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앨범

J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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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Geffen/Warner Bros. (USA) / Polydor., Fair use, Link

Siouxsie Sioux & The Banshees의 음악은 ‘언제 한번 들어야지’하면서도 막상 쉽게 꺼내들게 되지 않는 밴드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는 The Cure랑 비슷하다. 둘 다 고딕락이라는 점이 공통점인데 그렇다면 내가 고딕락을 듣기에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일까? 각설하고 그들의 1981년 작품 juju를 들었다. 포스트펑크라는 용어가 아직 락씬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던 80년대 초반인지라 이런 다소 무거운 사운드와 주술(呪術), 죽음, 연쇄살인 등으로 가사가 채워진 음반도 당시에는 상업적으로도 성과가 나쁘지 않았다. 본국인 영국 앨범 차트에는 7위까지 올랐다. 여하튼 언제나 그렇듯 Siouxsie Sioux의 음습하면서도 활기찬 Siouxsie Sioux의 보컬은 이 밴드의 최고의 매력 포인트다.

Hurry Up Tomorrow

The Weeknd's sweaty face is on the right, tilted down and left, while screaming with eyes closed. The words "Hurry Up Tomorrow" are placed at the bottom-left of the cover, with the letters in "Tomorrow" being progressively blurred at the end. The album's tracklist, consisting of 22 tracks, sits vertically to the left of the cover.
By RIFF Magazine, Fair use, Link

The Weeknd의 Hurry Up Tomorrow1를 듣고 있다. 늘 그렇듯이 매끈하게 잘 빠진 신스웨이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태 몰랐는데 이번 앨범은 그의 전작 After Hours 그리고 Dawn FM과 느슨하게 이어지는 트릴로지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앨범의 길이가 길다. 86분 14초다. 어제 소개한 Ramones의 앨범 길이가 29분 4초이니 2.93배 길다. 본명이 Abel Makkonen Tesfaye인 그는 The Weeknd라는 무대명도 이번 앨범을 끝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한다. 그런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앨범이 이렇게 길어진 것이 아닌가싶다.

그래서 그런지 비평가들의 평도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평점을 깎은 비평가들의 불만의 1번은 ‘앨범이 너무 길다’는 점이다.2 비평가조차도 이제는 이 정도의 시간을 한 앨범의 감상에 쏟을 만큼의 인내력은 없는가보다.(“대서사시적”이라고 좋아하는 평자도 있다고 한다) 혹평 중에는 ‘지나치게 자기 연민이 심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3 그래서 The Weeknd라는 페르소나를 끝내는 것도 마케팅 전략일 것이라고 한다. 두고 볼일이지만, 내 생각에는 팬들이 편하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프린스도 아주 요상한 기호로 자기 무대명을 바꿨지만 결국 이름은 대중이 프린스로 택했으니 말이다.

여하튼 80년대 신스팝의 키드 위켄드인지라 이번 앨범에도 예의 80년대 팝의 짙은 그림자가 앨범 곳곳에 녹아있다. 일단 Big Sleep(험프리 보가트의 동명의 영화가 생각이 난다.) 등의 트랙에서 대표적인 70~80 댄스팝의 아버지 조르지오모르더(Giorgio Moroder)를 초빙하여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 비평가들은 여러 곡에서 마이클잭슨프린4 의 여운이 느껴진다고 말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80년대 팝과 신스웨이브의 적자(嫡子)인 셈이다. 아무튼 몰랐는데 삼부작이라고 하니 한번 각 잡고 After Hours에서부터 이 앨범까지를 연속으로 들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쭉 다 들어봤는데 첫 트랙 Wake Me Up, São Paulo, Niagara Falls 등이 맘에 든다.

  1. 앨범 커버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던 모양인데 본인이 스스로 트위터에서 재밌는 셀프디스 드립을 쳤다.
  2. 아예 헤드라인이 Hurry Up Tomorrow Is The Weeknd’s Very, Very Long Goodbye 인 비평도 있다
  3. Cry For Me라는 곡에서는 “in this penthouse prison, I’m alone”라는 가사랄지 Open Hearts라는 곡에서는 All the silver and gold only made my skin cold라는 가사도 있다.
  4. 위켄드 본인 스스로가 Prince의 Purple Rain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있다고도 밝혔다고 하는데, 특히 올해 5월 동명의 본인이 출연하는 공포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일단 프린스가 퍼플레인 앨범으로 본인이 출연하는 동명의 영화를 만든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Ramones (1976)

