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atherine Wh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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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ire Records., Fair use, Link

캐서린휠(The Catherine Wheel)은 데이빗 번(David Byrne)이 1981년 사이어 레코드(Sire Records)에서 발매한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번이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의 동명 댄스 프로젝트를 위해 작곡한 음악이 수록되어 있다. 캐서린 휠은 1981년 9월 22일 뉴욕시 윈터가든 극장(Winter Garden Theatre)에서 초연되었다 .

우선 타프의 약력에 대해 살펴보자면 1980년, 그의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트와일라 타프 댄스(Twyla Tharp Dance)가 When We Were Very Young을 공연하며 처음 선보였다. 1981년 The Catherine Wheel이 공연됐다. Wheel은 PBS에서 방영되었고, 사운드트랙은 LP로 발매되었다. 1985년 그가 연출한 Singin’ in the Rain은 거쉰 극장에서 367회 공연되었다.

타프가 번을 만나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그는 ‘왜 무용이 락앤롤만큼 유명해질 수 없나’라는 의문을 가진 이였다. 1 그래서 그는 여러 락 아티스트의 음악에 춤을 췄고 마침내 누군가 다음 공연에 쓰일 음악의 담당으로 토킹헤즈를 – 궁극적으로는 번 – 추천했다. 번은 당시 토니 바실의 도움을 받아 무대 위에서의 안무에 관심이 많을 때였다. 둘의 협업은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Twyla Tharp - 1981.jpg
By Ken Duncan – ebay, Public Domain, Link
1981년 당시의 트와일라 타프

앨범을 살펴보자면 Big Blue Plymouth, My Big Hands, Big Business, What a Day That Was는 Talking Heads가 1983년에 라이브로 공연한 곡이다. 마지막 두 곡은 영화 Stop Making Sense에 수록되었다. 번은 솔로 투어에서도 이 트랙 중 여러 개를 공연했는데, 그 중 DVD Live at Union Chapel과 Live from Austin, TX에 What a Day That Was가 수록되었다.

앨범 트랙은 연주곡과 보컬이 들어간 곡이 혼재되어 있다. 같은 해 발매된My Life in the Bush of Ghosts에서와 같이 – My는 1981년 2월에 이 앨범은 같은 해 11월에 내놓았다 – 이 앨범에서도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같이 곡 작업을 하였다. 다만 전곡은 아닌 것 같다. 존 체르노프(John Chernoff)라는 퍼커션 주자도 작곡에 일부 기여하였다.

음악은 전체적으로 현대무용에 어울릴만한 그런 분위기의 연주곡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 My Life도 그렇지만 이 앨범 역시 토킹헤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곡들이 많다는 점에서 번의 폭 넓고 유연한 음악적 능력을 엿볼 수 있다. 번은 독특한 음색을 위해 클라비넷(clavinet)이나 공(Gong)과 같은 흔치 않은 악기 등을 연주에 사용하였다.

LP

Side one

  1. His Wife Refused – 4:26
  2. Two Soldiers (Music: Byrne, Brian Eno) – 4:45
  3. The Red House – 3:17
  4. My Big Hands (Fall Through the Cracks) – 2:45
  5. Big Business (Lyrics: Byrne; Music: Byrne, John Chernoff) – 5:16

Side two

  1. Eggs in a Briar Patch – 3:31
  2. Poison – 2:38
  3. Cloud Chamber – 2:42
  4. What a Day That Was – 5:32
  5. Big Blue Plymouth (Eyes Wide Open) – 4:45
  6. Light Bath – 1:08

Cassette/CD

  1. Light Bath – 1:09
  2. His Wife Refused – 4:31
  3. Ade (Music: Byrne, Eno) – 3:22
  4. Walking (Music: Byrne, Chernoff) – 0:52
  5. Two Soldiers (Music: Byrne, Eno) – 3:31
  6. Under the Mountain – 0:53
  7. Dinosaur – 2:36
  8. The Red House – 3:17
  9. Wheezing – 3:12
  10. Eggs in a Briar Patch – 3:31
  11. Poison – 2:31
  12. Cloud Chamber – 2:50
  13. Black Flag – 2:29
  14. My Big Hands (Fall Through the Cracks) – 2:46
  15. Combat (Music: Byrne, Chernoff) – 2:45
  16. Leg Bells (Lyrics: Byrne; Music: Byrne, Chernoff) – 2:40
  17. The Blue Flame – 3:25
  18. Big Business (Lyrics: Byrne; Music: Byrne, Chernoff) – 5:06
  19. Dense Beasts – 3:11
  20. Five Golden Sections – 2:53
  21. What a Day That Was – 5:30
  22. Big Blue Plymouth (Eyes Wide Open) – 4:43
  23. Light Bath – 1:10

  1. This Must Be the Place, 194p

Lateral / Luminal

Lateral (albu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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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Eno 할아버지가 신보를 내셨다. 워낙에 다작이신 분인지라 디스코그래피를 쭉 훑어보려는 시도는 이제 일종의 만용이 된 듯한데 어쨌든 올해 6월 6일에 나온 따끈한 신보라서 들어봤다. 이노는 Beatie Wolfe라는 컨셉트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Luminal과 Lateral을 내놓았다. 첫 번째 작품은 아직 안 들어봤고, Lateral만 오늘 들었다. 곡은 사실상 Big Empty Country라는 곡 단 한 곡. 바이닐에서는 앞면과 뒷면을 Day 버전과 Night 버전으로 나눠놓긴 했다. 말 그대로 그냥 단순한 멜로디가 64분 동안 약간의 변주와 함께 반복된다. 마크 로스코나 또는 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작가 전시회의 배경음악으로 깔면 딱 어울릴 작품. 비평가들의 평가는 매우 좋다. Luminal까지 들어봐야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Luminal (albu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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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문단은 어제 쓴 글이고 오늘은 출근길에 같이 발매한 – 올해 6월 6일 동시 발매했으니, 사실상의 더블앨범? – Luminal을 감상했다. 1시간이 넘게 단순한 멜로디를 반복하는 Lateral과 달리 이 작품은 보다 대중 친화적이다. 즉, 멜로디가 각각의 트랙마다 다른 3~4분 길이의 드림팝 장르의 앨범이다. “앨범은 다양한 문화권의 언어에서 유래한 감정 단어들을 모티브로 삼아 구성되었다“라고 하는데 일단은 가사를 주의 깊게 살펴보지는 않아서 모르겠고 보다 마음 편한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음색과 연주가 특징적인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앨범을 먼저 듣느냐에 따라 두 작품이 주는 감정이 조금은 다를 듯한데, 이노와 비티도 그런 점을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비평가들의 평가는 아주 호의적이다.

Talking Heads / Remain in Light [1980]

Album cover containing four portraits covered by red blocks of colour, captioned "TALKING HEADS" (with inverted "A"s) at the top and (much smaller) "REMAIN IN LIGHT" at the bott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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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월, Talking Heads 멤버들은 1979년 앨범 Fear of Music을 홍보하기 위한 투어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와 개인적인 관심사를 추구하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Byrne은 Brian Eno와 함께 앨범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를 작업했다. Jerry Harrison은 뉴욕에 있는 Sigma Sound Studios에서 나중에 본인의 초청으로 토킹헤즈의 다음 앨범에서 백보컬을 담당할 소울 가수 Nona Hendryx의 앨범을 제작했다. Chris Frantz와 Tina Weymouth는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보냈다.

