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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 Max : Fury Road 感想文

A man muzzled, standing and pointing a gun in one direction. A woman crouched beside him pointing her gun in the opposite direction. The title in large letters fills back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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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영화팬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이 안겨졌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Mad Max 시리즈의 4편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전편보다 더 강력한 하드코어 액션과 탄탄한 시나리오, 그리고 시대선도적인 페미니즘 세계관까지 얹어져서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초신경 자극 헤비메탈 무비’가 탄생하여 최고의 수작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일흔이 되신 조지 밀러 님께서 이 정도의 박력과 진보적인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계신 것을 보니 나이 탓만 하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질 따름이다.

지금 온라인에서는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다”, “아니다. 너희들의 오버이고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다”, “국내의 얼치기 꼴페미와는 다른 진짜 페미니즘 영화다” 등 페미니즘 함유량을 두고 말이 많지만 이 글에서 그 논쟁에 숟가락을 얹을 생각은 없다. 다만 예술이란 사회적 맥락과 수용자의 시각에 상호 조응하여 메시지가 전파되거나 발전하기 때문에 기계적 규정화는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을 말해두고 싶다. 발표 당시에는 여성 해방적 메시지를 담고 있던 ‘오만과 편견’이 오늘 날에는 로맨틱 코미디가 된 것이 그 좋은 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의 테두리에 두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그 장르를 뛰어넘는 ‘로드 무비’로서의 미덕을 살펴보고 싶다. “분노의 도로”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이 영화는 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 상에서 캐릭터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로드 무비 고유의 본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희한하게 뭉친 구성원들은 서로 반목하고 조력하다가 어느덧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스스로의 정신적 굴레로부터도 치유된다. 그러한 면에서 영화는 ‘스탠바이미’나 ‘델마와 루이스’와 닮아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임모탄 조의 씨받이” 중 막내인 치도를 들 수 있다. “The Fragile”이라는 예명이 붙을 만큼 연약해서 탈출을 포기했다고 했던 그녀는 급기야 사령관 퓨리오사가 임모탄 조를 처치하는데 도움을 줄만큼 성장하게 된다. 맥스 역시 여정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받는다. 환상으로 나타나던 딸의 모습은 그를 옳은 길로 인도하고 최후에 미소 짓게 만든다. 이미 없어져 버린 “녹색의 땅”을 찾아 헤매고 소금사막을 건너려던 퓨리오사는 결국 시타델로 돌아가자는 맥스의 조언을 수용하며 고통을 우회하지 않고 직시하게 된다.

시타델을 탈출했다가 결국 무수한 희생을 치르면서 다시 원점인 시타델로 돌아온 꼴이 되고 말았지만 – 게다가 그들의 접수한 권력을 어떻게 써먹을 것인지에 대한 궁리도 없지만 – 정신적으로는 모두들 성장하고 치유를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시타델로의 회군은 개개인의 성장이 일반대중으로까지 전파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발전적이다. 또한 부발리니 여전사 할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씨앗이 시타델에 온전히 옮겨졌다는 점에서,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미덕을 갖추고 있는 영화지만 또한 영화의 액션에 대한 상찬을 빼놓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이 영화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풍성한 액션으로 멋지게 포장되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무성 영화가 우리가 현재 쓰는 영상언어 문법을 만들어냈다고 믿는다”고 감독이 이야기했듯이 이 영화는 자질구레한 배경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그 시간을 액션으로 채워 넣었다는 점에서 무성영화의 미덕을 성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특히 감독이 언급한 버스터 키튼의 작품 중에서 ‘The General’과 닮았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텔마와 루이스’와 ‘The General’을 오버랩시킨 영화다.

Blade Runner(1982)

A man holding a gun, a woman holding a cigarette, and a city-scape.
Blade Runner poster” by http://www.impawards.com/1982/blade_runner.html. Via Wikipedia.

십 수 년이 훌쩍 지나 Blade Runner 를 다시 감상하였다. 제작된 직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와 하나의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이기에 새삼스럽게 작품소개 따위를 할 필요가 없는 작품이다. 사이버펑크 계열의 영화로 열광적인 광신도를 거느리게 되어 동시대에 이미 컬트가 되어버린 작품. Philip K. Dick의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을 원작으로 하여 Ridley Scott이 수장이 되어 만든 이 영화는 개봉이후 무수한 헐리웃 SF에서부터 사이버펑크 계열의 저패니메이션까지 수많은 작품의 자양분이 된 작품. 그것이 Blade Runner다.

