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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Michael: 제조업화된 음악 산업 내에서의 보기 드문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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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iversity of Houston Digital Library – http://digital.lib.uh.edu/u?/p15195coll6,268, Public Domain, Link

(원문 보기)

편집자 노트 : Clay Cane 는 “Live Through This: Surviving the Intersections of Sexuality, God, and Race,”의 저자이다.

2016년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또 한방 먹었다. 조지 마이클이 53세의 나이로 심장 질환으로 보도된 원인으로 인해 갑자기 세상을 등졌다. 소셜미디어는 그의 히트곡들 “Father Figure,” “Faith”, “Praying for Time” 등으로 그를 회상하느라 북새통이 되었다. 조지 마이클은 신과도 같은 목소리, 뛰어난 작곡 능력, 죽이게 잘 생긴 얼굴의 팝스타 이상의 인물이었다.

Georgios Kyriacos Panayiotou 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조지는 음악이 인종적으로 분리되고 주류의 문화가 가혹할 정도로 반(反)동성애적인 시절에 유명세를 얻은 백인, 남성, 동성애자, 쏘울 가수였다. Justin Timberlake, Robin Thicke, Sam Smith 그리고 많은 다른 이들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마이클처럼 이들도 팝 가수들이 아니다. 그들은 R&B 가수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백인이기 때문에 “팝”으로 분류되고 있다.

R&B를 부르는 백인 가수가 된다는 것의 특혜는 — 또한 지겨울 정도로 팝음악 방송에서 틀어대는 — 종종 음악 산업에서 인지를 못하곤 한다. 음악에는 언제나 깊은 차별이 존재하였다. 음악 산업은 Billie Holiday, Dinah Washington, John Lee Hooker 와 같이 레이블을 부자로 만들어주지만 그들 자신은 몇 푼밖에 쥐지 못하는 “인종 레코드”로부터 구축됐다. 한편 Pat Boone 또는 Elvis Presley와 같은 백인 아티스트들은 원래 흑인 아티스트들이 부른 노래를 불러대며 몇 백만 달러를 벌었다. R&B 싱글 차트조차 1982년부터 1990년까지 기이하게도 “Hot Black Singles”라고 이름 붙여졌다.

“흑인”음악과 “백인”음악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Prince, Michael Jackson, Whitney Houston이 깨부쉈다. 조지 마이클은 R&B에서 찾아낸 또 하나의 백인 아티스트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쏘울 사운드”를 만들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다. 그는 노력하지 않고도 쏘울풀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에게 씌워졌던 비난처럼 문화적으로 남용하려는 흔적은 전혀 없었다. 그는 “도시의 여장자(urban drag)”에 있지도 않았고 흔치 않은 흑인 프로듀서와 계약을 맺지도 않았다. 그는 다른 흑인 아티스트들처럼 – 말년의 Teena Marie처럼 – 쏘울풀했을 뿐이다.

1988년 조지 마이클은 빌보드의 “탑 블랙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백인 아티스트가 됐다. 또한 “One More Try”로 “블랙” 차트에서 1위를 마지막으로 차지했는데, (이제는 Hot R&B/Hip-Hop Songs로 이름이 바뀐) 그 다음 백인 아티스트는 2007년 “Lost Without U”를 부른 로빈 티클이다. 1980년대의 흑인 커뮤니티에게 조지 마이클은 프린스나 Janet Jackson처럼 그들의 사운드트랙이었다. 더욱이 그는 흑인다움을 연기하지 않은 자생적인 아티스트이자 싱어이자 작곡자이자 프로듀서였다. 이는 영감과 적절함의 차이다.

조지 마이클의 명성은 LGBT 커뮤니티에게 가장 소름끼치던 그 시기에 다시 한 번 찾아온다. AIDS 위기. 잘 알려져 있다시피 Ronald Reagan은 이미 수십만 명의 사람이 이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두 번째 임기의 말까지 AIDS 위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슬프게도 게이나 퀴어라는 것은 AIDS와 동일시되었다. 그러므로 조지 마이클과 같은 팝스타에게는 “외치고 자랑스럽다(out and proud)”라는 여지는 없었다. 그는 음악 산업의 옷장 안에 갇혔다.

그러나 “Freedom! ’90″에서 그는 가죽 재킷으로 엉덩이를 흔들어대던 이전의 이미지에 불을 댕겼다. 명백하게 밝힌 것은 아니지만 조지 마이클은 이 히트곡의 가사를 통해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난 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로 했어. / 네가 알아야 할 무언가가 있어. / 내가 너에게 그것을 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 / 내 속 깊은 곳에 뭔가가 있어. / 내가 되어야 할 그 어떤 존재가 있어.” 조지 마이클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 자신이 되기로 결정했다.