1980년 초에 멤버는 재회했다. Chris의 회고록 260쪽에 따르면 이렇게 다시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티나가 제안한 잼 연주 덕분이라고 한다. 어쨌든  밴드 멤버들은 지금까지 작곡이 대체로 Byrne의 책임이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백킹 밴드라는 개념에 지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Byrne에 따르면, 그들이 목표로 삼은 이상은 “상호 협력을 위해 자존심을 희생하는 것”이었다. Byrne은 또한 뉴욕에서 느끼고 있던 “심리적 편집증과 개인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Chris의 회고록 261쪽에 따르면 바하마로 가기 전 미리 작업한 곡은 없었으며 즉흥 연주로 만들 계획이었다고 한다. 또한 멤버들이 크레딧에 오르는 것으로 구두합의했다고 한다. 그룹은 Byrne의 가사에 맞춰 음악을 쓰는 대신 Fear of Music 트랙 “I Zimbra”를 기반으로 확장된 악기의 잼연주를 시도했다. 그렇게 밴드는 바하마1에서 즉흥 연주를 녹음하고, 가장 좋은 부분을 분리하고, 반복적으로 연주하고, 그것을 (라자냐처럼) 겹쳐 녹음하는 법을 익히면서 Remain in Light를 발전시켜나갔다.

Eno는 Byrne보다 3주 후에 바하마에 도착했다. 이전 두 앨범에서 협업한 후 밴드와 다시 작업하는 것을 꺼렸지만 악기 데모 테이프를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2 밴드와 Eno는 개별 부분이 폴리리듬으로 맞물리는 공동의 아프리카 음악 제작 방식을 실험했다. Afrobeat의 창시자로 알려진 나이지리아 음악가 Fela Kuti의 1973년 앨범 Afrodisiac이 밴드와 Eno의 앨범의 원형(原形)이 되었다. Weymouth에 따르면 힙합의 등장으로 밴드는 음악적 풍경이 변화하고 있음을 깨달았다.3

Eno는 Cale과 Byrne을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했고, 그들은 앉아서 레코드를 들었다. 그가 내놓은 앨범 중에는 Fela Kuti의 Afrodisiac이 있었는데, 이는 Remain in Light의 원형(原形)이 되었다. Eno는 “당시 저는 이 음악에 매우 흥분했고 그들도 매우 흥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스릴이 있었습니다.”[출처]

녹음은 1980년 7월과 8월에 바하마의 Compass Point Studios와 뉴욕의 Sigma Sound Studios에서 진행되었다. 가사는 밴드가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시와 캘리포니아에서 만들었다. 세션 음악가로는 기타리스트 Adrian Belew,4 가수 Nona Hendryx, 트럼펫 연주자 Jon Hassell이 참여했다.5 (결국 앨범 뒷면으로 넘어갈) 커버의 아트워크는6 Tina와 Chris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연구원 Walter Bender와 그의 ArcMac 팀(MIT 미디어 랩의 전신)의 도움을 받아 작업했다. 부부는 히말라야 위로 편대를 이루며 날고 있는 붉은 전투기의 콜라주를 만들었는데, 미국 해군 제독이었던 Tina의 아버지 Ralph Weymouth를 기리기 위해 Grumman Avenger 비행기를 예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Album cover containing a drawing of a mountain range and four mostly red warplanes flying in formation. There is green text on the left hand side and a barcode in the top right co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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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Heads와 Eno는 모든 노래를 알파벳순으로 “David Byrne, Brian Eno, Chris Frantz, Jerry Harrison 및 Tina Weymouth”에게 크레딧하는 데 합의했지만, 최종 발매된 앨범에는 “모든 노래는 David Byrne & Brian Eno가 씀(David Byrne, Brian Eno & Jerry Harrison이 쓴 “Houses In Motion”과 “The Overload” 제외)”라고 되어 있었다.7 Frantz, Harrison 및 Weymouth는 크레딧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에디션에서는 모든 밴드 멤버들로 크레딧이 바뀌었다. Frantz는 2009년에 그와 웨이머스는 “크레딧 분쟁으로 인해 매우 화가 났다”고 말했다.8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앨범 Remain in Light9 은 1980년 10월 8일 Sire Records에서 발매되었다. 앨범은 음향 실험, 리듬 혁신, 서로 다른 장르를 응집하여 전체로 통합한 시도였기에 비평가들로부터 폭넓은 찬사를 받았다. 이 앨범은 미국 Billboard 200 앨범 차트에서 19위, 영국 앨범 차트에서 21위를 차지했으며, 싱글 “Once in a Lifetime”과 “Houses in Motion”이 발매됐다.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2017년 의회도서관은 이 앨범을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또는 미적으로 중요한” 앨범으로 간주하여 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비평가 Stephen Thomas Erlewine은 이 앨범을 “아프리카 타악기, 펑크 베이스 및 키보드, 팝송 및 전자 음악의 밀집된 혼합물”이라고 불렀다. 2008년 리뷰에서 Vibe의 숀 페네시(Sean Fennessey)는 “Talking Heads는 아프리카 폴리리듬을 NYC로 가져와서 우아하고 색다른 포스트펑크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정신 분석가 Michael A. Brog는 이 앨범이 록앨범의 형식의 잠재력을 이용하여 “정신병 및 분열증적 경험에 강력하고 당혹스러운 음악적 표현을 공급“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Byrne은 앨범 보도 자료에 참고 문헌과 함께 앨범이 아프리카 신화와 리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내용의 성명을 포함했다. 이 발표에서는 가사의 주요 영감이 John Miller Chernoff의 African Rhythm and African Sensibility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농촌 아프리카 지역 사회의 삶의 음악적 향상을 조사한 서적이다. Chernoff는 1970년 가나로 여행을 가서 토착 타악기를 연구했고 아프리카인들이 드럼 패턴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방법에 대해 썼다.10

Eno는 Talking Heads에게 Remain in Light의 음악이 4인조가 라이브 공연하기에는 너무 밀도가 높다고 조언했다. 밴드는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투어 인원을 9명의 뮤지션으로 확대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Adrian Belew, Parliament-Funkadelic 키보디스트 Bernie Worrell, 베이시스트 Busta “Cherry” Jones, Ashford & Simpson 타악기 연주자 Steven Scales, 백킹 보컬리스트 Dolette MacDonald를 영입했다. 확대된 밴드는 최초로 1980년 8월 23일 온타리오의 Heatwave 페스티벌에서 70,000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했다. 8월 27일, 또한 Wollman Rink에서 8,000명의 관객을 모아 트랙 쇼케이스를 선보이기도 했다.11 12

Radiohead는 Remain in Light가 그들의 2000년 앨범 Kid A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Radiohead 기타리스트 Jonny Greenwood는 루프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Harrison에게 Talking Heads가 대신 반복해서 연주하는 부분을 녹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Greenwood는 “그래서 듣기에 지치지 않는 이유는 같은 음악을 계속 반복해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번 약간씩 다르게 들리죠. 거기에는 교훈이 있습니다.” 2018년 베냉 가수 Angélique Kidjo는 Jeff Bhasker가 프로듀싱하고 Kravenworks 레이블에서 발매한 Remain in Light의 1:1 곡 커버를 발표했다 밴드가 아프리카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앨범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했다.

