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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Club / Colour By Nu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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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ClubColourByNumbersAlbumcover” by Scan.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는 마이클 매니아와 함께 ‘모타운 소울’의 부활을 몰고왔다. 대서양 저편의 영국가수들도 즉각 소울풀한 노래가 현재 팝계에서 가장 잘 먹힐 수 있는 스타일임을 간파했다. 보이 조지의 컬처클립, 유리스믹스, 왬 등이 모타운식 소울을 내걸며 미국 침공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역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팝음악의 주류 또한 뉴로맨틱 무브먼트의 신시사이저 팝에서 ‘팝화된 소울’로 넘어갔다.그중 컬쳐클럽(Culture Club)은 마이클 잭슨의 바로 뒤를 이어 <<드릴러>>와 인기 정상을 바톤터치한 그룹이었다. 음반 <<컬러 바이 넘버즈>>(Colour by numbers)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룹의 상징인 보이조지(Boy George)는 “뉴스위크”지의 표지인물로 등장했다. 스스로 ‘성의 개척자’ 임을 자부한 그는 여장차림과 인형과도 같은 ‘미모’로 이해 84,85년 매스컴의 표적이 되어 집중적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다. 그만큼 그와 컬터 클럽에게는 비디오적 측면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다.그 시절이 ‘오디오 + 비디오’의 이른바 AV시스템이 지배한 시대였음을 누구도 그들만큼 잘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는 비디오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동시대 뮤지션 프린스를 “공중머리의 통으로 떨어진 난쟁이 같은 인물”이라고 비아냥댔고 마돈나를 두고 “마릴린 먼로에 그녀를 비교하는 것은 소피아 로렌과 버스의 후미(後尾)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비고기도 했다.그들의 음악을 “타임”지는 ‘모든 팝음악을 집어넣은 포켓’으로 설명했다. 여러 음악의 영향을 골고루 흡수해 그들만의 것으로 빚어냈다는 지적이었지만 그 음악 성격은 때로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재창조 차원이 아닌 모방, 즉 ‘표절’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한 보이 조지의 주장 또한 당당했다. “표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휘중의 하나다. 컬처 클럽은 현대음악에 있어서 표절의 가장 진지한 형태이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임을 실증하듯 그들의 표절행위는 ‘발군의 재해석’으로 나타났다.보이 조지는 <그것은 기적>(It’s a miracle)의 경우 버트 오설리반의 곡 멜로디를 빌어왔다고 자인했다. 이밖에 <사악한 정신의 교회>(Church of the poison mind)는 스티비 원더의 <초조한>(Uptight) 과 유사했고 <숙명의 변덕자>(Karma chameleon)는 제임스 테일러의 <편한 남자>(Handy man)을 연상시켰으며 <그런거야>(That’s the way)는 엘튼 존 노래풍이었다. 보이 조지는 컬처클럽의 음악을 한마디로 ‘이미테이션 소울'(imitation soul)이라고 칭하기도 했다.이같은 후안무치의 비도덕적 행각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우수작으로 인정받는 의외의 성과를 올렸다. “타임”지는 이 음반을 84년 팝 베스트 10앨범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가벼운 팝소울을 선호한 시대의 혜택이 그만큼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컬처 클럽은 “우리는 훌륭한 공식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그룹들은 분명그것에 착상하여 성공했다. 틀림없이 왬(Wham!)이 그러했다.”며 자신들의 지대한 영향을 강변했다. 그 공식이 무엇이든 간에, 또 후세에 어떤 영향을 미쳤든지 간에 그들은 유행 음악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86년 이후 인기가 급전직하, 이듬해 해산을 선언하고 말았다.보이 조지는 93년 영화 ‘크라잉 게임’의 주제가를 히트시키기까지 재기하는 데 7년 이상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Style Council,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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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yle Council” by http://www.chic-a-boom.com/pics/stylecouncil.jpg, Copyright : Polydor, Ltd. (UK), 1988. Licensed under Wikipedia.

