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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y Soldi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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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ka(album)”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CBS.. Licensed under Wikipedia.

1989년 7월 22일 Martika가 부른 “Toy Soldiers”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2주간 머물렀다. Martika와 Michael Jay가 함께 만든 이 곡은 Marta Marrero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이 가수에게 있어 최대의 히트곡이 되었다.

마티카는 그의 나이 12살이던 시절인 1982년 뮤지컬 Annie를 영화화한 작품에서 고아 역할을 맡으며 연예계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아동용 TV 프로그램 Kids Incorporated(Martika의 프로그램 출연 영상)에서 1984년~1986년 동안 고정배역을 맡게 된다. 이 TV쇼의 활동을 마친 후 Martika는 loria Estefan, Stephanie Mills 등과 함께 일했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Michael Jay와 짝을 맞추게 된다. 그리고 처음으로 만든 곡이 후에 그들이 “Toy Soldiers”라 이름붙인 곡이었다.

이 곡은 코케인 중독에 시달리고 있던 마티카의 한 친구에 관한 위로를 담고 있다. 애초 곡은 더 빠른 템포에 오직 두 개의 코드만을 가지고 있었다. Jay는 이 곡의 템포를 좀 더 늦추고 더 많은 코드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둘은 이 곡에 아이들의 합창을 코러스로 넣을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마지막 레코딩에서 둘은 Martika와 함께 Kids Incorporated에 함께 출연했던 Stacy “Fergie” Ferguson, Renee Sands, Rahsaan Patterson, Jennifer Love Hewitt, Devyn Puett 등이 백업 보컬에 참여한다.

1989년 봄 Matika의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의 세 번째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1989년 5월 20일 핫100 차트에 69위로 데뷔하여 9주 후 정상을 차지한다. 이 곡은 심슨스의 열여덟 번째 시즌 에피소드에 쓰이는가 하면 2004년 Eminem의 “Like Toy Soliders”라는 곡에서 샘플링으로 쓰이기도 했다. 1991년 같은 이름의 액션 영화가 발표됐지만 이 곡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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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of Pupp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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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llica – Master of Puppets 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Elektra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Master of Puppets“는 미국의 트래쉬 메탈 밴드 Metallica가 발표한 곡이다. 같은 이름의 Metallica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에서 발매된 유일한 싱글이다. 싱글은 1986년 7월 2일 발매되었다. 리드 싱어 James Hetfield는 밴드의 곡 중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이 곡에 대해 ”마약과 매우 관련된 노래에요. 사물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에 대한. 당신은 당신이 먹고 하는 것을 통제하는 대신에. 당신을 통제하는 것은 마약이죠.“라고 설명했다. 주인(master)은 마약이고 인형(puppet)은 마약을 먹은 당사자라는 이야기다. 앨범 전체적으로도 밴드는 힘의 통제와 남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3분 34초에 시작하는 긴 연주와 다운피킹(downpicking) 주법1으로 유명하다. VH1은 이 곡을 역대 가장 위대한 헤비메탈 곡 중에서 3위로 꼽았다. Q매거진은 2005년 100곡의 가장 위대한 기타 곡 중에서 22위에 선정했다. 또한 Total Guitar 매거진이 투표로 뽑은 가장 위대한 100곡의 기타 리프에서는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연유 등으로 이 곡은 밴드가 라이브에서 1천 번이 넘게 연주되는 등 가장 많이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

뮤직비디오

  1. 보다 헤비한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타를 다운스트로크로 치는 주법

Quadrophenia(1979)

“’모드족’은 1960년대 영국의 가난한 백인 노동자 계층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다. 당시 영국의 젊은이들은 모드족과 ‘로커족(Rockers)’들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기성 세대에 대한 반항과 일탈이라는 점만 빼곤 둘은 모든 면에서 대립을 이루었다. 로커족들은 머리를 길게 길러 머릿기름을 잔뜩 바르고, 가죽 재킷을 입고 가죽 부츠를 신고, 육중한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녔으며, (당연하게도!) 시끄러운 록 음악을 듣고, 헤로인을 복용했으며 ‘클럽 59’를 본거지로 삼았다. 반면 모드족들은 유별날 정도로 외모에 집착해 깔끔한 헤어스타일, 최신 유행의 옷차림으로 거리를 누볐으며 가죽 잠바 대신 파카를 주로 입었고, 모터사이클 대신 스쿠터(scooter)를 타고 다녔고, 록 음악 대신 모던 재즈나 리듬 앤 블루스를 주로 들었으며 헤로인 대신 암페타민(Amphetamine)이라는 각성제를 복용했으며 ‘카나비 스트리트 (Carnaby Street)’를 본거지로 삼았다.”