Four men standing against a graffiti-covered wall. Each man has a black leather coat, blue jeans, and brown hair. At the top of the black-and-white image, "RAMONES" is spelled out in all caps.
By https://open.spotify.com/album/3ToX9inehiXTv17hpaOyie, Fair use, Link

그야말로 2분30초 펑크의 미학이다. 14곡의 트랙 중에서 가장 긴 곡이 I Wanna Be Your Boyfriend인데 불과 2분 24초다. 전체 연주 시간이 29분 4초다. 솔로 기타 연주따위는 없다. 상당수 트랙이 160 BPM(Beat Per Minute)이다. 벽돌담에 서있는 멤버를 찍은 사진으로 그 유명한 앨범 커버를 정했는데 레코드사가 촬영을 위해 지불한 돈은 불과 125달러였다. 녹음은 Plaza Sound studio에서 일주일도 안 돼서 마쳤는데 소요된 비용은 6천4백 달러. 상업적 성과는 볼품없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 최고 순위는 111위. 하지만 비평적 평가는 달랐다. 한 평자는 “락앤롤의 역사를 라몬즈 이전과 이후 반절로 찢었다”라고 할 정도였다. 롤링스톤은 ‘역대 가장 위대한 앨범 500선’에서 이 앨범을 47위에 올렸다. 결론적으로 펑크락, 나아가 락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앨범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이 선사하는 음악은 순수한 결정체적인 락앤롤이다.

앨범 전곡 듣기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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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r use, Link

앨범 소개

1977년 4월 24일 토킹헤즈는 라몬즈의 오프닝공연을 위해 유럽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밴드는 많은 인상적인 음악계 거물을 만나지만 그 중에서도 그들의 음악 여정에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인물을 만나게 된다.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이노는 그룹이 5월 14일 코벤트가든의 The Rock Garden에서 가진 공연을 John Cale 등과 함께 관람했다. 이노는 무대 뒤로 찾아가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참고) 이들이 영국에 머무는 동안 Byrne과 Jerry는 이노의 집에 몇 번 찾아가 음악을 듣고, 대화를 나누고, 책들을 읽으면서 친해지게 된다.1

1977년 12월 19일 토킹헤즈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이노는 뉴욕의 8번가 아파트로 거처를 옮겨 자신의 새 앨범 Before and After Science를 위한 노래 King’s Lead Hat을 만들었다. 이 노래 제목은 Talking Heads라는 밴드명의 애너그램이었다. 그는 밴드에게 그들의 다음 앨범을 프로듀스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속사 Sire는 긴장했다. 이노가 Bowie를 위해 만들어 그해 초에 나온 앨범 Low의 작업 시에 많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노를 쓰도록 스테인(사이어 레코드사의 사장 Seymour Stein)을 설득하기 위해 팔을 좀 비틀어야 했어요.” 크리스의 회상이다.2

3월 중순, 밴드는 바하마에 있는 콤파스포인트 스튜디오3에 가서 녹음을 시작한다. 수록곡으로 밴드가 이전에 만들어 놓은 몇몇 곡들을 – Warning Sign, The Girls Want to Be with the Girls, Artist Only 등 – 재가공했다. 이노는 티나의 베이스 연주에 공명을 좀 불어넣거나, 기타에 레이어를 쌓아 퍼커션처럼 들리게 하거나, 번의 목소리에 소리의 공간을 두어 외계인의 목소리처럼 들리게 하는 등의 효과를 가미했다. 그는 스튜디오에 있는 믹서기 MCI Mixer를 사랑했고 이를 잘 활용했다. “이노는 우리에게 스튜디오를 악기처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제리의 회상이다.4

앨범 제목은 처음에 번의 아이디어로 Tina and the Typing Pool5 이라 불렸다. 여러 의미없는 제안을 거듭하다가 티나가 탄식하며 “그냥 ‘건물들과 음식(Buildings and food)’이라고 부르면 어때?”라고 제안했다. 제리는 “그래 그게 제목이네”라고 답했다.6 앨범 커버는 전작에 비해 더 복잡했는데, 앞면은 밴드의 초기 작품의 사진을 담당하곤 했던 지미데사나(Jimmy De Sana)의 529개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모은 모자이크 작품이다. 이 사진들은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한 빌딩 옥상에서 찍은 것들이다. 앨범의 뒷면 커버는 NASA와 GE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위해 우주에서 컬러로 찍은 북미 대륙 사진의 모자이크 작품이다.

