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의 토킹헤즈 스페셜

스탑메이킹센스 상영을 기념하여 씨네21이 이번 호에서 토킹헤즈 스페셜을 마련하였다. 이 블로그 운영자도 한 꼭지를 담당했다.

“스메센의 밤”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미국에서는 A24가 토킹헤즈의 공연 필름을 복원하여 상영하고 이를 계기로 멤버들이 화해하고 넷 모두가 무대인사 등에 몰려다니는 기적이 있었지만, 밴드의 인지도 바닥인 국내에서 이 필름이 상영되는 상황을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각종 독립영화를 무모하게(!) 수입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찬란에서 다시 한번 무모한 일을 저질러 버렸다.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그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찬란 측에서 나도 시사회에 초대해 주어 시사회장에 가게 되었다. 상영은 7월 22일 저녁 용산CGV 15관에서 진행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IMAX가 적당한 상영관이 아닐지 생각했지만, 스크린의 크기는 그 정도면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배정받은 자리가 왼쪽인 점이 조금 아쉬웠다. 영화가 개봉되면 다시 가서 봐야 할 이유가 하나 추가됐다.

영화는 7시 30분 정각에 시작했다. 평소 익숙했던 그들의 공연 장면과 노래도 몇십 배는 커진 스크린과 훌륭한 음향 기기를 통해 들으니 당연히 감동은 배가 되었다. 이 필름 안에서는 공연 중 멤버들의 사소한 행동을 – 당연히 특히 Byrne의 – 즐기며 볼거리가 많은데 더 큰 영상으로 보니 이런 모습이 더 눈에 띄며 즐거움도 더 컸다.

무료표를 받고 온 시사회인 탓인지 다른 바쁜 일이 있으신 탓인지 – 아마도 이런저런 동호회에서 오신 분들도 있는 듯 – 상영 도중 몇몇은 자리를 뜨기도 했다. 음악이 귀에 익지 않아서인 듯? 하지만 아내 좌석 옆 좌석의 관객은 상영 후 ‘당시 어떻게 이런 음악을 했지’라고 감탄했다는 말을 전했다. 취향은 그렇게 가감이 생기는 법이다.

부디 이번 영화도 최소한 손익분기점을 넘었으면 한다. 그래서 찬란 영화사의 용기 또는 만용(!)이 보상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욱 좋은 음악 관련 필름을 소개해 줬으면 한다. 아내는 그런 의미에서 어서 알란 파커 감독의 The Commitments도 수입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럴 일 없겠지만, 그럴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개봉은 오는 8월 13일이다.

Talking Heads의 Stop Making Sense 국내 개봉 소식

그간 <서브스턴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마와의 토크쇼>, <찬실이는 복도 많지>, <여름날 우리> 등 독립·예술영화를 중심으로 수입 및 배급을 진행해온 찬란이라는 영화사에서 Talking Heads의 걸작 공연필름 <스탑 메이킹 센스>를 수입해서 상영할 계획이다. 개봉 예정일은 오는 8월 13일.

한편 다음은 상영 예정인 CGV 앱에 올라와 있는 상영 정보

Stop Making Sense 공연 필름

어제 Talking Heads의 스탑메이킹센스(Stop Making Sense) 공연 필름을 66인치 TV로 감상했다. 고백하거니와, 나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나는 여태 한 번도 이 필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적이 없었다. 어제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태 마치 이 필름을 봤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왜 착각 속에 살아왔는지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그 공연과 같은 이름의 라이브 앨범은 지겹도록 들었었고, 파편적인 공연 영상도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계속 감상했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는 무의식적으로 필름 전체를 봤다고 착각하거나 볼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1 뭐 이제라도 봤으니 됐다.

한편 이 공연 필름에서 밴드의 프론트맨 데이빗번은 전체적으로 일종의 영매(靈媒, psychic) 혹은 무당과도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는 굿을 하다 신들린 무당이나 되는 것처럼 노래를 부르면서 기괴한 춤을 추고 몸을 떨어댄다.2 번은 공연 시작과 함께 붐박스와 통키타로 버스킹을 하는 고독한 방랑자이다. 이후 스탭들이 장비를 옮기며 점차 무대가 만들어지고 멤버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제 그들은 그 동안의 발표곡들을 부르면서 기괴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안무와 – 특히 번, 백보컬, 티나 등이 선보이는 개다리춤 – 편집증적인 몸떨림 등을 통해 통상 마초적이고 섹시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락공연과는 다른 토킹헤즈 표 공연을 선보인다.

이 필름이 찬사를 받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카메라의 독특한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카메라는 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통상의 각도와 다른 각도에서 공연자들과 객석을 찍고 있다. 또 강렬한 조명을 통해 무대를 빛과 그림자로 분할하는 등 극적 효과가 시도된다. 공연자들의 클로즈업을 통해 그들이 마치 연극배우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스티브스케일스나 백보컬 등의 조연의 움직임도 충실히 담아내서 공연의 현장감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객석은 많이 보여주지는 않지만, 영상 막바지에 관객들의 즐거운 표정으로 춤을 추어대는 모습을 짧게 짧게 보여주며 공연의 양방향성을 연출하기도 한다.