1998년 마이클은 비버리힐스의 공원에서 잠복경찰과의 “추잡한” 행동으로 체포되었을 때 공식적으로 아웃팅 당했지만, 이 가수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1998년 비디오 “Outside”에서 이 사건을 비웃었다. 그가 이성애자가 아니란 사실이 크리스털처럼 투명해지자 조지는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몰랐을까 하는 등의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진실한 당신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보상은 늘 없다. 그 뒤로 몇 년 동안 그는 마약, 체포, 건강 문제와 같은 보도에 질질 끌려 다녔다.

조지 마이클은 그의 성적기호로 인해 배척되었고 그를 무자비하게 스토킹하는 미디어에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2005년 이 가수는 게이와 이성애자들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미디어에서의 게이는 이성애자를 편안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자동적으로 이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내가 더럽고 음란한 f****r 이고 당신은 그 사실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감당을 못해요.”

분명히 조지 마이클이 없이 샘 스미쓰, Adam Lambert, 또는 오늘날의 다른 많은 공개적으로 퀴어인 아티스트가 있을 수 없다. 샘 스미쓰는 언젠가 마이클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나는 조지 마이클에 대한 기이하고도 시들지 않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을 왜 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이유다.”

나는 사람들이 미묘한 차이가 있는 조지 마이클의 유산에 대해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단순한 팝스타가 아니었다. 그는 쏘울풀했고 아티스트들이 제조업화된 음악 산업에서 진정한 자아로의 길을 닦는 정체성을 교차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Culture Club / Colour By Nu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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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ClubColourByNumbersAlbumcover” by Scan.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는 마이클 매니아와 함께 ‘모타운 소울’의 부활을 몰고왔다. 대서양 저편의 영국가수들도 즉각 소울풀한 노래가 현재 팝계에서 가장 잘 먹힐 수 있는 스타일임을 간파했다. 보이 조지의 컬처클립, 유리스믹스, 왬 등이 모타운식 소울을 내걸며 미국 침공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역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팝음악의 주류 또한 뉴로맨틱 무브먼트의 신시사이저 팝에서 ‘팝화된 소울’로 넘어갔다.그중 컬쳐클럽(Culture Club)은 마이클 잭슨의 바로 뒤를 이어 <<드릴러>>와 인기 정상을 바톤터치한 그룹이었다. 음반 <<컬러 바이 넘버즈>>(Colour by numbers)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룹의 상징인 보이조지(Boy George)는 “뉴스위크”지의 표지인물로 등장했다. 스스로 ‘성의 개척자’ 임을 자부한 그는 여장차림과 인형과도 같은 ‘미모’로 이해 84,85년 매스컴의 표적이 되어 집중적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다. 그만큼 그와 컬터 클럽에게는 비디오적 측면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다.그 시절이 ‘오디오 + 비디오’의 이른바 AV시스템이 지배한 시대였음을 누구도 그들만큼 잘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는 비디오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동시대 뮤지션 프린스를 “공중머리의 통으로 떨어진 난쟁이 같은 인물”이라고 비아냥댔고 마돈나를 두고 “마릴린 먼로에 그녀를 비교하는 것은 소피아 로렌과 버스의 후미(後尾)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비고기도 했다.그들의 음악을 “타임”지는 ‘모든 팝음악을 집어넣은 포켓’으로 설명했다. 여러 음악의 영향을 골고루 흡수해 그들만의 것으로 빚어냈다는 지적이었지만 그 음악 성격은 때로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재창조 차원이 아닌 모방, 즉 ‘표절’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한 보이 조지의 주장 또한 당당했다. “표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휘중의 하나다. 컬처 클럽은 현대음악에 있어서 표절의 가장 진지한 형태이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임을 실증하듯 그들의 표절행위는 ‘발군의 재해석’으로 나타났다.보이 조지는 <그것은 기적>(It’s a miracle)의 경우 버트 오설리반의 곡 멜로디를 빌어왔다고 자인했다. 이밖에 <사악한 정신의 교회>(Church of the poison mind)는 스티비 원더의 <초조한>(Uptight) 과 유사했고 <숙명의 변덕자>(Karma chameleon)는 제임스 테일러의 <편한 남자>(Handy man)을 연상시켰으며 <그런거야>(That’s the way)는 엘튼 존 노래풍이었다. 보이 조지는 컬처클럽의 음악을 한마디로 ‘이미테이션 소울'(imitation soul)이라고 칭하기도 했다.이같은 후안무치의 비도덕적 행각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우수작으로 인정받는 의외의 성과를 올렸다. “타임”지는 이 음반을 84년 팝 베스트 10앨범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가벼운 팝소울을 선호한 시대의 혜택이 그만큼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컬처 클럽은 “우리는 훌륭한 공식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그룹들은 분명그것에 착상하여 성공했다. 틀림없이 왬(Wham!)이 그러했다.”며 자신들의 지대한 영향을 강변했다. 그 공식이 무엇이든 간에, 또 후세에 어떤 영향을 미쳤든지 간에 그들은 유행 음악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86년 이후 인기가 급전직하, 이듬해 해산을 선언하고 말았다.보이 조지는 93년 영화 ‘크라잉 게임’의 주제가를 히트시키기까지 재기하는 데 7년 이상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Style Counc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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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yle Council” by http://www.chic-a-boom.com/pics/stylecouncil.jpg, Copyright : Polydor, Ltd. (UK), 1988.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The Style Council“>Fair use via Wikipedia.

