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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 of E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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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 of Eden은 영국의 뉴웨이브 밴드 Talk Talk가 1988년 발표한 그들의 통산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뉴웨이브 하면 캐치한 멜로디에 통통 튀는 리듬감을 연상하는 이들이 이 음반을 그런 유로 생각하고 듣는다면 당혹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아방가르드에 가까운 지루한 연주와 모호한 멜로디, 멜로디보다 더 모호한 의미를 지닌 가사 등은 듣는 이로 하여금 뉴웨이브라는 장르가 지닌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보컬 Mark Hollis와 프로듀서 Tim Friese-Greene에 의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1987년과 1988년에 걸쳐 런던의 웨섹스 스튜디오에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작업은 종종 어둠 속에서 진행되었고 몇 시간에 이르는 즉흥연주가 녹음되어 편집에 이용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은 락, 째즈, 클래식, 앰비언트의 요소를 포함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이전 앨범에서의 보다 팝친화적인 모습과 달랐기에 상업적으로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초래했다.

이들의 전작 The Colour of Spring(1985)은 20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그룹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다. 그 결과 EMI는 Talk Talk가 다음 작품을 위해 여유로운 예산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밴드는 작업에 완벽한 통제권을 갖게 되었다. 매니저와 EMI 임원은 스튜디오 세션에 출입이 금지되었고, 밴드는 신디싸이저를 자제하고 많은 수의 세션 연주자들을 동원하여 1년여에 걸쳐 작업을 진행하였다.

밴드는 원래 싱글을 내지 않을 계획이었지만 EMI는 “I Believe In You” 의 라디오에디트 버전을 내놓았고, 결과는 잔인했다. 차트 성적이 형편없었던 것이다. 밴드는 홍보공연도 하지 않았다. Hollis는 “난 이 앨범의 음악을 다시 어떻게 연주할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앨범은 상업적으로 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 초기에는 –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 비평가는 “듣는 이에게 자살을 부추기는 마케팅을 해대는 레코드”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앨범의 진가가 인정받기까지는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Pitchfork는 이 앨범을 206년 선정한 ‘1980년대 명반 목록’에서 34위로 언급하였다. Q매거진은 2012년 선정한 ‘80년대 명반 40개’ 중에서 31위에 이 앨범을 올렸다. NME는 ‘모든 기간 동안의 가장 위대한 500개의 앨범’에 이 앨범을 95번째로 선정하였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 앨범이 1990년대 The Verve나 Radiohead에서 엿볼 수 있는 포스트록(post-rock)에 영향을 미쳤다고 간주하였다.

My Aim Is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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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Aim isTrue”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tiff / Columbia / Demon/Rykodisc / Rhino / Hip-O.. Licensed under Wikipedia.

1977년 7월 22일 Elvis Costello(본명 Declan MacManus)의 데뷔 앨범 “My Aim Is True”가 발매되었다.(미국에서는 1978년 3월) Nick Lowe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76년 말에서 1977년 초까지 런던에 있는 패쓰웨이(Pathway)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그의 동네인 리버풀의 펍이나 클럽에서 육 년여 동안 공연을 했던 Costello는 1976년 그가 녹음한 데모테잎을 Stiff 레코드사에 보냈다. 처음에 이 레이블은 그를 Dave Edmunds를 위한 작곡가로 쓸 생각을 했었지만 Edmunds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회사는 Costello에게 몇 곡을 녹음할 기회는 주고는 Costello에게 레코딩 아티스트를 포기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결과물이 꽤 괜찮았기 때문에 마음을 바꿨다. 그래서 이제 회사는 Wreckless Eric과 데뷔 앨범을 공유할 것을 제안했지만 Costello는 이미 자신만의 앨범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노래를 작곡해놓았다. 이 앨범은 몇 주에 걸쳐 Clover라는 밴드의 멤버와 함께 여섯 번의 4시간 씩 총 24시간 동안 녹음을 마쳤다. 당시 낮에 데이터 입력 일을 하고 있던 Costello는 병가를 내가며 연습과 녹음을 마쳐야 했다. 처음의 두 싱글 “Less Than Zero”와 “Alison”이 나올 때까지 Costello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마침내 레이블은 1977년 여름 앨범을 내놓을 것을 결정하고서 Costello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프로페셔널 뮤지션으로 나서라고 권유했다. Stiff 레코드사는 그에게 월급을 주고 선금으로 150파운드와 앰프 하나, 그리고 테이프 녹음기를 줬다. Costello는 이 상황을 “7년 이후의 하룻밤의 성공”이라고 묘사했다. 이 앨범에서는 고전이 된 “Alison”와 “(The Angels Want To Wear My) Red Shoes”가 인기를 끌었고 차트에서는 “My Aim Is True” 등이 성공했다. VH1은 2003년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에서 80위에 선정했다. 롤링스톤은 2004년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개의 앨범에서 168위에 선정했다.

