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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팝계의 20대 사건

출처가 어디인지는 불명입니다. http://myhome.naver.com/ouimoi/favorite/80년대사건.htm 라는 링크가 남아 있긴 한데, 지금 열어보니 더 이상 서비스를 하지 않는 페이지라는군요. 누군가 예전에 “음악세계”란 잡지에서 본 것 같다는 코멘트를 달아놓기도 했네요. 여하튼 저작권이 있으신 분이 있으시면 연락주시고요. 이 중 몇 개나 동의하시는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겠네요.

Pop Events Of The Decade (80년대 팝계의 20대 사건)

1. 1980-핑크 플로이드의 화제작 「벽」

1980년 최대의 화제작은 핑크 플로이드의 「벽」(The Wall)이었다. 67년 데뷔작 「여명의 문 앞에 선 풍적수」(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를 발표한 이래 핑크는 프로그레시브 음악으로 팬들은 물론이고 아티스들에게도 음악적인 영향을 미쳤다. 73년 「달의 어두운 면」(Dark Side Of The Moon) 이래 최대의 앨범이라는「벽」은 15주간 차트 정상을 차지했는데, 82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또 다시 핑크 플로이드 열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앨런 파커 감독의 이 영화는 당시로선 최장시간의 록영화였다. 라이브 에이드로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봅 겔도프가 주연한 이 영화는 록 스타의 정신적인 붕괴를 다룬 것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정치만화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제럴드 스카프의 작품.

2. 1980-존 레논 흉탄에 쓰러지다

비틀즈의 존 레논이 80년 12월 8일 뉴욕에 있는 다코타 아파트에서 마크 채프먼이라는 사내의 총탄에 쓰러졌다.  80년 11월, 5년 동안의 침묵을 깨며 그는 앨범 「이중 환상」(Double Fantasy)을 발표하여 팬들을 설레게 했었다. 싱글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Just Like> Starting Over)은 그의 죽음 이후 차트 1위에 올라 사람들을 더욱 애석하게 했다. 비틀즈 시절 “우리는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말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존은 60년대 팝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만함 속에 번득이는 예지등으로 그의 개성은 더욱 팬들에게 어필되었고, 65년 비틀즈 멤버로서 ‘대영제국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3. 1981-MTV의 영향

1981년 8월 미국의 어느 케이블 방송국은 24시간 동안 음악만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MTV(Music Televison)이다. 75년 일본의 소니사에 의해 비디오가 대중화될 때부터 MTV의 출현은 이미 예상되었는데, 디스크의 소리에 TV의 화면을 접목시킨 것이었다. 노래를 듣고, 거기에다 보기까지 하니 음악의 내용도 상당히 변하게 되었다.  MTV는 뉴 웨이브 가수들의 출현을 앞당기기도 했다. 듀란 듀란, 컬처 클럽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70년대 통신기기의 대변혁인 비디오가 음악에 미친 영향은 바로 MTV의 출현이었다.

첫 시작을 알린 비디오는 그 유명한 The BugglesVideo Killed The Radio Star

4. 1981-뉴웨이브의 기수들

뉴웨이브라는 말처럼 뜻이 다양하고 복잡한 용어도 드물 것이다. 70년대 말 펑크와 디스코, 그리고 기존 록의 혼합물을 뉴웨이브라고 부르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기계적으로는 MTV의 등장이 뉴 웨이브의 출현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70년대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80년대의 요구에 맞춘 것이 뉴 웨이브라고 보는데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대중적인 기반은 1981년 블론디였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멘 앳 워크. 폴리스. 유리쓰믹스. 컬처 클럽. 듀란 듀란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등장했다. 감각적인 사운드, 현대적인 감각의 화장 및 분장 그리고 환상적인 패션 등이 그들의 개성이기도 했다. 70년대 말의 파괴적인 펑크 시대 이후 찾아온 대중 음악, 그것이 뉴 웨이브였다.

5. 1982-CD 및 LPD의 개발

디스크와 TV의 만남이 MTV였다. 하지만 우리들은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각과 청각의 동시 해결이라는 요구는 풀렸지만 그 질(質)이 문제였다. 먼저 원음(原音)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자 했다. 그것이 CD(Compact Disk)이다. 일본의 소니사와 네덜란드 필립스사는 82년 CD발매를 개시했다. 광통신(光通信)의 발전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았다. 화면도 실물에 가까운 생생한 것을 가능케 했다. 그것이  LDP(Laservision Disk Player)이다. 83년 일본의 파이오니어사는 LDP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MTV가 제공하는 음악의 발전 단계가 LDP인 것이다. 이제 팬들은 생생한 소리와 화면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비디오의 등장처럼 LDP가 음악계의 흐름을 뒤집진 못하고 있다. 지금은 초기 단계다. LDP의 대중화는 비디오에 못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결국 LDP는 단명하고 말았고 현재는 DVD가 대세죠 : 옮긴 이 주)

6. 1982-80년대의 음악 뉴 에이지

80년대 들어 태동한 두 가지 음악 장르라면 뉴 에이지와 랩이다. 80년대 초부터 ‘뉴 에이지’ 또는 ‘환경음악'(주로 일본) 등으로 불린 이 음악은 동양적인 명상음악이라는데 특징이 있었다. 굳이 뉴 에이지를 82년의 사건으로 잡는데는 약간의 무리가 있지만, 뉴 에이지라는 음악을 대중화시킨 조지 윈스턴의 활동을 기초로 했다. 80년 조지는 「가을」(Autumn), 「겨울에서 봄으로」(Winter Into Spring),「12월」(December)등을 발표했다. 위의 앨범이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아 83년 초 빌보드 재즈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반젤리스는 82년 <불의 마차 ‘(Chariots Of Fire)라는 영화음악으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반젤리스가 뉴에이지? : 옮긴 이의 의문) 이때부터 뉴 에이지는 그
독립성을 인정받아 87년 최초의 뉴 에이지 그래미 수상자 안드레아스 플렌바이더를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CD의 보급은 뉴 에이지를 전파하는 데 큰 몫을 했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되겠다.

