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Order가 아직 Joy Division이라는 너무나 두꺼운 껍질을 벗고 뉴오더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작품이다. 1983년 내놓은 그들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 앨범의 노래를 통해 뉴오더는 이언 커티스의 안타까운 운명을 뒤로 하고 살아 남은 자들의 삶은 지속된다고 여겼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는 점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트랙인 Age of Consent는 다소 생뚱맞게 연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못 하는 어린 누군가를 노래하는데 아마도 이언 커티스 및 조이디비전과의 결별을 선언하지 못하는 나머지 멤버들의 심정을 담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두 번째 트랙에서는 We All Stand에서는 계속해서 “Life goes on and on”이라고 자조하듯 뇌까린다. 그런데 세 번째 트랙에서는 드디어 뉴오더 표 그루브가 등장한다. 가사도 “When a new life turns towards you And the night becomes the day”라고 분위기가 한층 밝아진다.
네 번째 트렉 5 8 6 에서는 일단 의미를 알 수 없는 노래 제목에서부터 일렉트로닉팝으로의 지향점을 밝힌 후 한참 이어지는 전주를 통해 80년대 신스팝, 더 나아가 하우스뮤직의 프론티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Yes, I heard you calling”이라는 가사에서 “너”는 아마도 새로 도래할 신스팝의 80년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노래 후반부에서는 “Can you hear me deep inside?”이라는 가사가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너”는 이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일 뉴오더의 음악을 수용할 팬들을 가리킨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뉴오더의 새로운 음악을 들어달라고, 들을 자세가 되었느냐고 묻는 것이다. 이 노래에서는 낯익은 베이스 신디사이저음이 들린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도 변화가 두려웠는지 B면 첫 트랙, 즉 다섯 번째 트랙 Your Silent Face에서는 다시 예의 조이디비전 풍의 우울뽕짝의 포스트펑크로 회귀한다. 가사도 다시 수세적으로 바뀌었다. 이어 등장하는 여섯 번째 트랙 Ultraviolence. 제목부터 그렇거니와 다시 본격적으로 일렉트로닉팝 분위기다. 거기에 인더스트리얼 냄새까지 풍긴다. 종을 잡을 수 없는 트랙 순서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종잡을 수 없음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새로운 질서로 거듭나기 위한 정반합의 몸부림인 것이다.
일곱 번째 트랙 Ecstacy는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다시피 밴드 멤버들의 마약 경험에 대한 음악이다. 들어봐도 딱 알겠다. 지니어스에서는 그들이 1980~1981 기간 동안 뉴욕 클럽에서 경험했던 마약의 추억을 노래로 담은 것이라고 하는데, 어디서 경험했어도 분명히 경험했을 뽕맞은 음악이다. 그리고 이 분위기가 향후 80년대 하우스 뮤직의 원형적인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인스트루멘탈이다.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트랙의 제목은 흥미롭게도 Leave Me Alone이다. 80년대를 꿰뚫을, 그리고 90년대까지 이어질 사회적 맥락이랄지 그런 것에 무관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세대의 심정을 적절하게 반영한 제목이 아닐까? 가사도 그렇고 연주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조이디비전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마지막 트랙에서 다시 조이디비전의 음습한 히키코모리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뭐 그런대로 좋다. 그게 또 이 ‘조이디비전+뉴오더’의 매력이니까.
By Picture scanned by Ian Dunster from original UK Cassette album and converted to LP size., Fair use, Link
아침에 Naked Eyes의 Burning Bridges를 듣고 있다.1 단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내고 팝의 역사에 작은 흔적만을 남긴 밴드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아티스트다. 특히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버트 배커랙(Burt Bacharach)의 오리지널을 리메이크한 Always Something There to Remind Me는 내 청춘의 한 시절, 사랑에 가슴 아파하던 시절에 큰 위안이 되었던 곡이었다. 곡을 처음 접한 것은 당시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었던 팝 평론가가 녹음해 준 컴필레이션 카세트테이프를 통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절절한 가사와 버트 배커랙 곡 특유의 드라마틱한 멜로디가 잘 조합된 노래 자체도 훌륭하지만, 이 곡을 신스팝으로 리메이크할 생각을 했다는 것도 Naked Eyes 만의 천재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이 곡 이외에도 Voices in My Head, When the Lights Go Out, Promises, Promises와 같이 캐치하고 댄서블한 멋진 신스팝 곡들이 많다. 단명하기에는 너무나 멋진 밴드였다.