Every Breath You 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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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ng 21111985 06 700” by Helge Øverås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2.5 via Wikimedia Commons.

1983년 7월 9일 The Police의 “Every Breath You Take”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8주간 머물렀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4주간 정상에 머물렀다. Sting이 만든 이 곡은 Sting이 베이스와 보컬을 맡은 미국 출신의 뉴웨이브/펑크락 밴드 The Police의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으며, 또한 1983년 한 해 가장 인기 있는 싱글이 되었다.

Sting은 이 곡을 그의 첫 아내인 배우 Frances Tomelty와 고통스럽게 이혼하는 과정 속에서 썼다. 간혹 달콤한 사랑노래라는 오해를 받는 이 곡은 모호한 가사 속에 보다 어두운 맥락을 담고 있다. 즉 前애인에게 집착하며 질투하는 화자의 시각은 특정인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집착과 질투일 뿐이다.

“난 한밤중에 깨어났고 그 가사가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피아노 앞에 앉아 30분 만에 곡을 만들었죠. 선율 자체는 포괄적인, 일종의 수많은 다른 선율을 합친 것이었어요. 하지만 가사는 흥미로웠죠. 편안한 사랑 노래처럼 들려요. 그때까지 가사가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어요. 내 생각에 빅브라더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감시와 통제.” Sting의 1993년 인터뷰 中에서

곡을 만드는 과정은 드럼과 퍼커션 파트에 대한 Sting의 집착 때문에 Sting 과 드러머 Stewart Copeland 간의 갈등으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둘은 실제로 그 문제 때문에 주먹다짐까지 벌였고, 엔지니어이자 공동 프로듀서인 Hugh Padgham이 거의 프로젝트에서 빠질 뻔 했다. 결국 갈등은 회복됐고 트랙은 완성됐다.

싱글은 밴드의 다섯 번째 앨범 “Synchronicity”의 첫 싱글로 1983년 5월 20일 발매되었다. 팬들과 비평가는 동시에 이 곡을 “클래식”으로 간주하였다. 1983년 6월 4일 핫100 차트 36위로 데뷔한 이 곡은 불과 5주 후에 차트 정상을 차지한다.Kevin Godley와 Lol Creme이 감독한 흑백의 뮤직비디오도 음악의 강렬한 인상에 한몫했다.

“Every Breath You Take”는 26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Song of the Year’를 포함하여 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 곡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The Police는 1984년 해체되었다. Sting은 그의 솔로 앨범을 위해 “If Love Somebody Set Them Free”를 썼는데 이 곡은 “Every Breath You Take”의 반대되는 입장에서 쓴 후속곡의 성격을 띠고 있다.