1983년 결성하고 1990년 해체했다. 멤버는 Mick Talbot, Paul Weller, Dee C. Lee, Steve White 등이다. 키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Paul Weller는 80년대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였던 The Jam을 해산하였다. 그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82년에 그룹이 해산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폴웰러가 그룹의 음악적 방향에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웰러는 그의 작품에 soul, R&B, jazz 등의 요소를 집어넣기를 원했다. 이러한 음악적 방향을 달성하기 위해 그는 1983년 모드 리바이벌 밴드인 the Merton Parkas 출신의 키보드 주자인 Mick Talbot와 함께 Style Concil이라는 팀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추구하는 음악에 따라서 여러 뮤지션들이 가세하였다. 비록 음악적 뿌리는 미국의 R&B였지만 음악의 구성은 씬써싸이저와 드럼머쉰을 사용하였고 유럽적인 음악 스타일로 여과되었다. 좌익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폴의 가사는 인종주의, 마가렛 대처, 성차별주의 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

디스코그래피
1983 Introducing the Style Council
1984 My Ever Changing Moods
1984 Cafe Bleu
1985 Internationalists
1985 Our Favourite Shop
1986 Home & Abroad [live]
1987 Cost of Loving
1988 Confessions of a Pop Group
1989 The Singular Adventures of The Style Council
1998 The Complete Adventures of The Style Council

링크
참고싸이트
The Jam, The Style Council and Paul Weller
Fan Site

Simply 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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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 Hucknall singing” by Simplyred Ltd – Simplyred.com. Licensed under CC BY-SA 2.5 via Wikimedia Commons.

웬지 Soul, R&B 는 영국과 안어울릴 것같은 인상이지만 – 어느 분이 말씀하시다시피 추위를 많이 타는 보일러 수리공처럼 – 의외로 영국쪽에도 그쪽 계열로 괜찮은 그룹이 꽤 되고 바로 지금 소개하는 Simply Red 역시 영국 Soul을 이야기할때 빼놓아서는 안되는 그룹이다. 싱어 Mick “Red” Hucknall(가운데 별명을 집어넣는 것은 꽤 오래된 흑인음악 아티스트들의 전통[?])을 중심으로 1984년 결성된 이들은 Elektra 레코드사를 통해 데뷔앨범 Picture Book(1985년 10월)을 내놓았다. 이 앨범에서는 The Valentine Brothers가 오리지날인 “Money’s Too Tight (To Mention)”의 커버와 “Holding Back The Years”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에 힘입어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하게 되었다. Hucknall이 Soul 작곡가 Lamont Dozier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발표한 Men and Women(1987년)은 전작에 비해 많은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이 앨범에서는 “The Right Thing”이라는 커버곡이 인기를 얻었다. 그 해 키타리스트 Richardson이 그룹을 떠났고 Aziz Ibrahim이 그 자리를 채웠다. 세번째 앨범 A New Flame(1989년 2월)은 또다시 선보인 커버버전 “If You Don’t Know Me By Now”(Harold Melvin and the Blue Notes 의 ’72년 히트곡)가 크게 히트한 덕분으로 골드앨범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네번째 앨범 Stars(1991년 9월)을 낼 즈음, 또다시 몇명의 멤버가 탈퇴하였고 앨범 역시 미국에서는 상업적으로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나 그외 지역에서는 빅히트를 하였는데 특히 영국에서 앨범은 19주간 탑에 머물렀고 “Stars”, “For Your Babies”, “Something Got Me Started”, “Thrill Me”, “Your Mirror” 등이 연속적으로 히트하였다. 이후 지속적인 멤버교체속에서도 5집 Life가 1995년 발매되었는데 또다시 미국에서보다는 영국 등 유럽에서 크게 사랑받았다. 이후에도 이들은 지속적인 앨범 작업을 통해 그들의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참 상투적인 표현입니다만…)

디스코그래피
1985 Picture Book Elektra
1987 Men & Women Elektra
1989 A New Flame Elektra
1991 Stars East West
1995 Life East West
1998 Blue East West
1999 Love & The Russian Winter East West
2001 It’s Only Love Wea

링크
Official Site

S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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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e in boston“. Licensed under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나이지리아 국적의 아버지와 영국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난 Sade Adu(본명 Helen Folesade Adu)는 유아시절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나이지리아에서 런던으로 옮겼다. 비주얼아트를 공부했던 그녀의 열정은 패션디자인보다는 음악에 집중되어 있었다. 80년대에 그녀는 째즈그룹 Pride에서 음악경력을 시작했다. 80년대 중반 Stuart Matthewman, Andrew Hale, Paul S Denman, Sade Adu로 구성된 Pride는 이름을 Sade로 바꿔버렸다.