한편 이 공연 필름을 보면서 조금은 마음이 불편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건 “확장한 토킹헤즈”가 되면서 생길 수밖에 없었을3 “오리지널 토킹헤즈”의 위치 설정에 대한 갈등이 영상을 통해 느껴졌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 내몰린 최우선 순위로 여겨지는 멤버는 개인적으로는 제리, 그는 오리지널 멤버 등장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기타를 치며 공연을 시작하지만, 세션뮤지션 알렉스 위어에 밀려 곧 키보드를 맡게 된다. 하지만 건반악기는 버니워렐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4 이렇듯 스탑메이킹센스 필름은 공연 필름의 걸작임과 동시에 토킹헤즈 팬이라면 맥락을 알 수 있을 컨텍스트가 내포되어있는 영상이기도 하다.

이 공연의 감독 조나단드미는 “엄청”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다른 필르모그래피를 통해 접하면서 ‘멋진 감독이구나’라고 늘 생각하고 있던 감독이다. 특히 ‘썸씽 와일드(Something Wild)’나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5을 보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감독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이토록 천재적인 영화인이 음악계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고 있던 밴드의 공연을 필름에 담겠다고 생각했을, 그리고 함께 작업하기로 합의했을 그 상황은 상상만 해도 흥겨운 상황이었을 것 같다. 각자의 분야에서의 천재들이 만나서 협업을 논의하고 마침내 그 결과물이 걸작으로 인정받는 순간. 그런 상황이 스탑메이킹센스에서 실현된 것이다.

  1. 그런데 사실 이런 어이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기억력은 꽤 오랫동안의 고질병이다
  2. 이러한 안무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Crosseyed and Painless의 뮤비를 찍으면서 접한 댄스팀의 안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3.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적인” 확장된 토킹헤즈와는 멤버가 달라서 또 다른 “확장한 토킹헤즈”이기도 하다
  4. 그런데 제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지 지금도 토킹헤즈의 유산에 대한 적자 노릇을 하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참 대단한 멘탈이다.
  5. 개인적으로는 원작 소설보다 잘 만들어진 흔치 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한니발 렉터의 첫 등장을 잊을 수가 있을까?

Talking Heads / Speaking in Tongues [1983]

Talking heads burning down the house standard cover art.jpg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discogs.com/viewimages?release=2188727, Fair use, Link

걸작 Remain In Light을 내놓은 뒤 Talking Heads는 한동안 꿀맛같은 휴지기를 가졌다. 이 시기에 데이빗번은 브라이언이노와 함께 1981년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라는 제목의 앨범을 내놓았다. 데이빗 개인적으로는 The Catherine Wheel이라는 앨범 작업도 했다. 우연히도 나머지 멤버들도 같은 해 자신들만의 창작물을 냈다. 즉, 크리스프란츠는 티나웨이머스와 함께 Tom Tom Club이라는 밴드를 조직하여 셀프타이틀 앨범과 Under the Boardwalk를(1982년) 내놓았는데, 첫 번째 앨범에서 발매된 싱글 Genius Of Love가 크게 인기를 얻었다. 제리해리 역시 The Red and the Black이라는 솔로 앨범을 내놓았다.

물론 밴드 활동도 이어지고 있었다. 1982년 밴드의 라이브 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가 발매되었다. 스튜디오앨범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감도 없지 않지만, 이 앨범은 그 나름대로의 그간의 밴드의 음악적 성과가 차곡차곡 담겨진 뛰어난 라이브앨범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밴드는 “확장한 토킹헤즈”와 함께 일본 및 유럽을 포함한 순회공연도 – 라이브 앨범을 홍보하는 라이브! – 가졌다.1 이렇듯 밴드 멤버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만족스러운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기간이 이후의 활동에 있어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각자의 사이드프로젝트를 통해 멤버들이 점점 더 흑인음악의 다양한 면을 그들의 음악에 녹여내는 목표를 추구하였고 많은 성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밴드의 리듬 섹션끼리 모여 만든 탐탐클럽의 펑키(funky) 댄스팝 사운드가 대중에게 먹혔다는 점이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2 이러한 사실은 바로 1983년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한 Speaking in Tongues가 백인 락과 흑인 댄스팝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3

악상의 작업은 롱아일랜드에 있는 크리스의 아파트 등에서 진행되었고, 몇몇 기본 트랙은 뉴욕의 Blank Tapes에서 녹음했다. 본격적인 앨범의 녹음은 바하마에서 이루어졌다. 이노는 이제 프로듀싱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4 그렇게 되면서 프로듀서의 이름은 Talking Heads가 되었다. “확장한 토킹헤즈” 멤버중 상당수는 이번에는 앨범 작업에서부터 참여했다. Bernie Worrell은 Girlfriend is Better에서 신디사이저를 맡았고, Nona Hendryx과 Dolette McDonald는 유사(類似) 가스펠곡과도 같은 Slippery People에서 쏘울풀한 보컬을 맡아주었다. Steve Scales는 Burning Down the House 등에서 퍼커션을 연주했다.

