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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Dream It’s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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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dream it’s over 2”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Capitol -..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Neil Finn은 1984년까지 Split Enz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다. 밴드 해체 이후 Neil은 Split Enz의 드러머 Paul Hester 등 새로운 멤버를 규합하여 The Mullanes라는 밴드를 새로 조직한다. 첫 앨범을 녹음하는 동안 이들은 이름을 Crowded House1로 바꾼다. “Don’t Dream It’s Over”는 그룹의 리더 Neil Finn이 만든 이 곡은 그들의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1986년 10월 싱글로 발매되었다. 이 곡은 1987년에 빌보드 핫100 차트 2위까지 올라 그룹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되었다.2 또한 Neil의 고향인 뉴질랜드 차트에서나 캐나다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2001년 5월 ‘오스트랄시아 공연 권리 협회’는 역대 가장 훌륭한 호주와 뉴질랜드의 대중음악을 선정하면서 이 곡을 뉴질랜드 리스트 중 2위에 선정했다.

In the paper today tales of war and of waste But you turn right over to the T.V. page
오늘 신문에 전쟁과 쓰레기에 관한 이야기가 실렸지만 당신은 T.V. 페이지로 넘겨버린다
가사 中에서

뮤직비디오

  1. 이 이름은 그들이 녹음을 진행했던 로스엘젤리스에서 머물기 위해 빌렸던 소란스러웠던 주택에서 따온 것이다.
  2. 당시 1위는 Aretha Franklin과 George Michael이 듀엣으로 부른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였다.

Split Enz

Split Enz at Nambassa January 1979.jpg
Split Enz at Nambassa January 1979” by Nambassa Trust and Peter Terry – http://www.nambassa.com.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Split Enz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활동했던 뉴질랜드 출신의 뉴웨이브 밴드다. 1972년 Phil Judd와 Tim Finn이 주축이 되어 결성되었고 후에 Tim의 동생 Neil Finn이 가세한다. 밴드는 고향인 뉴질랜드와 인근의 호주, 그리고 캐나다 등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곡은 1980년 싱글 “I Got You”다. 밴드는 아트록, 스윙, 펑크록, 뉴웨이브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서 영향 받은 음악을 구사했다. 또한 밴드는 비주얼 적으로도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였는데 컬러풀하면서도 약간은 괴짜 같은 스타일의 패션을 유지했다. 1970년대 이들의 음악 스타일은 어쿠스틱 포크에 가까웠다. 하지만 1977년경부터 전자악기를 도입했고 프로그레시브록에 가까운 음악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 시기는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Phil Judd가 그룹을 떠나고 Neil Finn이 가세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후 이들의 사운드는 점점 뉴웨이브 스타일로 바뀐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여 MTV에서도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밴드는 1984년 해산했고 그 뒤 몇 번 재결합하기도 했다. 해체 후에도 멤버들은 다양한 활동을 펼쳤는데 대표적으로 Finn형제가 주축이 된 Crowded House와 Finn Brothers 등이 있다. Split Enz와 Finn 형제의 뉴질랜드에서의 음악적 권위는 압도적인데 오스트랄시아 공연권리협회가 선정한 Top 100 New Zealand Songs of All Time이라는 차트에서는 Split Enz의 곡이 무려 일곱 곡이 선정되었다. 이외에도 Finn형제가 작곡한 곡과 Crowded House 시절의 곡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개인적으로 이들 독특한 음악과 비견할 다른 나라의 밴드를 찾으라면 미국에서는 Talking Heads, 영국엔 XTC이라 생각한다.

스튜디오 앨범 디스코그래피
Mental Notes (1975)
Second Thoughts (1976)
Dizrythmia (1977)
Frenzy (1979)
True Colours (1980)
Waiata/Corroboree (1981)
Time and Tide (1982)
Conflicting Emotions (1983)
See Ya ‘Round (1984)

닐 핀 인터뷰

음악평론가 그램 톰슨은 음악 속의 죽음을 다룬 책인 I Shot A Man In Reno를 쓰며 다양한 음악가들을 인터뷰하였다. 인터뷰는 블로그에 포스팅 되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이 인터뷰는 크라우디드 하우스의 프론트맨인 닐 핀을 인터뷰한 것이다.