7. 1983-80년대의 대표적인 뮤지션 마이클 잭슨

지금도 팬들에겐 <빌리 진>(Billie Jean)의 전주 부분이 귀에 생생할 것이다. 83년 팝계를 휩쓸어 버린 수퍼스타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마이클 잭슨이다.  당시만 해도 흑인 가수의 방영을 꺼리던 MTV에 그는 백인에 가까운 성형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영화감독 존 랜디스 (“블루스 브러더스”<Blues Brother>의 감독)를 영입하여 만든 비디오 <비트 잇>(Beat It)은 마이클을 수퍼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모타운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보여준 그의 춤 솜씨와 퀸시 존스에 의해 프로듀스된 앨범 「스릴러」(Thriller)의 펑키한 사운드, 그리고 백인에 가까운 분장 등은 MTV의 장점을 가장 완벽하게 이용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 앨범에선 싱글 톱10이 7곡이었는데, 덕분에 마이클 잭슨은 그 해 그래미상  8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8. 1983-온 거리를 뒤흔든 브레이크 댄스

수퍼스타 마이클 잭슨의 등장 이후 뒤로 걷는 댄스 스텝은 팝계의 또 다른 화제거리였다. 길거리에서도 그를 흉내내는 청소년들을 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관절을 비틀어 대는 춤 때문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기사들이 발표되기도 했었다.  이름하여 브레이크 댄스 열기였다. 이 좋은 소재를 영화계에서 놓칠리가 없었다. 83년 애드리언 라인 감독의 “플래시댄스”(Flashdance)가 바로 그것이다.  제니퍼 빌스 주연의 이 영화는 황당한 스토리를 지닌 것이었지만 디스코 작곡가로 유명한 조르지오 모로더의 음악 덕분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였다. 특히 아이린카라가 부른 <플래시댄스>와 <신나는 기분> (Flashdance What A Feeling)(이 노래가 언제부터 두곡이었을까나… : 옮긴 이의 의문)은 오스카 주제가상을 받았다. 이 영화 이후 댄스 음악은 영화에서 주요한 위치를 갖기 시작했다.

9. 1984-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열기

84년은 유난히 뛰어난 앨범이 많이 발표된 해였다. 한 앨범이 계속해서 1위에 머무는 바람에 1년(약52주) 동안 4개의 앨범만이 넘버원을 차지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프린스의 해라고 해도 좋을 시기였다. ‘보스'(브루스)는 7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였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Born In The U.S.A) 앨범으로 대중적인 기반도 확실히 다지게 되었다. 「끝없는 질주」(Born To Run)로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한 그는 그 해 타임, 뉴스위크 양 잡지의 표지인물로 선정되기도했다. 80년 「강」(The River)으로 앨범 1위를 기록한 그는 수작 「네브라스카」 Nebraska) 이후 84년 「미국에서 태어나」를 발표했다. 재킷에 노동자 복장 차림의 사람이 성조기를 향해 오줌을 누고 있는 듯한 자세 때문에 말도 많았지만 본인은 강력히 부인하기도 한 문제의 앨범이었다.

10. 1984-미네아폴리스 사단의 리더 프린스

TV 드라마 “배트맨”(Batman)의 주제곡을 열심히 피아노로 연주하던 소년이 바로 영화 “배트맨”의 사운드트랙을 맡았던 프린스이다. 1984년은 한 마디로 보스와 프린스의 해였다. 특히 프린스는 작곡, 작사, 프로듀서, 싱어를 겸하는 만능 재주꾼으로 83년의 마이클 잭슨 열기를 뒤엎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70년대에 데이비드 보위가 새로운 음악의 창조를 위해 노력했다면 80년대는 단연 프린스였다. 그는 「심홍색 비」(Purple Rain) 한 장의 앨범으로 표현된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스타 제조기이기도 하다. 배내티와 아폴로니아가 프린스 사단 출신이며, 실라E. 차카 칸. 마돈나. 시나 이스턴 등 그가 후원한 가수는 수도 없이 많다.

11. 1985-만능 엔터테이너 마돈나

80년대 최고의 여성 가수로 마돈나를 지목하기에 주저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1985년 마돈나는 「처녀처럼」(Like A Virgin)으로 전 세계 팝 팬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프로듀서는 듀란 듀란의 프로듀서로도 유명한 나일 로저스. 미모와 섹시함 그리고 가수로서의 가창력과 춤 등이 그녀를 수퍼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MTV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녀는 MTV 등장 이후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88년에는 브로드웨이 연극에도 출연하여 화제를 몰고 온 그녀는 영화배우 숀 펜과의 결혼 생활을 끝내는 등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지만, 올해 「기도처럼」(Like A Prayer)을 발표하며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였다.

