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1985

One Mor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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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 Collins OneMoreNight”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1985년 3월 30일 Phil Collins의 “One More Night”이 빌보드 핫100차트 1위에 올라 2주간 머물렀다. 같은 날 어덜트컨템포러리 차트 정상에도 올라 3주간 머물렀다. Phil Collins의 자작곡인 이 노래는 Genesis의 드러머이자 보컬리스트였던 Collins가 솔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두 번째로1 차트 정상을 차지한 곡이 되었다. 그는 이 곡을 영국 남부 서리(Surrey)에 있는 그의 홈스튜디오인 올드크로프트(Old Croft)에서 롤랜드 TR-909 드럼머신으로 베이스 작업을 하는 와중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후에 Collins는 이 곡을 런던에 있는 타운하우스 스튜디오에서 Daryl Stuermer (guitar), Leland Sklar (bass) 등의 뮤지션들과 함께 완성했다. 특히 인상적인 간주 섹서폰 솔로는 Earth, Wind & Fire의 관악기 섹션인 The Phenix Horns 출신이 Don Myrick이 맡아주었다. “One More Night”은 Collins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No Jacket Required”의 첫 싱글로 1985년 1월에 발매되었다. 1985년 2월 9일 핫100 차트에 50위로 데뷔한 이 곡은 7주 후에 차트 정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4월 13일 “We Are the World”에게 정상 자리를 물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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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첫 번째 차트 정상곡은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

Can’t Fight This Fe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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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t Fight This Feeling Cover Art” by Source (WP:NFCC#4). Licensed under Wikipedia.

1985년 3월 9일 미국의 락밴드 REO Speedwagon의 “Can’t Fight This Feeling”이 빌보드 핫100차트 정상에 올라 3주간 머물렀다. 같은 해 3월 2일에는 어덜트컨템포러리 차트 3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REO Speedwagon은 오랜 기간 무명으로 지내다가 아홉 번째 스튜디오 앨범 “Hi-Infidelity”에서 “Keep On Lovin’ You”를 히트시키며 인기 락밴드가 되었다. 하지만 1982년 발매된 후속 앨범 “Good Trouble”은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절치부심한 밴드가 후속작으로 준비한 작품이 이 곡이 수록된 “Wheels Are Turnin’”이었다. 리드 싱어 Kevin Cronin을 비롯한 밴드 멤버들은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아 녹음 세션을 연장하기도 하고 하와이 등지에 머물면서 작품을 구상하기도 했다. Kevin은 하와이에서 10년 전에 떠올랐던 아이디어를 되새기며 작품을 구상했고 그 결과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Can’t Fight This Feeling”이라고 한다. 멤버들이 다시 모여 녹음에 들어갔는데, 멤버들은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던 한 여인에게 연정을 품는다는 내용의 이 노래를 “그 멍청한 발라드”라고 부르며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못해 이 노래를 녹음한지라 앨범의 첫 싱글은 “Can’t Fight This Feeling”이 아닌 “I Do’wanna Know”였다. 이 노래는 1984년 12월 차트 29위에 오르는 신통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어서 발매된 싱글이 “Can’t Fight This Feeling”이었는데, 발매 즉시 엄청난 가세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985년 1월 19일 핫100 차트 46위에 처음 진입한 이 곡은 불과 8주후 차트 정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밴드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REO Speedwagon은 이 노래를 1985년의 라이브에이드 콘서트에서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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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he World

1985년 3월 7일 USA For Africa의 “We Are The World”가 발매되었다. Michael Jackson과 Lionel Richie가 쓰고 Quincy Jones와 Michael Omartian이 프로듀스한 이 곡은 아프리카의 기근 해결에 도움을 주고자 만든 곡으로 같은 취지로 발표된 Band Aid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었다. 이 곡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당초 Harry Belafonte와 자금조달책인 Ken Kragen의 생각이었다. 이 둘은 몇몇 아티스트들에게 의사를 타진하여 프로젝트를 구체화시켜갔다. Jackson과 Richie는 “Do They Know”가 발매된 지 7주 후에 곡을 완성했고, 이 곡의 로얄티 전액을 USA For Africa 재단에 기부하였다. 곡이 녹음되기 하루 전인 1985년 1월 21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팝아티스트들이 하나둘씩 녹음실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이벤트가 벌어졌고 아티스트들은 밤을 새워 노래를 녹음했다. 컬럼비아 레코드사는 앨범을 무료로 찍어 전 세계에 배포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차트에서 내려오기까지 싱글은 미국에서만 450만 장이 팔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 중 하나가 되었다.(전 세계 총 판매량은 3천 만장에 약간 못 미친다고 한다) “We Are The World”는 1986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듀오 또는 그룹에 의한 베스트 팝보컬 퍼포먼스’ 등 4개 부문에 수상하였다. 이 노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기도 하는데 주로 그 취지의 적합성에 관한 것이었다. 아프리카의 기근 등 제3세계의 실상을 제1세계에 알리는 데에는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근본원인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 일부 비평가들의 생각이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후에 이들의 음악보다 더 급진적인 자선 앨범인 Artists United Against Apartheid의 Sun City가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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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녹음장소에 등장한 순서)
Lionel Richie
Stevie Wonder
Paul Simon
Kenny Rogers
James Ingram
Tina Turner
Billy Joel
Michael Jackson
Diana Ross
Dionne Warwick
Willie Nelson
Al Jarreau
Bruce Springsteen
Kenny Loggins
Steve Perry
Daryl Hall
Huey Lewis
Cyndi Lauper
Kim Carnes
Bob Dylan
Ray Charles (피아노와 키보드도 연주함)