롤링스톤誌는 1983년 이 곡을 ‘그 해의 노래’로 뽑았고 후에 ‘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서 84위에 선정했다. 이 성적은 뉴웨이브 곡으로는 가장 높은 순위에 속한다. 빌보드는 이 곡을 ‘Hot 100 All-Time Top Songs’에서 25위에 선정했다. 2010년 추산에 따르면 Sting의 음악 관련 수입 중 이 곡이 차지하는 비중은 1/4내지 1/3을 차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뮤직비디오

Flash And The Pan


이미지 출처

Flash And The Pan은 호주의 뉴웨이브 밴드다. 이 밴드는 호주에서 가장 위대한 락밴드로 평가받는 The Easybeats의 멤버였던 Harry Vanda와 George Young이 1979년대에 시작한 프로젝트다. 이 듀오의 첫 성공은 데뷔 앨범의 수록곡 Walking In The Rain의 인기였다. 이 곡은 후에 Grace Jones가 그녀의 1981년 앨범 Nightclubbing에서 커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Hey St. Peter가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핫100 차트 76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앨범도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는데 유럽, 영국, 미국 등지에서 인기를 얻었다.

Albums
Flash and the Pan (1979)
Lights in the Night (1980)
Headlines (1982)
Early Morning Wake Up Call (1984)
Nights in France (1987)
Burning up the Night (1992)

보다 상세한 디스코그래피

C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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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anCars”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beggars.co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1979년 영국의 아티스트 Gary Numan은 그의 앨범 The Pleasure Principle에서 “Cars”를 싱글로 내놓았다. 이 곡은 영국과 캐나다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미국 싱글 차트에서는 9위까지 올랐다.[1. Numan이 비록 영국에서는 몇 개의 히트곡이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이게 그의 유일한 탑40 곡이 되었다.] 이로써 이 곡은 시장에서나 뮤지션들 모두에게 신디싸이저를 이용한 뉴웨이브 음악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곡이 되었다.

이 곡은 Numan이 싱글 네 개와 영국 차트에서 인기를 얻은 “Are ‘Friends’ Electric?”을 포함한 LP 두 개를 발표한 이전 밴드 Tubeway Army라는 이름을 버리고 처음 내놓은 곡이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이전의 곡들보다 더 밝아지고 보다 팝친화적이었다. Numan은 후에 이 곡을 만들 때 상업적 성공을 염두에 두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그 때가 아마도 ‘이게 히트 싱글이 될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든 첫 노래에요.”라고 말했다.

“Cars”의 제작에는 베이스와 드럼과 같은 리듬 섹션은 전통적인 악기를 사용됐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미니무그(Minimoog)와 폴리무그(Polymoog) 키보드 등의 아날로그 신디싸이저를 이용됐다. 간주 부분에는 탬보린이 쓰이기도 했다. Numan의 보컬은 대부분 무미건조하게 마치 로봇이 노래하는 듯한 톤으로 녹음되었다. Numan에 의하면 가사는 그가 직접 거리에서 겪었던 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한번은 런던에서 트래픽에 갇혀있었어요. 그런데 앞차의 사람들과 문제가 생겼죠. 그들은 나를 차에서 끌어내 때리려 했어요. 난 문을 잠그고 마침내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그들에게서 도망쳤죠. 그런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이는 현대에서 당신이 차안에서 얼마나 안전함을 느끼는 지를 설명하는 것이에요. 그 안에 있을 때 당신의 모든 멘탈이 달라집니다. 그건 당신만의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왕국과 같죠.”

뮤직비디오

The Lexicon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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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Lexicon”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the record label.. Licensed under Wikipedia.

The Lexicon of Love는 영국 출신의 뉴웨이브 밴드 ABC가 1982년 내놓은 데뷔 앨범이다. 이 앨범은 컨셉트 앨범은 아니지만 반복적으로 싱어가 충만한 인간관계를 가지려 시도했지만 실패함으로써 겪은 마음의 상처라는 주제를 반복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앨범은 The Buggles 출신의 Trevor Horn이 프로듀서를 맡았고 엔지니어는 Gary Langan이 맡았다. 한편 클래식과 팝 양쪽에서 활동하고 있던 작곡가 Anne Dudley의 오케스트레이션과 JJ Jeczalik의 Fairlight CMI 프로그래밍의 도움을 받았다. 이 넷은 후에 Art Of Noise를 결성한다. 프로덕션 팀이나 세션 플레이어들은 ZZT 레이블의 기초를 다진 이들이었다. Tears Are Not Enough, All Of My Heart, Poison Arrow, The Look Of Love(Part One)이 영국에서 차트 20위안에 올랐다. Poison Arrow, The Look Of Love(Part One)은 미국 싱글 차트에서 각각 25위와 14위까지 올랐다. 앨범은 영국 차트에서 1위, 미국 차트에서 24위까지 올랐다. 2004년 삭제된 부분과 초기 데모, 그리고 1982년 공연의 라이브 버전 등이 포함된 두 장짜리 디럭스 디스크가 뉴트론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다. 2009년에는 ABC가 런던의 로얄알버트홀에서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와 함께 앨범의 수록곡을 가지고 공연을 가졌다. 2012년 앨범 발매 3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한 번 로얄드러리레인 극장에서 공연을 가졌다.

