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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McCluskey의 Unknown Pleasures에 관한 사연

OMD의 Andy McCluskey가 좋아하는 앨범 들에 관한 이야기 중 Joy DivisionUnknown Pleasures에 관한 사연을 번역하여 올린다

Unknown Pleasures Joy Division LP sleev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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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vegas의 첫 앨범 이전에, Unknown Pleasures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락 앨범이었다. 내 아들은 열다섯 살에 락음악에 빠져 들었는데 불행하게도 그는 미국에 살고 있었고 – 그의 엄마와 나는 헤어졌다 – 우리는 몇 년 전에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는 위대한 Nirvana를 사랑했었고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내게 Linkin Park와 Limp Bizkit을 들려주었고 나는 “왜?”라고 물었고 그는 “베이스와 드럼이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USB 케이블을 내 폰에 꽂아 Unknown Pleasures를 틀고서는 “이제부터 30년 전에 연주된 드럼과 베이스를 들을 텐데, 다 듣고 네가 빌어먹을 Limp Bizkit을 다시 듣고 싶다고 말한다면 난 너를 차 밖으로 걷어차 쫒아내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드럼부터 시작했는데 – 왜냐하면 그는 Stephen Morris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 Unknown Pleasures는 정말 드럼에 관한 모든 것이었다. 그건 당신의 기초적인 록 드러밍과 같지 않다. 그는 균열적인 패턴으로 드럼을 친다. Stephen Morris는 정말로 일종의 원형을 창조했다. 그 다음에 Hook의 베이스다. – 대부분 노래에서 빌어먹을 리드 베이스 기타인 – 이 앨범에서 사실상 Hook의 베이스 연주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Barney가 화낸 것이 이상할 것 없다. 왜냐하면 기타는 저 멀리 던져지고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컬의 방해가 되었다. – 당신은 드럼과 베이스와 Curtis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타는 좌측과 우측에서 약간의 색조만 더할 뿐이다. 내 아들은 베이스 플레이어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베이스 주자여서가 아니라 Peter Hook이 너무 빌어먹게 쿨했기 때문이다. 너무 웃긴 게 Hook이 샌디에고에서 출판 싸인 행사를 가졌을 때 아들이 그를 보러 갔었다. James는 “엄마가 당신에게 안부 전해달래요.” 그는 이어나갔다. “네?”, “네. 당신이 엄마가 열일곱 살일 때 Pretty In Pink 시사회에서 그녀를 돌봤다는데요.” 겉으로는 Hook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그는 계속했다. “너 내 아들은 아니지 그지?” 그리고 내 아들은 “저는 Andy McCluskey의 아들이에요. 당신이 Pretty In Pink 시사회에서 그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 그 여자친구를 돌봤다는 이야기에요.” 그리고 Hook는 대답했다. “오 예!! 휴!!” [미친 듯이 웃었다]

[원문 보기]

New Order의 새 앨범 소식

New Order가 그들의 마지막 앨범 Waiting for the Sirens’ Call(2005년)을 만들 동안에 녹음해두었던 미발표 트랙 8곡을 묶어 The Lost Sirens라는 이름의 앨범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원래 2011년 말에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Peter Hook과의 문제와 저작권 분쟁으로 인해 발표가 지연되어 왔다. 이제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어 2013년 1월 14일 발매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베이스 연주는 당연히 Peter Hook의 솜씨다.

“[조이디비전의 프로듀서였던] 마틴 헤넷이 한번은 레코드를 만들어 정원에 묻어 버리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어요. 그러면 언젠가 누군가 그걸 파내는 거죠. 타임캡슐처럼요. 우리는 우리 레코드를 컵보드에 넣어두었다가 다시 꺼내는 것 뿐이에요.”

드러머 Stephen Morris의 말이다.

