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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dy Vanishes

이 영화는 제목이 잘 지어진 사례로 뽑힐 만하다. ‘숙녀가 사라지다’라는 신문의 사건사고 헤드라인과 같은 제목은 극 초반부터 도대체 등장인물 중 어느 여인이 실종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제목 하나로 극 초반의 서스펜스를 유지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히치콕의 영화는 애매하거나 상징적이기 보다는 ‘밧줄’, ‘새’, ‘이창’, ‘기차의 이방인’ 등 직선적이고 영화의 핵심이 되는 제목을 선호한다.

각설하고 기차 안에서의 실종사건의 미스터리와 로맨틱코미디가 적절히 가미된 이 코믹스릴러는 히치콕의 영국 체류기간의 말미를 장식한 작품 중 하나로 헐리웃의 시선을 끌 정도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예비신부 Iris Henderson (Margaret Lockwood)은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다. 이 과정에서 친절한 중년의 여성 Miss Froy (Dame May Whitty)를 만나는데 잠깐 잠이 든 사이 Miss Froy 가 사라지고 없었다. Iris 는 그녀를 찾아 헤매지만 기차 안의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본적조차 없다고 부인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인데 우연히 호텔에서 다투었던 젊은 음악가 Gilbert (Michael Redgrave)가 그녀를 돕고 나선다.

중심이 되는 미스터리나 스크루볼코미디와 함께 히치콕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총격장면도 볼거리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끼어들길 꺼리는 영국인의 무뚝뚝함과 이기심이 신랄하게 비난받는 설정도 흥미롭다.

Island Of Lost Souls

남태평양을 항해하던 Lady Vain 이 난파되었을 때 유일한 생존자는 Edward Parker 였다. 어느 화물선의 선원들에게 구조된 그를 정체모를 의사 Montgomery 가 돌봐주었다. 건강을 되찾은 그는 사소한 시비가 붙은 주정뱅이 선장 Davies 의 불의의 습격 탓에 어떤 섬으로 향하던 Montgomery 일행과 합류하게 된다. 그 배에는 또 다른 정체모를 과학자 Moreau 박사가 타고 있었다.

Apia 라는 섬에 도착한 Edward 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 곳의 주민들은 하나같이 털북숭이에 정상이 아닌 듯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뒤 Edward 는 그 주민들은 Moreau 박사가 동물들의 변형을 통해 재창조된 동물-인간들임을 알게 된다. 한편 Moreau 박사는 아름다운 여인 Lota 를 Edward 에게 소개시켜주고 둘이 성관계를 맺기를 바라는데 사실 Lota 역시 표범을 인간으로 둔갑시킨 여인으로 Moreau 박사는 둘 사이에 새로운 종의 인간형이 태어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Edward 의 약혼녀 Ruth 는 그를 찾아 섬으로 찾아왔고 Moreau 박사의 음모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걸출한 공상과학 소설가 H.G. Wells 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30년대 파라마운트가 제작한 공포영화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음습한 분위기의 정글 세팅, 캐릭터들의 날선 대립구도, 자연으로부터의 복수라는 상당히 현대적인(?) 주제 등을 담고 있어 컬트 무비라기보다는 잘 만들어진 메이저스튜디오 작품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하지만 정작 원작자 Wells 는 이 작품을 싫어했다는데 그의 원작의도가 이 영화에서는 성적타부의 과도한 강조 등으로 퇴색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한다. 실제로 표범 여인 Lota 는 Wells 의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다분히 흥행적 요소가 고려된 캐릭터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소설가로서 훗날 걸작 SF 영화 When Worlds Collide 의 원작자이기도 한 Philip Wylie 의 시나리오는 이러한 결점을 상쇄해주는 양질의 것이었다. 야성과 성적은유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킹콩과 닮았고 미친 과학자라는 설정에서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그 뒤 두 번 메이저스튜디오에서 리메이크되었지만 그 두 작품은 원작만큼의 작품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p.s. 1)Moreau 박사가 그의 야심을 Edward에게 드러내는 장면에서 상당히 귀여운 표정을 짓는데 어이없다기보다는 의외로 신선하다.
p.s. 2) 동물-인간들의 리더격으로 나오는 배우는 바로 드라큐라 역으로 유명한 Bela Lugoci이다. 그의 전직은 사실 사회주의 혁명가로 헝가리 사회주의 혁명 실패후 미국으로 넘어와 호구지책으로 공포영화의 배우가 되었다.

