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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and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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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Jackson의 1982년 작 Night and Day는 영국 뮤지션이었던 그가 뉴욕의 문화를 접하고서 느꼈던 바를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좌측 상단의 마천루의 야경과 하얀 배경에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뮤지션이 대비를 이루는 앨범 커버에서부터 이미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듯이, 조 잭슨에게 있어 뉴욕은 첫 곡 Another World 그대로 “다른 세상”이었다. Chinatown역시 뉴욕의 차이나타운을 헤매는 작가의 모습이 상상이 되는데, 이런 뉴욕에 대한 감회는 이 앨범 최고의 히트곡 Steppin’ Out에서 절정을 이룬다. 뉴욕 거리에서 “반짝이는 빛의 색깔에서 몸을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뮤지션은 “밤으로, 빛으로 들어가자고(steppin’ out into the night, into the light)” 유혹한다. 이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특이하다고 느껴지는 노래는 뉴욕의 게이 문화를 소재로 한 Real Men인데, 오늘날의 관점에 봐서도 상당히 페미니즘적인 관점을 가진 노래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과연 남자다움이 무엇이냐고 묻는 조 잭슨의 열린 마음이 맘에 든다. 전체적으로는 데뷔 앨범 Look Sharp!가 좀 더 부드러워지고 윤기 있게 변했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Look Sh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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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보면 데뷔앨범이라고는 해도 신인답지 않게 너무 매끈하게 잘 뽑혀 나온, 여유 만만한 데뷔앨범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The Stone Roses의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이 그랬고 지금 소개하는 Joe Jackson의 데뷔앨범 Look Sharp!(1979)도 그런 데뷔앨범이다. 물론 서구 뮤지션들은 싱글 발매나 라이브를 통해 오랜 습작기간을 거쳐 정식 LP를 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데뷔앨범이 나온다 해서 별로 이상할 것은 없지만, 아무래도 뭔가 풋풋한 그런 데뷔앨범의 맛은 없다는 단점(?)도 있다. 그런 풋풋함을 느낄 수 있는 데뷔앨범을 들자면 Duran Duran의 데뷔앨범이 그랬고, 의외로 Bob Dylan의 데뷔앨범도 그렇다.

앨범을 플레이하면 첫 곡 One More Time부터 일찌감치 – 앨범 수록곡 모두가 그러하듯 – 이 한곡에 록, 스카, 펑크, 뉴웨이브가 자연스럽게 화학적으로 융화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긋한 애정관계를 노래한 첫 곡에 이은 Sunday Papers는 소란스러운 영국 언론에 대한 Joe Jackson의 냉소를 읽을 수 있다. 다음 곡 Is She Really Going Out With Him?은 제목에서 싱글로 발매되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흥미롭게도 앞서 언급한 세 곡은 모두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발매 순서는 앨범 수록곡 순서와 반대다.

이외에도 앨범에는 이 세곡의 음악적 깊이와 거의 대등한 곡들로 – 오리지널 CD는 총 11곡 – 채워져 있다. 앞서 암시했듯 Joe Jackson은 이미 데뷔앨범 이전부터 자신만의 밴드를 이끌고 공연을 하며 수입을 얻고 있었는데, 이 앨범은 거기에서 마련된 돈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처음 세 싱글과 앨범이 나왔을 때만 해도 반응은 미지근했다. 전기가 마련된 것은 Is She Really 싱글이 재발매 되었을 때다. 싱글이 차트에 올랐고 앨범도 덩달아 인기를 얻게 되었다. 앨범은 오히려 본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높은 순위에 올라갔다.

Spirit of E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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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 of Eden은 영국의 뉴웨이브 밴드 Talk Talk가 1988년 발표한 그들의 통산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뉴웨이브 하면 캐치한 멜로디에 통통 튀는 리듬감을 연상하는 이들이 이 음반을 그런 유로 생각하고 듣는다면 당혹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아방가르드에 가까운 지루한 연주와 모호한 멜로디, 멜로디보다 더 모호한 의미를 지닌 가사 등은 듣는 이로 하여금 뉴웨이브라는 장르가 지닌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보컬 Mark Hollis와 프로듀서 Tim Friese-Greene에 의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1987년과 1988년에 걸쳐 런던의 웨섹스 스튜디오에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작업은 종종 어둠 속에서 진행되었고 몇 시간에 이르는 즉흥연주가 녹음되어 편집에 이용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은 락, 째즈, 클래식, 앰비언트의 요소를 포함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이전 앨범에서의 보다 팝친화적인 모습과 달랐기에 상업적으로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초래했다.

이들의 전작 The Colour of Spring(1985)은 20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그룹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다. 그 결과 EMI는 Talk Talk가 다음 작품을 위해 여유로운 예산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밴드는 작업에 완벽한 통제권을 갖게 되었다. 매니저와 EMI 임원은 스튜디오 세션에 출입이 금지되었고, 밴드는 신디싸이저를 자제하고 많은 수의 세션 연주자들을 동원하여 1년여에 걸쳐 작업을 진행하였다.