코러스(알파벳 순서)
Dan Aykroyd
Harry Belafonte
Lindsey Buckingham
Mario Cipollina
Johnny Colla
Sheila E.
Bob Geldof
Bill Gibson
Chris Hayes
Sean Hopper
Jackie Jackson
La Toya Jackson
Marlon Jackson
Randy Jackson
Tito Jackson
Waylon Jennings
Bette Midler
John Oates
Jeffrey Osborne
Anita Pointer
June Pointer
Ruth Pointer
Smokey Robinson

밴드
David Paich – 신디싸이저
Michael Boddicker – 신디싸이저, 프로그래밍
Paulinho da Costa – 퍼커션
Louis Johnson – 베이스
Michael Omartian – 키보드
Greg Phillinganes – 키보드
John Robinson – 드럼

Cher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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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ergency1984“. Via Wikipedia.

1985년 9월 14일 Kool & The Gang의 “Cherish”가 빌보드 R&B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물렀다. 또한 1985년 8월 24일에는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1위에 올라 6주간 머물기도 했다. 핫100 차트에는 같은 해 9월 21일 2위까지 올랐다.1 영국 싱글 차트에는 최고 4위까지 올랐다. Ronald Bell, James “J.T.” Taylor, Jim Bonnefond, Claydes Smith, George Brown, Curtis Williams가 함께 쓴 이 곡은 밴드의 아홉 번째 R&B 싱글 차트 1위곡이 되었다. 1979년 James “J.T” Taylor를 리드 싱어로 영입해 라인업을 강화하면서 이 밴드는 최고의 전성기를 거쳐오고 있던 즈음이었다. 이 곡은 당초 색소폰을 담당하며 그룹을 이끌어왔던 Ronald Bell (aka Khalis Bayyan)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곡이었다. 이 곡은 그룹의 정식 스튜디오인 뉴저지 소재의 The House Of Music에서 녹음하는 대신 기본 트랙을 콤파스 포인트(Compass Point) 스튜디오에서 녹음하였다. 이 스튜디오는 아이슬랜드 레코드사의 창업자 Chris Blackwell의 소유였다. 나머지 트랙을 작업하면서 Bell은 Taylor에게 가사를 맡겼고, 그는 스튜디오 근처의 바닷가를 산책하며 작업을 마쳤다. 로맨틱한 멜로디의 이 곡의 녹음을 마쳤을 때 모두 이 곡이 히트곡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1985년 6월 그룹의 27번째 스튜디오 앨범 “Emergency”의 세 번째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팝, R&B, AC 차트를 누비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곡은 한동안 결혼식의 단골 축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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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시 1위곡은 Dire Straits의 Money For Nothing이었다.

A View To A Kill

1985년 7월 13일 Duran Duran의 “A View To A Kill”이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2주간 머문다. Duran Duran과 John Barry가 만든 이 곡은 영국 버밍햄 출신의 이 밴드의 두 번째 미국 차트 정상곡이 되었다. Duran Duran은 그룹의 베이시스트 John Taylor가 한 파티에서 007의 프로듀서 Albert “Cubby” Broccoli를 만난 이후 Grace Jones가 본드걸로 출연하게 되는 열네 번째 James Bond 영화의 주제가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그 우연한 만남이 양 측의 진지한 협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Broccoli는 그룹에게 주제가를 같이 작곡하고 어레인지할 John Barry를 소개했다. John Barry는 영국 출신의 작곡가로 Born Free, The Ipcress File, Out Of Africa 등 수많은 영화음악을 만든 명장이었다. The Power Station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한 Chic이 Bernard Edwards가 프로듀싱에 가세하였다. 트랙은 런던에 있는 CTS 스튜디오와 메종루즈에서 녹음됐다. John Barry는 Duran Duran의 연주에 덧입힐 60인조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녹음하는 동안 밴드 멤버 간에 불화가 있었다.(특히 Nick Rhodes와 Andy Taylor 사이에) 밴드 멤버들은 결국 자신들의 파트를 별도로 추가 녹음하였다. 1985년 5월 6일 발매된 싱글은 그 달 18일 차트에 43위로 데뷔하여 8주 후 정상을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A View To A Kill”은 미국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유일한 본드 주제가가 되었다.1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날 Duran Duran은 필라델피아에서 Live Aid 공연에 참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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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곡 이전에 차트에 가장 높이 올라간 본드 주제가는 핫100 차트 2위까지 오른 Wings의 “Live And Let Die”와 Carly Simon의 “Nobody Does It Better”였다

