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ris Muhammad – Power of Soul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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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앨범의 커버를 보고서는 곧바로 ‘뭔가 이슬람 풍이 섞인 재즈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억측에 불과했음을 앨범을 다 듣고서야 깨달았다. 앨범은 철저히 영혼(soul)의 심연을 파고드는 전형적인 서구 스타일의 모던 재즈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Grover Washington Jr., Bob James 등 당대의 유명 재즈 연주자들이 Leo Morris라는 이름을 가진, 후에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름을 이드리스 무함마드(아랍어로 إدريس محمد‎‎)로 바꾼 실력있는 드럼 주자와 함께 만든 앨범이었다. 이드리스는 기세 좋게 자신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사진을 앨범 커버로 썼는데 그 전형적인 무슬림의 외양이 전면에 배치된 커버가 내게 선입견을 심어준 것이다. 어쨌든 이 앨범은 좀 더 아방가르드한 분위기의 50~60년대 재즈 전성시대를 거치는 과정에서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앞서 말했듯이 모던한 분위기의, 그리고 좀 더 쉬운 멜로디의 재즈 넘버로 구성되어 있다. 약간 으스스해지는 가을이나 맹추위의 겨울 등에 커피 한잔을 마시며 들으면 좋을 그런 수작 앨범이다.

1. “Power of Soul” 7:07
2. “Piece of Mind” 9:24
3. “The Saddest Thing” 7:10
4. “Loran’s Dance” 10:39

Glass Ho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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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견으로 Billy Joel과 Bruce Springsteen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다. 둘은 순수한 형태 락앤롤이라는 수단을 통해 백인 노동계급의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 지역적으로는 뉴욕 및 뉴저지 지방의 풍경을 즐겨 노래한다. 차이점이라면 Billy Joel이 Bruce보다 더 발랄하고 직선적인 정서에 기댄다는 느낌이다. 1980년대를 여는 Glass Houses는 Billy Joel의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난 그의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앨범은 빌보드 연말 차트에서 4위에 오를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앨범 중에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가 앞서 말한 빌리의 특징을 대변해주는 곡이라 할 수 있는데. 70년대 말을 기점으로 새로이 등장한 뉴웨이브 등의 음악적 특징과 패션 경향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것들도 모두 내게는 락앤롤’이라고 외치는 전형적인 락앤롤 곡이다. 앨범의 중심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섹스인데, 폰섹스(Sometimes a Fantasy)나 하룻밤의 섹스(All for Leyna)를 아쉬워하는 내용으로, 그야말로 직선적인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빌리의 또 하나의 장기는 서정적인 멜로디의 미드템포 곡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곡이 유명한 “Don’t Ask Me Why”다. 아프로-쿠바(Afro-Cuban) 리듬에 기초한 이 곡은 수수께끼와도 같은 그러면서도 유쾌한 내용의 가사에 어울리는 경쾌한 포크 멜로디를 선사하고 있다. 제목과 가사 중간에 프랑스어를 사용한 “C’était Toi (You Were the One)”도 빌리 특유의 발라드로 앞서 언급한 곡들에서의 노골적인 성적욕망보다는 좀 더 대중 취향으로 접근하는 애절한 연애 감정을 담고 있다.

Side one
1.”You May Be Right” – 4:15
2.”Sometimes a Fantasy” – 3:40
3.”Don’t Ask Me Why” – 2:59
4.”It’s Still Rock and Roll to Me” – 2:57
5.”All for Leyna” – 4:15

Side two
6.”I Don’t Want to Be Alone” – 3:57
7.”Sleeping with the Television On” – 3:02
8.”C’était Toi (You Were the One)” – 3:25
9.”Close to the Borderline” – 3:47
10.”Through the Long Night” – 2:43

여섯 개의 상징적인 앨범 커버에 관한 뒷이야기 : Talking Heads의 Speaking In Tong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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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것은 고전적인 커버라기보다는 예술계의 괴짜에 가깝다. 그렇지만 이것이 오늘날의 채색으로 인쇄되어 제공되곤 하는 특판 레코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미상을 수상한 Talking Heads의 Speaking In Tongues의 예술작업은 청록색, 심홍색, 노란색으로 인쇄된 파운드 사진들(found photos)로 점재(點在)되어 있다. 모든 것들은 라우센버그(Rauschenberg)1가 1967년 내놓은 조각 “리볼버”를 근거로 하였는데, 이 작품은 관람자가 스위치를 켜면 중심축을 중심으로 도는 다섯 개의 플렉시글래스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다. 제조상의 어려움 때문에 LP는 5만 개 한정판으로 인쇄됐고 높은 가격의 수집품목이 됐다. Byrne은 많은 이들이 도움으로 그 앨범을 디자인했다.