원문: http://ishotamaninrenobook.blogspot.com/2008/09/neil-finn-reno.html

닐 핀, mortality에 대해서 말하다

Interviewer: Graeme Thomson

가장 최근의 크라우디드 하우스 앨범인 Time on Earth는, 2005년에 일어난 밴드의 전 드러머였던 폴 헤스터의 죽음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곡을 쓰는 동안 그 사건을 얼마나 의식했습니까?

앨범에서 그 사건이 차지하는 바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일은 제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에 쓰던 곡들은 모두 그 일에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모든 곡이 그 일에 관한 것은 아니고, 몇몇 곡은 전혀 상관이 없지만, 영향을 받은 것만은 맞는 것 같습니다. 음울하거나 감상적인 방향이 아닌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받았기를 바랄 뿐이죠. 하지만 부정적인 방향으로도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곡을 쓸 때 그런 것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는 편이거든요. 곡을 쓰는 초기 단계에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믿는 편입니다. 나는 그리 체계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우연적으로 곡을 쓰게 되는 것을 신뢰하는 편이예요. 다른 이들은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곡을 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록 그것이 정제되어 있지 않고 추상적이라 하더라도 즉흥적인 작곡은 수용할만한 것입니다. 내 생각에, 즉흥적인 작곡의 소재가 되는 것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앨범에서 영혼을 갈구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느껴졌다면 실제로 그런 거겠죠. 나는 그 일 (주: 폴의 죽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것은 내 삶에 있어 하나의 어긋난 사건이었어요. 아직도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일을 극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앞으로 오랫동안 그 일이 나를 괴롭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큰 슬픔이자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 그는 좋은 친구였으며 꽤 오랜 시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가 죽기 전 몇 년 간 자주 만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와 나를 이어주는 강한 유대감이 언제고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곡에 대해 얘기해 보죠. 좀 더 오래된 곡 중 “Hole In The River”는 비교적 직접적인 묘사를 담고 있습니다. 마치 비극을 내쫓는 의식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곡은 아버지에게 고모의 죽음을 전해들은 직후에 쓴 것입니다 [그의 고모는 자살하였다]. 거의 아버지가 말한 것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나 다름없었죠. 그건 죽음에 대해 서술해야 한다는 의식적인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때때로 세상이 일상 속에 감춰진 비참함과 우울함에 대해 모른 척하고 관심 갖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Nobody Wants To”가 그에 관한 곡입니다. 간혹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봐, 우리가 듣게 될지도 모르는 가장 끔찍한 뉴스가 뭐가 있을까. 아니, 이런 건 집어치우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끔찍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야겠어. 그럼 그것을 극복하고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야.’

당신의 두번째 솔로 앨범인 One Nil 또한 죽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무렵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직접적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고 보긴 힘들지만 그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죽음만큼 누군가의 의식을 잡아 끄는 것은 없어요. 특히 그것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일어났을 때는요. 죽음과 우리 사이의 간격은 계속해서 좁아지고 있죠. 나는 꽤나 운이 좋은 편이예요. 어린 나이에 그런 사건에 직면하지 않아도 되었거든요. 하지만 자신이 언젠가 죽게 될 거란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 사실에 천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나이에 상관없이 일어나죠. 앨범에 수록된 “Anytime”같은 곡에선 일련의 사건을 구성했습니다: “도로를 달리는 개를 보았어 / 열심히 고양이를 뒤 쫓고 있었지…’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삶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얘기하면 재밌겠다 싶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딱히 칙칙하고 섬뜩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유용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로 하여금 긍정적으로 삶을 대할 수 있게 해준다고 봅니다.

“She Goes On”당신의어머니혹은할머니에대한곡이라는사람들의추측에대해선어떻습니까, 실제로그것은누구에관한이야기도아니죠.

