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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vate Lives

만약 공룡을 여러 시대로 나눌 수 있다면 뉴웨이브 밴드들도 그러하다. Private Lives 가 존재했던 시기는 확실히 뉴로맨틱스가 R&B와 모타운 사운드로부터 영감을 얻기 시작했던 80년대 중반에 해당하였다. Tears for Fears, Howard Jones, the Human League 와 같은 영국 아티스트들이 신디사이저에 기반을 둔 그들의 음악에 블루아이드쏘울의 요소들을 도입하는가 하면 Nik Kershaw, Paul Young, the Style Council 같은 이들은 아예 블루아이드쏘울을 전면적으로 차용하였다.

Private Lives 는 80년대 후반 Johnny Hates Jazz, Living in a Box 등과 같은 소피스티팝의 선구자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룹은 거의 잊혀진 그룹이 되었다. 보컬 John Adams 와 키타를 맡은 Morris Michael 이 핵심적인 두 멤버로 자리잡았던 이 밴드는 댄스리듬과 쏘울풀한 감성에 기반을 둔 뉴웨이브 그루브를 바탕으로 사랑과 상실감에 관한 이야기를 노래했다. Fiction Factory의 Kevin Patterson 처럼 Adams 도 깊고 독특한 유럽 스타일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이 목소리는 그룹의 최고 히트곡 “Living in a World (Turned Upside Down)” – 난잡한 애정관계로 인해 괴로워 하고 마침내 자살을 생각하는 한 소녀에 관한 이 노래는 이 밴드가 노래하고자 하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 에서 가장 빛을 발하였다. “Living in a World” 는 전국적인 히트곡은 아니었지만 아름답고 슬픈 신디사이저 멜로디와 Adams 의 호소력있는 보컬로 말미암아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라디오 애청곡이 되었다.

1984년 밴드는 그들의 유일한 LP Prejudice & Pride 를 EMI 를 통해 내놓았다. 이 앨범에는 싱어 Kiki Dee 와 Kajagoogoo 의 베이시스트 Nick Beggs 등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고 그룹은 1986년 해체되었다. Adams 는 Tom Robinson 의 “Nothing Like the Real Thing” 을 프로듀스했다. 앨범의 희귀성과 뛰어난 음악성으로 말미암아 Prejudice & Pride 은 뉴웨이브의 열광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마치 클래식 자동차와 같은 콜렉터스아이템이 되었다.

Private Lives 가 뉴웨이브 뮤직씬에 미친 영향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필리핀이나 일본에서의 그들에 대한 컬트적인 추종은 계속되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4 Prejudice & Pride EMI

Track Listing

1 River to a Sea
2 No Chance You’ll Pay
3 Living in a World Adams
4 Stop
5 God Only Knows
6 Break the Chains
7 Don’t Wanna Cry (Any More)
8 Win (You’ve Got To)
9 Break the Whole Thing Down
10 Prejudice and P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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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iosity Killed The 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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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tc-ben1” by Andwhatsnext, aka Nancy J Price – http://andwhatsnext.com/band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Ben Volpeliere-Pierrot: vocals
Julian Godfrey Brookhouse: guitar
Nicholas Bernard Throp: bass
Michael Drummond: drums
Toby Anderson: keyboards

Curiosity Killed the Cat은 Migi와 Nick이 1983년 결성한 Twilight Children라는 포스트펑크밴드에서 발전한 밴드이다. 그들은 Ben, Ju, Toby가 가입하고 나서야 자신들만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Toby Anderson은 그룹의 키보디스트이자 송라이터로 함께 하긴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밴드의 멤버였던 적이 없다. 그는 1986년 그룹을 떠날때까지 ‘다섯번째 고양이’로 불리워 졌다. Toby는 비록 아직 그룹이 본격 활동을 하기 전에 떠나긴 했지만 앨범 Keep You Distance에 담긴 모든 곡을(Curiosity Killed the Cat을 제외하고는) 공동작곡하였다. Toby의 ‘다섯번째 고양이’의 역할은 Mike McEvoy가 맡게 되었다. Mike는 Getahead 앨범을 공동 작곡하였다. 그는 또한 Hang on in there baby의 키보드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들은 Eric Clapton의 도움으로 스튜디오에서 몇곡을 녹음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들이 녹음한 몇몇 곡을 들은 Peter Rosengard는 노래에 반해 그들의 매니저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리고 밴드의 이름을 Curiosity Killed the Cat으로 바꿨다.1984년 겨울 런던에 있는 Embassy Club에서 데뷔공연을 시작으로 여러 클럽에서 공연하기 시작한 그들은 마침내 1985년 Mecury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앨범 작업은 프로듀서의 교체 등으로 인해 다소 지연되었다.

