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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st All Odds(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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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stallodds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Virgin, Atlantic.. Licensed under Wikipedia.

주제가에 이만큼 파묻힌 영화가 있을까?80년대대중의 감성을날카롭게 자극했던 유명감독 Taylor Hackford에(사관과 신사의 그 감독)Jeff Bridges, Rachel Ward, James Woods 등 유명배우들이 멕시코 환상적인 경치의 휴양지며유적지 돌아가며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Against All Odds 라는 표현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오로지 Phill Collins 의 애절한 발라드로만 기억될 뿐이다.

이유를 되짚어 보자면 첫째, 노래가 너무 명곡이었다(갑자기 “따봉”을 외치던 그 광고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따봉”은 기억하는데 그 쥬스의 브랜드는 기억 못하는 그런 철저히 실패한 광고). 둘째, 느와르란 장르는 80년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당대의 스타 Jeff Bridges, Rachel Ward가 전라의 연기를 펼치는가 하면 걸출한 느와르 배우 Richard Widmark가 측면지원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80년대의 왠지 들뜬 분위기는 안티히어로와 팜므파탈이 매력을 발산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관객들은 차라리 같은 해 나온 코믹한 형사물 Beverly Hills Cop의 손을 들어주었다. 셋째, 결정적으로 영화가 수렴되는 맛이 없고 산만하다. 남미의 환상적인 피난처에서의 두 연인의 뼈를 불사르는 사랑에서 느닷없이 LA로 건너뛰더니 주인공 Terry는 악당들을 한방에 보낼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쥐고 있음에도 별 이유도 없이 악당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만다.

그럼 영화가 재미없었냐 하면 ‘정말’ 재미있다. 적당한 긴장감, 멋지게 펼쳐지는 경치, 유치하지만 그래서 볼만한 로맨스(또는 육욕), 적당히 건드려지는 물질문명의 야욕 등 느와르의 구성요소를 모두 갖추었고 나름 잘 믹스도 시켰다. 문제는 이러한 통속성이 잘 어우러져 화학적으로 융합이 되어야 하는데 조금씩 삐끗 하다는 느낌이 이질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아무려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Rachel Ward의 뒤로 흐르는 주제가가 이 모든 것을 보상해준다. 몇 안 되는 80년대 느와르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으신 분에게 추천. 물론 ‘제대로’ 된 80년대 느와르를 원하시면 Body Heat 를 추천.

The Paradine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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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dine Case poster” by http://www.movieposterdb.com/poster/c99fe1c8. Licensed under Wikipedia.

1947년 데이빗오셀즈닉과 알프레드히치콕이 함께 손잡고 만든 법정스릴러물이다. 스릴러적인 반전보다는 남편 살해 혐의를 뒤집어 쓴 미모의 미망인, 이 미망인을 사랑하게 된 그녀의 변호사, 이를 알아채고 갈등하는 변호사의 아내, 그리고 미망인이 사랑하는 남편의 비서라는 사각구도의 심리적 갈등을 법정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드라마적 성격이 강한작품이다.이런 탓인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성적은 저조했다고 한다. 법정이라는 공간 내에서 펼쳐지는 팽팽한 갈등의 탁월한 시각화가 눈요깃거리다.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것이 취미인 알프레드히치콕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1946년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 뜨내기 건달, 학대받는 아내, 둘의 공모, 이를 모르는 그리스인 남편, 느와르가 갖추어야할 기본문법을 착실히 갖춰놓고 진행되는 이 영화는 성행위의 적나라한 묘사로 인해 개봉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런 구설수 때문에 국내에서는 ‘우편 배달원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는 개봉제목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고 바꾸는 해프닝도 있었다(대체 우편 배달원과 포스트맨의 차이가 뭐람).  하지만 영화는 노골적인 성애영화라거나 – 물론 웬만한 성애영화보다도 성적묘사가 탁월하다 – 전통적인 느와르하고는 약간 다른 노선을 걷는다. 영화는 둘의 범죄행위가 과연 죽음으로 단죄 받을 만큼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살짝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범죄의 요소만 빼고 본다면 서로 다른 성격의 상처받은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적 성격도 강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극의 진행은 이 건달과 남편 살해범이라는 두 커플이 해피엔딩을 맺을지도 모르는 희망을 관객에게 넌지시 암시한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서 일어나는 어이없는 사고는 ‘마치 인간은 미워하지 못해도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라고 관객을 희롱하는 것만 같다. 잭니콜슨의 애절한 눈물연기가 인상적인 라스트신이었다.

