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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vate Lives

만약 공룡을 여러 시대로 나눌 수 있다면 뉴웨이브 밴드들도 그러하다. Private Lives 가 존재했던 시기는 확실히 뉴로맨틱스가 R&B와 모타운 사운드로부터 영감을 얻기 시작했던 80년대 중반에 해당하였다. Tears for Fears, Howard Jones, the Human League 와 같은 영국 아티스트들이 신디사이저에 기반을 둔 그들의 음악에 블루아이드쏘울의 요소들을 도입하는가 하면 Nik Kershaw, Paul Young, the Style Council 같은 이들은 아예 블루아이드쏘울을 전면적으로 차용하였다.

Private Lives 는 80년대 후반 Johnny Hates Jazz, Living in a Box 등과 같은 소피스티팝의 선구자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룹은 거의 잊혀진 그룹이 되었다. 보컬 John Adams 와 키타를 맡은 Morris Michael 이 핵심적인 두 멤버로 자리잡았던 이 밴드는 댄스리듬과 쏘울풀한 감성에 기반을 둔 뉴웨이브 그루브를 바탕으로 사랑과 상실감에 관한 이야기를 노래했다. Fiction Factory의 Kevin Patterson 처럼 Adams 도 깊고 독특한 유럽 스타일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이 목소리는 그룹의 최고 히트곡 “Living in a World (Turned Upside Down)” – 난잡한 애정관계로 인해 괴로워 하고 마침내 자살을 생각하는 한 소녀에 관한 이 노래는 이 밴드가 노래하고자 하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 에서 가장 빛을 발하였다. “Living in a World” 는 전국적인 히트곡은 아니었지만 아름답고 슬픈 신디사이저 멜로디와 Adams 의 호소력있는 보컬로 말미암아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라디오 애청곡이 되었다.

1984년 밴드는 그들의 유일한 LP Prejudice & Pride 를 EMI 를 통해 내놓았다. 이 앨범에는 싱어 Kiki Dee 와 Kajagoogoo 의 베이시스트 Nick Beggs 등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고 그룹은 1986년 해체되었다. Adams 는 Tom Robinson 의 “Nothing Like the Real Thing” 을 프로듀스했다. 앨범의 희귀성과 뛰어난 음악성으로 말미암아 Prejudice & Pride 은 뉴웨이브의 열광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마치 클래식 자동차와 같은 콜렉터스아이템이 되었다.

Private Lives 가 뉴웨이브 뮤직씬에 미친 영향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필리핀이나 일본에서의 그들에 대한 컬트적인 추종은 계속되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4 Prejudice & Pride EMI

Track Listing

1 River to a Sea
2 No Chance You’ll Pay
3 Living in a World Adams
4 Stop
5 God Only Knows
6 Break the Chains
7 Don’t Wanna Cry (Any More)
8 Win (You’ve Got To)
9 Break the Whole Thing Down
10 Prejudice and P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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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장르 설명

다음은 음악전문 도서출판 꾼의 브리티시 모던 록과 Hot Music 1996년 6월의 내용중 일부입니다

1. Ambient

70년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만들어낸 장르로써 90년대 들어 다시 관심을 끌고있다. 거의 명상음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음의 변화가 적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일관 하는데 이런 사운드는 청취자의 취향에의 잠재의식 속의 어두운 일면과 청자들의 청력을 몇시간동안 차지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뮤지션으로는 Brian Eno, Aphex Twin, Orb등이 있다.

2. Arsequake

87년에서 83년의 브로드 바톰드 브레이스(Broad-Bottomed Brace)로 지칭된 그룹들, 즉 The Young Gods, Big Black 이 그 대표적인 부류이다. 극단적인 기계음과 강렬한 비트, 기괴함을 주무기로 하는 헤비 록을 추구한다.

3. Baggy

황량한 인디 현상을 내포하고 있는 음악 부류로서 이펙트 페달과 끊어질 듯 이어지는 노래로 구성되어 있으며 거기에 더하여 드러머의 백 비트가 어우러진다. Shoegazing이 중산층을 겨냥한 음악가라고 한다면 Baggy는 명백히 노동자 계층을 위한 음악 분야이며 동시에 침체된 분야라 할 수 있다. The Stone Roses, Happy Mondays, Charlantans, Blur 등이 이에 속한다.

