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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way

Gangway 는 1982년 코펜하겐에서 결성된 뉴웨이브 밴드다. 이 당시까지 밴드의 실질적인 리더인 Henrik Balling 은 코펜하겐 중심부의 한 대형 백화점인 Illum에서 따분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Allan Jensen 을 만났는데 그는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Gangway의 싱어가 되었다. 밴드의 세 번째 멤버인 드러머 Jan Christensen 은 음악잡지의 멤버 모집 광고를 보고 밴드를 찾아왔다.

1982년 12월 한 학교에서 데뷔 공연을 가졌다. 이당시 밴드명은 Unforced Error 였다. 그러나 Allan 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라디오에서 Julie Andrews 가 “gangway, gangway” 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는 밴드명을 바꿔버렸다.이들의 초기 사운드는 The Cure 나 Echo & The Bunnymen의 영향을 받아 다소 어둡고 묵직하였다.

1983년 Gangway 는 덴마크 전역에서 다른 음악인들과 함께 순회공연을 가졌다. 이해 12월 밴드는 Hookfarm 스튜디오에서 “Half a year went by”의 마스터테잎을 녹음에 착수했다. 1984년 데뷔앨범 “THE TWIST”가 발매되었고 비평가의 호평을 받았다. 이 앨범은 영어로 된 덴마크 뮤지션의 앨범으로는 최초로 덴마크에서 1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다.

1986년 2월 “SITTING IN THE PARK”를 – 놀랍게도 이 앨범은 단 3주 만에 녹음되었다. – 발매했는데 이 앨범에서 그들은 이전 앨범에서 보다 더욱 섬세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앨범에는 그들의 클래식 “My Girl and Me”와 New Musical Express 가 “Single of the week”로 선정한 “Once Bitten, Twice Shy”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87년 “SITTING IN THE PARK (AGAIN!)” 이 발매되었는데 다소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 이전까지 그들의 앨범을 내놓았던 Irmgardz 와의 불화로 인해 밴드는 PolyGram International 과 새로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영미권에 출사표를 내기위해 “SITTING IN THE PARK” 를 내놓고자 했으나 Irmgardz 는 그들에게 마스터테잎을 내놓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영국인 프로듀서 David Motion 와 함께 기존의 곡들에 좀 더 많은 색을 입힌 앨범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SITTING IN THE PARK (AGAIN!)” 이다.

같은 해 폴리그램의 자회사인 London Records 를 통해 “My Girl and Me” 의 새로운 버전이 싱글로 발매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기 회사에서는 Salt’n’Pepa 나 Glenn Medeiros 같은 이들의 히트곡으로 한껏 고양되어 있었기에 그들의 곡에 대한 마케팅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태에 화가 난 폴리그램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밴드는 그만 영미권으로의 진출에 대한 열정이 식고 말았다. 1988년 7월 “Sitting in the Park (Again!)” 이 덴마크에서 발매되었다. 영국에서는 발매되지 않았다.

해외진출이 실패한 뒤 밴드는 매너리즘과 다툼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룹에서 늘상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폴리그램에 Michael Kastrupsen 란 친구가 등장한다. Gangway 의 음악을 아주 맘에 들어한 이 사나이는 1990년 밴드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고 Henrik Balling 이 그동안 쓴 곡들을 녹음하게끔 한다. 마침내 1991년 그들은 “THE QUIET BOY ATE THE WHOLE CAKE” 를 내놓는다. 평론가 Per Juul Carlsen 은 이 앨범에 대해 “밴드의 음악이 너무 좋기에 결코 패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신감과 열정에 차있는 음악”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상업적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실력으로는 영미권의 어느 밴드보다도 뛰어났던 이 덴마크 밴드는 그렇게 자신들의 재능을 상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1980년대를 지내며 90년대까지 꾸준히 활동하다가 1998년 해체하였다. 한편 이들은 2006년 10월 코펜하겐에서 150명의 청중을 위해 깜짝 재결합 공연을
갖기도 했다.

