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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 Rain(1984)

프린스는 마이클잭슨과 함께 80년대 흑인음악 – 어쩌면 전체 팝음악 – 의 양대산맥을 이루던 걸물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마이클잭슨은 건전한 가수, 프린스는 퇴폐적인 가수의 이미지를 상반되게 가지고 있었다. 물론 후에 마이클잭슨이 더 변태적으로 사회에서 낙인찍히긴 했지만 ….

1984년 Prince 가 자주색의 이미지로 포장된 Purple Rain 이라는 앨범과 동명의 영화를 들고 나왔던 그 시기가 그의 음악경력에서는 최고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이후에도 이에 필적할만한 음악적/상업적 성과를 낸 앨범들을 발표하기는 하였으나 그의 존재감이 그렇게 눈부신 시기는 이전이나 이후에 찾아볼 수 없었다. Purple Rain 과 When Doves Cry 라는 최대의 히트곡일지라도 나머지 곡들이 히트곡에 묻어간다는 느낌이 없이 제각각 빛을 발하는 앨범이 바로 Purple Rain 이다. 그리고 이 앨범의 수록곡들이 착실히 연주되고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영화가 바로 동명의 영화 Purple Rain 이다.

앨범과 같은 해인 1984년에 공개되었으나 프린스는 이미 우리나라 검열당국에게 찍혀 Let’s Go Crazy 와 Darling Nikki 가 금지곡으로 분류되었으니 만큼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가 공개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다만 해외 연예계 소식을 전하는 TV프로그램 등 다른 매체에서 이 영화의 부분장면을 맛보기로나마 볼 수 있었을 따름이다(삼성 비디오플레이어 선전에서도 이 영화의 자료를 썼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이 영화는 프린스를 위한, 프린스에 의한, 프린스의 영화이다. 음악이 영화를 설명해주기 위해 쓰였다는 느낌보다는 영화가 음악의 (퍼포먼스의) 빈 공간을 메워주기 위해 땜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프린스의 반자전적인 스토리라고 하는 오이디프스컴플렉스적인 갈등과 반목, 그리고 Apollonia 라는 야심만만하고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양념일 뿐이고 역시 프린스의 화려하고 육감적인 노래와 공연이 이 영화의 줄기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심정이 “감독님 참 밸도 없으십니다^^”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을 정도다. 여하튼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점수를 매기라 한다면 100점 만점에 공연은 100점이고 드라마는 50점인데 공연이 전체 영화의 80%는 차지하는 것 같으니 100*80%+50*20% 해서 90점이라는 높은 점수가 나오는 상황이 되고 만다. 🙂

결국 아무려나 영화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영화가 신나고 재미난 경우가 비단 이 영화뿐이겠는가. 그래서 B급 영화가 인기를 얻는 것이고 컬트가 있는 것이고 우리네 인생이 삼류라는 것 아니겠는가.

비록 요즘의 레트로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많이 놀림당하기는 하지만 – 대표적으로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 – 프린스와 80년대 음악의 팬이라면 이 영화의 심히 부담스러운 당시의 패션과 춤들, 그리고 프린스의 그 거창한 모터사이클이 전혀 촌스럽다거나 유치하지 않게 다가올 것이다. 프린스 사단이었던 The Time 의 Jungle Love 와 Apollonia 6 의 Sex Shooter 등도 즐거운 볼거리이고 일종의 악역으로 등장한 The Time 의 리더 Morris Day 도 썩 훌륭한 연기를 – 어쩌면 프린스보다 한수 위의 – 보여주었다.

Breakin’ 2: Electric Boogaloo(1984)

세상 참 모를 일이다. 이 영화가 나온 1984년만 하더라도 힙합댄스, 브레이킨과 같은 거리의 춤은 흑인들과 같은 타고난 몸을 가진 이들이나 추는 춤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나 했는데 지금은 비보이네 뭐네 하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분야의 지존으로 불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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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kin2“. Via Wikipedia.