4. Drip Rock

Stephen ‘Tin Tin’ Duppy, Prefab Sprout, Felt, Aztec Camera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분야로 이 장르의 음악에는 여러가지가 복합되어져 있지만 대체적으로 싱어로 꽉 채운 듯한 음악과 로맨틱스럽게 꾸민 듯한 풍이 얽혀 있는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5. Dub

레게 음악과 트립 합의 중간쯤 된다고 할까? 세상에서 가장 환상에 잘 빠져들게 만들어주는 장르로 살인과 같은 세상의 여러 추악함을 잊게 해준다. 이 분야의 음악이 긍정적으로 적용할 때는 듣는이의 머리 속을 재정리 할 수 있게하지만 부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때는 나태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마약과도 같은 이 음악의 대표 밴드로는 Tortois가 있다.

6. Glam Rock

David Bowie, Marc Bolan 으로 대표되어지는 음악 장르로 기괴한 분장과 화장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으며, 70년대 초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뒤에는 Wizzard, The Sweet, Gary Glitter, The Bay City Rollers등이 활동했는데 이들이 노쇠함에 따라 점점 사그라 들어가고 있다.

7. Indie Rock

펑크 록이 인디 레이블에서 발표되면서 대규모 레코드사나 거창한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은 7인치 레코드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 소규모 레코드 회사들이 인디 록의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인디 록은 어떤 형태로든 메이저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인디 록이라고 할 수 없다. 요즘의 인디 라는 것은 찢어진 청바지와 가죽 옷을 몇년동안 입고 싸구려 맥주를 플라스틱 컵에 마시는 사람들을 말한다. 대표 밴드를 꼽는다는 것이 무의미하나 어떤 잡지에서는 스톤 로지스를 최고로 꼽고 있다.

8. Jungle

계속되는 음악의 발전은 특히 댄스 음악의 분야에서 그 강세가 돋보이는데 레이브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형태인 정글은 BPM 250 이상의 극단적인 빠름과 일정한 포인트음의 딜레이 효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미 외국에서는 중요 장르로 자리집은 만큼 그 파급 속도가 빠른 이 장르에는 Goldie 라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있다.

9. Merseybeat

초기 레코드사의 횡포가 점차 심해지는 가운데, 리버풀은 비틀즈의 성공이후 즉시 여타 밴드들로 꽉 채워졌다. 그 결과 Gerry & The Pacemakers, Billy J.Kramer & The Dakotas 등이 머시비트류로 구분되어졌다. 이 장르는 로큰 롤과 재즈의 한 형태인 스키플(Skiffle), 컨트리적인 하모니가 조화된 장르로서 블루톤스(Bluetones), 라스(Lars), 캐스트(Cast) 등이 이 장르의 인물로 분류된다.

10. New Romantics

60년대 초반 처음으로 시작된 이후 상류층과 같이 되고 싶은 욕망이 패션으로 발달된 장르이다. 그후 Spandau Ballet 가 인기를 끄는동안 영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18세기의 댄디나 공립 학교 학생들처럼 보일 정도로 이 장르의 인기는 대단했다. 깔끔하고 귀족적인 외모와 낭만적인 멜로디, 퇴페적인 분위기로 한 시대를 풍미 했었다. 대표 밴드로는 Abc, Duran Duran, Japan 등이 있다.

11. New Wave

70년대 말 한창 득세하고 있던 펑크는 그 과격함과 무례함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 받기 시작하였고, 세상은 펑크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달리 많이 변했다. 사람들은 좀더 살기 좋아짐에 따라 듣기 좋은 것을 찾기 시작했고 그런 취향에 편승해서 아름답고 편안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들이 등장했다. 이 장르에는 XTC, The Knack 등 우리 귀에 친숙한 밴드들이 많이 들어 있다.

12. Pub Rock

주로 퍼브 록이라는 말은 주로 펑크 록 등장 이전인 70년대 전반에 클럽의 소규모 형태인 퍼브(Pub)를 중심으로 충실한 라이브 활동을 행했던 브리즐린 슈워츠와 독스 디럭스 등을 일컫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음악 장르로서는 과거의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퍼브에서 연주하는 뮤지션이라면 누구라도 퍼브록커이며, 퍼브록은 록에서 리듬 앤 블루스, 컨트리까지의 음악 장르를 불문하고 펼쳐졌다

13. Riot Grrrl

맹렬 여성 붐과 때를 같이한 페미니즘을 한단계 발전시킨 장르이다. 공격적이고 남자들을 능가하는 펑크에 기반을 둔 강력한 음악이 이들의 특징이다.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불안을 대변한 장르로써 음악잡지의 평이나 그 밖의 모든 구속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 음악의 한 사조이다. 대표적인 밴드로는 Hole, Seven Years Bitch, Babes In Toyland 등이 있다.