그렇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친구를 위해 곡을 하나 만들어 장례식에서 불렀죠. 음반에 수록하기 위해 만든 곡은 아니었는데, 다시 들어보니 누구에게나 감흥을 줄 수 있겠다 싶더군요. 결혼식에서나, 장례식 같은 데서 쓸모 있는 작곡가가 될 수 있단 건 멋진 일입니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악을 중요한 가족 모임에서 틀었다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 기쁩니다. 도움이 되는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작곡가인, 마크 에이첼과도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 그는 작곡가를 기회주의자라고 평하더군요. 특히 죽음에 관한 곡을 쓴다는 점에 있어서요. 동의하십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습니다. 기회주의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한 면이 있거든요. 음습한 유머감각을 발휘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 그래도 덕분에 좋은 음반을 만들게 되었잖아!’ 이런 류의 농담을 자주 합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런 음악엔 자존심과 이기주의도 내포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 기저에는 끔찍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감정을 공유하고, 내 음악에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어떤 보편성, 갈망 또한 존재합니다. 타인에게 감정적 공명을 불어넣고, 그들이 감정 이입을 할 무언가를 때려 박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예요. 곡을 쓰다 보면 사람들이 곡이 내포하고 있는 감정에 빠져들 것이란 감이 와요. 그러니까, 가끔은 그런 끔찍한 일들이 좋은 결과물을 낳기도 합니다. 악의를 담은 곡을 쓰는 것이 가능하며, 그런 곡이 좋은 음악이 될 수 있을까요? 내가 그 동안 그런 음악을 만들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폭력성을 띠는 음악에 대해 염려하는 편입니까? 그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측면에서요.

폭력성을 담은 음악은 가끔 정말 재미있어요. 최대한 잔인하고 악마적으로 보이려고 엄청 노력하잖아요. 대중에게 충격을 주는 게 예전만큼 쉽지 않은 세상이죠. 살인 발라드 류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 한번도 그런 장르의 음악에 끌린 적이 없어요. 하지만 잠시라도 폭스 뉴스를 보려고 노력하거나 갱스타 랩을 들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에 삶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태도도 일면 있겠지요.

가톨릭 환경에서 자란 것이 죽음을 대하는 당신의 관점에 영향을 미쳤나요?

내가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던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다곤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대체할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구요, 다만 요즘엔 이 삶이 전부라고 해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집중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며 아름다움과 기쁨을 만드는 건 유용한 일입니다. 만약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난 불교신자가 아니고 그것의 교리를 따르지도 않지만, 달라이 라마가 말한, 행복은 이 땅 위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상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 생각이 실제 천국에 다다르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 관점에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 덜 진중한 사람이 되거나 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진 않으니까요.

Time on Earth에 멋진 구절이 있지요: “지옥이 있다면/천국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부분을 쓸 때 서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만큼 진중한 사고의 바탕에서 나온 가사는 아니죠! 가장 높은 파도를 타며 그 순간에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습니다.

I Shot a Man in Reno에서 난 크라우디드 하우스가 특정되지 않은 영적인 느낌을 표출한다고 적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느낍니까?

공동체는 음악을 다룰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작곡을 할 때, 나는 사람을 중시하는 편인데, 나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같은 것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공유하는 어떤 것을요. 물론 다른 동기도 있습니다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관념들이 내 음악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마련이죠. 최근에 공연에서 보면시간을 흐를수록 그런 경향은 더 강해집니다 관객들이 노래를 하고 싶어하는데, 그건 정말 놀랍습니다. 그들의 의지대로 내버려두었을 때 당신이 들을 수 있는 것은 훌륭하지요!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 중의 하나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서 그들의 노래를 듣는 것이었어요. 이제 그들은 4중주의 합창을 합니다. 정말이지 아름답습니다. 마치 성당에 있는 거 같지요. 종교적인 의미로 치환하진 마십시오. 단지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 초월적인 것을 경험했다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fin.

데이빗 번 interviewed 닐 핀

데이빗이 진행하던 PBS의 프로그램 Sessions At West 54th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이다. Sessions..시리즈는 DVD로 출시되었지만 인터뷰는 DVD에 수록되지 않았다.

Interviewee: Neil Finn

Interviewer: David Byrne

Date: Dec 5th 1998

출처는 SomethingSoFinn.com이다

데이빗 번: 당신이 스플릿 엔즈를 시작할 무렵의 뉴질랜드 음악 씬은 어땠습니까? 나는 당신들 공연을 본 적 있거든요, 이곳 뉴욕의 보텀 라인에서 말입니다.

닐 핀: 그건 내가 밴드에 들어가기 전의 일입니다. 나는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었죠.