여하튼 이 작품은 그러한 거리의 춤을 소재로 한 몇 안 되는 전문영화이다. 전작의 호응에 힘입어(?) Kelly, Ozone, Turbo 의 세 주요인물을 그대로 기용하여 해도 넘어가기 전에 2편을 제작해버리는 그 순발력이 놀랍다. 전편을 보진 못했으나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 춤과 노래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라 스토리, 캐릭터는 초절정으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Kelly 는 부잣집 딸에 백인이면서도 Ozone, Turbo 와 같은 흑인댄서들과 친하게 지낸다. 한편 이들은 미러클이라 부르는 커뮤니티센터에서 자원봉사로 춤을 가르치고 있다. 이 땅이 탐이 난 한 개발업자가 쇼핑센터로 재개발하고자 하나 이를 안 Ozone 과 마을사람들이 모금을 하여 마침내 자신들의 커뮤니티센터를 지킨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도심재개발에서의 공공성과 상업성 간의 갈등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공공성 강화 및 근린주구운동이라는 자못 심각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는 영화의 주된 소비층으로 예상되는 빈민가 흑인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았을 소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의도야 어떻든지 간에 청문회 자리에서 Ozone 이 ‘인민(people)’, ‘공공(public)’, ‘공동체(community)’, ‘근린(neighborhood)’ 등을 외쳐가며 자본가에게 대항하는 모습은 무슨 좌익 성향의 뉴시네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각설하고 영화는 역시 춤에 초점이 맞추어진 만큼 사실 위와 같은 스토리는 심하게 말하면 곁가지에 불과할 수도 있을 정도로 상영시간의 많은 시간을 춤에 할애하고 있다. 카메라는 팝핀, 브레이킨, 째즈댄스 등 주인공들의 현란한 춤 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프레드아스테어의 그 유명한 벽과 천장을 타며 춤추던 장면을 패러디한 장면도 눈에 띈다. Ollie & Jerry 의 Electric Boogaloo 등 – 본인의 페이보릿이기도 – 화려한 사운드트랙이 양념 역할을 하고 있다. 춤 이외에 나머지 출연진들의 연기나 의상들이 민망할 정도여서 오히려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전편의 3천6백만 달러에 달하는 국내 흥행성적을 기대하며 급조된 후편이었지만 정작 흥행은 7백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Electric Boogaloo’ 라는 제목은 조잡한 후편이라는 놀림감으로 여러 응용사례를 통해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한다.

귀여운 반항아 (Charlotte And Lulu, L’Effrontee, 1985)

80년대 프랑스산 성장영화.

이 영화는 진지하고 탁월한 심리묘사를 통해 사춘기의 아픔과 성장을 거침없이 표현한 영화이다. 역시 프랑스산으로 Sophie Marceau를 내세워 인기를 얻었던 La Boum 이 아름다운 십대 소녀 사춘기에 설탕을 입혀 곱게 포장해 내놓은 청춘멜로물이었으며, 당시 미국에서도 유난히 Endless Love, Paradise 등 십대의 모습이 과장되어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취향의 작품이 유행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과감성과 용기가 더욱 돋보인다.

Charlotte Gainsbourg 는 철물점을 운영하는 편부 슬하에서 십대소녀가 가질법한 존재론적 고민에 시달리는 시골소녀이다. 무엇이든 불만에 차있는 이 소녀는 어느 날 동갑내기 천재 피아니스트 소녀를 우연히 만나면서 그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게 된다. 그녀를 통해 현실탈피를 꿈꾸지만 그것은 결국 도달할 수 없는 꿈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서로간의 가치관 차이로 인해 고통 받지만 딱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성격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제임스 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이나 이후 성장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어렴풋한, 또는 노골적인 선악구도에 비해 그 심리관찰이 더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탁월한 관찰능력을 보여준 영화는 이 후 Thora Birch와 Scarlett Johansson 이 주연한 Ghost World 정도일 것이다.

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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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 ver3” by Impawards.com. Licensed under Wikipedia.