아서 코난 도일의 명작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 ‘빨강머리 연맹’을 읽으며 감상하고 있다 ↩
어린 시절부터 가수가 되고 싶어했던 후에 밴드의 보컬을 맡게 될 타마키 코지(玉置浩二)는, 중학교에 진학했을 무렵에 밴드 활동에 흥미를 느껴 타케자와 유타카(武沢豊)와 함께 「인베이더(インベーダー)」라고 하는 밴드를 결성한다. 이후 당시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던 동급생이 교통 교본에 실려 있던 도로 표지를 보고 「安全地帯」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밴드의 이름을 안젠치타이로 바꿨다. 그들은 1972년에는 ‘야마하 인기곡 콘테스트(ヤマハポピュラーソングコンテスト)’에 출전해 우수상을 수상한다.
그 후 멤버는 아사히카와시 나가야마에 있는 폐옥을 빌려, 스스로 목재를 구입하는 등 해 침실이 있는 스튜디오로 개조, 거기서의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그 스튜디오는 “음악 농부가 되어 여러 가지로 음악을 경작해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뮤지컬파머프로덕션(Musical Farmer Production; MFP)“이라고 명명되었다. 이 와중에 여러 시도 끝에 그들의 데모테잎이 키티 레코드(Kitty Records) 사장에게 전해졌고 이후 데뷔 앨범의 출시로 이어졌다.
안젠치타이의 메이저 데뷔 앨범 레코딩은 1982년 8월 18일부터 11월 20일에 걸쳐, KRS 스튜디오 및 폴리돌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작사는 거의 모두 마츠오 유키오(松尾由紀夫), 작곡은 모두 타마키 코지, 프로듀서는 호시카츠(星勝)가 담당하였다. 특히 호시카츠는 The Mops라는 사이키델릭록 밴드의 일원이었고 이노우에 요스이(井上陽水)나 RC석세션(RCサクセション)의 앨범에 참여했던 실력파 인물이다.
앨범은 1983년 1월 25일 키티 레코드를 통해 출시되었다. 타마키 코지는 후에 그의 자서전에서 “사운드 전체 음색의 선택 방법이나 어레인지는, 당시 세계의 락 음악계를 석권하고 있던 뉴웨이브의 영향이 느껴진다.”라고 회고하고 있다.1 앨범의 첫 트랙 Las Vegas Typhoon은 기타의 디스토션이 많이 들어간 전주로 시작되는 전형적인 락넘버지만, 코지의 회고처럼 나머지 곡들은 키보드의 음색이 많이 가미된 뉴웨이브 느낌도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A면의 마지막 트랙 Silent Scene이 멜로디나 편곡들이 맘에 들어서 앨범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한적한 칵테일바에서 흘러나올 듯한 적당히 로맨틱한 멜로디, 소프라노 색소폰의 80년대스러운 연주, 복합적인 연주의 오버레이 등 이후 안젠치타이가 추구했던 엔카(演歌)의 뽕끼가 섞인 80년대 뉴락의 지향점을 제시한 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다시 기타락 스타일의 I’ll Be On My Way로 복귀하는 배치도 마음에 든다.