Ganja & H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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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ja & Hess” by Amazon.com. Licensed under Wikipedia.

이 작품은 이른바 Blaxploitation Film 의 절정기에 만들어진 걸작으로 간주되고 있다. Blaxploitation 에 대해 좀 지루한 설명이 필요한데 이 단어는 ‘흑인(Black)’과 ‘착취(Exploitation)’의 합성어이다. 다만 흑인을 착취하는 필름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과도한 섹스씬이나 폭력씬 등으로 흥행을 노리는’ 장르라는 의미의 Exploitation Film 중에서도 흑인관객을 주로 타겟으로 삼는 영화가 바로 Blaxploitation Film 인 것이다. 이렇게 철저히 마이너적 감성으로 만들어진 터라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퀀틴타란티노 등에 의해 재조명되기도 했다.

Hess Green 박사는 저명하고 부유한 인류학자이다. 그는 George Meda 라는 새 조수를 고용하게 된다. George 는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Hess 를 칼로 찌르고 권총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피를 마시는 아프리카의 멸종한 종족인 Myrthia – 이런 종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 의 칼에 찔린 Hess 는 오히려 불멸의 삶을 얻게 되지만 피에 굶주린 일종의 뱀파이어가 되고 만다. 이후 그 앞에 George 의 아름다운 아내 Ganja Meda 가 등장한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Ganja 역시 Myrthia 의 저주에 걸리고 만다.

배우이자 소설가, 극작가인 Bill Gunn 은 형편없는 예산으로 뱀파이어 영화를 만들어야만 했고 그는 뻔한 뱀파이어 영화대신 아프리칸-아메리칸 문화의 메타포가 예리하게 새겨진 이 초현실주의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당초 길이에서 뭉텅이로 잘려나가 8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라서 그런지 극의 진행은 가끔씩 빠르다 못해 어이없는 전개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결점은 비전형적이면서도 재기 넘치는 에피소드를 통해 상쇄되고 있다. 이보다 더 엄청난 비용을 들이면서도 사람을 어이없게 만드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상징이나 메타포 – 이 영화에서 피는 곧 아프리칸-아메리칸의 뿌리, 즉 아프리카로의 회귀를 의미한다(고들 한다) – 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결국 그런 것들은 우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고나서야 찾을 것들이다. 이야기가 없는 영화들이 관객들을 혼란시키는 상징과 메타포로 떡칠을 하고 아트 필름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이 영화의 미덕은 장르 영화의 교묘한 비틀기로 우선 이야기 면에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상징이나 메타포는 그 후 비평가의 몫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재기 넘치는 유사한 작품을 한참 후에 남미의 ‘엘마리아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영화는 온갖 난도질에다가 제목마저 Double Possession, Blood Couple, Black Vampire 등 질 낮은 수준으로 교체되어 개봉되곤 하였다고 하니 보통 고생한 작품이 아니다.

Dust D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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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서북쪽에 위치한 나미브 사막에 한 백인 여행자가 나타난다. 그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과 섹스를 나누다가 돌연 목을 비틀어 죽여 버리고 손가락을 떼어낸 후 그녀의 피로 정체모를 의식을 치룬 후 집에 불을 질러버린다. 한 시골의 마법사는 그의 정체를 물어온 경찰에게 그는 마음먹은 대로 사람들의 몸을 옮겨 다닐 수 있는 악령, 일명 Dust Devil 이라고 일러준다. 한편 남편과 대판 싸운 웬디는 차를 몰아 집을 떠난다. 연쇄살인자 또는 악령일지도 모를 이 이상한 사내를 태운 그녀 역시 남자의 매력에 빠져 그와 하룻밤 섹스를 즐긴다. 무심코 뒤진 그의 가방에서 나온 피가 얼룩진 손가락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차를 몰아 달아나지만 악령은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장르의 혼합 – 스릴러, 오컬트, 서부극, 로드무비 – 은 독립영화의 독특할 실험정신을 통해 화학적으로 융합되어 있다. 무미건조한 갈색톤의 화면은 광활한 사막이 상징하고 있는 인간의 고독을 잘 필터링하고 있다. 페이스는 같은 장르의 영화보다 느슨하고 배경음악은 서사적이면서도 묵시론 적이다. Hardware 를 통해 컬트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Richard Stanley 가 1992년 만든 작품으로 극장 개봉시 애초 필름이 뭉텅이로 잘려나가 8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었지만 감독의 재편집을 통해 103분 짜리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DJUNA의 영화평