Jack Black 이라는 배우에 대해 처음 존재감을 느꼈던 영화는 아마도 귀여운 구피 Will Smith 가 주연을 맡은 1998년작 Enemy of the State에서였을 것이다. 그나마도 엑스트라에 가까운 정부의 첨단추적시스템 오퍼레이터들 중 하나였던 그런 있으나마나한 배역이었다. 그래서 이 친구가 John Cusack 주연의 감각적인 코미디 High Fidelity에서 제법 비중 있는 역으로 출연했을 때에도 그저 신경질적이고 콤플렉스 강한 뚱보 역의 조연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영화의 말미에서 그는 Marvin Gaye 의 노래를 멋지게 불러 제켰고 이것이 그의 영화인생과 음악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역사적인 장면이 되고 말았다. 이후 MTV 의 각종 수상식에서 사회를 보는 등 미국의 청년문화의 새로운 (나름대로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급기야 Tenacious D 라는 배우가 만든 이래 가장 실력 빵빵한 밴드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21세기 판 To Sir With Love 인 School Of Rock에서 그의 뛰어난 키타 솜씨와 노래 솜씨를 선보이더니 자신을 닮은 Peter Jackson 의 블록버스터 King Kong 에서는 순수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어느덧 주류배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진지한 표정만 짓고 다니기에는 너무 장난기가 넘쳐나는 종합 예술인이다. 하여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코미디와 음악이 절묘하게 결합된 본 작품 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를 Tenacious D 의 동료 Kyle Gass 와 함께 만든 것이다. ‘운명의 피크’를 찾아 음악의 지존이 되겠다는 두 아티스트의 역경과 고뇌를 담은 이 작품에 Meat Loaf, Ben Stiller, Tim Robins, 심지어 Ronnie James Dio 까지 우정 출연하여 Jack Black 의 병풍이 엄청 탄탄함을 과시하고 있다. Ben Stiller이나 Will Ferrell 유의 촌철살인 화장실 유머에 탄탄한 음악이 실려 있어 몇 배 가속된 강도 높은 유머 특급이 되었다. 추천!

Quadrophenia(1979)

“’모드족’은 1960년대 영국의 가난한 백인 노동자 계층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다. 당시 영국의 젊은이들은 모드족과 ‘로커족(Rockers)’들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기성 세대에 대한 반항과 일탈이라는 점만 빼곤 둘은 모든 면에서 대립을 이루었다. 로커족들은 머리를 길게 길러 머릿기름을 잔뜩 바르고, 가죽 재킷을 입고 가죽 부츠를 신고, 육중한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녔으며, (당연하게도!) 시끄러운 록 음악을 듣고, 헤로인을 복용했으며 ‘클럽 59’를 본거지로 삼았다. 반면 모드족들은 유별날 정도로 외모에 집착해 깔끔한 헤어스타일, 최신 유행의 옷차림으로 거리를 누볐으며 가죽 잠바 대신 파카를 주로 입었고, 모터사이클 대신 스쿠터(scooter)를 타고 다녔고, 록 음악 대신 모던 재즈나 리듬 앤 블루스를 주로 들었으며 헤로인 대신 암페타민(Amphetamine)이라는 각성제를 복용했으며 ‘카나비 스트리트 (Carnaby Street)’를 본거지로 삼았다.”