12. 1985-이디오피아 난민구호 ‘라이브 에이드

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구장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구장에서 동시에 대규모 콘서트인 ‘라이브 에이드'(Live Aid)가 개최되었다. 이디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이었다. 장장 16시간의 공연, 200여명의 아티스트 출연, 430억의 자선 기금, 세계 140개국에의 15억 시청자 등등 종래의 모든 기록을 깨버린 행사였다. 영국의 록 그룹 붐 타운 래츠의 리더 봅 겔도프는 이 행사를 개최한 공로로 그 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라이브 에이드’는 우드스톡 이후 최대의 공연이었으며, 이 행사에 자극받아 해리 벨라폰테는 ‘우리는 곧 세계'(We Are The World) 라는 앨범(We are the world는 라이브에이드 이전에 나오지 않았나요? : 옮긴 이의 의문)을 제작하기도 했다. 프로듀서는 퀸시 존스. 빌보드 차트 1위 및 그래미상 수상의 영광도 안은 앨범이었다.

13. 1981-뉴 웨이브의 기수들

뉴 웨이브의 열기, MTV의 등장 그리고 아티스트의 개성 등이 그 시대와 딱 들어맞은 뮤지션이 왬이었다.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로 구성된 이 영국 듀오는 1984년 <떠나기 전에 깨워주오>(Wake Me Up Before You Go-Go)를 싱글 차트 1위에 올려 놓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1985년 중국 공연까지 벌였던 그들은 특히 여성 팬들의 우상이었다.  준수한 외모와 로맨틱한 노래로 국내에서의 인기도 대단했는데 85년 <경솔한 속삭임>(Careless Whisper)은 아마 팝 팬들에게 많은 추억을 준 곡으로 짐작된다. 흑인의 소울을 팝 감각으로 소화시켜 자신들의 개성을 구축했던 이들은 2집 「크게 해봐」(Make It Big)의 성공 이후, 끝없이 해체설이 돌다 결국 86년 헤어지고 말았다.

14. 1986-앰네스티 로큰롤 순회공연 개시

86년 ‘앰네스티’라는 단체가 뉴스에 종종 오르내렸다.’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라는 이 단체는 각국의 탄압받는 양심수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61년에 조직되었다. 온 세계에 이 단체의 존재를 명확하게 알리는 데는 록 스타들의 역할이 컸다. 앰네스티 미국 지부의 잭 힐리라는 사람은 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의 위력을 실감한 뒤 대규모 록 행사를 계획했다. 86년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개최되었던 이 행사에서 U2와 스팅 등은 자신들의 개성을 팝 팬들에게 강력히 심어 주기도 했다. U2는 이 행사로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는 1987년 ‘여호수아 나무'(The Joshua Tree)로 나타났다. 1988년 ‘지금 인권을'(Human Rights, Now!)공연으로 이 행사는 맥을 잇고 있다.

15. 1987-미래의 검은 로큰롤 랩

50년대 로큰롤이 등장했을 때 젊은이들의 호응은 열광적이었지만 기성세대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춤, 가사, 창법 등으로 젊은이들을 흥분시켰던 로큰롤은 기성세대들이 보기엔 천박한 잡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로큰롤은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었다. 아직은 소수이지만 랩에서 로큰롤이 가졌던 의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80년대 중반 흑인들 사이에서 랩이 퍼지기 시작했다. 마구 지껄이는 폭력적인 가사, 반복되는 리듬 등으로 일반 팬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던 음악이 랩이었다. 86년 런-DMC에 의해 랩의 저변이 확대되기 시작하더니 87년 드디어 백인 래퍼 3인조 비스티 보이스의 「살인 허가」(Licenced To Kill)가 앨범 차트 1위에 올라섰다. 뉴 에이지와 함께 80년대에 탄생한 장르로 새로이 위치를 굳힌 랩은 올해 톤 록이라는 또 다른 스타를 내기도 했다.

16. 1987-로큰롤은 U2를 통해 재탄생되었다.

85년의 ‘라이브 에이드'(Live Aid)와 86년의 앰네스티 순회공연을 통해 등장한 스타 중 U2의 부상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 있었다. 특히 앰네스티 공연에서 U2의 리드 싱어 보노가 보여준 개성은 60년대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 보여 준 바로 그것이었다. 아일랜드 출신 4인조 U2는 87년 팬들에 보답하는 앨범 「여호수아 나무」(Joshua Tree)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차트 1위에 랭크된 것은 물론이고, 78년 팀결성 이후 발표한 앨범들도 덩달아 차트에 무더기로 진입하여 그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정통 로큰롤에 실린 의미있는 가사와 진지한 매너로 한몫 보기도한 U2는 그 해 그래미상을 휩쓸기도 했다. 오랜만에 로큰롤이 U2를 통해 기지개를 켠 87년이었다.

