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보관물: 40년대

Laura

헐리웃 초기 스릴러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로라라는 한 여인이 살해된다. 이를 조사하러온 뉴욕 경찰 마크는 수사 과정에서 그녀의 아파트에 있는 그녀의 초상을 보고 점차 그녀의 매력에 빠져든다. 살해당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텅 빈 아파트에 찾아와 잠이 든 마크의 눈앞에 죽었다던 로라가 나타난다. 이후 사건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경찰이 고인과 사랑에 빠져든다는 설정이 매우 독특하다. 언젠가 읽은 스릴러 소설에서도 – 레이몬드챈들러의 소설쯤으로 기억되는데 – 이와 비슷한 설정이 있긴 했다. 거기서는 그 여인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고 결국 경찰은 공무집행으로써 보다는 사적인 복수심에 불타 사건을 파헤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느와르적 성격을 지닌 스릴러는 흔히 권선징악의 구도보다는 혼란스러운 인간관계, 뚜렷치 않은 선과 악의 경계를 넘다들면서 관객들을 공범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도 약간 그런 성향이 있다. 살아 돌아온 로라역시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심을 극 내내 받게 되는데 극 진행은 관객들을 아름다운 로라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기를, 심지어 면죄부를 줘도 되는게 아니냐는 심정적 공감으로 갈등하게 만든다.

Thief of Bagdad

초기 헐리웃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느끼게 해주는 환타지 대작. 아라비안나잇이 가지고 있는 여러 설정, 즉 착한 왕자, 사악한 마법사, 어여쁜 공주, 호리병 속의 거인, 나는 양탄자 등 이 당시의 첨단기술 및 자본과 결합되어 비슷한 유의 영화의 전형을 탄생시켰다.

The Paradine Case

Paradine Case poster.jpg
Paradine Case poster” by http://www.movieposterdb.com/poster/c99fe1c8. Licensed under Wikipedia.

1947년 데이빗오셀즈닉과 알프레드히치콕이 함께 손잡고 만든 법정스릴러물이다. 스릴러적인 반전보다는 남편 살해 혐의를 뒤집어 쓴 미모의 미망인, 이 미망인을 사랑하게 된 그녀의 변호사, 이를 알아채고 갈등하는 변호사의 아내, 그리고 미망인이 사랑하는 남편의 비서라는 사각구도의 심리적 갈등을 법정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드라마적 성격이 강한작품이다.이런 탓인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성적은 저조했다고 한다. 법정이라는 공간 내에서 펼쳐지는 팽팽한 갈등의 탁월한 시각화가 눈요깃거리다.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것이 취미인 알프레드히치콕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The Bank Dick

WC Fields.gif
WC Fields” by The post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Universal Pictures.. Licensed under Wikipedia.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 만큼은 아니었지만 헐리웃 코미디의 또 하나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W.C. Fields(본명 William Claude Dukenfield) 가 주연한 코미디 영화의 걸작.

술과 담배에 절어 살며 식구들로부터 천대를 받는 한량 Egbert Souse(주인공은 늘 사람들에게 “소세이”로 발음해달라고 요구한다)는 블랙푸쉬카페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우연히도 영화감독 자리가 맡겨지는가 하면 뜻하지 않게 은행 강도를 잡은 용감한 시민으로 둔갑하게 된다.

은행은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에게 은행경비원 자리를 제안한다.(집에 가서 장모에게 이를 자랑하는 소세이에게 장모는 “우리 집을 저당잡고 있는 그 대단한 은행 말이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자못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감지된다(!)) 어쨌든 소세이는 나름 은행경비원의 임무를 (블랙푸쉬 카페에서) 성실하게 수행한다(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던 꼬마를 을러대기도 하는 등).

한편 소세이는 카페에서 만난 채권장사의 말에 현혹되어 미래의 사윗감인 은행직원에게 채권투자를 종용하고 솔깃한 은행원은 공금을 유용하여 투자를 감행한다. 때마침 은행감독원이 은행에 찾아들고 이때부터 그들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그 와중에 또 다시 은행에 강도가 들고 소세이는 인질이 되어 자동차를 몰고 강도와 도주하게 된다.