이쯤이 대충의 모드족에 대한 정의이고 보다 자세한 정보를 위해 여기를 방문하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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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drophenia movie” by [1].. Licensed under Wikipedia.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모드족의 시조라 할 수 있는 The Who 가 1973년 발표한 록오페라 앨범 Quaderphenia 를 기초로 만든 영화다. 그룹이 그들을 따라다닌 팬의 이야기를 기초로 썼다는 이 앨범은 그들의 걸작 Tommy 와 같은 하나의 컨셉트앨범으로 전체 앨범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고 이 영화는 그 줄기를 따라가고 있다. 1964년 모드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는 Jimmy Cooper 는 직장에 다니고는 있지만 다만 그것은 모드족의 생활이 유지될 만큼만 돈을 벌면 그만인 직장이다. 스쿠터, 음악, 친구들, 그리고 Blues 라 불리는 환각제 … 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록커들과 사사건건 시비를 붙던 Jimmy와 그 패거리들은 급기야 길거리에서 몇몇 록커를 폭행하는데 그중에는 Jimmy 의 어릴 적 친구도 끼어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갈등은 동물들의 영역싸움과 다를 바 없는 거칠고 비이성적인 것이었다. 항상 이상한 패션과 음악에 심취해 있는 Jimmy를 부모는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Jimmy 가 마음이 뺏겨 있는 Steph는 나름대로 Jimmy에게 호감을 보인다. Bank Holiday 에 브라이튼의 해변에 모드족과 록커족이 모여든다. 이 과정에서 두 진영은 심각한 패싸움을 벌이고 경찰이 출동하여 사태를 진압한다. Jimmy는 이 소요의 흥분에 젖어 Steph 과 골목길에서 성관계를 갖지만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법정에서 Jimmy는 우상이었던 Ace Face(The Police의 Sting)와 연대감을 느끼고 뿌듯한 마음에 집에 돌아왔지만 부모와 직장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듣고는 직장을 때려치워 버린다. 그런데 이런 그를 환영해 줄줄 알았던 친구들이 웬일인지 Jimmy에게 시큰둥하고 그새 Steph 는 그의 친구와 어울려 다닌다. 상심한 Jimmy는 브라이튼으로 돌아가 그날의 승리감과 성적 쾌감을 곱씹어보지만 그것은 한 순간의 덧없는 희열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는 그의 우상이었던 Ace Face 가 호텔 벨보이로, 조직의 순응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목격하고 뼈 아린 배신감을 느낀다.

http://www.modrevival.net/
http://en.wikipedia.org/wiki/Quadrophenia_(film)

Mystery Train(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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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ery Train” by http://www.impawards.com/1989/posters/mystery_train_ver2.jpg. Licensed under Wikipedia.

브릿팝 그룹 Pulp 의 Jarvis Cocker 가 그의 노래에서 ‘모든 사람들은 여행자들을 싫어한다(Everybody Hates Tourists)’고 독설을 내뱉긴 했지만 사실 여행자들은 불쌍한 존재다. 도시가 표방하고 있는 하나의 상징을 쫓아 불나방처럼 찾아들지만 그것은 멀리서 보았을 때나 아름다웠을 신기루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일본인 남녀가 찾은 썬 스튜디오가 대표적인 예다. 수많은 명가수들이 녹음했다는 스튜디오는 관광 가이드가 잰 걸음으로 가이드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허름하고 좁은 공간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또 다른 여행자는 더욱 심하다. 죽은 남편의 관과 함께 로마로 향하는 한 여인 – 바로 로베르토베니니의 아내인 그 여배우 – 은 비행편의 문제로 억지로 멤피스에 머물게 된 것이다. 잡화상의 호객행위 때문에 원하지도 않던 잡지책을 잔뜩 사들고 길을 헤매는 와중에 엉뚱한 사기꾼에게 20달러까지 뜯긴 신세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토박이들의 이야기다. 이들에게 멤피스는 여행자들이 느끼는 그 어떤 상징성으로 다가오기보다는 그저 서로 아옹다옹하고 을러대는 지루한 삶의 터전일 뿐이다. 잡화점 주인을 살해하고 도망 다니다 호텔로 피신을 온 두 백인과 한 흑인에 관한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밀도 깊게 만들어진 에피소드라고 생각된다. 유명한 공상과학 TV 시리즈에서 제목을 따온 이 에피소드에서 결국 이방인들은 제 갈 길을 알아서 찾아가는데 정작 토박이들은 갈 길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 이 영화는 서부영화의 명배우 Lee Marvin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감독 Jim Jarmusch, 음악 John Lurie, 그리고 극중 라디오 DJ 로 목소리가 등장하는 Tom Waits 가 한결같이 Lee Marvin 의 아들들인 것 마냥 그를 빼다 닮았고 급기야 이를 의식한 Jim Jarmusch 가 이들을 모아 무슨 비밀단체를 결성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모여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 세 번째 에피소드에는 고인이 된 The Clash 의 Joe Strummer 가 문제아 Johnny 로 등장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엘비스만큼이나 위대한 이 인물이 엘비스를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했고, 또 그 영화를 그가 죽은 이 시점에서 감상하자니 왠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여인이 목격한 엘비스의 유령만큼이나 묘한 이질감과 쓸쓸함이 느껴진다.