Misfit는 1986년 8월 발매되었다. 반응은 형편없었다. 곧 그들은 Alison Moyet의 영국 순회 공연에 동참하였다. 몇번의 TV 출연후 두번째 싱글 Down to Earth를 발매했는데 마침내 영국 챠트에 오르게 되었다. 이 싱글은 1987년 2월에 3위까지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유럽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어서 Paul O’Duffy가 프로듀스한 Ordinary Day가 발매되었고 영국 챠트 11위까지 진출하였다. 데뷔 앨범 Keep Your Distance가 1987년 발매되었는데 5월에 영국챠트 1위에 올라 탑10에 13주간이나 머무는 큰 히트를 기록하였다. 다시 발매된 Misfit는 챠트 7위에 까지 진출하였다.

그들은 Just Seventeen이나 Smash Hits같은 잡지에 등장하며 틴아이돌로 부상한다. 그러나 네번째 싱글 Free가 발매될 즈음에는 쇠퇴의 기미가 뚜렸해진다. 그 곡은 겨우 챠트 56위까지에만 오르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한동안 모습을 감췄던 이들은 1989년 싱글 Name and Number(챠트 14위까지 오름)를 가지고 재등장하였다. 그러나 Nick이 이미 밴드를 떠났고 이름도 Curiosity로 줄여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그해에 두번째 앨범 Getahead를 발매하였다. 이어 발매된 싱글 First Place는 챠트에 오르지조차 않았다.

레이블을 RCA로 바꾸고 난 90년대 초반 그들은 Hang on in there baby(Johnny Bristol의 곡을 커버)라는 히트곡과 함께 깜짝 부활을 하였다. 이 곡은 1992년 4월 영국챠트 3위까지 오르는 빅히트를 기록하였다. 같은해 8월 I need you lovin이 발매되어 47위까지 올랐다. Gimme the Sunshine(Leo’s Sunship의 커버곡)은 1993년 10월 챠트 73위까지 올랐다.

디스코그래피
KEEP YOUR DISTANCE 1986 Mercury Records
MISFIT/DOWN TO EARTH/FREE/KNOW WHAT YOU KNOW/ CURIOSITY KILLED THE CAT/ORDINARY DAY/ MILE HIGH/RED LIGHTS/SHALLOW MEMORY/ [JAPAN BONUS] MISFIT (EXT.V.)/DOWN TO EARTH (EXT.V.)/ ORDINARY DAY (EXTRAORDINARY MIX)/ MILE HIGH (MILE LONG MIX)
GETAHEAD 1989 Mercury Records
NAME AND NUMBER/DO YOUR BELIEVIN’/CASCADE/ FIRST PLACE/WE JUST GOTTA DO IT (FOR US)/ GO GO AHEAD/TREES DON’T GROW ON MONEY/ TREAT YOU SO WELL/WHO ARE YOU/SECURITY LADY/ SOMETHING NEW, SOMETHING BLUE/KEEP ON TRYIN’/

BACK TO FRONT 1994 (Japanese Import) RCA

VERY BEST OF CURIOSITY KILLED THE CAT 1996 (Compilation)
DOWN TO EARTH/NAME AND NUMBER/FREE/MISFIT/ FIRST PLACE/GO GO AHEAD/KEEP ON TRYIN’/ BALL AND CHAIN/CASCADE/CURIOSITY KILLED THE CAT/ TREAT YOU SO WELL/WHO ARE YOU/BULLET/ MILE HIGH/WE JUST GOTTA DO IT (FOR US)/ SOMETHING NEW, SOMETHING BLUE/ SHALLOW MEMORY/ORDINARY DAY/