Side One
1. “Show Me” – 4:02
2. “Poison Arrow” – 3:24
3. “Many Happy Returns” – 3:56
4. “Tears Are Not Enough” – 3:31
5. “Valentine’s Day” – 3:42
Side Two
6. “The Look of Love” (Part One) – 3:26
7. “Date Stamp” – 3:51
8. “All of My Heart” – 5:12
9. “4 Ever 2 Gether” (ABC/Anne Dudley) – 5:30
10. “The Look of Love” (Part Four) – 1:02

Life During War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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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During Wartime Talking Heads“. Via Wikipedia.

“Life During Wartime“은 미국의 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곡이다. 이 곡은 1979년 발표된 그들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Fear of Music의 첫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빌보드 핫100 차트 80위까지 올랐다. David Bowman이 쓴 Talking Heads에 관한 전기에 보면 David이 이 곡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가에 대해 나온다. 책에 따르면 David은 당시 애비뉴에이(Avenue A)[1.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곡을 썼다고 한다. 그는 ”바더마인호프[2. 서독의 적군파(赤軍派)], Patty Hearst[2. 신문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손녀이자 상속자로 심바이어니즈 해방군이라는 좌익 조직에 납치되었다가 그들의 뜻에 동조해 조직에 가입하기도 했던 여인], 톰킨스 스퀘어[3. 뉴욕 맨해튼 알파벳시티 구역에 있는 공공공원]을 생각했어요. 이것은 알파벳 시티[4.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 내에 있는 근린]에 살아가는 것에 관한 노래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노래의 화자는 좌익 조직의 조직원으로 추측되며, 그는 ”세 개의 패스포트와 두어 개의 비자를 가지고 있고 진짜 이름조자 모르는“ 이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그는 ”헤어스타일을 하도 많이 바꿔서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이다.[5. 이러한 도망자의 흔들리는 정체성은 시드니 루멧이 감독한 1988년작 Running on Empty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정말 전쟁 중이 아님에도 전쟁 중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불행한 이다. 한편 가사 중에는 ”이것은 디스코가 아니다(This ain’t no disco)“라는 뉴웨이브 운동의 아이콘 비슷하게 간주되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6. 때문에 이 구절을 제목으로 하는 뉴웨이브 앨범 커버로 구성된 책도 나왔다.] 후에 David은 The Best of Talking Heads의 라이너 노트에 이 가사 때문에 자신들이 ”反디스코 운동의 기수“로 여겨진 것이 너무 웃겼다고 전했다. 이 곡은 또한 1983년 만들어진 그들의 공연 필름 Stop Making Sense에서도 공연 버전으로 수록되었다. 공연 비디오에서는 David Byrne의 에어로빅댄스나 조깅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안무가 인상적이다. 록앤롤 명예의 전당 측에서 ”록앤롤을 만든 500곡의 노래“에 포함시키기도 했던 이 위대한 노래의 기타 코드는 Am과 E가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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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x Months in a Leaky B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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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x Months In A Leaky Boat”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1].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Six Months in a Leaky Boat“는 뉴질랜드의 락그룹 Split Enz의 앨범 Time and Tide의 수록곡이다. 그룹의 리더인 Tim Finn이 작곡한 이 곡은 1982년 싱글로 발매되었다. 이 곡은 모험가들이 호주와 뉴질랜드로 항해하던 시절에 관한 노래다. 이러한 이유로 가사 중에는 호주의 역사학자 Geoffrey Blainey의 저서명인 “the tyranny of distance(원거리 독재)”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이 곡은 Tim Finn의 신경쇠약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포클랜드 위기 당시[1. 포클랜드 전쟁은 1982년 4월 2일에 시작하여 그 해 6월 14일 끝난다] 해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물이 새는 보트’라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방송에 제재를 받기도 했다. 본국인 뉴질랜드에서는 차트 7위, 호주에서는 2위, 미국에서는 83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는 호주공연권리협회(Australasian Performing Rights Association)에서 2001년 투표에 의해 뽑은 ‘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100곡’에서 5위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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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ling Mussels (From the 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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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eeze pulling mussels cover” by From the website http://www.squeezenet.co.uk/..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Pulling Mussels (From the Shell)“은 Squeeze가 1980년 내놓은 앨범 Argybargy의 수록곡으로 앨범의 첫 싱글로 같은 해 4월 발매되었다. 밴드 멤버인 Chris Difford와 Glenn Tilbrook이 만든 이 노래는 이 곡은 호의적인 평을 받으며 영국 싱글 차트 44위까지 올랐다. 미국에서는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 휴가지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노래하는 이 곡에 대해 비평가 Chris Woodstra는 ”영국 노동계급의 관찰“이며 ”해변의 휴가지에서의 다양한 삶에 대한 상세한 스냅샷을 제공한다“라고 평했다. 이외에도 이 곡은 ”시류를 타지 않는 컬트 클래식“, ”뉴웨이브 시대의 팝클래식“ 등의 평을 들었다. Difford는 인터뷰에서 이 곡은 ”영국의 휴가지에서 보냈던 시간에 관한 추억에 관한 노래“라고 말했다. 또한 ”기본적인 비품, 오락, 시설 등만을 제공하는 염가의 리조트“였다고 회상했다. 한편 “pulling mussels(홍합을 꺼내다)”는 영국에서 성관계를 뜻하는 은어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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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har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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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haronaCover”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rateyourmusic.com/release/single/the_knack/my_sharona___let_me_out/. Licensed under Wikipedia.

