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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혁명, 아방가르드, 그리고 전자음악

1919년에 러시아의 음향 기술자 레온 테레민 Leon Theremin(본명 Lev Sergeivich Termen) 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전기적인 음률의 고저가 연주되는 테레민 theremin(또는 thereminvox, aetherphone 으로 불리기도 함)이라는 흥미로운 악기를 발명한다. 이 악기는 연주자가 악기에 손을 대지 않고도 연주하는 악기로서 연주자의 손이 금속봉에 얼마나 근접하는 가에 따라 음의 고저와 음량이 조절되었다. 테레민의 연주소리는 다소 기괴스러워서 104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공상과학영화나 공포영화의 사운드트랙에 곧잘 사용되었다.(예로 들자면 Spellbound, The Lost Weekend, Ed Wood, Mars Attacks!,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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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 Termen playing – cropped” by Bettmann, Corbis – http://tygodnik.onet.pl/35,0,57107,sowiecki_faust,artykul.html (polish).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테레민을 연주하고 있는 레온 테레민

이 악기는 흥미롭게도 소비에트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과 그에 따른 단기적인 아방가르드 예술의 융성과 관련이 깊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그 태생과 발전 자체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급진성을 띠었으며 현실사회 전반에 대한 상당한 혐오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볼셰비키는 후진적인 러시아 사회에서의 선각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소수의 직업적 혁명가의 엄격한 집단을 표방하였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와 상당히 유사한 형태의 집단이었다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진실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점이야말로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경멸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줬다.”[마크 애론슨, 도발 아방가르드의 문화사]

그리고 혁명이 성공하자 새로운 지배계급이 된 볼셰비키는 아방가르드의 예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소비에트는 예술이 인민들을 사상, 감정, 분위기로 물들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여겼고 아방가르드 예술을 일종의 사회주의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술은 아지프로 agitprop 라 불리며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약진을 해나갔다. 적어도 스탈린이 정권을 잡기 이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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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Lissitzky, Lenin Tribune, 1920. 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 von El Lissitzky – 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 Lizenziert unter Public domain über Wikimedia Commons.

엘 리시츠키 El Lissitzky 가 레닌을 위해 제작한 연단으로 구성주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여하튼 이 당시의 예술분위기는 모든 장르에서 전통적인 문법장르가 해체되는 시기였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 모두가 해체되고 재창조되어 이해 불가한 우스꽝스러운 소리조차 음악으로 포장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창조물이 바로 기계를 통한 실용적 작업이 소리와 결합된 레온 테레민의 작품 테레민이었다.

레온 테레민은 1895년 페테스브르그에서 태어났다. 귀족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어렸을 적부터 과학에 소질을 보이며 남들과 다른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소비에트 혁명 후 그의 인텔리겐챠적인 지위가 문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의 과학적 재능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혁명정부를 위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정도 자유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테레민은 여러 연구를 하던 중 인체의 온도변화를 음향으로 전환하는데 착안하여 테레민을 만들게 되었다.

1921년 어느 날 레온 테레민이 자신이 발명한 새로운 악기를 레닌에게 시연해 보인다. 이 악기는 현도, 건반도, 마우스피스도 없는 악기였다. 음은 전기 장치가 부착된 상자에서 만들어졌다. 연주자는 상자에 부착된 안테나와 금속봉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기를 연주한다. 이 악기는 전혀 새롭고도 으스스한 음을 만들어내었다. 레닌은 이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악기연주법을 배우기까지 했다고 한다.(레닌은 후진적인 농업사회였던 러시아가 사회주의 강국으로 거듭나는 길은 하루빨리 공업사회로 전환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기계에 대한 그와 집권세력의 집착은 매우 강했다. 그는 실제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Socialism equals Soviet power plus electrification.” )