2022년 해리슨과 벨루는 앨범 40주년을 기념하는 3개의 콘서트 일정을 위해 뭉쳤고, 앨범 전체와 Talking Heads의 여러 곡을 연주했다. 2023년, 그들은 프로젝트를 북미 전체 투어로 확대했고, 벨루가 Talking Heads의 영향을 받은 1980년대 King Crimson의 시기에 활동했던 시절의 자료를 포함했다.

1. Born Under Punches (The Heat Goes On)

“Born Under Punches (The Heat Goes On)”의 샤우팅 창법은 일상에서의 “설교, 소리치기, 횡설수설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히 이 노래는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의 대중의 편집증을 다루고 있다. 번은 존 딘(John Dean)의 워터게이트 증언에서 나온 직설적인 말을 연구하여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려고 했다. 제목에 사용되고 코러스에서 반복되는 “And the Heat Goes On”이라는 표현은 1980년 여름에 이노가 읽은 New York Post 헤드라인에서 힌트를 얻었고, 번은 데뷔 앨범의 트랙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라는 노래 제목을 “Look at the hands of a government man”이라는 가사로 다시 사용했다.

Don’t you miss it? Don’t you miss it?
Some ‘a you people just about missed it!
Last time to make plans
Well, I’m a tumbler
I’m a government man

이 가사에서 “Last time to make plans”은 리처드 닉슨이 탄핵 직전에 갑자기 사임함으로써 그를 정당하게 처벌하려는 행위를 무력화시킨 계획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지금 한국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 ‘자진 사퇴할 수도 있다’라는 설이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상황이 연상되어서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구절이다.

음악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곡은 앨범의 실험적인 시도가 가장 잘 응축되어 있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리뷰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브라이언이노도 이곡에서 밴드와 본인이 했던 실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제가 만족했던 다른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악기를 서로 연결하는 아이디어였습니다. 몇 개의 악기가 복잡한 부분을 연주하는 대신, 많은 악기가 매우 간단한 부분을 연주하고 이 부분들이 서로 어우러져 복잡한 트랙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Born Under Punches 에는 5~6개의 베이스가 있었는데 , 각각이 서로 어울리는 간단한 부분을 연주했습니다.(출처)

2. Crosseyed and Painless

이곡의 작업 당시 번은 곡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작가적 난관(impasse)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래서 크리스는 “너도 알겠지만 랩이라 부르는 새로운 것이 있는데, 넌 꼭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어. 그냥 가사를 랩하면 돼. 이거 들어봐”하며 Byrne에게 Kurtis Blow의 “The Breaks“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서 번은 한번의 시도만에 성공했다.(회고록 264-265쪽) 아래 가사는 “사실”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받지만 이에 대해 계속 회의(懷疑)하는 화자의 완고함이 느껴진다.

I push the facts in front of me
Facts lost
Fa-Facts are never what they seem to be
No-no-thing there
No information left of any kind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Toni Basil이 댄싱팀 The Electric Boogaloos와 함께 만들었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 토킹헤즈의 음악은 다시 한번, 지적인 갈증을 해소해주는 난해한 음악이기 이전에 앞서 댄스음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13

3. The Great Curve

Byrne이 Robert Farris Thompson의 책 African Art in Motion을 읽은 후 사용한 “The world moves on a woman’s hips”라는 가사로 아프리카 테마를 잘 보여준다.

Sometimes the world has a load of questions
Seems like the world knows nothing at all

또한 도입부의 이 가사가 흥미로운데 언젠가 한 유튜브 영상에서 ‘모두가 비정상인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사는 것은 정상적인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본 적이 있다. ‘번이 자폐 스펙트럼장애라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서 토킹헤즈의 음악이 편집증적이 아니었을까’라는 이야기도 많지만,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 여기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많은 질문을 던지는 비정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재밌게도 번은 데뷔 앨범의 “No Compassion”에서도 같은 질문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So many people…have their problems
I’m not interested in their problems

요컨대 이러한 상황은 앞서의 트랙 Crosseyed and Painless에서 “사실”을 계속 강요받는 상황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음악적으로 볼 때 Crosseyed and Painless와 함께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듣는 곡이다. 타악기로 봉고(Bongo)가 쓰였다. 그리고 애드리안 벨루의 기타 간주가 돋보이는 곡. 빠른 속도의 기타 연주와 관악기 연주가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4. Once in a Lifetime

어떻게 보면 이렇게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앨범 속에서 그나마 다소 느긋하게 들을 수 있는 곡. 상업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고 가사 속의 스토리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Nicolas Cage 주연의 The Family Man은 이 곡을 모티브로 해서 시나리오를 썼음에 틀림없다.

And you may ask yourself
“How do I work this?”
And you may ask yourself
“Where is that large automobile?”
And you may tell yourself
“This is not my beautiful house!”
And you may tell yourself
“This is not my beautiful wife!”

그야말로 ‘나는 누구며 여기는 어디인가?’ 하는 상황이다. 이 가사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재밌는 사진이 인터넷에서 밈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Byrne이 NPR에서 이곡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대체로 무의식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반쯤 깨어 있거나 자동 조종 장치로 작동하고 결국 집과 가족과 직장과 다른 모든 것을 가지게 되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킹헤즈의 곡 가사 중에 가장 유명한 가사가 등장한다.

Same as it ever was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번과 토니베실이 같이 감독한 것으로 크레딧에 올라있다.

5. Houses in Motion

이곡은 세션으로 참가한 Jon Hassell의 으스스한 트럼펫 연주가 돋보이는 곡이다.

I’m walking a line
I’m visiting houses-in-motion
I’m walking a line

번은 유난히 건축물이나 도시에 대해 곡을 많이 썼는데

  • Love → Building on Fire
  •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
  • The Big Country
  • Cities
  • Born Under Punches (The Heat Goes On)
  • Burning Down the House
  • (Nothing But) Flowers

등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앨범의 제목을 알다시피 – 비록 웨이머스의 아이디어로 채택된 제목이기는 하지만 –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이다. 그리고 솔로 커리어 시절에는 건물을 악기로 사용하여 “Playing the Building”이라는 인터랙티브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6. Seen and Not Seen

Byrne은 밴드의 나머지 멤버들이 만든 악기 연주에 낭송 스타일의 시를 낭송한다. 이 시는 은유를 통해 대중 문화에서 보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재형성할 만큼 불안한 한 남자와, 이것이 완벽하게 자연스럽다는 의견을 묘사하고 있다. “Gradually his face would change its shape”이라는 가사에서 보듯 앨범의 등장인물들은 계속 모습을 잃어간다(Crosseyed and Painless는 Lost my shape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7. Listening Wind

이 노래는 미국 식민지 개척자들을 폭격하는 외국 테러리스트 Mojique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에 대해 Byrn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이상 라이브로 공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미국이 ​​보편적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합니다. 저는 수년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많은 미국인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들은 우리를 사랑하고, 그저 질투할 뿐이야. 그들은 그저 맥도날드를 원할 뿐이야.’”

