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Max : Fury Road 感想文

WARNING 스포일러 만땅

Theatrical release poster
Max Mad Fury Road Newest Poster” by Source.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Mad Max: Fury Road“>Fair use via Wikipedia.

2015년 여름 영화팬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이 안겨졌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Mad Max 시리즈의 4편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전편보다 더 강력한 하드코어 액션과 탄탄한 시나리오, 그리고 시대선도적인 페미니즘 세계관까지 얹어져서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초신경 자극 헤비메탈 무비’가 탄생하여 최고의 수작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일흔이 되신 조지 밀러 님께서 이 정도의 박력과 진보적인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계신 것을 보니 나이 탓만 하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질 따름이다.

지금 온라인에서는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다”, “아니다. 너희들의 오버이고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다”, “국내의 얼치기 꼴페미와는 다른 진짜 페미니즘 영화다” 등 페미니즘 함유량을 두고 말이 많지만 이 글에서 그 논쟁에 숟가락을 얹을 생각은 없다. 다만 예술이란 사회적 맥락과 수용자의 시각에 상호 조응하여 메시지가 전파되거나 발전하기 때문에 기계적 규정화는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을 말해두고 싶다. 발표 당시에는 여성 해방적 메시지를 담고 있던 ‘오만과 편견’이 오늘 날에는 로맨틱 코미디가 된 것이 그 좋은 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의 테두리에 두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그 장르를 뛰어넘는 ‘로드 무비’로서의 미덕을 살펴보고 싶다. “분노의 도로”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이 영화는 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 상에서 캐릭터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로드 무비 고유의 본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희한하게 뭉친 구성원들은 서로 반목하고 조력하다가 어느덧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스스로의 정신적 굴레로부터도 치유된다. 그러한 면에서 영화는 ‘스탠바이미’나 ‘델마와 루이스’와 닮아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임모탄 조의 씨받이” 중 막내인 치도를 들 수 있다. “The Fragile”이라는 예명이 붙을 만큼 연약해서 탈출을 포기했다고 했던 그녀는 급기야 사령관 퓨리오사가 임모탄 조를 처치하는데 도움을 줄만큼 성장하게 된다. 맥스 역시 여정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받는다. 환상으로 나타나던 딸의 모습은 그를 옳은 길로 인도하고 최후에 미소 짓게 만든다. 이미 없어져 버린 “녹색의 땅”을 찾아 헤매고 소금사막을 건너려던 퓨리오사는 결국 시타델로 돌아가자는 맥스의 조언을 수용하며 고통을 우회하지 않고 직시하게 된다.

시타델을 탈출했다가 결국 무수한 희생을 치르면서 다시 원점인 시타델로 돌아온 꼴이 되고 말았지만 – 게다가 그들의 접수한 권력을 어떻게 써먹을 것인지에 대한 궁리도 없지만 – 정신적으로는 모두들 성장하고 치유를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시타델로의 회군은 개개인의 성장이 일반대중으로까지 전파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발전적이다. 또한 부발리니 여전사 할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씨앗이 시타델에 온전히 옮겨졌다는 점에서,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미덕을 갖추고 있는 영화지만 또한 영화의 액션에 대한 상찬을 빼놓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이 영화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풍성한 액션으로 멋지게 포장되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무성 영화가 우리가 현재 쓰는 영상언어 문법을 만들어냈다고 믿는다”고 감독이 이야기했듯이 이 영화는 자질구레한 배경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그 시간을 액션으로 채워 넣었다는 점에서 무성영화의 미덕을 성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특히 감독이 언급한 버스터 키튼의 작품 중에서 ‘The General’과 닮았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텔마와 루이스’와 ‘The General’을 오버랩시킨 영화다.

Read More

최근 본 영화들 단평

A Charlie Brown Christmas(1965)

Charles M. Schulz가 그린 유명한 만화 Peanuts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1965년 CBS 채널을 통해 방영된 TV단편 애니메이션이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상업주의에 의해 오염되었다고 생각하는 – 그런데 이 작품의 스폰서는 코카콜라였다 – 찰리 브라운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우울하게 지냈다가 그 의미를 찾아내고 친구들과 함께 기뻐한다는 단순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만화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와 정감 있는 캐릭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째즈 피아니스트의 Vince Guaraldi이 주도한 뛰어난 사운드트랙이 백미다.