특징적인 세션 뮤지션은 Wally Badarou와 Alex Weir다. Level 42와 함께 활동했던 왈리는 이 앨범에서 세 곡의 신디사이저 연주를 맡아서 앨범의 그루브를 책임졌다.5 R&B 밴드 The Brothers Johnson의 멤버였던 알렉스는 Adrian Belew 대신에6 기타를 연주했다. 알렉스는 어이없게도 라이브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의 홍보를 위한 라이브 투어에서부터 참여했는데,7 더 많은 흑인 뮤지션의 참여는 더 많은 흑인 음악이 가미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결과로 Rolling Stone의 David Fricke은 “예술적인 백인 팝음악과 딥 블랙 펑크(funk)를 구분하는 얇은 선을 마침내 무너뜨린 앨범”이라고 극찬했다. 물론 이미 그 얇은 선은 탐탐클럽이 부순 상황이었고 이 앨범은 그 후속작이다.

A yellow plastic case with clear vinyl albums inside that have red and blue photographs stamped onto them
By Derived from a scan of the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record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in either case., Fair use, Link
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앨범 아트

앨범 아트는 데비잇의 작품이다. 이전 작품의 커버 아트에 비해 많이 밝은 톤이라는 느낌인데 당시 밴드는 (토킹헤즈의 팬이기도 했던) 장미쉘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나 데이빗 호크니( David Hockney)와 같은 팝아트 예술가들이 주최하고 동석했던 파티에 가는 등 당대의 화가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데이빗도 이런 작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이 앨범의 한정판의 디자인도 못지않게 밝은 톤인데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 창작 과정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는데 원래는 라우첸버그의 디자인이 정식 버전이 될 예정이었으나 너무 복잡한 작품 구성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한정판이 되었다. 그래서 데이빗이 임시로 로스엔젤레스의 선셋마퀴스(Sunset Marquis) 호텔에 있던 의자를 넘어뜨려 찍은 사진을 조합한 커버를 만들게 된 것이다.8

이 앨범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리뷰를 써줄 정도로 상업적인 인기를 얻었다. 밴드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만 백만장 이상의 카피가 팔리며 RIAA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특히 카셋테잎의 판매가 두드러졌는데 십대 사이에서의 소니의 워크맨 열풍이 이러한 트렌드를 가속화하였다. 레코드사는 테잎에는 오리지널보다 더 긴 리믹스 곡을 수록할 수 있었는데 이 앨범에서도 Moon Rocks를 포함한 다섯 곡이 테잎 버전이 LP 버전보다 길다. 이런 변주를 통해 회사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더 많은 수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9

대세가 된 MTV의 존재도 앨범과 싱글의 인기에 한몫했다. 도시 외곽의 평범한 이층집의 벽과 도로에 데이빗의 얼굴이 줌인된 영상이 비춰지고, 전부 하얀 색의 의상을 입은 밴드 멤버들이10 아이, 뚱뚱한 남자, 늙은 여자 등으로 교체가 되는, 토킹헤즈 특유의 수수께끼 같은 Burning Down the House11의 뮤직비디오가 MTV에서도 인기를 얻으면서 밴드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요컨대 스피킹인텅은 워크맨과 MTV라는 시대적 조류에 잘 적응한 한 아트락 밴드의 성공담이라고 할 만하다.

이 앨범이 개인적으로 보다 각별한 이유 하나는 내게 토킹헤즈라는 존재를 처음 알려준 노래가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자 밴드의 가장 큰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Burning Down the House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노래가 좋아서 시내 레코드 가게에 가서 그들의 앨범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사들고 온 앨범은 알고 보니 밴드의 후속작 Little Creatures였다. 토킹헤즈의 앨범중 국내에 유일하게 라이센스로 나온 앨범은 그 앨범뿐이었고 가게 점원은 그 앨범을 내게 안겨준 것이었다.

이렇게 나를 토킹헤즈의 파리지옥에 빠져들게 만든 곡이 수록된 앨범, 그게 바로 음악적 “방언(Speaking in Tongues)”이 터져 나오는 이 앨범이다. 이 앨범이 특히 맘에 드는 점은 흑인 음악으로의 지향점을 보다 명확히 하면서도 전작 Remain In Light을 의식하여 보다 더 아방가르드한 방향으로 진행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팝적인 요소를 한층 가미하여 본인들도 의식하지 않았을 상업성과 음악성의 얇은 선 사이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음악을 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앨범의 홍보를 위한 공연은 1984년 조나단 드미(Jonathan Demme)가 감독하여 만든 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연 기록물로 간주되는 Stop Making Sense로 이어졌으며, 같은 이름의 라이브 앨범이 탄생하는 등 이어지는 토킹헤즈의 창작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재밌는 점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토킹헤즈와 The Smiths가 스튜디오 앨범 수에서 2배의 차이(각각 8개와 4개)가 나는데, 딱 이 앨범이 토킹헤즈의 다섯 번째 앨범이라는 점이다. 즉, 스미쓰는 이 마수걸이를 넘지 못했고 토킹헤즈는 어렵사리 그 작업을 했기에 스미쓰의 2배의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이다.