이쯤이 대충의 모드족에 대한 정의이고 보다 자세한 정보를 위해 여기를 방문하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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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drophenia movie” by [1].. Licensed under Wikipedia.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모드족의 시조라 할 수 있는 The Who 가 1973년 발표한 록오페라 앨범 Quaderphenia 를 기초로 만든 영화다. 그룹이 그들을 따라다닌 팬의 이야기를 기초로 썼다는 이 앨범은 그들의 걸작 Tommy 와 같은 하나의 컨셉트앨범으로 전체 앨범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고 이 영화는 그 줄기를 따라가고 있다. 1964년 모드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는 Jimmy Cooper 는 직장에 다니고는 있지만 다만 그것은 모드족의 생활이 유지될 만큼만 돈을 벌면 그만인 직장이다. 스쿠터, 음악, 친구들, 그리고 Blues 라 불리는 환각제 … 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록커들과 사사건건 시비를 붙던 Jimmy와 그 패거리들은 급기야 길거리에서 몇몇 록커를 폭행하는데 그중에는 Jimmy 의 어릴 적 친구도 끼어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갈등은 동물들의 영역싸움과 다를 바 없는 거칠고 비이성적인 것이었다. 항상 이상한 패션과 음악에 심취해 있는 Jimmy를 부모는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Jimmy 가 마음이 뺏겨 있는 Steph는 나름대로 Jimmy에게 호감을 보인다. Bank Holiday 에 브라이튼의 해변에 모드족과 록커족이 모여든다. 이 과정에서 두 진영은 심각한 패싸움을 벌이고 경찰이 출동하여 사태를 진압한다. Jimmy는 이 소요의 흥분에 젖어 Steph 과 골목길에서 성관계를 갖지만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법정에서 Jimmy는 우상이었던 Ace Face(The Police의 Sting)와 연대감을 느끼고 뿌듯한 마음에 집에 돌아왔지만 부모와 직장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듣고는 직장을 때려치워 버린다. 그런데 이런 그를 환영해 줄줄 알았던 친구들이 웬일인지 Jimmy에게 시큰둥하고 그새 Steph 는 그의 친구와 어울려 다닌다. 상심한 Jimmy는 브라이튼으로 돌아가 그날의 승리감과 성적 쾌감을 곱씹어보지만 그것은 한 순간의 덧없는 희열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는 그의 우상이었던 Ace Face 가 호텔 벨보이로, 조직의 순응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목격하고 뼈 아린 배신감을 느낀다.

http://www.modrevival.net/
http://en.wikipedia.org/wiki/Quadrophenia_(film)

Cloc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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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ckers film poster” by http://www.cduniverse.com/images.asp?pid=1282281&cart=757413591&style=movie&image=front&title=Clockers+DVD. Licensed under <a href="//en.wikipedia.org/wiki/File:Clockers_film_poster.jpg" title="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Clockers (film)“>Fair use via Wikipedia.

우디알렌의 영화에 등장하는 흑인이 되고 싶다는 스파이크리가 바라보는 뉴욕은 우디알렌이 바라보듯 그렇게 여유롭고 지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전쟁터다. 사는 게 전쟁이니 그 삶의 터전도 전쟁이다. 흑인들은 마약을 팔고 백인들은 마약을 산다. 마약을 파는 소년 Strike는 절대 마약을 하지 않는다. 마치 포르노배우가 가장 위생적으로 청결한 것처럼 말이다. 그 대신 초콜릿무스를 수시로 마셔대는 통에 위장이 엉망이다. 그를 자식처럼 여긴다며 개뻥을 치는 마약상 Rodney는 그에게 사람을 죽여줄 것을 넌지시 암시한다. 암시였지 사주는 아니었다. 하여튼 살인은 이루어졌다. 이제부터 누가 죽였는지를 밝히기 위해 Rocco 형사가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Strike 의 형 Victor 가 자신이 정당방위로 죽였다고 나서는데 평소 행실이 발랐던 그의 말을 Rocco 형사는 믿지 않는다. 스릴러의 형식을 띤 흑인사회의 먹이사슬 보고서로 일관된 스파이크리의 정치적 행보는 마치 켄로치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흑인 우디알렌? Clocker 는 마약판매인 중에 가장 똘마니격으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이들을 일컫는 은어라고 한다. 총격으로 죽은 흑인들의 생생한 사진을 관객의 코 밑까지 들이대는 타이틀시퀀스가 충격적이다.