마침내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은 사이어(Sire) 레코드사를 통해 1978년 7월 14일 발매되었다. 수록곡은 조금 더 춤추기 쉬운 곡들이 주류를 이뤘다. 당초의 사이어 임원들의 우려와 달리 이노가 프로듀서를 맡았음에도 이 앨범은 전 앨범보다 훨씬 뛰어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 More Songs는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29위까지 올랐고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21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당시 크리스와 번이 열렬히 추종하던 Al Green이 1974년 녹음한 원작의 리메이크 싱글 “Take Me to the River”는 밴드의 첫 빌보드싱글차트 탑30위곡이 되었다.

트랙리스트

1. Thank You for Sending Me an Angel

두 번째 앨범의 포문을 여는 신나는 행진곡풍의 곡이다. 여기서 ‘천사’는 누구일까? 밴드 음악의 이정표를 만들어준 브라이언이노일까? 가사를 보면 어린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토킹헤즈는 먼 훗날 같은 소재로 다시 한 번 Stay Up Late를 만든다.

With a little practice, you can walk, you can talk just like me

2. With Our Love

I won’t look
I’ve got other things to do now
I forgot what it was

다시 한 번 Byrne이 주의가 산만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곡? ‘to do now’ 부분에서 번은 ‘야이야이야~’와 같은 추임새를 넣는다. 그러한 부분이 토킹헤즈의 곡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애드립이었다고 생각한다. 곡을 끝낼 때도 그냥 끝내지 않고 뭔가 흐느끼는 풍으로 끝낸다.

3. The Good Thing

번은 이 곡을 중국 음악처럼 들리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익살스러운 중국풍의 멜로디가 느껴지기도 한다. 가사를 보면 마치 경영관리 이론에 대한 행정부적인 반응과 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As we economize, efficiency is multiplied
To the extent I am determined the result is the good thing

이 곡은 절정부에서 티나와 스튜디오 사무실에서 일하던 여성들의 합창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후반부

Watch me work
Watch me work

에서 기타를 후려치면서 끝내는 부분이 매력적인 곡이다.

4. Warning Sign

Warning sign, warning sign
I hear it, but I pay it no mind

번이 마치 마이크를 통해 노래하는 효과가 인상적인 이 곡은 주의를 기울이라고 누군가가 외치는데 역시 주의가 산만한 번은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I move it around a lot, but I don’t care what I remember

5. The Girls Want to Be with the Girls

이곡은 레즈비언에 대한 찬가일까?

Well, there’s just no love
When there’s boys and girls

이 부분에서 약간 그런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대체로 의식의 흐름대로 가사를 만드는 것 같은 가사 작업의 성격상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타 평크 밴드의 마초적 성향과는 확실히 다른 밴드의 성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6. Found a Job

Judy와 Bob이라는 이름의 부부가 TV가 볼게 없다며 직접 쇼를 만든다는 재밌는 설정의 곡이다. 랭킹에 오르기도 하고 스핀오프를 만들까 고민하기도 한다. DIY의 즐거움. 이 곡은 번이 그의 부모를 방문했다가 TV에서 뭘 볼지에 대해 다툰 후에 만들었다고 한다.

Bob never yells about the picture now, he’s having too much fun

7. Artists Only

개인적으로 이곡을 스튜디오앨범이 아닌 라이브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에서 먼저 접했다. 그 앨범에서는 후속곡 Stay Hungry와 절묘하게 이어지는 흥겨움을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에서도 후반부에 긴장감 넘치는 기타와 키보드 연주가 매력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8. I’m Not in Love

1975년 5월에 발매된 유명한 10cc의 노래와 같은 제목이지만 분위기는 완연하게 다르다. 여하튼 1집에서는 Uh-Oh, Love Comes to Town으로 앨범의 포문을 열었던 토킹헤즈가 이번에는 ‘나는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사랑에 빠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사랑을 부정하고 있다.