  1. 일본에서 데비잇과 제리는 아델르 루츠(Adelle Lutz)라는 시세이도 모델과의 염문에 휩싸이기도 한다. 삼각관계의 승자는 데이빗에 가깝다.(This Must Be The Place, 234-236쪽)
  2. 제리도 이에 대해 같은 의견이었는데 그는 “탐탐클럽이 성공했기 때문에 토킹헤즈의 경쟁적인 정신을 다시 촉발할 수 있고 우리는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396쪽)
  3. 펑키함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했다. 한 예로 데이빗은 Making Flippy Floppy라는 곡의 가사를 쓰면서 flippy floppy가 무슨 의미인지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만 그 발음이 펑키(funky)했기 때문에 가사로 채택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41쪽)
  4. 크리스에 따르면 이노는 이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는데 예를 들면 그는 미국까지 콩코드를 타고 올 텐데 그 비용을 밴드가 부담하라고 했다고 한다.(Remain In Love, 290p)
  5.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왈리 역시 보렐처럼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은 연주자였고 Level 42 이외에도 그레이스존스의 Warm Leatherette에서 곡을 쓰고 연주하는 등의 실력파 뮤지션이었다.
  6. 토킹헤즈의 전기 This Must Be The Place의 서술(234쪽)에 의하면 블루가 더 이상 밴드와 일하지 않게 된 계기는 그가 탐탐클럽과 같이 작업했는데 크리스와 티나가 제대로 정산을 해주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애드리안은 크리스와 티나를 만나면 언제나처럼 즐겁게 인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같은 책 239쪽) 한편 크리스는 애드리안이 Robert Fripp 과 작업하기 위해 그들과 합류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Remain In Love, 291p)
  7. This Must Be The Place, 233p
  8. This Must Be The Place, 248p
  9. This Must Be The Place, 249-250p
  10. 흥미롭게도 일본의 락그룹 안전지대(安全地帯)도 이 영상에서 비슷한 디자인의 하얀 색 의상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다
  11. 크리스의 회고에 따르면 이 노래의 제목은 크리스가 관람했던 P-Funk 공연에서 관객들이 “Burn down the house”라고 외쳤던 상황을 밴드 멤버들 간의 잼에서 흉내 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Remain In Love, 289p)

토킹헤즈가 그 집을 태워버렸다. 서로 각자가 아니라

이 팬의 이름은 스파이크리다.

“역사상 최고의 콘서트 필름입니다!” 토론토 인터내셔널페스티벌에서 토킹헤즈의 새롭게 리마스터된 콘서트 다큐멘터리 스탑메이킹센스의 시사회에서 이 베테랑 감독이 선언했다. 리는 그룹이 이십여년만에 처음으로 대중에 전체 밴드의 모습으로 나타난 영상회와 질의응답 시간의 사회를 맡아줄 것을 요청받았다.

몇년 동안 팬들은 멤버인 데이빗번, 티나웨이마우스, 크리스프란츠, 제리해리슨에게 재결성해줄 것을 애걸해왔다. 그러나 월요일의 이벤트는 이 락커들이 서로 한 방에 모일 수는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테스트였을 것이다. 번과의 마지막 만남이 “20여년 전”이었다는 프란츠는 그가 2020년 내놓은 생동감있는 회고록 리메인인러브에서 회고하길 번은 그룹의 공동작업에 대해 반복적으로 단독의 작곡인 것으로 간주했었고, 1991년 모두를 놀라게 하는 밴드의 해산을 주도했다. 그리고 나머지의 바람과 반해서 EMI의 카탈로그에 완전한 소유권에 서명해버렸다. 한편 웨이마우스는 이전에 번을 “트럼프주의자”이자 “거래적”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TIFF에서 잠복해있던 드라마는 재빨리 잠재워졌다. 리의 사회 하에 상영 후의 인터뷰는 최대한 밝고 공손했다. “역사상 최고의 콘서트 필름입니다!” 그는 다시 선언해서 그룹이 그들의 음악과 영상의 유산을 축하며 미소짓게 만들었다.

“토킹헤즈는 너무나 뛰어난 밴드이고 우리가 라인업을 확장했을 때… 우리는 다른 차원으로 옮겨갔었습니다.” 프란츠가 말했다. “자화자찬해서 미안한데 우리 밴드 멤버가 오늘밤 다시 함께 한 것이 너무 좋아요.”

CBGB의 열기 속에서 구성된 토킹헤즈는 1970년대 뉴욕에서 협조적이고 매혹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운드에 집중하는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인 라이브 연주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는 그들을 보다 전통적인 가사-코러스-가사 위주의 동료 뮤지션과 차별화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특히 피어오브뮤직(1979)에서 종합적인 텍스쳐를 락에 결합하고 차기작 리메인인라잇(1980)과 스피킹인텅스(1983)에서는 아프리카의 그루브에 영감을 받은 복합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는 등 스튜디오 마술에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토킹헤즈는 비록 2021년이 되어서야 평생공로상으로 처음 그래미를 받기는 했지만 드물게도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성공적이었다.