링크
Wikipedia

Blow Monkeys, The

영국의 4인조 The Blow Monkeys 는 Dr. Robert(본명 Bruce Robert Howard, 1961.5.2일 생) 이 주도하여 Tony Kiley(드럼), Mick Anger(베이스), Neville Henry(색서폰) 이 함께한 그룹이다. 어린 시절을 호주에서 보내며 펑크 밴드를 전전하던 Dr. Robert 는 1981년 영국으로 돌아와 The Blow Monkeys 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이른바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관악연주와 뉴로맨틱스적인 감성이 두드러지는 음악스타일인 Sophisti-Pop 계열의 음악을 선보였다.

1986년 이들은 AIDS 를 주제로 한 곡 Digging Your Scene 으로 영국과 미국의 팝차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에서 그들의 가장 큰 히트곡은 It doesn`t have to be this way 으로 차트 5위까지 올랐다. 미국에서 이들은 영화 Dirty Dancing 의 사운드트랙 삽입곡인 You Don’t Own Me 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고급스러운 관악연주와 Dr. Robert 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매력인 이 곡은 원래 Lesley Gore 가 부른 곡이었으나 The Blow Monkeys 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재구성하여 인기를 얻은 곡이다.

Dr. Robert 는 1989년 Kim Mazelle 와 듀엣으로 Wait 를 불러 영국 팝차트 10위 안에 들었고 이후 1996년 솔로앨범을 내놓았다.

이름의 유래

– 그런데 블로 몽키즈란 그룹 이름은 어디서 유래된 것입니까?
런던으로 돌아오기 몇년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활했는데 원주민 가운데 한 부족의 이름이 영어로 번역하면 바로 블로몽키즈란 의미입니다. 바로 거기서 취한것입니다.

– 그룹은 어떻게 해서 만들었습니까?
1981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돌아와 작곡을 계속하는 동안에 클럽에서 네빌 헨리를 만났고 그 후에 나머지 2명도 뜻을 같이하는 동지같은 느낌을 받아 어렵지 않게 모이게 되었어요. 그래서 9개월간의 리허설 기간을 거쳐 클럽에 출연하게 되었고 곧바로 레코딩 계약도 맺는 등 모든것이 순조롭게 전개되었지요.

– 그럼 밴드의 맴버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믹 앵커는 베이스. 런던에서 태어나 개성적인 모자와 구레나룻이 특징이죠. 좀 묘한 사람이에요 드럼의 앤토니 킬리는 전에 재즈를 했던 경험도 있어 우리들 중에서도 가장 음에 까다라운 사나이에요. 색소폰의 네빌 헨리는 전형적인 스코틀랜드 사람으로 굉장히 조용하죠.

#### 1986년 10월호 음악세계…

유사한 스타일의 뮤지션들
Icehouse, Go West, The Style Council, Terry Hall, Talk Talk, Ultravox, ABC, Spandau Ballet, Wham!, Johnny Hates Jazz

디스코그래피
1984 Limping for a Generation RCA
1986 Animal Magic RCA
1987 She Was Only a Grocer’s Daughter RCA
1989 Whoops! There Goes the Neighborhood RCA [U.K.]
1990 Springtime for the World RCA [U.K.]
1992 Spring Alex

