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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 Rain(1984)

프린스는 마이클잭슨과 함께 80년대 흑인음악 – 어쩌면 전체 팝음악 – 의 양대산맥을 이루던 걸물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마이클잭슨은 건전한 가수, 프린스는 퇴폐적인 가수의 이미지를 상반되게 가지고 있었다. 물론 후에 마이클잭슨이 더 변태적으로 사회에서 낙인찍히긴 했지만 ….

1984년 Prince 가 자주색의 이미지로 포장된 Purple Rain 이라는 앨범과 동명의 영화를 들고 나왔던 그 시기가 그의 음악경력에서는 최고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이후에도 이에 필적할만한 음악적/상업적 성과를 낸 앨범들을 발표하기는 하였으나 그의 존재감이 그렇게 눈부신 시기는 이전이나 이후에 찾아볼 수 없었다. Purple Rain 과 When Doves Cry 라는 최대의 히트곡일지라도 나머지 곡들이 히트곡에 묻어간다는 느낌이 없이 제각각 빛을 발하는 앨범이 바로 Purple Rain 이다. 그리고 이 앨범의 수록곡들이 착실히 연주되고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영화가 바로 동명의 영화 Purple Rain 이다.

앨범과 같은 해인 1984년에 공개되었으나 프린스는 이미 우리나라 검열당국에게 찍혀 Let’s Go Crazy 와 Darling Nikki 가 금지곡으로 분류되었으니 만큼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가 공개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다만 해외 연예계 소식을 전하는 TV프로그램 등 다른 매체에서 이 영화의 부분장면을 맛보기로나마 볼 수 있었을 따름이다(삼성 비디오플레이어 선전에서도 이 영화의 자료를 썼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이 영화는 프린스를 위한, 프린스에 의한, 프린스의 영화이다. 음악이 영화를 설명해주기 위해 쓰였다는 느낌보다는 영화가 음악의 (퍼포먼스의) 빈 공간을 메워주기 위해 땜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프린스의 반자전적인 스토리라고 하는 오이디프스컴플렉스적인 갈등과 반목, 그리고 Apollonia 라는 야심만만하고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양념일 뿐이고 역시 프린스의 화려하고 육감적인 노래와 공연이 이 영화의 줄기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심정이 “감독님 참 밸도 없으십니다^^”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을 정도다. 여하튼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점수를 매기라 한다면 100점 만점에 공연은 100점이고 드라마는 50점인데 공연이 전체 영화의 80%는 차지하는 것 같으니 100*80%+50*20% 해서 90점이라는 높은 점수가 나오는 상황이 되고 만다. 🙂

결국 아무려나 영화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영화가 신나고 재미난 경우가 비단 이 영화뿐이겠는가. 그래서 B급 영화가 인기를 얻는 것이고 컬트가 있는 것이고 우리네 인생이 삼류라는 것 아니겠는가.

비록 요즘의 레트로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많이 놀림당하기는 하지만 – 대표적으로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 – 프린스와 80년대 음악의 팬이라면 이 영화의 심히 부담스러운 당시의 패션과 춤들, 그리고 프린스의 그 거창한 모터사이클이 전혀 촌스럽다거나 유치하지 않게 다가올 것이다. 프린스 사단이었던 The Time 의 Jungle Love 와 Apollonia 6 의 Sex Shooter 등도 즐거운 볼거리이고 일종의 악역으로 등장한 The Time 의 리더 Morris Day 도 썩 훌륭한 연기를 – 어쩌면 프린스보다 한수 위의 – 보여주었다.

귀여운 반항아 (Charlotte And Lulu, L’Effrontee, 1985)

80년대 프랑스산 성장영화.

이 영화는 진지하고 탁월한 심리묘사를 통해 사춘기의 아픔과 성장을 거침없이 표현한 영화이다. 역시 프랑스산으로 Sophie Marceau를 내세워 인기를 얻었던 La Boum 이 아름다운 십대 소녀 사춘기에 설탕을 입혀 곱게 포장해 내놓은 청춘멜로물이었으며, 당시 미국에서도 유난히 Endless Love, Paradise 등 십대의 모습이 과장되어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취향의 작품이 유행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과감성과 용기가 더욱 돋보인다.