데이빗 번: 맙소사 – 그 공연을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닐 핀: 그래요. 뉴질랜드에서건, 세계 어디서건 우린 이상한 존재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 때는 나팔 바지 차림의 밴드가 커버 곡을 연주하며 현상유지를 하는 게 전부였던 시기입니다. 스플릿 엔즈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길을 갔던 거죠. 우리의 의상을 만들어 준 노엘 크롬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는 망토를 두른 채 손에는 번개 조각을 들고, 진한 화장을 하고, 펄럭대는 줄무늬 바지를 입고서 오클랜드의 중심부인 퀸 스트릿을 어슬렁거리곤 했어요. 그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스플릿 엔즈의 의상을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그를 뮤지션이라고 보긴 힘들었지만, 어느 날이었던가 공연 중에 숟가락으로 연주를 하더라구요. 그건 썩 괜찮은 연주이긴 했어요. 당시로선 그만한 실력이면 밴드에도 들어올 만 했죠. 결국 그는 자신의 밴드의상도 준비해왔어요.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밴드가 둘 있습니다. 하이 로빙 텅즈라는 밴드였는데, 꽤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인비트윈즈라는 이들도 있었습니다우리가 좋아하던 밴드는 그 둘 이었습니다.

데이빗:여기서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 출신이라는 점이, — 그리고 나 또한 뉴욕이 아니라 상당히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다는 말을 해야겠군요.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미국 출신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 유리한 조건이란 생각이 들었는데요

:, 그렇죠.

데이빗:중심부가 아닌 곳에 있는 것 말입니다. 덕분에 뭔가를 계획하고 그것에 대해 심사 숙고할 시간을 벌 수 있지 않나요? 그러다 보면 실수도 좀 할 순 있지만

:그렇습니다. 또한 그런 변방에서는 세상이 퍽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에게 전달되는 문화는 한정되어 있었고 그건 정제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우린 모타운과 R&B, 팝의 차이를 알지 못했어요. 실제로, 우리에겐 단 한 개의 라디오 방송국이 있었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우린 다른 세계에 대해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덕분에 커다란 꿈을 가질 수 있었죠, 그건, 어쩔 수 없이 다소 왜곡된 꿈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웃음]

데이빗:새 앨범에 “Sinner”를 비롯해 죄를 다룬 곡이 몇 있습니다.

:.

데이빗:내가 읽은 인터뷰 중에, 당신이 가톨릭 환경에서 성장한 것에 대해 얘기한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아이리시 가톨릭인가요?

:그렇습니다.

데이빗:뉴질랜드엔 많은 아일랜드인, 스코틀랜드인 이민자가 있지요.

:맞아요. 아일랜드인은 전 세계에 펴져 있습니다. 난 어머니가 아이리시 가톨릭이었고 우리는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어요. 우리 가족은 며칠에 한번씩 가톨릭 사제들과 술을 마시거나 다과회를 갖곤 했습니다. 많은 경우 술을 마셨죠. 굉장히 기억에 남는 파티가 있었는데요, 모두가 함께 노래를 부르며 끝난 파티였습니다. 그날 밤엔 신부님들과 우리 이모들이 노닥거리기까지 했죠. 실은, “Sinner”의 가사에 내가 가장 만족하는 건 모든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나는 그 구절을, 엄격한 가톨릭 신자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흥겨운 파티를 벌이는 와중에, 돌연 모든 방해물이 사라져 아이들이 멋대로 날뛰고, 밤을 새우고, 술을 훔쳐내고, 그런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과 결부시키려고 했습니다.

데이빗:그들이 그렇게 파티를 자주하면 안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난 그런 류의 교리를 깨뜨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일랜드인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삶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데 능해요. 개중에는 끝이 안 좋았던 사람도 있긴 하지만요 아일랜드 출신 중에는 정말 엉망진창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었죠. [웃음]

데이빗:하지만, 그런 게 있지 않습니까최소한 가톨릭에서는, 속죄할 수 있다, 용서받을 것이다, 하는 의식 말입니다.

:, 그렇죠.

데이빗:  끔찍한 짓을 하고 괴로워하다가도, 이것만은 언제나 인지하고 있잖습니까 , 용서해주시겠지.”

:그래요. 그런 점에선 굉장히 위안이 되는 종교이기도 하죠. 언제 한번 고해성사를 하긴 해야 하는데,

데이빗:신부님을 모셔다 드릴 수도 있습니다.