Fields 는 어린이, 개, 여자를 싫어하지만 술과 담배를 사랑하는 염세주의자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페르소나를 창조하여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도 그러한 캐릭터가 분명히 드러나는데 주인공의 냉소는 마지막 자동차 추격씬에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적인 웃음을 선사한다. 때문에 이 라스트신은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라스트신 중 하나로 꼽히곤 한다.

7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 하나는 슬랩스틱 코미디라면 하나는 개그라 불리는 – 모두에서 깔끔하고 상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로마, 무방비 도시(Roma, Città Aperta / Open City)

로베르토로셀리니의 1945년 작품인 이 영화는 마치 에릭홉스봄의 20세기 역사를 다룬 명저 ‘극단의 시대’를 영상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파시즘과 나찌즘이 극에 달하던 시기 로마에서 저항운동을 펼치던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그린 이 영화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탈리아식의 사회주의 네오리얼리즘의 큰 축을 이룬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주의 : 이하 스포일러 있음>

극의 줄거리는 크게 반독 항쟁을 벌이고 있는 공산주의자 만프레디, 저항활동을 후원하는 돈피에트로 신부 –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보수적 카톨릭 사이의 갈등은 보편적인 현상이었지만 둘 모두 천년왕국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집단윤리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친화성도 무시할 수 없으며 평사제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호의감도 충분한 개연성을 가질 것이다 – , 그리고 만프레디를 사랑하는 배우 마리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는 1928년에 그의 아내가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결코 그녀와 살지 않았다. 여자를 멀리하는 것은 혁명가의 철칙이다.” – 칼파나 두트

마치 사제서품을 눈앞에 둔 성직자의 각오를 연상케 하는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주장에서 언급되는 혁명가의 연애관은 만프레디와 마리나의 연인관계는 만프레디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한다. 투사도 인간일진데 사랑이라는 감정에 휩쓸릴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혁명과 욕정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화해할 수 없었나보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이 영화는 이후 “전화의 저편”, “독일 영년”과 함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3대 전쟁 영화이기도 하다.

The Third Man

ThirdManUSPoster.jpg
ThirdManUSPoster” by Movie Poster Database. Licensed under Wikipedia.

냉전시대 스파이 영화의 걸작인 이 영화의 무대는 전후의 혼란이 가시지 않은 비엔나이다. 싸구려 소설작가 홀리마틴스는 비엔나의 친구를 찾아왔다가 친구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되는데 이후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그의 주위에서 맴돈다. 냉전의 엄혹함, 전후의 스산함, 의심스러운 인물 등 데카당스한 분위기가 소름끼치도록 멋있게 묘사된 영화. 완벽한 시나리오, 최고의 연기, 최적의 로케이션 등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조합. 홀리마틴스는 Shadow Of A Doubt 의 소름끼치는 살인마역의 Joseph Cotten이, 죽음을 가장한 친구 역엔 Orson Welles 가 열연하였다.

The Treasure of the Sierra Madre

인간은 언제부터 황금에 대해 집착하게 되었을까? 일설에 의하면 고대 바빌로니아 인들은 금을 태양에, 은을 달에 비유하여 금의 지위를 고귀한 그 무엇으로 자리매김하였다고 한다. 이후 인류는 오랜 기간 금을 소유하는 것이 부의 본질이라고 착각하면서 연금술, 중금주의(重金主義), 금본위제 등의 역사를 구성해왔다.

각설하고 이 영화는 모험영화의 서브장르인 금을 찾아 헤매는 인간들의 욕망과 좌절에 관한 영화다. 노숙자나 다름없는 돕스(험프리보가트)와 커틴이 우연히 만난 한 노인의 이야기에 혹하여 황금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고생 끝에 금을 찾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때부터 서로 자신의 금을 차지하려 한다는 의혹의 눈초리로 눈자위가 충혈 되기 시작한다.