Charlotte Gainsbourg 는 철물점을 운영하는 편부 슬하에서 십대소녀가 가질법한 존재론적 고민에 시달리는 시골소녀이다. 무엇이든 불만에 차있는 이 소녀는 어느 날 동갑내기 천재 피아니스트 소녀를 우연히 만나면서 그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게 된다. 그녀를 통해 현실탈피를 꿈꾸지만 그것은 결국 도달할 수 없는 꿈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서로간의 가치관 차이로 인해 고통 받지만 딱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성격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제임스 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이나 이후 성장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어렴풋한, 또는 노골적인 선악구도에 비해 그 심리관찰이 더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탁월한 관찰능력을 보여준 영화는 이 후 Thora Birch와 Scarlett Johansson 이 주연한 Ghost World 정도일 것이다.

Lawrence Kasdan

로랜스캐스단의 영화이력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걸작 The Empire Strikes Back 의 시나리오 참여부터 시작하였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이 양반의 다음 작업은 또한 초유의 히트작 인디아나존스의 Raiders of the Lost Ark 의 시나리오 작업이었다. 이때부터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만방에 떨쳤고 마침내 1981년에는 감독으로서의 처녀작인 스릴러 Body Heat 를 내놓는다. Double Indemnity 의 후속편과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이 끈적끈적한 작품으로 로랜스캐스단은 단숨에 히트감독의 명예를 획득하게 된다.

이후 1983년 또 다른 스타워즈 시리즈 Return of the Jedi 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후부터 그의 변신은 시작된다. 스타워즈나 바디히트처럼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던 영화가 주특기였던 그가 1983년 갑자기 죽은 친구를 애도하기위해 장례식장에 모인 옛 친구들의 우정을 그린 The Big Chill 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빠르지도 않고 더디지도 않은 템포로 이제는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 간의 미묘한 감정을 그린 수작이다. 또한 쏘울 명곡으로 가득 찬 사운드트랙도 감칠맛인데 이를 통해 그의 음악적 편력도 드러냈다.

이후 The Big Chill에서 같이 작업했던 William Hurt를 내세워 만든 Accidental Tourist에서 또 한 번 서정적인 드라마를 통한 인생회고담의 장기를 선보인 그가 1990년에는 난데없이 포복절도 코미디 I Love You To Death(비디오 출시명 : 바람둥이 길들이기)를 내놓는다. 케빈클라인, 리버피닉스, 커누리브스, 윌리엄허트, 트레이시울먼, 피비케이츠 등 초호화배역을 내세워 바람둥이 남편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여인의 실화를 극화한 이 작품으로 그는 코미디에도 한 재주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1991년 그는 Grand Canyon 으로 다시 특유의 인생역정 드라마 전문 감독의 입지를 확인하였다. 큰 에피소드 없이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통해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이 영화에서는 대니글로버와 스티브마틴을 등장시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인종적 문제와 같은 사회문제에도 접근하였다.

1992년에는 케빈코스트너와 휘트니휴스턴을 앞세운 블록버스터에 프로듀서와 시나리오에 참여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만 작품 자체는 이전의 양질의 작품에 비해 다소 질이 떨어지는 영화인으로서의 갱년기 증상도 보이게 된다.

그러한 탓인지 이 이후의 작품은 이전만한 재기를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케빈클라인과 맥라이언을 앞세운 로맨틱코미디로 반짝 성공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이기에 2007년 자신의 아들인 Jon Kasdan 의 작품 In the Land of Women 의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다는 그가 언젠가 90년대까지 보여준 가공할 공력을 다시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My Beautiful Laundrette,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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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eautiful Laundrette Poster” by The cov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MoviePosterShop.com.. Licensed under Wikipedia.