Apocalypse Now(1979)

Joseph Conrad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를 각색하여 Francis Ford Coppola가 만든 작품. 흔히 反戰을 주제로 한 영화로 간주되고 있으나 단순히 그러한 정치적 틀로 묶어둘 수 없는, 인간의 존재의의와 광기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베트남전의 영웅 Walter E. Kurtz 대령이 “건강하지 않은(unsound)”방법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판단을 한 군 수뇌부가 Willard 대위를 암살자로 파견하지만, 그 여정 도중에 대위 자신과 관객은 대체 누가 건강하지 않고 누가 미쳤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게 된다.

Hearts of Darkness : A Filmmaker’s Apocalypse(1991)

위에 소개한 Apocalypse Now 제작과정의 뒷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Coppola 감독의 아내 Eleanor Coppola가 공동감독으로 참여한 이 다큐를 보면 영화라는 하나의 예술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알 수 있다.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 등을 담은 이 작품은 예산, 날씨, 소품, 배우, 언론 – 언론은 제작기간이 길어지자 “Apocalypse When?”등의 헤드라인으로 감독을 조롱한다 – 등 어느 것 하나 감독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걸작이 탄생했는지를 입체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La Dolce Vita(1960)

Federico Fellini의 영화는 흔히 “아트 필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드라마적 요소가 강해 감상하기에 그리 낯설지 않다. 감독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Marcello Mastroianni가 주연한 이 영화는 삼류연예잡지사의 기자로 일하는 주인공이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 이탈리아 사회가 겪고 있던 변화의 흐름과 이에 따른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영상에 담고 있다. 영화 첫머리에 예수 상을 헬리콥터로 나르는 장면은 – 독일 영화 “굿바이 레닌”이 오마쥬한 –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Taxi Driver(1976)

뉴욕에서 택시 운전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소모하는 택시 기사 Travis에 관한 이야기. 해병대 출신의 노동계급인 Travis는 선거 캠프에서 활동하는 인텔리 Betsy와 사귀는 과정에서 계급적 문화적 괴리감 탓에 헤어지고 난 후 내면으로 침잠하게 되고 스스로를 兵器化하여 도시의 오물들을 청소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언뜻 이후 1980년대 일본에서 제작된 “鉄男”을 연상시킨다. 어쨌든 10대 창녀를 구원하겠다는 그의 정의감은 새로운 폭력을 불러온다. 사운드트랙의 째즈 연주와 뉴욕 거리, 그리고 배우들이 잘 어우러진 영화.

The Avengers(2012)

마블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함께 위기를 돌파하고 악인을 물리친다는 설정으로 만들어진 영화. 어릴 적 즐겨봤던 “슈퍼특공대”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언뜻 화학적으로 융합될 것 같지 않은 여러 캐릭터들이 나름의 에피소드로 무난하게 섞이게 만든 연출역량을 높이 살만하다. 특히 미국의 50년대 애국주의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의 설정은 나름 흥미로웠다. 다만 헐크의 설정은 미숙한 면이 있는데 – 처음엔 이성을 잃어 아군을 공격하다 나중엔 이성도 잃지 않으며 헐크로 분하는 – 영화 흐름상 불가피한 면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Kingsman: The Secret Service(2015)

모두들 열광하면서 볼 적에 안 보고 조그만 재상영관에서 끝물에 본 작품. 많은 여인들이 Colin Firth의 “수트빨”에 환호하였는데 과연 그의 캐릭터는 여러모로 간지 나는 캐릭터였다. 이런 캐릭터는 특히 영국 스파이물에서 전형적이긴 하지만 특히 이 영화에서는 전형적인 ‘Chav’식 옷차림의 Eggsy와 대비되면서 관객들에게 더 선명하게 부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코믹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지라 스토리 자체는 이해가 그리 어렵지 않고 역시 눈요깃거리는 양복 수트빨, 화려한 액션씬, 80년대 팝 위주의 사운드트랙이다.

Read More

Chariots Of Fire

Chariots-of-fire-album.jpg
Chariots-of-fire-album“. Licensed under Wikipedia.