SIDE 1
1. 「ラスベガス・タイフーン」(LAS VEGAS TYPHOON)
2. 「ラン・オブ・ラック」(RUN OF LUCK)
3. 「エイジ」(AGE)
4. 「イリュージョン」(ILLUSION)
5. 「サイレント・シーン」(SILENT SCENE) SIDE 2
6. 「オン・マイ・ウェイ」(I’LL BE ON MY WAY)
7. 「ビッグ・ジョーク」(BIG JOKE)
8. 「リターン・トゥ・フォーエバー」(RETURN TO FOREVER)
9. 「冬CITY-1」
10. 「エンドレス」(ENDLESS)
11. 「アイ・ニード・ユー」(I NEED YOU)
타마키 스스로 The Police의 영향이 강했다고 회고하는데 굳이 따지면 Big Joke가 폴리스의 스타일과 닮았다. ↩
걸작 Remain In Light을 내놓은 뒤 Talking Heads는 한동안 꿀맛같은 휴지기를 가졌다. 이 시기에 데이빗번은 브라이언이노와 함께 1981년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라는 제목의 앨범을 내놓았다. 데이빗 개인적으로는 The Catherine Wheel이라는 앨범 작업도 했다. 우연히도 나머지 멤버들도 같은 해 자신들만의 창작물을 냈다. 즉, 크리스프란츠는 티나웨이머스와 함께 Tom Tom Club이라는 밴드를 조직하여 셀프타이틀 앨범과 Under the Boardwalk를(1982년) 내놓았는데, 첫 번째 앨범에서 발매된 싱글 Genius Of Love가 크게 인기를 얻었다. 제리해리 역시 The Red and the Black이라는 솔로 앨범을 내놓았다.
물론 밴드 활동도 이어지고 있었다. 1982년 밴드의 라이브 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가 발매되었다. 스튜디오앨범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감도 없지 않지만, 이 앨범은 그 나름대로의 그간의 밴드의 음악적 성과가 차곡차곡 담겨진 뛰어난 라이브앨범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밴드는 “확장한 토킹헤즈”와 함께 일본 및 유럽을 포함한 순회공연도 – 라이브 앨범을 홍보하는 라이브! – 가졌다.1 이렇듯 밴드 멤버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만족스러운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기간이 이후의 활동에 있어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각자의 사이드프로젝트를 통해 멤버들이 점점 더 흑인음악의 다양한 면을 그들의 음악에 녹여내는 목표를 추구하였고 많은 성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밴드의 리듬 섹션끼리 모여 만든 탐탐클럽의 펑키(funky) 댄스팝 사운드가 대중에게 먹혔다는 점이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2 이러한 사실은 바로 1983년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한 Speaking in Tongues가 백인 락과 흑인 댄스팝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3
악상의 작업은 롱아일랜드에 있는 크리스의 아파트 등에서 진행되었고, 몇몇 기본 트랙은 뉴욕의 Blank Tapes에서 녹음했다. 본격적인 앨범의 녹음은 바하마에서 이루어졌다. 이노는 이제 프로듀싱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4 그렇게 되면서 프로듀서의 이름은 Talking Heads가 되었다. “확장한 토킹헤즈” 멤버중 상당수는 이번에는 앨범 작업에서부터 참여했다. Bernie Worrell은 Girlfriend is Better에서 신디사이저를 맡았고, Nona Hendryx과 Dolette McDonald는 유사(類似) 가스펠곡과도 같은 Slippery People에서 쏘울풀한 보컬을 맡아주었다. Steve Scales는 Burning Down the House 등에서 퍼커션을 연주했다.
특징적인 세션 뮤지션은 Wally Badarou와 Alex Weir다. Level 42와 함께 활동했던 왈리는 이 앨범에서 세 곡의 신디사이저 연주를 맡아서 앨범의 그루브를 책임졌다.5 R&B 밴드 The Brothers Johnson의 멤버였던 알렉스는 Adrian Belew 대신에6 기타를 연주했다. 알렉스는 어이없게도 라이브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의 홍보를 위한 라이브 투어에서부터 참여했는데,7 더 많은 흑인 뮤지션의 참여는 더 많은 흑인 음악이 가미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결과로 Rolling Stone의 David Fricke은 “예술적인 백인 팝음악과 딥 블랙 펑크(funk)를 구분하는 얇은 선을 마침내 무너뜨린 앨범”이라고 극찬했다. 물론 이미 그 얇은 선은 탐탐클럽이 부순 상황이었고 이 앨범은 그 후속작이다.
