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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Aim Is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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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Aim isTrue”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tiff / Columbia / Demon/Rykodisc / Rhino / Hip-O.. Licensed under Wikipedia.

1977년 7월 22일 Elvis Costello(본명 Declan MacManus)의 데뷔 앨범 “My Aim Is True”가 발매되었다.(미국에서는 1978년 3월) Nick Lowe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76년 말에서 1977년 초까지 런던에 있는 패쓰웨이(Pathway)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그의 동네인 리버풀의 펍이나 클럽에서 육 년여 동안 공연을 했던 Costello는 1976년 그가 녹음한 데모테잎을 Stiff 레코드사에 보냈다. 처음에 이 레이블은 그를 Dave Edmunds를 위한 작곡가로 쓸 생각을 했었지만 Edmunds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회사는 Costello에게 몇 곡을 녹음할 기회는 주고는 Costello에게 레코딩 아티스트를 포기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결과물이 꽤 괜찮았기 때문에 마음을 바꿨다. 그래서 이제 회사는 Wreckless Eric과 데뷔 앨범을 공유할 것을 제안했지만 Costello는 이미 자신만의 앨범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노래를 작곡해놓았다. 이 앨범은 몇 주에 걸쳐 Clover라는 밴드의 멤버와 함께 여섯 번의 4시간 씩 총 24시간 동안 녹음을 마쳤다. 당시 낮에 데이터 입력 일을 하고 있던 Costello는 병가를 내가며 연습과 녹음을 마쳐야 했다. 처음의 두 싱글 “Less Than Zero”와 “Alison”이 나올 때까지 Costello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마침내 레이블은 1977년 여름 앨범을 내놓을 것을 결정하고서 Costello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프로페셔널 뮤지션으로 나서라고 권유했다. Stiff 레코드사는 그에게 월급을 주고 선금으로 150파운드와 앰프 하나, 그리고 테이프 녹음기를 줬다. Costello는 이 상황을 “7년 이후의 하룻밤의 성공”이라고 묘사했다. 이 앨범에서는 고전이 된 “Alison”와 “(The Angels Want To Wear My) Red Shoes”가 인기를 끌었고 차트에서는 “My Aim Is True” 등이 성공했다. VH1은 2003년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에서 80위에 선정했다. 롤링스톤은 2004년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개의 앨범에서 168위에 선정했다.

London Ca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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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ClashLondonCallingalbum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Epic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BBC의 2차 대전 당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의 호출 신호에서 이름을 딴 The Clash의 세 번째 앨범 London Calling을 녹음할 당시 밴드는 빚에 쪼들리고 관리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 주위에는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 인종적 갈등, 약물 남용 등으로 고통 받는 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Joe Strummer의 이야기다. “우리는 투쟁 중이라고 생각했어요. 경사지나 뭐 그런 것에서 막 미끄러져 내려가는, 손톱으로 움켜쥐고 있는. 그리고 거기엔 우릴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 음악은 마치 밴드가 전쟁터로 행진해나가는 듯하다. 기타를 친다기보다는 두드린다는 느낌에 가까웠고 베이스 역시 전투적이었다. 앨범 제목과 같은 타이틀 송은 묵시록적이고 반사회적인 분위기를 한껏 풍겼고, 보컬을 맡은 Strummer는 여러 재난에 대해 노래하는데 특히 “nuclear error”는 1979년 펜실베니아 스리마일섬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원자력 사고를 의미한다. Strummer는 마지막 가사로 “I never felt so much a-like …”를 읊조리고 노래는 모르스 부호가 울리며 끝난다. Don Letts이 감독한 비디오에서 밴드는 비에 젖은 테임스 강위의 보트에서 노래를 부른다. 롤링스톤誌는 이 노래를 ‘가장 위대한 500곡’ 중에서 14위 곡으로 선택한다.

AllMusic 리뷰
위키피디어 곡 소개
뮤직비디오

Joe Strummer: The Future Is Unwri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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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Strummer” by Masao Nakagamihttp://www.flickr.com/photos/goro_memo/776514749/.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Punk를 정확히 언제 누가 발명(!)하였는지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The Clash가 그 많고 많은 펑크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밴드들 중 하나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펑크밴드의 중심에는 Joe Strummer가 있었다. 영국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터키, 멕시코 등을 돌아다며 컸던 Joe는 영국으로 돌아와 부모와 떨어져 그의 형과 함께 기숙학교에 다니며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Joe가 불의의 심장마비 사고로 운명을 달리 한 2002년으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The Future is Unwritten은 이 독재적이고, 한편으로 인간적이고, 한편으로 급진적이었던, 그리고 스스로는 뮤직씬에서 한 번도 섹시심볼이었던 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이 잘 생기고 매력적인 인간의 다양한 인간적 모습, 그의 음악, 그리고 그가 꿈꾸던 세상을 그 주변인들과 팬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생시켰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가 The Clash로 옮겨가기 전에 만들었던 The 101’ers에서 함께 음악을 한 이들, 이 시절 버려진 주택을 점거하여 같이 살던 이들, Mick Jones를 포함한 The Clash의 멤버들, 그를 영화에 출연시킨 Jim Jarmusch, 함께 영화에 출연한 Steve Buscemi, 그의 팬이었던 John Cusack, Matt Dillon, Bono 등등. 이들은 The Clash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를 추억하기도 한다.

The Clash는 “무정부주의적”이라 불리던 – 사실은 무정부주의적이라기보다는 “주의”에 얽매이지조차 않은 철저한 체제부정에 가까웠지만 – Sex Pistols에 비해 확실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행동을 요구했고 가사는 직선적이었다. 이러한 분명한 정치적 태도는 후에 밴드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됨에 따라 그들을 옥죄는 모순의 씨앗이 되었고, Joe는 그런 이유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방황하게 된다.

Joe의 이런 모습에서 전에 다른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았던 또 하나의 위대한 아티스트 George Harrison의 방황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비록 정치적 입장은 다소 차이가 있었고, 그 방황의 대안 역시 달랐지만 무절제한 쇼비즈니스에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황폐하기 만들기보다는 보다 진실한 삶을 추구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둘의 태도는 유사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죽었단 사실도 닮았다.

