갈등이 음악외적 갈등으로 확산되어 많은 폭력이 오간것은 사실이다.

1990년대에는 위와같이 많은 문제와 논란이 있었지만, 음악적으로는 그 어느 시대에 비교될 수 없는 발전을 보았다. 매년 발매되는 랩앨범의 발매량은 물론, 많은 래퍼들의 등장, 대중적 선호도등, 모든 방면에서 랩은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부의 Wu-Tang Clan이나 서부의 Dr. Dre같은 대표적 래퍼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레이블을 키웠고, 또, 독특한 스타일의 많은 실력있는 래퍼들이 등장하여, 앞으로도 랩의 전성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출처불명

Run D.M.C.

Run-D.M.C. 는 사운드와 스타일면에서 랩음악의 기초를 다진 주요한 아티스트이다. 이들 트리오의 헤비메틀 음악을 이용한 샘플링과 강렬한 비트는 이전의 랩음악에 비해 보다 터프하고 위협적이었다. 음악의 내용 역시 Public Enemy처럼 보다 정치색을 띄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처음으로 여러 곡이 빼곡히 들어찬 앨범을 발매함으로써 이전의 싱글 위주의 랩음악을 앨범위주의 음악스타일로 발전시켰다.

멤버들 셋은 당시 노동계급 출신 아이들에 의해 주도되던 힙합계에서는 특이하게도 뉴욕 자치구의 중산층 계급 출신들이었다. Run(본명 Joseph Simmons, 1964년 11월 14일생)은 ’80년대 초 힙합 매니지먼트 회사인 Rush 프러덕션을 운영하던 Russell Simmons과 형제간이다. Russell은 ’80년대 중반 Rick Rubin과 함께 Def Jam이라는 선구자적인 레이블을 만들었다. Russell은 그의 동생과 친구 Darryl McDaniel(1964년 5월 31일생)가 랩듀오를 결성하도록 격려하였다. 이들은 Run D.M.C.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198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턴테이블을 스크래치하는 역을 맡을 친구 Jason Mizell(무대이름 Jam Master Jay, 1965년 1월 21일생)을 끌어들여 3인조로 진용을 갖추었다.

1983년 Run D.M.C. 는 첫싱글 “It’s Like That” / “Sucker M.C.’s”을 Profile 레코드사에서 발표하였다. 이 싱글은 그 당시의 다른 랩들과는 달리 파워풀한 비트와 대담한 보컬 – 각각이 서로의 라인을 마치고 오버랩시키는 형태로 녹음된 – 로 진행되는 곡이었다. 이 곡은 R&B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고 두번째 싱글 “Hard Times” / “Jam Master Jay.”역시 인기를 얻었다. 1984년초 “Rock Box”와 “30 Days”가 연이어 발표되었다. 이어서 그룹의 데뷔앨범 – 앨범명이 붙지 않은 – 이 발표되었다.

1985년 두번째 앨범 King of Rock이 발매될 즈음 Run D.M.C. 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인기있는 래퍼들이 되어 있었다. 앨범명에서도 암시되고 있듯이 그들은 헤비메틀의 거칠고 두터운 드럼 루프 등을 그들의 음악에 도입함으로써 록앤롤과 랩의 장벽을 깨부수고 있었다. 이 앨범에서는 “King of Rock”, “You Talk Too Much”, “Can You Rock It Like This” 등이 R&B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룹은 또한 Krush Groove – Kurtis Blow, the Beastie Boys, the Fat Boys 등도 출연했던 – 라는 랩무비에도 출연하였다.

Run D.M.C.의 락과 랩을 넘나드는 휴전랩적인 시도는 1986년 발표된 세번째 앨범 Raising Hell을 통해 메인스트림에서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는데 Aerosmith의 Steven Tyler와 Joe Perry가 녹음작업에 참여한 “Walk This Way”는 팝차트 4위까지 오르며 랩을 백인들의 가시권에 올려다 놓았다. “Walk This Way”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Raising Hell은 R&B 차트에서 1위에 오른, 팝차트 10위에 진입한, 그리고 플래티넘을 기록한 최초의 랩앨범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Run D.M.C. 는 메인스트림에서 성공을 거둔 최초의 랩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된것이다.