El Topo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은유와 상징으로 인해 소위 지적인 관객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도입부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El Topo(우리말로 두더지를 의미하며 감독 Alejandro Jodorowsky가 배역을 맡았다)는 벌거숭이 아들과 함께 정처 없이 떠돌다가 한 마을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한 여인 Mara를 괴롭히고 있는 무법자들을 처치한다. 뱀과 같은 유혹의 혀를 가진 그 여인의 꾐에 빠진 El Topo 는 아들을 수도사에게 맡긴 채 사막에서 여러 무림의 고수들과 대결을 하여 최고의 무림 고수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마침내 모든 무림 고수들을 처단하지만 홀연히 나타난 또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진 Mara 는 그를 배신한다.

총상을 입은 El Topo 는 수년이 흐른 어느 날 동굴 속의 현자로 부활하고 그 동굴 속에는 영화 Freaks 의 흉측한 장애자들을 연상시키는 주민들로 가득 차있었다. 난쟁이 여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오랜 기간의 근친상간으로 말미암은 것이었고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되었다는 것이다. El Topo 는 수도승의 복장을 한 채 마을주민들을 구원할 터널을 파기로 결심한다(그래서 주인공 이름이 ‘두더지’일지도 모르겠다). 마을로 가서 터널을 팔 돈을 버는 과정에서 El Topo 와 난쟁이 여인은 마을이 도덕적으로 파탄했음을 알게 된다.

난쟁이 여인은 이런 마을로 다시 돌아와야 되는지 의문을 품지만 El Topo 는 공명심에 이 충고를 무시한다. 우연히 그 마을에는 El Topo 가 버린 아들이 신부가 되어 돌아와 그들을 만나게 되고 복수심에 불탄 아들은 El Topo 가 터널을 다 판 그 순간 죽일 것을 결심한다. 터널을 다 판 후 아들은 도덕적 갈등으로 복수를 포기한다. 동굴 속의 주민들이 마을로 내려갔지만 마을 주민들은 혐오감을 나타내며 그들을 살육한다. 분노에 찬 El Topo 는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라버린다.

종잡을 수 없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종횡무진 하는 이 작품에 담긴 기독교적, 불교적 메타포는 관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작품은 그러한 메타포에 앞서 – 감독이 의도하였던 하지 않았던지 간에 – 이른바 ‘남성성’의 어리석음을 각인시키고 있다. 영화 초반부 El Topo는 여인의 꾐에 빠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영화 후반 이번에는 여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헌신과 희생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마저 실패하자 자기 성질 못 이기고 자살을 택한다. 결국 어느 길이든 순리를 역류한 그의 삶은 파탄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택하자면 그는 Let It Be 의 자세를 택하여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John Lennon 이 이 영화의 팬으로 판권을 샀다고 한다).