둘의 유사점이 또 있다면 바로 음악적인 면에서 서구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들여와 밴드의 음악적 지향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Joe는 자메이카에서 레게를, George는 인도의 전통음악을 도입하여 각각의 음악세계와 접목하였고 이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매우 성공적이었다. 특히 Joe의 레게와 펑크의 결합은 反인종주의를 지향하는 밴드의 정치적 태도가 음악적 형식으로도 성공적으로 구현됐다는 특징이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아쉬운 점은 이 점이다. 어떻게 The Clash가 다른 펑크밴드와 달리 정치적 지향과 음악적 형식을 유기적으로 통합시키는 계기인 레게를 접했고, 그것을 그들의 음악에 도입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많지 않다.1960~70년대 영국이라는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정치적, 지리적, 인종적 위치와 그런 격변이 The Clash의 음악과 어떻게 상호작용하였는지를 좀 더 조명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DVD는 다큐멘터리 본 작품이외에 별도로 다큐멘터리에 싣지 않은 인터뷰들을 담고 있다. 이 인터뷰의 내용이 또 상당해서 별도의 콘텐츠로 여겨질 만하다. 내용도 별도로 챙겨볼 필요가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Martin Scorsese가 우연히 The Clash의 음악을 듣고 푹 빠졌고, 이들의 음악에서 그의 걸작 Raging Bull을 만드는데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에피소드였다. The Clash와 Raging Bull 이라니.

Chris와 Tina가 뽑은 위대한 펑크밴드들 보기

그들의 최근 EP Downtown Rockers의 바삭바삭하고 전염성있는 타이틀트랙을 통해, Tom Tom Club의 Chris와 Tina는 1970년대 맨해튼에서의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Richard Hell, Patti Smith, Television, Blondie 등. “우리가 Talking Heads로 처음 나설 때 CBGB에는 위대한 뮤지션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Chiris의 말이다. “모든 이들을 그 노래에 집어넣을 수 없었죠. 3분짜리의 공간으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Talking Heads의 경우도 그랬지만 펑크, 아트락, 개러지락, 뉴웨이브와 같은 개념들은 Chris와 Tina가 함께 어울렸던 많은 이들에게 자유롭게, 그리고 상호교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뉴욕의 언론은 런던의 언론이 그랬던 것과 같은 행동을 했죠.” Tina의 말이다. “그들은 모든 것들을 하나의 스타일, 하나의 이름에 구겨 넣고 싶어 했어요. 그러나 전혀 그렇지가 않았죠. 너무나 많은 밴드들이 있었고 청중들은 그 다양함을 좋아했어요.”

“펑크”란 말을 보면 Chris는 그 시절에 그 포괄적인 용어에 들어맞는 이가 누구인지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그 이름은 밴드들 간에 쓰지 않았어요.” 그의 말이다. “그 단어가 내던져진 것은 펑크 잡지가 세상에 나오고서부터죠. 그리고 조금씩 그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이 밴드는 펑크다. 이 밴드는 아니다.”

시간이 흘러 Chris와 Tina는 어떤 밴드들이 진정 펑크라고 불릴만 한지 인식하는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서 이 남편과 아내 사이이인 리듬섹션은 그 장르에서의 진정 위대한 열하나의 뮤지션에 대해 이야기한다.(알파벳 순서로)

“이들 밴드는 모두 독특한 특성이 있어요.” Chris의 말이다. “그러나 모두 공통점이 있죠. 기억해둘만 하다는 점.”

Chris와 Tina가 뽑은 위대한 펑크밴드들 보기

Punk 略史

Proto-Punk라는 장르는 사후적으로 정의된 장르라 할 수 있다. 즉 1970년대 중반 Punk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형성한 이후, 그 주된 아티스트들이 이전의 어떤 아티스트들의 음악과 태도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무리 지워진 60년대 아티스트들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당시에는 이들은 어떠한 공통점도 일치된 정신도 없었다 할 수 있다.

여하튼 이들 Proto-Punk의 대표는 역시 이전의 인습을 깡그리 무시한 정체불명의 음악을 시도한 David Bowie 다. 그의 중성적인 패션과 모호한 음악 들은 수많은 다른 장르에도 그렇지만 특히 Punk 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이 당시 Proto-Punk로 분류되는 이들로는 MC5, Modern Lovers, The Velvet Underground, T-Rex, Television, 심지어는 점잖게 양복을 빼입고 노래했던 Roxy Music까지도 거론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밴드는 단연 Roxy Music. 하지만 다른 이들이 이들의 히트곡 Same Old Scene 을 들으면 대체 이 밴드와 Punk 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은 당연하다. 아무래도 Modern Lovers가 보다 Punk 에 다가섰다 할 수 있겠다. 그들의 담백하지만 반항기어린 곡 Roadrunner 를 들으면 확실히 Punk 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더 나아가 Television 의 Marquee Moon 은 Punk 는 연주가 딸리는 음악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까부시는 명곡이다. 

본격적인 Punk 의 시대에 접어들면 영국과 미국 양쪽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태도로 무장한 일군의 아티스트들이 등장한다. 어느새 거대화된 록의 상업화와 쇼비즈니스에 노골적으로 혐오를 드러낸 이들은 소규모 공연장에서의 팬들과의 교류를 한층 중요시 여겼다.

The Sex Pistols의 등장이 역시 Punk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일 것이다. 그들의 명곡 Anarchy in The UK 는 Punk의 많은 부분을 함축하고 있는 곡으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한편 이 밴드의 멤버 Sid Vicious 는 Punk 버전의My Way 를 통해 우상파괴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Sex Pistols 가 좌충우돌 형의 Punk Band 라면 The Clash, The Jam, Gang of Four 등은 보다 확고한 사상과 신념을 가지고 음악활동을 하였다. 좌익사상에 대한 신념이 담긴 이들의 곡은 신자유주의가 막 동이 막 뜨던 영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냉정하게 묘사하였다. 영국 음악의 주요한 조류 중 하나인 Mod Revival 의 원조이기도 한 The Jam 의 Going Ground 는 메시지와 음악성의 화학적 결합의 모범적인 사례라 할만하다.