The Lost Sirens 트랙리스트
1. “I’ll Stay With You”
2. “Sugarcane”
3. “Recoil”
4. “Californian Grass”
5. “Hellbent”
6. “Shake It Up”
7. “I’ve Got A Feeling”
8. “I Told You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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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Order 재결성 소식

뉴오더가 피터훅 없이 재결합한다. 이 前 베이시스트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고, 밴드는 남은 라인업으로 10월에 영화제작자 Michael Shamberg를 위한 두 번의 자선공연에서 연주하기 위해 재결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략]

뉴욕에서 팩토리레코드를 운영한 이외에도, 샴버그는 상을 받았던 True Faith를 포함하여, 뉴오더 비디오 몇 개를 프로듀스했었다. “마이클은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였어요.” 썸너의 말이다. “그는 매우 아프고 지속적인 의료치료를 요합니다. 우리는 그를 돕고 싶어요. 그리고 이 쇼는 그의 지속적인 치료를 위한 재정적 지원에 기여할 것입니다.”

뉴오더는 훅이 밴드를 떠나면서 2007년 해산했다. 처음에 그룹은 이어나갈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베이시스트는 이에 맞서 싸웠다. “너희들은 나 없이는 더 이상 뉴오더가 아니다!”라고 그는 마이스페이스에 쓰기도 했다. “너희들은 2/3를 가질 수도 있지만, 너희가 ‘뉴오더적인’ 어떤 것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법정에서 보자!”

[후략]

출처

피터 훅의 80년대

2007년 8월호 모조 부록에 실렸던 피터 훅과의 짧은 인터뷰.

Interviewed by Pat Gilbert

나의 80년대피터 훅

약물, , 맨체스터의 천재적 펑크 디스코정말이지 대단한 10년이었다니까!

당신은 리스트에 두 번 올랐습니다, 조이 디비전의 Closer와 뉴 오더의 Low-Life로요. 그들이 그렇게 출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들을 만들었어요. 우리는 예술적 자유를 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죠. Blue Monday 10분짜리 곡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걸 싱글로 내놨죠; Love Will Tear Us Apart는 앨범에 [Closer] 수록되지도 않은 곡이었습니다. 다른 밴드들은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팩토리와 5050으로 수익을 나눴습니다. 덕분에 앨범을 만장 판 정도로도 1년은 먹고 살 수 있었어요수지 앤 더 밴시스는 아마 십만장은 팔아야 했을 겁니다.

라이브 에이드로부터 제의를 받은 적 있나요?

아뇨. 나는 밥 겔도프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꽤나 모욕적이었죠. 그걸 거절한 사람이 있다는 소린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80년대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Blue Monday] 1983년 톱 오브 더 팝스에 출연했을 때였죠. 우리 세대에겐 거기에 출연하는 것이 최고로 여기지곤 했어요.

최악의 순간은요?

이언 커티스의 자살입니다. 이언은 1980 5월에 죽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80년대를 그 사건과 함께 시작한 거나 다름없어요. 그런 재앙적인 출발이 어디있겠습니까, 안 그래요?

가장 정신나간 순간은 언제였죠?

그건 너무 많군요우리는 미국에 빨리 진출한 편이었죠. 거긴 사람을 다루는 법을 압니다. 클럽 앞에서 우리가 뉴 오더라고 하면 사람들이 특별한 방으로 끌고 들어가서 약이고 술이고 할 거 없이 잔뜩 앵겨줬죠. 영국에서라면 귓방망이를 흠씬 맞았을 겁니다. 미국에서 우린 쾌락을 찾았고 정신나간 세계에 입성했어요. 그리고 애시드 하우스와 함께 80년대가 종언을 고했죠… 80년대는 정말이지 빌어먹게 좋았습니다.

어떤 음악을 듣곤 했나요?

바우 와우 와우, 헤이지 팬테이지, 맬컴 맥라렌의 모든 작품들. 애덤 앤트는 엄청난 아이콘이었고 마르코 피로니는 끝내주는 기타리스트였죠. 씨어터 오브 헤이트, 데쓰 컬트, 플레이 데드와 같은 80년대의 골수 고딕적 면모도 좋았습니다. 미국에서 디제잉을 많이 했는데 그들은 죄다 80년대에 빠져있어요. 그 시기의 곡이라면 뭐든지 열광하더군요.