스티븐 퓨리어스가 파키스탄 이민 2세인 작가 하니프 쿠레이쉬(Hanif Kureishi)의 각본을 바탕으로 파키스탄 이민자 2세대인 오마르와 그 가족들이 과거의 식민제국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첨병인 영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

영화의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비뚤어져 있다. 자신의 이상주의적 가치관과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시체처럼 살아가는 오마르의 아버지, 인종적 차별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오마르의 삼촌 나세르와 샬림, 오마르와 어릴 적 친구였으면서도 파시스트 청년들과 몰려다니는 조니, 그리고 다시 만난 조니를 고용인으로 부리면서 – 한편으로는 동성애적 관계에 빠지면서도 – 전도된 만족감을 얻으려는 오마르.

인종, 계급, 동성애, 가부장 등 이 사회의 가장 첨예한 사회적 이슈들이 뒤섞여 있다. 마치 영화에서 등장하는 세탁기 안의 빨래처럼. 그것들은 때로 색깔진한 빨래가 다른 빨래에 물을 들이듯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전도된 계급관계에 희열을 느끼는 경우처럼 변태적이기도 하고 겉으로는 불륜이면서도 나름대로는 인종을 뛰어넘는 구식 로맨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뾰족한 답은 없다. 그저 매캐한 영국의 매연과 흐린 하늘처럼 늘 우리 옆에 존재할 뿐이다.

오마르는 나름대로 세탁소 같은 ‘깨끗한’ 사업으로 성공하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인종과 성적 편견을 뛰어넘는 조니와의 사랑도 역시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영화 마지막의 애정 어린 물장구가 둘의 미래에 일말의 희망을 암시할 뿐이다.

p.s. 사무실 밖에 있는 조니가 사무실의 오마르를 창너머로 바라보는 얼굴로 오마르의 얼굴이 반사되는 장면은 둘의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압축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예리하게 표현한 참 ‘영리하게’ 연출된 장면이었다.

p.s.2 물방울이 보글거리는 듯한 음향효과의 주제음악과 세탁기가 돌아가는 듯한 시각효과의 타이틀시퀀스도 인상적이다.

Cloc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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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ckers film poster” by http://www.cduniverse.com/images.asp?pid=1282281&cart=757413591&style=movie&image=front&title=Clockers+DVD. Licensed under <a href="//en.wikipedia.org/wiki/File:Clockers_film_poster.jpg" title="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Clockers (film)“>Fair use via Wikipedia.

우디알렌의 영화에 등장하는 흑인이 되고 싶다는 스파이크리가 바라보는 뉴욕은 우디알렌이 바라보듯 그렇게 여유롭고 지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전쟁터다. 사는 게 전쟁이니 그 삶의 터전도 전쟁이다. 흑인들은 마약을 팔고 백인들은 마약을 산다. 마약을 파는 소년 Strike는 절대 마약을 하지 않는다. 마치 포르노배우가 가장 위생적으로 청결한 것처럼 말이다. 그 대신 초콜릿무스를 수시로 마셔대는 통에 위장이 엉망이다. 그를 자식처럼 여긴다며 개뻥을 치는 마약상 Rodney는 그에게 사람을 죽여줄 것을 넌지시 암시한다. 암시였지 사주는 아니었다. 하여튼 살인은 이루어졌다. 이제부터 누가 죽였는지를 밝히기 위해 Rocco 형사가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Strike 의 형 Victor 가 자신이 정당방위로 죽였다고 나서는데 평소 행실이 발랐던 그의 말을 Rocco 형사는 믿지 않는다. 스릴러의 형식을 띤 흑인사회의 먹이사슬 보고서로 일관된 스파이크리의 정치적 행보는 마치 켄로치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흑인 우디알렌? Clocker 는 마약판매인 중에 가장 똘마니격으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이들을 일컫는 은어라고 한다. 총격으로 죽은 흑인들의 생생한 사진을 관객의 코 밑까지 들이대는 타이틀시퀀스가 충격적이다.

p.s. 영화포스터가 그 유명한 ‘살인의 해부’의 포스터를 차용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The Paradine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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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dine Case poster” by http://www.movieposterdb.com/poster/c99fe1c8. Licensed under Wikipedia.