By Derived from a scan of the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record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in either case., Fair use, Link 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앨범 아트
앨범 아트는 데비잇의 작품이다. 이전 작품의 커버 아트에 비해 많이 밝은 톤이라는 느낌인데 당시 밴드는 (토킹헤즈의 팬이기도 했던) 장미쉘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나 데이빗 호크니( David Hockney)와 같은 팝아트 예술가들이 주최하고 동석했던 파티에 가는 등 당대의 화가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데이빗도 이런 작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이 앨범의 한정판의 디자인도 못지않게 밝은 톤인데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 창작 과정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는데 원래는 라우첸버그의 디자인이 정식 버전이 될 예정이었으나 너무 복잡한 작품 구성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한정판이 되었다. 그래서 데이빗이 임시로 로스엔젤레스의 선셋마퀴스(Sunset Marquis) 호텔에 있던 의자를 넘어뜨려 찍은 사진을 조합한 커버를 만들게 된 것이다.8
이 앨범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리뷰를 써줄 정도로 상업적인 인기를 얻었다. 밴드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만 백만장 이상의 카피가 팔리며 RIAA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특히 카셋테잎의 판매가 두드러졌는데 십대 사이에서의 소니의 워크맨 열풍이 이러한 트렌드를 가속화하였다. 레코드사는 테잎에는 오리지널보다 더 긴 리믹스 곡을 수록할 수 있었는데 이 앨범에서도 Moon Rocks를 포함한 다섯 곡이 테잎 버전이 LP 버전보다 길다. 이런 변주를 통해 회사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더 많은 수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9
대세가 된 MTV의 존재도 앨범과 싱글의 인기에 한몫했다. 도시 외곽의 평범한 이층집의 벽과 도로에 데이빗의 얼굴이 줌인된 영상이 비춰지고, 전부 하얀 색의 의상을 입은 밴드 멤버들이10 아이, 뚱뚱한 남자, 늙은 여자 등으로 교체가 되는, 토킹헤즈 특유의 수수께끼 같은 Burning Down the House11의 뮤직비디오가 MTV에서도 인기를 얻으면서 밴드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요컨대 스피킹인텅은 워크맨과 MTV라는 시대적 조류에 잘 적응한 한 아트락 밴드의 성공담이라고 할 만하다.
이 앨범이 개인적으로 보다 각별한 이유 하나는 내게 토킹헤즈라는 존재를 처음 알려준 노래가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자 밴드의 가장 큰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Burning Down the House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노래가 좋아서 시내 레코드 가게에 가서 그들의 앨범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사들고 온 앨범은 알고 보니 밴드의 후속작 Little Creatures였다. 토킹헤즈의 앨범중 국내에 유일하게 라이센스로 나온 앨범은 그 앨범뿐이었고 가게 점원은 그 앨범을 내게 안겨준 것이었다.
이렇게 나를 토킹헤즈의 파리지옥에 빠져들게 만든 곡이 수록된 앨범, 그게 바로 음악적 “방언(Speaking in Tongues)”이 터져 나오는 이 앨범이다. 이 앨범이 특히 맘에 드는 점은 흑인 음악으로의 지향점을 보다 명확히 하면서도 전작 Remain In Light을 의식하여 보다 더 아방가르드한 방향으로 진행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팝적인 요소를 한층 가미하여 본인들도 의식하지 않았을 상업성과 음악성의 얇은 선 사이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음악을 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앨범의 홍보를 위한 공연은 1984년 조나단 드미(Jonathan Demme)가 감독하여 만든 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연 기록물로 간주되는 Stop Making Sense로 이어졌으며, 같은 이름의 라이브 앨범이 탄생하는 등 이어지는 토킹헤즈의 창작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재밌는 점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토킹헤즈와 The Smiths가 스튜디오 앨범 수에서 2배의 차이(각각 8개와 4개)가 나는데, 딱 이 앨범이 토킹헤즈의 다섯 번째 앨범이라는 점이다. 즉, 스미쓰는 이 마수걸이를 넘지 못했고 토킹헤즈는 어렵사리 그 작업을 했기에 스미쓰의 2배의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제리도 이에 대해 같은 의견이었는데 그는 “탐탐클럽이 성공했기 때문에 토킹헤즈의 경쟁적인 정신을 다시 촉발할 수 있고 우리는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396쪽) ↩