14. Romo

로모가 로맨틱 모더니즘을 뜻하고 있음을 상기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글램 록과 나르시즘, 뉴 웨이브 등으로 치장하고 싸구려 신서사이저와 값싼 립스틱에 대한 향수 등으로 그 속에 절대성을 내포하고 있다. 짙은 화장과 성을 종잡을 수 없는 외모등은 이들의 커다란 특징이다. 대표 밴드로는 Orlando, Hollywood 등이 있다.

15. Shoegazing

흔히 드림 팝이라고 불리우는 이 장르는 몽롱한 분위기와 퇴페적인 나른함을 특징으로 한다. 노이즈와 멜로디의 결합이라는 말로 설명되는 이 장르는 My Blood Valentine 이라는 대표적인 밴드를 가지고 있다.

16. Synth Pop

그룹 Cars 와 Gary Numan에 의해 쉽게 유명해진 음악 장르로 신디 팝이 뜻하는 바는 즉 OMD를 의미한다고 할 정도로 OMD는 이 장르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전기타자수들처럼 쇠잔해져가고 있는 이 분야는 현재 샘플러의 활동만이 눈에 보인다. 대표적인 밴드로는 Depeche Mode, Yazoo, Human League, Erasure 등이 있다.

17. Techno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하에 원래는 Detroit’s Derrick May, Kevin Saunderson과 Juan Atkins 에 의해서 만들어진 음악이다. 이 장르는 시카고의 하우스 사운드 보다도 더 최면적이며 반복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요즘 거의 모든 전자 음악에 이용되어지고 있는 음악의 분야이다.

18. Trance

엔지니어 혹은 컴퓨터 음악을 하던 이들이 클럽에서 당시 유행하던 터크노 같은 음악보더 좀더 공격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 시초가 되었던 이 장르는 듣는 와중에 사람의 정신을 빼놓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대뵤적인 밴드로는 Chemical Brothers, 808 State 등이 있다.

19. Trip Pop

흔히 브리스톨 사운드로 불리우는 이 장르는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장르이다. 테크노와 엠비언트, 60년대의 블루스, 재즈에 힙합 리듬이 섞인 이 장르는 퇴페적이고 나른한 분위기로 음악 팬들을 사로 잡으며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브리스톨 3총사로 불리우는 Massive Attack, Tricky, Postishead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0. Hardcore Punk

하드코어 펑크의 시초는 77년, 스토이크온 토렌트 결성을 모태로한 디스체야지의 앨범 “Why”부터 였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영국의 하드코어 운동에 가세했고, 이어 익스플롭티드의 앨범 “Troops Of Tomorrow”와 버빙검 출신의 4인조 그룹 G.B.H.의 앨범이 이러한 부류에 편승하였다. 84년 카오스 UK가 앨범 “Short Sharp Shock”를 공개했고, 85년에는 Amebix가 앨범 “Arise!”를 내놓아 하드코어 펑크 흐름을 계승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형성은 점차 메틀 사운드가 가미되면서 구체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86년에는 Conflict가 앨범 “The Ungovemable Force”를 발표하면서 주류를 형성하였고, 87년에는 네이팜 데스가 앨범 “Skam”을, 89년에는 스나이프가 동명 타이틀 앨범을, 88년 Heresy가 “Voice Your Opinion”으로 91년에는 Extreme Noise Terror가 강력한 하드코어 사운드가 깃든 앨범으로 주목 받는다. 그러나 하드코어 펑크는 사운드의 극단적인 요소로 인해 더 이상 자리매김 하지 못한다.