1947년 데이빗오셀즈닉과 알프레드히치콕이 함께 손잡고 만든 법정스릴러물이다. 스릴러적인 반전보다는 남편 살해 혐의를 뒤집어 쓴 미모의 미망인, 이 미망인을 사랑하게 된 그녀의 변호사, 이를 알아채고 갈등하는 변호사의 아내, 그리고 미망인이 사랑하는 남편의 비서라는 사각구도의 심리적 갈등을 법정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드라마적 성격이 강한작품이다.이런 탓인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성적은 저조했다고 한다. 법정이라는 공간 내에서 펼쳐지는 팽팽한 갈등의 탁월한 시각화가 눈요깃거리다.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것이 취미인 알프레드히치콕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Happiness

‘행복’이라는 인간본연의 철학적 주제에 해당하는 거창한 제목의 이 영화는 과연 그 제목에 걸맞게 행복의 에센스를 파고들지는 못하였을지라도 우리가 어떻게 엉뚱한 것들을 붙잡고 행복이라고 우기고 있는지에 대한 몇 가지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마치 우디알렌의 ‘한나와 그 자매들’을 연상시키는 세 자매의 에피소드를 축으로 그녀들의 부모, 남편과 애인, 그리고 이웃집 사람들을 차례로 등장시키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고민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첫째 언니의 남편이 지니고 있던 아동에 대한 동성애적 감정을 다소 호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개봉 당시 격론에 휘말려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 변태적 성욕을 지닌 아버지와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는 열한 살짜리 어린 아들 역을 맡은 소년의 연기였다. 그에 반해 허영의식에 찌들어 살던 그의 아내의 감정변화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이 없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결국 막판에 이 소년은 자위행위를 통한 오르가즘을 통해 ‘행복’에 도달하는데 보는 내 입장에선 약간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물론 소년의 잘못이 아니고 감독의 잘못이다. 그럴 거면 제목이 너무 거창했기 때문이다.

El Topo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은유와 상징으로 인해 소위 지적인 관객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도입부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El Topo(우리말로 두더지를 의미하며 감독 Alejandro Jodorowsky가 배역을 맡았다)는 벌거숭이 아들과 함께 정처 없이 떠돌다가 한 마을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한 여인 Mara를 괴롭히고 있는 무법자들을 처치한다. 뱀과 같은 유혹의 혀를 가진 그 여인의 꾐에 빠진 El Topo 는 아들을 수도사에게 맡긴 채 사막에서 여러 무림의 고수들과 대결을 하여 최고의 무림 고수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마침내 모든 무림 고수들을 처단하지만 홀연히 나타난 또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진 Mara 는 그를 배신한다.

총상을 입은 El Topo 는 수년이 흐른 어느 날 동굴 속의 현자로 부활하고 그 동굴 속에는 영화 Freaks 의 흉측한 장애자들을 연상시키는 주민들로 가득 차있었다. 난쟁이 여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오랜 기간의 근친상간으로 말미암은 것이었고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되었다는 것이다. El Topo 는 수도승의 복장을 한 채 마을주민들을 구원할 터널을 파기로 결심한다(그래서 주인공 이름이 ‘두더지’일지도 모르겠다). 마을로 가서 터널을 팔 돈을 버는 과정에서 El Topo 와 난쟁이 여인은 마을이 도덕적으로 파탄했음을 알게 된다.

난쟁이 여인은 이런 마을로 다시 돌아와야 되는지 의문을 품지만 El Topo 는 공명심에 이 충고를 무시한다. 우연히 그 마을에는 El Topo 가 버린 아들이 신부가 되어 돌아와 그들을 만나게 되고 복수심에 불탄 아들은 El Topo 가 터널을 다 판 그 순간 죽일 것을 결심한다. 터널을 다 판 후 아들은 도덕적 갈등으로 복수를 포기한다. 동굴 속의 주민들이 마을로 내려갔지만 마을 주민들은 혐오감을 나타내며 그들을 살육한다. 분노에 찬 El Topo 는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라버린다.