펑키함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했다. 한 예로 데이빗은 Making Flippy Floppy라는 곡의 가사를 쓰면서 flippy floppy가 무슨 의미인지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만 그 발음이 펑키(funky)했기 때문에 가사로 채택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41쪽) ↩
크리스에 따르면 이노는 이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는데 예를 들면 그는 미국까지 콩코드를 타고 올 텐데 그 비용을 밴드가 부담하라고 했다고 한다.(Remain In Love, 290p) ↩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왈리 역시 보렐처럼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은 연주자였고 Level 42 이외에도 그레이스존스의 Warm Leatherette에서 곡을 쓰고 연주하는 등의 실력파 뮤지션이었다. ↩
토킹헤즈의 전기 This Must Be The Place의 서술(234쪽)에 의하면 블루가 더 이상 밴드와 일하지 않게 된 계기는 그가 탐탐클럽과 같이 작업했는데 크리스와 티나가 제대로 정산을 해주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애드리안은 크리스와 티나를 만나면 언제나처럼 즐겁게 인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같은 책 239쪽) 한편 크리스는 애드리안이 Robert Fripp 과 작업하기 위해 그들과 합류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Remain In Love, 291p) ↩
1982년 데뷔 앨범 Garlands, 두 개의 EP,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를 지원하는 유럽 투어에 이어 Cocteau Twins는 1983년 중반에 베이시스트이자 창립 멤버인 Will Heggie와 결별했고, Robin Guthrie와 Elizabeth Fraser는 어떻게 계속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들은 듀오로 새로운 노래를 쓰고 새로운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돌아갔다. 앨범의 대부분은 짧은 기간 동안 스튜디오에서 작곡되었으며, Guthrie는 이 과정을 “실제로 계획된 것은 거의 없었고, 노래가 매우 자연스럽게 모였습니다.”라고 설명했다.[위키피디아]
사실 콕토트윈스(Cocteau Twins)의 음악이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지만, 웬지 일부러 찾아듣고 싶지는 않게 되는 스타일이다. 포스트펑크 씬에서도 조금 더 외골수인 듯한 그들의 음악이 부담스러워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대표음반 Head Over Heels를 듣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난해하다’기보다는 ‘접근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차가운 톤의 음악 감상에 찐인 칵테일바에서 이 음반을 전곡으로 듣는다면 조금 더 접근하기 쉬울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보컬과 연주가 공기 중에 섞이는 듯한 재밌는 경험을 선사하는 앨범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특별히 가사의 전달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보컬도 악기의 한 종류로 여겨진다. Siouxsie and the Banshees 가 리듬 파트를 좀 줄이고 노래를 마이크에서 조금 더 떨어져서 부르면 콕토트윈스랑 비슷할 것 같다. 어쨌든 스코틀랜드는 한때 참 좋은 뮤지션을 많이 배출했다.
인더스트리얼 계열로 유명한 미니스트리의 1983년 데뷔 앨범 With Sympathy다. 예상과 달리 뿅뿅신쓰팝이다. 이 앨범이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망한 후에 3년 동안 절치부심한 끝에 인더스트리얼로 장르를 바꾼 후 성공 가도를 걷게 된다. 하지만 후기의 노래보다 이 음반의 노래가 맘에 든다. 약간 카바레 음악의 느낌도 난다. 미니스트리 팬에게까지 버림받은 비운의 데뷔 앨범.
Punch the Clock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엘비스코스텔로가 1983년 8월 출시한 그의 여덟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앨범 제목 Punch the Clock은 직장에서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거나 퇴근하며 타임카드를 찍는다는 의미의 관용적 표현으로, 앨범의 세 번째 트랙 The Greatest Thing에서 가사로 등장하는 문구다.