Obsession

이 영화는 제목 자체가 일종의 눈속임이다. 브라이언드팔머의 1976년작인 이 영화는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딸이 유괴되어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된 한 부동산업자의 과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묘사하며 일종의 심리극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영화는 어느 한 순간 초자연적인 장르로 노선전환을 하는 가 싶더니 종국에는 치밀한 음모에 주인공이 희생된 범죄 미스터리로 막을 내린다. 영화의 플롯 자체가 어느 노선으로 향하여도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게끔 신축성이 있는지라 결말을 어떻게 꾸며도 나름대로 재밌었을 영화였다. 하지만 “히치콕의 인정받지 못한 아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감독답게 히치콕의 명작 ‘버티고’의 플롯을 고스란히 베껴왔다는 비난을 받은 – 심지어 음악까지도 ‘버티고’의 음악을 맡았던 버나드 허먼이 맡았다고 한다 – 영화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개인적으로는 ‘버티고’의 스토리가 기억나지 않은 덕에 영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로케이션, 조연들의 호연, 깔끔하게 처리된 음악, 서스펜스를 몰고 가는 연출력 등이 나름 매력 포인트이고 분위기로는 도널드서덜랜드 주연의 ‘Don’t Look Now’가 떠올랐고, 영화의 여러 상징과 설정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Old Boy’, 그리고 범인의 설정에서는 패트릭스웨이즈 주연의 ‘Ghost’ 가 떠올랐다. 흥행 면에서는 같은 해 개봉된 드팔머의 또 다른 작품 Carrie 에 훨씬 못 미쳤다.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

마녀는 누군가의 이름을 바꿔서 그를 지배한다. 우리가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호명하는 행위는 그 사물을 정의하는 가장 기본적인 시작단계이다. 이름 모를 새나 이름 모를 꽃에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우리는 그 새나 그 꽃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또는 그것들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붙여진 그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그것들을 우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명확한 의지표현이다.

치이로라는 이름이 과분하다며 센으로 이름을 바꿔버린 마녀 유바바의 행동은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인 지배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센은 부모님이 지어주었을 자신의 본명을 계속 기억함으로써 자신을 노예로 부리고 부모님을 돼지로 둔갑시킨 유바바의 지배에 저항한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 준 하쿠의 본명을 알려줌으로써 그의 해방을 도모하기도 한다.

<앨리스의 이상한 모험>과 <오즈의 마법사>의 일본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히야오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삿날 길을 잘못 들어버리는 바람에 겪게 되는 정령(精靈)들의 목욕탕에서의 한바탕 소동은 히야오가 이전부터 관심을 가져오던 주제, 즉 어린 소녀의 성장기와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가 적절히 결합된 한편의 판타지다. 버블경제의 몰락으로 쇠락해버린 버려진 유원지라는 공간의 설정이 흥미롭다. 다만 개인적으로 컴퓨터그래픽과 수작업으로 그려진 그림간의 미스매치가 다소 눈에 거슬린다.