밴드는 원래 싱글을 내지 않을 계획이었지만 EMI는 “I Believe In You” 의 라디오에디트 버전을 내놓았고, 결과는 잔인했다. 차트 성적이 형편없었던 것이다. 밴드는 홍보공연도 하지 않았다. Hollis는 “난 이 앨범의 음악을 다시 어떻게 연주할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앨범은 상업적으로 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 초기에는 –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 비평가는 “듣는 이에게 자살을 부추기는 마케팅을 해대는 레코드”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앨범의 진가가 인정받기까지는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Pitchfork는 이 앨범을 206년 선정한 ‘1980년대 명반 목록’에서 34위로 언급하였다. Q매거진은 2012년 선정한 ‘80년대 명반 40개’ 중에서 31위에 이 앨범을 올렸다. NME는 ‘모든 기간 동안의 가장 위대한 500개의 앨범’에 이 앨범을 95번째로 선정하였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 앨범이 1990년대 The Verve나 Radiohead에서 엿볼 수 있는 포스트록(post-rock)에 영향을 미쳤다고 간주하였다.

My Aim Is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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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Aim isTrue”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tiff / Columbia / Demon/Rykodisc / Rhino / Hip-O..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My Aim Is True“>Fair use via Wikipedia.

1977년 7월 22일 Elvis Costello(본명 Declan MacManus)의 데뷔 앨범 “My Aim Is True”가 발매되었다.(미국에서는 1978년 3월) Nick Lowe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76년 말에서 1977년 초까지 런던에 있는 패쓰웨이(Pathway)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그의 동네인 리버풀의 펍이나 클럽에서 육 년여 동안 공연을 했던 Costello는 1976년 그가 녹음한 데모테잎을 Stiff 레코드사에 보냈다. 처음에 이 레이블은 그를 Dave Edmunds를 위한 작곡가로 쓸 생각을 했었지만 Edmunds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회사는 Costello에게 몇 곡을 녹음할 기회는 주고는 Costello에게 레코딩 아티스트를 포기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결과물이 꽤 괜찮았기 때문에 마음을 바꿨다. 그래서 이제 회사는 Wreckless Eric과 데뷔 앨범을 공유할 것을 제안했지만 Costello는 이미 자신만의 앨범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노래를 작곡해놓았다. 이 앨범은 몇 주에 걸쳐 Clover라는 밴드의 멤버와 함께 여섯 번의 4시간 씩 총 24시간 동안 녹음을 마쳤다. 당시 낮에 데이터 입력 일을 하고 있던 Costello는 병가를 내가며 연습과 녹음을 마쳐야 했다. 처음의 두 싱글 “Less Than Zero”와 “Alison”이 나올 때까지 Costello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마침내 레이블은 1977년 여름 앨범을 내놓을 것을 결정하고서 Costello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프로페셔널 뮤지션으로 나서라고 권유했다. Stiff 레코드사는 그에게 월급을 주고 선금으로 150파운드와 앰프 하나, 그리고 테이프 녹음기를 줬다. Costello는 이 상황을 “7년 이후의 하룻밤의 성공”이라고 묘사했다. 이 앨범에서는 고전이 된 “Alison”와 “(The Angels Want To Wear My) Red Shoes”가 인기를 끌었고 차트에서는 “My Aim Is True” 등이 성공했다. VH1은 2003년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에서 80위에 선정했다. 롤링스톤은 2004년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개의 앨범에서 168위에 선정했다.

Every Breath You 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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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ng 21111985 06 700” by Helge Øverås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2.5 via Wikimedia Commons.

1983년 7월 9일 The Police의 “Every Breath You Take”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8주간 머물렀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4주간 정상에 머물렀다. Sting이 만든 이 곡은 Sting이 베이스와 보컬을 맡은 미국 출신의 뉴웨이브/펑크락 밴드 The Police의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으며, 또한 1983년 한 해 가장 인기 있는 싱글이 되었다.

Sting은 이 곡을 그의 첫 아내인 배우 Frances Tomelty와 고통스럽게 이혼하는 과정 속에서 썼다. 간혹 달콤한 사랑노래라는 오해를 받는 이 곡은 모호한 가사 속에 보다 어두운 맥락을 담고 있다. 즉 前애인에게 집착하며 질투하는 화자의 시각은 특정인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집착과 질투일 뿐이다.