8. The Overload

이곡은 Talking Heads가 노래를 Joy Division의 스타일로 만들려 했던 시도다 . 문제는 멤버중 중 누구도 Joy Division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 그냥 그들에 대해 읽은 바에 따라 그 분위기대로 노래를 만들고 연주한 것이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Sci-fi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14 가사는 마치 불교의 영겁을 노래하는 듯한 분위기다.

A frequent returning
And leaving unnoticed
A condition of mercy
A change in the weather
A view to remember
The center is missing
They question how the future lies
In someone’s eyes

  1. 밴드가 도착했을 때에는 옆 스튜디오에서 AC/DC가 Back in Black을 녹음 중이었다고
  2. 이노는 “난 너희들이 가려고 하는 방향이 무척 맘에 들어.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너희 앨범을 프로듀서할 거야.”라고 말하며 엔지니어로 Rhett Davies를 데려왔다.(David Bowman의 책 167쪽)
  3. 맨해튼의 북쪽 할렘에서 등장한 힙합은 서서히 남쪽의 백인 음악의 공간으로 침투하며 협업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작업의 선두주자로는 토킹헤즈와 블론디 등이 있다.
  4. Belew는 “Crosseyed and Painless”, “The Great Curve”, “Listening Wind” 및 “The Overload”가 될 트랙에서 연주했다
  5. Eno는 그에게서 “제4세계 음악”의 비전을 보았다. 하셀은 “커피 색깔의” 미래의 고전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지구의 반은 15세기를 살고 있고 나머지 반은 순수한 블레이드러너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David Bowman의 책 166쪽)
  6. 앨범의 앞면 커버는 네 멤버의 사진에 컴퓨터그래픽 효과를 통해 멤버들의 얼굴에 빨간 칠을 한 Scptt Fisher라는 프로그래머의 작품이다.(David Bowman의 책 177쪽)
  7. 크리스의 회고록 266쪽
  8. 한편으로 Chris의 회고록 263쪽에 따르면 크리스 부부는 레코드사에 청구하지 않은 금액 십만 달러 이상을 이 음반에 썼다고 한다. 그는 특히 이노의 냉대와 이에 대한 번의 침묵에 분노가 컸다.
  9. 작업 초기에 정해진 이름은 Melody Attack이었다. 이노가 후에 어디선가 읽은 책에서 영감을 받아 이 이름을 제안했다고 한다.
  10. 이 책은 번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는 여정에 읽은 책인데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8년 이상을 보내며 어떻게 아프리카의 타악기 연주자가 연주를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지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드럼 연주의 어휘는 언어의 그것 만큼이나 복잡하였다.(David Bowman의 책 173쪽)
  11. Chris의 회고록 272쪽에 따르면 이 공연의 오프닝은 일본의 일렉트로닉팝 밴드 Plastics가 담당했다고 한다
  12. 확장된 토킹헤즈
  13. 우키팝이라는 유튜버가 2024년에 올린 피치포크의 사세 축소에 관한 이 영상을 보면 피치포크의 리뷰를 보고 어떻게 그 유튜버가 토킹헤즈의 음악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는 지를 여담으로 설명하고 있다.
  14. David Bowman의 책 178쪽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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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소개

1977년 4월 24일 토킹헤즈는 라몬즈의 오프닝공연을 위해 유럽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밴드는 많은 인상적인 음악계 거물을 만나지만 그 중에서도 그들의 음악 여정에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인물을 만나게 된다.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이노는 그룹이 5월 14일 코벤트가든의 The Rock Garden에서 가진 공연을 John Cale 등과 함께 관람했다. 이노는 무대 뒤로 찾아가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참고) 이들이 영국에 머무는 동안 Byrne과 Jerry는 이노의 집에 몇 번 찾아가 음악을 듣고, 대화를 나누고, 책들을 읽으면서 친해지게 된다.1

1977년 12월 19일 토킹헤즈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이노는 뉴욕의 8번가 아파트로 거처를 옮겨 자신의 새 앨범 Before and After Science를 위한 노래 King’s Lead Hat을 만들었다. 이 노래 제목은 Talking Heads라는 밴드명의 애너그램이었다. 그는 밴드에게 그들의 다음 앨범을 프로듀스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속사 Sire는 긴장했다. 이노가 Bowie를 위해 만들어 그해 초에 나온 앨범 Low의 작업 시에 많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노를 쓰도록 스테인(사이어 레코드사의 사장 Seymour Stein)을 설득하기 위해 팔을 좀 비틀어야 했어요.” 크리스의 회상이다.2

3월 중순, 밴드는 바하마에 있는 콤파스포인트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을 시작한다. 그들은 이 스튜디오를 이용했던 첫번째 밴드였는데 이후 3개의 TH 앨범과 2개의 Tom Tom Club 앨범, 그리고 Chris가 다른 밴드의 프로듀싱을 위해 사용했다. 3 Chris는 바하마의 스튜디오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데뷔 앨범은 뉴욕의 조그만 녹음실에서 했는데, 이제 햇볕이 따사로운 바하마의 널찍한 스튜디오에서 그들의 우상이었던 브라이언 이노가 프로듀서와 녹음을 하게 된 것이다. 보조 엔지니어였던 현지인 벤지 암브리스터(Benji Armbriester)는 “여유를 가져요. 여기는 바하마고 삶을 서두를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했다.4

수록곡으로 밴드가 이미 오래 전에 그들이 만들어 놓고 공연에서 썼던 곡들을 – 어떤 곡들은 Jerry가 합류하기도 전에 만들어진 – 재가공했다. 이노는 녹음 첫날 첫 앨범과 다른 사운드를 위해 앰비언트룸마이크를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5 는 티나의 베이스 연주에 공명을 좀 불어넣거나, 기타에 레이어를 쌓아 퍼커션처럼 들리게 하거나, 번의 목소리에 소리의 공간을 두어 외계인의 목소리처럼 들리게 하는 등의 효과를 가미했다. 그는 스튜디오에 있는 믹서기 MCI Mixer를 사랑했고 이를 잘 활용했다. “이노는 우리에게 스튜디오를 악기처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제리의 회상이다.6

앨범 제목은 처음에 번의 아이디어로 Tina and the Typing Pool7 이라 불렸다. 여러 의미없는 제안을 거듭하다가 티나가 탄식하며 “그냥 ‘건물들과 음식(Buildings and food)’이라고 부르면 어때?”라고 제안했다. 제리는 “그래 그게 제목이네”라고 답했다.8 앨범 커버는 전작에 비해 더 복잡했는데, 앞면은 밴드의 초기 작품의 사진을 담당하곤 했던 지미데사나(Jimmy De Sana)9의 529개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모은 모자이크 작품이다. 이 사진들은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한 빌딩 옥상에서 찍은 것들이다. 앨범의 뒷면 커버는 NASA와 GE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위해 우주에서 컬러로 찍은 북미 대륙 사진의 모자이크 작품이다.