1984년 발표한 스탑메이킹센스는 그들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라이브 공연을 소중하게 담아냈다. 이 획기적인 필름은 당신을 토킹헤즈가 스피킹인텅스 투어로 3일 밤을 연주하는 로스엔젤레스의 판타지스 극장으로 데려간다. 당시 그룹은 쇼에서 라인업을 서서히 확장하면서 보다 풍부하게 실연하는 사운드나 장엄한 연출법 등을 선보였다.

당신이 스탑메이킹센스를 처음 접했든 반복적으로 시청을 했든 (해리슨이 감리를 맡은) 리마스트된 사운드를 포함한 복각판은 당신을 즉시 그들의 연주장으로 데려간다. IMAX에서 극단적으로 친밀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그는 너무 땀이 흥건하네요!” 번의 근접 샷에서 내 이웃 하나가 말했다.) 극장의 팬들은 “버닝다운더하우스”에 원 모양으로 회전했고 “원스인어라이프타임”에서는 리는 좌석을 차고 일어난 이들에 합류했다. “라이프디어링워타임”의 연주 동안 번의 모습에에는 다시 한번 계단에서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지금 이걸 봤을 때 난 이게 극장에 오는 이유야!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번이 “내 랩탑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라고 농담하기 전에 이야기했다.

상영회 이후 리는 동기부여 감독 역을 맡았다. “모두 환영해주세요. 전세계적으로 기록을 세울 예정입니다.” 토킹헤즈 101으로서 부분적으로 발매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기에 리는 타임라인과 함께 1983년 어떻게 촬영했는지에서부터 밴드와 청중이 2023년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이르기까지 질의를 진행했다. 특별히 웨이마우스의 그의 베이스 스타일에 친밀감을 보이며 리는 그에게 이 필름에서 맘에 드는 연주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봐요 스파이크” 그가 대답했다. “그건 마치 내 아이들 중 누구를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고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같아요.”

토킹헤즈의 발언이나 팬의 질문은 – 예를 들면 “완전 새로운 관객에게 이 상징적인 영화를 상영하니 어떤 느낌인가요?”와 같은 – 이 방안에 하나의 단어를 남겼는데 ‘사랑’이다. 리는 다시 강조했다. “사랑!” 리는 항상 같은 정서를 공유한 것만은 아닌 이들 밴드 구성원을 위한 치료의 힘이 있는 주문이라도 되는양 소리쳤다. “영원하다!” 그는 그들의 유산에 대한 확신감으로 반복했다. “풍부하고 세심한 사운드!” 그는 그룹이 기뻐할 정도로 강조하였다.

“이 필름이 힘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로 당신은 스테이지 위에서 우리가 무척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해리슨의 말이다.

“제가 거기에 사랑이란 단어를 다시 넣어도 될까요?” 리가 물었다. “사랑! 사랑!”

“사랑과 즐거움, 그리고 청중이 ‘당신도 이 중 하나야’라고 말하고 있어요.” 해리슨이 이어나갔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당시의 놀라운 감정이 다시 떠오르곤 합니다.”

토킹헤즈는 리를 좀 더 자주 만나야 하고 이는 그들에게 좋은 일일 것이다.

게일블레커가 디자인한 아이코닉한 빅수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번은 일본에서 그의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는 극장에서 동작과 부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실제 삶보다 크다고 이야기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난 생각했는데 오~! 내 양복도 역시 커야겠구나.” 번이 말하자 폭소가 터졌다.

“오늘은 정말 컸어요.” 프란츠가 대꾸했다.

웨이마우스는 필름을 찍기전에 “모든 곡의 악보를 따고, 각 연주자가 무엇을 하는지, 누가 움직이는지를 알기 위해” 밴드와 함께 몇주간 여행했던 비주얼 컨설턴트 샌디맥레오드에게 고마움을 표했는데 “내 생각에 그게 실제 촬영에서 굉장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밴드는 또한 팀의 노력으로 스탑메이킹센스의 감독으로 많은 신뢰를 받았던 조나단드미에게도 칭찬을 쏟아부었다.

“난 그가 이것을 일종의 합주 필름이라고 보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번이 고인이 된 감독에 대해 말했다. “당신은 많은 배우를 가지고 있어요. 당신은 하나하나의 캐릭터에 대해 알게 되죠. 그리고 당신은 그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하는지 바라봅니다. 나는 나많의 세상이 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본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프란츠가 덧붙였다. “조나달은 우리를 많이 신뢰했어요. 우리가 하는 것이 영화로 만들 가치가 있고 또한 그것이 미래에 기억될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해줬죠.”

리는 아쉽게도 밴드 멤버들이 어떻게 이제 잘 지내게 됐는 지에 대해서나 라이브를 위한 재결합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번은 다만 최근 사람들에게 그가 그룹을 끝내게 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고 그것을 “꼴 사나운 해체”라고 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한다. 토킹헤즈의 이전의 2002년 공개 석상에서 프란츠는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게 밴드가 “행복한 끝맺음”의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한 바 있다. TIFF는 보다 행복한 것이 되었다.