p.s. 영화포스터가 그 유명한 ‘살인의 해부’의 포스터를 차용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The Departed

잭니콜슨, 마틴쉰,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 맷데이몬, 마크왈버그, 알렉볼드윈. 한 연기 한다는 이 양반들이 죄다 모여 만든 남성성 짙은 하드보일드 영화다. 홍콩영화 무간도를 마틴스콜세스가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Face Off, 첩혈쌍웅 등에서 오우삼이 즐겨 다뤘던 두 영웅의 정 반대의 삶을 통해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는 상황을 소재로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조직에 스파이로 들어간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대사의 절반이 욕이고 장면전개는 불친절하다 싶을 정도로 이리 저리 건너뛴다. 한 가지 궁금한 것. 디카프리오가 데이몬의 연인에게 주었던 그 노란 봉투의 내용은 왜 끝내 공개되지 않았을까? 도중에 결말이 바뀐 것인지?

Wonder B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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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boys ver4” by Impawards.com. Licensed under Wikipedia.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J.D. Salinger 의 The Catcher In The Rye. 철없는 문학교수 Grady Tripp (Michael Douglas) 의 좌충우돌 행보에서는 Holder Caulfield 의 치기어린 행동이 묻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문득 문득 ‘작문에 제법 소질을 보이던 Holden 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대신 작가의 길을 걸었더라면 Grady 처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나 홀로 해보았다. 제법 근사했다. 비록 뛰어난 작품을 한 권 냈고 교수도 되었지만 Grady 는 – 나이 든 Holden 은 – 여전히 수시로 대마초를 펴댈 만큼 –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제자 James Leer(Tobey Maguire)에게도 권할 만큼 – 반사회적이고 냉소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극의 에피소드 들 역시 하나 하나 쪼개보면 절망적이면서도 결국 실낱같은 그 어느 희망으로 수렴해가는 구조를 지녔다는 점에서도 두 작품이 유사성을 띠고 있다. 물론 원작자 Michael Chabon 이 들으면 기분나빠하겠지만 – 그가 이글을 볼 리도 없지만 – 적어도 내게 있어 이 영화(또는 원작 소설)는 The Catcher In The Rye 에 대한 오마쥬 내지는 패러디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 이 영화는 Steve Martin 주연의 Planes, Trains and Automobiles 를 연상시킨다. Grady 는 앞서의 영화에서 Steve Martin 이 그러했던 것처럼 짧은 시간에 온갖 수난을 다 당한다. 아내는 집을 떠나고, 정부(情婦)는 임신했지만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개한테 물리고, 제자는 그 개를 죽이는가 하면 마릴린 몬로의 재킷을 훔친다. 비록 이 작품이 보다 지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주인공 재난 영화’의 계보에 넣어도 큰 무리가 없지 않나 싶다.

결국은 모든 것을 잃어도 행복한 가족을 얻었다는 헐리웃 공식을 추가시킨 것도 비슷한 점이다(개인적으로는 더 망가뜨렸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혹자는 21세기 최초의 걸작이라고도 평했다는데 적어도 21세기에 보기 흔하지 않은 매력적인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실력파 배우들의 나름 귀여운 연기를 이끌어낸 커티스 핸슨의 역량도 맘에 들고 사운드트랙도 사랑스럽다.