1984년 Sade의 첫싱글 Your Love Is King은 유럽과 북미에서 호평을 받았다. 1985년 내놓은 데뷔앨범 Diamond Life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전체적인 음악풍은 쏘울풀하면서도 째즈에 영감을 받은 스타일로 대부분의 곡이 Sade와 그녀의 밴드멤버들이 작곡한 것이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앨범에 수록된 Smooth Operator는 국제적인 히트를 기록하였고 그 해 Grammys 어워드에서는 그룹이 Best New Artist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Sade는 이어 후속앨범 Promise를 내놓았고 싱글 The Sweetest Taboo가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그룹은 Style Council, Ray Davies, Jerry Dammers, 그리고 David Bowie 등이 참여한 영화 Absolute Beginners의 싸운드트랙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2년 그들은 Love Deluxe를 발표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4 Diamond Life [Epic]
1985 Promise [Epic]
1988 Stronger Than Pride [Epic]
1992 Love Deluxe [Epic]
2000 Lovers Rock [Epic]

링크
Fan Page

Rockwell

강박증 환자가 불렀음직한 노래 “Somebody’s Watching Me”가 발표되었을 때 정작 곡 자체보다는 ‘코러스 부분에 Michael Jackson이 참가했다’, ‘Rockwell이 Motown 레코드사의 창립자인 Berry Gordy의 아들이다’ 와 같은 가쉽이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사실들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본인도 이러한 사태를 미리 예견하였는지 이름을 아예 Rockwell – 그의 고등학교 시설 밴드의 이름이었다 한다 – 로 바꿔버렸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음악 그 자체로 평가받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 하다. 사실 그는 그의 아버지도 모르게 Motown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첫 싱글 “Somebody’s Watching Me”는 앞서 말했듯이 Micael Jackson이 코러스로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던 곡이다. 마치 트왈라잇존의 주제음악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멜로디와 Rockwell의 강박적인 읊조림, 하이톤의 후렴구가 묘한 조화를 이룬 이 싱글은 싱글차트에서는 탑텐을, R&B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뒤이은 발라드 Knife가 커다란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팝팬들의 정서에 맞는 가요 스타일의 멜로디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비슷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를 얻었던 곡으로는 Falco의 Jeanny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성공가도는 여기까지였다. 뒤이은 싱글들은 외면을 받았고 앨범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One Hit Wonders의 일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디스코그래피
1984 Somebody’s Watching Me [Motown]
1985 Captured [Motown]
1986 The Genie [Motown]

링크
Somebody’s Watching Me 비디오 리뷰

Pr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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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at Coachella 001” by Micahmedia at en.wikipediaOwn work (Original caption: “I created this work entirely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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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Prince, O(+>, TAFKAP, The Artist formely known as Prince, The Artist
본명 : Prince Roger Nelson (later Prince Rogers Nelson)
생년월일 + 고향 : June 7, 1958 in Minneapolis, MN, USA

프린스와 섹쓰는 그 자체로 자웅일체처럼 느껴진다. 그의 다인종적인 외모와 퍼플레인 시절의 연보라색의 화사한 의상의 결합은 그야말로 그만의 섹쓰 왕국의 프린스의 모습 그 자체였다. 물론 I would die for you같은 노래에서는 섹쓰가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지만 그건 그가 때로는 다른 것도 생각한다는 말이지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Sheila E, Vanity, The Revolutions를 거느렸던 이 왕자는 그의 신하들을 음악계 곳곳에 배치시켜 80년대 흑인음악에 프린스표 음악을 유포하였다. Sheila E의 Glamorous Life나 Chaka Khan의 I Feel For You는 챠트를 뒤흔들며 프린스의 음악이 얼마나 대중에게 흡입력이 있는가를 증명해주었다.