“마술같아요.” 웨이마우스는 스탑메이킹센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감상은 그 밤 그 자체에게도 쉽게 적용될 것이다. “모든 것이 특별해요. 당신이 우리와 청중 사이에 대해 이야기한 그 사랑, 팀웍, 우리 동료, 영화를 찍은 동료. 모든 것이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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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Making Sense’에 관한 Chris Frantz의 인터뷰

Rolling Stone이 Stop Making Sense에 관해 Chris Frantz와 인터뷰한 기사 Talking Heads on ‘Stop Making Sense’: ‘We Didn’t Want Any Bulls–t’을 번역했다(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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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making sense poster original”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moviegoods.com/movie_poster/stop_making_sense_1984.ht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우리는 엉터리를 원하지 않았어요.” Talking Heads의 드러머였던 Chris Frantz가 밴드의 영향력 있는 1984년의 콘서트 필름 Stop Making Sense에 대해 입을 열었다. “우리는 클리쉐를 원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들이 기타 솔로를 할 때 사람들의 손가락의 클로즈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시선이 오래 머물러 있는 카메라를 원했어요. 그럼으로써 당신은 뮤지션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 수 있습니다.”

그룹이 추가적인 퍼커션, 키보드, 기타 등의 확대된 라인업으로 Speaking In Tongues의 순회공연을 하는 와중에 할리우드의 팬터지스(Pantages) 극장에서 가진 세 번의 쇼를 필름에 담은 것은 1983년 겨울이었다. 그 영화에서 – 후에 ‘양들의 침묵’으로 오스카를 수상한 Jonathan Demme가 감독한 – 그룹이 원하는 한가지는 당시 MTV에서의 여하한의 것들에 완전히 반대되는 다른 것이었다. 이 필름은 뮤지션의 얼굴들을 길고 오랜 클로즈업으로 구성되어 있고, 청중을 거의 보여주지 않으며, 안무를 과장하기 위해 드라마틱한 조명을 썼다. Frantz, 보컬 David Byrne, 기타/키보드 Jerry Harrison, 그리고 베이스 Tina Weymouth로 구성된 그룹은 자금의 대부분을 그들 스스로 조달했고 Stop Making Sense가 출시될 즈음 이러한 집요함은 히트로 보상받았다. 팬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문자 그대로 복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지난 주, Stop Making Sense가 디지털로 나온 지 30주년이 되었고 또한 미국의 다양한 극장에서 재발매 되었다. 롤링스톤은 최근 여전히 그의 아내 Tina Weymouth와 Tom Tom Club이라는 이름으로 레코딩 활동을 하고 있는 드러머와 함께 하며 이 필름이 어떻게 30년이나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당신이 Stop Making Sense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Talking Heads에 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칭찬들? 영화는 그 모든 발언들이 사실임을 증명했다.[웃음] 우리는 그 작업에 일했던 이들이 너무나 멋지게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무척 행운이었다. 난 그 쇼를 보기 위해 1,000 불이라도 지불하겠다.[웃음]

어쨌든 그 영화를 위한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나왔나요?

우리는 모두 그 특별한 투어를 기록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그 공연을 배우기 위해 약 한달 간 연습했어요. 우리가 여정에 오를 바로 그 시점에, Jonathan Demme가 그의 당시 여자친구 Sandy McLeod와 우리 공연에 와서 “우린 이 쇼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멋진데”라고 생각했죠. Jonathan Demme는 당시 신인 감독이었죠. 그는 우리가 매우 좋아하는 Melvin and Howard라는 영화를 마쳤어요. Jonathan은 우리보다 그리 더 많이 나이먹지도 않았고 당시에 매우 핫했어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요.

Jonathan은 어떻게 장면을 구성했죠?

당시에 그는 Swing Shift라는 Goldie Hawn을 위한 영화의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 영화의 첫 장면을 본 후 그녀는 그녀가 등장하는 모든 씬을 완전히 다시 찍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밴드를 쫓아다니면서 밴드 멤버들이 무엇을 하는가, 언제 카메라가 그들을 담아야 하는 가에 대해 노트를 만드는 것은 Sandy McLeod의 일이었죠. 그녀는 Jonathan이 Goldie랑 씨름을 하고 있을 동안 우리를 몇 달이나 따라다녔어요.

당시 당신들은 워너 브로스의 지원을 얻었나요?

아무도, 특히 우리 싱어 David Byrne이, 언급하지 않은 한가지는 영화 제작은 밴드가 지불했다는 사실입니다. 네. 우리는 워너 브로스에게 빚을 냈어요. 그러나 이는 우리의 로열티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우리 넷은 그 돈을 게워낸 것입니다. 우린 당시 저축도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에 우리의 노후대비 저축을 쏟아 부은 것이고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했고 그런 행동을 기꺼워했죠. 우리는 그 돈을 다시 찾았을 뿐 아니라 위대한 영화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넓은 개방공간 대신 시골의 작은 대학극장이나 아트하우스에서 상영한다는 것도 밴드의 결정이었어요. 그것이 실행되었을 뿐 아니라 성공적이었던 것이 한 이유죠. 영화는 아트 상영관에서 장기 상영할 수 있었어요. 청중이 계속 찾아올 거에요.