한편 전설적인 Punk Club 인 뉴욕의 CBGB에서는 영국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Punk Artist 들이 등장한다. The Ramones, Talking Heads(한국어 팬페이지), Blondie, Patti Smith 등이 이들인데 영국의 그것과는 달리 좀 더 지적인 면, 시적인 면, 아방가르드한 면이 강조되었다는 특징이다. Patti Smith 의 읊조리는 보컬이 돋보이는 명곡 Horses 나 Talking Heads의 보컬 David Byrne 의 뻔뻔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Psycho Killer 를 들어보면 확실히 영국의 Punk 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음악 장르든 그렇듯이 Punk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인기가 사그라진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새로이 등장하는 음악들은 ‘후기 펑크’ 즉, Post-Punk 라는 이름을 달고 Punk의 태도를 답습한다. 대표적인 밴드가 리더 Ian Curtis의 자살로 더더욱 전설이 된 Joy Division 이다. 댄서블한 리듬에 어울리지 않는 암울함과 부조리함으로 가득 찬 그들의 명곡 Love Will Tear Us Apart 는 그들의 명성이 헛것임이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Echo & the Bunnymen, Siouxsie and the Banshees, The Cure 등이 이 시대를 함께 한 뮤지션들이다.

Punk 의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다고 여기는 아티스트가 이 와중에 등장하는데 바로 Devo라는 밴드다. De-evolution, 즉 퇴보를 뜻한다는 밴드명에서부터 수상한 냄새가 나는 이들은 50년대 싸구려 공상과학 영화의 상상력, Punk에 충실한 곡진행, 전면적인 전자음악의 도입 등이 뒤섞인,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창성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들의 명곡 Whip it 을 들어보라. 어이가 없어진다.

그 당시 뮤지션들이 날카롭던 비판정신은 무뎌지고 배에 살이 찐 90년대 후반과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Punk 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New Wave/Post-Punk Revival 이 바로 그런 조류인데 그 선두주자는 Elastica, The Rapture, Yeah Yeah Yeahs, Arctic Monkeys 등이다. 마지막 입가심으로 The Rapture 의 The House Of Jealous Lovers 를 추천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펑크의 자기부정에 대한 단상

역시 블로깅은 재밌다. 아래 글들은 이른바 Punk Spirit 에 관한 일련의 커뮤니케이션을 시간 순으로 나열해본 링크들이다. ‘웅크린 감자’님이 펑크적이지도 않은 빅뱅은 펑크 흉내 내지 말라고 화두를 꺼내셨고, ‘민노씨’가 ‘웅크린 감자’님의 훈계가 모순되게도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대안을 찾고 있다고 비판하셨고, ‘히치하이커’님이 “다만 실제로 국내 음악신에서 아이돌이란 위치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음악을 하고 있는진 궁금하긴” 하다며 민노씨의 글을 첨언하셨다.(비판은 아닌 것 같고) 그리고 이에 대해 민노씨가 또 “펑크는 궁극적으론 자신을 부정하고, 극복하고, 역먹이려는 정신이라고 나는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첨언하셨다.



펑크 음악을 즐겨듣는 나에게는 참 흥겨운 주제다. “펑크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엿 먹이려는 정신”이라는 민노씨의 멘트도 왠지 공감이 간다. 그것 아마 아래와 같은 이유때문 일 것이다.(너무 냉소적일지 몰라도…)


시장 지배를 위한 음악 산업의 전략은 정밀하게 발전되어 왔다. 시장은 그들이 장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주기적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레코드 회사들은 인디펜던트들의 활동으로 드러난 시장 수요에 가끔 부응하기도 하지만 보통 그들은 시장을 교묘히 조작하고 가능한 선택을 제한한다. 이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대중적 취향이다. 한편으로 대중은 항상 혁신에 응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중적 취향은 항상 장사꾼들에 의해 현혹되기도 한다. 불만스러운 요구들이 쌓여 마침내 터져 나올 때까지 기업은 대중적 취향 위에 군림하다가 인디펜던트들에 의해 이 욕구는 상업화하고 다시 이는 기업의 의해 매수된다. 그러나 의문점은 어디에서 그러한 새로운 요구들이 생겨나는 것인가? 왜 시장 통제는 대부분 효율적이지만 가끔씩은 그렇지 않은가? 대중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가? 항상? 가끔씩? 이 장에서 얘기하고 싶은 요점은 록이 제작되는 상업적 프로세스는 본질적으로 상호 모순적이라는 것이다.[록음악의 사회학 사운드의 힘, 사이먼 프리스, 권영성/김공수 옮김, 한나래(1995), pp 128~129]


어쨌든 모든 예술행위는, 급기야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행위는 다른 이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전달되지 않는 한에는 지가 무슨 랭보였든, 피카소였든, 커트 코베인이었든, 트로츠키였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지 않게 된다. 그 점이 체제순화적인 행위에서야 갈등을 빚을 일이 없겠으나 체제모순적인 행위에서는 그 자체가 모순이 된다. ‘이거 시발 체제는 좆같은데 그걸 알리려면 체제 안으로 들어가야 되다니’라는 독백을 바로 윗 글에서 사이먼 프리스가 시장과 인디펜던트의 관계를 비유로 들며 어렵게 설명해주었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suede가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 그 광팬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 왈 제발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자신을 메인스트림에 쩔어있는 국내 팝팬들과 차별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그런데 그 팬은 suede 가 영국 음악씬에서 명성을 얻지 않았다면 그들의 이름을 알기나 했겠는가. 그것이 음악‘시장’에서의 팬(특히 오덕후스러운)들의 딜레마일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상호모순’이 가장 비극적으로 표출된 사례는 Joy Division의 이언 커티스나 Nirvana의 커트 코베인의 자살이 아닐까 싶다. The Clash 를 비롯한 상당수의 펑크 밴드들도 자신의 이데올로기, 상업주의, 팬들의 모순된 요구 속에서 긴장감과 자기부정 속에서 괴로워했고 말이다.(이러한 자기부정은 자본주의 정치체제로 편입한 좌파정당의 평당원들 사이에서 꽤나 심각한 고민거리다) 결국 민노씨 이야기처럼 ‘끊임없이 자기부정을 하는 펑크 정신’이 온존하여 음악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엄청난 펑크관련 블로그 하나 소개

추.