17. 1988-일년내내 톱10에 랭크된 조지 마이클의 「믿음」

1988년은 오직 한 명의 스타가 독주한 해였다. 그 주인공은 조지 마이클. 86년 왬이 해산될 때부터 그의 솔로 등장은 시간 문제였다. 섹스 어필하는 용모와 흑인 가수를 방불케하는 소울 창법 등 스타가 될 만한 재능이 넘치는 영국 가수였다. 그의 솔로 데뷔 앨범은 「믿음」(Faith)이었는데, 이 앨범은 88년 한해 단 1주만 11위를 기록하였고 나머지 기간에는 톱10안에 랭크되었었다. 정상에 머무른 기간도 12주였다. 싱글 1위곡도 5개나 터져 나왔다(I Want Your Sex, Faith, Father Figure, One More Try, Monkey). 마이클 잭슨도 마돈나도 이런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트레이시 채프먼의 포크와 스티브 윈우드의 컴백도 조지 마이클의 열기를 따라 잡진 못한 한 해였다.

18. 1988-헤비 메틀의 전성기를 다시 연 밴드들

88년 후반부의 주인공은 데프 레퍼드와 건스 & 로지스였다. 이들이 벌인 차트 경쟁은 헤비 메틀 만큼이나 치열한 것이었다. 88년 메틀계에 불을 당긴 팀은 반 헤일런의 「오! 자네도 하나 먹었군」(OU 812) 앨범으로 시작해서 데프 레퍼드의 「히스테리아」(Hysteria), 건스 & 로지스의 「파괴 망」(Appetite For Destruction) 그리고 본 조비의 「뉴 저지」(New Jersey)까지 그 열기는 이어졌다. 데프 레퍼드는 83년 「방화광」(Pyromania)에 이어 「히스테리아」도 7백만 장 이상 판매하여 앨범 2장을 연속으로 7백만장 이상 판매한 최초의 밴드가 되었다. 이들을 이어 건스 & 로지스 그리고 본 조비가 메틀의 열기를 이었다. 「뉴 저지」가 차트 1위에 올랐을 때 2위는 「파괴 욕망」, 3위는 「히스테리아」였다. 빌보드 차트 사상 메틀 밴드의 앨범이 1,2,3위를 휩쓴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19. 1989-팝계의 새로운 주인공 10대 가수들

89년은 유난히 10대 가수들의 활약이 돋보인 해였다. ’10대현상’은 88년 티파니부터 시작되었다. 데뷔 앨범 ‘티파니'(Tiffany)를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며 그녀는 10대 선풍을 몰고 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곧이어 데비 깁슨이라는 천재 소녀가 출현했다.  데뷔 앨범 「뜻밖에」(Out Of Blue)에 이어 「짜릿한 청춘」(Electric Youth)을 내놓으며 티파니의 인기를 능가하고 있다. 전반기는 보비 브라운의 독무대였다. 앨범 「잔인하게 굴지 마세요」(Don’t Be Cruel)에서 연속으로싱글 히트곡을 내놓았다(Don’t Be Cruel, My Prerogative, Roni, Every Little Step 등). 후반부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이었다. 앨범「끈질기게 버텨」(Hangin’ Tough)를 차트 1위에 올리며 동명 싱글곡 외에 <커버 걸>(Cover Girl), <내가 (당신을 황홀하게 하지 않았어요>(Didn’t I<Blow Your Mind>)등을 연속 히트시켰다.

20. 1989-돌아온 공룡들

전반부엔 10대 가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면 후반부는 60년대 로커들의 재등장이 활발한 시기였다. 토론토 공연으로 시작된 더 후의 컴백,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재등장. 봅 딜런. 반 모리슨. 비지스. 링고 스타 등의 새로운 모습이 인상적인 해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1989년의 사건은 롤링 스톤즈의 재결합 공연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8월 31일 시작된 그들의 순회공연은 미국을 온통 뒤집어 놓았다. 뉴욕에선 공연이 예정되자마자 6시간만에 약 30만장의 입장권이 동나버리기도 했다. 새 앨범 「강철 바퀴」(Steel Wheels)와 싱글 <복잡한 감정> (Mixed Emotion)은 차트 정상을 향해 질주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Power Station

요즘 이들의 음악이 좋다. Robert Palmer의 기름진 목소리, 락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연주, 리드미컬한 드러밍. 공연을 보거나 합주를 하면 정말 재밌을 것 같은 곡들을 만들었던 그룹이다. 다시 재결합해서 한국에 공연을 올 수 있을까? 설마~

The Power Station in 1985. Top left: Robert Palmer; top right: John Taylor; bottom left: Tony Thompson; bottom right: Andy Taylor
By Unknown – Pelo #243, Public Domain, Link

수퍼그룹 Power Station은 Duran Duran의 John Taylor와 Andy Taylor, Chic의 드러머였던 Tony Thompson, 그리고 싱어 Robert Palmer로 구성되었다. 처음에 그것은 John의 아이디어였다. John은 그룹을 조직하기 전부터 Robert Palmer의 친구였고 그의 음악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의 당초 Power Station에 대한 오리지날 컨셉은 한 앨범에 여러 명의 싱어들이 노래하는 일종의 객원싱어 개념이었지만 단기간내 그런 프로젝트가 성사될지는 미지수였다.

한편 그 당시 John은 연인인 Bebe Buel이 T. Rex의 Bang a Gong (Get It On)을 리메이크했으면 하고 바랬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곡을 훵키버전으로 만들기 위해 Tony Thompson과 합류하였다. 그러나 John과 Bebe가 연인관계가 깨져버려 이는 무산되었다. 한편 John과 Andy는 이미 Some Like It Hot과 Murderess의 데모작업을 진행하였는데 Some Communication이라는 곡의 싱어로 Robert Palmer가 초대되었다. 마침내 Bernie Edwards는 전앨범에 Robert Palmer가 싱어로 참여할것을 제의했다.