성(性)을 주요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마돈나와 비교할 수 있는 그는 백인 취향의 건전한 음악을 생산해냈던 마이클잭슨과는 마치 음악계의 마틴루터킹과 말콤엑스같은 지형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80년대 흑인 음악의 무협지를 읽는 듯한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Bio from 오이뮤직

” 실험정신과 선정성의 결합, Prince ”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와 흑인들의 전유뮬로 여겨졌던 소울 음악이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가를 증명해 보인 뛰어난 음악인 프린스. 혹자들로 부터 같은 58년 생인 마이클 잭슨과 함께 흑인 음악의 진정성을 백인들에게 팔아먹은 이단아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는 분명히 20세기 말 등장한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 가운데 한 명이다.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등 다양한 악기에 고루 능한 멀티 뮤지션이기도 하고 그에 앞서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이다. 시대를 앞선 음악성으로 인해 비난과 외면을 당했으나 ’84년의 [퍼플 레인] 사운드 트랙이 영화의 성공과 별개로 히트를 기록해 그는 새삼 재조명 받기에 이르렀다. 타이틀 트랙 외에 ‘When Doves Cry’, ‘I Would Die 4 U’ 등이 연이어 히트했고 앨범 자체도 천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해 다이아먼드 레코드를 수여 받았다. 실험정신과 선정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음악 세게는 사실 그가 미네소타 주의 중산층 출신이라는 치명적인 결점으로 말미암아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그는 쾌락과 예술 두가지를 추구하지만 열정과 젊음이 지나친 다작과 방종 그리고 절제의 부족으로 식어 들어가 NPG와의 활동 시작 이후 그의 음악이 지니는 에술적 가치와 대중적 인기가 고루 하강 곡선을 기록했다. [Love Sexy] 앨범을 통해 자신의 누드를 파격적으로 공개하기도 했으나 고향 미네소타 주 몇몇 음반 소매상들은 그의 앨범을 진열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89년 5월 9일의 일이다. 프린스는 [워너]를 통해 ’96년까지 활동했는데 레이블과의 불화로 스스로의 뺨에 노예(slave)라고 새기고 다니기도 했으며 자기 이름을 부정해 스스로를 남성과 여성의 상징을 조합해 만든 이상한 기호 뒤로 은폐해 결국 TAFKAP(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라 불리기도 했다. 소속사를 BMG로 옮기면서 [Emancipation(해방)]이라는 타이틀의 3CD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적 이후 발표한 [Rave Un2 The Joy Fantastic]은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난 속에 발매된 지 2년도 안 되어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 그는 요즘 디지털 시대에 힘 입어 인터넷 상에서 신곡을 발표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78 For You
1979 Prince
1980 Dirty Mind
1981 Controversy
1982 1999
1984 Purple Rain
1985 Around The World In A Day
1986 Parade
1987 Sign O’The Times
1988 Lovesexy
1989 Batman
1990 Grafitty Bridge
1991 Diamonds And Pearls
1992 o( + >
1993 Gold Nigga
1993 The Hits / The B-Sides
1994 1-800-New-Funk
1994 Come
1995 Exodus
1995 The Gold Experience
1996 Girl6
1996 Chaos And Disorder
1996 Emancipation
1998 Crystal Ball
1998 The Truth
1998 Kamasutra
1998 New Power Soul
1999 The Vault… Old Friends 4 Sale
1999 Rave Un2The
1999 Crystal Ball [Limited Edition]
2001 The Beautiful Experience [Bellmark]
2001 The Rainbow Children
2002 One Nite Alone…Live!
2004 Musicology
2004 The Chocolate Invasion
2004 The Slaughterhouse
2006 3121
2007 Planet Earth
2009 Lotusflow3r
2009 MPLSound
2010 20Ten
2014 Plectrumelectrum
2014 Art Official Age
2015 HITnRUN Phase One
2015 HITnRUN Phase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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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 프린스 게시판
드림위즈 Prince 소개
Online Fan Community

Jackson,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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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gans with Michael Jackson” by White House photo by Jack Kightlinger – [1].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80년대 팝의 황제로 등극해 여전히 자신의 입지를 지키고 있는 Michael Jackson(본명: Michael Joseph Jackson)은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 州 Gary에서 태어났다. 그는 총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Joe Jackson은 The Falcons라는 무명 로컬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어머니 Catherine Jackson은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MIchael Jackson은 물론 Jackson 家의 다섯형제로 결성된 The Jackson 5도 아버지 Joe에 의해 결성된 것으로, 이들의 아버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자식들을 음악인으로 키우기 위해 혹독을 훈련을 시켰다.