http://community.shinbiro.com/@stage/genre/etc.htm#1

뉴로맨틱스(New Roman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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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Ant – Parkpop 2012” by Michiel1972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뉴로맨틱스는 펑크 무브먼트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영국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다양한 시기의 여러 음악적 성향의 아티스트들이 뉴로맨틱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는데 궁극적으로 특정 싸운드나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한 시대를 표현하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펑크가 영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며 반사회적인 성향을 띄었던 반면 뉴로맨틱스는 자극과 화려한 의상, 그리고 쾌락을 찬미하였다. 이 세대의 주된 선전도구는 비데오였고 두드러진 두발(A Flock of Seagulls ), 하늘거리는 셔츠(Duran Duran, Spandau Ballet), 마스카라를 한 남자들, 키타를 대체한 신써싸이저 들은 이들의 표상이 되었다. 이 경향의 지렛대 역할을 한 이는 1980년에 Classix Nouveaux, Blancmange, Depeche Mode, Soft Cell와 같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담은 괴짜 컴필레이션을 발표한 Steven Pearse였다. Blitz와 같이 런던에 위치한 클럽에서 일군의 뉴로맨틱 밴드들이 활동하였고 이들의 이정표는 ‘미래주의적’인 음악이었다. 셔필드에서 활동하였던 휴먼리그는 뉴로맨틱의 주요한 특징을 규정지워주는 신써싸이저의 활용의 모범을 보였고 Adam And The Ants는 펑크의 연장선상에서 뉴로맨틱스로 나아갔으며, 컬쳐클럽은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 챠트에서 빅히트를 기록함에 따라 메인스트림으로 나아갔다. 데이빗 보위가 뉴로맨티즘의 선구자라면 Japan은 동양에 대한 신비주의로 무장한 뉴로맨티즘의 행동부대였다. 그리고 가장 커다란 성공을 거둔 뉴로맨틱 밴드라면 말할 것도 없이 듀랜듀랜과 스팬도발레였다.

* http://www.pure80spop.co.uk/romantics.htm 를 번역

New Romantics의 기원

댄쓰뮤직이 미국에서 점차 인기를 잃어가고 있을 즈음 영국의 클럽에선 패션과 예술이 조화된 새로운 음악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DJ Steve Strange와 Rusty Egan은 Billy’s라는 디스코클럽에서 ‘David Bowie 중심의 프라이데이 나잇쇼’를 선보이면서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데이빗보위와 락시뮤직의 음악을 틀어댔고 성향이 약간 틀리긴 하지만 Kraftwerk도 틀곤 했다. 그들의 그룹 Visage는 보다 많은 음악을 클럽에서 선보이기 위한 스튜디오 실험밴드였다. 이들은 후에 Covent Garden에 있는 the Blitz club으로 자리를 옮겼다.

언론에서는 Steve Strange를 New Romantics와 동일시하였다. 예술학교 학생과 패션학교 학생들이 그의 주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의 패션은 정성스럽게 분장한 얼굴에서부터 buckskin(노르스름하고 부드러우면서 질긴 사슴[양] 가죽. : 역자주) 바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오래지 않아 이러한 경향이 음악계 전반에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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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dau Ballet in Concert, Liverpool Echo Arena” by Andrew Hurley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Spandau Ballet in Concert, Liverpool Echo Arena.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The Blitz club에서는 Spandau Ballet가 활동하고 있었다. Spandau Ballet는 1979년 가을 New Romantics의 음악적 중심에 서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결성되었다. ‘펑크에 대한하는 뉴로맨틱스(The New Romantics rebelled against Punk)’는 이 시대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을 점령하였다. 펑크와는 대조적으로 New Romantics는 정중하였으며, 패션에 매우 신경을 썼다. Spandau Ballet의 음악은 씬써싸이저에 기초를 둔 댄쓰팝었으며 그들의 수려한 외모는 그들이 영국과 미국에서 스매싱히트를 기록하는데 일조하였다. To Cut a Long Story Short와 Freeze 는 미국 댄쓰챠트에서 히트를 쳤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최고의 히트곡은 낮게 읊조리는 쏘울넘버 True 였다.

Visage는 곧 New Romantic의 supergroup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Ultravox의 멤버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영국과 미국에서 Tar라는 곡들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많은 수퍼그룹이 그렇듯이 그들은 계속되는 내분속에 결국 1983년에 해체하고 만다.

New Romantic movement는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1984년을 끝으로 영향력은 급격히 감소했다. 그러나 패션이 음악만큼이나 중요했던 런던뮤직씬에서 탄생한 Depeche Mode와 Duran Duran 가 새로운 상속자가 되었다.

New Romantics 와 패션

1980년대의 뉴로맨티시즘은 무엇인가?