마침내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은 사이어(Sire) 레코드사를 통해 1978년 7월 14일 발매되었다. 수록곡은 조금 더 춤추기 쉬운 곡들이 주류를 이뤘다. 당초의 사이어 임원들의 우려와 달리 이노가 프로듀서를 맡았음에도 이 앨범은 전 앨범보다 훨씬 뛰어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 More Songs는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29위까지 올랐고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21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당시 크리스와 번이 열렬히 추종하던 Al Green이 1974년 녹음한 원작의 리메이크 싱글 “Take Me to the River”는 밴드의 첫 빌보드싱글차트 탑30위곡이 되었다.

트랙리스트

1. Thank You for Sending Me an Angel

두 번째 앨범의 포문을 여는 신나는 행진곡풍의 곡이다. 여기서 ‘천사’는 누구일까? 밴드 음악의 이정표를 만들어준 브라이언이노일까? 가사를 보면 어린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토킹헤즈는 먼 훗날 같은 소재로 다시 한 번 Stay Up Late를 만든다.

With a little practice, you can walk, you can talk just like me

2. With Our Love

I won’t look
I’ve got other things to do now
I forgot what it was

다시 한 번 Byrne이 주의가 산만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곡? ‘to do now’ 부분에서 번은 ‘야이야이야~’와 같은 추임새를 넣는다. 그러한 부분이 토킹헤즈의 곡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애드립이었다고 생각한다. 곡을 끝낼 때도 그냥 끝내지 않고 뭔가 흐느끼는 풍으로 끝낸다.

3. The Good Thing

번은 이 곡을 중국 음악처럼 들리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익살스러운 중국풍의 멜로디가 느껴지기도 한다. 가사를 보면 마치 경영관리 이론에 대한 행정부적인 반응과 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As we economize, efficiency is multiplied
To the extent I am determined the result is the good thing

이 곡은 절정부에서 티나와 스튜디오 사무실에서 일하던 여성들의 합창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후반부

Watch me work
Watch me work

에서 기타를 후려치면서 끝내는 부분이 매력적인 곡이다.

4. Warning Sign

Warning sign, warning sign
I hear it, but I pay it no mind

번이 마치 마이크를 통해 노래하는 효과가 인상적인 이 곡은 주의를 기울이라고 누군가가 외치는데 역시 주의가 산만한 번은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I move it around a lot, but I don’t care what I remember

5. The Girls Want to Be with the Girls

이곡은 레즈비언에 대한 찬가일까?

Well, there’s just no love
When there’s boys and girls

이 부분에서 약간 그런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대체로 의식의 흐름대로 가사를 만드는 것 같은 가사 작업의 성격상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타 평크 밴드의 마초적 성향과는 확실히 다른 밴드의 성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6. Found a Job

Judy와 Bob이라는 이름의 부부가 TV가 볼게 없다며 직접 쇼를 만든다는 재밌는 설정의 곡이다. 랭킹에 오르기도 하고 스핀오프를 만들까 고민하기도 한다. DIY의 즐거움. 이 곡은 번이 그의 부모를 방문했다가 TV에서 뭘 볼지에 대해 다툰 후에 만들었다고 한다.

Bob never yells about the picture now, he’s having too much fun

7. Artists Only

개인적으로 이곡을 스튜디오앨범이 아닌 라이브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에서 먼저 접했다. 그 앨범에서는 후속곡 Stay Hungry와 절묘하게 이어지는 흥겨움을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에서도 후반부에 긴장감 넘치는 기타와 키보드 연주가 매력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8. I’m Not in Love

1975년 5월에 발매된 유명한 10cc의 노래와 같은 제목이지만 분위기는 완연하게 다르다. 여하튼 1집에서는 Uh-Oh, Love Comes to Town으로 앨범의 포문을 열었던 토킹헤즈가 이번에는 ‘나는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사랑에 빠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사랑을 부정하고 있다.

Take it easy, baby, don’t let your feelings get in the way
I believe someday we’ll live in a world without love

갑자기 존레논의 이매진이 떠오른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없는 세상.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9. Stay hungry

제목에서 대번에 Steve Jobs가 연상되지만, 사실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문구가 유명해진 것은 훨씬 후의 일이고 이 제목은 크리스가 가판대에서 본 한 바디빌딩 잡지에서 본 문장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앞 곡에서는 사랑 자체를 부정하더니 밴드는 다시 사랑을 알리기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배고픈 채로 버텨라’!

I think we can signify our love now
Ooh, girl, you can initiate an impulse of love
Stay hungry, stay hungry, stay hungry

10. Take Me to the River

이 앨범의 최고 히트곡이자 토킹헤즈 통산으로도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노래 중 하나. Al Green오리지널을 커버한 곡으로 1978년 빌보드핫100 차트에 26위까지 올랐다. 이노는 이 커버버전을 원곡의 그루브를 잃지 않으면서도 되도록이면 느리게 연주하라고 주문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10

11. The Big Country

화자는 비행기에서 해안가 지역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상황을 묘사하며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그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어쨌든 토킹헤즈는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아이들이다.

I wouldn’t live there if you paid me
I wouldn’t live like that, no sirree

하지만 2015년 Marc Maron과 가진 인터뷰에서 번은 그에 관한 대중의 이미지에 – 대도시에 사는 속물 – 대한 풍자였고 자신은 소도시에 사는 이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인터뷰 듣기)

  1. David Bowman, This Must Be The Place, Harper Entertainment, 2001, 104p
  2. David Bowman, 같은 책, 116p
  3. 크리스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바하마가 무척 마음에 거처까지 마련했고 그가 프로듀서를 맡은 해피먼데이스의 Yes Please! 작업 등 여러 작업을 그곳에서 하게 된다.(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는데 크리스는 작업 기간 내내 마약에 쩐 멤버들을 찾아 헤매야 했다고 한다)
  4. Chris Frantz, Remain in Love, St Martin’s Press, 2020, 233p
  5. Chris Frantz, 같은 책, 233p
  6. David Bowman, 같은 책, 127-129pp
  7. 위키피디아는 크리스의 회고록을 인용하며 The Good Thing에서 백보컬을 담당한 티나와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 표현을 쓰는데 선후관계가 어떻게 되는 지는 좀 정확하게 체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8. David Bowman, 같은 책, 132p
  9. 그의 작품 감상하기
  10. Chris Frantz, 같은 책, 233-234pp

1981년 오늘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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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오늘(2월 1일) Talking Heads의 데이빗번(David Byrne)과 브라이언이노(Brian Eno)의 협업 앨범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가 발매됐다. 번이 그룹 멤버와의 협업이 아닌 작품으로는 처음 내놓은 결과물로 Remain in Light에 이어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수록곡 Regiment 2006년 리마스터 버전 감상

Brian Eno는 어떻게 80년대를 발명했는가

Brian Eno - TopPop 1974 07.png
By AVROFTA001018016 004 con.png Beeld En Geluid Wiki – Gallerie: Toppop 1974, CC BY-SA 3.0 nl, Link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는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라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기억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앰비언트 뮤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이 장르의 첫번째 앨범으로 널리 알려진 앨범(앰비언트 1: 공항을 위한 음악)을 발매한 것만으로도 역사책에 이름을 올릴 만하다. 하지만 브라이언 이노가 U2, Coldplay,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을 포함한 아티스트를 위해 한 일은 그 자신의 일만큼이나 중요했다.