이어진 앨범 Tougher than Leather(1987)은 Run D.M.C.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는 등 축제 분위기 속에서 발매되었다. 이 영화는 ’70년대 흑인영화(Blaxploitation films : 흑인관객을 대상으로 흑인이 주연을 맡은 B급 영화로 퀜틴타란티노가 이러한 경향의 영화에 열렬한 팬이었다 함. 그러한 애정의 표시로 그는 재키브라운이라는 영화를 찍었음)의 패러디였다. 그러나 이 즈음 랩의 트렌드는 바뀌어 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힙합 팬들은 Public Enemy와 같은 하드코어적이고 보다 정치적인 색채를 띈 래퍼들을 선호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Run D.M.C. 와 같은 크로스오버적인 래퍼들은 아닌 것이다. 영화는 실패했고 앨범은 간신히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히트싱글은 나오지 않았다.

Tougher than Leather의 2년 후 Run D.M.C. 는 Bank from Hell이라는 앨범으로 돌아왔다.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하지 못하였고 멤버들은 알콜 중독(Daniels), 강간(Simmons) 등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Daniels가 술을 끊고 Simmons의 강간 혐의가 기각되자 둘은 크리스챤이 되었다. 1993년 Down with the King은 종교적 색채를 띈 가스펄 앨범이 되고 말았다. 여기엔 수많은 동료 랩아티스트들이 참여했는데 Public Enemy, EPMD, Naughty by Nature, A Tribe Called Quest, Neneh Cherry, Pete Rock, KRS-1 등이 그들이다. 타이틀트랙은 R&B차트 탑10에 진입하였다. 오랜 스튜디오 작업후에 2000년 그들은 Crown Royal로 팬들에게 다시 그들의 모습을 드러냈다.

디스코그래피
1984 Run-D.M.C. Profile/Arista
1985 King of Rock Profile/Arista
1986 Raising Hell Profile/Arista
1988 Tougher than Leather Profile/Arista
1990 Back from Hell Profile/Arista
1993 Down with the King Profile/Arista
1999 Crown Royal Arista

링크
Fan Page

Fal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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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co Ursela Monn 1986-3” by Kungfuman – own picture, scanned.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국내용(!) 락발라드 Jeanny로 국내에서 꽤 인기를 끌었던 Falco는 사실 그의 최대 히트싱글 Rock Me Amadeus나 Vienna Calling과 같은 락적인 요소가 가미된 유로 Synth-Pop이 장기이다. Austria 출신으로 국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팝아티스트인 Falco는 1957년 2월 19일 Vienna에서 Johann Holzel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Vienna 예술학교를 졸업한 수재였다. 서베를린으로 본거지를 옮긴 그는 그곳에서 한 Jazz-Rock 밴드를 이끌었다. 그리고 독일인 가수 Falko Weissflog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름을 Falco로 개명했다. 그는 펑크밴드 Drahdiwaberl의 1979년 앨범 Psycho Today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기 위해 Vienna로 돌아왔다. 1982년 Einzelhaft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 들어간 Falco는 곧 Der Kommissar라는 테크노팝 싱글을 내놓아 유럽에서 크게 히트시켰다. 이 곡은 After The Fire에 의해 커버되어 1983년 탑5에 진입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어진 싱글 Jeanny는 매춘이라는 주제때문에 금지곡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곡은 독일 챠트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1986년 발표한 Falco3에서 Rock Me Amadeus가 싱글커트되어 국제적으로 엄청난 히트를 하였다. 클래식 음악가 모짜르트를 주제로 한 이 싱글은 클래시컬한 멜로디와 씬쓰팝이 조화된 수작으로 미국과 영국 챠트에서 1위에 등극하여 그를 국제적인 팝스타로 자리매김하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였다. Vienna Calling이 Rock Me Amadeus에는 미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유행하였으나 이어지는 일련의 앨범들은 그리 주목을 끌지 못했다.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져가던 그는 1998년 2월 6일 40세의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돌연사하고 말았다.