디스코그래피

  • The Twist (1984)
  • Sitting in the Park (1986)
  • Sitting in the Park Again (1988)
  • The Quiet Boy Ate the Whole Cake (1991)
  • Happy Ever After (1992)
  • Optimism (1994)
  • That’s Life (1996)
  • Compendium (1998)

링크

Guns N R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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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R at FMRC” by Francais1855454 – Freddie Mercury Tribute Concert
Previously published: www.instagram.com.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Line Up : W.Axl Rose(Vocals), Slash(Lead, Rhythm Guitars, Vocals), Gilby Clarke(Rhythm, Lead Guitars, Vocals), Duff McKagan(Bass, Vocals), Dizzy Reed(Keyboard) Matt Sorum(Drums, Percussion)

슬래쉬, 스티븐 그리고 더프는 ROAD CREW의 멤버였고, 액슬과 이지는 AXL, ROSE, HOLLYWOOD ROSE등의 그룹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동안 액슬은 L.A. GUNS에 가입 했었다. 얼마후 L.A. GUNS의 드러머와 베이시스트가 탈퇴한다. 이때 이지의 HOLLYWOOD도 멤버들이 다나가벼린 상태에서 두밴드는 액슬을 매개체로 합체했으며 이름도 공평하게 GUNS AND ROSES로 지었다.

그리고 더프도 ROAD CREW를 떠나(슬래쉬는 기타리스트를 찾는 POISON 의 오디션에 참가한다. 연주를 들은 POISON은 연주는 좋았지만
그의 외모가 화려한 글램 록을 지향하는 밴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탈락시킨다.) GUNS AND ROSE에 가입한다. 이때의 라인업이 액슬(Vo), 이지(G), 트레이시(G)외에 더프(B)와 롭 가드너(Rob Gardner, Ds)였다. 그러나 얼마후 트레이시와 롭이 탈퇴했고 슬래 쉬와 스티븐이 새롭게 합류한다. 85년 5인 체제의 최종 라인 업을 확정한 GN’R은 86년 초 밴드의 자체 레이블인 우지 수어사이드를 통해 미니앨범 [Live !?*@ Like A Suicide] 를 발매했다. 당시 이들은 매니저 조차도 변변히 없어 모든 작업을 멤버들 이 직접 했는데, 제작의 중심이 되었던 인물은 슬래쉬로 레코딩은 물론 재킷 디자인까지 꼼꼼하게 관여했다. 이 앨범은 4주만에 1만장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GN’R은 게펜 레코드 직원 탐 즈다우(머틀리 크루, 도켄 등을 찾아내 계약한 전력이있다.)의 눈에 들 어 음반 계획을 맺게된다. GN’R은 계약금 7만 5천달러를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액슬은 윌리엄 액슬 로즈(W.Axl Rose)로 완전히 개명한다. 87년 7월 이들은 데뷔 앨범 [Appetite For Destryction]을 발표한다. 하지만 재킷이 너무 충격적이라는 항의로 재킷을 변경하여 다시 출판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판매고는 향상하지 않아 겨우 앨범차트 100위 안에 턱걸이를 한다. 하지만 “Welcome To The Jungle”이 ‘Dead Pool’이라는 영화에 삽입곡이 되면서 빌보드 차트 7위까지 오르며 히트를 기록 했다. 그리고 88년 8월 앨범 차트 정상에 까지 오른다. 또한 이들은 과거의 미니앨범에 새로운 곡을 추가하여 [GN’R Lise]발매후 1990년 6월 NY에서 영화 ‘폭풍의 질주(Days Of Thunder)’에 수록할 “Knockin’ On Heaven’s Door”를 믹스하였다. 그리고 그달의 마지막날인 30일 GN ‘R은 최초로 드러머 스티븐의 탈퇴를 공식 발표한다. 밴드측은 약에 빠진 그에게 기회를 주었으나 10개월동안 지켜봐도 전혀 차 도가 없기에 사퇴시킬수 밖에 없었다고 이유를 밝히며 후임 드러머 매트 소럼(Matt Sorum)을 소개했다. 그후 1991년 7월 1일 영 화 ‘터미네이터 2-심판의 날’의 삽입곡 “You Could Be Mine”를 싱글로 발표하고, 1991년 9월 17일 신보 [Use Your Illusion I, II]를 발표한다. 본 앨범에서 키보드에 디지가 새로운 멤버로 보강되었다. 이 앨범 발매후 11월 이지가 탈퇴하고 새로운 기타 리스트로 킬 포 드릴스(KILL FOR THRILLS)의 길비 클락(Gilby Clarke)이 영입된다. 93년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곡들로 채워진 커버 모음집을 발표한다.