The Last House on the 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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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HousePoster“. Via Wikipedia.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웨스 크레이븐의 1972년 감독 데뷔작. 꽃다운 나이의 두 소녀가 철없이 마약장수로 보이는 꼬마에게 접근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변을 당하게 된다. 그 꼬마는 네 명의 탈옥수의 일행이었던 것이다. 강간과 납치, 그리고 끝내는 잔인한 살육까지 자행하는 탈옥수들의 눈에서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들이 살육을 자행했던 그 숲의 건너편에는 피해자 중 한 소녀의 집이 있었고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그 집에서 일박을 청한다.

우연히 악당들의 대화를 들은 소녀의 어머니는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고 끔찍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영화는 B급 영화의 미덕을 살려 폭력적인 면에서 나름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납치당한 소녀에게 바지에 오줌을 싸보라고 을러대는가 하면 두 소녀가 성관계를 갖게 하며 이를 즐기는 등 엽기적인 – 그러나 실제 상황이라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을 – 장면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부모들의 복수극도 못지않게 엽기적인데 -사실 엄마의 복수극이 가장 엽기적인데너무 잔인한(!) 스포일러라 생략 -특히 소녀의 아버지가 악당에게 사용하는 전기톱은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에서 사용되기 2년 전에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이 방면의 선구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처녀성을 잃고 숨진 딸을 위해 복수하는 부모라는 설정에 있어 잉마르 베르히만의 The Virgin Spring 과 비교되기도 한다는데 – 이 영화가 잉마르 영화의 리메이크라고 하거나 또는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거나 등등 – ,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주제는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이런 저런 상황으로 변주되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처녀성은 ‘절대’선(善)을, 강간은 ‘절대’악(惡)을 의미하니 악을 응징하는 보복은 정당성을 획득하고 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과정 역시 악과 마찬가지로 폭력적이라는 의미에서 받아들이는 독자나 관객에게 극적쾌감을 안겨주니 이 이상 더 좋은 플롯이 어디 또 있겠는가 말이다. 결국 만드는 이나 수용하는 이나 아무런 죄책감 없이 폭력의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반합의 변증법적 구도이다.

반면 감독 웨스 크레이븐은 이 영화의 제작의도가 당시 미국이 치루고 있던 베트남전을 보면서 느낀 “폭력의 실상에 대한 내 인식이 반영된 영화”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들은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어떠한 폭력도 용서될 수 없다는’ 평화적인 메시지로 수렴되어야 할 텐데 정말 그러할지는 오리무중이다. 다만 폭력적인 영화가 상영되는 주말에 그 인근에서 폭력범죄가 감소한다는 희한한 조사결과도 있는 만큼 이 영화가 상영된 극장 인근에서 감독이 의도한 효과가 있을 개연성도 있겠다.

요컨대 이 작품의 미덕은 공포영화라는 장르의 하위장르 중에서 현실에 근접한 일종의 ‘리얼리즘적인 공포영화’(내 마음대로 장르 규정하였음)의 한 축을 형성하였다는 점이다. 동 시대의 다른 공포영화들이 ‘엑소시스트’와 같은 초자연적인 소재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처럼 좀비/괴수 영화 장르로 약진할 때에 웨스 크레이븐은 나름대로 현실에 기반을 둔 사회적 이슈로 승부를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감독의 장기는 이 후 ‘공포의 계단’이나 ‘스크림’ 등에서 십분발휘되었다.

한편 이 영화는 2007년 개봉예정으로 리메이크 작업 중이라고 한다.(2009년에 발표됨)

Le Charme Discret de la Bourgeoisie(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비록 이 영화의 소개에 의례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실험주의 등과 같은 친해지기 어려운 단어들이 함께 하지만 이를 너무 심각히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다른 걸 다 제쳐두고라도 이 영화는 건방진 부르주아를 약 올리는 흥겨운 마당극 한판일 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부르주아들은 외교관의 신분을 이용한 더러운 마약거래에 손대고 가장 친한 친구의 와이프와 거리낌 없이 바람을 피우는 족속들이지만 대마초를 피우는 군인을 비난하고 마티니를 마시는 법을 모르는 운전기사를 조롱한다.