예전에 NHK에서 밴드 경연대회를 본적이 있는데 모히칸 머리를 하고 웃통을 벗은 엄청난 녀석이 보컬을 맡은 펑크밴드의 공연도 있었다. 이 보컬, 사회자의 단상까지 들고 나와서는 무대를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문제는 공연이 끝나고 난 후인데 단상을 죄송스럽다는 표정으로 들고 가 정중히 내려놓고 ‘스미마센’하며 인사를 꾸벅 하는 것이었다. 그때 일본 애들 중엔 펑크밴드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ROCK ‘N’ ROLL HIGH SHOOL

P.J.솔즈 주연의 이’컬트’가 되기위해 만들어진 ‘컬트무비’에서 라몬즈는 당당한 조연으로 출연한다.라몬즈의 콘서트를 학교에서 개최하려고하는 고교생과 락큰롤을 혐오하는 교장과의 엎치락뒤치락하는 갈등(여교장은 급기야 학생들에게 모르모트를 대상으로 ‘락큰롤이 두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실험하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한다)을 줄거리-당연히 승리의 여신은 락큰롤의 편이다-로 하는 이 94분짜리 영화에서 라몬즈는 주제가인 ‘ROCK ‘N’ ROLL HIGH SCHOOL’외에도 고등학교교정에서 벌어지는 11분짜리 미니콘서트에서 온전히 그모습을 드러낸다.라몬즈가 영화에서 보여준 모즌 라이브는 사운드 트랙에 수록되어 있으며,특히 우리에게는 영화’LA BAMBA’로 유명한 ‘리치 발렌스’의 ‘COME ON LET’S GO’의 리메이크는 과연 펑크락의 뿌리가 50년대 원초적인 락큰롤에 ㅣ반하고 있다는 논리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이 외에도 머틀리 크루의 리메이크로 유명한 ‘SMOKING IN THE BOY’S ROOM’,앨리스 쿠퍼의’SCHOOL’S OUT’,런던 펍락의 대표곡’TEENAGE DEPRESSION’,기타 척 베리,닉 로우,디보,브라이언 이노등 상당히 멋들어진 라인업을 자랑하는 사운드트랙은 정말 맛깔스럽다.특히 주연인 P.J.솔즈가 열창하는 주제가는 라몬즈의 것과는 또다른 앙증스런 느낌의 트랙이다.프로듀서는 그 유명한 필 스펙터.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는지 확실히 알수 없으나 외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심야케이블TV의 단골메뉴일 정도로 유명한 이 틴에이저 컬트 무비는 펑크락 매니아라면 꼭 한번 보아야할 작품이다.

펑크의 반항에서 테크노까지, 소비사회에 대항하는 문화운동

http://www.design.co.kr/D/d200005/html/118.htm


‘대항문화’라는 문구는 언뜻 모순되어 보인다. ‘대항’한다는 것은 거부한다는 뜻인데 문화적이라는 것은 삶으로부터 의미와 가치를 뽑아내고 그것을 해석하고 감상하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항하여 사랑한다는 것이 성립하는가? 어떻게 개방적이고 창조적이며 의미 있는 문화적 실천행위가 전술적인 대항을 의미하는 용어와 나란히 쓰일 수 있는가?


아마도 19세기의 정치철학가 칼 마르크스에게는 이러한 질문이 떠올랐을 것이다. 마르크스 및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자본주의에 대한 어떠한 의미 있는 대항이라도 노동자와 경영진, 프롤레타리아와 자본가들 사이의 대항과 같은 경제문제로 얽힌 관계에서만 생길 수 있으며, 그 형태는 정치영역에서 과격한 노동운동이나 혁명적인 선동에 의해서만 드러난다.


한마디로 이러한 사고는 문화의 영역을 빼고 오직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만을 제시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문화는 대항의 대항으로만 드러날 수 있다. 즉, 문화는 자본주의 내의 지배논리가 모두에게 명확히 보여질 수 있도록 파괴되어야 하고 폭력적인 저항을 통해 거부되어야 하는 이데올로기의 베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가 죽은 지 수세기가 지난 지금 ‘대항문화’라는 용어는 누구에게도 수수께끼를 던지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인류 역사의 궁극적인 주체라고 칭송했던 프롤레타리아는 그들이 전복시켜야 했던 체제의 편안함에 이미 오래 전에 넘어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롤레타리아들은 여가시간에 그들이 일터에서 생산한 물건을 소비하기 시작하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생산한 상품과 그 상징들에 깊이 둘러싸이게 되었다.


오늘날 소비주의와 소비문화는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 깊이 들어와 있으며 우리의 언어, 사회관계, 집단의식, 가치관 그리고 우리 자신들과의 관계에까지 완전히 용해되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 중에서 자본주의가 그 기반이 된 문화의 넓은 영역으로부터 생겨나지 않은 대항을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대항문화는 때로는 자본주의와 관련된 모든 사회적, 개인적, 정치적, 성적, 그리고 경제적인 논리에 일반적인 반대입장을 취하면서 이와 동시에 문화의 영역 안에 남는 것을 뜻한다. 즉, 사람들이 세상의 의미를 이해하고 미의 어떤 기준을 확인하기 위해 취하는 실천적 행위 및 태도로 남는다.


그러나 대항문화 활동가는 어떤 사람인가? 이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것이 현재의 대항문화를 분석하는 데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학술적으로 대항문화연구를 살펴보는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뿌리가 있다. 하나는 미국 시카고학파의 실용주의 사회학자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다양한 비주류 그룹들이 ‘대항문화’라는 용어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사회적 규범 속에서 어떻게 정체성을 유지하며, 또 어떻게 주류문화가 이러한 과정에 비슷하게 기여를 하는지에 주로 관심을 보였다.