Pop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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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PopLife”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Paisley Park.. Licensed under Wikipedia.

1985년 7월 10일 Prince & The Revolution의 “Pop Life”가 발매되었다. Prince가 쓰고 프로듀스한 이 곡은 “Purple Rain”이후 내놓은 스튜디오 앨범 “Around The World In A Day”의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곡이다. 당초 이 곡은 “Purple Rain”이 완성되기도 전인 1984년 2월 19일 할리우드에 있는 선셋사운드에서 녹음됐다. Sheila E.가 연주한 드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악기는 Prince가 직접 연주했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는 성난 군중이 “저 엉터리를 밖으로 내던져(throw the bum out)”라는 외침의 샘플이 담겨 있는데, 이 장면은 실제로 1981년 Prince가 Rolling Stones의 오프닝으로 무대에 섰을 때 관중들이 질렀던 함성이다. 미국에서 발매된 싱글의 B면에는 LP에 담기지 않은 “Hello”가 담겨져 있는데, 이 곡은 Prince가 “We Are The World”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에 대한 반응으로 쓴 곡이다.1 “Pop Life”는 1985년 9월 21일 빌보드 핫100 차트 7위까지 올랐고 R&B 싱글 차트에는 같은 해 9월 14일 8위까지 올랐다. Elvis Costello는 한때 이 곡을 가사만 바꿔서 커버하려 했었지만 Prince가 거절했다. Costello는 후에 이 곡의 코드를 빌려와 “The Bridge I Burned”란 곡을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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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e’re against hungry children. There’s just as much hunger here at home.” 이란 가사에서 의도는 분명히 읽힌다.

Holding Back The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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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7월 12일 Simply Red의 “Holding Back The Years”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물렀다. 같은 날 R&B차트에서는 최고 순위인 29위까지 오른다. Mick Hucknall과 Neil Moss가 쓴 이 곡은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팝/쏘울 밴드 Simply Red에게는 첫 미국 차트 정상곡이 되었다. 리드싱어 Mick Hucknall는 후에 “Holding Back The Years”가 될 이곡을 열일곱 살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작곡의 계기는 그의 어머니가 그가 세 살 때 가족을 떠났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Hucknall은 이 곡을 몇 년 후 The Frantic Elevators의 멤버로 있을 때 밴드 멤버인 Neil Moss와 함께 마무리한다. 밴드는 이 곡을 처음에 1982년 녹음했다. 하지만 큰 인기를 얻진 못한다. The Elevators가 해산하고 나서 Hucknall은 1985년 Simply Red를 결성하고 데뷔 앨범 “Picture Book”에 쓰기 위해 베테랑 프로듀서 Stewart Levine의 도움을 받아 이 곡을 다시 녹음했다. 이 곡은 영국에서 앨범의 세 번째 싱글로 발매됐고 차트 51위에 머물렀다. WEA는 굴하지 않고 1986년 봄 싱글을 재발매했고 차트 2위까지 올랐다. 영국에서 인기를 얻자 Elektra 레코드사는 미국에서 싱글을 발표했다. 1986년 4월 5일 88위로 차트에 데뷔한 “Holding Back The Years”는 14주 후 차트 정상을 차지한다.1 앨범은 미국에서 플래티넘 레코드 인증을 받았고 밴드는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신인 부문을 포함 두 개의 부문 후보에 올랐다. 2005년 이 곡의 어쿠스틱 버전이 앨범 “Simplified”에 수록되어 발표되었고 째즈 라디오 방송국의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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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곡과 함께 미국 차트 정상을 차지한 Simply Red의 다른 곡은 리메이크 곡은 “If You Don’t Know Me by Now“다.

You Spin Me Round (Like a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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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 Or Alive Pete Burns”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Epic.. Licensed under Wikipedia.