1982년 5월 8일 Vangelis의 “Chariots Of Fire”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물렀다. Vangelis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Evangelos Papathanassiou가 만든 이 곡은 그리스 출신의 이 뮤지션에 있어 최대의 히트곡이 되었다. 이 곡은 1924년 파리 올림픽을 위해 훈련하는 두 명의 영국 달리기선수에 관한 영화의 오프닝 음악으로 쓰였다. 그래서 사운드트랙에는 “Titles”로 되어 있으나 “Chariots Of Fire”라는 이름으로 보다 널리 알려져 있다.1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이 영화의 감독 Hugh Hudson이 음악을 담당할 이로 Vangelis를 직접 지명했는데, Vangelis는 이 작품의 작곡에서부터 피아노, 신디싸이저 등 모든 연주를 직접 소화해냈다. 1981년 말 싱글로 발매된 이후 그해 12월 12일 핫100 차트 94위에 진입한 이 곡은 20주 후에 정상에 등극했다. 사운드트랙도 큰 인기를 끌어 1982년 4월 17일 탑200 차트 정상에 올라 4주간 머물렀다. Vangelis는 이 곡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이 음악은 많은 뮤지션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숱한 스포츠 행사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다.

뮤직비디오

  1. 빌보드 차트에 처음 등장했을 때도 “Titles”로 차트에 올라갔다가 중간에 “Chariots Of Fire”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Read More

Nothing Compares 2 U

Nothingcompares2u.jpg
Nothingcompares2u” by Source.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Nothing Compares 2 U“>Fair use via Wikipedia.

1990년 4월 21일 Sinead O’Connor의 “Nothing Compares 2 U”가 빌보드 핫100차트 정상에 올라 4주간 머물렀다. Prince가 만든 이 곡은 빡빡 깎은 머리 스타일로 유명했던 아일랜드 출신의 이 가수의 최대 히트곡이 되었다. 그래미 후보로 오르기도 했던 데뷔 앨범 “The Lion And The Cobra”의 성공 이후 Sinead는 1989년 2집 작업에 착수한다. 당시 매니저였던 Fachtna O’Ceallaigh는 Sinead에게 Prince가 만든 발라드 한 곡을 추천했다. 이 곡은 당초에는 The Family라는 Prince의 사이드프로젝트 밴드가 그들의 1985년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을 위해 녹음했지만 싱글로는 발매되지 않았고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곡이었다. 하지만 1989년 발매된 2집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의 수록곡으로 녹음되었고 1990년 2월 11일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된 “Nothing Compares 2 U”는 그 해 3월 17일 핫100 차트에 63위로 데뷔한 후 불과 5주 만에 정상을 차지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O’Connor의 본국 아일랜드를 비롯하여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수많은 국가의 싱글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John Maybury가 감독한 뮤직비디오에서 O’Connor는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하는데 당초 이 장면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고 가수가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린 것이라고 한다.

뮤직비디오 보기

Read More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

Phil Collins Against All Odds single cover.jpg
Phil Collins Against All Odds single cover“.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4월 21일 Phil Collins의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가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을 차지하여 3주간 머물렀다. Phil Collins가 직접 만든 이 곡은 영국 밴드 The Genesis 드러머 출신이었다가 솔로로 전향한 이 가수의 최초의 정상곡이 되었다. 1983년 11월 The Genesis의 시카고 공연을 본 Taylor Hackford는 Collins를 만나 그가 감독할 Jeff Bridges 주연의 “Against All Odds”라는 영화의 주제가를 만들어 줄 것을 의뢰했다. Collins는 그의 첫 솔로 앨범 “Face Value”의 작업 중에 만들어두었던 곡 중 사용하지 않기로 한 곡 하나를 꺼내들었는데 당시의 곡명은 “How Can You Just Sit There?”였다. Collins는 Chaka Khan, Carly Simon, Bee Gees 등과 함께 일한 프로듀서 Arif Mardin와 함께 작업하여 이 곡을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라는 이름의 세련된 노래로 변신시켰다. Collins는 The Genesis의 공연 중간에 휴가를 내어 뉴욕과 로스엔젤리스 등에서 보컬과 드럼을 녹음했다. 1984년 2월 초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2월 25일 핫 100 차트 67위에 데뷔한 후 8주 후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Against All Odds”는 1985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팝 메일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다.