디스코그래피
1982 Einzelhaft A&M
1984 Young Romans A&M
1984 Junge Roemer A&M
1986 Emotional Sire
1986 Falco 3 A&M
1988 Wiener Blut Sire
1990 Data-De-Groove ARD
1998 Nachtflug EMI
1998 Meine Schonsten Erfolge Polygram
1999 Verdammt Wir Leben Noch EMI
2001 Zuviel Hitze BMG

링크
Fan Page

Beastie B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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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stie Boys Compo” by WikiLaurent – Composition based on File:Adam Horovitz.jpg, File:Adam Yauch 2.jpg and File:Michael Diamond 1.jpg.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그 음악적 비중에 비해 상당히 소개가 늦은 감이 없지 않은 Beastie Boys는 오늘날 Rap과 Hip Hop이 메인스트림의 한축을 담당하는데 있어 사실상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골수 힙합팬들에게는 그들은 흑인문화의 날강도 정도로 비쳐질지 모르겠으나 이들 흰둥이 3인조 – 뉴욕의 중산층 유태인 가정 출신이었던 그들은 Rap을 한다는 이유때문에 프에르토리코 출신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다 – 가 Rap을 하지 않았더라면 Hip Hop은 여전히 거리의 음악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왔을 것임이 거의 확실하고, 이러한 사실은 “백인 얼굴에 흑인 음악”이 메인스트림의 정언명제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1981년 하드코어 펑크 그룹으로 음악인생의 첫발을 내딛은 그들은 소위 DIY(do-it-yourself) 정신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Rap을 포스트펑크의 한 분야로 생각했었다. 그룹 초기 시절 내놓은 펑크 싱글의 연이은 실패에 실망한 그들은 ’83년 “Cookie Puss”라는 랩싱글을 내놓았고 뉴욕 언더그라운드씬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얻었다. ’84년 그들은 펑크를 버리고 랩으로 개종하게 된다. 이해 그들은 Def Jam 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했다. 백인이 흑인랩을 가장 근사하게 베낀 최초의 작품중 하나인 Lisence To Ill(1986년 발매)은 – 물론 이전에 Blondie 등이 랩을 시도하였으나 이는 일종의 양념구실에 불과했다 – 평론가들로부터는 생각없는 파티음악 쯤으로 치부되었던 이 앨범은 그러나 메탈의 키타리프와 비트, 마초적인 행동과 가사, 그리고 수많은 레코드에서 베낀 운율을 뒤섞어 하드코어 힙합에 익숙하지 않은 비(非)흑인 청중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어 Hip Hop앨범으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장이 팔려나가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였다.

흑인 힙합 평론가들로부터는 자신들의 음악을 훔쳐갔다는 비난을 받는 한편, 보수주의자들로부터는 불경스럽고 성차별주의적인 가사, 그리고 직설적인 성적 은유로 가득찬 공연으로 맹비난을 받았다. 1987년 공연 내내 그들은 체포와 법정소송에 시달려야 했다.

일련의 불미스러운 법정소송에 시달렸던 Beastie Boys는 마침내 그들의 근거지를 캘리포니아로 옮기고 소속사도 Capitol로 옮겨버리고 만다. 이 와중에 만난 Dust Brothers – Chemical Brothers가 존경해마지않는 테크노 인스트루멘틀 듀오, Beck의 음악을 맡기도 하였음 – 가 프로듀스한 2집 Paul’s Boutique는 발매당시에 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외면당하였지만 이전의 치기어리고 유머러스하기만 한 그들의 음악이 단명하지 않고 ’90년대까지 이어질 수 있게 만든 가교역할을 하였다.

여하튼 전편의 상업적 실패에 굴하지 않고 그들만의 레이블인 Grand Royal을 설립한 Beastie Boys는 1992년 Check Your Head를 발표하면서 직접 연주를 맡는 등 정성을 쏟았다. 올드스쿨 힙합과 하드코어 펑크가 뒤섞인 이 앨범은 그들에게 또다시 차트의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안겨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90년대에 가장 영향력있는 밴드로 성장하게 되었다.

Members : Mike D (b. Mike Diamond, November 20, 1966), MCA (b. Adam Yauch, August 5, 1965), Ad-Rock (b. Adam Horovitz, October 31, 1967)

디스코그래피
1986 Licensed to Ill Def Jam
1989 Paul’s Boutique Capitol
1992 Check Your Head Grand
1994 Ill Communication Grand
1998 Hello Nasty Grand

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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