결성 : 1983년
해체 : 1990년
멤버 : Mick Talbot, Paul Weller, Dee C. Lee, Steve White키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Paul Weller는 80년대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였던 the Jam을 해산하였다. 그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82년에 그룹이 해산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폴웰러가 그룹의 음악적 방향에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웰러는 그의 작품에 soul, R&B, jazz 등의 요소를 집어넣기를 원했다. 이러한 음악적 방향을 달성하기 위해 그는 1983년 모드 리바이벌 밴드인 the Merton Parkas 출신의 키보드 주자인 Mick Talbot와 함께 Style Concil이라는 팀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추구하는 음악에 따라서 여러 뮤지션들이 가세하였다. 비록 음악적 뿌리는 미국의 R&B였지만 음악의 구성은 씬써싸이저와 드럼머쉰을 사용하였고 유럽적인 음악 스타일로 여과되었다. 좌익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폴의 가사는 인종주의, 마가렛 대처, 성차별주의 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

디스코그래피
1983 Introducing the Style Council
1984 My Ever Changing Moods
1984 Cafe Bleu
1985 Internationalists
1985 Our Favourite Shop
1986 Home & Abroad [live]
1987 Cost of Loving
1988 Confessions of a Pop Group

링크
참고싸이트
The Jam, The Style Council and Paul Weller
Fan Site

Simply 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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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 Hucknall singing” by Simplyred Ltd – Simplyred.com. Licensed under CC BY-SA 2.5 via Wikimedia Commons.

웬지 Soul, R&B 는 영국과 안어울릴 것같은 인상이지만 – 어느 분이 말씀하시다시피 추위를 많이 타는 보일러 수리공처럼 – 의외로 영국쪽에도 그쪽 계열로 괜찮은 그룹이 꽤 되고 바로 지금 소개하는 Simply Red 역시 영국 Soul을 이야기할때 빼놓아서는 안되는 그룹이다. 싱어 Mick “Red” Hucknall(가운데 별명을 집어넣는 것은 꽤 오래된 흑인음악 아티스트들의 전통[?])을 중심으로 1984년 결성된 이들은 Elektra 레코드사를 통해 데뷔앨범 Picture Book(1985년 10월)을 내놓았다. 이 앨범에서는 The Valentine Brothers가 오리지날인 “Money’s Too Tight (To Mention)”의 커버와 “Holding Back The Years”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에 힘입어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하게 되었다. Hucknall이 Soul 작곡가 Lamont Dozier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발표한 Men and Women(1987년)은 전작에 비해 많은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이 앨범에서는 “The Right Thing”이라는 커버곡이 인기를 얻었다. 그 해 키타리스트 Richardson이 그룹을 떠났고 Aziz Ibrahim이 그 자리를 채웠다. 세번째 앨범 A New Flame(1989년 2월)은 또다시 선보인 커버버전 “If You Don’t Know Me By Now”(Harold Melvin and the Blue Notes 의 ’72년 히트곡)가 크게 히트한 덕분으로 골드앨범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네번째 앨범 Stars(1991년 9월)을 낼 즈음, 또다시 몇명의 멤버가 탈퇴하였고 앨범 역시 미국에서는 상업적으로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나 그외 지역에서는 빅히트를 하였는데 특히 영국에서 앨범은 19주간 탑에 머물렀고 “Stars”, “For Your Babies”, “Something Got Me Started”, “Thrill Me”, “Your Mirror” 등이 연속적으로 히트하였다. 이후 지속적인 멤버교체속에서도 5집 Life가 1995년 발매되었는데 또다시 미국에서보다는 영국 등 유럽에서 크게 사랑받았다. 이후에도 이들은 지속적인 앨범 작업을 통해 그들의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참 상투적인 표현입니다만…)