The Four Feathers

A.E.W Mason 이라는 소설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1939년 Zoltan Korda 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원작을 영화화한 네 번째 사례이자, 유성영화로는 첫 번째 만들어진 사례이다. 이후로도 TV 시리즈로 한번, 극장개봉작으로 또 한 번 영화화되었으니 총 여섯 번이나 영화화되었다. 비록 A.E.W Mason 이 헤밍웨이에 필적하는 훌륭한 소설가는 아니었으나 자신의 소설이 여섯 번이나 영화화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작의 어떠한 매력요소가 이토록 영상작가들의 관심을 끄는 것일까? 그것은 영국의 제3세계에 대한 식민지 활동이 극에 달하는 1800년대 말에 대해 영국인들 – 또는 서구인들 – 이 느끼는 강한 향수와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즉, 이 시기는 서구열강의 지도자로서의 영국이라는 위치, 이를 대변하는 영국인들의 강한 자긍심, 식민지 아프리카의 광대한 평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동감 등 모험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나 영상이 추구하여야 할 매력요소가 이 시기에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기병대 장교이기도 했던 감독 Zoltan Korda 는 수단의 수도 카르툼을 둘러싸고 영국군과 마흐디(Mahdi는 구원자 또는 영웅을 의미하며 실제 이름은 무함마드 아흐마드)가 이끄는 반란군(?) 간에 벌어졌던 실제전투을 실제 전투 장소에서 실제 전투에 참가했던 양쪽의 병사까지 일부 써가면서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스펙터클한 전투장면을 연출하여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촬영기법은 이후 수많은 전쟁영화에서 답습되었다.

그렇다면 영화 제목인 <네 개의 깃털>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깃털은 겁쟁이를 상징한다. 주인공 Harry Faversham 은 영국군 장교로 수단으로의 파견을 얼마 두지 않은 시점에 불쑥 군을 떠나고 만다. 남은 친구 셋은 그를 겁쟁이로 간주하고 그에게 깃털 세 개를 보낸다. 남은 하나는 그의 약혼녀의 불신을 상징한다(1939년 작에는 약혼녀가 그에게 깃털을 주지 않았지만 2002년 작에서는 직접 준다). 바로 이 대목이 영화가 드라마의 형식으로써 가져야 할 기본갈등을 이루고 있다.

39년 작을 보면 Faversham 은 어릴 적부터 시를 읽기 즐겨하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군인집안 출신으로 아버지의 강권에 따라 억지로 군에 입대했을 뿐이다. 수단파견의 시점에 공교롭게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는 미련 없이 군을 관두고 만다. 반면 2002년 작에서는 집안의 강요는 동일한 설정이되 Faversham 의 아버지도 사망하지 않았고 다만 주인공은 약혼녀와의 결혼, 그리고 정말 수단파견이 겁이 나서 군을 그만두는 설정이다. 결과적으로 설득력 측면에서는 39년 작이 보다 설득력이 있고 2002년 작은 이후의 어설픈 드라마 전개의 원죄로 작용한다.

영화가 계속 이어지려면 주인공은 어떤 식으로든 겁쟁이라는 비난에 반응하여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원작의 가장 어설픈 설정일 수도 있는데) Faversham 은 비난을 무시하는 대신 한 맺힌 깃털 세 개를 들고 수단으로 무작정 떠난다. 그리고는 전쟁 중에 눈이 먼 그의 친구 John 과 감옥에 수감된 나머지 친구들을 구하고 결국에는 카르툼 요새를 수복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참 의아한 게 결국 친구들이 그런 곤경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그가 수단으로 갔어야 할 의의가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 가다보니 친구들이 위험에 빠지고 그래서 영웅이 된 빈약한 개연성의 설정이다. 특히 2002년 작에는 Faversham 을 돕는 원주민이 등장하는데 그를 돕는 이유가 다만 신의 뜻이라고 말해 관객을 의아하게 만든다.

이상에서 간단히 알아본 극의 줄거리에서 볼 수 있듯이 원작을 포함한 이 영화들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철저히 지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주인공은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1930년 작) 에 등장하는 국수주의 부르주아들처럼 조국을 위해 몸 바치라는 허세에 반감을 가지지만 그렇다고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반전(反戰)적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깃털 세 개의 치욕을 씻기 위해 군인들보다 더 뛰어난 활약으로 제국주의 영국의 명예(?)를 수호한다.