모타운(Motown) 레코드사에서 활동하던 The Jackson 5에서 가장 재능 많은 소년으로 인정 받은 MIchael Jackson은 71년 첫 솔로 앨범 [Got to Be There]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이 앨범에서 71년 ‘Got to Be There’가 1위를 기록하며 히트했고, 뒤이어 같은 앨범의 수록곡 ‘Rockin’ Robin’과 ‘Ben’이 72년 히트를 기록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70년대 초 Jackson과 The Jackson 5의 운도 서서히 쇠퇴해 갔다. 그리하여 이들은 70년대 중반 모타운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에픽(Epic)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하며, Michael은 자신의 솔로 활동을 단념하고 The Jacksons로 개명한 자신의 형제 그룹에만 충실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으로 The Jacksons는 다시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게 되며, Michael Jackson은 79년 당시 최고의 프로듀서 Quincy Jones를 만나게 되면서 솔로로서 앨범 [Off the Wall]을 발표하게 된다. Quincy Jones 후원으로 이 앨범에는 David Foster, Stevie Wonder, Patti Austin 등과 같은 최고의 뮤지션들이 참여해 앨범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 줬다. 그리고 맑은 음성을 소유한 소년에서 변성기를 거친 청년으로 성장한 Michael Jackson은 이 앨범을 통해 ‘Don’t Stop ’til You Get Enough’와 같은 댄스곡과 감성적인 발라드 ‘She’s Out of My Life’와 같은 곡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앨범은 이전의 솔로 시절이나 The Jackson 5 시절보다 더욱 많은 앨범 판매고를 기록, 차트 10위 권내에 4곡을 진입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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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son 5 tv special 1972” by CBS Television. Original uploader was We hope at en.wikipedia – Transferred from en.wikipedia; transferred to Commons by User:We hope using CommonsHelper.
(Original text : eBay item photo front
photo bac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그러나 Michael Jackson은 형제들을 저버리지 않고 다시 The Jacksons와 함께 앨범을 레코딩했으며, 공연했다. 그리고 82년 그의 최대 히트작이자 역사적인 앨범 [Thriller]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2000년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래미 어워드의 최다 부문 수상작이었다. 물론 2000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Santana가 역시 8개 부문을 수상했음으로 아직 동등한 기록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 Santana가 9개 부문을 수상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Michael Jackson으로서는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 법하다. 아무려나 [Thriller]는 역사적인 앨범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미국 내에서만도 2천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앨벌 수록곡 9 곡 중 무려 7 곡이 차트 10위 권내에 진입하는 기록을 낳기도 했다.

말할 것도 없이 Michael Jackson은 더 이상 형제들의 도움이 필요없을 만큼 팝계의 제왕으로 떠올랐으나 그는 84년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앨범을 발표하고 또 투어를 계속해 나갔다. 연이어 85년 그는 Lionel Richie와 공동으로 작곡한 ‘We Are The World’로,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모금 앨범인 [USA For Africa]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87년에는 새로운 솔로 앨범 [Bad]를 발표, ‘J Just Can’t Stop Loving You’, ‘Bad’, ‘The Way You Make Me Heel’과 같은 곡을 히트시키며, 미국 내에서 6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 5곡을 차트 1위로 올려 놓기도 했다. 이 앨범을 통해 Michael Jackson은 거장 Martin Scorsese와 함께 17분에 이르는 뮤직 비디오를 제작해 이목을 끌었으며, 88년에는 자서전 ‘Moonwalk’를 발간했다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91년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의 창시자 Teddy Riley가 프로듀싱한 앨범 [Dangerous]로 다시 돌아온 Michael Jackson은 ‘Black And White’, ‘Remember The Time’, ‘In The Closet’, ‘Jam’을 히트시키며 4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특히 ‘Black Or White’는 120만 달러를 투자해 뮤직 비디오로 제작돼 화제를 낳았으며, 그는 MTV로부터 ‘King Of Pop’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한다. 이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Michael Jackson은 92년 7월 유럽을 시작으로 93년까지 계속되는 두번째 세계 투어를 갖게 됐으며, 94년 가을에는 Elvis Presley의 딸 Lisa와 결혼한다.