뉴로맨티시즘(New Romanticism)은 1980년대 초기 런던의 나이트클럽에서 제조된 사조이다. 펑크(Punk)의 반(反)패션의 무정부주의적인 어법과 달리 몸단장에 보다 관심을 가졌던 창조적인 군상들로 이루어진 이 그룹 내에서의 활동가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하곤 했다.

뉴로맨틱스는 사실적인 혹은 공상적인 테마와 헐리우드의 화려함을 차용하여 자신들의 외모를 꾸몄다. 현란하고, 칼라풀하고, 드라마틱한 외모를 위해 역사적 시기와 연관된 주름장식과 관능적인 옷감을 사용하였다. 펑크족과 대비되어 이들은 매력적이고, 사치스럽고, 아름답고, 나르시즘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였다.

클럽

런던의 나이트클럽은 주요 행사를 주로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열던 포맷을 바꾸기 시작했다. 소호의 클럽 “Gossips”는 화요일에 ”Bowie 의 밤“을 기획하기 시작했고 틈새시장의 기호에 맞춘 스페셜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폭넓진 않지만 소수가 열광하는 취향이 마련되었다.

이전의 펑크 활동가들이 점차 의상에 있어 “화려함(glamour)” 과 “로맨스(romance)”를 취하였고 클럽은 그들이 뽐낼 장소를 제공했다. 이러한 행사가 Blitz 와 St. Moritz 와 같은 클럽에서 주로 행해졌는데 이것이 로맨틱 무브먼트의 시작으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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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and the Ants 1981” by http://coolinthe80s.com/music/adam-and-the-ants/.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New Romanticism“>Fair use via Wikipedia.

Adam and the Ants의 대표적인 New Romantics 패션

뉴로맨틱 의상의 디자이너들

로맨틱 의상의 초기 디자이너들은 Vivienne Westwood, Colin Swift, Stevie Stewart, David Holah 등을 꼽을 수 있다. Westwood 는 잔뜩 멋부린 영국의 섭정기 (영국: 1811-20; 프랑스: 1715-23)의 디자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나중에 자신만의 패션으로 승화시켰다. 그녀는 특히 Adam and The Ants 를 위해 많은 디자인을 창조했다.

뉴로맨틱 팝그룹들

언론매체를 통해 그러한 복장이 빠르게 주류 패션에 전파되어갔다. 그리고 Adam And The Ants, Spandau Ballet, Duran Duran, Visage 와 같은 그룹이 차트 정상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David Bowie, Bryan Ferry, Boy George 등은 모두 그 시대의 영향력있는 싱어들이었다.

모험가 스타일의 해적 룩

전형적인 로맨틱 스타일은 해적 스타일이었다. 잔뜩 주름 잡힌 소매의 해적 셔츠는 값비싼 직물로 제조되었다. 연극적인 느낌이 무늬가 들어간 옷감으로 만든 벨벳재킷은 인기를 얻어 많은 재킷에 카피되었다. 뉴로맨틱의 외모는 개인적이었으며 통일성을 지향하는 펑크와는 달랐다. 뉴로맨틱스는 헐리우드의 1930년대와 1950년대의 판타지를 추구했다(그러한 의미에서 New 라는 단어가 붙었다).

시장 효과

글래모는 1980년의 형식이 되었고 의상은 정제되어가면서 패션가에 속속 등장했다.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http://www.fashion-era.com/new_romantics1.htm 에서 발췌, 번역 및 편집

Human League / D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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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e-cover” by Album cover artwork (c) Virgin Records (UK) 1981.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Dare (album)“>Fair use via Wikipedia.

80년대 개막과 함께 동시에 들어선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보수정권시대의 팝음악은 70년대 음악과 커다란 차이가 나타났다. 때는 커피든 오디오든 버튼만 누르면 되는 전자산업의 만능시대였으며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중요시되는 시대였다. 이른바 릴렉트로닉 전성기였고 비디오 시대였다. 대중음악도 따라서 외적 형태 (일렉트로닉)나 가수의 외모가 노랫말과 음악성보다 우선시되었다. 80년대 초반 전자음악(electronic music)의 유행을 몰고온 것은 영국 그룹들이었다. 거기에 바로 전세대의 펑크(뉴웨이브까지 포함)가 갖는 분노의 메시지는 자취를 감추었고 핑크빛 낭만의 소리로 질퍽했다. 그것이 대처리즘의 보수적 사회분위기에 휩쓸린 당시 영국 청년들의 대체적인 정서였다. 이무렵 뉴로맨틱 운동의 선두주자들은 듀란듀란(Duran Duran), 스팬도 발레(Spandau Ballet), 소프트 셀(Soft Cell),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등이었고 데이비드 보위도 잠시 후 그 물결에 가세했다. 그러나 미국 정복에 가장 먼저 성공하여 뉴로맨틱 팝의 길을 닦은 주인공은 휴먼리그(Human League)라는 그룹이었다.