이 영화는 ‘기억’에 관한 영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기억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인지 … 마치 장자의 꿈이나 뫼비우스의 띠, 에셔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다. 인조인간들은 그들이 인간임을 믿는 근거로 그들의 추억을 들고 있지만 그것은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설정이다. 그렇다면 진짜배기 인간들의 추억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근거는? 여기까지 가봤던 영화가 The Matrix와 Memento가 있다. 전자의 경우 우리의 기억은 송두리째 거짓일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교리를 설파하고 있고, 후자의 경우 과거의 추억은 현재의 편리에 의해 얼마든지 재배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사실 영화라는 장르에서 수많은(정말 수많은) 작품이 ‘기억’을 어떤 식으로든지 작품의 플롯을 꼬는데 주요한 매개체로 사용해 왔고바로 그 ‘기억’이 누군가에 의해 인조인간의 인공지능에 심어졌다는 아이디어가 바로 이 영화를 사이버펑크의 고전으로 등극시킨 오리지날리티였다.

다시 Blade Runner의 스토리로 돌아가서 결국 Rachel 이든 Nexus 6 무리든 그들은 원하지 않은 탄생에서부터 원하지 않는 죽음을 두려워 한 가련한 존재들이었다. 인간이 아니기에 천국에 갈 자격마저 없을지도 모르는 존재였다. 한때 인간이 아닌 동물로 규정되었던 흑인노예들처럼. 그러니 결국 경찰입네 뽐내고 다니던 Rick Deckard는 Tyrell 회사라는 노예상 자본가를 위해 도망간 노예를 쫒는 노예사냥꾼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 해리슨포드가 맡은 Deckard가 아니라 룻거하우어가 연기한 Roy다(‘뿌리’의 SF버전?^^). 또한 주지하다시피 이런 계급차별적인 디스토피아 사회를 그린 SF가 이후 이 장르에서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도 이 작품에 힘입은 바 크다.

* 예전 비디오로 영화를 감상하던 시절 우리나라 출시 비디오의 기막힌 자막은 가끔씩 화제가 되곤 했었는데 이 작품도 ‘기막힌 자막 탑쓰리’에 충분히 낄 정도로 기막히다. Deckard 와 Rachel의 정사신에서 둘이 “I want you” 를 주고받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번역자는 Dekard 의 “I want you” 는 “너를 원해”라고 번역했고, Rachel의 “I want you”는 “드리고 싶어요”로 번역했다.

** 이 영화는 소위 Director’s Cut 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영화의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감독은 1990년의 재개봉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고 제작사는 전격적으로 그에게 전권을 일임하여 감독이 편집에 권한을 행사하게 자유를 주었다. 그 결과 감독의 주제의식은 보다 선명해졌고(예를 들어 결말의 종이접기 유니콘의 의미 등) 수많은 광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이후 많은 영화에서 Director’s Cut 이 하나의 마아케팅 카피로 자리 잡게 되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잘 아시겠지만아무 영화나 감독이 커팅한다고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볼만한 SF 몇 편

Rollerball(1975)


제임스 칸이 스포츠 스타 Jonathan E. 를 연기하고 노만 쥬이슨이 메가폰을 잡은 1975년 작으로 정치와 스포츠의 함수관계를 다룬 흔치 않은 소재의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미래의 지구는 국가도 없어지고 기업들도 기업전쟁(Corporate Wars)을 통해 하나로 통합되어 회사들은 고유명사가 아닌 그저 보통명사로 – 예로 ‘에너지 회사(Energy Corporation)’ 식으로 – 불리는 세상이다. 모든 것은 프로그래밍 되었고 더 이상 세상에 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의 임원들은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을 해소하기 위해 미래형 스포츠인 롤러볼을 창안하여 인기 스포츠로 키운다. 트랙을 돌면서 상대방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고 쇠로 만든 공을 골에 넣는 이 스포츠의 최고 스타는 ‘에너지 기업’ 이 이끄는 휴스턴 팀 소속의 Jonathan E. 다. 어느 날 기업간부 Bartholomew 는 기업의 결정이라며 Jonathan 이 선수생활을 그만둘 것을 명령한다. Jonathan 은 쉽게 수긍하지 못하면서 갈등은 시작된다. 물질적 풍요함도 자유의지에 대한 욕망을 꺾을 수 없다는 주제의식 측면에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연상시키는 한편 스포츠 스타가 체제에 도전한다는 측면에서는 실존하였고 영화화되기도 했던 로마 시대의 검투사 스팔타쿠스를 연상시킨다.