:진짜요? (목을 가리키며) 거기에 뭐 하나 갖다 대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러면 당신이 직접 해줄 수도 있을 거예요, 데이브. [웃음] 확실히, 고해성사는 굉장한 일입니다. 무슨 일을 저지르더라도 성모송주기도문을 세 번씩만 기도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니요. 게다가 그건 여전히 가사를 쓰는데 귀중한 자양분이 됩니다. 가끔 그것에 너무 많이 기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와 관련된 생각을 계속 떠올리곤 합니다.

 

David Byrne: When you started off with Split Enz, what was the music scene like in New Zealand at that time? Because I saw the group when you first played the Bottom Line here in New York…

Neil Finn: That was before I was even in the band, actually. I was in school.

David Byrne: Gosh — I saw this and I thought, “What is going on down there?”

Neil Finn: Yeah. Well, it was strange in New Zealand, and strange everywhere. But at the time it was all bands playing covers, with bellbottoms, a status quo kind of time. And Split Enz was an oddity right from the very beginning. There was a guy called Noel Cromby who used to design the costumes, and he would wander down Queen Street, which is the main street of Auckland, in a cape with a piece of a lightning bolt in his hand, full makeup, and big flared gingham pants. He was one of those kind of characters. He started making costumes for Split Enz, he wasn’t a musician at all, but ended up playing spoons one night at one of the shows and that was good enough to get into the band, in those days. And he just brought his costumes with him.

But, there were two bands that I remember. High Roving Tongues, which I always thought was a really good name, and the In-Betweens — those were the two bands we used to like.

David Byrne: Did you feel that coming from New Zealand, which for us is pretty far away — and I might preface that by saying that I didn’t grow up in New York, I grew up in a slightly smaller town. Still in the United States. But I felt in some ways it was an advantage…

Neil Finn: Oh, yeah.

David Byrne: …not to be quite in the center of things. It gave you time to develop and think about things, and you could make mistakes…

Neil Finn: Yeah. Also the world had a slightly romantic tinge to it from afar as well. We had a certain amount of culture coming to us in a very random way. We didn’t know the difference between Motown and R&B and pop. And, in fact, we only had one radio station and they played everything. So it was a romantic sort of impression we had of the rest of the world, and it enabled you to grow up with big dreams, which, inevitably got slightly soiled. [LAUGHS]

David Byrne: There’s songs on the new record, “Sinner” and some other ones, that refer to sin.

Neil Finn: Yeah.

David Byrne: You’ve mentioned in some of the interviews that I’ve read, about having a Catholic background. Is that Catholic as in Irish Catholic?

Neil Finn: Yeah.

David Byrne: There were a lot of immigrants that went to New Zealand from Ireland and Scotland.

Neil Finn: Yeah. The Irish have had an impact on the world everywhere. But my mother was an Irish Catholic and we grew up around it. We had priests over every few days for drinks and cups of tea. In fact, it was usually drinks. And very memorable parties where everybody would end up singing, and by the end of the night the priests would be flirting with our aunties. In fact, in the song “Sinner,” there’s a line about, “the closest I get to contentment is when all the barriers come down.” I relate that to the feeling that happens when reasonably strict Catholics get together and have a bit of a shindig, a party, and suddenly all the barriers are dropped and the kids are able to get away with anything, stay up all night, and steal drinks and…

David Byrne: Do you think they have to have those parties to let go every once in a while?

Neil Finn: Well, I think it’s necessary to shed those kind of doctrines and dogmas. And the Irish are the best in the world at playing off both sides of life against each other. Sometimes with bad consequences — there’s some pretty screwed up people coming out of that country. [CHUCKLES]

David Byrne: But there’s a sense — there’s always the sense, at least in Catholicism, that you can be redeemed, or you can be forgiven.

Neil Finn: Oh, yeah.

David Byrne: You can feel horrible that you’ve done something terrible, but you kind of always know that, “Well, I can be forgiven this.”

Neil Finn: Yeah. I know, it’s a very comforting religion in that respect. I probably should still be going to confession now, but, umm…

David Byrne: We can arrange to have a priest come in.

Neil Finn: Can you? You just need to have a little thing there (points to neck,) and you could just about do the job yourself, Dave. [CHUCKLES] But, yeah, confession was a very amazing thing. The idea that you could do anything and go and see the priest and say three “Hail Marys” and three “Our Fathers” and all would be well. And still, it’s a rich and fertile breeding ground for lyrics for me. I sometimes get a bit self-conscious about drawing on it too much, but nevertheless it keeps popping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