필 오우키(Phill Oakey)가 이근 6인조 영국 셰필드 출신의 이 그룹은 일렉트로닉팝 시대의 본질적 특성을 함축했다. 우선 그들은 재래식 악기을 모두 치워버렸다. 그룹엔 드러머, 베이스주자, 기타리스트가 없었고 가수를 빼고는 신시사이저 연주자들뿐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전통적인 키보드 신시사이저 대신 롤랜드 마이크로 콤포저 시퀀서를 앉혀 드럼 연주를 컴퓨터로 찍어 만들어냈다 드럼비트가 칼로 잰듯 정확하게 맞아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 음악’이 드디어 선을 보이게 된 것이었다. 필립 오우키는 82년 “뮤지션”지에 “우린 아마추어들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드러머를 고용하지 않고도 리듬을 만들어낼 기술이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자신들 스스로 프로음악인이 아니라고 공언하면서도 그들은 82년 미국 데뷔앨범 <<데어>>(Dare)로 “비틀즈처럼 넘버원 레코드를 갖고 싶어했던”꿈을 실현했다. “롤링스톤”지는 89년 “<<데어>>는 80년대 수준에서 록을 침투하고 있던 일렉트로닉의 공습을 위한 길을 깔아놓았다”고 정리했다. 싱글 <나를 원치 않나요>(Don’t you want me)는 가분히 전미 싱글차트 정상을 점령. 미국시장이 적극적으로 신시사이저 팝을 수용하려들고 있음을 반증했다.

얼핏 신시하이저하면 떠오르는 몰인간성과 차가움을 극복하고, ‘멜로디와 리듬만 좋다면 신시사이저도 통한다’는 사실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미국 청취자들은 당시 <나를 원치않나요>를 들으면서 컨투리 음악으로 착각할 만큼 정겨움을 느꼈다. 사실 그들의 지향점도 ‘팝화된 신시사이저 사운드의 완성’이었다. 휴먼리그는 77년 결성되어 일렉트릭 사운드의 선구자 크라프트베르크의 뒤를 쫓았으나, 80년대 들어 거기에 팝적 색채를 덧칠하게 되었다. <<데어>>앨범의 프로듀서인 마틴 러센트(Martin Rushent)는 “나는 크라프트베르크가 아닌 모든 사람이 접근할수 있는 것, 이른바 팝적인 일렉트로닉 앨범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재미있는 것은 휴먼리그가 자신들을 섹스 피스톨즈와 연계시켰다는 점, 그들은 섹스 피스톨즈가 그랬듯이 연주를 잘하는 것보다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로큰롤 과정을 두고 보더라도 음악인으로서의 자질보다는 마음가짐이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휴먼리그의 이같은 자세는 자신들의 대중적 사운드에는 걸맞지 않았지만 뜻밖의 진지한 입장 개진이었기에 눈길을 끌었다. 그런 만큼, 노래도 의식의 무풍지대가 아닌 날카로운 사회적 시각이 도사리고 있었다. <초>(Seconds)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관한 노래였고 <군중의 소리>(Sound of crowd)는 병든 사회가 빚어낸 편집증을 다루었다. <하느냐 죽느냐>(Do or die) 또한 침묵의 종식에 대한 요구였으며 만만하게 인식된 <나를 원하지 않나요>도 실은 망각풍조가 팽배된 현실에 대한 일침이었다.

“내가 널 만났을 때 넌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었지. 내가 널 데려와 가꾸어 돌려놓았지. 그래서 새사람을 만든거야. 5년이 지난 지금 넌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지. 성공이 네겐 너무 용이했지. 그러나 이렇게 서게해준 사람이 나라는 걸 잊지마. 난 너를 옛날로 되돌릴 수 있어.”