이후 소비에트의 현대성을 상징하는 선전도구로서 새로운 악기를 유럽에 선전하러 돌아다니던 테레민은 1927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 신기한 악기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많은 이들이 테레민에 관심을 보였는데 앨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도 매우 흥미있어 하며 그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한다. 이듬해 그는 테레민의 특허권을 얻은 후 악기 제작권을 RCA에 팔았다. RCA는 이 악기의 연주가 “휘파람 부는 것처럼” 쉽다는 슬로건 하에 악기 판매에 나섰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악기연주가 휘파람 불듯이 쉽지도 않았을 뿐더러 1929년 미국에는 대공황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악기는 미키마우스 클럽에서 시연되기도 했었고 앞서 말했듯이 공상과학영화와 공포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이용되었다. 이 악기의 가장 뛰어난 연주자는 전직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클라라 록모어 Clara Rockmore 였다. 레온 테레민은 아름다운 외모의 그녀에게 구애하였으나 그녀는 변호사 존 록모어 John Rockmore 와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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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a.rockmores.lost.theremin.album” by [1].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Clara Rockmore

이후 테레민은 소수이긴 하지만 대중음악에도 사용된다. The Beatles나 The Rolling Stones 와 같은 몇몇 대중음악가가 이 악기의 소리를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곡이 비치보이스의 명곡 Good Vibrations 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이러한 컬트적인 현상과 별개로 현대 대중음악에 보다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업이 신서사이저를 발명한 로버트 무그 Robert Moog 에게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로버트 무그는 1950년대 혁신적인 신서사이저라 할 수 있는 미니무그 minimoog 를 발명하여 현대 전자음악(Kraftwerk, Gary Numan, Pink Floyd 등의 선구자적인 음악가들이 시도하여 인기를 얻었던 전자음악은 80년대 Synth Pop, New Romantics 등의 장르를 통해 전성기를 맞는다. 이후 이들 장르의 인기는 이전 같지 않지만 오늘 날 대중음악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이다. 그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테레민에 매혹되어 직접 제작하여 팔기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미니무그는 많은 면에서 테레민이 지향하는 바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시대의 신서사이저 음악은 테레민의 은혜를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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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moog” by Krash – photo taken by Krash.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로버트 무그가 제작한 미니무그

1938년 그는 돌연 미국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많은 이들은 소련의 스파이들이 그의 뉴욕 아파트에서 그를 납치하여 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에 나온 그의 전기에서는 그가 빚 때문에 미국을 떠났고(RCA에 테레민의 권리를 넘긴 레온 테레민의 다음 프로젝트는 텔레비전의 발명이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회사를 설립하고 많은 돈을 끌어 모았으나  그 프로젝트는 실패하였고 테레민은 빚더미에 앉았다고 한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소련에 호송되었다고 전하고 있다.(또는 그가 미국에서 명성을 얻었을때조차 지속적으로 소련 스파이들과 접선을 유지했고 이 당시 자발적으로 소련으로 돌아갔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그는 그곳에서 혁신적인 도청장치인 The Bug의 작업에 참여하였고 이일로 인해 당시 소련사회의 최고 영예인 스탈린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후에 소련에서 음악학교에서 음악 강의를 맡기도 했으나 현대음악은 해로운 것이라는 비난에 직면하여 이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는 1991년이 되어서야 미국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고 1993년 숨을 거두었다. 1994년 그의 업적을 기린 Theremin: An Electronic Odyssey 라는 다큐멘타리가 발표되었다.

요컨대 테레민의 개발, 발전, 그리고 이어지는 전자음악의 발달의 이면에는 사회주의 혁명, 아방가르드, 기계문명에 대한 낙관주의와 같은 20세기 초 인류문명사의 발전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놓여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대중음악계는 지나친 악기의 기계화, 내지는 전자기기화에 싫증을 낸 이들이 소위 플러그를 뺐다는 의미의 unpluged 공연을 한동안 유행시키기도 했다.

테레민 연주 듣기

참고할만한 사이트들

Chelovek S Kinoapparatom(카메라를 든 사나이, The Man With a Movie Cam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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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with a movie camera” by This file is lacking author information. –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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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참 괴물같은 영화다.

훨씬 후대에 만들어진 Koyaanisqatsi 를 연상시키는 작품이긴 한데 오히려 그보다 훨씬 혁신적이다. 촬영팀이 찍은 20년대 소비에트의 이런 저런 모습들을 모자이크식으로 엮어놓았는데 이를 통해 영화, 다시 말해 활동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즐거움, 즉 사진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데서 오는 (뤼미에르가 주고자 했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화면의 연결이 어떻게 이른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은유, 비유, 치환, 상징 등 모든 영화문법의 알레고리로 옮겨가는지에 대한 단초도 제공하고 있어 즐거움이 더하다.