1985년 2월 Power Station은 Saturday Night Live에서 데뷔무대를 가졌다. 3월말 Some Like It Hot이 영국챠트에 등장해 14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미국에선 6위까지 올랐다. 앨범은 4월에 영미 챠트에 첫등장하였다. 그리고 이어 6월에는 Bang a Gong (Get It On)을 히트시켰다. 세번째 싱글은 Murderess였다.

애초 Power Station은 공연을 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연이은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공연에 대한 유혹은 너무 커져갔다. 그러나 Palmer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연 10일째 되던 날 공연단을 떠났다. 공연투어의 싱어는 Silverhead란 그룹의 싱어였던 Michael Des Barres로 대체되었다. 그 당시 John은 이 프로젝트가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당초 Duran Duran 의 Alter Ego의 개념으로 출발한 그룹이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가을에 그룹의 마지막 싱글인 Communication이 발매되었다. 미국에서는 Top 40에 들었지만 영국에서는 75위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전작의 성공에 비해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공연도 차츰 시들어졌고 마침내 그룹은 그 종착점에 도달하였다. John Taylor는 Duran Duran으로 돌아갔지만 Andy Taylor는 솔로 활동을 위해 Duran Duran에 합류하지 않고 Sex Pistols의 기타리스트였던 Steve Jones와 공동작업에 들어갔다.

디스코그래피
1985 The Power Station 33 1/3 Capitol
1985 The Power Station Capitol
1996 Living in Fear Chrysalis

링크
Fan Page

Gangway

Gangway 는 1982년 코펜하겐에서 결성된 뉴웨이브 밴드다. 이 당시까지 밴드의 실질적인 리더인 Henrik Balling 은 코펜하겐 중심부의 한 대형 백화점인 Illum에서 따분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Allan Jensen 을 만났는데 그는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Gangway의 싱어가 되었다. 밴드의 세 번째 멤버인 드러머 Jan Christensen 은 음악잡지의 멤버 모집 광고를 보고 밴드를 찾아왔다.

1982년 12월 한 학교에서 데뷔 공연을 가졌다. 이당시 밴드명은 Unforced Error 였다. 그러나 Allan 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라디오에서 Julie Andrews 가 “gangway, gangway” 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는 밴드명을 바꿔버렸다.이들의 초기 사운드는 The Cure 나 Echo & The Bunnymen의 영향을 받아 다소 어둡고 묵직하였다.

1983년 Gangway 는 덴마크 전역에서 다른 음악인들과 함께 순회공연을 가졌다. 이해 12월 밴드는 Hookfarm 스튜디오에서 “Half a year went by”의 마스터테잎을 녹음에 착수했다. 1984년 데뷔앨범 “THE TWIST”가 발매되었고 비평가의 호평을 받았다. 이 앨범은 영어로 된 덴마크 뮤지션의 앨범으로는 최초로 덴마크에서 1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다.

1986년 2월 “SITTING IN THE PARK”를 – 놀랍게도 이 앨범은 단 3주 만에 녹음되었다. – 발매했는데 이 앨범에서 그들은 이전 앨범에서 보다 더욱 섬세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앨범에는 그들의 클래식 “My Girl and Me”와 New Musical Express 가 “Single of the week”로 선정한 “Once Bitten, Twice Shy”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87년 “SITTING IN THE PARK (AGAIN!)” 이 발매되었는데 다소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 이전까지 그들의 앨범을 내놓았던 Irmgardz 와의 불화로 인해 밴드는 PolyGram International 과 새로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영미권에 출사표를 내기위해 “SITTING IN THE PARK” 를 내놓고자 했으나 Irmgardz 는 그들에게 마스터테잎을 내놓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영국인 프로듀서 David Motion 와 함께 기존의 곡들에 좀 더 많은 색을 입힌 앨범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SITTING IN THE PARK (AGAIN!)” 이다.

같은 해 폴리그램의 자회사인 London Records 를 통해 “My Girl and Me” 의 새로운 버전이 싱글로 발매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기 회사에서는 Salt’n’Pepa 나 Glenn Medeiros 같은 이들의 히트곡으로 한껏 고양되어 있었기에 그들의 곡에 대한 마케팅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태에 화가 난 폴리그램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밴드는 그만 영미권으로의 진출에 대한 열정이 식고 말았다. 1988년 7월 “Sitting in the Park (Again!)” 이 덴마크에서 발매되었다. 영국에서는 발매되지 않았다.

해외진출이 실패한 뒤 밴드는 매너리즘과 다툼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룹에서 늘상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폴리그램에 Michael Kastrupsen 란 친구가 등장한다. Gangway 의 음악을 아주 맘에 들어한 이 사나이는 1990년 밴드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고 Henrik Balling 이 그동안 쓴 곡들을 녹음하게끔 한다. 마침내 1991년 그들은 “THE QUIET BOY ATE THE WHOLE CAKE” 를 내놓는다. 평론가 Per Juul Carlsen 은 이 앨범에 대해 “밴드의 음악이 너무 좋기에 결코 패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신감과 열정에 차있는 음악”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상업적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실력으로는 영미권의 어느 밴드보다도 뛰어났던 이 덴마크 밴드는 그렇게 자신들의 재능을 상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1980년대를 지내며 90년대까지 꾸준히 활동하다가 1998년 해체하였다. 한편 이들은 2006년 10월 코펜하겐에서 150명의 청중을 위해 깜짝 재결합 공연을
갖기도 했다.