겹치는 작업의 비주얼 효과를 얻기 위해 라우센버그는 보프리(Beaupré)가 “있는 그대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농축적인 화려한 색채의 비닐 레코드”라고 정의한 바, 아세테이트2위에 콜라주 작업이 된 사진들을 인쇄했다. 문자 파편들은 거친 패턴들을 별도의 섹션으로 분할하였고, 각각의 부분을 다음 것들로부터 구분하기 어렵게끔 이상한 각도로 형태들이 교차한다. David Byrne의 음악 스타일과 많이 유사하게도 결과는 혁신적이었으며 손쉬운 범주화를 거부하는 테크닉의 혼합이었다. Byrne은 타임스에 “Bob 주위에 있는 것은 종종 어떤 종류의 황홀한 약물 상태에 있는 것과도 같아요. 그는 그의 주위에 이들에게 상자 바깥을 생각하도록 영감을 줄 뿐 아니라 상자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게 하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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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팝아트 예술가 Robert Rauschenberg
  2. 투명 플라스틱 필름

David Byrne의 토킹헤즈 재결합에 대한 최근 견해 급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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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킹헤즈가 1991년 영원히 해산한 이후 이 미국의 락커들의 완전체로서의 재결합은 가능성이 낮거나 거의 없는 것이었다. 2002년의 분기별 락앤롤 명예의 전당의 사전 행사에서의 운좋은 출연자로서의 짧은 공연과 제리 해리슨, 크리스 프란츠, 티나 웨이마우스의 재결합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프론트맨이었던 데이빗 번은 지속적으로 경멸 섞인 톤으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The Creative Independent 와의 새 인터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번의 입장은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는 인터뷰 하는 이가 그 주제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잠정적인 재결합의 장단점에 대해 언급하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다양한 일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토킹헤즈의 재결합은 어떤 세대에 있어서는 또는 많은 다른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믿을 수 없이 성공적인 것이겠지요.”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테고 관심도 얻겠죠. 또한 아마도 많은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어떤 이에게는 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멀리 퇴보하는 일이기도 해요.” 그러한 상대적인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번은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면을 취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합니다. 돈이 되었든 명성이 되었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좀 많이 하기 위해 가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되었든 말입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어요.” 그래서 이제 어느 곳으로도 향하지 않는 길(a road to nowhere)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Bros 재결합?

이 기사에 따르면 원년 멤버 중 하나인 베이시스트 Craig Logan은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하튼 공연장에서 다시 그들의 노래가 울려퍼진다면 무척 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George Michael: 제조업화된 음악 산업 내에서의 보기 드문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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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iversity of Houston Digital Library – http://digital.lib.uh.edu/u?/p15195coll6,268, Public Domain, Link

(원문 보기)

편집자 노트 : Clay Cane 는 “Live Through This: Surviving the Intersections of Sexuality, God, and Race,”의 저자이다.

2016년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또 한방 먹었다. 조지 마이클이 53세의 나이로 심장 질환으로 보도된 원인으로 인해 갑자기 세상을 등졌다. 소셜미디어는 그의 히트곡들 “Father Figure,” “Faith”, “Praying for Time” 등으로 그를 회상하느라 북새통이 되었다. 조지 마이클은 신과도 같은 목소리, 뛰어난 작곡 능력, 죽이게 잘 생긴 얼굴의 팝스타 이상의 인물이었다.

Georgios Kyriacos Panayiotou 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조지는 음악이 인종적으로 분리되고 주류의 문화가 가혹할 정도로 반(反)동성애적인 시절에 유명세를 얻은 백인, 남성, 동성애자, 쏘울 가수였다. Justin Timberlake, Robin Thicke, Sam Smith 그리고 많은 다른 이들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마이클처럼 이들도 팝 가수들이 아니다. 그들은 R&B 가수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백인이기 때문에 “팝”으로 분류되고 있다.