디스코그래피

1986 Live! Like a Suicide Uzi Suicide
1987 Appetite for Destruction [Edited] Geffen
1987 Appetite for Destruction Geffen
1988 The Lies, the Sex, the Violence Elektra
1989 G N’ R Lies Geffen
1991 Use Your Illusion I Geffen
1991 Use Your Illusion II Geffen
1992 Use Your Illusion I [Bonus CD] Alex
1993 The Spaghetti Incident? Geffen

Grid

맨체스터 출신의 데이빗 볼과 런던 출신의 리처드 노리스의 듀엣으로 결성된 그리드는 화려했던 케리어를 겸비한 테크노계의 슈퍼 프로젝트. 먼저 데이빗 볼은 80년대 초반을 풍미한 듀오 소프트 셀의 멤버로 알려져 있으며, 리처드 노리스는 5-6개의 인기 테크노 연주 밴드를 거친 베테랑. 단아하면서도 공간감을 이용한 수평적인 사운 드가 특징인 이들은 그간 브라이언 이노, 해피 먼데이스, 펫 숍 보이스, 아트 오브 노이즈 등과 작업을 하여 명성을 쌓았고 90년엔 데뷔앨범 “Electric head”를 92년에는 2집인 “Four five six”를 발표하며 노장 테크노의 안정된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라이언록(Lionrock) 인기 절정의 하드코어 테크노 신에 곧 폭발할 기대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라이언록은 각종 모음집과 리믹스 작업 등을 통해 낯익은 트리오. 앰시 버즈 비, 로저 라이언스, 저스틴 로버트슨 등 스튜디오 뮤지션 출신이자 베테랑들인 이들은 다른 밴드들에 비해 비교적 평균 연령이 높은 편이지만 사운드의 파워만큼은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96년에 공식 데뷔앨범인 “An instinct for detection”을 발표.

디스코그래피

1990 Electric Head East West
1994 4,5,6 Import
1995 Music for Dancing
Deconstruction
1995 Evolver Deconstruction

Grant, Ed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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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dy Grant at Supreme Court Gardens cropped” by Eddy_Grant_at_Supreme_Court_Gardens.jpg: Stuart Sevastos
derivative work: Austin512 (talk) – Eddy_Grant_at_Supreme_Court_Gardens.jpg.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Guyana에서 태어난 싱어이자 키타리스트인 Eddy Grant는 어린 나이에 팝씬에 등장하였다. 그의 음악경력은 가족이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후인 1960년대 British R&B 밴드인 The Equals에서 시작되었다. 1977년 Grant는 그의 첫솔로 앨범 Message Man을 내놓았고 약간의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70년대 말 Reggae와 Ska 음악의 열풍속에서 그는 활동무대를 보다 넓힐 수 있게 되었다. 1982년 Grant는 캐러비언적인 음악 스타일에 일렉트로닉 싸운드를 섞은 스타일의 앨범 Killer On The Rampage를 내놓아 히트시켰다. 특히 이 앨범에는 Electric Avenue가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 그는 영화 Romancing The Stone의 타이틀곡을 맡아 히트했다. Grant는 이후에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했고 80년대 후반 Jo’anna라는 히트곡을 기록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77 Message Man Ice
1979 Walking on Sunshine Ice
1979 Living in a Front Line Ice
1980 Love in Exile Ice
1980 My Turn to Love You Epic
1981 Cant Get Enough Ice
1981 Live at Notting Hill Ice
1982 Killer on the Rampage Portrait
1983 Eddy Grant Ice
1984 Born Tuff Portrait
1984 Going for Broke Portrait
1988 File Under Rock Enigma
1988 Hits Starr/Polydor
1990 Barefoot Soldier Enigma
1992 Paintings of the Soul Ice
1993 Soca Baptism RAS
1997 I Don’t Wanna Dance Ariola Express
2000 Hit Collection Ice Records
2001 Hearts & Diamonds Ice