디스코그래피
1985 Picture Book Elektra
1987 Men & Women Elektra
1989 A New Flame Elektra
1991 Stars East West
1995 Life East West
1998 Blue East West
1999 Love & The Russian Winter East West
2001 It’s Only Love Wea

링크
Official Site

S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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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e in boston“. Licensed under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나이지리아 국적의 아버지와 영국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난 Sade Adu(본명 Helen Folesade Adu)는 유아시절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나이지리아에서 런던으로 옮겼다. 비주얼아트를 공부했던 그녀의 열정은 패션디자인보다는 음악에 집중되어 있었다. 80년대에 그녀는 째즈그룹 Pride에서 음악경력을 시작했다. 80년대 중반 Stuart Matthewman, Andrew Hale, Paul S Denman, Sade Adu로 구성된 Pride는 이름을 Sade로 바꿔버렸다.

1984년 Sade의 첫싱글 Your Love Is King은 유럽과 북미에서 호평을 받았다. 1985년 내놓은 데뷔앨범 Diamond Life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전체적인 음악풍은 쏘울풀하면서도 째즈에 영감을 받은 스타일로 대부분의 곡이 Sade와 그녀의 밴드멤버들이 작곡한 것이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앨범에 수록된 Smooth Operator는 국제적인 히트를 기록하였고 그 해 Grammys 어워드에서는 그룹이 Best New Artist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Sade는 이어 후속앨범 Promise를 내놓았고 싱글 The Sweetest Taboo가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그룹은 Style Council, Ray Davies, Jerry Dammers, 그리고 David Bowie 등이 참여한 영화 Absolute Beginners의 싸운드트랙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2년 그들은 Love Deluxe를 발표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4 Diamond Life [Epic]
1985 Promise [Epic]
1988 Stronger Than Pride [Epic]
1992 Love Deluxe [Epic]
2000 Lovers Rock [Epic]

링크
Fan Page

Rockwell

강박증 환자가 불렀음직한 노래 “Somebody’s Watching Me”가 발표되었을 때 정작 곡 자체보다는 ‘코러스 부분에 Michael Jackson이 참가했다’, ‘Rockwell이 Motown 레코드사의 창립자인 Berry Gordy의 아들이다’ 와 같은 가쉽이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사실들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본인도 이러한 사태를 미리 예견하였는지 이름을 아예 Rockwell – 그의 고등학교 시설 밴드의 이름이었다 한다 – 로 바꿔버렸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음악 그 자체로 평가받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 하다. 사실 그는 그의 아버지도 모르게 Motown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첫 싱글 “Somebody’s Watching Me”는 앞서 말했듯이 Micael Jackson이 코러스로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던 곡이다. 마치 트왈라잇존의 주제음악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멜로디와 Rockwell의 강박적인 읊조림, 하이톤의 후렴구가 묘한 조화를 이룬 이 싱글은 싱글차트에서는 탑텐을, R&B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뒤이은 발라드 Knife가 커다란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팝팬들의 정서에 맞는 가요 스타일의 멜로디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비슷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를 얻었던 곡으로는 Falco의 Jeanny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성공가도는 여기까지였다. 뒤이은 싱글들은 외면을 받았고 앨범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One Hit Wonders의 일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디스코그래피
1984 Somebody’s Watching Me [Motown]
1985 Captured [Motown]
1986 The Genie [Motown]

링크
Somebody’s Watching Me 비디오 리뷰

Pr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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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at Coachella 001” by Micahmedia at en.wikipediaOwn work (Original caption: “I created this work entirely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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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Prince, O(+>, TAFKAP, The Artist formely known as Prince, The Artist
본명 : Prince Roger Nelson (later Prince Rogers Nelson)
생년월일 + 고향 : June 7, 1958 in Minneapolis, MN, USA

프린스와 섹쓰는 그 자체로 자웅일체처럼 느껴진다. 그의 다인종적인 외모와 퍼플레인 시절의 연보라색의 화사한 의상의 결합은 그야말로 그만의 섹쓰 왕국의 프린스의 모습 그 자체였다. 물론 I would die for you같은 노래에서는 섹쓰가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지만 그건 그가 때로는 다른 것도 생각한다는 말이지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Sheila E, Vanity, The Revolutions를 거느렸던 이 왕자는 그의 신하들을 음악계 곳곳에 배치시켜 80년대 흑인음악에 프린스표 음악을 유포하였다. Sheila E의 Glamorous Life나 Chaka Khan의 I Feel For You는 챠트를 뒤흔들며 프린스의 음악이 얼마나 대중에게 흡입력이 있는가를 증명해주었다.