The Invisible Man(1933)


프랑켄슈타인의 감독으로 유명한 James Whale 이 H.G. Wells 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투명인간이 되어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품게 되는, 그런 한편으로 다시 정상인으로 돌아오고자 애쓰는 폭력적이고 광기어린 인간 잭그리핀의 해프닝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모순됨을 그리고 있다. 극중에서는 잭그리핀의 난데 없는 폭력적 성향을 투명인간 실험의 주재료인 신비의 약품 모노케인의 영향으로 설명하고 있다. 후에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감독으로서 – 이미 Gods And Monsters 라는 James Whale 에 관한 전기 영화에서 알아버린지라 – 자신의 마이너리티를 투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30년대 초반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특수효과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주인공 Claude Rains 가 영화 끝날 때야 한번 얼굴을 내비치는 희한한 케이스의 영화이기도 하다.


The Lost World(1925)


코넌 도일 경은 탐정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를 통해 역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문학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SF 소설에도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코넌 도일 경이 1911년 발표된 The Lost World 는 아마존 지방에 지각의 융기로 다른 세계와 격리된 세계가 있고 그 곳에 선사시대의 공룡이 산다는 줄거리의 소설이다. 이 작품이 1925년 무성영화로 제작되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유치하다 치부될지 모르지만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을 스톱모션 기법을 동원한 공룡의 묘사는 영화사에 큰 획을 긋는 기술의 발전이었고 이후 1933년 제작된 King Kong 에서도 같은 기법이 사용되었다. King Kong 을 비롯하여 쥬라기 공원 등 유사한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이 괴수 SF영화는 불행하게도 오리지널 필름이 거의 폐기될 정도로 손상되었으나 후에 62분짜리 필름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La Jetee(1962)


영화라기보다는 한편의 영상소설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인의 잠자리 장면이 잠깐 동영상으로 비춰지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장면이 흑백 스틸컷으로 처리된 과감한 형식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또 장르는 SF다. 서로간의 증오로 인해 지구를 파괴해버린 그 어느 미래.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는 세상에서 과학자들은 과거와 미래로 가서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한다. 그 통로는 사람들의 꿈. 과학자들은 선택된 죄수들 중에서 그 임무를 수행시키려는 실험을 진행시키고 주인공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그 임무를 수행한다. 그 임무 중에 만난 과거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자신들의 세계로 오라는 미래의 인간들의 제안을 무시하고 과거로 돌아가 그녀와 재회하려 한다. 슬프기 그지없는 라스트신을 간직한 이 영화는 테리 길리엄에 의해 12Monkeys 라는 이름으로 부활한다.


Cat Women Of The Moon(1953)


예전에 감상한 정신없는 코미디 Amazon Woman On The Moon 이 이 영화를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해서 호기심에 찾아본 영화. 역시 민망한 스토리, 민망한 연기, 민망한 특수효과의 3박자가 잘 갖춰진 50년대 ‘못 만들어진(Campy)’ 영화의 전형이었다. 인류최초로 다섯 명의 우주인들이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나가는데 성공한다. 그들의 목적은 달에 착륙하여 탐사를 하는 것. 그런데 홍일점인 Helen 은 달에 대한 이상한 꿈을 꾸었고 선장에게 달의 어두운 면에 가자고 우긴다. 그곳에 도착하여 일행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곳에는 산소로 채워져 있었고, 거대한 거미도 있었고(좀 뜬금없긴 하다), 거기에다 이상한 고대문명의 흔적까지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곳에는 검은 옷차림의 고양이 여인들이 살고 있었다.