80년대가 당신에게 부를 가져다줬습니까?

그렇죠, 헌데 하시엔다에 대해선 좀 할 말이 있습니다. 그걸 6번이나 말아먹었거든요. 결국 하시엔다와 팩토리에 6백에서 9백만 정도의 돈을 쏟아 부었죠

My ’80s- Peter Hook

 Drugs, Booze, genius Manc punk disco – worra decade!

You’re in the list twice, for Joy Division’s Closer and New Order’s Low-Life. What made those groups so special?

We did stuff to make us happy. We were allowed complete artistic freedom. Blue Monday was 10 minites long, but we put it as a single; Love Will Tear Us Apart wasn’t on the album [Closer]. Everyone else was doing what they were told. Also, we had a 50/50 split with Factory so we could live for a year by selling 10,000 albums- Siouxsie & The Banshees would have had to sell 100,000.

Were you approached to Live Aid?

No. I take it Bob Geldof didn’t like us. You felt quite affronted that you weren’t asked. I’ve never heard anyone say they turned it down.

High point of the decade?

Appearing on Top Of The Pops in 1983 [with Blue Monday]. Doing that progranne was a dream for my generation.

Low point?

The suicide of Ian Curtis. Ian died in May 1980, so the ’80s were all up for us after that. It couldn’t have started out more fucking disastrously, could it?

Craziest moment?

There were so many… we got to America quite quickly, and they knew how to treat you over there. If we were outside a nightclub, when we said we were New Order they’d drag you in, put you in a special room and fill you full of drugs and alcohol. In England all you’d get was a thick ear. In Amercia we discovered hedonism and entered that whole mad world, then to finish the decade with acid house… the ’80s was fucking great for us.

What were you listening to?

Bow Wow Wow, Haysi Fantayzee, all that stuff that felt it had come from Malcolm Mclaren. I thought Adam Ant was a great character and Marco Pirroni was a fantastic guitarist. Theatre Of Hate, Death Cult, Play Dead – the serious goth side of it was good. I DJ in America a lot and they’re fucking obsessed with the ’80s. Play anything from that time and they go mental.

Did the decade make you millionaire?

Yeah, but thanks to the Hacienda I lost it – six times over. We worked out that we lost between six and nine million on that club and Factory…

 

New Order

2005-06-11 New Order live.jpg
2005-06-11 New Order live” by myself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80년 영국 맨쳐스터에서 결성

멤버 : Peter Hook, Stephen Morris, Bernard Sumner, Gillian Gilbert

1.뉴 오더(new order)의 전신- 조이 디비젼(joy division)

섹스 피스톨즈와 클래쉬가 이루었던 영국 음악계의 펑크(punk)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원래 정치적 색채가 짙은 무브먼트의 성격으로 시작되었던 펑크는 주류 팝 씬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었기 때문에 상업적인 성공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었고 결국 스스로 다시 언더그라운드화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아직 섹스 피스톨즈의 여파가 남아있던 1977년,바르샤바(warsaw)라는 이름으로 처음 음악활동을 시작했던 Joy Division은 비록 그 활동 기간이 3,4년 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펑크의 새로운 대안인 뉴웨이브의 서막을 열었던 밴드였다. 조이 디비젼은 79년에 맨체스터의 팩토리 레코드(소위 맨체스터 사운드라 부르는 일단의 음악적 흐름을 조성했던 그 레코드사-뉴오더,더 스미스,스톤 로지스 등이 팩 토리 레코드와의 밀월관계로 유명하다)와 계약을 맺고 첫 싱글 ‘Transmission’과 데뷔 앨범’Unknown Pleasures’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곧 비평가들로부터 대대적인 찬사와 지지를 받았고 이후에 발매된 싱글 역시 많은 지지를 받았다.그러나 1980년 5월 18일,대망의 두번째 앨범 ‘Closer’가 미국 시장으로 진출하기 하루전 보컬리스트이자 팀의 핵심적인 존재였던 이안 커티 스가 돌연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급격한 건강 악화와 영국 팀으로서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그를 자살로 내어 몰았던 것이다. 이안 커티스의 죽음 이후,조이 디비젼은 두장 짜리 회고앨범인 ‘Still’을 발매하고 공식적으로 해산된다.

