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핀 인터뷰

음악평론가 그램 톰슨은 음악 속의 죽음을 다룬 책인 I Shot A Man In Reno를 쓰며 다양한 음악가들을 인터뷰하였다. 인터뷰는 블로그에 포스팅 되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이 인터뷰는 크라우디드 하우스의 프론트맨인 닐 핀을 인터뷰한 것이다.

원문: http://ishotamaninrenobook.blogspot.com/2008/09/neil-finn-reno.html

닐 핀, mortality에 대해서 말하다

Interviewer: Graeme Thomson

가장 최근의 크라우디드 하우스 앨범인 Time on Earth는, 2005년에 일어난 밴드의 전 드러머였던 폴 헤스터의 죽음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곡을 쓰는 동안 그 사건을 얼마나 의식했습니까?

앨범에서 그 사건이 차지하는 바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일은 제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에 쓰던 곡들은 모두 그 일에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모든 곡이 그 일에 관한 것은 아니고, 몇몇 곡은 전혀 상관이 없지만, 영향을 받은 것만은 맞는 것 같습니다. 음울하거나 감상적인 방향이 아닌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받았기를 바랄 뿐이죠. 하지만 부정적인 방향으로도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곡을 쓸 때 그런 것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는 편이거든요. 곡을 쓰는 초기 단계에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믿는 편입니다. 나는 그리 체계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우연적으로 곡을 쓰게 되는 것을 신뢰하는 편이예요. 다른 이들은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곡을 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록 그것이 정제되어 있지 않고 추상적이라 하더라도 즉흥적인 작곡은 수용할만한 것입니다. 내 생각에, 즉흥적인 작곡의 소재가 되는 것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앨범에서 영혼을 갈구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느껴졌다면 실제로 그런 거겠죠. 나는 그 일 (주: 폴의 죽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것은 내 삶에 있어 하나의 어긋난 사건이었어요. 아직도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일을 극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앞으로 오랫동안 그 일이 나를 괴롭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큰 슬픔이자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 그는 좋은 친구였으며 꽤 오랜 시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가 죽기 전 몇 년 간 자주 만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와 나를 이어주는 강한 유대감이 언제고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곡에 대해 얘기해 보죠. 좀 더 오래된 곡 중 “Hole In The River”는 비교적 직접적인 묘사를 담고 있습니다. 마치 비극을 내쫓는 의식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곡은 아버지에게 고모의 죽음을 전해들은 직후에 쓴 것입니다 [그의 고모는 자살하였다]. 거의 아버지가 말한 것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나 다름없었죠. 그건 죽음에 대해 서술해야 한다는 의식적인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때때로 세상이 일상 속에 감춰진 비참함과 우울함에 대해 모른 척하고 관심 갖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Nobody Wants To”가 그에 관한 곡입니다. 간혹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봐, 우리가 듣게 될지도 모르는 가장 끔찍한 뉴스가 뭐가 있을까. 아니, 이런 건 집어치우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끔찍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야겠어. 그럼 그것을 극복하고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야.’

당신의 두번째 솔로 앨범인 One Nil 또한 죽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무렵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직접적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고 보긴 힘들지만 그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죽음만큼 누군가의 의식을 잡아 끄는 것은 없어요. 특히 그것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일어났을 때는요. 죽음과 우리 사이의 간격은 계속해서 좁아지고 있죠. 나는 꽤나 운이 좋은 편이예요. 어린 나이에 그런 사건에 직면하지 않아도 되었거든요. 하지만 자신이 언젠가 죽게 될 거란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 사실에 천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나이에 상관없이 일어나죠. 앨범에 수록된 “Anytime”같은 곡에선 일련의 사건을 구성했습니다: “도로를 달리는 개를 보았어 / 열심히 고양이를 뒤 쫓고 있었지…’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삶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얘기하면 재밌겠다 싶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딱히 칙칙하고 섬뜩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유용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로 하여금 긍정적으로 삶을 대할 수 있게 해준다고 봅니다.