Cocoon(1985)


이 영화에 따르면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는 실존했던 대륙이었고 외계인들의 지구 전진기지였다. 영원한 삶을 영위하는 이 신비로운 외계인들이 어느 날 지구에 남겨진 그들의 외계인 동료(정확하게 말하자면 커다란 고치[cocoon]속에 잠들어 있는 외계생물체들)를 데려가기 위해 지구로 왔다. 그들은 배를 빌려 알을 건져내는 한편 그 알들을 임시로 얻은 저택의 수영장에 보관한다. 그런데 그 수영장은 이웃 양로원의 장난기심한 노인들의 놀이터였다. 이들 노인들은 새 주인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영을 즐기는데 갑자기 원기가 왕성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들의 삶은 젊은이들의 삶에 못지않은 활기찬 삶으로 변신하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영생의 꿈이 실현된다는 설정의 독특한 소재의 SF 영화이다.


Slaughterhouse-Five(1972)


Kurt Vonnegut Jr.가 썼다는 원작에 대한 사전정보도 없이 영화 첫 장면을 보는 순간 ‘뮤직박스’유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과거와 이를 반추하는 현재가 교차되는 스타일의 영화이겠거니 생각했다. 처음 얼마간은 이러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약간 어리바리한 주인공 Billy Pilgrim 의 과거의 공간은 전쟁터 한가운데의 참호 속이었고 현재의 공간은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을 쓰고 있는 그의 집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이 단순히 ‘Lone Star’에서 볼 수 있었던 솜씨 좋은 연출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주인공 Billy 는 과거를 회상하는 게 아니라 실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시간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재밌는 발상을 시작으로 영화는 종반으로 갈수록 트랠파마도어라는 황당한 행성의 등장 등 처음의 전쟁영화 장르에서 블랙코미디, SF 까지 잡탕으로 섞인 다양한 장르적 실험이 되어버린다.

Battle Beyond the Stars

스타워즈(1977)와 ‘7인의 사무라이’(아니면 이 영화를 패러디한 ‘황야의 7인’)을 짬뽕하여 철저히 흥행을 노리고 만든, 그러나 참 심심한 작품. 제작 로저 코먼 프러덕션, 시나리오 존세일즈, 미술감독 제임스카메론, 조지페파드(A특공대의 맏형)와 로버트본(‘황야의 7인’에도 출연했던)의 쌍끌이 조연 등 나름대로 호화진용이었다. 하지만 음악에서부터 너무 스타워즈를 베낀 티를 역력한데다 전투장면은 왜 그리도 어둡고 두서없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결정적으로 주인공 Shad 역을 맡은 리차드토마스는 정갈하게 머리빗은 70년대 회사원풍의 가녀린 외모를 하고서는 어찌 그리 죽도 못먹은 사람마냥 힘없이 연기하는지 보는 사람이 지루할 정도이다.(뺨에 점은 또 왜 그리도 커보이는지) 다만 네스토라 불리는 외계인 캐릭터 설정은 나름 볼만 했다. 그러나 어쨌든 나름대로 틈새시장을 노린 이 작품은 로저 코먼이 80년대 내놓은 영화중 가장 좋은 흥행성적을 남겼다고 한다.

The Lost World

코넌 도일 경은 탐정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를 통해 역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문학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SF 소설에도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코넌 도일 경이 1911년 발표된 The Lost World 는 아마존 지방에 지각의 융기로 다른 세계와 격리된 세계가 있고 그 곳에 선사시대의 공룡이 산다는 줄거리의 소설이다. 어릴 적 이 소설을 일본에서 발간되고 번역된 SF 소설 모음집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소설집에는 이 소설과 함께 역시 코넌 도일 경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높은 창공에 펼쳐지는 또 다른 세계를 소재로 한 소설 등이 실려 있었다.

여하튼 이 작품이 1925년 무성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 첫머리에는 코넌 도일의 동영상도 소개되고 있다. 극의 구성은 앞서 간단히 언급하였듯이 아마존 지역에 존재하는 공룡들의 서식지를 찾아가는 모험담을 줄기로 하고 있다. 이 모험에는 공룡의 존재를 주장하는 비주류 과학자 George Challenger, 약혼녀에게 용기를 과시하려는 젊은 기자 Edward J Malone, 아마존 오지에서 아버지를 잃어버린 아름다운 여인 Paula White, 그리고 그녀를 연모하는 사냥꾼 John Roxton 경 등이다. 결국 이들은 공룡을 발견하지만 그 서식지는 화산폭발로 인해 흔적을 감추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연히 살아남은 브론토사우루스를 발견하였고, 공룡을 영국으로 수송하였지만 항구에서 공룡이 탈출하는 바람에 런던 시내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유치하다 치부될지 모르지만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을 스톱모션 기법을 동원한 공룡의 묘사는 영화사에 큰 획을 긋는 기술의 발전이었고 이후 1933년 제작된 King Kong 에서도 같은 기법이 사용되었다. King Kong 을 비롯하여 쥬라기 공원 등 유사한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이 괴수 SF영화는 불행하게도 오리지널 필름이 거의 폐기될 정도로 손상되었으나 후에 62분짜리 필름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La jetée