링크
Ice Records의 Eddy
Grant 관련페이지

Go-Go’s, The

The Go-Gos - Belinda Carlisle, Kathy Valentine and Gina Schock.jpg
The Go-Gos – Belinda Carlisle, Kathy Valentine and Gina Schock” by Ron Baker (Kingsnake) from Austin, Texas – The Go-Go’s.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결성 : 1978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해산 : 1985년
멤버 : Belinda Carlisle, Jane Wiedlin, Charlotte Caffey, Gina Schock, Kathy Valentine, Margot Olaverra

데뷔 앨범 Beauty And The Beat가 예상밖의 넘버원을 차지하면서 80년대 여성 밴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고고스는 1978년 5월 LA에서 결성되었다. 당시의 LA는 뉴웨이브가 전성기를 이루던 때로 그룹의 창단 멤버였던 샬롯과 제인 그리고 베린다 등이 악기 연주를 보충하기 위해 지나와 케이시 등의 멤버를 보강하여 그룹을 결성한 후 뉴욕의 마스크 클럽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클럽은 당시 펑크 뮤직의 집산지였고 이 들 역시 처음에는 그러한 성향으로 인해 펑크 매니어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79년 CBS의 그래픽 아티스트인 진저 칸조네리를 매니저로 맞아들인 이들은 그의 지도 아래 미국 서해안 일대를 순회하면서 재능을 선보였고 또한 1980년 초반 매드니스, 스페션즈 등의 그룹과 함께 영영국 순회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이 때 영국의 스티프 레코드사로부터 레코딩 제의를 받고 첫 싱글 We Got The Beat를 발매했다. 그리고 얼마후 미국으로 돌아와 IRS사와 계약을 맺고 데뷔 앨범을 발표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앨범은 싱글 Our Lips Are Sealed, We Got The Beat 등이 빅히트했고 1982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82년 중반 폴리스와 순회 공연을 가졌고 2번째 앨범인 Vacation을 성공시켰다.

디스코그래피
1981 Beauty & the Beat
1982 Vacation
1984 Talk Show
1994 Return to the Valley of the Go-Go’s

Go West

80년대 영미의 팝계는 남성듀오의 전성기였다. Wham!, Tears For Fears, Pet Shop Boys, Soft Cell 등 이 흔치 않은 조합이 유난히 많았고, 인기를 얻었던 시절이 80년대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인기 듀오가 있는데 그들이 바로 Go West 였다.

1982년 결성된 Go West 는 키타를 담당하는 Richard Drummie 와 보컬을 담당하는 Peter Cox 가 멤버였고 키보드와 프로듀서를 맡은 Peter Wolf 가 지원을 해주는 구조였다. 그들은 남성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댄스팝을 주로 선보였는데 “We Close Our Eyes”, “Don’t Look Down”, “Call Me” 등이 큰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곡들이 바탕이 된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이 1985년 선보였는데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50만장이 넘게 팔리는 성공을 거두면서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1986년 그들은 BRIT 어워드에서 ”최고의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두 번째 앨범 Dancing On The Couch 는 1987년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True Colours”, “I Want To Hear It From You” 등과 같은 싱글이 발매되어 소폭의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데뷔 앨범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세 번째 앨범 Indian Summer 가 1992년 발매되었는데 이 앨범에는 그들의 최고의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The King Of Wishful Thinking“이 실려있었다. 이 곡은 영화 ’귀여운 여인‘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되면서 한때 미국의 래디오 방송에서 가장 많이 튼 곡으로 선정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1993년 Aces and Kings 가 발매되었는데 이 앨범에는 Smokey Robinson 의 걸작 “Tracks Of My Tears”가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1994년 Peter Cox는 솔로앨범을 내기로 결정하고 EMI 와 계약을 맺는다. 그 해 발매된 셀프타이틀 앨범에는 ”Ain’t Gonna Cry Again“이 실려 있었고 이 곡은 영국차트 30위 안에 들었다.