관련링크
TourPress
The Official Web Site for Dr Robert

Swing Out S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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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ng Out Sister” by CorinneDrewerySOS06.jpg: Carl Lender at http://flickr.com/photos/clender/
AndyConnellSOS06.jpg: Carl Lender at http://flickr.com/photos/clender/
derivative work: FotoPhest (talk) – CorinneDrewerySOS06.jpg
AndyConnellSOS06.jpg.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결성 : 1985년
멤버 : Andy Connell, Corinne Drewery, Martin JacksonSwing Out Sister는 Manchester 출신이지만 그 동네의 싸이키델릭한 그룹들과는 사뭇 다른 음악성을 추구하였다. 째즈에서 영향받은 스무드한 씬쓰팝을 구사했던 그들은 Martin Jackson (드럼), Andy Connell (키보드), 그리고 패션디자이너 출신인 Corrine Drewery (보컬)로 구성되었다. Jackson은 첫앨범 발표후 그룹을 떠났다. 이들의 최대 히트곡 Break Out은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7 Another Non-Stop Sister [US]
1987 It’s Better to Travel
1989 Kaleidoscope World
1991 Get in Touch with Yourself
1993 Live
1993 Swing Out Sister
1994 Living Return
1997 Shapes and Patterns
1999 Another Non-Stop Sister [Japan]
2000 Live at the Jazz Cafe

링크
Official Site

Style Council

The Style Council.jpg
The Style Council” by http://www.chic-a-boom.com/pics/stylecouncil.jpg, Copyright : Polydor, Ltd. (UK), 1988.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The Style Council“>Fair use via Wikipedia.

결성 : 1983년
해체 : 1990년
멤버 : Mick Talbot, Paul Weller, Dee C. Lee, Steve White키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Paul Weller는 80년대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였던 the Jam을 해산하였다. 그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82년에 그룹이 해산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폴웰러가 그룹의 음악적 방향에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웰러는 그의 작품에 soul, R&B, jazz 등의 요소를 집어넣기를 원했다. 이러한 음악적 방향을 달성하기 위해 그는 1983년 모드 리바이벌 밴드인 the Merton Parkas 출신의 키보드 주자인 Mick Talbot와 함께 Style Concil이라는 팀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추구하는 음악에 따라서 여러 뮤지션들이 가세하였다. 비록 음악적 뿌리는 미국의 R&B였지만 음악의 구성은 씬써싸이저와 드럼머쉰을 사용하였고 유럽적인 음악 스타일로 여과되었다. 좌익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폴의 가사는 인종주의, 마가렛 대처, 성차별주의 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

디스코그래피
1983 Introducing the Style Council
1984 My Ever Changing Moods
1984 Cafe Bleu
1985 Internationalists
1985 Our Favourite Shop
1986 Home & Abroad [live]
1987 Cost of Loving
1988 Confessions of a Pop Group

링크
참고싸이트
The Jam, The Style Council and Paul Weller
Fan Site

Scritti Politti

The new Scritti.jpg
The new Scritti” by Marco RaaphorstFlickr: The new Scritti.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1977년 Green Gartside와 Tom Morley는 Leeds에서 열린 Sex Pistols의 공연에 반해 음악을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런던으로 본거지를 옮긴 그들은 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동창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밴드의 이름은 Green이 당시 읽고 있던 Antonio Gramsci의 “Politician Writing” – 이탈리아 제목이 “Scritti Pollitici”였음 – 에서 차용하였다. 밴드의 음악스타일은 펑크와 레게 싸운드였고 보컬은 무척 정치적인 입장을 띄었다. 당시 정치는 Green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는 많은 정치학 서적을 탐독하였고 “Young Communist League”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DIY 레코드를 만들어서 그들만의 레이블인 St. Pancras의 이름으로 Rough Trade를 통해 배급하였다. 싱글들은 잘 팔려나갔고 음악잡지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인터뷰 등을 위해 Green은 마지못해 그룹의 프론트맨으로 나섰고 곧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입장을 띈 이미지로 각인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스타일은 음악잡지에서 선호되는 스타일이었다.

1979년 Green은 심한 병에 걸렸고 South Wales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Soul과 R&B에 감화받은 그는 런던으로 돌아와 나머지 멤버들에게 밴드의 스타일을 바꿀 것을 설득했고 음악적 방향을 재정립하게 된다. Green은 Rough Trade와 함께 작업하면서 세개의 싱글과(“The Sweetest Girl”, “Faithless”, “Asylums In Jerusalem / Jacques Derrida” (double A-side)) 한개의 앨범(“Songs To Remember”)을 내놓았다. 싱글들은 영국 인디차트에서 인기를 얻었다.