그러나 인기가 따르면 그 만큼의 루머(사실이든 아니든)가 따르듯 Michael Jackson은 성추행범으로 고소를 당하는 고역을 치뤄냈으며, 95년 원기회복하여 솔로 더블 앨범 [History]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이미 발표했던 히트곡 15곡과 신곡 15곡이 수록됐으며, 여동생 Janet Jackson과 함께 한 뮤직 비디오에 4백만 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tube music

디스코그래피
1972 Got to Be There Motown
1972 Ben Motown
1973 Music and Me Motown
1975 Forever, Michael Motown
1979 Off the Wall Epic
1982 Thriller Epic
1987 Bad Epic
1992 Dangerous Epic
2001 Bad [Bonus Tracks] Sony
2001 Thriller [Bonus Tracks] Sony
2001 Dangerous [Remastered] Sony
2001 Off the Wall [Bonus Tracks] Sony
2001 Invincible Epic

링크
Official Site

Hall & O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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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 & Oates” by Gary HarrisFlickr: Hall & Oates.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홀 앤 오츠는 60년대 말 결성된 미국 출신의 듀오이다. 대릴 홀(Daryl Hall)과 존 오츠(John Oates)의 성을 딴 이름으로 부드럽고 쉬운 멜로디를 내세워 74년 첫 번째 히트 이후로 80년대에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소울의 전통에 뉴 웨이브와 하드 록을 접목시킨 이들의 음악은 매우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67년 대학에서 처음 만난 홀과 오츠는 이내 같이 연주를 시작하였다. 68년 오츠가 학교를 옮기는 바람에 잠시 헤어졌던 이들은 이듬해인 69년 오츠가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오면서 재결합했고 홀이 작곡한 포크에 바탕을 둔 음악을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Whole Oates](72), [Abandoned Luncheonette](73), [War Babies](74) 앨범을 통해 자신들만의 음악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한 이들은 아리프 마딘(Arif Mardin), 토드 룬드그렌(Todd Rundgren) 등의 프로듀서와 함께 일하면서 바탕이 되었던 포크적인 색채를 배제하였다.74년 봄 ‘She’s Gone’이 차트 60위에 올랐다. RCA로 옮긴 75년 이후 이들은 소울과 팝, 록을 혼합한 스타일의 곡 ‘Sara Smile’을 10위 권에 올려놓았다. 이 곡의 성공과 함께 ‘She’s Gone’이 재발매되어 역시 10위 권에 진입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76년 발매된 [Bigger Than The Both of Us](76)에서는 ‘Rich Girl’이 정상을 차지했다.

이후 80년까지 4년간 이들은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좀더 도전적으로 록의 요소를 음악에 도입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거두어 [Voices](80) 앨범은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이들 최고의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라이쳐스 브라더스(Righteous Brothers)의 커버곡 ‘You’ve Lost That Lovin’ Feeling’이 차트 12위에 올랐고 후속곡 ‘Kiss on My List’는 두 번째로 정상을 차지한 곡이 되었다.재빨리 발표한 [Private Eyes](81)에는 차트 정상을 차지한 두 곡인 ‘Private Eyes’와 ‘I Can’t Go for That (No Can Do)’가 수록되어 있다.

다음해에 발매된 [H2O](82)는 이들의 최대 히트곡인 ‘Maneater’를 배출하며 전작들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2년만에 발표한 [Big Bam Boom](84)에서는 ‘Out of Touch’가 이들의 1위 행진을 이어갔다. 라이브 앨범을 발매한 후 휴식기에 들어간 이들은 88년 다시 모여 [Ooh Yeah!](88)을 발표했으며 ‘Everything Your Heart Desires’가 차트 3위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Change of Season](90)은 이제 이들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앨범이었고 이들은 또다시 휴식기에 들어갔다.7년만에 발매한 [Marigold Sky](97)는 어정쩡한 소울 음악 혼합물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평을 받았을 뿐이었다. 백인이 구사하는 소울 음악으로 정평이 나있던 이들은 소울적인 감성을 잘 살려내었던 많지 않은 백인 뮤지션들로 인정받고 있다.