The Commitments(소설)

아일랜드의 수도 Dublin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Derek 과 Outspan 이 그들이 몸담고 있는 밴드 And And And 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음악에 대해 빠삭한 Jimmy 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시작된다. Jimmy 는 Frankie Goes To Hollywood 를 누구보다도 먼저 들었고 남들이 열심히 듣고 있을 때는 이미 그들을 쓰레기 취급할 정도로 음악을 듣는 감각이 앞서 있었다.(소위 Hipster?) Jimmy 는 And And And 가 커버하고 있는 Depeche Mode 를 싸구려 “아트스쿨” 음악이라고 치부하면서 새로운 음악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이른바 “Dublin Soul”!!


Jimmy 에 따르면 Soul 은 보통사람, 즉 인민(people)들의 음악이다. Soul 은 “I wanna hold your hand” 따위의 에두른 표현이 아닌 “I feel like sex machine”과 같은 진솔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사랑을 노래한다. 바로 Sex 그 자체를 노래한다. 또한 Soul 은 정치(politics)이다. Jimmy 에 의하면 어느 정치정당, 심지어 노동당마저 Soul 이 없어서 나라꼴이 말이 아닌 것이다. Soul 은 착취 받는 흑인계층, 보다 근본적으로 노동계급의 음악으로 정치적인 선동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이 만들어질 밴드는 더블린에서 Soul 을 전파하는 전도사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밴드는 하나하나 형상을 빚어간다. 섹서폰, 피아노, 드럼 등 차근차근 진용이 갖추어지기 시작하였고 보컬에는 후에 밴드의 문제아로 등장하는 Deco 가 가세했고, 밴드의 정신적 지주이자 또 하나의 문제아로 자리매김하게 될 Joey 가 트램팻을 맡게 되었다.  


소설은 이런 일련의 밴드의 결성과정과 성장과정, 그리고 갈등과 뒤이은 밴드의 해체를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를 엮어서 서술하고 있다. 후에 이 작품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와는 큰 틀에서 비슷한 사건으로 전개되기는 하지만 몇몇 부분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Jimmy 는 영화와는 달리 많은 부분을 Joey 에게 의존하고 있다. 또한 밴드멤버 간의 갈등의 결정적 계기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소설에서는 갈등 폭발의 방아쇠는 밴드멤버들이 모두 사모하고 있던 Imelda 가 당기게 된다.  


음악을 주제로 하는 소설은 그 음악을 – 영화와 달리 – 직접 들려줄 수 없기 때문에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시도할 수 없지 않을까 할 정도로 어려운 시도다. Roddy Doyle 은 자신의 고향인 Dublin 과 모타운의 음악인 Soul 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실체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한데 엮으려 시도했고 그 시도는 유의미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 소설을, 그리고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더 이상 Dublin 을 정치적 갈등과 가난의 고장으로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Music And Lyrics

이런 저런 코드들이 혼합되고 재탕되어 하나의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난 모자이크 같은 영화다. 타이틀곡 Pop Goes My Heart 는 제목이 Men Without Hats 가 부른 80년대의 히트곡 Pop Goes The World 가 생각나게 하고, 퇴물스타가 다시 빛을 발한다는 설정은 방화 ‘라디오스타’를 연상시키고, 80년대 노스탤지어와 드류 배리모어의 결합은 Wedding Singer 를 떠오르게 한다.