Take it easy, baby, don’t let your feelings get in the way
I believe someday we’ll live in a world without love

갑자기 존레논의 이매진이 떠오른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없는 세상.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9. Stay hungry

제목에서 대번에 Steve Jobs가 연상되지만, 사실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문구가 유명해진 것은 훨씬 후의 일이고 이 제목은 크리스가 가판대에서 본 한 바디빌딩 잡지에서 본 문장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앞 곡에서는 사랑 자체를 부정하더니 밴드는 다시 사랑을 알리기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배고픈 채로 버텨라’!

I think we can signify our love now
Ooh, girl, you can initiate an impulse of love
Stay hungry, stay hungry, stay hungry

10. Take Me to the River

이 앨범의 최고 히트곡이자 토킹헤즈 통산으로도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노래 중 하나. Al Green오리지널을 커버한 곡으로 1978년 빌보드핫100 차트에 26위까지 올랐다. 티나에 따르면 녹음은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로 진행했고 결과가 너무 좋아서 추가 녹음이나 수정은 하지 말자고 결정했다고 한다.

11. The Big Country

화자는 비행기에서 해안가 지역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상황을 묘사하며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그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어쨌든 토킹헤즈는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아이들이다.

I wouldn’t live there if you paid me
I wouldn’t live like that, no sirree

하지만 2015년 Marc Maron과 가진 인터뷰에서 번은 그에 관한 대중의 이미지에 – 대도시에 사는 속물 – 대한 풍자였고 자신은 소도시에 사는 이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인터뷰 듣기)

  1. David Bowman, This Must Be The Place, 2001, 104p
  2. 같은책, 116p
  3. 크리스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바하마가 무척 마음에 거처까지 마련했고 그가 프로듀서를 맡은 해피먼데이스의 Yes Please! 작업 등 여러 작업을 그곳에서 하게 된다.(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는데 크리스는 작업 기간 내내 마약에 쩐 멤버들을 찾아 헤매야 했다고 한다)
  4. 같은책, 127-129pp
  5. 위키피디아는 크리스의 회고록을 인용하며 The Good Thing에서 백보컬을 담당한 티나와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 표현을 쓰는데 선후관계가 어떻게 되는 지는 좀 정확하게 체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6. 같은책, 132p

Talking Heads: 77

A red cover with "TALKING HEADS: 77" written at the top in green
By Sire Records – Album Art Excahnge, Public Domain,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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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속지의 밴드 사진

앨범 설명

토킹헤즈는 1975년 6월 또 하나의 위대한 펑크밴드로 남게 될 Ramones 공연의 오프닝밴드로 토킹헤즈라는 이름을 알리는 첫 라이브 무대를 가졌다. 그런데 데뷔 앨범을 발매하기까지는 2년이 더 걸렸다. 크리스프란츠가 회고록에 쓴 바에 따르면 그들은 그동안 레코드사로부터 몇 건의 앨범 발매 제의를 받았지만, 충분히 실력이 성숙한 후에 앨범을 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데뷔 앨범을 내기 위해 서두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밴드는 Byrne, Frantz, Weymouth 삼인조에서 뛰어난 키보드 연주자이자 기타리스트였던 The Modern Lovers 출신의 Jerry Harrison을 보강하여 사인조의 탄탄한 사운드를 확립하였다.

워너뮤직그룹(Warner Music Group)의 소유였던 Sire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 앨범은 강렬한 빨간색 단색에 연두색 폰트의 앨범 커버가 인상적이었고, 프로듀서 Tony Bongiovi와 Lance Quinn이 공동 프로듀서였다. 본지오비는 우연하게도 Jon Bon Jovi의 사촌이었다. 크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사실 대부분의 작업은 엔지니어 Ed Stasium이 맡았고 본지오비는 다른 사람과 전화통화를 하거나 잡지나 뒤척이다가 밴드의 녹음이 훌륭하게 진행되었음에도 재녹음을 요구하는 등 무례하게 굴었다고(특히 티나에게) 한다.1 스타슘과 퀸은 밴드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룹은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현대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듣기에 즐거운 앨범을 만들고 싶어 했다. 로버트크리스트가우(Robert Christgau)는 이 앨범에 대해 “Sparks처럼 이들은 버릇없는 아이들이지만, 풋풋함이나 사춘기적 여성혐오는 없다. Yes처럼 그들은 겁쟁이지만 모호함이나 값싼 낭만주의는 없다.[중략] 결국 그들은 펑크라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코멘트하며 평점에 인색한 그로서는 보기 드물게 A− 의 평점을 매겼다. 2012년 롤링스톤은 ‘역대 최고의 앨범 500개’에 이 앨범을 291위에 올렸다.(출처)