“난 한밤중에 깨어났고 그 가사가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피아노 앞에 앉아 30분 만에 곡을 만들었죠. 선율 자체는 포괄적인, 일종의 수많은 다른 선율을 합친 것이었어요. 하지만 가사는 흥미로웠죠. 편안한 사랑 노래처럼 들려요. 그때까지 가사가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어요. 내 생각에 빅브라더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감시와 통제.” Sting의 1993년 인터뷰 中에서

곡을 만드는 과정은 드럼과 퍼커션 파트에 대한 Sting의 집착 때문에 Sting 과 드러머 Stewart Copeland 간의 갈등으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둘은 실제로 그 문제 때문에 주먹다짐까지 벌였고, 엔지니어이자 공동 프로듀서인 Hugh Padgham이 거의 프로젝트에서 빠질 뻔 했다. 결국 갈등은 회복됐고 트랙은 완성됐다.

싱글은 밴드의 다섯 번째 앨범 “Synchronicity”의 첫 싱글로 1983년 5월 20일 발매되었다. 팬들과 비평가는 동시에 이 곡을 “클래식”으로 간주하였다. 1983년 6월 4일 핫100 차트 36위로 데뷔한 이 곡은 불과 5주 후에 차트 정상을 차지한다.Kevin Godley와 Lol Creme이 감독한 흑백의 뮤직비디오도 음악의 강렬한 인상에 한몫했다.

“Every Breath You Take”는 26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Song of the Year’를 포함하여 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 곡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The Police는 1984년 해체되었다. Sting은 그의 솔로 앨범을 위해 “If Love Somebody Set Them Free”를 썼는데 이 곡은 “Every Breath You Take”의 반대되는 입장에서 쓴 후속곡의 성격을 띠고 있다.

롤링스톤誌는 1983년 이 곡을 ‘그 해의 노래’로 뽑았고 후에 ‘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서 84위에 선정했다. 이 성적은 뉴웨이브 곡으로는 가장 높은 순위에 속한다. 빌보드는 이 곡을 ‘Hot 100 All-Time Top Songs’에서 25위에 선정했다. 2010년 추산에 따르면 Sting의 음악 관련 수입 중 이 곡이 차지하는 비중은 1/4내지 1/3을 차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뮤직비디오

Flash And The Pan


이미지 출처

Flash And The Pan은 호주의 뉴웨이브 밴드다. 이 밴드는 호주에서 가장 위대한 락밴드로 평가받는 The Easybeats의 멤버였던 Harry Vanda와 George Young이 1979년대에 시작한 프로젝트다. 이 듀오의 첫 성공은 데뷔 앨범의 수록곡 Walking In The Rain의 인기였다. 이 곡은 후에 Grace Jones가 그녀의 1981년 앨범 Nightclubbing에서 커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Hey St. Peter가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핫100 차트 76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앨범도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는데 유럽, 영국, 미국 등지에서 인기를 얻었다.

Albums
Flash and the Pan (1979)
Lights in the Night (1980)
Headlines (1982)
Early Morning Wake Up Call (1984)
Nights in France (1987)
Burning up the Night (1992)

보다 상세한 디스코그래피

C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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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anCars”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beggars.co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1979년 영국의 아티스트 Gary Numan은 그의 앨범 The Pleasure Principle에서 “Cars”를 싱글로 내놓았다. 이 곡은 영국과 캐나다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미국 싱글 차트에서는 9위까지 올랐다.1 이로써 이 곡은 시장에서나 뮤지션들 모두에게 신디싸이저를 이용한 뉴웨이브 음악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곡이 되었다.

이 곡은 Numan이 싱글 네 개와 영국 차트에서 인기를 얻은 “Are ‘Friends’ Electric?”을 포함한 LP 두 개를 발표한 이전 밴드 Tubeway Army라는 이름을 버리고 처음 내놓은 곡이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이전의 곡들보다 더 밝아지고 보다 팝친화적이었다. Numan은 후에 이 곡을 만들 때 상업적 성공을 염두에 두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그 때가 아마도 ‘이게 히트 싱글이 될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든 첫 노래에요.”라고 말했다.

“Cars”의 제작에는 베이스와 드럼과 같은 리듬 섹션은 전통적인 악기를 사용됐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미니무그(Minimoog)와 폴리무그(Polymoog) 키보드 등의 아날로그 신디싸이저를 이용됐다. 간주 부분에는 탬보린이 쓰이기도 했다. Numan의 보컬은 대부분 무미건조하게 마치 로봇이 노래하는 듯한 톤으로 녹음되었다. Numan에 의하면 가사는 그가 직접 거리에서 겪었던 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한번은 런던에서 트래픽에 갇혀있었어요. 그런데 앞차의 사람들과 문제가 생겼죠. 그들은 나를 차에서 끌어내 때리려 했어요. 난 문을 잠그고 마침내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그들에게서 도망쳤죠. 그런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이는 현대에서 당신이 차안에서 얼마나 안전함을 느끼는 지를 설명하는 것이에요. 그 안에 있을 때 당신의 모든 멘탈이 달라집니다. 그건 당신만의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왕국과 같죠.”

뮤직비디오

  1. Numan이 비록 영국에서는 몇 개의 히트곡이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이게 그의 유일한 탑40 곡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