대항문화를 다룬 또 다른 중요한 학파는 버밍엄 대학의 현대문화연구센터에 근거를 둔 영국학파의 사회학자들로서 이들은 ‘문화연구’라는 학문분야를 개척하여 널리 알려졌다. 이들에 의하면 젊은이들은 대항문화를 통해 도전을 추구하며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자본주의적인 논리를 거부한다. 비록 대항문화의 관심이 경제적인 것이며 궁극적인 목표가 정치적인 것일지라도 이들이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사용하는 수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대항문화 활동가는 자신을 둘러싼 소비문화를 형성하는 기호의 숲 속에서 경제에 뿌리를 둔 억압에 직관적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분석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새롭게 부상한 노동계급의 다양한 문화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록 이제 노동계급이 소유했던 정치력을 거의 잃었지만 이들은 대항적 입장을 취하는 소비와 기호의 표현을 통해 문화의 차원에서 정치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최근의 대항문화는 대항문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토양이 고갈되었다는 문제를 둘러싸고 위기를 맞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문화를 통한 대항이 너무나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제도화되어서 스스로를 대항적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문화를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청년문화의 모티프는 중년의 소비자를 위한 제품까지 확대되었으며 더 나아가 사회적 규범에 대한 대항, 과격한 미학과 개인주의적이고 반항적인 태도의 추구는 주류 소비문화에 널리 받아들여져서 대항의 진정한 의미가 이제는 시대착오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최근의 대항문화적 노력은 대안적 전략을 탐구해야만 했다. 1980년대에 펑크가 서서히 뉴웨이브, 팝, 얼터너티브, 그리고 더욱 더 상업적인 음악 장르로 전환하기 시작했을 때 전복과 문화적 반항을 꿈꾸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기운이 생겨나고 있었다. 펑크가 디스코 음악에 내세웠던 전통적인 금기는 격렬함과 대항을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클럽의 젊은이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깨어지고 있었다.


이에 부합하여 간헐적인 레이브 파티(클럽 파티)를 좇아 다니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끈 테크노 음악이 19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댄스 문화를 구성하였다. 이것은 대항문화 역사상 근본적으로 새로운 발전이었으며 오늘날 대항문화를 고려함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본주의 소비문화, 인공적 안락함, 대용적 쾌락, 그리고 만들어진 행복은 전통적으로 아방가르드와 청년문화그룹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격렬함과 불편함, 그리고 극단의 감정적 경험에 호소함으로써 펑크와 헤비메탈, 다다, 추상표현주의, 그리고 여타 과격한 문화 형태들은 소비주의가 선호하는 가장된 쾌락의 꿈 뒤에 숨겨진 냉혹한 현실을 찾기를 원했다.



[월간 디자인 2000년 5월호]글/샘 빙클리(뉴욕 뉴스쿨대학교 사회학과 강사)

훵크/훵키 (Funk/Funky)

James-Brown 1973.jpg
James-Brown 1973” by Heinrich Klaffs – http://www.flickr.com/photos/heiner1947/4430588088/in/set-72157623613839496/.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최근 팝 뮤직이나 가요계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어로 펑크, 펑키란 말이 있다. 그런데 매스컴에서 Funk도 펑크, Punk도 펑크로 표기하는 바람에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어떨 때 Funk를 쓰고 어떨 때 Punk를 사용하는지 혼란을 초래한다. 그 이면에는 교육부에서 시달돈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P는 물론 ㅍ(피읖)으로 발음하게 돼있기 때문에 Funk나 Punk가 모두 펑크로 표기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는 폐단이 발생한 것이다.

우선 Punk는 철저히 백인들에 의해 1970년대 생성된 록의 한 분파로서 중산층 및 상류층에 대한 반항과 기존 록 음악에 대한 반항적인 이념의 소산으로 생긴 장르인 반면 Funk는 순전히 흑인 소울 가수들에 의해서 표현되기 시작한 음악으로 원래 발음대로 훵크 또는 훵키라고 해야 타당하다고 간주된다. 그래야만 장르에서 오는 음악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훵크(Funk)란 흑인들의 속어로 성(性)적인 흥분이 고조에 달했을 때 풍기는 냄새를 말한다. 명사로 ‘악취’라는 뜻의 이 말의 형용사가 훵키(Funky)로서 블루스, 재즈 또는 록의 감각적인 성질에 관해서 말할 때 사용된다.

즉 50년대 초반 이후 재즈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와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가 하드 밥 계열의 음악을 블루스나 거스펄과 결합시키면서 현대적인 하모니가 가미되고 후에 소울(Soul)분위기가 적당히 조화를 이뤄 더욱 강렬하고 흥겨운 리듬 감각으로 표출한 흑인 음악이다. 이 음악은 특히 60년대 소울 뮤직이 사양길에 들어서고 70년대 디스코 음악이 고개를 쳐들던 시기에 생겨난 새로운 R&B 음악의 형태라고 풀이 할수 있다. 록에서 훵크의 시작은 60년대에 제임스 브라운이 개척자로 활약했다. 훵크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이 음악을 구체화 시킨 조지 클린턴은 ‘훵크 음악의 대부’로 불릴만큼 그는 가사의 표현이 너무 퇴폐적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훵크 음악을 가장 훵키하게 만들 때 대중들에게 보

급시킨 인물이다. 한편 제임스 브라운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70년대 초반, 9인조 그룹 쿨 앤 더 갱은 뛰어난 기량으로 펼치는 풍성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분위기의 음악을 구사하였다. 이어서 보다 훵키한 감각을 가진 훵크 뮤직과 록이 결합된 훵크 록 (Funk Rock)이 훵커델릭, 부치즈, 러버밴드, 파러멘트 등에 의해 소개 됐고 재즈계에서도 훵키 재즈(Funk Jazz)가 등장했다. 훵크의 특징은 약동적인 일렉트릭 베이스와 고음을 추구하는 리듬 기타, 신나는 브라스 사운드와 흥청거리는 분위기가 돋보인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기선을 제압하는 딱딱 끊어지는 스타카토 리듬에 라틴 퍼커션의 요소가 첨가된 댄스용 음악이라는 것이다. 최근 가요계에서도 특히 댄스뮤직과 재즈에서 훵크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데, 대표적인 곡으로 김건모의 <스피드>가 있다.