1977년에는 또 하나의 걸출한 펑크 앨범이 출시되었는데 바로 77 발매 한 달 후에 발매된 섹스피스톨스의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다. 음반업계에서는 아무도 이 펑크의 바람이 일시적인 유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토킹헤즈의 앨범 홍보를 맡은 워너브라더스는 Sire를 설득하여 The Saints, Dead Boys, Richard Hell & the Voidoids와 같이 보다 더 섹스피스톨스 스타일로 경도된 펑크 밴드를 홍보하도록 하였다. 밴드는 앨범 홍보를 위해 미전역을 돌며 공연을 하는 등 고군분투했지만, 상업적으로보다는 비평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트랙리스트

1. Uh-Oh, Love Comes to Town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곡인데 펑크밴드답지 않은 R&B 곡이다. 티나의 베이스라인은 James Jamerson의 “I Was Made To Lover Her”라는 곡의 베이스라인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참고글) 개인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가사는

Stock broker make a bad investment when love has come to town.

우리 모두 주식투자를 할 때에는 사랑을 멀리해야 할 것 같다.

2. New Feeling

한때 무척 자주 들은 토킹헤즈의 노래였다. 이 블로그의 초기 이름을 뉴필링으로 할 정도였다. 시건방지거나 몽환적인 기타 사운드가 무척 맘에 든다.

3. Tentative Decisions

번은 자신의 초기 작사 작업을 회고적으로 “화성에서 온 인류학자”를 떠올리게 한다고 묘사했다. 우리가 다소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의 인간 행동을 분석하고 조사한 것이다.(출처) 행진곡 풍의 드러밍이 인상적인 이 노래는 앨범의 주요 주제중 하나인 ‘우유부단함’에 관한 곡이라 여겨진다. 결단력과 우유부단함.

Decide, decide, make up your mind
Decide, decide, I told you what to say

화자는 누구에겐가 빨리 결정을 하라고 다그친다.

4. Happy Day

한 평자는 Talking Heads의 첫 번째 앨범에서 가장 낙관적이고 따뜻한 노래라 여겼다.(출처) 개인적으로 이 노래는 토킹헤즈의 후반 작업에서 느껴지는 컨트리풍의 단초가 느껴진다.

5. Who Is It?

매우 심플한 곡이다. 가장 재치 있는 가사는

If you don’t love me I don’t know what I’m going to do.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다소 진부한 가사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비꼼과 의미모를 풍자가 특기인 토킹헤즈 가사 중에서도 드물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6. No Compassion

이 곡은 토킹헤즈의 노래 중에서도 유난히 강렬한 하드락풍의 기타 인트로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리고 곡 3분경에 강렬한 기타 연주 그리고 짧은 인터벌 이후 다시 몽환적으로 시작되는 연주가 압권이다. (한 유튜버의 기타 커버 영상)

아래 가사는 노래 제목만큼이나 화자의 자비로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Go talk to your analyst, isn’t that what they’re paid for?
Be a little more selfish, it might do you some good

7. The Book I Read

I’m embarrassed to admit it hit the soft spot in my heart
When I found out you wrote the book I read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네가 썼다니!”라는 시기심에 가득한 화자의 질투심이 재미를 주는 곡이다.

8.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

이 노래는 풍자적인 가사인가?

내가 들어본 모든 해석은 풍자적이었습니다. 즉, “정부는 걱정하지 마!!”는 정부가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워터게이트와 베트남 전쟁 직후에 쓰여진 방식을 생각하면 이 측면에서 매우 타당합니다. 하지만 모두 듣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출처)

9. First Week / Last Week… Carefree
차차 리듬, 귀라(Güira) , 마림바(Marimba)의 사용 등이 인상적인 곡이다. 이곡이 후에 번이 빠져든 월드뮤직으로의 추구 성향의 단초가 되었을지도?