R&B를 부르는 백인 가수가 된다는 것의 특혜는 — 또한 지겨울 정도로 팝음악 방송에서 틀어대는 — 종종 음악 산업에서 인지를 못하곤 한다. 음악에는 언제나 깊은 차별이 존재하였다. 음악 산업은 Billie Holiday, Dinah Washington, John Lee Hooker 와 같이 레이블을 부자로 만들어주지만 그들 자신은 몇 푼밖에 쥐지 못하는 “인종 레코드”로부터 구축됐다. 한편 Pat Boone 또는 Elvis Presley와 같은 백인 아티스트들은 원래 흑인 아티스트들이 부른 노래를 불러대며 몇 백만 달러를 벌었다. R&B 싱글 차트조차 1982년부터 1990년까지 기이하게도 “Hot Black Singles”라고 이름 붙여졌다.

“흑인”음악과 “백인”음악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Prince, Michael Jackson, Whitney Houston이 깨부쉈다. 조지 마이클은 R&B에서 찾아낸 또 하나의 백인 아티스트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쏘울 사운드”를 만들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다. 그는 노력하지 않고도 쏘울풀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에게 씌워졌던 비난처럼 문화적으로 남용하려는 흔적은 전혀 없었다. 그는 “도시의 여장자(urban drag)”에 있지도 않았고 흔치 않은 흑인 프로듀서와 계약을 맺지도 않았다. 그는 다른 흑인 아티스트들처럼 – 말년의 Teena Marie처럼 – 쏘울풀했을 뿐이다.

1988년 조지 마이클은 빌보드의 “탑 블랙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백인 아티스트가 됐다. 또한 “One More Try”로 “블랙” 차트에서 1위를 마지막으로 차지했는데, (이제는 Hot R&B/Hip-Hop Songs로 이름이 바뀐) 그 다음 백인 아티스트는 2007년 “Lost Without U”를 부른 로빈 티클이다. 1980년대의 흑인 커뮤니티에게 조지 마이클은 프린스나 Janet Jackson처럼 그들의 사운드트랙이었다. 더욱이 그는 흑인다움을 연기하지 않은 자생적인 아티스트이자 싱어이자 작곡자이자 프로듀서였다. 이는 영감과 적절함의 차이다.

조지 마이클의 명성은 LGBT 커뮤니티에게 가장 소름끼치던 그 시기에 다시 한 번 찾아온다. AIDS 위기. 잘 알려져 있다시피 Ronald Reagan은 이미 수십만 명의 사람이 이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두 번째 임기의 말까지 AIDS 위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슬프게도 게이나 퀴어라는 것은 AIDS와 동일시되었다. 그러므로 조지 마이클과 같은 팝스타에게는 “외치고 자랑스럽다(out and proud)”라는 여지는 없었다. 그는 음악 산업의 옷장 안에 갇혔다.

그러나 “Freedom! ’90″에서 그는 가죽 재킷으로 엉덩이를 흔들어대던 이전의 이미지에 불을 댕겼다. 명백하게 밝힌 것은 아니지만 조지 마이클은 이 히트곡의 가사를 통해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난 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로 했어. / 네가 알아야 할 무언가가 있어. / 내가 너에게 그것을 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 / 내 속 깊은 곳에 뭔가가 있어. / 내가 되어야 할 그 어떤 존재가 있어.” 조지 마이클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 자신이 되기로 결정했다.

1998년 마이클은 비버리힐스의 공원에서 잠복경찰과의 “추잡한” 행동으로 체포되었을 때 공식적으로 아웃팅 당했지만, 이 가수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1998년 비디오 “Outside”에서 이 사건을 비웃었다. 그가 이성애자가 아니란 사실이 크리스털처럼 투명해지자 조지는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몰랐을까 하는 등의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진실한 당신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보상은 늘 없다. 그 뒤로 몇 년 동안 그는 마약, 체포, 건강 문제와 같은 보도에 질질 끌려 다녔다.

조지 마이클은 그의 성적기호로 인해 배척되었고 그를 무자비하게 스토킹하는 미디어에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2005년 이 가수는 게이와 이성애자들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미디어에서의 게이는 이성애자를 편안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자동적으로 이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내가 더럽고 음란한 f****r 이고 당신은 그 사실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감당을 못해요.”

분명히 조지 마이클이 없이 샘 스미쓰, Adam Lambert, 또는 오늘날의 다른 많은 공개적으로 퀴어인 아티스트가 있을 수 없다. 샘 스미쓰는 언젠가 마이클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나는 조지 마이클에 대한 기이하고도 시들지 않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을 왜 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이유다.”

나는 사람들이 미묘한 차이가 있는 조지 마이클의 유산에 대해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단순한 팝스타가 아니었다. 그는 쏘울풀했고 아티스트들이 제조업화된 음악 산업에서 진정한 자아로의 길을 닦는 정체성을 교차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Goodbye, George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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