밴드가 개인적으로 나온다는 아이디어는 언제 나온 것인가요?

그것은 투어가 시작되기 전에 다 결정된 거에요. 그것은 일종의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일의 재생이죠. 내 생각에 David이 하고 싶었던 것은 David으로 시작해서 그가 밴드에 Tina가 합류하도록 초대하고 Chris를 초대하고 Jerry를 초대하고 Steve Scales를 초대하는 등의 것이 아니었을 거에요. 그라나 그렇지는 않았죠. 실제 벌어진 상황은 Tina, David, 그리고 내가 뉴욕으로 옮긴 후 밴드를 시작하자는 생각을 갖게 된 거죠. 난 David에게 이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확신시켰어요. 난 Tina에게 밴드에 합류하라고 요청했죠. 내가 Jerry Harrison에게 밴드에 합류하라고 요청했고요. 그러니 그것 일종의 재생이에요. 그러나 그것은 영화의 내러티브로써 아주 잘 작동했어요.

드럼 루프에 맞춘 “Psycho Killer” 연주에서의 David 의 인트로에 대해 어떤 것이 기억나십니까?

David이 그 작업을 혼자 힘으로 했어요. 난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마치 “내가 이 일을 할거야”라 하는 것 같았죠. 그건 잘 됐어요.

당신이 무대에 오를 때 잠시 헤드폰을 듣던데요. Jonathan이 지시한 것인가요?

아뇨. 헤드폰으로 난 템포를 듣고 있었어요. 우리는 사흘 동안 찍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각 노래가 같은 템포로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죠. 그래서 나는 처음에 들을 수 있는 일종의 딸깍 거리는 트랙을 고안해냈죠. 때때로 라이브를 할 때 당신은 조금 빨라질 수 있어요. 특히 펑크, 뉴웨이브 스타일에서는 말이죠. 청중은 햄머링을 좋아하고 생생한 공연을 하는 것을 좋아하죠. 그래서 우리는 너무 생생하지 않도록 확인해야만 했어요.

영화는 밴드 멤버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합니다. 어떤 것이 당신이 좋아하는 장면이죠?

Tina는 영화 내내 진짜 천사 같고 위대해 보입니다. 그리고 Bernie Worrell이 무엇을 하는지 아는 이를 이상하게 흘겨보는 장면을 사랑합니다.[웃음] Bernie는 바라보기에 유쾌한 친구입니다. David은 내내 놀라웠어요.

David이 “Life During Wartime“을 부를 때 드럼 쪽으로 와서 놀랐습니까?

그가 전혀 떨어지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그는 많이 움직였어요. 알다시피. 그는 진정 대단한 퍼포머입니다. 또는 적어도 그때는요.

그룹은 어떻게 안무를 연습했나요?

모두가 각자의 것을 연습했습니다. [백업 싱어들은] 대단했죠. Edna [Holt], Lynn [Mabry]는 정말 놀라웠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의상에 열광하지는 않았어요. 알다시피 그들은 멋진 흑인 여성들이고 한껏 차려 입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David은 그들을 마치 요가 옷 같은 것을 입혔어요. 그들은 익숙해졌고 난 근사했다고 생각해요.

의상에 관련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David이 말하길 “난 모든 사람이 중성적인 색으로 입었으면 좋겠는데 누군가가 지나치게 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에요.”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는 당신 인생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흰색 양복을 입고 나타났죠.[웃음]

그게 놀라웠나요?

우리는 그가 그렇게 입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양복이 실제로 만들어질 때까지 어떻게 생길 것이라는 것은 몰랐죠. 놀라웠어요. 정말 웃겼죠.[웃음]

양복에 관한 아이디어는 뭐였나요?

우리는 투어 전에 일본에 간 적이 있어요. 그리고 David은 언제나 그게 주인공이 굉장히 큰 사각형 옷을 입는 일본의 노 극장 의상에 기초한 것이라고 말했죠. 기모노 스타일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양복과 비슷한.

그래서 Jonathan Demme은 지시를 많이 했나요?

아뇨. 그는 담기만 했어요. 우리에게 지시한 유일한 이는 기술적으로 프로듀서였던 Gary Goetzman으로부터였어요. Gary는 “카메라를 쳐다보지 말고 빌어먹을 코 후비지마.”라고 말했죠. 그가 우리 받은 지시였어요.[웃음]

왜 청중 장면은 영화의 처음과 끝에만 등장하나요?

그 아이디어는 마치 관람자가 극장에서 가장 좋은 좌석을 차지하는 것처럼 관람자에게 상영된다는 것입니다. 극장에서의 최고의 좌석은 청중이 보이지 않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가 밴드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콘서트를 보는 것 같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상영됐을 때 사람들이 극장에서 춤을 춘다는 것을 듣고 놀랐나요?