changgo.com

디스코그래피
1972 Whole Oates
1973 Abandoned Luncheonette
1974 War Babies
1976 Daryl Hall & John Oates
1977 Bigger than the Both of Us
1977 No Goodbyes
1977 Beauty on a Back Street
1977 Past Time Behind
1978 Livetime
1978 Along the Red Ledge
1979 X-Static
1980 Voices
1981 Private Eyes review
1982 H2O
1984 Big Bam Boom
1985 Live at the Apollo
1988 Ooh Yeah!
1990 Change of Season
1997 Marigold Sky

링크
Official Site

DeBarge

Jackson 5 와 같은 가족그룹으로 어렸을 적부터 훈련받아서 성공한 80년대 그룹 중 또 한 가족이 DeBarge 이다. 비록 Jackson 5 에 필적하는 인기를 누리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몇몇 히트곡을 냈고 멤버들의 솔로캐리어도 어느 정도 의미가 있었다.

DeBarge는 네 명의 남자 형제(Eldra, Mark, James, Randy)와 한 명의 여자 형제(Bunny)로 구성된 5인조로 1978년 정식으로 결성되었다. 이 그룹은 Jacksons가 계약을 맺었던 모타운 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Eldra 의 감미로운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이들은 1981년 데뷔앨범 The DeBarges를 내놓았지만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1982년 내놓은 두 번째 앨범 All This Love는 골드디스크에 오르는 성공작이었고 히트싱글 “I Like It”, “Time Will Reveal” 등을 배출해냈다.

1983년의 세 번째 앨범 In a Special Way역시 골드디스크가 되었다. “Love Me in a Special Way”가 싱글로 큰 인기를 얻었고 이 여세를 몰아 Luther Vandross와 함께 합동공연에 나서기도 했다.

여러 걸출한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은 1985년의 네 번째 앨범 Rhythm of the Night은 그룹에게 세 번째 골드앨범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타이틀트랙인 “Rhythm of the Night”은 그룹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되었고 영화 The Last Dragon에 삽입곡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Who’s Holding Donna Now?”, “You Wear It Well” 등이 싱글커트되어 인기를 얻었다.

1986년 히트곡 모음집을 내놓은 그룹은 El DeBarge의 솔로전향으로 순항에 제동이 걸렸다. 둘로 갈라진 가족은 이전과 같은 인기를 얻는데 실패했고 El이 없는 DeBarge는 1987년 Back on Track을 내놓고 2년 후 해체되었다. 이 기간 동안 다른 형제들도 나름의 솔로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디스코그래피
1981 The DeBarges [Motown]
1982 All This Love [Motown]
1983 In a Special Way [Motown]
1985 Rhythm of the Night [Motown]
Back on Track [Truth]
Debarge Family [Light]


링크
DeBarge Central
Lyrics

Culture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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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club+tour” by http://web.swedevice.com/sistergeorge/collectibles/tour-programmes.asp. Licensed under Wikipedia.

결성 : 1981년 영국 런던
해체 : 1986년
멤버 : Boy George, Mikey Craig, Roy Hay, Jon Moss, John Suede

Culture Club은 80년대 초반 가장 인기있는 뉴웨이브 그룹이었다. 컬춰클럽은 7개의 UK 히트곡과 6개의 US 히트곡을 기록하며 80년대 초반을 그들의 시대로 만들었다. 이들의 첫 히트싱글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는 소울에 기반을 둔 뉴웨이브 곡으로 뉴웨이브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준 곡이다. 리드싱어 Boy George(b. George O’Dowd, 1961년 6월 14일 생)의 파격적인 여장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며 뉴웨이브 밴드들의 파격의 한 이정표가 되었다(지금도 기억나는게 김광한의 팝스라는 프로에서 신인밴드 컬춰클럽을 소개한다면서 여성 1명과 남성 3명으로 구성된 혼성밴드라고 소개하던 멘트가 귀에 선하다) 순탄하게 인기가도를 달리던 컬춰클럽은 1986년 리드 싱어 보이조지의 약물중독으로 말미암아 파경의 길을 걷게 된다.

디스코그래피
1982 Kissing to Be Clever
1983 Colour by Numbers
1984 Waking Up with the House on Fire
1986 From Luxury to Heartache
1998 VH-1 Storytellers/Greatest Moments [live]
1999 Don’t Mind If I Do

링크
드림위즈 Boy George 소개
Global Culture Club
Official Site
Very Boy Geor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