1971년 당시로서는 생경한 심야영화로 개봉되어 컬트팬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었던 작품으로 영화산업의 볼모지인 멕시코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난 걸작이다. Alejandro Jodorowsky는 이후 그래픽노블의 대가 뫼비우스와 함께 종교적 SF ‘잉칼’을 만드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Kiss Me Deadly

장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누벨바그 감독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바 있는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1955년작. 느와르 필름의 최전성기에 만들어진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미키 스필레인 원작의 인기 탐정 마이크 해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미스테리한 미녀의 죽음, 구사일생한 터프가이 탐정,그 터프가이를 배신하는 또다른 미스테리의 여인,그리고 그의 섹시한 여비서 등 거칠고 을씨년스러운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안티히어로에 팜므파탈이 동시에 등장하니 뭐 더 할말이 없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하였다는 크리스티나라는 여인을 태워준 탐정 마이크 해머는 그녀를 뒤따르던 악당들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난후 ‘나를 기억해 달라’는 크리스티나의 마지막 말을 힌트삼아 사건을 역추적 한다. 이 와중에 정체모를 악당들은 그를 을러대고 주위 사람들은 하나둘씩 죽어간다. 서로 죽고 죽이는 와중에 욕심 많은 여인의 호기심이 빚은 비극이 끔찍하면서도 자못 희극적이다.

p.s. 1) 이 영화의 일어제목은 어이없게도 『키스로 죽여줘キッスで殺せ!』 라고 한다.
2) 한편 한 영화사가에 따르면 미국개봉 판과 유럽개봉 판의 마지막 장면이 다르다고 한다.

Match Point

내가 우디 알렌에게 기대하는 두 가지 것, 즉 냉소적 유머와 뉴욕이 이 영화에는 없다. 그리고 영국식 악센트와 비극적인 사랑이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이틀에 걸쳐 감상했다. 전반부는 흔해 빠진 삼각관계의 연애담이다. 성공을 갈망하는 야심찬 젊은이, 그의 매력에 반한 부잣집 아가씨, 바람둥이인 그녀의 오빠, 그리고 야심찬 젊은이의 뜨거운 눈길을 견뎌야 하는 미국에서 온 금발의 ‘그녀의 오빠’의 애인. 후반부를 봐야 하는 이틀째 이대로 영화가 계속 상투적으로 간다면 우디 알렌의 영화라 할지라도 끝까지 참고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영화를 감상하였다. 결국 예상대로 빗나간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침내 부잣집 아가씨 클로이와의 결혼하여 성공의 사다리를 타게 된 야심찬 젊은이 크리스는 사랑(love)과 욕망(lust)은 다른 것이라며 이미 남이 되어버린 ‘그녀의 오빠의 전(前)애인’ 노라 라이스와 육체적 유희에 빠져든다. 제어할 수 없는 심성의 소유자인 노라(그녀의 오빠의 애인)[스칼렛 요한슨]의 독기어린 이혼요구에 크리스는 드디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생각을 하게된다. 결말은 이야기해줄 수 없지만 만약 내 예상대로 결말이 나지 않았더라면 대단히 실망스러웠을 뻔했다. 역시 우디 알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냉소’가 있어야 ‘우디 알렌 표 영화’라는 스탬프를 찍을 수 있을터이니 말이다. 테니스공과 반지, 그리고 마약중독자의 커넥션이 이어지는 순간. 그러나 반드시 지적해야 할 한 장면. 그가 나 빗속을 뛰쳐나간 노라와 이를 뒤쫓아 간 크리스가 보리밭에서 격정에 휩싸여 섹스를 하는 그 장면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둘 다 진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락한 장소도 아닌 비오는 보리밭에서 비에 축축이 젖었을 그 청바지를 정성과 시간을 들여 벗고도 여전히 정욕이 남아 있을 만큼 그렇게 그 둘이 뜨거웠을까 하는 의문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Miami Vice