“My Sharona”은 파워팝 밴드 The Knack의 데뷔 싱글이다. 밴드의 기타리스트 Berton Averre와 리드싱어 Doug Fieger가 쓴 이 곡은 1979년 발표된 밴드의 정규 앨범 Get the Knack의 수록곡이다. 이 곡은 Fieger가 스물다섯에 만났던 열일곱 살의 Sharona Alperin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으로, 그녀는 4년 동안 Fieger의 여자 친구였다. Averre는 처음에 Sharona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것에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Fieger는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주장하며 그 이름을 쓸 것을 관철시켰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1960년대 락앤롤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Berton Averre의 작품인 인상적인 기타 리프는 1960년대 락앤롤의 스타일이다. 리듬 파트는 Smokey Robinson and the Miracles 의 1965년 작 “Going to a Go-Go”에서 빌려왔다. 또한 메인 보컬에서의 “muh muh muh my Sharona” 라고 반복적으로 더듬는 스타일은 The Who의 1965년 작 “My Generation”에서의 Roger Daltrey의 스타일을 답습한 것이다.

이 곡은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에 6주간 머물렀고 그해 탑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미국음반산업협회(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는 이 곡에 대해 골드 디스크를 인증했다. 이로써 이 싱글은 1964년 발표된 The Beatles의 “I Want to Hold Your Hand” 이래 Capitol 레코드사가 내놓은 중 가장 빠르게 골드 인증을 받은 싱글이 되었다. 1991년 영화 Reality Bites 사운드트랙에 쓰이면서 이 곡은 다시 차트 91위까지 진입하기도 했다.

Sharona Alperin은 후에 부동산 중개인이 되어서 mysharona.com을 자신의 사업을 위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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