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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mmitments(소설)

아일랜드의 수도 Dublin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Derek 과 Outspan 이 그들이 몸담고 있는 밴드 And And And 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음악에 대해 빠삭한 Jimmy 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시작된다. Jimmy 는 Frankie Goes To Hollywood 를 누구보다도 먼저 들었고 남들이 열심히 듣고 있을 때는 이미 그들을 쓰레기 취급할 정도로 음악을 듣는 감각이 앞서 있었다.(소위 Hipster?) Jimmy 는 And And And 가 커버하고 있는 Depeche Mode 를 싸구려 “아트스쿨” 음악이라고 치부하면서 새로운 음악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이른바 “Dublin Soul”!!


Jimmy 에 따르면 Soul 은 보통사람, 즉 인민(people)들의 음악이다. Soul 은 “I wanna hold your hand” 따위의 에두른 표현이 아닌 “I feel like sex machine”과 같은 진솔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사랑을 노래한다. 바로 Sex 그 자체를 노래한다. 또한 Soul 은 정치(politics)이다. Jimmy 에 의하면 어느 정치정당, 심지어 노동당마저 Soul 이 없어서 나라꼴이 말이 아닌 것이다. Soul 은 착취 받는 흑인계층, 보다 근본적으로 노동계급의 음악으로 정치적인 선동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이 만들어질 밴드는 더블린에서 Soul 을 전파하는 전도사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밴드는 하나하나 형상을 빚어간다. 섹서폰, 피아노, 드럼 등 차근차근 진용이 갖추어지기 시작하였고 보컬에는 후에 밴드의 문제아로 등장하는 Deco 가 가세했고, 밴드의 정신적 지주이자 또 하나의 문제아로 자리매김하게 될 Joey 가 트램팻을 맡게 되었다.  


소설은 이런 일련의 밴드의 결성과정과 성장과정, 그리고 갈등과 뒤이은 밴드의 해체를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를 엮어서 서술하고 있다. 후에 이 작품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와는 큰 틀에서 비슷한 사건으로 전개되기는 하지만 몇몇 부분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Jimmy 는 영화와는 달리 많은 부분을 Joey 에게 의존하고 있다. 또한 밴드멤버 간의 갈등의 결정적 계기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소설에서는 갈등 폭발의 방아쇠는 밴드멤버들이 모두 사모하고 있던 Imelda 가 당기게 된다.  


음악을 주제로 하는 소설은 그 음악을 – 영화와 달리 – 직접 들려줄 수 없기 때문에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시도할 수 없지 않을까 할 정도로 어려운 시도다. Roddy Doyle 은 자신의 고향인 Dublin 과 모타운의 음악인 Soul 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실체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한데 엮으려 시도했고 그 시도는 유의미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 소설을, 그리고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더 이상 Dublin 을 정치적 갈등과 가난의 고장으로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히로카네 켄시, 건전한 자본주의자? 혹은 호전적 극우?

<히로카네 켄시>라는 이름은 익숙하지 않겠지만 <시마 과장>하면 “아~”하며 다들 고개를 끄덕거릴 거다. 그는 <시마 코사쿠>라는 베이비붐 세대의 직장인의 성공 스토리 <시마 과장>을 사실적이고 섬세한 터치로 그려내어 스테디셀러로 만든 작가이다. 강직하고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낭인(浪人)이면서도 아슬아슬 조직생활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어쩌면 모든 직장인들의 대리만족을 위한 캐릭터였던 시마 과장은 일본을 비롯하여 한국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 결과 원작은 영화화되기도 하였고 연달아 시마 사원, 시마 부장, 시마 이사, 시마 상무 시리즈로 거의 실시간으로 현재까지 연재가 되고 있다.


시마 코사쿠는 어쩌면 히로카네 켄시의 알터이고라 할 수 있다. 와세다 법대 출신인 작가는 특이하게도 재학 중 만화연구회 등의 활동을 통하여 그림 실력을 다진 뒤 마츠시다 전기의 광고선전부에서 4년간 근무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시마 역시 와세다 출신으로 하츠시바 산전의 광고관련 부서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궤적을 그대로 밟고 있다. 작가는 이후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나 다만 그의 그림자 시마는 회사에 남겨두고 왔다. 이후 시마는 전공투 세대의 이념갈등, 일본기업의 동남아 진출, 80~90년대의 경제불황, 21세기의 중국으로의 진출 등 시대변화를 실시간으로 배경에 깔고 승리와 패배를 거듭하며 일본경제의 주역으로 성장한다.