1984년 Green은 뉴욕 출신인 David Gamson와 Fred Maher을 끌어들여 이전과는 또 색다른 음악을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씬쓰팝 스타일로 선회한 1984년과 1985년은 Scritti에게 최고의 해였다. Green은 Virgin과 계약을 맺었고 다섯개의 싱글(“Wood Beez (Pray Like Aretha Franklin)”, “Absolute”, “Hypnotize”, “The Word Girl” and “Perfect Way”) 과 한개의 앨범(“Cupid & Psyche 85”) 을 내놓았다. “The World Girl”은 영국차트 6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고 “Perfect Way”는 미국차트에서 11위까지 올랐다. 1988년 3집 “Provision”과 세개의 싱글(“Oh Patti (Don’t Feel Sorry For Loverboy)”, “First Boy In This Town (Lovesick)”, “Boom! There She Was”)을 내놓았지만 “Oh Patti (Don’t Feel Sorry For Loverboy)”만이 영국차트 13위까지 올랐다.

이 와중에 앨범작업 등에 지쳐버린 Green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David과 Fred는 다른 아티스트들과 작업하기 위해 그룹을 떠났다. 1990년 Martin Ware(Heaven 17, BEF:The British Electric Foundation)에 의해 다시 스튜디오로 끌려나온 Green은 BEF의 앨범 “Music Of Quality and Distinction Vol. II”를 위해 Stevie Wonder의 “I Don’t Know Why I Love You (But I Love You)”의 커버버젼을 녹음하였다.

Scritti Politti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한건 밀레니엄의 끝무렵인 1999년이었다. David Gamson과 함께 다시 시작한 작업은 키타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쏘울에 경도된 스타일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힙합씬의 많은 스타들이 함께 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2 Songs to Remember Rough Trade
1985 Cupid & Psyche 85 Warner
1988 Provision Warner
1999 Anomie & Bonhomie Virgin

링크
Officail Site
Unofficial Site
Japanese Fan Page

Listening Pool, The

1989년 O.M.D(Orchestral Manouevres in the Dark) 해체후 – 그 뒤에도 Andy McCluskey는 O.M.D.란 이름을 계속 사용하였지만 – 그룹의 멤버였던 Paul Humphreys(보컬), Malcolm Holmes(드럼), Martin Cooper(키보드)는 The Listening Pool이라는 새로운 밴드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Telegraph 레코드라는 레이블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싱글 ‘Oil for the Lamps of China’, ‘Meant to be‘를 발표한 뒤 마침내 1993년 정규앨범 Still Life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특히 영국의 평론가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Andy McCluskey라는 핵심인물을 제외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과거 O.M.D.의 로맨틱한 사운드를 충실히 재현하였다. 그러면서도 멤버 각자의 역량을 싱글에 골고루 배치하여 싱글들 나름의 매력을 살렸다. 한편으로는 어쿠스틱 키타의 풍부한 질감과 깔끔한 키보드 사운드가 Roxy Music의 Avalon 에서 느낄 수 있었던 청량감으로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감싸고 있어 여름에 듣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후 그룹은 뚜렷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고 그들의 레이블인 Telegraph 레코드사의 경영실적도 신통치 않아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퍼온 글 : OMD에서 The Listening Pool까지 小史]

금년 5월 중순, 솔로데뷔작이 되는 앨범 「카바즈」의 녹음을 준비중인 Thomas Lang을 보러 리버풀에 방문했을 때였다.

“실은, 바로 이전, OMD로부터 멀어진 멤버가 만든 새로운 밴드의 앨범으로 게스트보컬을 했다.”