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 The Wedding Singer에서 주인공인 Robbie Hart(Adam Sandler)는 한 결혼 피로연에서 “You Spin Me Round (Like a Record)”를 부르며 영화의 첫 머리를 연다. 이 곡은 영국 밴드 Dead or Alive가 1985년 발표한 앨범 Youthquake의 수록곡으로 발표 당시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밴드를 대표하는 곡이 되었다. 이 곡은 밴드의 싱어인 Peter Burns가 만들고 당시 영국 음반계의 마이다스 손이었던 Stock Aitken Waterman 트리오가 프로듀스했다. Burns는 자서전에서 이 곡을 만드는데 두 개의 다른 곡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적었다. “난 Luther Vandross의 ‘I Wanted Your Love‘를 들었어요. 같은 코드는 아니었죠. 하지만 그게 내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에요. 난 어떤 음악을 듣고 그걸 다른 튠으로 부릅니다. 음악의 틀을 짜려 노력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죠. 이걸 하고, 이걸 하고, 그리고 갑자기 번뜩 떠올라요. 그리고 Little Nell이라는 가수의 다른 레코드가 있어요. 제목이 “See You ‘Round Like A Record”죠. 그래서 난 이 둘을 가졌죠. Van Dross 와 Little Nell, 그리고 빙고!” Burns에 따르면 레코드사는 이 노래에 대해 별 호감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2,500파운드를 빌려 노래를 녹음해야 했다. 레코드사는 녹음된 노래를 듣고서야 열광했다.1 이 노래는 Jessica Simpson 등 많은 뮤지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고, America Psycho, Hangover 등 많은 영화에서 사운드트랙에 쓰는 등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댄쓰곡이 되었다.

뮤직비디오

  1. 뮤직비디오 제작까지도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고 한다. 왜 뮤직비디오가 조금 궁색해보이는지 이제야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Touch by Touch

Touch by touch
You’re my all time lover
Skin to skin
Come under my cover

오스트리아 출신의 3인조 팝밴드 Joy의 히트곡이다. 내용은 제목이 들어가 있는 저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십대의 풋사랑을 그린 전형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노래가 한국 영화 ‘써니’에서 의외의 장면의 BGM으로 쓰였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임나미를 비롯한 “써니”파가 다른 여학생 조직과의 패싸움을 벌이려는 찰나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은 전경과 일전을 벌일 기세다. 이때 등장하는 음악이 바로 이 음악이다. 학생들의 패싸움과 시위에 대한 폭력진압, 이 두 가지 상황이 노래의 제목 Touch by Touch와 묘하게 어울린다는 것이 감독의 생각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Joy는 심플한 밴드명처럼 단순하면서도 달콤한 멜로디의 댄스팝으로 1985년 데뷔했다. 그해 2월 첫 싱글 Lost In Hong Kong을 내놓은 후, 같은 해 9월 Touch by Touch를 두 번째 싱글로 내놓는다. 밴드 멤버인 Andy Schweitzer와 Freddy Jaklitsch가 만든 이 곡은 발표 후 유로피안 탑20 댄스 차트에 올랐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국내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 급기야 그들은 내한공연의 볼모지인 한국에서 1987년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내한공연을 가졌다.(하지만 립싱크 – 정확히는 연주 싱크 – 파문에 휘말리기도 했다)

뮤직비디오

Don’t You (Forget Abou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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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YouForgetAboutMe” by The image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its copyright holders, A&M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Don’t You (Forget About Me)“는 1985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뉴웨이브 밴드 Simple Minds가 불러서 히트시킨 노래다. Keith Forsey와 Steve Schiff가 만든 이 곡은 John Hughes 감독의 틴에이저 코미디영화 The Breakfast Club에 쓰여 유명해졌다. Forsey는 당초 이 곡을 The Fixx의 Cy Curnin, Bryan Ferry, Billy Idol 등에게 불러달라고 요청했으나 셋 모두 이를 거절했다.1 Schiff는 Simple Minds에게 부탁해보자고 Forsey에게 건의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들도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룹의 레이블 A&M의 충고에 따라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Simple Minds는 이 곡은 런던의 한 스튜디오에서 단 세 시간 만에 녹음하고는 즉시 그 곡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영화의 성공에 이어 노래도 인기를 얻게 됐고, 마침내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다.2 이 노래는 또한 차트에 1985년부터 1987년까지 2년 동안이나 머물렀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차트에 머문 기록으로 남기도 했다. 이런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룹은 계속 이 노래를 무시해서 그들의 다음 정규 앨범 Once Upon a Time에 담지도 않았다.3 2013년 The Breakfast Club의 히로인이었던 Molly Ringwald는 그녀의 앨범 Except Sometimes에서 고인이 된 John Hughes를 추억하며 이 노래를 째즈 버전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뮤직비디오

  1. Idol은 2001년 그의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이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
  2. 결국 밴드의 유일한 미국 차트 1위곡이 된다.
  3. 1991년에 발매된 1992 best-of Glittering Prize 81/92 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