이러한 연유로 시마 과장은 한편으로 일종의 경영학 지침, 또는 처세학 지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일본기업의 동남아 진출의 에피소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전범으로서의 일본과 전후 경제적 동물로까지 불릴 만큼 천박했던 일본(또는 일본인)에 대한 아시아인(특히 동남아인)의 시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작품의 절정을 이루는 연작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 작품의 기획 의도는 (개인적으로 볼 때) 어디엔가 속하지 않고서는 존재가치를 찾지 못하는 일본인 특유의 귀소본능을 거부한 낭인이 성공한다는 역발상이었기 때문에 처세술하고는 거리가 멀다고도 할 수 있다. 또 양념처럼(때로는 본질처럼?) 등장하는 숱한 여성들과의 육체적 관계, 그 뒤에 이어지는 비현실적인 보상들은 유난히 남성주의적인 시각이 정당화되어 있어서 경영학으로서도 부적합한 면이 있다.


숱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지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히로카네 켄시의 우익적 시각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냉정한 기업풍토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작품이라고까지 승화시킨 모 평론가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자본가가 원하는 직장인 상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평론가의 시각은 일종의 비약이다. 즉, 회사 내 파벌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는 좋을지도 모르나 근본적으로 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부패행위로 보는 시각, 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인자는 위선적인 사회주의자라는 시각(사원 시마에서 볼 수 있음)은 건전보수를 지향하고 있는 면은 없지 않지만 자본가가 꿈꾸는 완벽한 자본주의로의 이상향을 그대로 그리고 있을 따름이다.


히로카네가 시마 시리즈에서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보수적인 정치적 지향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 군상들은 멀리 봉건시대 영주에 철저히 복종하는 수구적인 모습까지 띠고 있다. 특히 이들이 여성과의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열 명중 아홉이 첩을 꿰차고 있으면서도 나름의 정당한 변명거리를 깔고 있음에 분명히 시대착오적이라 할만하다. 이와 반면에 다른 남자를 꿰찬 여성 캐릭터의 상당수는 – 모두는 아니더라도 – 파멸적인 종말로 치닫는다는 이중적인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더불어 그가 그리고 있는 좌익들은 십중팔구 위선자들이다. 사원 시절 그의 선배가 그러했고 임원 시절 중국의 공산당 관료들이 그러했다.


이렇게 시마 시리즈에서 은연중에 드러났던 히로카네의 보수적 시각은 그의 또 다른 작품 <정치9단>에서는 보다 명확해진다. 정치가였던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정치로 입문하는 <카지 류우스케>의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다룬 이 만화에서는 헌법9조의 개정, 이를 통한 해외파병을 정당화하고 있다. 작가는 호헌을 외치는 일본의 평화세력을 “평화에 중독된” 이상주의자들로 그리고 있어 일본 극우의 시각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작가는 일본의 주적을 북한으로 상정하고 북한을 그지없이 호전적인 나쁜 이웃으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1990년대 중반 실제로 있었던 한반도의 위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북한이 저지르지도 않은 “민간인 유람선 난사사건”까지 연출한다. 이는 헐리웃 영화 <Rules Of Engagement>에서 예멘 국민들을 꼬마아이까지 미군에게 총질을 해대는 극단적 테러리스트들로 묘사하여 미국의 응전을 정당화하였던 철저한 역사왜곡을 그대로 연상케 한다.


요컨대 히로카네의 세계관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마 시리즈에서 드러났던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보수성, 그리고 정치9단에서는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보수성으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할 수 있다. 확실히 그도 일본인으로서 평균적인 일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전후 그들에게 부여된 자위권이라는 말이 모순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보편”을 놓치고 있다. 일본인이 아닌 세계인이 되고자 한다면 적어도 인접국이 공감할 만한 보편이 있어야 한다. 한 예로 위안부 문제의 해결 없이 일본이 진정 아시아 평화에 기여할만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보편”을 외면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적어도 일본만화의 또 하나의 걸작 <맛의 달인>(글 하나사키 아키라, 그림 카리야 테츠)에서 작가들이 서술하는 진정한 아시아의 일원으로서의 일본의 책임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