라며 들려주었던 것이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Wild Strawberries」였다. 이 때, 그가 운전하는 차의 카스테레오의 카셋트로부터 흐르기 시작한 것은, 마치 토마스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은 곡. 조금은 우울하고 애수감 넘치는…. 이것을 들으면서 그는 여느 때처럼 테이프에 맞추어 노래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여기서 또 체험했던 것이 한번에 반한다라는 것이다. 결국 한동안 이 곡을 반복해 듣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났을 것을까. Thomas로부터 보내져 왔던 것이 The Listening Pool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밴드의 앨범이었다. 이 시점에서 알고 있던 정보라면 일찍이 OMD에 재적한 멤버가 만든 밴드라는 정도인데 이 CD로부터 흘러나온 것은 테크노 음색이야말로 희박하면서도 현재의 OMD 이상으로 OMD 적인 뉘앙스를 느끼게 하는 사운드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 레이블로부터 보내져 온 자료에 의하면, 이 The Listening Pool을 구성해 있는 것은 OMD의 거의 결성시 부터의 멤버 3명이 앨범에 가장 OMD 인것 같은 표정을 느꼈던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생략해 OMD가 Andy McCluskey와 Paul Humphreys에 의해 리버풀에서 결성된 것은 78년. 다음 해 79년 5월 맨체스터의 파크트리 레이블에서 「Electricity」로 싱글데뷔 하였다. 그 후 Virgin으로 이적해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82년에는 Martin Cooper와 Malcolm Holmes가, 그리고 86년에는 Graham Weir와 Neil Weir가 멤버에 참가하였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는 Andy&Paul을 핵으로 하여 Martin과 Malcom이 뒤를 받쳐주는 시스템이 OMD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그 OMD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던 것이 그들이 전성기를 맞이한 80년대의 중반이었다. Stephen Hague의 프로듀스아래에서 녹음한 「Crush」에 이어 같은 멤버로 「The Pacific Age」에 착수하지만 Andy가 주도하고 있던 그룹의 노선에 불만을 느꼈던 Paul, Martin과 Malcom의 3명은 싱글의 선택에 관해서 Andy와 큰 격차가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오리지날 OMD에 있어 마지막 스튜디오앨범이 되었다.

양자의 관계수복 기간에 발표되었던 것이 결성 10년을 기념한 1988년의 「The Best of OMD」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또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앨범 발표에 아울러 제작된 싱글 「Dreaming」에 관한 이견 때문이었다. 여기에서도 3명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Andy의 의견이 채택되었다. 이것이 양자간에 결정적인 균열을 만들어냈다. 결국 세계적으로 2백만 매를 판 앨범실적을 바탕으로 Depeche Mode와 전미 투어에 나서지만, 오리지날 OMD로서 마지막 라이브가 되었던 것이 10만 명을 앞에 둔 로스앤젤레스의 로즈 보울 축구·스타디움. 이것을 마지막으로 이 3명이 밴드와 결별하고 말았다.

어떤 의미로는 OMD가 OMD가 아니게 되었던 것이 그 90년이었다. The Listening Pool로부터 보내져 온 자료에 의하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룹이 해체되면 OMD는 소멸한다고 하는 상호결정이 결성시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Andy가 OMD의 이름을 사용하고 싶다고 주장해, 이 3명은 그에게 그 권리를 매도하게 된다. 그 배후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지만 그렇게 남겨진 Andy의 밴드를 OMD라고 부르는데 저항이 있다. 실제 OMD는 그 시점에서 소멸했을 것이다. 그들의 자료에는 「OMD가 끝나갈 무렵 3명이 곡을 만들고 있던 적도 있어 The Listening Pool을 결성하게 되었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아마, 옛날부터의 팬에게도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이미 현재의 OMD는 OMD는 아니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며, 필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스타트에 임한 그들은 92~93년과 곡만들기에 집중하여 동시에 The Listening Pool이라고 하는 새로운 밴드의 컨셉을 가져 수많은 레코드 회사를 돌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아티스트적인 컨트롤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레이블을 설립하였고, 그것이 Telegraph 레코드다. 그리고 거기에서 93년 7월 29일에 발표했던 것이 싱글 「Oil for the Lamps of China」였다. 싱글은 전영(全英)차트의 탑 100에 들었고 평론가로부터는 높은 평가가 주어졌지만 신흥 레이블의 힘없음이 화가 되었는지 3주만에 차트에서 탈락하였다. 그 직후에 스튜디오에 들어가 태어났던 것이 이 「Still Life」라고 하는 앨범이다.