여전히 극적 구성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간히 일종의 에피소드라 할만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중에서 필름을 편집하는 한 여인의 모습은 영화는 한편으로 ‘편집의 예술’임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또한 영사기가 마치 로봇이라도 되는 양 움직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나중에 클레이애니메이션에서 쓰이는 방식을 통해 제작된 장면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음악 또한 날도깨비 같다. 그 당시의 헐리웃 영화에서 들을 수 있던 유의 음악이 아니다. 훗날 존케이지나 필립글래스, 그리고 반젤리스 등에서 들을 수 있던 혁신적인 전자음악을 연상시키는 배경음악은 너무나 미래주의적이면서도 어색하지 않아 – 프로그레시브라는 레벨을 달고 있는 음악 중에 오늘날 들으면 촌스러운 음악들도 많다 – 귀가 딱 벌어질 정도다. 특히 첫 트랙은 귀에 쏙 들어올 정도로 마음에 든다. 음악은 영상과 완전히 매치가 되어 살아있는 유기체마냥 꿈틀거린다.

한마디로 이질적인 경외감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진 것 같다.

La jetée

영화라기보다는 한편의 영상소설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인의 잠자리 장면이 잠깐 동영상으로 비춰지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장면이 흑백 스틸컷으로 처리된 과감한 형식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또 장르는 SF다.  서로간의 증오로 인해 지구를 파괴해버린 그 어느 미래.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는 세상에서 과학자들은 과거와 미래로 가서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한다. 그 통로는 사람들의 꿈. 과학자들은 선택된 죄수들 중에서 그 임무를 수행시키려는 실험을 진행시키고 주인공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그 임무를 수행한다. 그 임무 중에 만난 과거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자신들의 세계로 오라는 미래의 인간들의 제안을 무시하고 과거로 돌아가 그녀와 재회하려 한다.  슬프기 그지없는 라스트신을 간직한 이 영화는 테리 길리엄에 의해 12Monkeys 라는 이름으로 부활한다.

El Topo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은유와 상징으로 인해 소위 지적인 관객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도입부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El Topo(우리말로 두더지를 의미하며 감독 Alejandro Jodorowsky가 배역을 맡았다)는 벌거숭이 아들과 함께 정처 없이 떠돌다가 한 마을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한 여인 Mara를 괴롭히고 있는 무법자들을 처치한다. 뱀과 같은 유혹의 혀를 가진 그 여인의 꾐에 빠진 El Topo 는 아들을 수도사에게 맡긴 채 사막에서 여러 무림의 고수들과 대결을 하여 최고의 무림 고수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마침내 모든 무림 고수들을 처단하지만 홀연히 나타난 또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진 Mara 는 그를 배신한다.

총상을 입은 El Topo 는 수년이 흐른 어느 날 동굴 속의 현자로 부활하고 그 동굴 속에는 영화 Freaks 의 흉측한 장애자들을 연상시키는 주민들로 가득 차있었다. 난쟁이 여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오랜 기간의 근친상간으로 말미암은 것이었고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되었다는 것이다. El Topo 는 수도승의 복장을 한 채 마을주민들을 구원할 터널을 파기로 결심한다(그래서 주인공 이름이 ‘두더지’일지도 모르겠다). 마을로 가서 터널을 팔 돈을 버는 과정에서 El Topo 와 난쟁이 여인은 마을이 도덕적으로 파탄했음을 알게 된다.

난쟁이 여인은 이런 마을로 다시 돌아와야 되는지 의문을 품지만 El Topo 는 공명심에 이 충고를 무시한다. 우연히 그 마을에는 El Topo 가 버린 아들이 신부가 되어 돌아와 그들을 만나게 되고 복수심에 불탄 아들은 El Topo 가 터널을 다 판 그 순간 죽일 것을 결심한다. 터널을 다 판 후 아들은 도덕적 갈등으로 복수를 포기한다. 동굴 속의 주민들이 마을로 내려갔지만 마을 주민들은 혐오감을 나타내며 그들을 살육한다. 분노에 찬 El Topo 는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라버린다.