실제로 TV 시리즈물을 감독했던 Michael Mann 이 감독하였으며 공간적 배경도 마이애미라는 점에서, 그리고 제목 역시 TV 시리즈의 제목과 같다는 점에서 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형사 시리즈물 Miami Vice 의 극장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사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당시 인기를 얻었던 Jan Hammer의 시리즈 주제곡을 차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점에서는 Mission Impossible 과 비교된다), 반드시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TV 시리즈물 인기의 핵심이었던 Don Johnson 의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목만 같은 별개의 영화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당시 시리즈물이 지향했던 화려한 80년대 패션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다(역시나 주인공들이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스포츠카와 멋진 수트를 입고 다니긴 하지만). 오히려 하드보일드적인 영상은 세기말의 우울한 마이애미를 그리고 있다. 극의 서술도 남성 스타일의 정통 형사극을 지향하고 있어 러쎌웨폰과 같은 슬랩스틱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문제는 극의 긴장감을 고취시켜줄 정교한 드라마인데 이 부분은 그리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신선하다거나 짜임새 있는 맛은 없다. 소니 역의 콜린파렐은 개인적인 취향인지 모르겠으나 미스캐스팅이라 생각되지만 결정적인 미스캐스팅은 공리다. 너무 투박하여 머리를 아프게 하는 영어발음에 자신의 정체성을 못 찾아 극중 내내 헤매는 모습은 극으로의 몰입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장애물이다. 정 아시아계 팜므파탈을 고르고 싶었으면 차라리 장만옥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다만 Jamie Fox 는 그나마 새로운 흑인 액션영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 않나 싶다.

Body Heat

어렸을 적 이 영화의 포스터가 동네에 붙여져 있었을 때 당연히 ‘야한’ 영화일거라고 생각했다. 어설픈 영어솜씨라도 Body 라는 단어와 Heat 라는 단어의 뜻은 대충 알았고 ‘몸이 뜨겁다는’ 것이 무엇을 은유하는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터의 스틸도 제법 야했다.

사실 야한 영화이긴 하다. 스릴러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끈적끈적한 날씨와 치명적인 매력의 캐서린터너가 결합되면서 묘한 에로틱한 분위기가 영화 전편에 걸쳐 뿜어나기 때문이다.

영화의 플롯은 스릴러 고전 Double Indemnity 와 흡사하다. 팜므파탈 캐릭터의 여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지적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일부러 접근하여 음모를 꾸민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찌 보면 Double Indemnity 의 오마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로렌스캐스단은 무슨 배포로 Double Indemnity 를 리메이크 혹은 오마쥬 하였을까? 자칫 반전이 묘미인 스릴러를 어설피 베끼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텐데 말이다. 그는 자신의 감독으로서의 능력과 캐서린터너의 능력을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믿음은 성공적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우리는 비록 이미 Double Indemnity 를 감상한 상태였다 하더라도 아무런 저항감이나 지루함 없이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그만큼 박진감 넘치고 그만큼 묘한 Body Heat 만의 매력이 있다. 그 당시 막 연기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윌리엄허트와 캐서린터너는 이 영화에서 보여준 호연으로 인해 스타로 발돋움하였다.

Double Indemnity

영화의 제목인 이중배상은 보험계약상의 조항으로 보험가입자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두 배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조항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러한 조항이 있는지 또는 있다가 폐지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제목으로 사용되었을 만큼 이 영화에서는 주요한 키포인트로 자리잡고 있다.

레이몬드챈들러의 소설을 원작으로 명장 빌리와일더가 감독한 이 영화는 한 보험대리인과 아름답지만 야심만만한 여인과의 만남이 어떻게 비극적으로 사태를 몰고 가는지에 대한 집요한 고찰을 통해 이러한 장르의 영화들의 전형을 만든 걸작이다.

백만장자 남편을 죽여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여인 필리스디트릭슨과 그에 협조하는 보험대리인 월터네프의 살인은 완전범죄로 결말내어지는 듯하나 영리한 보험조사관이자 월터의 상관인 바튼이 개입되기 시작하자 그들의 사건은 꼬이기 시작하고 두 공모자는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80년대초 로랜스캐스단에 의해 만들어진 바디히트 역시 이와 매우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스릴러다. 두 영화를 비교하여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악녀 역으로는 아무래도 바디히트의 캐더린터너 쪽이 더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