2.새로운 대안- 뉴 오더(New Order)

너바나가 커트 코베인의 자살 이후 해산되었듯이 조이 디비젼도 이안 커티스의 죽음으로 해산되었지만,이들은 너바나처럼 뿔뿔이 흩어지지는 않았다.조이 디비젼의 잔류 멤버였던 버나드 섬너(기타)와 피터 훅(베이스),스티븐 모리스(드럼)는 새로 운 여성 키보디스트 질리언 길버트(당시 스티븐 모리스의 애인이자 현 부인)를 영 입하여 80년,새로운 그룹인 뉴오더를 탄생시켰다.

뉴 오더는 초기에는 펑크의 기운이 많이 남아있는 사운드를 들려주었으나 차츰 일 렉트릭 사운드와 기타 락의 균형 잡기에 노력하였고 결국 그들 만의 독특한 뉴웨이브 사운드 구축에 성공한 그룹이다.이들은 그당시 독일 전자 음악계의 대부격이었 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와 아방가르드 전자 음악으로 유명한 아트오브노이즈(Art Of Noise)의 영향으로 신서사이저와 시퀀서 등을 적극 도입하였지만 분명히 이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뉴 오더는 다분히 비상업적이었던-학구적이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듯한-크라프트베르크나 아트 오브 노이즈와는 다르게 상업적으로도 뛰어난 음악을 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들의 음악이 단지 돈을 위해 양산해내는 ‘땐스’뮤직이라는 말은 아니다.) 뉴 오더는 각종 일렉트릭 악기의 도입과 수많은 댄스 플로어 용의 리믹스 싱글 작 업을 통해서 대중에게 강하게 어필했지만,이들의 음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댄스뮤직’으로 불릴 만큼 충분히 비주류 적이다.바로 이런점이 이들의 음악이 단순한 댄스 뮤직으로 매도되지 않고 10년 이상이나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뉴 오더는 비록 국내에서는 그 이름값을 다 못하고 있지만,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일렉트릭 팝의 최대 약점인 말랑말랑 한 사운드에도 불구하고-최고의 뮤지션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조이 디비젼이 그랬던 것처럼 역시 맨체스터의 팩토리 레코드와 계약을 맺은 이들은 조이 디비젼의 음악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스타일의 데뷔작인 ‘Movement’를 81년에 발표했다. 82년에 싱글 ‘Temptation'(영화 트레인 스포팅에도 삽입됨)을 공개하여 대대적인 찬 사를 받은 이들은 83년에 또다른 싱글 ‘Blue Monday’를 발표하고 두번째 앨범인 ‘ Power,Corruption And Lies’를 발표하였다.뉴 오더는 이 두 번째 앨범을 통해 다분 히 펑크적 잔재가 남아있었던 조이 디비젼 시절의 음악적 모습을 청산하고 기타 락 과 신서사이저 댄스 뮤직과의 균형미를 이루는데 성공한다. 85년에 세 번째 정규 앨범인 ‘Low Life’를 발표한 이들은 신서사이저 사운드를 강화 하고 드럼 머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등 보다 일렉트릭 사운드에 치중한 모습을 보 여준다. 86년에 발표한 앨범 ‘Brotherhood’는 기타 파트가 강한 멜로디 위주의 사운드를 선 보여 어쿠스틱과 일렉트릭의 공존을 시도했다.