영화라기보다는 한편의 영상소설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인의 잠자리 장면이 잠깐 동영상으로 비춰지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장면이 흑백 스틸컷으로 처리된 과감한 형식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또 장르는 SF다.  서로간의 증오로 인해 지구를 파괴해버린 그 어느 미래.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는 세상에서 과학자들은 과거와 미래로 가서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한다. 그 통로는 사람들의 꿈. 과학자들은 선택된 죄수들 중에서 그 임무를 수행시키려는 실험을 진행시키고 주인공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그 임무를 수행한다. 그 임무 중에 만난 과거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자신들의 세계로 오라는 미래의 인간들의 제안을 무시하고 과거로 돌아가 그녀와 재회하려 한다.  슬프기 그지없는 라스트신을 간직한 이 영화는 테리 길리엄에 의해 12Monkeys 라는 이름으로 부활한다.

Not Of This Earth

Roger Corman 감독의 1957년 작을 원작으로 한 SF 영화. 몇몇 상황설정을 제외하고는 – 그리고 여성들이 보다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나체를 많이 보여준다는 점 등 – 오리지널과 다르지 않은 스토리로 진행된다. 특기할 점은 포르노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Traci Lords 가 간호원 역으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이 후 Johnny Depp 이 출연한 컬트 무비 Cry Baby 에 출연하는 등 나름대로 진지한 연기활동을 펼쳐나간다. 배우들의 연기는 한층 어색해져서 보는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이다. 다만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특수효과는 진일보하였다. 개봉 당시 미국내 극장 수입은 8만 달러에 불과했다 한다. 포스터에서 보이는 저 괴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Not Of This Earth

훗날 평론가들이 50년대 외계인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공산주의 진영과의 냉전에 대한 두려움, 흡혈귀 전설의 현대적 해석 등 다양한 은유를 집어냈지만 그 상징이야 어찌되었든 하나의 서브장르로써의 외계인을 소재로 한 공상과학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주말저녁 다운타운의 극장가에 가서 즐기기 딱 좋은 장르였다. 그리고 저예산 영화제작의 산 증인 Roger Corman 은 누구보다도 이러한 점을 잘 꿰뚫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57년에 제작된 Not Of This Earth 는 저예산 SF 무비의 전형으로 남을 만하다. 물론 메이저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영화에 비해서는 어이없을 정도로 우스운 광경도 연출된다. 배우들의 연기는 어색하기 짝이 없고 조명은 쓰지도 않은 것인지 수시로 배우들의 얼굴은 암흑에 가려진다.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어이없는 외계 괴물은 헛웃음을 짓게 할 정도다.

그럼에도 외계생명체, 피, 최면술, 텔레파시 등 대중들의 이목을 끌만한 B급 소재를 깡그리 긁어모아 만들어진 이 현대판 (외계인) 드라큘라는 그 조합이 나름 그럴듯하여 평론가들의 호의적인 평가를 얻었고 그 뒤 두어 번에 걸쳐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Immortel Ad Vitam