“Punch the clock and in time you’ll get pulled apart”
장르적으로는 이전의 앨범들인 Armed Forces (1979)나 Get Happy!! (1980)에서 선보였던 단선적인 뉴웨이브에 R&B와 Soul등 – 예를 들면 앨범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Clive Langer와 함께 작곡하여 Chet Baker의 솔로 트럼펫 연주가 가미된 Shipbuilding과 같은 곡들 – 다양한 장르를 섞는 등 음악적으로 보다 풍부한 표현력을 선보이고 있다. 두 번째 트랙 Everyday I Write the Book은 그의 노래 중에서 처음으로 미국 차트 40위 안에 랭크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곡은 박력 있고 단선적인 뉴웨이브 사운드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TKO (Boxing Day)다. 이 곡에서는 관악기 연주들이 매력적인데 연주자들이 Dexys Midnight Runners와 함께 작업했다고 하고 과연 그들의 노래가 연상되기도 한다.
음악적으로도 높은 성취를 이룬 앨범이고 가사 적으로도 여러 곡에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녹아들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떤 비평가는 인간성이 “경제적 계약 관계로 줄어들었다(reduced to an economic transaction)”와 같은 가사는 80년대 당시 영미의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노믹스를 비판하는 가사라고 여기기도 했다. Pills And Soap에서는 “You think your country needs you but you know it never will”라는 다소 무정부주의적이기까지 한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Murmur는 미국의 칼리지락 밴드 R.E.M.이 1983년 내놓은 그들의 데뷔앨범이다. 이 앨범은 싱어 Michael Stipe의 암호와도 같은 가사(예를 들어 Talk About The Passion은 집 없는 이들에 관한 노래라고는 하는데 가사만 읽어봐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기타 Peter Buck의 쟁글거리는 연주 스타일, 베이스 Mike Mills의 멜로딕한 베이스라인 등 R.E.M.을 특징짓는 모든 요소를 골고루 보여준 작품이다. 밴드는 이 앨범을 1982년 12월부터 녹음하기 시작했다. 프로듀서로는 Stephen Hague를 기용하였는데 그의 기술적 완벽성에 대한 강조는 밴드의 성격과는 그리 맞지 않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그는 “Catapult” 트랙에서 드러머 Bill Berry의 기를 꺾기도 했고 보스턴의 싱크로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그 트랙을 완성했다. 심지어 그는 밴드의 허락 없이 이 트랙에 키보드 파트를 보태기도 했다.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Pet Shop Boys, New Order 등과 일한 경력의 프로듀서였던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겠으나, 어쨌든 이에 화가 난 밴드는 이전에 밴드와 함께 일했던 보다 어쿠스틱 친화적인 프로듀서 Mitch Easter와 함께 작업하게 해달라고 레이블인 I.R.S. 에 요청했고 레이블은 시험적으로 함께 일하는 것을 허락했다.
밴드는 북캘리포니아로 가서 Easter와 다른 프로듀싱 파트너 Don Dixon과 함께 “Pilgrimage”를 녹음했다. 이 트랙을 들어본 레이블은 그들과 함께 녹음하는 것을 허락했다. 밴드는 1983년 1월 북캘리포니아에 있는 리플렉션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이전의 순회공연에서 부른 많은 곡들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Hague와의 나쁜 추억 때문에 밴드는 락뮤직의 클리쉐와도 같은 기타 솔로랄지 당시 인기 있었던 신디싸이저의 사용을 거부했다. Easter와 Dixon은 많은 부분에서 불간섭 정책을 취했으며 다만 보컬이 수준 이하로 여겨질 때에만 재녹음을 지시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 Murmur는 미국 얼터너티브락의 보다 조용하고 내면적인 부분을 반영하는 앨범으로 특징지을 수 있게 되었다. 발매된 해에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36위까지 올랐다. 첫 싱글 “Radio Free Europe”의 재녹음 버전은 싱글 차트 78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전체적인 앨범 판매량은 비평적 찬사에 못 미쳐 약 20만 장 가량 팔렸다. 앨범은 1991년에 가서야 50만 장이 팔려 골드 앨범이 될 수 있었다.