87년,뉴오더는 그동안 자신들이 발표했었던 싱글들과 B면 수록곡,그리고 미발표곡 들을 한데 모아서 더블 컴필레이션 앨범인 ‘Substance’를 발표한다.사실상 그들의 첫 번째 베스트 앨범이자 싱글과 리믹스 작업에 치중하는 이들의 음악적 스타일을 한 번에 꿰뚫어볼수 있는 작품으로서 미국 시장에서도 놀라운 반응을 얻었다.이 앨 범에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곡인 ‘Bizarre Love Triangle'(호주 출신의 뮤 지션 프렌테가 리메이크한 노래)은 물론 ‘1963’등 그들의 히트 싱글들과 조이 디비 젼 시절의 미발표곡 ‘Ceremony’,’In A Lonely Place’등이 수록되어 있다. 89년 발표한 하우스 뮤직 스타일의 6번째 앨범 ‘Technique’를 통해 또다시 인기 몰이에 성공한 이들은 90년 영국 월드컵 축구팀 응원가인 ‘World In Motion’을 발표 하여 영국 싱글 차트 첫 정상을 차지했다.

90년대 들어서 이들은 공식적인 활동을 그만두고 얼마 동안 팀 멤버들의 독자적인 프로젝트 밴드 결성으로 팀이 해체된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되었다.버나드 섬너 는 영국의 국민적 락그룹 더 스미스의 기타리스트였던 자니 마와 함께 일렉트로닉이 라는 하우스 뮤직 스타일의 밴드를 만들었고,피터 훅은 Revenge를,그리고 스티븐 모리스는 질리언 길버트와 함께 The Other Two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각각 만들어 각자 활동에 전념했다.(버나드 섬너는 90년에 발표되었던 데뷔작 ‘Electronic’ 에 이어 96년에 크라프트베르크의 전 멤버였던 칼 바튼과 함께 두번째 앨범 ‘Raise The Pressure’를 발표했고 피터 훅은 Monaco란 밴드를 결성해서 데뷔 앨범 ‘Music For Pleasure’를 발표했다.)

그렇지만 93년 이들은 그동안의 각종 루머들을 일축시키며 새로운 앨범을 내놓았고 ‘Republic’이라는 이름의 이 앨범은 뉴오더의 앨범 중 처음으로 국내에 라이센스 발매되었다.(이들은 이 앨범부터 레코드사를 이적하여 지금은 런던 레이블로 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94년과 95년 두장의 베스트 앨범을 발매한 이들은 올해 7월 재결성 공연과 함께 새로운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From ThaDogg

3. 이름의 기원

Joy Division :
From a sadomasochistic novel “The House of Dolls” by Karol Cetinsky.. Joy Divisions were lines of huts in which deported women were forced to prostitute themselves to Nazi officers on leave. [Bobo]

New Order :
1) From a newspaper article about the “new order of architecture”. [Jenny Turner]
2) Another thinly-veiled Nazi reference. C.f. Joy Division. [Roderick]
3) Depending on how you look at it, on 1993’s New Order Story video, Barney and Gillian cast jokes about the Nazi reference thing, but then got serious and said that they looked at the name as a logical thing [melshgeek]

4. 다른 글

http://www.intermuz.com/theRocker/noiz_box/NOISE6.asp

우울한 신스 팝의 대명사- 뉴 오더

뉴 오더가 제시한 ‘새로운 질서’란 기존의 펑크적 요소에다 가공할 만한 댄스 비트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독특한 신스-팝이었다. 이들은 조이 디비전에서 들려준 무겁고 암울한 고딕 사운드 대신 시퀸서와 드럼 머신, 신시사이저를 도입한다. 80년대 내내 이들이 주력했던 음악은 다름 아닌 ‘디스코!’ 하지만 이 천덕꾸러기 같은 댄스뮤직조차 뉴 오더를 통해 위트와 재치 넘치는 연주력이 십분 발휘된 독특한 신스팝으로 재창조된다.
무거운 베이스음이 곡 분위기를 주도해 가는, 음울한 분위기의 펑크 내 하위장르인 고딕을 주창하며 70년대 말 등장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은 다름 아닌 이 ‘뉴 오더’의 전신 밴드였다. 미국 공연을 앞둔 1980년 5월 그룹의 핵심인 보컬 이언 커티스의 자살은 곧바로 ‘조이 디비전’의 종언을 의미했다. 조이 디비전의 나머지 맴버들인 버나드 섬너, 피터 훅, 스테판 모리슨은 여성 멤버 이언 길버트를 영입 ‘뉴 오더’를 결성하기 이른다. 그러나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라며 다소간의 음악적 방황을 겪게 된다.