Roxy Music : 최초의 신스 밴드 중 하나

1970년, 록시 뮤직이 등장했다. 아마도 최초의 글램 록 밴드인 록시 뮤직은 가사, 의상, 자세, 사운드를 사용하여 새로운 아트록을 혼합한 예술학교 아이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의 특징 중 하나는 ” Eno”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진 신스로 소리를 내는 가냘픈 대머리 인물이었다. 첫 번째 앨범 “Re-Make/Re-Model”의 첫번째 곡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는 록 곡에 신스를 사용한 초기 사례다.

그는 나중에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 Roxy Music의 일원으로 입성했지만, Eno는 밴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그 초기 레코드에 뚜렷한 매력을 더했다.

Devo : 신스가 메인스트림에 들어가다

Eno는 오하이오에 있는 New Wave 밴드 Devo의 첫번째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첫번째 앨범을 프로듀싱하는 임무를 맡은 Eno는 “Mongoloid,” “Jocko Homo,” “Uncontrollable Urge”와 같은 바보같은 노래에 신스를 추가하도록 설득했다.

이전에는 펑크록 밴드로 여겨졌지만, 이로 인해 Devo는 80년대를 지배할 장르의 초기 사례 중 하나인 New Wave로 탈바꿈했다.

The Talking Heads : 새로운 질서(The New Order)

브라이언 이노는 멈추지 않고 Talking Heads의 경력에서 중요한 순간에 세 장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성공적인 데뷔를 앞두고 Eno는 가장 실험적인 시기의 프로덕션을 맡았다.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Fear of Music, 그리고 특히 Remain in Light 는 밴드를 미지의 영역으로 밀어붙였고, 마지막에는 서구의 청중에게 생소한 반복적이고, 최면적이고, 겹겹이 쌓인, 아프리카에서 영향을 받은 노래 구조의 노래가 많이 등장했다.

이 덜어낸 것(less-is)이 더 많은 접근 방식은 80년대를 지배할 Depeche Mode, New Order, Pet Shop Boys와 같은 단순화된 신스 중심 밴드를 위한 플로어를 비웠다.

No New York

하지만 모든 행동에는 정반대의 반응이 있다. New Wave의 꼬리에 바로 붙어 있던 것은 No Wave였다. 이 팝적이고 신스 중심의 노래에 의해 날카로움이 사라졌다는 것을 감지한 뉴욕의 예술 아이들은 펑크와 메탈을 받아들여 Sex Pistols의 애국가적 멜로디와 Black Sabbath의 귀에 맴도는 리프를 버렸다. 이런 음악 스타일은 Swans, Sonic Youth, James Chance and the Contortions, Teenage Jesus and the Jerks, Glenn Branca의 초기 레코드의 소음과 악의(malice)의 벽에서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거친 사운드에 정통한 주류 음악가는 Brian Eno 자신뿐이었을까? 최첨단 음악의 팬인 Eno는 몇몇 유명한 No Wave 밴드의 레코드를 큐레이팅하고 제작했다. No New York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장르를 처음 접하게 한 것이다. 그것은 80년대에 포스트 하드코어 메탈이 나아갈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BY CHRISTIAN FLYNN
JANUARY 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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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ain In Light이 만들어지기 직전에 있었던 잼세션에 관한 일화


새로운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른 멤버들을 부추기는 것은 보통 나의 일이었다. 티나는 준비되어 있었다. 제리는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확실히 준비되어 있었다. 데이빗과 브라이언은 별로. 그들은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분명 – 우리는 알 수 없지만 – 샌프란시스코에서 앨범을 만드는 동안에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 내가 데이빗에게 전화했을 때 그는 우리와 새 앨범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뭘 해야 하나? 티나, 제리, 그리고 나는 우리 집에서 즉흥연주를 시작했고 기록을 위해 우리의 소니 붐박스에 모든 것을 녹음했다. [중략] 티나가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브라이언에게 전화해서 “안녕 브라이언. 나 지금 크리스하고 제리와 여기 우리 집에서 잼세션을 하고 있는데 오지 않을래?” 라고 제안했다. [중략] 브라이언과 연주를 몇 개 한 후 방 안에는 좋은 에너지가 넘쳤고 모두는 근사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자 티나는 데이빗에게 전화해서 “안녕 데이빗. 브라이언이 우리랑 연주 중인데 정말 근사해. 어서와!”라고 말했다. 데이빗은 하고 있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한 시간도 안 돼서 기타를 손에 든 채 우리 집으로 왔다. 심리학은 재밌는 거야. 그렇지?[Chris Frantz, Remain In Love, 2020, St. Martin’s Press, p260에서 번역]

David Byrne and Brian Eno to tour with “electric gospel” album

David Byrne and Brian Eno have completed a new album (of “electric gospel”) for released before 2009 and have booked a North American tour on which they’re planning to play at least 40 percent old Talking Heads material. Holy moly, this is as good as life gets!

Byrne told us he’s collaborating with their mutual friend Brian Eno “for the first time in 20 years. Brian had written a lot of music, but needed some words, which I know how to do. What’s it sound like? Electronic gospel. That’s all I’m saying.”

Link, Link to NY Daily News piece
See also:
Byrne/Eno “Bush of Ghosts” tracks re-released under CC
Missing Byrne/Eno track “Qu’ran” appears on blogs
Byrne/Eno’s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 — remix it yourself!
David Byrne’s guide to being a musician in the 21st century

from boingboing.net

거물가수가 말하는 신참음악가가 돈 버는 방법

최근 Wired.com 에서는 미국의 어느 고참 가수의 글이 화제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David Byrne 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영미권의 펑크, 뉴웨이브 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전설적인 펑크락 클럽 CBGB를 통해 데뷔한 이래 펑크/뉴웨이브의 전형이 되어버린 그룹 Talking Heads의 리더이자 프론트맨이었기 때문이다.(한국어 팬페이지 가기)

그런 그가 최근 몇 년 동안 기술혁신과 불법다운로드 등으로 망해간다고 아우성치는 음악 산업계에 일침을 놓는 글을 Wired.com에 올린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이미 기득권인 그이지만 ‘총체적 폭로(total disclosure)’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이 글을 통해 음악 산업계의 감춰진 기득권의 일면을 보여주면서 현재의 기술혁신 등의 상황이 음악가들에게는 오히려 기회임을 말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이 그동안 관련 산업계에서 회자되어온 내용이 많지만 그 산업에 직접적으로 종사하고(?!) 있는 거물급의 인사가 한 말이기에 무게감이 한층 크다. 불법 다운로드, 음악의 거대산업화, 신인의 등용문 등 여러 주제가 많지만 글이 무척 길기에 편집자 마음대로 요약 발췌하였다. 원문의 의도와 다른 내용이 있다면 가차 없이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보기 http://www.wired.com/entertainment/music/magazine/16-01/ff_byrne?currentPage=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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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가 최신앨범을 온라인을 통해서 발표했고 Madonna는 워너브로스에서 콘서트홍보 회사인 라이브네이션으로 망명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음악산업의 형태가 종말을 맡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들이다. 오늘날 비즈니스를 하는데 있어 독보적인 방법은 없다. 적어도 내 계산으로만도 여섯 가지의 방법이 있고 음악가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과거에는 음악은 우리가 듣고 경험하는 무엇이었다. 그것은 순수한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행사였다. 녹음기술이 존재하기 전에는 음악과 사회적 콘텍스트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교회, 술집, 군대 등에서 불리는 음악들은 각기 그 사회적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것을 집으로 가져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음악은 그저 경험이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기술이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녹음을 통해 음악은 생산물이 되고 팔리고 거래되고 재생되었다. 이로서 음악은 경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레코드회사가 음악을 경제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자.