디스코그래피

Go West (1985)
Bangs And Crashes (1986)
Dancing On The Couch(1987)
Indian Summer (1992)
Aces And Kings (1993)
Live At The NEC(2001)
Tony Hadley vs Peter Cox & Go West (2004)

링크

Fan Page

Gibson, Debb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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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bbie Gibson 2” by MR O from USA [2]2002-06-24 20 20 12 DEB18.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Debbie Gibson 은 80년대 후반 팝계의 하나의 사건이었다. 작곡과 노래 모두에 능한 이 여가수가 많은 곡들을 히트시키며 팝계를 누비고 있을 당시의 나이는 불과 17세였다. 아직 10대였지만 그녀는 뛰어난 재능으로 뛰어난 멜로디의 댄스팝을 작곡해냈고 그 곡들은 대중들의 정서에 꼭 부합하는 것이었다.

Gibson 은 곡쓰기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Billy Joel 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했던 Morton Estrin 에게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사사받은 그녀는 불과 여섯 살의 나이에 “Make Sure You Know Your Classroom”을 작곡했다. 이것이 단순한 취미활동이 아님은 그녀가 12살 때 작곡한 “I Come From America” 가 작곡 콘테스트에서 1,000 달러의 상금을 획득할 때에 증명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Doug Breithart 과 계약을 맺고 악기연주, 엔지니어, 어레인지 등 음악에 관련된 일련의 작업들을 배워나갔다. 1985년까지 그녀는 100개가 넘는 곡을 녹음했다.

Gibson은 이후 애틀랜틱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1987년 여름 첫 싱글을 내놓았다. 첫 싱글 “Only in My Dreams” 은 차트 4위까지 올랐다. 1987년 가을 데뷔 앨범 Out of the Blue 가 발매되었다. 1988년 봄까지 이 앨범은 차트 10위 안에 머물러 있었다. 앨범에서는 연속적으로 히트싱글이 터져 나왔다. “Foolish Beat” 가 차트 정상을 차지함으로써 그녀는 가장 어린 나이에 자신이 작곡, 노래, 프로듀스한 노래를 차트 정상에 올린 가수로 등극했다.

두 번째 앨범 Electric Youth 의 첫 싱글은 “Lost in Your Eyes” 였다. 이 곡은 차트 정상에 3주간 머물렀다. 앨범 역시 차트 정상에 올라 5주간 머물렀다. 그러나 흥행이 지속적이진 않았다. “Electric Youth”은 탑10에 들지 못했고 이어진 두 싱글은 상업적으로 인기를 얻지 못했다. 1990년 내놓은 세 번째 앨범 Anything Is Possible 의 최고 순위는 불과 41위였다.

2년 후 Body Mind Soul 을 내놓았다. 이 앨범에서는 “Losin’ Myself.”가 마이너히트를 기록했다. 그녀는 한동안 레미제라블에 출연하는 등 외유를 하다가 1995년 얼터너티브 밴드 Soft Boys 와의 듀엣 “I Wanna Destroy You” 을 녹음하며 팝계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댄스팝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앨범 Think With Your Heart 를 내놓았다.

디스코그래피

1987 Out of the Blue Atlantic 
1989 Electric Youth Atlantic 
1990 Anything Is Possible Atlantic
1993 Body Mind Soul Atlantic
1995 Think With Your Heart EMI
1997 Deborah Espiritu
2000 Moonchild Sony International
2001 M.Y.O.B Golden Egg
2003 Colored Lights: The Broadway Album Fynsworth Alley

링크

Official Site
Deborah Gibson N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