♬ Sound Chek Box ♪♩

Temptation(유혹-1982)
Blue Monday(우울한 월요일-1982)
Age of Consent(합의의 시대)
Confusion(혼돈-1984)
Perfect Kiss(완벽한 입맞춤-1985)
Subculture(하위 문화-1985)
Bizarre Love Triangle(기이한 사랑의 삼각형-1986)
True Faith(진실한 믿음-1987)
Round & Round”(둥글게 둥글게-1989)

그들의 첫 앨범 ‘Movement(움직임-1981)’는 기존 조이 디비전 스타일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의 첫 싱글 “Ceremony(의식-1981)”는 조이 디비전의 짙은 그림자가 여전히 깔려있음을 말해준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분명 과거 조이 디비전과의 단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 싱글로 발표된 “Temptation(유혹-1982)”은 이들의 뚜렷한 변화를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나중에 선보일 그들의 음악에서처럼 전자음 비중이 두드러지진 않지만 비트감은 이전보다 훨씬 힘차게 뻗어나가고 곡 분위기도 예전 ‘Movement’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다. 버나드 섬너와 피터 훅이 만드는 기타와 베이스간의 하모니가 돋보인다.

하지만 뉴 오더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들의 대표작 “Blue Monday(우울한 월요일-1982)”였다. 뉴 오더의 본격적인 음악 이정표는 바로 이 “우울한 월요일”을 통해 확립된다. 새로 구입한 드럼 머신과 시퀸서의 작동을 시험해 보는 과정에서 탄생한 우울한 월요일은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이 시종 일관 주요 멜로디와 리듬을 만들어 낸다. 매혹적인 인트로가 신시사이저에 실려 나오는 동안 어느새 디스코 특유의 말 달리는(?) 리듬이 넘실대며 버나드 섬너의 어눌하고 거친 보컬이 뒤를 잇는다. “오늘 당신의 기분은 어떠십니까?”하며 잠시 생각을 할때 쯤 간간이 들이는 피터 훅의 ‘둥당당당’ 하며 울리는 베이스음은 ‘조이 디비전아 안녕!’하고 작별인사를 한다. 마치 지난날 고딕과의 애증을 대변하는 듯. 영국 내에서만 300만장이 팔린 이들의 “우울한 월요일”싱글은 영국 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라는 명예로운 기록을 수립하기 이른다. 이듬해 발표된 ‘power, Corruption, & Lie(권력, 부패, 그리고 거짓말-1983)’은 “유혹”과 “우울한 월요일”에서 들려준 음악 재료가 오밀조밀 짜여있다. 버나드 섬너의 기타는 “Age of Consent(합의의 시대)”에서 보듯 그루브 감이 넘실댄다. 전자음이 그다지 화려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그들이 달성한 “변화의 증거”가 물신 풍긴다.
연이은 싱글 “Confusion(혼돈-1984)”과 “Perfect Kiss(완벽한 입맞춤-1985)”, 그리고 “Subculture(하위 문화-1985)”등에선 우울한 월요일을 능가하는 경쾌한 신스 팝을 들려준다. 전자 음의 비중은 훨씬 높아지고 리듬은 보다 치밀하고 경쾌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신스 팝은 어둡고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다. “완벽한 키스” 종반부에서 들려준 휘몰아 치는 듯한 신사사이저 음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몽환감을 느끼게 한다.