  • 자금조달
  • 상품제조
  • 상품유통
  • 상품홍보
  • 음악가들의 경력과 녹음의 조언 및 가이드
  • 회계정리

이것이 오늘날 상품을 내놓기 위해 시스템이 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레코드, 테잎, 디스크 등이 음악을 실어 날랐다. 그런데 오늘날 이와 똑같은 것들을 실어 나르는 데에 그 서비스의 가치가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면

녹음비용은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 음악가들은 녹음을 위해 레이블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음악가는 직업적인 스튜디오, 엔지니어, 프로듀서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최소자금인 1만5천불을 지불할 돈이 없다. 그러나 이제 앨범은 이메일을 확인하는 노트북으로도 만들 수 있다.1

제조와 유통비용도 제로 수준으로 접근하고 있다. LP나 CD는 기본적으로 드는 제조단가, 수송단가가 있다.(사실 우리는 음악에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 플라스틱에 지불하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을 통한 유통은 거의 공짜다. 이 방법을 통하면 100카피건 100만 카피건 비용 차이가 거의 없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레이블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몇몇 레이블은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통적으로 수행하던 역할이 보다 혁신적인 방법으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Brian Eno[footnote]또 하나의 거물음악가로 Roxy Music의 멤버이기도 하였으며 프로듀서로서 수많은 명반을 제작하였다.[/footnote] 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I Think Music 이라는 인디밴드들의 온라인 네트웍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제작방식에 회의감을 표시했다.

“구조적으로 그들은 너무 크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전적으로 수세적인 위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라고는 음악가에게 큰 금액의 선금 –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밴드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 을 줄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그러나 그게 다다.”라고 Eno는 이야기했다.

여섯 가지 음악유통 모델
현재 음악유통 모델은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모든 것이 기획사에 의해 기획되는 방식이다. Pussycat Dolls, Korn, Robbie Williams 등이 이러한 방식인데 이들은 일종의 브랜드가 된다. 회사는 이들을 이용해 음악, 티셔츠, 팬시상품 등 수많은 관련 상품으로 돈을 번다. 때로는 음악가들도 많은 돈을 벌지만 대부분의 돈은 자본투자가들에게 흘러간다.

2. 전통적이고 표준적인 유통 모델이다. 과거의 Talking Heads 가 이런 식이었는데 레코드 회사가 녹음, 제조, 유통, 홍보를 하고 음악가는 로얄티를 받는다. 이 방식은 레이블이 녹음한 것들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소유한다.

3. 라이센스계약은 표준적인 방식과 비슷하나 이 경우는 음악가가 지적재산권과 마스터레코딩의 소유권을 가진다. 재산권들을 향유할 권리가 레이블에 주어지나 일정기간이 지나면 음악가에게 귀속된다. 만약 음악가들이 기업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된다면 이 방식을 살펴볼만 하다. Arcade Fire가 인디레이블인 Merge와 맺는 관계가 이런 식이다.

4. 이익분배 모델인데 내가 2003년 Lead Us Not Into Temptation를 내놓을 때 Thrill Jockey와 일하면서 사용한 방식이다. 레이블에게 최소한의 선금만 받고 이익은 분배하였다.

5. 음악가가 제조, 유통만 빼놓고 다 하는 방식이다. 기업의 역할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인센티브도 적다. 이 모델에서 음악가는 창의성을 보장받지만 도박이기도 하다. Aimee Mann이 이 방식을 채택했다. 그녀는 “많은 음악가들이 그들이 벌 수 있는 많은 돈들이 소유권과 라이센싱을 포기함으로써 날아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6. 셀프유통모델이다. 자신이 음악을 만들고, 생산하고, 연주하고, 판매한다. CD는 공연이나 웹사이트에서 판다. 홍보는 MySpace 를 이용한다. 음악가는 총체적으로 창의적인 권리를 부여받는다. 실제로는 거리에서 CD를 팔고 라이브를 하는 신참 음악가에게는 의지할 곳 없는 자유, 대단히 추상적인 독립이긴 하다. Radiohead 가 이 DIY 모델을 채택했다. 소비자들은 음악을 다운받고 그들이 지불하고 싶은 가격으로 지불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이들과 같은 유명밴드에게는 상대적으로 위험이 덜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변화의 초석이기도 하다. Radiohead의 매니저 Bryce Edge는

“이 업계는 종말이 다가온 것처럼 반응한다. 그들은 음악을 평가절하시키고 무료배포한 것처럼 말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우리 음악을 평가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는 전혀 다른 의미다.”라고 이야기했다.

자유 VS 실용주의
어떠한 모델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음악가들이 위의 모델들을 혼합하고 적응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음악 산업이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읽은 적이 있는가? 실은 좀 더 많은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대스타들에게는 여전히 그들의 신보를 작업해주고 홍보해줄 전통적인 대규모 기획사를 필요로 하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회사들을 통한 작업도 진행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여하한의 모델은 단일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다. : 우리가 음악으로부터 무엇을 원하는가. 어떻게 음악이 우리를 이끄는 우리 머리와 가슴 속의 대지(大地)로 이끌 것인가. 우리는 음악을 통해 그곳으로의 여행 티켓을 얻을 수 있는가.

  1.  이를 두고 어떤 누리꾼은 원 글의 댓글에 ‘어떻게 메일확인하는 노트북으로 음악을 만드느냐’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난독증이다. 이것은 일종의 비유일 뿐이다.

신스팝(synth pop)의 역사

□ 신디사이저(synthesizer)

이미 1870년대에 몇몇 사람들은 전기적으로 생산되는 음악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950년이 되어서야 보다 진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독일 퀼른에 오직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만 세워진 스튜디오가 있었다. 최초의 신디사이저는 1955년 미국 RCA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초기의 신디사이저는 매우 비싸고 다루기 어려웠다. 1960년대에 진정으로 유용한 신디사이저가 만들어졌다. Don Buchla 와 Bob Moog 가 만든 것들이 그 예이다. Bog Moog 는 신스팝 뮤지션들에 의해 많이 사용된 미니무그(MiniMoog)나 그 밖의 작품과 같은 신디사이저 제작자로 가장 전설적인 인물이다. 1970년대에 신디사이저의 생산은 대규모로 성장하였다.