트랙리스트
Side one
1.”Radio Free Europe” – 4:06
2.”Pilgrimage” – 4:30
3.”Laughing” – 3:57
4.”Talk About the Passion” – 3:23
5.”Moral Kiosk” – 3:31
6.”Perfect Circle” – 3:29
Side two
7.”Catapult” – 3:55
8.”Sitting Still” – 3:17
9.”9-9″ – 3:03
10.”Shaking Through” – 4:30
11.”We Walk” – 3:02
12.”West of the Fields” (Berry, Buck, Mills, Stipe, and Neil Bogan) – 3:17
1983년 7월 27일 Madonna의 데뷔 앨범 Madonna가 Sire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뉴욕의 다운타운에서 싱어로서의 경력을 쌓고 있던 Madonna는 Sire 레코드사의 사장 Seymour Stein을 만나며 음악경력에 있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Everybody”를 들은 Stein은 그녀와 계약을 체결했고 앨범 발매를 계획하게 된다. Reggie Lucas, John “Jellybean” Benitez, Mark Kamins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82년 5월에서 1983년 4월까지 뉴욕에 있는 시그마사운드 스튜디오에서 녹음작업을 진행했다. 싱글 “Everybody”와 “Burning Up”이 진행되는 동안 Madonna는 펑크/쏘울 그룹 Mtume의 기타리스트 Reggie Lucas과 함께 일했다. 하지만 둘 간의 음악에 대한 관점 차이가 커지고 Lucas는 돌연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다. 그래서 Madonna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클럽 DJ이자 프로듀서인 “Jellybean” Benitez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그녀를 도와 믹싱과 레코딩을 마무리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업비트의 디스코 풍의 곡들이 대세를 이루었다. 당시로서는 첨단기술인 린드럼머쉰, 무그 베이스 등이 쓰였고 Madonna는 밝고 소녀스러운 목소리로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해 노래했다. 앨범이 발매됐지만 반응이 즉각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1983년 9월 Holiday가 싱글로 발매되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 곡은 빌보드 핫100 차트 16위까지, R&B 차트 25위까지 올랐다. “Borderline” (#10 Pop)과 “Lucky Star” (#4 Pop)도 큰 인기를 끌었다.
1983년 6월 25일 “Flashdance –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이 빌보드 탑200 차트 1위에 올라 2주간 머물렀다. Adrian Lyne이 감독하고 Jennifer Beals와 Michael Nouri가 주연을 맡은 영화 Flashdance의 사운드트랙으로 제작되었다. 프로 발레 무용수를 꿈꾸는 밤무대의 무용수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의 이 사운드트랙에는 Irene Cara, Michael Sembello, Donna Summer, Laura Branigan, Joe Esposito, Kim Carnes, Karen Kamon, Shandi Sinnamon, Cycle V, Helen St. John가 가수로 참여하였다. 이 앨범에서는 “Flashdance… What A Feeling”와 “Maniac”이 빌보드 핫100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또한 Joe Esposito가 부른 “Lady, Lady, Lady”가 86위까지 오른다. 배급사인 Polygram 레코드사는 처음에 수요를 과소평가하여 불과 6만장의 음반만을 제작했지만 이 물량은 영화의 개봉일인 1983년 4월 15일부터 이틀 만에 다 팔렸다. 앨범의 인기가 너무 높아 심지어 당대의 히트 앨범 Michael Jackson의 “Thriller”를 차트 수위에서 잠시 끌어내리기도 했다. 결국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2천만 장 이상 팔렸다. 그래미상 시상식에서는 2개의 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Flashdance… What A Feeling”이 ‘베스트 오리지널 송’ 부문을 수상했다.
1. “Flashdance… What a Feeling”
2. “He’s a Dream”
3. “Love Theme from Flashdance”
4. “Manhunt”
5. “Lady, Lady, Lady”
6. “Imagination”
7. “Romeo”
8. “Seduce Me Tonight”
9. “I’ll Be Here Where the Heart Is”
10. “Mani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