<나를 원하지 않나요> 평범하지 않은 직설적 표현은 그들을 단연 뉴로맨틱 운동그룹진영 가운데 돋보이도록 해 주었다. 휴먼 리그는 음악하는 입장과 노랫말로 자신들이 백퍼센트 대중성 지향그룹만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했다. 그러나 그들의 ‘신시사이저 만능주의’와 ‘컴퓨터음악 시도’는 음악인으로서의 기본적 자질과 관련해 비판의 도마위에 오리기도 했다.그것은 음악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지 음악의 전부여서는 곤란했다. 이 점에서 그들에겐 결코 롱런할 수 없는 그룹이라는 숙명이 드리워져 있는 셈이었다. 그들의 본질은 당연히 많은 반발을 초래할 수 밖에 없었다. 신시사이저와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휴먼’, 즉 인간이라고 그룹명을 내건 점부터 비위가 거슬린 사라들을 위시하여 표출된 반발이었다.(임진모)

Duran Duran / Duran Du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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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an1st”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duranduran.com.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Duran Duran (1981 album)“>Fair use via Wikipedia.

필자가 듀란듀란을 처음 접하게 된것은 한 라디오 프로의 신인소개 코너에서 였다. 아마도 영국 등지에서 새로 부상하는 뉴로맨틱스에 대한 외신 성격으로 방송되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아무튼 그 프로를 통해서 그들의 싱글 Friends of Mine을 접하고는 실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선하다.여하튼 듀란듀란의 등장은 필자뿐 아니라 당시 전세계 모든 틴에이져들에게 충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1차 충격은 그들의 환상적인 미모로부터 온다. “어쩌자고 이렇게 잘 생긴거야.”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잘생긴 이 다섯 젊은이들을 통해서 소녀들은 달콤한 로맨스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소년들은 자신의 여드름오른 못난 얼굴에 대한 한없는 열등감을 심어주었다. 2차 충격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그들의 독특한 음악 스타일에서 온다. 물론 평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던 “외모만 앞세운 그룹”이라는 꼬리표가 한동안 그들을 따라다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추구하는 팬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본 앨범 Duran Duran은 이렇듯 데뷔 초기부터 끊임없는 화제를 몰고다녔던 그들의 메이저 데뷔앨범이다. 첫싱글 Girls on Film에서부터 분명히 드러나는 이들의 음악적 특징은 한마디로 Funky Synth-Pop이라 할 수 있다. 드럼머쉰에서 느껴지는 무미건조함이 아닌 살아있는 인간이 친 Funky한 리듬라인은 여타 Synth-Pop 밴드와 그들을 구분지어주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었다. 이러한 면에서 그룹의 핀업보이 John Taylor의 역할은 작곡을 담당했던 Nick Rhodes만큼 주요했으나 오랜 기간동안 이러한 음악적 역할에 대한 논의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간과되어 왔었다.

이후 Planet Earth로 이어지는 앨범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아직은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라인과 Funky한 리듬라인에 얹혀진 뜻모를(?) 가사(Duran Duran은 사랑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들이 부른 유일한 사랑노래는 아마도 I don’t want your love) 등으로 버무러진 틴에이저 David Bowie다. 듀란듀란 팬이나 데이빗 보위 팬 양쪽에서 욕먹을 소리일지 모르겠으나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니 크게 노여워 하지 마시길….각설하고 어설프나마 Synth-Pop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였던 이들의 음악적인 도박은 실패가 아니었음이 이후 이들의 음악적 행로에서 뚜렷이 증명되었고 이제 이 앨범은 재발견되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진지한 음악적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작품이 되었다.(sticky)

* 5번 트랙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 는 원래 영국에서 Please Please Tell Me Now란 제목으로 영국에서 싱글발매되어 인기를 얻었던 곡으로 영국발매에서는 제외되었으나 미국발매시 추가된 트랙이다.

1. Girls on Film (Duran Duran) – 3:33
2. Planet Earth (Duran Duran) – 4:02
3. Anyone Out There (Duran Duran) – 4:03
4. Careless Memories (Duran Duran) – 3:55
5.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 (Duran Duran) – 4:09
6. Night Boat (Duran Duran) – 5:25
7. Sound of Thunder (Duran Duran) – 4:06
8. Friends of Mine (Duran Duran) – 5:44
9. Tel Aviv (Duran Duran) – 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