언제나 깔끔하고 남자다운 캐릭터로 사랑받았던 험프리보가트가 탐욕으로 망가지는 이 영화는 비슷한 종류의 영화중에서도 최고로 뽑히는 걸작. 존휴스턴 감독의 1948년작

“한때 1919년 단명한 뮌헨 소비에트 공화국에 관계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보헤미안 이주민 무정부주의자인 B. 트래번은 선원들과 멕시코에 관한 감동적인 글을 쓰는 데에 몰두했는데(험프리 보가트가 나오는 존 휴스턴의 Treasure Of Sierra Madre(소설 원제 Der Schatz der Sierra Madre)는 트래번의 글을 원본으로 삼은 것이다.” Eric Hobsbawn 의 ‘극단의 시대’ 中에서

Rope

완전범죄는 가능한가? 전도유망한 두 젊은이가 이 과제에 도전한다. 이들은 친한 친구를 죽여 방 한가운데 궤짝에 시체를 넣은 후 천역 덕스럽게 그 친구의 부모, 여자친구, 자신들의 옛 스승(제임스스튜어트)을 불러 파티를 연다. 뭔가 의심쩍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스튜어트의 직감에 의한 예리한 질문으로 살인자들은 점점 궁지에 몰린다. 영화 전체가 살인이 일어난 방안에서만 진행되는 연극과 같은 포맷으로 진행되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영화. 알프레드히치콕의 첫 칼라영화다. 만인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는 법이다.

Shadow Of A Doubt

소매치기 사건이 마을신문의 탑기사에 오를법한 한적한 소도시. 은행원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2녀 1남의 단란한 가정의 장녀 찰리는 자신의 가정이 너무 의기소침해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찰리 삼촌에게 응원을 요청하려 우체국에 달려간다. 그런데 우연히도 이미 삼촌은 집에 오고 있는 중이라는 전보를 받는다. 오랜만에 다시 모인 가족은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처럼 밝은 웃음이 안팎으로 넘쳐나고 때마침 미국의 단란한 중산층을 인터뷰하겠다며 정부 측 기자들이 집을 방문한다. 그 즈음부터 서서히 찰리 삼촌의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진실에 한발 한발 접근해가면서 공포에 사로잡히는 찰리, 한순간에 환희는 악몽으로 바뀐다. 그리썸 반장이 이끄는 CSI 라면 반나절이면 해결할 사건을 며칠째 질질 끌어서 주인공을 생명의 위기로까지 몰고가는 것이 답답할 정도인 고전적인 스릴러지만 어쩌면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맛이 고전 스릴러의 참맛이 아닐까? 머리카락 한 올이면 머리카락 주인의 신상에서 사돈의 팔촌의 신상까지 잽싸게 다 파헤치는 초스피드의 수사극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형식적 여백과 허점이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높이기도 한다.바로 이점을 알프레드히치콕은 이 영화를 비롯한 그의 필르모그래피에서 십분 활용하였고 때로 그 점이 오히려 관객에게 가학적일 정도의 두려움까지 선사하곤 하였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면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은 진실을 나눌 단 한사람을 위해 목숨이라도 버릴 수 있을까?

Double Indemnity

영화의 제목인 이중배상은 보험계약상의 조항으로 보험가입자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두 배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조항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러한 조항이 있는지 또는 있다가 폐지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제목으로 사용되었을 만큼 이 영화에서는 주요한 키포인트로 자리잡고 있다.

레이몬드챈들러의 소설을 원작으로 명장 빌리와일더가 감독한 이 영화는 한 보험대리인과 아름답지만 야심만만한 여인과의 만남이 어떻게 비극적으로 사태를 몰고 가는지에 대한 집요한 고찰을 통해 이러한 장르의 영화들의 전형을 만든 걸작이다.

백만장자 남편을 죽여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여인 필리스디트릭슨과 그에 협조하는 보험대리인 월터네프의 살인은 완전범죄로 결말내어지는 듯하나 영리한 보험조사관이자 월터의 상관인 바튼이 개입되기 시작하자 그들의 사건은 꼬이기 시작하고 두 공모자는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80년대초 로랜스캐스단에 의해 만들어진 바디히트 역시 이와 매우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스릴러다. 두 영화를 비교하여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악녀 역으로는 아무래도 바디히트의 캐더린터너 쪽이 더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