로맨틱코미디에서 소재의 재탕은 그리 욕먹을만한 꺼리가 아니다. 요는 로맨틱코미디의 성공 포인트는 어떻게 관객들을 가슴 졸이게 하고 마침내는 새로운 연인의 탄생에 자연스럽게 박수를 치게끔 만드는 것인가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충분히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 할 수 있다. 어느새 로맨틱코미디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휴 그랜트와 드류 배리모어의 결합만으로도 이야기꺼리가 충분한 마당에 80년대 퇴물스타의 화려한 복귀라는 설정은 극적긴장감을 더욱 극대화시켜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심심풀이로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극중에서 80년대 가수들끼리 권투시합을 벌이게 해 팝계로의 복귀를 도와준다는 발상은 실제로 영국에서 80년대 가수들의 앨범발매를 상품으로 걸고 방영했다는 리얼리티쇼를 연상시키지만 그 경쟁에 참여한 이들이 새 앨범을 내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ABC를 비롯하여 많은 80년대 밴드들이 여전히 Here N Now 라는 타이틀을 걸고 영국 순회공연을 갖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80년대 노스탤지어의 자극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의 노래를 계속 부를 수 있고 그 노래에 흥겨워하는 관객이 있다면 커다란 상업적 성공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광경을 1년 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목격했다. Obsession 이라는 히트곡으로 한때 차트를 점령했던 Animotion 이라는 밴드의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멤버들이 직접 악기들을 나르면서도 소수의 관객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래하던 그들의 모습에서는 충분히 음악인으로서의 충만감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상업적 성공이 따라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당시의 Animotion 의 멤버들에게는 그 장소와 그 시간 이상으로 소중한 것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고 말았지만 같은 이치로 휴 그랜트라는 배우를 바라본다면 그는 그 나름대로의 현재의 연기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Maurice 라는 야릇하면서도 지적인 영화를 통해 팬들의 인지도를 얻었지만 이후 로맨틱코미디로 노선을 선회한 이 명문대 출신 영국 배우는 좀 더 진지한 작가영화의 배역을 맡기지 않더라도, 또는 극단적으로 차기 007이 되지 않더라도 한번 씩 웃고 말 것 같다. 관객들이 좋아하면 그만이야 하면서 말이다.

라디오스타

사실 이 영화에서 독창적이라 할 만한 요소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제목은 The Buggles 의 히트곡 Video Killed The Radio Star에서 따왔음이 분명하고, 80년대 음악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떠오르게 하며, 스타와 매니저와의 관계라는 극의 기본설정은 ‘제리 맥과이어’ 또는 ‘러브액츄얼리’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기시감이 분명한, 결말이 불을 보듯 빤한 영화가 그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힘 – 그것도 강원도의 힘 –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외의 즐거움이면서도 무척이나 기특한 일이다.


한물간 80년대 스타가 자존심만 세서 매니저를 고생시키다가 강원도 영월 촌구석에서 DJ 한자리 얻어서 다시 재기에 성공하고 매니저와의 ‘진한’ 우정도 확인한다는 단 두 줄로 줄거리가 요약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욕심 부리지 않았다는 점일 것 같다. 잘만 우려내면 쓸 만한 에피소드 엄청 나올 것 같은 설정이지만 제작진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들이 애초 의도했던 기본구도, 즉 ‘마이너가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주제의식에 충실하고 있다.


2000년대 대 80년대, 비디오 대 라디오, 서울 대 영월, 댄스 대 락 등등… 영화의 문화코드는 이렇게 양분되어 있었다. 비록 후자가 전자를 이기진 못했지만 어쨌든 80년대 퇴물 락가수가 영월에서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전국으로 방송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히 하게 되는 작은 승리로 귀결된다. 그리고 잠시 헤어졌던 스타와 매니저는 다시 재회하여 멋쩍은 웃음을 나눈다.


간간히 극적비약에 조급해하는 무리한 설정도 눈에 띄지만 박중훈, 안성기 두 관록 있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조연들의 뒷받침 – 특히 영월 지국장 역의 정규수씨는 정말 신들린 연기였다 – , 감칠맛 나는 대사, 그리고 정겨운 노래들이 어울린 자그마한 뒷동산 같은 영화였다.


p.s. 1 영화 끝난 후 자막을 읽다보면 주요배우들의 매니저들의 이름도 나온다.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배우들의 매니저들까지 챙겨줬을까?

p.s. 2 라디오프로그램이 첫 전국방송을 시작하는 날 첫 곡은 MTV의 개국 첫 시간에 튼 Video Killed The Radio Star 였다. 비디오에 대한 라디오의 복수를 상징하는 오마쥬인가?