뮤직비디오 보기

Read More

Heart Of Glass는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Blondie1977.jpg
Blondie1977” by Private Stock Records – eBay item
photo front photo back
photo front.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78년까지 Blondie는 컬트팬들에 둘러 쌓인 펑크밴드였을 뿐이다. 히트 앨범에 목마른 밴드의 레이블 Chrysalis는 Suzi Quatro와 Sweet과 같은 다운타운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녹음하여 성공한 창조적인 프로듀서 Michael Chapman을 영입하였다. 그 결과가 Blondie의 세 번째 앨범 “Parallel Lines”와 싱글 “Heart of Glass”였다. 1979년 초 발매된 이후 이 곡은 Blondie의 첫 빌보드 히트곡으로써 1979년 4월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다. 이 곡은 신쓰팝과 일렉트로닉 댄쓰뮤직의 길을 닦았다.

Mike Chapman: 처음 Chris와 Debbie를 뉴욕에 있는 그래머시파크 호텔에서 만났을 때, 그들은 앨범에 담을 새 노래들을 들려줬어요. 음악은 대단했죠. 그러나 난 그 노래를 진정한 팝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난 그들에게 다른 곡은 없는지 물었죠. 그들은 “음. 우리가 ‘그 디스코 곡’이라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노래를 틀었는데 정말 근사했죠. 하지만 아직 100%에 다다르지는 않았어요.

Mr. Stein: 애초 그 노래의 Debbie의 두 번째 줄 가사는 “Soon turned out, he was a pain in the ass.”였어요. Mike는 이게 라디오 친화적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한 구절을 생각해냈죠. “heart of glass”. 다들 좋아했어요. Debbie는 작업을 해서 “Soon turned out, had a heart of glass.”로 고쳤죠. 그게 바로 우리가 타이틀로 쓴 것이고요.

Mr. Chapman: Debbie에게 음악 비즈니스에서 누굴 제일 좋아하냐고 물었죠. 그녀는 “Donna Summer”를 좋아하고 특히 “I Feel Love”를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전혀 예상 못했던 대답이었죠. 난 그녀와 Chris에게 말했어요. “이 노래를 Giorgio Moroder 느낌으로 가져가면 어떨까요?” Giorgio는 Donna의 명반들을 프로듀스 했었으니까요.

인터뷰 전문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Read More

Call Me

Blondie - Call Me.png
Blondie – Call Me” by Source.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Call Me (Blondie song)“>Fair use via Wikipedia.

“Call Me”는 음악 스타일에 있어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절묘하게 걸친 느낌의 곡이다. 이는 아마도 그 곡에서 전형적인 디스코 리듬과 뉴웨이브적인 멜로디가 함께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히트한 시기도 정확히 1980년이다. 펑크밴드에서 뉴웨이브 일렉트로닉 밴드로 거듭난 Blondie가 부른 이 곡은 1980년 4월 19일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에 올라 6주간 머물렀다. Heart Of Glass라는 메가히트급의 댄스넘버를 히트시킨 바 있는 Blondie의 두 번째 차트 정상곡이다. 70년대 유로피언 디스코의 대가 Giorgio Moroder와 Blondie의 여성 싱어 Deborah Harry가 만든 이 곡은 Richard Gere 주연의 “American Gigolo”1의 주제곡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Moroder는 이 곡의 공동작업자로 처음에는 Fleetwood Mac의 Stevie Nicks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레코드 레이블인 모던 레코드사가 이 제안을 거절하자 그 기회는 Harry에게 돌아갔다. Harry는 가사를 썼고 스튜디오에서 보컬을 녹음했다. 처음에 “Man Machine”이라는 가제로 이 곡의 데모를 받은 Harry는 가사와 곡 일부분을 작업하면서 “캘리포니아 해변을 드라이브하는 오프닝씬을 연상했다”고 술회했는데, 실제로 영화의 오프닝씬이 그렇게 연출되었다. 1980년 2월초 싱글로 발매된 후 그 달 16일 바로 차트 80위에 데뷔한 이 곡은 9주 후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게다가 1980년 빌보드 잡지의 연말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하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며 그룹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되었다. Rolling Stone은 “역대 가장 위대한 500곡”에서 이 노래를 289위에 선정하였다.

뮤직비디오 보기

  1. 천하의 바람둥이 리처드 기어의 엽색행각을 다룬 영화 자체는 그다지 재미가 없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