디스코그래피

  • The Twist (1984)
  • Sitting in the Park (1986)
  • Sitting in the Park Again (1988)
  • The Quiet Boy Ate the Whole Cake (1991)
  • Happy Ever After (1992)
  • Optimism (1994)
  • That’s Life (1996)
  • Compendium (1998)

링크

Tom Tom Club

Tina weymouth tom tom club.png
Tina weymouth tom tom club” by dmax3270; David T. McFarlane, Jr. – http://www.flickr.com/photos/mclink/1440807172/.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Tom Tom Club은 뉴욕 펑크씬의 선두주자 Talking Heads의 멤버 Chris Frantz(드럼), Tina Weymouth(베이스) 부부의 싸이드프로젝트 밴드이다. 그룹의 시작은 Frantz 부부가 휴가를 즐겼던 바하마에서 Monty Brown과 Stephen Stanley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넷은 David Byrne과 Talking Heads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스타일의 뮤직을 만들기 위해 뭉쳤다. 로맨틱하고 댄써블한 팝뮤직 스타일을 지향했던 이들은 1981년 데뷔앨범 Tom Tom Club이 골드앨범을 차지했고 이 앨범의 히트싱글 Genius Of Love는 이는 Talking Heads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달성하지 못한 상업적인 성공 사례였다. 그들은 그러나 Talking Heads 활동을 계속해나가면서 Tom Tom Club을 지속시켜 나갔다. 심지어 Talking Heads의 명작 Stop Making Sense의 게스트로써 선보이기도 했다. Talking Heads가 1991년 해산하자 Tom Tom Club이 그들의 주된 활동무대가 되었다.

더 많은 정보

디스코그래피
1981 Tom Tom Club [Sire]
1983 Close to the Bone [Sire]
1988 Boom Boom Chi Boom Boom [Red Eye]
1991 Dark Sneak Love Action [Sire]
2000 The Good, The Bad and the Funky [Rykodisc]
2001 Good Bad Funky [Festival]
2010 Genius of Live
2012 Downtown Rockers

Jackson, Joe

Joe-Jackson3.jpg
Joe-Jackson3” by David Gans – http://www.flickr.com/photos/dgans/1471908742/in/faves-24788065@N02/.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1955년 8월 11일 영국 Burton-upon-Trent 출생
스타일 College Rock, Pop/Rock, New Wave

뉴웨이브 뮤직의 기수로 불리는 Elvis Costello와 Graham Parker 등과 함께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Joe Jackson은 1979년 등장하여 주목할만한 활동을 펼치면서 “뉴웨이브의 Duke Ellington”이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전부터 레게, 빅밴드 시설의 스윙풍의 재즈와 각 나라의 토속적이고 이색적인 음악을 섭렵, 폭넓은 음악적 재능을 닦았다. 매튼온트렌트에서 태어나 포츠마우스에서 자란 그는 11세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몇년 뒤에는 피아노를 독학으로 익혔다. 이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 영국의 왕립음악원에서 정통 작곡 공부를 했고 졸업 후에는 Arms & Legs라는 그룹을 조직하여 활동하는 한편, 데뷔앨범 Look Sharp를 발표했다. 이때가 1978년 초, 반응이 좋자 David Kershenbaum의 주선으로 A&M 사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첫싱글 Is She Really Going Out With Him?이 톱20 히트를 냈고 자신의 밴드를 조직하여 공연에 들어갔다.

이후 1980년 초엔 2집 I’m The Man을, 그 해말엔 3집 Beat Crazy를 발표하고 밴드를 해산했다. 그리고는 스윙콤보 밴드를 이끌고 4집 Jumpin’ Jive를 1981년 6월에, 1년후인 1982년 6월엔 5집 Night And Day를 발표하여 Real Man과 그래미 후보에 오른 Steppin’ Out을 히트시켰다. 그후 그는 1983년의 영화 Mike’s Murder의 사운드트랙을 맡아 기량을 과시했고 1984년에는 6집 Body And Soul을 발표하여 You Can’t Get What You Want를 크게 히트시켰다.

디스코그래피
1979 Look Sharp! A&M
1979 I’m the Man A&M
1980 Beat Crazy A&M
1981 Jumpin’ Jive A&M
1982 Night and Day A&M
1983 Mike’s Murder Soundtrack A&M
1984 Body & Soul A&M
1986 Big World A&M
1987 Will Power A&M
1988 Tucker A&M
1988 Live…1980-1986 A&M
1989 Blaze of Glory A&M
1991 Laughter & Lust Virgin
1994 Night Music Virgin
1997 Heaven & Hell Sony Classical
1999 Symphony 1 Sony Classical
2000 Summer In The City: Live In New York Sony Classical
2000 Night and Day II Sony Classical
2001 Look Sharp! [Bonus Tracks] A&M
2001 I’m the Man [Bonus Track] A&M

링크
Official Site
The Joe Jackson Archive

Love shows that God has a sense of humor – Stranger Than Fiction 가사 중에서

Top 100 Rarest New Wave Records[1-25]

Top
100 Rarest New Wave Records UK Issues 1976 – 1980 as according to
Spiral Scratch
1 – 25

Pos

Title

Artist

Label

Notes

1

God Save The Queen

Sex Pistols

A&M
:

2

Girl From The Snow Country

JJ Burnel

UA

Member of the Stranglers

3

Case of 23 Cassettes

Throbbing Gristle

Industrial Records

4

Untitled

Lentilmas

Virgin

Flexidisc – rumored to have members of the Sex Pistols singing Christmas
Carols. Given to Journalists for Christmas 1977 by Virgin.