패션 쇼 배경음악으로도 자주 쓰이는 “Bizarre Love Triangle(기이한 사랑의 삼각형-1986)”에 지금까지 발표한 싱글들과 미 발표곡들, 그리고 “True Faith(진실한 믿음-1987)”라는 신곡이 수록된 우수한 컬렉션 앨범 ‘Substance’는 뉴 오더가 전형적인 싱글 밴드임을 증명한다. 미국 팝 시장에 그들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가 된 본 앨범의 신곡 “진실한 신념”은 영국 차트 1위 등극의 영광을 밴드에 선사한다. 조이 디비전에 이어 뉴 오더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남긴 것들- 매드체스터의 산파자

이들의 활동 전반기에 발표된 싱글들에서 발견되는 점은 버나드 섬너의 보컬은 결코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멤버 각자의 기량이 균등하게 조화된 신스 팝이 그들의 특징이다. 80년대 초 인기를 누리던 대부분의 신스팝 그룹들이 ‘노래’라는 부분에 비중을 뒀던 반면 이들의 음악은 철저히 ‘4인조 밴드 편성’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멤버들의 사진들로 일관된 “Low life-1985” 앨범 자킷 디자인은 그들의 음악만큼이나 이색적이다. ‘음악을 들어달라는 무언의 요구’와도 같은 이들의 의도는 분명 주류 음반 시장의 관행과는 거리가 있다. 더군다나 보컬을 맡은 버나드 섬너는 지나치게 의기양양(?)하게 들려 청자로 하여금 거부감마저 준다.

뉴 오더가 남긴 음악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두 장르-펑크 록과 댄스 팝-간의 온전한 화학반응을 일궜다는 평가로 집약될 수 있다. 뉴 오더는 스미스와 더불어 향후 90년대 브릿팝으로 이어지는 영국 얼터너티브 록음악의 형세를 예견케 해준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였다. 그들이 개척한 “우울한 신스팝”은 맨체스터 내에서 카다란 반응을 몰고 왔고, 89년부터 91년 사이에 뉴 오더의 출신지역인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매드 체스터 군단(일명 미친 매드체스터들)”의 직접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한다.

80년대 후반 영국 인디 록계의 기억되는 한가지 사건은 댄스 클럽에 불어닥친 “에이시드” 열풍이었고 영국 내에서 몽환적인 하우스 음악의 인기는 주류 록 음악 시장과의 차별 점으로 부각된다. 인디 록계에서도 매드 체스터를 중심으로 이 “에이시드 열풍”의 동반자로 나서게 되었고 이에 뉴 오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이 설립한 인디 레이블인 팩토리 레코드 회사와 별도로 출신 지역 맨체스터에서 ‘하시엔다’라는 클럽을 운영하면서 맨체스터 출신의 인디 밴드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 곳을 기점으로 인디록과 에이시드 하우스 비트와의 화려한 결합음모는 싹이 트고 있었다.

피터 훅이 프로듀서로 참여한”스톤 로지스”나 뉴 오더의 팩토리 레이블 소속이었던 “해피 먼데이”와 같은 매드체스터를 대표하는 밴드들 역시 뉴 오더의 직간접의 영향을 받으며 등장하게 된다. 그들의 89년작 ‘Tehchnique(기량)’ 앨범은 이런 “에이시드-하우스” 뮤직의 영향을 온전히 반영한다.”Round & Round”(둥글게 둥글게-1989)는 전형적인 하우스 뮤직 구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어디에…-개인 프로젝트 활동

하지만 그들의 명성과는 달리 뉴 오더 내부에선 심심치않게 들려온 멤버간의 음악적 견해차는 활동 전반을 통해 전편에 언급한 스미스에 못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들의 모습을 보기란 여간 힘들다. 공식적인 뉴 오더의 음반은 95년에 발매된 그들의 88년-94년까지의 후반기 싱글 베스트 모음집 이후 아무런 새 음반 발매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해체설도 없지 않아 나돌긴 했지만 아직까진 공식적인 표명이 없는 상황이다. 사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뉴 오더의 공백은 곧 개인 프로젝트 활동의 진행’을 의미했다. 90년대 들어 이들의 소위 “따로 또 같이”활동 형태는 지금까지 계속된다. 버나드 섬너는 전편에서 언급된 기타리스트 자니 마와 ‘일렉트로닉’이라는 테크노 팝 그룹을 결성하여 현재까지 3장의 앨범을 발표해놓은 상황이다. 피터 훅은 ‘Monacco’라는 프로젝트 음반을 발표하고, 스테판 모리슨과 이언 길버트(둘은 부부임)는 ‘The other two’란 그룹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자스보이-  jassboy@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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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제 사이트도 아닌 곳에서 저도 이러고 싶지 않습니다만] Come on, you j-ass boy! That’s bloody enough. 이언 길버트->질리언 길버트. Age Of Consent-> 법적으로 합의 섹스가 가능한 나이에 대한 함의가 있는 곡. 그리고 제발 디테일을 제맘대로 빠뜨리지 좀 말았으면- 단순히 맞춤법만이 아니라 적어도 타이틀 같은 건 정확하게 인용을 해야 할 게 아닌가 말임다… 헉헉 이상 overtly upset + frustrated된 지나가다였슴다…ㆀ -11월10일-
[moz]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이럴때 싸이트를 만든 보람을 느낀다니깐요. 🙂 -11월10일-