난 그 장면을 실제로 보고 “와 멋지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은 Rocky Horror Picture Show이후로[웃음] 처음 보는 것이었죠. 많은 청중의 참여가 있었지만 다른 종류의 것인.

영화에서의 Tom Tom Club 부문은 순회공연의 정기적인 레퍼토리였나요?

네. 당시 “Genius of Love“가 큰 인기였어요. 그게 또 David이 그의 큰 양복으로 갈아입을 기회를 주기도 했죠.

그리고 당신이 마이크를 쓸 기회도 줬고요.

네. 내가 영화에서 유일한 바람이라면 나에게 마이크를 좀 더 줬더라면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알다시피 난 그저 흥분했을 뿐이에요. 무슨 말을 하겠어요.

한 Talking Heads 웹사이트는 당신이 싸인한 Stop Making Sense 블루레이 카피를 사은품으로 주던데요. 지금 당신들은 다들 사이가 좋나요?

Tina와 나는 사이가 좋고요.[웃음] Jerry와도 사이가 좋고요. David과는 내 짐작에 “이메일 친교”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사실은 꽤 오랫동안 그를 개인적으로는 보지 못했어요. 그건 나의 결정이 아니라 그의 결정이고요. 그는 이메일로 유지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쨌든 난 그 게임을 할 수 있어요.[웃음] 난 이메일에 답장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하나의 밴드 안에서 활동할 수 없을지라도 여전히 때때로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있죠. 그들은 우리에게 블루레이를 보냈고 우리는 싸인을 해서 되돌려보냈죠.

음악적으로 당신과 Tina의 다음 작업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앨범을 위한 Tom Tom Club 기본 트랙이 여섯 개 정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독일 식으로 “Chris und Tina”로 부르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 중이죠. 음악은 록앤롤이나 펑크(funk)와 반대인 완전한 일렉트로닉이고 독일풍입니다. Kraftwerk 의 영향을 받았죠. 그게 현재 우리가 생각중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Theme”이라는 이전에 발표되지 않았던 연주곡이 온라인에 떠돌던데요. 그 곡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요?

멋진 노래죠. Beach Boys의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에요. 아마 Talking Heads가 존재하던 당시의 첫 6개월 간 연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적절한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The Shirts 에 있던 한 친구의 작은 지하실에 스튜디오 녹음한 것은 있어요. 우리는 녹음을 많이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녹음을 연습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부르클린으로 가서 The Shirts 덕택에 그들의 작은 지하실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있었죠. 우리는 그 곡 말고도 몇 곡 더 녹음했어요. 나는 최근에 테잎들로 구워서 그것들을 디지털로 변환했어요. 그리고 그것들은 놀랍도록 좋아요.

그것들을 발매할 예정인가요?

아마도 언젠가는요. 현재까지는 계획이 없어요. 그러나 그럴 수도 있고요. 그것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우리가 결코 발표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는 그게 그렇게 좋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40년 후에 그것들을 듣고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빌어먹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네. 굉장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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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 Film이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50개의 콘서트필름

Total Film이 최근 역대 공연 영화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Jonathan Demme 가 감독한 Talking Heads의 Stop Making Sense를 선정했다. 

‘이 락 공연은 조나단 드미가 토킹헤즈 공연의, 솔로 공연에서부터 밴드 전체의 공연과 데이빗 번이 몸에 큰 양복을 입고 춤을 추는 것에 이르기까지 혁신적인 무대장치를 캡처하면서 해체되었다. 최고의 노래는 첫 곡, 사이코킬러다. – 번 홀로 치는 어쿠스틱 기타와 스타카토 리듬의 드럼머쉰 때문에 싱어가 살인당한 희생자의 주위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것 같다.’
‘The rock gig is deconstructed as Jonathan Demme captures the innovative staging of a Talking Heads gig, from solo performance to full band to David Byrne dancing in an oversized suit. Best song is the opener, Psycho Killer – just Byrne, an acoustic guitar and a drum machine whose staccato rhythms cause the singer to stagger around like a murder victim.’[출처]

1위에서 20위까지의 리스트 

1. Stop Making Sense (1984) 
2. The Last Waltz (1978) 
3. Gimme Shelter (1970) 
4. Woodstock (1970) 
5. Awesome; I Fucking Shot That! (2006, feat. Beastie Boys) 
6. Don’t Look Back (1967, feat. Bob Dylan) 
7. Meeting People Is Easy (1998, feat. Radiohead) 
8. Monterey Pop (1968) 
9. Buena Vista Social Club (1999, feat. Wim Wenders, Ry Cooder and veteran Cuban musicians) 
10. Jazz On A Summer’s Day (1960) 
11. This Is Spinal Tap (1984) 
12. Elvis: That’s The Way It Is (1970) 
13. The Kids Are Alright (1979, feat. The Who) 
14. T.A.M.I. Show (1964) 
15. Dave Chappelle’s Block Party (2006) 
16. Let It Be (1970) 
17. Standing In The Shadows Of Motown (2002) 
18. The Song Remains The Same (1976) 
19.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3) 
20. Soul Power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