출처불명

펑크 Dictionary

Sex Pistols in Paradiso - Johnny Rotten & Steve Jones.jpg
Sex Pistols in Paradiso – Johnny Rotten & Steve Jones” by Nationaal Archief, Den Haag, Rijksfotoarchief: Fotocollectie Algemeen Nederlands Fotopersbureau (ANEFO), 1945-1989 – negatiefstroken zwart/wit, nummer toegang 2.24.01.05, bestanddeelnummer 928-9663 – Nationaal Archief. Licensed under CC-BY-SA-3.0-nl via Wikimedia Commons.

100 Club
– 영국 런던에 위치한 전설적 펑크 클럽.’76년 런던 펑크의 태동기에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클래시(The Clash), 댐드(The Damned),바이브레이터즈(The Vibrators),수시 앤 더 밴시즈(Siouxie & The Banshees)등이 출연한 수일간의 걸 친 펑크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으로 유명해짐.
77 Style/77 Spirit
– 라몬즈(Ramones),섹스 피스톨즈,클래시 등 펑크 초창기의 가장 단순한 3코드 원론주의 펑크 사운드, 혹은 그러한 원론주의 자체를 지칭(see also Punk Proletariat)
Anarchism
– 무정부주의. 니힐리즘과 더불어 초기 펑크의 사상적 근간 이 되었으며 섹스 피스톨즈에 의해 빛을 보게 되었으나 스스로 지닌 한계성 때문에 소멸하게 되었고, 현재는 춤바왐바(Chumbawamba),토털 케이스(Total Chaos)정도가 그 명백을 유지하고 있는 밴드들.(see also Nihilism)
Art School Punks / Art School Trendies
– 아트스쿨 출신의 예술학도들이 결성했던 펑크 밴드들, 혹은 그들의 음악. 런던에서는 섹스 피스톨즈의 해산 이후, 뉴욕에서는 그보다 1~2년 먼저 붐을 이룸. ‘Art School Trendies’ 한 명칭은 펑크 인민주의자들이 이들을 격하해 불렀던 표현.
(see also Punk Vanguard)
Attitude
–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태도’ 혹은 ‘자세’. 관습과 권위를 부정하는 펑크의 기본 이념을 대변하는 단어
-Aussie Punks
호주에 기반을 둔 펑크 밴드를 일컫는 말. 애드버츠(The Adverts),라디오 버드맨(Radio Birdman)등이 유명.
-Bat Cave
런던의 유명한 고스(goth)클럽.
-Blank Generation
뉴욕의 전설적 펑크 밴드 보이도이즈(Richard Hell & The Voidoids)의 앨범 타이틀이자 그들의 대표곡. 명실상부한
뉴욕 펑크의 송가(anthem).
-Bored Generation
X 세대라는 표현이 유행하던 당시 캘리포니아 부근의 펑크 밴드/팬들을 일컬어 저널리스트들이 붙인 명칭. 동명의 컴필레이션도 발표됨.
-CBGB’s
뉴욕의 유서 깊은 펑크락 클럽. ’76년 무렵의 오리지널 뉴욕 펑크 밴드들로부터 시작하여 현재는 하드코어 밴드들에게 까지 중요한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Cockney
원래는 노동자 계층 출신 부랑아들을 얕잡아 일컫는 표현이었으나 점차 이 계층의 소년들 스스로 자랑스럽게 자신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억양의 영어를 코크니 라이밍 슬랭(Cockney Rhymin’Slang)이라 부른다.
-Crustcore
디스차지(Discharge)로부터 연유된 명칭.’8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영국 하드코어 세력중 특히 스트레이트/헤비하고 스피디한 성격을 강조한 일군의 밴드들 혹은 그들의 음악을 일컬음. 검은 가죽 의상과 금속 장식,스파이크 헤어 등의 패션을 애용하는 것도 특징의 하나. 이후 영국에서보다는 북유럽권의 하드코어 신과 미국의 스래시/데스 메탈 밴드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
-D.I.Y
‘네 스스로 하라(Do It Yourself)’의 약자. 펑크의 주된 애티튜드의 하나. 자주 레이블(Independent
Lable)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Facist Core / Nazi Core
’80년대 중후반 영국에서 노동계급 펑크가 인기를 끌게 되자 극우정당이던 국가 전선(National Front)에서 만들
어낸 일련의 극우 펑크/하드코어 밴드들 혹은 그 무브먼트를 지칭. 네오나치즘/네오 파시즘에 충실하며 주로 영
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등 유럽을 세력권으로 하였음. ’90년대 들어와 거의 사라진 듯 보였으나 얼마 전부터
동구권 및 나미,일본을 중심으로 다시 창궐하는 분위기임.
-Fanzine / Zine
광고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기존의 음악 매체와는 달리 순수한 팬의 입장에서 제작되는 비영리성 잡지. 인디
레이블,클럽과 합께 펑크 신을 받쳐주는 3대 하부 요소로 불리움.
-Glam Punk
짙은 화장과 블라우스,과장된 헤어 스타일 등 패션에 상 당히 신경을 썼던 펑크 밴드들을 일컬음. 단지 외양적인
측면에서의 표현일 뿐 사운드 자체는 팀마다 모두 제각각이었음에 유의할 것. 그다지 많은 팀들이 활동하지는 않았
으나 그중에서도 하노이 록스(Hanoi Rocks)나 아담 앤 디앤츠(Adam & The Ants)의 밴드들은 유명함. 댄스 그룹으로 명성을 달렸던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역시 무명시절에는 글램 펑크 밴드였다고.
-Goth / Gothic Punk
포스트 펑크의 많은 세력들중 가장 빛을 보지 못한 일파중 하나. 말 그대로 고딕적인 펑크를 추구했으나 시간이 지나
면서 점차 인더스트리얼 계열로 흡수되어가게 됨. 밴쉬즈,바우하우스(Bauhaus),에이리언 섹스 핀트(Alien Sex
Flend),크리스천 데스(Christian Death),시스터즈 오브 머시 (Stisters Of Marcy)등이 대표적. ’90년대 들어 인더스트리얼 / 다크 웨이브(Dark Wave)계열의 밴드들이 창궐하게 되는 원동력을 제공.