5

Peaches

The Stranglers

UA

Promo with sleeve.

6

Songs the Lord Taught Us

The Cramps

Illegal Records

LP white label test pressing with “Drug Train” in place of “TV Set”.
Most tracks are totally different versions. Only 50 made.

7

An Ideal For Living

Joy Division

Enigma

7″ issue.

8

Science Friction

XTC

Virgin

7″ issue with Pic sleeve. 12″ is not rare.

9

Falling and Laughing

Orange Juice

Postcard

Complete with Flexidisc & postcard.

10

Mutant Moments EP

Soft Cell

Big Frock

11

It’s Not Enough

Heartbreakers

Track


12

An Ideal For Living

Joy Division

Anonymous

12″ issue.

13

Chance Meeting on a Dissecting Table of a Sewing Machine & an Umbrella

Nurse With Wound

United Dairies

LP

14

Beware

The Misfits

Cherry Red

Issued as 12″ only.

15

Hethan Earth

Throbbing Gristle

Industrial Records

Blue Vinly. Only 785 copies made.

16

Short Circuit

Various Artists

Virgin

10″ LP, Orange Vinyl issue.

17

Damned Damned

The Damned

Stiff Records

First LP with “hotrod sleeve”.

18

2nd Annual Report

Throbbing Gristle

Industrial Records

LP

19

Short Circuit

Various Artists

Virgin

10″ LP, Yello Vinyl issue.

20

Trouble in the World

The Only Ones

CBS

With Black & Red Picture Sleeve.

21

Blitzkrieg Bop

The Ramones

Sire Records

With Picture sleeve.

22

14th Floor

Television Personalities

Teen 78


23

Stretcher Case Baby

The Damned

Stiff Records


24

Sofa

Various Artists

The Label

The Label compilation 12″ 3D Picture disc.

25

Boys Keep Swinging

The Associates

Double Hip

(Published in July 1989 Issue 7 of Spiral Scratch Magazine.)

Top 100 Rarest New Wave Records[26-50]

Top
100 Rarest New Wave Records UK Issues 1976 – 1980 – According to Spiral
Scratch
26 – 50

Pos

Title

Artist

Label

Notes


26

Tubeway Army

Tubeway Army

Beggars Banquet

1st LP, blue vinyl issue.

27

Factory Sampler EP

Various Artists

Factory Records

Double 7″ set in special silver sleeve, only 5000 made.

28

I’m A Cult Hero

Cult Hero

Fiction Records

The Cure incognito.

29

And Don’t The Kids Just Love It

Television Personalities

Rough Trade

LP


30

Be My Baby

The Drones

Valor

12″ white label pressing, only a few made.

31

Justifiable Homicide

Dave Goodman

The Label

Normal Copies not rare, a few have Paul Cook & Steve Jones (Sex Pistols)
name printed on reverse side, these are rare.

32

We Buy a Hammer For Daddy

The Lemon Kittens

United Dairies

Danielle Dax’s first band.

33

Chance Meeting

Josef K

Absolute Records

Not Postcard label.

34

Don’t Let Go

Seventeen

Vendetta Records

Later Changed their name to The Alarm.

35

Black And White

The The

4AD


36

Down in the Park

Tubeway Army

Beggars Banquet

12″ issue

37

3 Bands Tonite

Directions

Tortch


38

Maffia

DNV

New Pleasures

Features Mike Scott (The Alarm)

39

Why Should it happen To Me

Killermeters

Psycho

with picture sleeve

40

Nasty Nasty

999

UA

Special 78 RPM edition.

41

Do It Dog Style

Slaughter & the Dogs

Decca


42

The Album

Eater

The Label


43

Radio Radio

Elvis Costello

Radar Records

12″ promo only. 7″ not rare.

44

Boys Keep Swinging

The Associates

MCA

Only issued as a promo

45

Capitol Radio EP

The Clash

CBS

7″

46

Running Riot

Cock Sparrer

Decca

Only issued as a promo.

47

Grinding Halt

The Cure

Fiction

12″ promo only.

48

Anarchy in the UK

The Sex Pistols

EMI

Demo issue.

49

Never Mind the Bullocks

The Sex Pistols

Virgin

LP with blank back cover. Free single and poster.

50

Memorabilia / A Man Can Get Lost

Soft Cell

Some Bizzare

7″ & 12″ issues.