Radio Star Strikes Back!

Dreamgirls

어쩌면 뮤지컬 영화야말로 가장 헐리웃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장르라 할 것이다. 비록 그 출발은 런던을 중심으로 한 유럽권이었지만 영화화 등을 통한 상업성에 있어서는 단연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영화는 프로파간다라기보다는 ‘환상의 실현’이라는 생각을 가진 – 어쩌면 가장 교묘한 프로파간다일지도 – 영화인들은 선술집 극장쇼에 스토리를 집어넣으면서 발전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스크린에 끌어들이면서 일상에 지친 관객들에게 꿈과 환상을 전달했다.

유성영화의 등장은 헐리웃 뮤지컬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기술적 발전이었다. 이에 따라 브로드웨이 등에서 수혈을 받아 MGM을 중심으로 거칠 것 없이 발전해오던 헐리웃 뮤지컬 영화는 이후 사실주의적인 영화장르의 발달, 뛰어난 뮤지컬 배우들의 쇠락, 조지거쉰과 같은 뛰어난 뮤지컬 작곡자들의 사망 등으로 말미암아 비인기 장르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Bill Condon 은 시카고, 드림걸스 등을 통해 뮤지컬이 아직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82년 초연한 동명의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흑인음악의 메카 모타운과 인기 흑인 여성 트리오 슈프림즈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 속 캐릭터들은 실존인물인 모타운 설립자 베리고디주니어, 슈프림즈의 리더 다이아나로스, 약물중독으로 사망한 마빈게이 등과 오버랩되고 있다. 극 후반으로 가면서 영화의 주연으로 급부상하는 에피는 슈프림즈의 싱어 플로렌스 발라드를 대변하고 있다. 극적 구성에 있어서는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탄한 것이 뮤지컬의 특성인 반면 이 영화에서는 한 신인그룹의 성장과 갈등, 비정한 음악 비즈니스 계의 단면, 이후 극적반전 등을 통해 나름대로 탄탄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극중 레코드사의 사장인 커티스테일러주니어는 비주류인 흑인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리는데 일조를 한 반면 비즈니스를 위해 소속가 가수들에게 독재를 휘두르는 야누스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Phantom of the Paradise에서 Swan 이 지녔던 악마성을 고스란히 전해 받았다 할 수도 있겠다. 뮤지컬이 은연중에 백인음악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면 이 영화는 흑인음악을 소재로 하고 있는 만큼 당연하게도 R&B를 주조로 하는 정열적인 흑인음악이 전편에 걸쳐 펼쳐진다.

극 초반 지미얼리 – 에디머피가 연기했는데 썩 훌륭했다 – 가 부르던 정열적인 댄스곡에서부터 팝이 가미된 드림걸스의 음악 등 오늘날 대중음악의 주류로 자리잡은 흑인음악의 소사(小史)가 귀를 흥겹게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확 잡아당기는 ‘훅(hook)’이 부족한 게 흠이다. 이 작품에는 제이미폭스, 비욘세놀즈, 에디머피 등 현재 흑인 연예계를 주도하는 주요스타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단연 이 영화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한 – 아메리칸아이돌에서 불운하게 그랑프리를 놓친 – 제니퍼허드슨이다.

첫 출연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한 연기력과 가창력을 통해 일약 헐리웃의 차세대 스타로 떠올랐는데 영화계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비롯한 여러 영화제의 수상으로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축하해줬다. 다만 극 중반 그녀가 부르는 솔로곡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 의 애절함에 많은 비평가들이 극찬을 하였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길어서 지루했다. 아무튼 이 영화 한편으로 헐리웃이 전전(戰前)에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뮤지컬의 전성시대를 구가하리라 보긴 어렵지만 적어도 하나의 메이저 장르로서의 체면치레는 계속 이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P.S. 영화의 헤피엔딩과 달리 플로렌스 발라드는 팀에서 축출된 후 불운한 인생을 살다가 32살의 어린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멤버들 간의 불화도 해소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