종잡을 수 없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종횡무진 하는 이 작품에 담긴 기독교적, 불교적 메타포는 관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작품은 그러한 메타포에 앞서 – 감독이 의도하였던 하지 않았던지 간에 – 이른바 ‘남성성’의 어리석음을 각인시키고 있다. 영화 초반부 El Topo는 여인의 꾐에 빠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영화 후반 이번에는 여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헌신과 희생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마저 실패하자 자기 성질 못 이기고 자살을 택한다. 결국 어느 길이든 순리를 역류한 그의 삶은 파탄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택하자면 그는 Let It Be 의 자세를 택하여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John Lennon 이 이 영화의 팬으로 판권을 샀다고 한다).

1971년 당시로서는 생경한 심야영화로 개봉되어 컬트팬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었던 작품으로 영화산업의 볼모지인 멕시코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난 걸작이다. Alejandro Jodorowsky는 이후 그래픽노블의 대가 뫼비우스와 함께 종교적 SF ‘잉칼’을 만드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絞死刑(Death By Hanging)

극은 한 사형수 R의 교수형이 처해지는 장면의 묘사로 시작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밧줄에 매달린 R은 의식은 잃었지만 여전히 심장이 뛰고 있었다. 당황한 참관인들(교도관, 검사, 신부, 의사 등)은 그를 죽이기 위해 다시 살리는 희극에 뛰어든다. 그러나 의식을 되찾은 R은 자신이 R임을 깨닫지 못하고 참관인들은 R의 성장배경과 그가 저지른 강간살인을 재연하며 R이 R임을 깨닫게 하려고 노력을 기울인다. 재일 한국인이었던 R의 어두웠던 가정환경, 그의 범행동기, 살인 당시의 상황이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R은 결국 자신 스스로는 사형을 받을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자부하지만 국가의 또 다른 범죄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모든 사형 받을 이들을 대신해 사형을 받겠노라고 스스로의 죽음을 순교로 정의하고 교수형으로 사라져간다. 결국 어쩌면 이 모든 사형을 둘러싼 참관인들의 해프닝은 R이 교수형을 받으며 아래로 추락하는 찰나의 순간에 꾸었던 꿈일지도 모른다. 루이스 브뉘엘 스타일의 실험적인 코미디 형식을 빌려 실제 있었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사형을 다룬 이 영화는 사회적 징벌로써의 사형의 부적절함,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무지와 편견, 스스로 살인자였던 일본이 또 다른 살인자를 처벌하는 모순 등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한 편에 소화해내고 있다.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 이슈를 나름의 시각으로 펼쳐내어 대가로 인정받은 오시마 나기사는 진정한 범죄자는 전쟁으로 국민들을 내몰아 수만 명을 살인한 국가임을 고발하고 있다. 재일 한국인 R의 역은 실제 한국인인 윤윤도가 열연하였다. P.S.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미국에서는 1950년대 실제로 사형수가 형집행 후에도 살아남은 일이 있었다. 부실한 전기의자의 성능 탓이었다. 사형수는 같은 범죄로 두 번 처벌받을 수 없다며 사형을 재개하지 말 것을 청원하였으나 기각되고 두 번째 전기의자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는 미성년자인 흑인이었다.

오시마 나기사에 대해 알아보기

Le Charme Discret de la Bourgeoisie(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비록 이 영화의 소개에 의례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실험주의 등과 같은 친해지기 어려운 단어들이 함께 하지만 이를 너무 심각히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다른 걸 다 제쳐두고라도 이 영화는 건방진 부르주아를 약 올리는 흥겨운 마당극 한판일 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부르주아들은 외교관의 신분을 이용한 더러운 마약거래에 손대고 가장 친한 친구의 와이프와 거리낌 없이 바람을 피우는 족속들이지만 대마초를 피우는 군인을 비난하고 마티니를 마시는 법을 모르는 운전기사를 조롱한다.