불어권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만화가이면서 종합예술인을 지향하는 Enki Bilal 이 자신의 걸작으로 불리는 소위 ‘니코폴 3부작’을 직접 감독을 맡아 영화한 작품이다. 독수리 머리를 한 신 Horus,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당했다가 Horus 에게 이용당하는 – 또는 구원받는 – Nikopol, 수수께끼의 여인 Jil 은 원작에도 이 영화에도 모두 등장하여 중심 스토리를 구성한다. 다만 그 역할은 많은 차이가 난다. 몇 년에 걸쳐 꾸준히 발표되어 마침내 3부작을 이룬 원작은 영화 한편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스토리와 상징적인 은유를 담고 있기 때문에 부득불 Enki 는 비슷한 설정을 새 스토리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장소는 원작의 파리 대신 뉴욕. 뉴욕 하늘에 언젠가 모르게 피라미드 모양의 거대한 우주선이 떠있고 그 안에는 동물머리를 한 고대 이집트의 신들이 머물고 있다. 영원한 삶을 박탈당할 위기에 있는 Horus 에게 단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는 Nikopol 의 몸속에 들어가 자신의 영원성을 이어줄 – 즉 아기를 낳아줄 – 여인을 찾는데 그가 바로 Jil 이다. 이러한 연유로 원작에서 일종의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역할을 했던 Horus 는 대를 잇는데혈안이 된 신으로 나오고,나름대로 정치적인 행보를 걸으면서 전체주의 사회를 새로운 평등사회로 탈바꿈시켰던 Nikopol 은 그저 호텔방에 누워 섹스나 하는 기둥서방으로 변신하고 만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것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이 아닌가 싶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은 영화 캐릭터에서 아예 3D로 만들어진 캐릭터와 실제 배우간의 눈에 거슬리는 부조화이다. 어떠한 연유에서였는지 3D 캐릭터는 눈에 띄게 둔탁하여 극의 몰입을 방해하였고 이는 작화에 있어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Enki 에게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실수 – 또는 불가항력? – 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패착은 – 이 또한 불가항력이겠지만 – 관객들에게 너무나 불친절한 내러티브이다. 제5원소와 비슷한 분위기이면서도 – 물론 이 영화에도 Enki 가 많은 도움을 줬다지만 – 제5원소의 나름의 신화적인 분위기에서도 단순한 내러티브가 주는 상업적 고려를 이 영화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다. 그렀더라면 골수팬들일 유럽 관객을 타깃으로 했어야 할 터인데 앞서 말했듯이 배경도 뉴욕으로 옮기고 언어도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좌충우돌이다. 뭐 이렇게 된 이상 또 누군가가 나서서 몇 년 후에 저주받은 걸작으로 레벨업 시켜줄지 모르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감독으로서의 Enki 의 역량은 아직 만화가로서의 Enki 의 그것에 비해 떨어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Slaughterhouse-Five

Original movie poster for the film Slaughterhouse-Five.jpg
Original movie poster for the film Slaughterhouse-Five”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City on Fire. Licensed under Wikipedia.

Kurt Vonnegut Jr.가 썼다는 원작에 대한 사전정보도 없이 영화 첫 장면을 보는 순간 ‘뮤직박스’유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과거와 이를 반추하는 현재가 교차되는 스타일의 영화이겠거니 생각했다. 처음 얼마간은 이러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약간 어리바리한 주인공 Billy Pilgrim 의 과거의 공간은 전쟁터 한가운데의 참호 속이었고 현재의 공간은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을 쓰고 있는 그의 집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이 단순히 ‘Lone Star’에서 볼 수 있었던 솜씨 좋은 연출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주인공 Billy 는 과거를 회상하는 게 아니라 실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시간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재밌는 발상을 시작으로 영화는 종반으로 갈수록 트랠파마도어라는 황당한 행성의 등장 등 처음의 전쟁영화 장르에서 블랙코미디, SF 까지 잡탕으로 섞인 다양한 장르적 실험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이미 솜씨 좋은 원작이 지니고 있었을 멋진 개성이 ‘스팅’이나 ‘내일을 향해 쏘아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헨리오리엔트의 세계’를 감독했던 거장 조지로이힐의 뛰어난 연출력과 만나면서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영화의 메시지는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에 전쟁포로로 머물렀던 Billy 의 경험을 통해 전쟁에서의 살육에는 어떠한 명분도 있을 수 없다는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제목 제5도살장(Slaughterhouse Five)은 주인공이 일했던 도살장이기도 하지만 1945년 2월 13일 연합군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받고난 후의 드레스덴의 처참한 몰골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Five 라는 단어는 마치 우주선의 이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Billy 가 나중에 찾아가게 되는 – 또는 되었다고 주장되어지는 – 트래팔마도어의 달표면과 같은 거친 표면은 또 바로 폭격 직후의 이 드레스덴을 연상시킨다. 그 황량한 별에서의 Billy 의 새로운 사랑은 절망 속에서의 희망이라는 여운을 남겨준다. 굴렌굴드의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를 배경으로 눈길을 걸어가던 Billy 의 모습을 담은 첫 장면이 오랜 여운을 남기며, Catch 22 나 M.A.S.H 같은 영화와 잘 어울리는 삼총사가 될 것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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