디스코그래피
1981 Movement Factory
1983 Power, Corruption & Lies Qwest
1985 Low-life Qwest
1986 Brotherhood Qwest
1987 Substance Qwest
1989 Technique Qwest
1992 BBC Radio 1 Live in Concert Import
1992 BBC Radio 1 Live in Concert Varese
1993 Republic Qwest
2001 Get Ready [Japan Bonus Track] Wea
2001 Get Ready Warner
2002 Back to Mine DMC
2002 Live in Concert ROIR
2005 Waiting for the Sirens’ Call
2013 Lost Sirens
2015 Music Complete


링크
the Official site
World in Motion
Taxbox23

Revenge

Revenge 는 New Order 의 베이시스트 Peter Hook 의 사이드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상업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즉 Hook 자신은 Joy Division 과 New Order에서 이룬 성과를 한 단계 뛰어넘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나 양자의 장점 어느 한 부분에도 만족할만한 성취도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은 1990년 런던의 한 파티에서 라이브공연을 하며 데뷔했다. 그 해 데뷔앨범 One True Passion을 내놓았다. 싱글 Pineapple Face 의 비디오가 선정적인 장면 때문에 방영금지되었다. 1992년 EP Gun World Porn을 내놓았다. 1992년 Revenge 가 해체된 후 Hook 은 New Order 로 돌아왔다. 1997년 Hook 은 다시 Monaco 라는 사이드프로젝트를 재개했다.

Member : Peter Hook(base/vocal), Dave Hicks (guitar), Chris “CJ” Jones (keyboards)

디스코그래피

1990 One True Passion Capitol
1992 Gun World Porn Capitol
2001 Handle With Care Brennus
2005 No Pain No Gain Live 1991 LTM

Monaco

Monaco 는 Revenge 에 이은 Peter Hook(New Order)의 두 번째 사이드프로젝트이다. 이 밴드의 키타와 보컬은 David Potts 가 맡았다. Potts 는 원래 1989년 Hook 이 스튜디오 작업을 위해 고용한 이였다. 3년 후에 Hook 은 Potts 에게 Revenge 의 작업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고 그는 베이스를 연주했다. 1997년 내놓은 Music for Pleasure 는 비평가의 호평을 받았다. 첫 싱글 “What Do You Want From Me?“ 은 New Order 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도 좀더 Peter Hook 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살아있는 싱글이었다. 이 곡은 언더그라운드 방송국에서 인기를 얻었고 앨범은 약 50만장이 팔렸다.비록 Monaco 가 이전의 그들의 작업을 혁신적으로 뒤짚는 과감성을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New Order 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시절 New Order 팬들의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언론은 한때 Monaco 가 계속 지속될 밴드라고 예측하기도 했을 정도로 어느 정도 상업적으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Polydor 는 더 이상의 앨범 제작을 포기하였고 두 번째 내놓은 셀프타이틀 앨범은 2000년 Papillion을 통해 보급되었다. 그 뒤 Monaco 는 해체되었고 Hook 은 New Order 로 돌아왔다. 2001년 New Order 는 Get Ready를 발매한다.

디스코그래피

1997 Music for Pleasure A&M
2000 Monaco Papillon/Chrysalis
2000 I’ve Got a Feeling Roadru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