그들은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매일 밤 만찬으로 자신들의 넉넉함을 과시하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은 만찬은 이런 저런 이유 탓에 연기된다. 심지어는 그들이 결국 무대 위의 배우라는 사실이 들통 나(?) 만찬이 연기되기도 한다. 루이스 브니엘은 이런 만찬 실패담(?)을 큰 줄기로 다양한 캐릭터의 몽환적인 꿈 이야기를 배치해 영화에 시적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결국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관객의 극의 몰입을 의도적으로 차단하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의 과장된 행동은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진지하게 – 코미디를 진지하게 연기하고 있으니 더욱 코미디스럽다 – 연출되고 있기에 이 작품이 의의를 가지는 것이리라(상투적인 “꼭 봐야할 영화 100선”따위에 불명예스럽게 매번 거론되느니).

Salaam Bombay!

혹자는 아기의 귀여운 몸동작이 어른들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자극시켜 자신이 생존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전략이라고들 말한다. 지나치게 냉소적인 말이지만 나름대로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도대체 그 귀여움이라도 없었더라면 성가시고 귀찮기 만한 양육을 뭐 하러 자기 돈 들여가면서 떠안을 것인가? 그리고 사회는 이러한 양육을 부모로서의 신성한 의무로 이데올로기화시킨다. 안 그러면 이 사회의 존속은 불가능 할 테니까.

사회 절대다수의 가정이 이렇듯 자신의 피붙이에 대한 기본적인 부양의무를 어떻게 해서든 이행하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자의이든 타의이든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은 집단 수용시설에 들어가거나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Mira Nair 의 1988년작 Salaam Bombay! 는 바로 이러한 거리의 아이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이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몸을 의지하던 서커스단으로부터도 버림받은 크리슈나는 자연스럽게 인도의 대도시 봄베이의 거리를 거처로 삼는다. 창녀촌 주변의 노점상의 차를 배달하는 한편으로 이런 저런 육체노동으로 푼돈을 꼬박 꼬박 모으는 크리슈나의 꿈은 돈을 모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500루피를 모으기 전에는 집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며 그를 떠났고 크리슈나는 이 말을 500루피를 모으면 어머니가 다시 그를 받아줄 것이라는 약속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한 가지 희망 때문에 온갖 악의 유혹이 넘쳐나는 거리에서 꿋꿋이 살아가지만 그런 연약한 소년을 경찰은 부랑아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집단 수용시설에 가둬버린다. 천신만고 끝에 수용시설을 탈출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수용시설 안보다 더 잔혹하다.

볼리우드라 불릴 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당의정과 같은 환각적인 영화를 양산해내는 인도의 영화계에서 보기 드물게 리얼리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영화이면서 감정의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 브뉘엘의 1950년 작 Los Olvidados 과 여러 면에서 비교될만한 수작이다. 인도의 영국의 합작 영화

Miami Vice

실제로 TV 시리즈물을 감독했던 Michael Mann 이 감독하였으며 공간적 배경도 마이애미라는 점에서, 그리고 제목 역시 TV 시리즈의 제목과 같다는 점에서 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형사 시리즈물 Miami Vice 의 극장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사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당시 인기를 얻었던 Jan Hammer의 시리즈 주제곡을 차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점에서는 Mission Impossible 과 비교된다), 반드시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TV 시리즈물 인기의 핵심이었던 Don Johnson 의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목만 같은 별개의 영화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당시 시리즈물이 지향했던 화려한 80년대 패션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다(역시나 주인공들이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스포츠카와 멋진 수트를 입고 다니긴 하지만). 오히려 하드보일드적인 영상은 세기말의 우울한 마이애미를 그리고 있다. 극의 서술도 남성 스타일의 정통 형사극을 지향하고 있어 러쎌웨폰과 같은 슬랩스틱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문제는 극의 긴장감을 고취시켜줄 정교한 드라마인데 이 부분은 그리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신선하다거나 짜임새 있는 맛은 없다. 소니 역의 콜린파렐은 개인적인 취향인지 모르겠으나 미스캐스팅이라 생각되지만 결정적인 미스캐스팅은 공리다. 너무 투박하여 머리를 아프게 하는 영어발음에 자신의 정체성을 못 찾아 극중 내내 헤매는 모습은 극으로의 몰입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장애물이다. 정 아시아계 팜므파탈을 고르고 싶었으면 차라리 장만옥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다만 Jamie Fox 는 그나마 새로운 흑인 액션영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