그 타이틀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한 의미는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OMD로부터 떨어져 나왔어도 아직 그 생명이 그 맥과 흐르고 있는 것이라고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마 한 때의 OMD의 팬은 이해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OMD의 일렉트릭인 부분을 깎아낸 것이 The Listening Pool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OMD 초기의 선율적인 터치도 느낄 수가 있다. 실제 밴드의 리더적인 존재인 Paul은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을 하고 있다.

“실제 우리들은 OMD의 3/4이니까 거기서 완성해 온 음악에 나타나 있던 개성이 없어져 버릴 것은 없다. 멜로디의 중요성이나 그런 노래의 배경으로 나오는 강렬한 느낌은 The Listening Pool의 음악에서도 역시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을 유념하여 이 앨범을 들어 보면 혹시 이 앨범이 그들이 바라고 있던 OMD의 미래형인것 같기도 하다. 물론 OMD의 일렉트릭적인 면의 매력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은 음악을 각색하기 위한 수단이며, 무엇보다도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노래의 퀄리티라 할 수 있고 The Listening Pool에는 그것이 있다. 게다가 그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서 인지 의도적으로 일렉트릭적인 악기를 자제하고 있는듯도 하다. 예를 들면, 이 앨범의 오리지날쟈켓을 봐도 그렇다. 거기에 그려져 있는 것은 벽에 기대어 세워 놓을 수 있었던 밴조와 마루에 놓여진 아코디언, 그리고 그 악기의 앞에는 악보가 놓여져 있다. 아마 유화라고 생각되지만 일찍이 OMD의 멤버였던 사람들이 만든 일렉트릭적이고 미래주의적인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후기 OMD에 요구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하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말을 거는 것 같은 노래의 여러 가지 모습은 그야말로 필자에게는 음악의 매력과 같이 생각된다.

앨범의 크레디트를 보면 게스트·보컬로서 Thomas Lang 외에 The Stranglers의 Paul Roberts의 이름이 눈에 띈다. 리버풀에 사는 Thomas가 여기에 참가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경위로 Paul Roberts가 참여했는지, 또 아무리 Thomas의 보컬이 훌륭해도 그 외의 곡과 비교해 소리의 터치가 약간 다른 것도 확실하다. 그런데도 그를 선택한 것은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게다가 「Blue Africa」의 보컬에게 느껴지는 서아프리카 계의 스타일. 이것은 샘플링인가, 혹은 누군가가 녹음에 참가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무척 많다.

실은 이 글을 끝낸 직후에 필자가 예정되어 있는 것이 금년 마지막 해외 취재였다. 런던을 중심으로 취재를 할 생각이지만 할 수 있으면 리버풀을 방문해 그들과 인터뷰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정보에 의하면 필자가 영국에 있는 동안에 그들은 리버풀의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싱글 발표를 위한 리믹스를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 레이블 설립의 취지에 대해서 그들은 「재능 있는 뮤지션이 많이 존재하는데 메이저 레코드 회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작업을 이 레이블로 해 보고 싶다」라고 말하였다. 그들 외에 어떤 뮤지션을 컨택트하고 있는지, 아마 그런 것도 체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인터뷰의 결과는 또 어딘가의 잡지로 발표하기로 했기 때문에 우선은 The Listening Pool의 데뷔앨범을 즐기기를 권한다. 수많은 뮤지션이 존재하면서도 활동을 계속하는 음악의 거리, 리버풀로에서 태어난 시심 가득한 작품이다. 이 앨범을 많은 사람들이 듣기를 기원하며 펜을 놓는다.

1994년 10월 4일 집필
written by Koichi Hanafusa, a freelance journalist & photographer
원글 : http://www.lovepeace.org/vos/liner/9410tlistening.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