-Hardcore
사전적 의미로는 ‘극단’ 혹은 ‘과격’ 정도의 의미. 문화적으로는 장르르 막론하고 그 분야에서 가장 과격하고 거친 형태의 스타일을 일컬음.(예:Hardcore Porno,Hardcore Rap…)펑크에서 하드코어라 함은 스피드와 가사에 있어서의 극단을 추구했던 무리 혹은 그들의 음악을 이야기함. 일반적으로 하드코어 펑크는 영국,캘리포니아,뉴욕(및 동부지역)의 세 지역을 중심으로 부흥을 맞이했다고 보고 있음.하드코어는 이후 스래시 메탈과 얼터너티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하고 있음.스스로의 음악을 일컬어 최초로 하드코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캐나다 출신의 밴드 D.O.A.였다고.
-Hardcore Thrash
하드코어 펑크가 ’8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창궐하였던 스래시 메탈 무브먼트와 만나 생긴 새로운 조류.대체로 초창기 스래시 밴드들의 음악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듯. 크립틱 슬로터(C- ryptic Slaughter),크루시픽스(Crucifix),크로-맥스(Cro-Mags) 등의 밴드들이 대표적이며 스래시 메탈 밴드로 널리 알려진 앤스랙스(Anthrax)나 뉴클리어 어설트(Nuclear Assult)같은 밴드들.심지어는 슬레이어(Slayer)같은 밴드들 역시 하드코어 스래시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밴드였다고 볼 수 있음.
-Horror Punk
’50년대 B급 호러 무비를 연상케하는 분장과 무대장치,가사 등 을 전격적으로 차용해 스스로를 특화했던 일군의 펑크 밴드들, 혹은 그들의 음악을 일컫는 표현. 댐드(The Damned)를 원조격 밴드라 부를 만 하며 미스피츠(Misfits),로킷 프롬 더 크립트(Rockets From The Cypt),일본의 발작(Balzac)과 애브노멀즈(The Abnormals)등이 활동중.
-Indie Label / Independent Label
대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자본으로 자신들의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생겨난 레코드 레이블. 자주 레이블,혹은 독립레이블이라고도 불리움. 인디 레이블의 시작은 펑크 밴드들과 함게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임. 이언 멕케이(Ian McKaye:Minor Religion)의 에피타브(Epitaph)등이 유명. 현재까지도 수많은 인디 레이블이 존재하지만, 예전의 건전한 의미는 많이 퇴색한 상태.
-Kraut Punks
독일의 펑크 밴드들. 디 토텐 호젠(Die Toten Hosen),욥스(The Yobs)등이 유명.
-Krishnacore
힌두교,특히 크리시나 사상에 입각한 펑크/하드코어를 추구하는 일련의 세력을 일컫는 표현. 육식과 음주를 금하며 ‘지고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애티튜드를 지님. 유스 오브 투데이(Youth Of Today)를 전신으로 하는 셸터(Shelter)가 대표적.
-Los Punkeros
라틴 문화권의 펑크 밴드들을 일컫는 말. 순수 펑크 밴드들보다는 Oi!크러스트 코어,하드코어 등의 과격파 밴드들이
많음. Oi!밴드로는 이탈리아의 클라스 크리미날(Klasse Kriminale)가 대표적이며 브라질의 하드코어 밴드인 R.D.P와
티타스(Titas)는 세풀투라(Sepultura)에 의해 전세계로 알려지게 되었음.
-Mahawks / Mohicans / Spike
마치 아파치 인디언을 연상시키는 뾰족하게 세운 헤어 스타일,혹은 그러한 헤어 스타일을 애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주로 영국의 노동계급 펑크/하드코어 밴드들에게 사랑받았음.
-Max’s Kansas City
CBGB’s와 함께 뉴욕 펑크 클럽의 대명사였던 업소.
-Melocore / Melodic Punk
미국 캘리포니아,특히 LA지역을 중심으로 ’90년대 초반부터 활발히 전개된 펑크 사운드를 일컬어 일본 저널리즘에서
붙인 별명. 말 그대로 하드코어의 스피드에 좋은 멜로디를 접목시킨 사운드가 특징으로 배드 릴리전을 대부로 하는
애피타프 레이블 출신의 밴드들(Pennywise,NOFX,Offspring..) 과 <룩아웃! 레코즈(Lookout! Records)>를 기반으로 한 밴드들(Operation Ivy,Green Day,Queers…)의 양대 세력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음. 그린데이와 오프스프링의 성공으로 인해 잠시 메인스크림으로 진입하는가 싶었으나 현재는 다시 언더그라운드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
-Neo Punk
멜로코어라는 명치이 주로 ’90년대 캘리포니아 지역의 펑크사운드를 지칭하는 좁은 표현인 것에 비해 네오펑크라는 표현은 ’90년대 초중반의 팝화된 펑크 사운드를 넓게 지칭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임. 팝 펑크라는 표현과도 일맥상통.
-N.Y.C.H.C
‘New York City Hardcore’의 약자. 마찬가지로 B.C.H.C는 ‘Boston City Hardcore’,D.C.H.C는 Washington D.C. Hardcore’의 의미.
-Nihilism
19세기 러시아 문학계에서부터 기원한 허무주의 사조를 일컫는 말. 초창기 펑크의 사상적 근원이 되었음. 넓은 의미로는 무정부주의를 일컫기도 함.
-Oi!
영국 노동계층 청소년들이 ‘Hi!’나 ‘Hello’대신에 사용하던 인사말로부터 기원한 표현. ’80년대 초반 시작된 영국 노동계층 청소년들의 스트리트 펑크,혹은 그러한 밴드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Pogo
’77년 무렵 런던 펑크 클럽에서 유행하던 춤. 특별한 스타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미친 듯이 온몸을 뒤흔들어대면
된다. 섹스 피스톨즈의 자니 로튼(Johnny Rotten)이 대유행시켰다.
-Psychobilly / Punkabilly
펑크의 열풍이 가실 무렵 유럽을 중심으로 탄생한 새로운 형식의 펑크. 주로 펑크와 로커빌리,컨트리 & 웨스턴,서프