성(性)을 주요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마돈나와 비교할 수 있는 그는 백인 취향의 건전한 음악을 생산해냈던 마이클잭슨과는 마치 음악계의 마틴루터킹과 말콤엑스같은 지형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80년대 흑인 음악의 무협지를 읽는 듯한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Bio from 오이뮤직

” 실험정신과 선정성의 결합, Prince ”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와 흑인들의 전유뮬로 여겨졌던 소울 음악이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가를 증명해 보인 뛰어난 음악인 프린스. 혹자들로 부터 같은 58년 생인 마이클 잭슨과 함께 흑인 음악의 진정성을 백인들에게 팔아먹은 이단아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는 분명히 20세기 말 등장한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 가운데 한 명이다.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등 다양한 악기에 고루 능한 멀티 뮤지션이기도 하고 그에 앞서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이다. 시대를 앞선 음악성으로 인해 비난과 외면을 당했으나 ’84년의 [퍼플 레인] 사운드 트랙이 영화의 성공과 별개로 히트를 기록해 그는 새삼 재조명 받기에 이르렀다. 타이틀 트랙 외에 ‘When Doves Cry’, ‘I Would Die 4 U’ 등이 연이어 히트했고 앨범 자체도 천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해 다이아먼드 레코드를 수여 받았다. 실험정신과 선정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음악 세게는 사실 그가 미네소타 주의 중산층 출신이라는 치명적인 결점으로 말미암아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그는 쾌락과 예술 두가지를 추구하지만 열정과 젊음이 지나친 다작과 방종 그리고 절제의 부족으로 식어 들어가 NPG와의 활동 시작 이후 그의 음악이 지니는 에술적 가치와 대중적 인기가 고루 하강 곡선을 기록했다. [Love Sexy] 앨범을 통해 자신의 누드를 파격적으로 공개하기도 했으나 고향 미네소타 주 몇몇 음반 소매상들은 그의 앨범을 진열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89년 5월 9일의 일이다. 프린스는 [워너]를 통해 ’96년까지 활동했는데 레이블과의 불화로 스스로의 뺨에 노예(slave)라고 새기고 다니기도 했으며 자기 이름을 부정해 스스로를 남성과 여성의 상징을 조합해 만든 이상한 기호 뒤로 은폐해 결국 TAFKAP(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라 불리기도 했다. 소속사를 BMG로 옮기면서 [Emancipation(해방)]이라는 타이틀의 3CD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적 이후 발표한 [Rave Un2 The Joy Fantastic]은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난 속에 발매된 지 2년도 안 되어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 그는 요즘 디지털 시대에 힘 입어 인터넷 상에서 신곡을 발표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78 For You
1979 Prince
1980 Dirty Mind
1981 Controversy
1982 1999
1984 Purple Rain
1985 Around The World In A Day
1986 Parade
1987 Sign O’The Times
1988 Lovesexy
1989 Batman
1990 Grafitty Bridge
1991 Diamonds And Pearls
1992 o( + >
1993 Gold Nigga
1993 The Hits / The B-Sides
1994 1-800-New-Funk
1994 Come
1995 Exodus
1995 The Gold Experience
1996 Girl6
1996 Chaos And Disorder
1996 Emancipation
1998 Crystal Ball
1998 The Truth
1998 Kamasutra
1998 New Power Soul
1999 The Vault… Old Friends 4 Sale
1999 Rave Un2The
1999 Crystal Ball [Limited Edition]
2001 The Beautiful Experience [Bellmark]
2001 The Rainbow Children
2002 One Nite Alone…Live!
2004 Musicology
2004 The Chocolate Invasion
2004 The Slaughterhouse
2006 3121
2007 Planet Earth
2009 Lotusflow3r
2009 MPLSound
2010 20Ten
2014 Plectrumelectrum
2014 Art Official Age
2015 HITnRUN Phase One
2015 HITnRUN Phase Two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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