“She Goes On”당신의어머니혹은할머니에대한곡이라는사람들의추측에대해선어떻습니까, 실제로그것은누구에관한이야기도아니죠.

그렇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친구를 위해 곡을 하나 만들어 장례식에서 불렀죠. 음반에 수록하기 위해 만든 곡은 아니었는데, 다시 들어보니 누구에게나 감흥을 줄 수 있겠다 싶더군요. 결혼식에서나, 장례식 같은 데서 쓸모 있는 작곡가가 될 수 있단 건 멋진 일입니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악을 중요한 가족 모임에서 틀었다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 기쁩니다. 도움이 되는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작곡가인, 마크 에이첼과도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 그는 작곡가를 기회주의자라고 평하더군요. 특히 죽음에 관한 곡을 쓴다는 점에 있어서요. 동의하십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습니다. 기회주의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한 면이 있거든요. 음습한 유머감각을 발휘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 그래도 덕분에 좋은 음반을 만들게 되었잖아!’ 이런 류의 농담을 자주 합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런 음악엔 자존심과 이기주의도 내포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 기저에는 끔찍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감정을 공유하고, 내 음악에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어떤 보편성, 갈망 또한 존재합니다. 타인에게 감정적 공명을 불어넣고, 그들이 감정 이입을 할 무언가를 때려 박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예요. 곡을 쓰다 보면 사람들이 곡이 내포하고 있는 감정에 빠져들 것이란 감이 와요. 그러니까, 가끔은 그런 끔찍한 일들이 좋은 결과물을 낳기도 합니다. 악의를 담은 곡을 쓰는 것이 가능하며, 그런 곡이 좋은 음악이 될 수 있을까요? 내가 그 동안 그런 음악을 만들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폭력성을 띠는 음악에 대해 염려하는 편입니까? 그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측면에서요.

폭력성을 담은 음악은 가끔 정말 재미있어요. 최대한 잔인하고 악마적으로 보이려고 엄청 노력하잖아요. 대중에게 충격을 주는 게 예전만큼 쉽지 않은 세상이죠. 살인 발라드 류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 한번도 그런 장르의 음악에 끌린 적이 없어요. 하지만 잠시라도 폭스 뉴스를 보려고 노력하거나 갱스타 랩을 들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에 삶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태도도 일면 있겠지요.

가톨릭 환경에서 자란 것이 죽음을 대하는 당신의 관점에 영향을 미쳤나요?

내가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던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다곤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대체할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구요, 다만 요즘엔 이 삶이 전부라고 해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집중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며 아름다움과 기쁨을 만드는 건 유용한 일입니다. 만약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난 불교신자가 아니고 그것의 교리를 따르지도 않지만, 달라이 라마가 말한, 행복은 이 땅 위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상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 생각이 실제 천국에 다다르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 관점에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 덜 진중한 사람이 되거나 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진 않으니까요.

Time on Earth에 멋진 구절이 있지요: “지옥이 있다면/천국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부분을 쓸 때 서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만큼 진중한 사고의 바탕에서 나온 가사는 아니죠! 가장 높은 파도를 타며 그 순간에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습니다.

I Shot a Man in Reno에서 난 크라우디드 하우스가 특정되지 않은 영적인 느낌을 표출한다고 적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느낍니까?

공동체는 음악을 다룰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작곡을 할 때, 나는 사람을 중시하는 편인데, 나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같은 것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공유하는 어떤 것을요. 물론 다른 동기도 있습니다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관념들이 내 음악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마련이죠. 최근에 공연에서 보면시간을 흐를수록 그런 경향은 더 강해집니다 관객들이 노래를 하고 싶어하는데, 그건 정말 놀랍습니다. 그들의 의지대로 내버려두었을 때 당신이 들을 수 있는 것은 훌륭하지요!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 중의 하나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서 그들의 노래를 듣는 것이었어요. 이제 그들은 4중주의 합창을 합니다. 정말이지 아름답습니다. 마치 성당에 있는 거 같지요. 종교적인 의미로 치환하진 마십시오. 단지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 초월적인 것을 경험했다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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