최초의 신디사이저는 아날로그였다. 모든 사운드는 신디사이저의 버튼이나 바(bar)와 같은 움직이는 컨트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서로, 그리고 컴퓨터와 연결되는 디지털 신디사이저가 만들어졌다. 이것들은 MIDI 라고 불리는 인터페이스를 이용했다. MIDI 는 음질이나 박자 등에 관한 정보를 보낸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의 사운드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운드를 표현하는 숫자들을 보낸다. MIDI 는 이제 대부분의 퍼스널컴퓨터에 있다. 현대 신디사이저를 위한 가장 일상적인 사운드 소스는 샘플링이다. 예로 진짜 사운드의 디지털 녹음. 대부분 그것은 평범한 음악 악기나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에서 추출된다. 때로는 상이한 기술이 섞이기도 한다.

□ 신스팝(synthpop)

1960년대 말 이미 유명한 뮤지션들은 신디사이저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Beach Boys 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음악을 많이 바꾸지는 않았다. 1968년 최초의 신디사이저로만 연주된 레코드가 발매되었는데 Wendy Carlos 의 “Switched On Bach” 가 그것이다. 그것은 Moog 신디사이저로 바흐를 연주한 음악이었다. 독일에서는 Organisation 과 같은 실험적인 밴드가 1968년 조직되었다. 그들은 1970년 Kraftwerk 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 당시 그들은 불협화음이지만 혁신적인 신디사이저 음악을 연주했다. 그들은 1970년대 초반 독일에서 세 개의 앨범을 내놓았다. 그들의 음악은 좀 더 리드미컬해지고 보다 이해하기 쉽게 변해갔다. 1974년 그들은 국제무대의 데뷔작인 “Autobahn”을 내놓았는데 이것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앨범은 신디사이저와 음향효과가 결합된 20분 길이의 카드라이브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런 종류의 음악을 만들었고 이후 일곱 개의 앨범을 내놓는다. 그들은 신스팝의 스타일을 정형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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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ygram Records – Auction Front Back No WatermarkArchives: Front, Back, (No Watermark), Public Domain, Link

1968년 프랑스의 Jean-Michel Jarre 가 역시 일렉트로닉 음악을 시작했다. 예로 그는 오페라를 신디사이저와 결합하였고 이것이 1972년 주목을 받았다. 그의 첫 앨범 “Oxygene”은 1976년 발매되었다. 그는 클래식과 실험음악에 영향 받아 연주음악을 만들었다. 그의 대부분의 앨범은 통상적인 신스팝과 같은 튠을 사용하지 않는다. 1981년 그는 중국에서 공연을 가진 최초의 서방 음악가가 되었다. 1984년 앨범 ”Zoolook”을 녹음했다. 이 앨범에서는 전 세계 30가지 언어가 샘플링으로 사용되었다. 1986년 그는 우주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최초로 녹음하려고 시도한다. 우주비행사이자 색스폰 연주자인 Ron McNair 가 우주선 챌린저를 타고가 우주에서 그와 함께 연주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다. 챌린저가 출발 후에 바로 폭발해버렸고 그의 녹음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Jarre 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백만의 관중 앞에서 장대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열 장 이상의 앨범을 녹음했다. 이밖에 신디사이저를 초기에 많이 다룬 뮤지션으로 Brian Eno, Mike Oldfield, Pink Floyd, Tangerine Dream, Vangelis 등이 있다.

1970년대 말 특히 영국에서 신디사이저를 주된 악기로 쓰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Gary Numan, Ultravox, OMD, Human League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Kraftwerk 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 Depeche Mode 가 결성되었다. 그들은 Vince Clarke 이 밴드를 떠나 Yazoo(미국에서는 Yaz라 불림)를 결성하고 후에 Erasure 를 결성한기 전까지는 1981년의 그들의 힛싱글 “Just Can’t Get Enough” 과 같은 행복하고 천진난만한 신스팝을 선보였다. 이후에는 보다 멜랑콜릭해지고 어두워졌다. 다른 영국 밴드가 1981년 레코드를 내놓았는데 Duran Duran, Eurythmics, Tears For Fears, Thompson Twins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신스팝의 일종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악기도 사용했다. 캐나다에서 Rational Youth 나 스웨덴의 Adolphson-Falk 가 이와 같은 밴드들이었다. 1984년 Howard Jones, Nik Kershaw, 그리고 독일 밴드 Alphaville 과 같은 신스팝 아티스트들이 나타났다. 1980년대의 다른 신스팝 밴드로는 A-ha, Bronski Beat, New Order, Soft Cell, Visage, Yello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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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talking” by CHR!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84년 유로디스코라 불리는 팝음악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한다. 특히 Scotch와 같은 이탈리아 밴드와 Modern Talking 과 같은 독일 밴드가 많았다. 유로디스코는 신디사이저에 기반을 두었기에 신스팝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Pet Shop Boys 의 음악도 유로디스코로 불렸다. 1986년 신스팝의 기반이 약화되었고 이후 오직 신디사이저에 상당 정도 의지하여 만들어진 음악만 신스팝이라 불렸다. 신디사이저는 계속해서 팝음악의 주요한 악기로 자리잡았다. 유로디스코가 영국에 와서 Stock/Aitken/Waterman라는 팀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Kylie Minogue, Rick Astley, Bananarama, Dead Or Alive 와 같은 많은 아티스트를 위해 레코드를 프로듀스했다.  1987년 하우스 뮤직이 영국에 선을 보였다. 이 음악은 본래 시카고에서 출생하였다.(예로 Frankie Knuckles) 하우스는 신디사이저에 기반하여 모노톤과 음향효과가 가미된 댄스음악이었다.

1991년 테크노 음악이 벨지움과 네델란드에 선을 보였다. 이 장르는 본래 1980년대 중반 이후 연주되기 시작한(예로 Derrick May) 디트로이트가 출생지이다. 테크노 역시 신디사이저에 기반을 둔 댄스음악이지만 하우스보다 무겁고 어둡다. 독일에는 U96과 같은 아티스트가 있었다. 1992년 유로디스코가 독일로 돌아온다. 스타일은 좀 더 터프하게 변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프로듀서가 생산한 전형적인 유로디스코 밴드는 흑인 래퍼와 여성 싱어였다. 음악은 신디사이저 멜로디와 래핑, 그리고 심플한 코러스로 구성되었다. 유로디스코는 이제 가끔 ‘댄스’로만 불리울 뿐이었다.

Page, S.P.O.C.K, Sista Mannen Pa Jorden, This Fish Needs A Bike 가 유명한 스웨덴 신스팝 밴드다. Elegant Machinery, Daily Planet, Daybehavior, Encounter, Saft 등이 기타 신스팝 밴드이다. 보다 새로운 스타일의 신스팝 밴드는 미국의 Anything Box, 영국의 Mesh, 독일의 And One 등이 있다. Electronic, Saint Etienne, Kim Wilde 가 신스팝에 가까운 영국 아티스트이다. Melody Club, Kamera, Bobby 등은 신스팝에 가까운 신세대 스웨덴 아티스트이다.

http://www.synt.nu/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