에르제의 유명한 만화 캐릭터 땡땡이 콩고에서 그랬듯이 그들은 열등민족에 대한 보호자적 지배를 당연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점이 이 영화가 지니는 명백한 한계이다. 때문에 언제까지 제국주의적 관점을 당연시할 수 없었던 2002년 작은 어설프게도 John 의 연설을 통해 Faversham 의 행동이 조국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우정을 위해 그러했노라고 변명을 한다. 어쩌면 여전히 이슬람을 적으로 몰아세워 난도질을 하는 다이하드 유의 액션물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Power of One 과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백인 선지자의 역할은 놓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과연 이 작품이 또다시 영화화될 적에는 또 어떠한 핑계거리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Lone Star

멕시코와 연접한 텍사스 주의 한 마을의 황야에서 죽은 지 몇 십 년이 지난 이름 모를 이의 뼈가 발견된다. 죽은 이의 정체는 25년 전에 실종된 그 마을의 부패한 인종우월주의자 보안관 Charlie Wade. 이 사건의 수사를 맡게 된 신임 보안관 Sam Deeds 는 우연찮게도 Charlie 의 뒤를 이어 보안관직을 수행한 Buddy Deeds의 아들이다. Sam은 언제나 공정하고 명쾌한 업무 수행으로 그 마을에서 전설이 되어버린 그의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든 이 미스터리한 사건에 연루되었으리라는 심증을 가지고 수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비밀을 알고 있으리라 짐작되는 이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그 와중에 Sam 은 인종주의적 편견 때문에 맺어지지 못했던 멕시코계옛 애인 Pilar 와 재회한다.

영화는 이외에도 마을 술집 주인 Otis 와 육군 대령인 그의 아들 Delmore 와의 갈등, 역사교육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갈등(한때 멕시코의 영토였다가 지금은 미국의 영토가 되어 백인, 멕시코인, 흑인이 어울려 사는 이 동네에서는 몹시 심각한 갈등이다) 등의 에피소드가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켜 진행된다. 이러한 모든 갈등들은 역사적 콘텍스트와 개개인의 인생사가 꼬여 등장인물들의 몸과 마음의 주변에 낙인찍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같은 공간에서 세련되게 표현해내는 연출솜씨 덕에 지극히 사실주의적인 개개 사건들은 초현실적으로 그려진다.

Matewan 등을 통해 근접하기 어려운 사회적 이슈를 솜씨 있게 풀어나가는 이야기꾼 John Sayles 가 1996년 만든 이 작품은 자칫 흥분에 들떠 직설적인 화법으로 내뱉을법한 참기 힘든 유혹을 물리치고 관객 스스로에게 나직하게 질문을 던지는 낮은 톤의 묵직한 화법을 통해 미국이라는 인종의 용광로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모순을 유려하게 펼쳐내고 있다.

Sam Deeds 역을 맡은 Chris Cooper 는 그 스스로가 Charlie 로 대표되는 사회적 모순의 피해자이면서도 사회체제의 온존을 위해 그의 아버지가 범인일지도 모르는 사건을 수사해야만 하는 보안관 역을 뛰어난 연기로 소화해냈다. 영화 제목인 Lone Star 는 알려져 있다시피 텍사스 주의 별명이다.

Silver Streak

Jim Carrey 가 9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이라면 Gen Wilder 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자리매김하여도 어색하지 않다. 멜브룩스, 우디알렌 등 당대의 코미디 대가들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였던 그는 상업성과 작품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점에서 Jim Carrey, 또는 다른 이전/이후의 코미디언보다도 행운아 내지는 실력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Jim Carrey 도 생각 없는 코미디 몇 편을 찍은 후에는 The Truman Show, Man On The Moon 등을 통해 품격을 높이고 있지만). 여하튼 이 곱슬머리에 엄청 큰 코, 그리고 토끼눈처럼 동그란 파란 눈동자의 이 사나이가 1976년 골라잡은 작품은 Love Story 의 감독 Arthur Hiller 가 메가폰을 잡은 코미디 블록버스터 Silver Streak 이다. 단지 지루해지고 싶어서 비행기 대신 기차를 골라잡은 George Caldwell(Gene Wilder)은 뜻하지 않게 Hilly Burns(Jill Clayburgh)과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한참 무드가 무르익을 무렵 창밖으로 떨어지는 시체를 목격하게 되면서 그의 ‘지루했으면 했던’ 기차여행은 비행기 여행이 비할 바가 안 되는 익사이팅한 모험으로 변신한다. 같은 기차에서 무려 세 번이나 밖으로 떨어지는 불운을 겪지만 굴하지 않고 ‘악의 세력’을 몰아내는 그의 모습은 제임스 본드가 지닌 불굴의 정신을 연상시킨다. 적당한 미스테리, 자못 심각한 스턴트액션, 그리고 진와일더 특유의 유머코드 등이 잘 결합되어 시간가는 것을 별로 못 느끼게 만드는 웰메이드 액션스릴러코미디물이다.