종잡을 수 없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종횡무진 하는 이 작품에 담긴 기독교적, 불교적 메타포는 관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작품은 그러한 메타포에 앞서 – 감독이 의도하였던 하지 않았던지 간에 – 이른바 ‘남성성’의 어리석음을 각인시키고 있다. 영화 초반부 El Topo는 여인의 꾐에 빠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영화 후반 이번에는 여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헌신과 희생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마저 실패하자 자기 성질 못 이기고 자살을 택한다. 결국 어느 길이든 순리를 역류한 그의 삶은 파탄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택하자면 그는 Let It Be 의 자세를 택하여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John Lennon 이 이 영화의 팬으로 판권을 샀다고 한다).

1971년 당시로서는 생경한 심야영화로 개봉되어 컬트팬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었던 작품으로 영화산업의 볼모지인 멕시코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난 걸작이다. Alejandro Jodorowsky는 이후 그래픽노블의 대가 뫼비우스와 함께 종교적 SF ‘잉칼’을 만드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kramer vs. kramer)

기혼 여성의 자아실현, 가정 내에서의 배우자들의 가사분담, 이혼부부의 육아문제 등 경제성장에 따라 가정의 기능에 새로운 해석을 내려야만 했던 선진국의 당시 시대상이 투영된 드라마이다. 직장 일에 온 힘을 쏟는 남편 테드, 그로 인해 소외감을 느껴 떠나버린 아내 조애나, 남겨진 아들 빌리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생활이 펼쳐진다. 가사와 직장을 병행해야 하는 남자는 점차 가사에는 익숙해지지만 회사업무에는 악영향을 미쳐 결국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 와중에 헤어진 아내는 일곱 살 난 아들의 양육권을 요구한다. 어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가족 간의 갈등에 대해 깔끔한 연출과 수준 높은 배우들의 연기로 호평을 얻은 작품

Wonder B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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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boys ver4” by Impawards.com. Licensed under Wikipedia.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J.D. Salinger 의 The Catcher In The Rye. 철없는 문학교수 Grady Tripp (Michael Douglas) 의 좌충우돌 행보에서는 Holder Caulfield 의 치기어린 행동이 묻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문득 문득 ‘작문에 제법 소질을 보이던 Holden 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대신 작가의 길을 걸었더라면 Grady 처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나 홀로 해보았다. 제법 근사했다. 비록 뛰어난 작품을 한 권 냈고 교수도 되었지만 Grady 는 – 나이 든 Holden 은 – 여전히 수시로 대마초를 펴댈 만큼 –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제자 James Leer(Tobey Maguire)에게도 권할 만큼 – 반사회적이고 냉소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극의 에피소드 들 역시 하나 하나 쪼개보면 절망적이면서도 결국 실낱같은 그 어느 희망으로 수렴해가는 구조를 지녔다는 점에서도 두 작품이 유사성을 띠고 있다. 물론 원작자 Michael Chabon 이 들으면 기분나빠하겠지만 – 그가 이글을 볼 리도 없지만 – 적어도 내게 있어 이 영화(또는 원작 소설)는 The Catcher In The Rye 에 대한 오마쥬 내지는 패러디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 이 영화는 Steve Martin 주연의 Planes, Trains and Automobiles 를 연상시킨다. Grady 는 앞서의 영화에서 Steve Martin 이 그러했던 것처럼 짧은 시간에 온갖 수난을 다 당한다. 아내는 집을 떠나고, 정부(情婦)는 임신했지만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개한테 물리고, 제자는 그 개를 죽이는가 하면 마릴린 몬로의 재킷을 훔친다. 비록 이 작품이 보다 지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주인공 재난 영화’의 계보에 넣어도 큰 무리가 없지 않나 싶다.

결국은 모든 것을 잃어도 행복한 가족을 얻었다는 헐리웃 공식을 추가시킨 것도 비슷한 점이다(개인적으로는 더 망가뜨렸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혹자는 21세기 최초의 걸작이라고도 평했다는데 적어도 21세기에 보기 흔하지 않은 매력적인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실력파 배우들의 나름 귀여운 연기를 이끌어낸 커티스 핸슨의 역량도 맘에 들고 사운드트랙도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