Top 100 Rarest New Wave Records[51-75]

Top 100 Rarest New Wave Records UK Issues 1976 – 1980 – According to Spiral Scratch

51 – 76

Pos Title Artist Label Notes
51 10″ promo LP Undertones WEA Numbered Green sleeve, 1000 made.
52 By Your Love Long Tall Shorty Virgin
53 Never Mind the Bullocks The Sex Pistols Virgin 12″ picture disc.
54 I Can’t Stand Up For Falling Down Elvis Costello 2 Tone
55 Birth of a Nation EP Nightmares in Wax Inevitable 7″
56 A Can of Bees Soft Boys Two Crabs LP, original issue.
57 Germ Free Adolescents X-Ray Specs EMI
58 Pieces Modern Eon Eon Records 7″ EP.
59 Index Felt Shanghai
60 Gadgetree Gadgets Final Solution
61 All The Boys Love Carrie Another Pretty Face New Pleasures
62 Take Three EP B-Movie Dead Good 7″ EP
63 Bela Lugosi’s Dead Bauhaus Small Wonder White Vinyl, Original not re-issue.
64 Dark Entries Bauhuas Beggars Banquet
65 I’m Falling Dead or Alive Inevitable
66 Yodlling Exits Way Out
67 Wild Youth Generation X Chrysalis Mis-pressing of “No No No” on B-side.
68 It’s Kinda Funny Josef K Postcard Records With 7″ paper insert.
69 Spoonfed and Writhing Lemon Kittens Step Forward Danielle Dax’s first band.
70 East Sheen O’ Level Psycho Version with drawing of a boy taking a test on sleeve.
71 Close Up The Outsiders Raw Edge
72 Give it to The Soft Boys The Soft Boys Raw 7″ EP.
73 Love Poisoning The Soft Boys Bob Records Free single from “Bucketfull Of Brains” magazine.
74 Split Single UK Decay / Pneumania Plastic 1 band on each side of record.
75 Physical World EP The Sound Tortch

Top 100 Rarest New Wave Records[76-100]

Top 100 Rarest New Wave Records UK Issues 1976 – 1980 – According to Spiral Scratch
76 – 100
Pos Title Artist Label Notes
76 Murder of Liddle Towers The Angelic Upstarts Angelic Upstarts
77 Nowhere Girl B-Movie Dead Good 12″ issue
78 Our Wedding Crass (Joy De Vivre) ——- White Flexidisc
79 Radio Drill Time Josef K Postcard Records With hand colored poster sleeve.
80 Hong Kong Gardens Siouxsie & the Banshees Polydor Gatefold sleeve.
81 Blue Boy Orange Juice Postcard Records Hand colored poster sleeve.
82 Calling on Youth The Outsiders Raw Edge
83 The Black Album The Damned Chiswick Original double LP set.
84 Withdrawl Unwanted RAW With picture sleeve.
85 Further Temptations The Drones Valor
86 I Think We’re Alone Now Lene Lovich Stiff Japanese vocals, not english.
87 Moving Away From The – Pulse Beat Buzzcocks UA One sided promo
88 Fever The Cramps Illegal Records With Un-issued sleeve
89 Killing An Arab The Cure Small Wonder Not Fiction Records version.
90 Sonic Reducer Dead Boys Sire Records 12″ single
91 Return of the Durutti Column Durutti Column Factory With Sandpaper sleeve plus flexi.
92 The Unconventional Japan Ariola
93 Whispering Voices Last Exit (Sting) Wudwink
94 Drowning Man Modern English Limp
95 (Oh No It’s) More From Raw Various Artists Raw
96 Roxanne The Police A&M Both 7″ & 12″ issue’s with ‘Phone’ sleeve.
97 Metal Box Public Image Virgin 3 45RPM 12″ records issued in a 12″ metal film canister.
98 Goodbye Girl Squeeze A&M Special 3D ‘Muscle Man’ pac.
99 Crossing the Red Sea The Adverts Bright Original red vinyl issue.
100 Spiral Scratch EP Buzzcocks New Hormones Original issue.

Crowded House

Crowded-house1.JPG
Crowded-house1” by Andwhatsnext, aka Nancy J Price – http://andwhatsnext.com/band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72년 Brian Timothy Finn, Phil Judd, Mike Chunn, Miles Golding, Mike Howard는 New Zealand에서 Split Enz를 조직했다. Finn과 Judd의 주도아래 그들은 서서히 인기를 얻어갔다. 이들의 음악에 매료된 Roxy Music의 Phil Manaznera는 그들을 London으로 데려가서 녹음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룹이 지속된 12년 동안 그들은 몇몇 히트곡을 보유하게 되었고 원래의 라인업은 대폭 교체되었다. 교체멤버 중에는 후에 Crowded House의 주축멤버가 된 드러머 Paul Hester와 Neil Finn(Tim Finn의 형제)이 포함되어 있었다. 1985년 Neil Finn과 드러머 Paul Hester는 베이시스트 Nick Seymour와 함께 새로운 그룹 Crowded House를 조직했다. 이듬해 그들은 셀프타이틀 앨범을 내놓았다. 이앨범에서는 Something So Strong과 Don’t Dream It’s Over가 크게 히트했고 마침내 1987년 2월 이 앨범은 미국차트 탑40에 진입하여 마침내 12위까지 진입하였다.

* 놀랍게도 Split Enz의 바이오그래피 Stranger Than Fiction 전권을 스캔해놓은 페이지가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6 Crowded House Capitol
1988 Temple of Low Men Capitol
1991 Woodface Capitol
1993 Together Alone EMI-Capitol
1998 Woodface [UK Bonus CD] E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