그들은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매일 밤 만찬으로 자신들의 넉넉함을 과시하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은 만찬은 이런 저런 이유 탓에 연기된다. 심지어는 그들이 결국 무대 위의 배우라는 사실이 들통 나(?) 만찬이 연기되기도 한다. 루이스 브니엘은 이런 만찬 실패담(?)을 큰 줄기로 다양한 캐릭터의 몽환적인 꿈 이야기를 배치해 영화에 시적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결국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관객의 극의 몰입을 의도적으로 차단하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의 과장된 행동은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진지하게 – 코미디를 진지하게 연기하고 있으니 더욱 코미디스럽다 – 연출되고 있기에 이 작품이 의의를 가지는 것이리라(상투적인 “꼭 봐야할 영화 100선”따위에 불명예스럽게 매번 거론되느니).

Tokyo Fist

거대한 도시의 빌딩숲 안에서 바퀴벌레처럼 생존을 위해 쳇바퀴 인생을 사는 보험 세일즈맨은 항상 지쳐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자 친구와 관계를 가진지가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왜 사는지 모르는’ 인생인 쯔다는 우연히 후배(어떤 후배인지 모르겠다) 코지마를 만나면서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한다. 권투선수인 코지마는 다짜고짜 집으로 찾아와 여자 친구 히주루를 넘본다. 이후 쯔다의 질투는 그의 가슴 속에 사라졌던 야성으로 변하고 애초에 완력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던 코지마에게 신나게 얻어터진다. 히주루는 난데없이 피어싱에 몰두하기 시작하더니 아예 거처를 코지마네로 옮겨버린다. 쯔다는 복수를 위해 코지마가 소속되어 있는 권투도장에 가서 권투를 시작한다. 복수심인지 질투심인지 변태성욕인지 모를 격렬한 감정들이 혼재된 채 등장인물들의 감정으로 표출되고 이러한 감정이 때로는 만용으로 때로는 소심함으로 때로는 비겁함으로 표현된다. 필터링된 화면이 아니었다면 폭력성에 있어 몇 배나 강도가 증가되었을 법 할 만큼 하드코어한 폭력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히주루의 피어싱과 금속이물질에 대한 집착은 마치 The Iron Man 을 연상시킨다.

The Iron Man 의 감독인 신야 츠카모토의 1995년작.

Tetsuo: The Iron Man

인간의 몸에 기계, 혹은 철을 결합시킨다는 일종의 기계인간의 이야기는 공상과학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그 결합이 단순히 인간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은 채 육체적 능력만을 향상시키는 ‘600만불의 사나이’와 같은 존재도 있는가하면 기계인간이 되기 이전의 기억으로 인해 존재론적 고민에 시달리는 ‘로보캅’과 같은 존재도 있다. 저예산 컬트로 알려진鐵男(Tetsuo)은 굳이 따지자면 후자의 영화와 같은 부류의 기계문명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시각을 지닌 작품이다. 스토리를 요약하거나 서술하는게 별로 의미없는 영화이지만 하여튼 어느 날 갑자기 몸에서 “비대칭적인” 고철이 자라나는(?) 한 샐러리맨이 겪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기계문명의 우울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SF 애니메적인 상상력과 변태적인 성적환상,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편집, 인더스트리얼 계열의 음악의 적절한 사용 등 태생적으로 컬트가 될 자양분이 충분하였고 당연하다는듯이 컬트가 되었다.

The Cabinet of Dr. Caligari

무성영화 시대의 작품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중 하나. 연쇄살인, 몽유병, 정신병원 등 섬뜩한 소재가 기묘하게 엮여 기괴한 장식의 무대장치 위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오늘날 각종 스릴러와 범죄영화들이 답습하고 있는 갖가지 소재들을 선구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재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표현주의는 이후 독일영화의 표현양식에 큰 축으로 자리 잡게 된다.

Koyaanisqatsi

이 작품을 어느 장르로 구분하느냐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로 분류하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카메라로 쓴 시(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스토리도 없이, 등장인물도 없이 이 작품은 그저 인간이 사는 지구의 이런 저런 모습들을 필립베이스의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장대하게 펼쳐 보인다. 몇 년간에 걸쳐 촬영한 필름들을 연속적으로 이어놓은 이 작품의 메시지는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교훈적 메시지라고들 하는데 하여튼 그냥 보고 있자면 작품을 만든 이들이 참으로 대단하다거나 또는 참 지독한 사람들이다라거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키페디아의 영화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