뮤직 등을 혼합한 형태의 사운드를 띈다. 독일 출신의 매드신(Mad Sin)이 유명하며 우리에게는 뉴웨이브 그룹으로 알려진 스트레이 캐츠(Stray Cats)도 한때는 사이코빌리 밴드로 불리웠다.
-Pub Rock
펑크라는 표현이 유행하기 이전 런던의 노동계급 술집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군의 밴드들이 행하던 음악을 일컬음. 일반적으로 초기 펑크 사운드라고 인식되고 있음. 101ers,에디 엔 더 핫 로즈(Eddie & The Hot Rods),붐타운 래츠(Boomtown Rats)등이 대표적.
-Punk Proletariat / Punk Populist
펑크 인민주의자. 이름 그대로 런던 노동계급 출신의 스트리트 밴드들로서 라몬즈-섹스 피스톨즈를 원형으로 하는 펑크의 ’77년 정신과 사운드에 충실하려는 펑크의 순수성/원초성을 강조. 샴 69(Sham 69)를 대부로 하여 이후 생겨난 Oi!무브먼트로 폭발하였고,이후 브리티시 하드코어 신을 형성하게 됨. 일부는 스카 신으로 흡수되기도. 대표적 밴드는 익스플로이티드(The Exploited).
-Punk Vanguard
섹스 피스톨즈의 해산 이후 아트스쿨 뮤지션들이 결성한 펑크 밴드들을 일컬어 사회학자들이 붙인 명칭. 펑크의 신화성을 깨뜨리고자 했으며 이에 따라 기존 펑크 스타일,특히 사운드적 측면에서의 해체/재창조를 실험하였음. 갱 오브 포(Gang Of Four)가 대표적. 이후 영국보다는 주로 LA의 초기 얼터너티브 신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됨. 펑크 인민주의자들에게 사상적으로 공격당하는 일이 잦았음.
-Rustic
펑크에 스카,마리아치,컨트리 & 웨스턴,러시아 민요 등의 이질적인 사운드를 대폭 첨가하여 독특한 사운드를 내는 새로운 조류. 악기 편성도 기존의 기타/베이스/드럼 진용에서 탈피하여 밴조,어크디언,우드 베이스,트라이앵글,카주 등을 전격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특이함. ’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일본 세력이 상당히 강한 편으로 도쿄 스컹크스(Tokyo Skunx),바나나 세이크스(Banana Shakes)등이 맹활약중.
-Ska Punk / Ska Core
말 그대로 스카와 펑크,혹은 스카와 하드코어를 결합한 형태의 음악. 스카 펑크는 주로 캘리포니아 지역의 멜로코어 밴드들과 연계되는 경향이 강하고 스카 코어는 캘리포니아 보다는 미국 동부 지역을 기반으로 해왔음. 대표 밴드로는 오퍼레이션 아이비(Operation Ivy),랜시드(Rancid),레스 댄 제이크(Less Than Jake),릴 빅 피시(reel Big Fish),골드핑거(Goldfinger), 마이티 마이티 보스톤즈(Nighty Mighty Bosstones),부두 글로 스컬즈(Voodoo Glow Skulls)등이 있음.
-Skanking
‘스카를 연주하는’,혹은 ‘스카를 들으며 춤을 추는’이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
-Skinheads / Skins
서구의 노동계층 청소년들중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니던 무리를 일컫는 표현. 일반적으로 영국의 스킨헤드들은 Oi!를, 미국의 스킨헤드들은 하드코어를 자신들의 음악적 취향으로 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 종종 우익 단체들에게 이용되어 네오 나치즘과 연계되기도 하였지만 사실 정치색은 없는 집단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듯.
-Skoi!
스카와 Oi!가 만나 형성된 새로운 펑크 무브먼트. ’90년대 들어 <래디컬(Radical)>및 <문 스카(Moon Ska)>레이블을 중심으로 한 뉴욕 스카 신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으며 스캘로윈(Skalloween)이라 불리는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으로도 유명. 스코이대츠(Skoidats)가 대표 밴드.
-Slam / Slam Dancing
하드코어 공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격한 형태의 집단무용(?). 서로 어깨와 등을 강하게 맞부딛히며 관중들 사이
의 일체감을 획득하는 의미를 지닌다. 모싱(Moshing)과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Stage Diving
하드코어 공연장에서부터 기원한 독특한 무대 매너. 예전의 공연장이 밴드/관중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로 나뉘어 있던 것과는 달리 연주 도중 밴드 멤버가 관중들에게 다이빙해 들어감을 통해 둘 사이의 거리감을 없앨 수 있는 장점을 지니지만,종종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하여 많은 공연장에서 이를 금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는 펑크/하드코어 뿐만 아니라 얼터너티브,헤비메탈 공연장에서가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다.
-Straight Edge
워싱턴 DC의 마이너 스레트(Minor Threat),뉴욕의 유스 오브 투데이와 고릴라 비스키츠(Gorilla Biscuits)를 중심으로 ’80년대 중후반 미국 동부지역에서 일어난 새로운 하드코어 무브먼트. 동시대의 펑크/하드코어 밴드들의 니힐리즘과 폭력성에 반대하며 방탕한 생활을 배격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PC)’노선을 추구하였음. 현재는 거의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
-Two Tone Movement
’70년대 말~’80년대 초 영국의 <투 톤(Two Tone)>레이블을 중심으로 일어난 스카-펑크 믹스추어 무브먼트. ‘스카 제 2 의 물결’이라고도 불리움.셀렉터(Selector),스페셜즈(Specials),베드 매너즈(Bad Manners),잉글리시 비트(English Beat) 등이 대표적이며 클래시 같은 밴드도 이러한 영향권 내에 존재했다고 볼 수 있음.

(발췌:’98년 월간 GMV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