The Last House on the 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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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HousePoster“. Via Wikipedia.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웨스 크레이븐의 1972년 감독 데뷔작. 꽃다운 나이의 두 소녀가 철없이 마약장수로 보이는 꼬마에게 접근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변을 당하게 된다. 그 꼬마는 네 명의 탈옥수의 일행이었던 것이다. 강간과 납치, 그리고 끝내는 잔인한 살육까지 자행하는 탈옥수들의 눈에서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들이 살육을 자행했던 그 숲의 건너편에는 피해자 중 한 소녀의 집이 있었고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그 집에서 일박을 청한다.

우연히 악당들의 대화를 들은 소녀의 어머니는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고 끔찍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영화는 B급 영화의 미덕을 살려 폭력적인 면에서 나름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납치당한 소녀에게 바지에 오줌을 싸보라고 을러대는가 하면 두 소녀가 성관계를 갖게 하며 이를 즐기는 등 엽기적인 – 그러나 실제 상황이라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을 – 장면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부모들의 복수극도 못지않게 엽기적인데 -사실 엄마의 복수극이 가장 엽기적인데너무 잔인한(!) 스포일러라 생략 -특히 소녀의 아버지가 악당에게 사용하는 전기톱은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에서 사용되기 2년 전에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이 방면의 선구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처녀성을 잃고 숨진 딸을 위해 복수하는 부모라는 설정에 있어 잉마르 베르히만의 The Virgin Spring 과 비교되기도 한다는데 – 이 영화가 잉마르 영화의 리메이크라고 하거나 또는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거나 등등 – ,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주제는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이런 저런 상황으로 변주되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처녀성은 ‘절대’선(善)을, 강간은 ‘절대’악(惡)을 의미하니 악을 응징하는 보복은 정당성을 획득하고 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과정 역시 악과 마찬가지로 폭력적이라는 의미에서 받아들이는 독자나 관객에게 극적쾌감을 안겨주니 이 이상 더 좋은 플롯이 어디 또 있겠는가 말이다. 결국 만드는 이나 수용하는 이나 아무런 죄책감 없이 폭력의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반합의 변증법적 구도이다.

반면 감독 웨스 크레이븐은 이 영화의 제작의도가 당시 미국이 치루고 있던 베트남전을 보면서 느낀 “폭력의 실상에 대한 내 인식이 반영된 영화”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들은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어떠한 폭력도 용서될 수 없다는’ 평화적인 메시지로 수렴되어야 할 텐데 정말 그러할지는 오리무중이다. 다만 폭력적인 영화가 상영되는 주말에 그 인근에서 폭력범죄가 감소한다는 희한한 조사결과도 있는 만큼 이 영화가 상영된 극장 인근에서 감독이 의도한 효과가 있을 개연성도 있겠다.

요컨대 이 작품의 미덕은 공포영화라는 장르의 하위장르 중에서 현실에 근접한 일종의 ‘리얼리즘적인 공포영화’(내 마음대로 장르 규정하였음)의 한 축을 형성하였다는 점이다. 동 시대의 다른 공포영화들이 ‘엑소시스트’와 같은 초자연적인 소재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처럼 좀비/괴수 영화 장르로 약진할 때에 웨스 크레이븐은 나름대로 현실에 기반을 둔 사회적 이슈로 승부를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감독의 장기는 이 후 ‘공포의 계단’이나 ‘스크림’ 등에서 십분발휘되었다.

한편 이 영화는 2007년 개봉예정으로 리메이크 작업 중이라고 한다.(2009년에 발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