10. Psycho Killer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상업적으로 히트한(빌보드핫100 차트 92위) 곡이자 초기 그룹의 정체성에 묘한 분위기를 불어넣은 곡이다. 중간에 나오는 프랑스어 가사는 모친이 프랑스인이어서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티나의 공헌이다.(원래는 일본어로 가사를 넣으려했다는 비하인드스토리가!) 그 외에도 티나는 가사 작업에 또 다른 기여를 했는데

데이비드는 “가사가 필요해”라고 했고, 그래서 우리는 브레인스토밍을 했습니다. 저는 “음, 히치콕은 ‘너를 죽일 거야’라고 말했을 거야. 왜냐하면 너는 무례하고 예의 바르지 않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2015년 BBC 다큐멘터리 Girl in a Band 중 티나와의 인터뷰 중에서)

11. Pulled Up

개인적으로 New Feeling에 이어 이 앨범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곡이다. 번의 창법은 언제나 뻔뻔하지만 이 노래에서 특히 더 뻔뻔하게 느껴진다. 좋아하는 부분은

Pulled me up, up, up, up, up, up, up, up!

이라고 업을 계속 외치는 부분과 2분 20초 경에

I got up ’cause you pulled me up

에서 you를 구성지게 길게 늘여 부르는 창법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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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있어 1977년은 어려운 한 해였다. 경제적 폭락, 방화로 황폐해진 동네, 도시를 잠시 무정부 상태로 만든 정전, 그 전 여름에 외곽 자치구를 맴돌았던 연쇄 살인범의 그림자.(Pitchfork 의 앨범리뷰 중)

  1. Byrne은 앨범을 녹음할 당시 본지오비를 아주 싫어했으나 20여년 후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떻게 앨범을 만들 줄 몰랐고 그는 우리가 더 접근 용이한 앨범을 만들 수 있게 해주려고 한 것이다”라며 그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다(토킹헤즈의 전기 This Must Be the Place 111쪽 참고)

1981년 오늘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jpg
By http://images.amazon.com/images/P/B000002MM1.01._SCLZZZZZZZ_.jpg, Fair use, Link

1981년 오늘(2월 1일) Talking Heads의 데이빗번(David Byrne)과 브라이언이노(Brian Eno)의 협업 앨범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가 발매됐다. 번이 그룹 멤버와의 협업이 아닌 작품으로는 처음 내놓은 결과물로 Remain in Light에 이어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수록곡 Regiment 2006년 리마스터 버전 감상

…From Across The Kitchen Table


이미지 출처 : discogs

The Pale Fountains의 1985년 2집인데 불과 1년인데 스타일의 많은 변화가 느껴진다. 1집이 – 후배이긴 하지만 – Belle & Sebastian의 스타일이 연상된다면 2집은 좀더 하드한 초기의 Simple Minds가 연상된다. 두번째 트랙 Stole The Love는 심플마인즈의 곡이라고 말해도 깜빡 속을 것 같다. 세번째 트랙 Jean’s Not Happening은 언뜻 또 다른 후배 뮤지션이 생각나는데 The Lightning Seeds. 우연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 이 앨범의 프로듀서가 바로 LS의 Ian Broudie. 한편 네번째 트랙은 느닷없이 샤우팅 창법의 쏘울 넘버인 Bicycle Thieves. 마지막 곡 September Sting은 컨트리곡!

각각의 곡으로 보면 즐기며 듣기에 손색이 없지만, 무언가 앨범의 통일성은 – 굳이 컨셉트 앨범이 아닐지라도 – 느껴지지 않는다. 1집에서는 밴드가 프로덕션과 앨범 커버 디자인 등에 대해 전권을 가진 것 같았는데 이 앨범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 1집의 신통찮은 판매고든 다른 이유든 – 많이 통제권을 뺏긴 느낌이고 음악도 그렇고 앨범 커버도 산만하기 그지없다. 커버 가운데 딱 박힌 밴드의 로고 디자인은 너무 촌스럽다.

다른 수록곡을 한참 뛰어넘어 앨범 타이틀과 동명인 수록곡 ..From Across The Kitchen Table 에 이르러서야 The Pale Fountains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던 트럼펫 연주가 다시 전주에 등장한다. 이러한 챔버팝적인 분위기를 조금 더 발전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느껴진다. 그랬더라면 수많은 인디락 밴드가 명멸(明滅)했을 80년대의 치열하고 냉혹한 영국 락음악씬에서 좀 더 긴 수명을 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밴드는 이 앨범을 끝으로 해체했고 프론트맨 Mick Head는 또 다른 컬트 밴드인 Shack을 결성한다.

…From Across The Kitchen Table 유튜브 영상

※ 영상에 등장하는 영화 이야기
지난번 감상한 PF의 대표곡 Something On My Mind 유튜브 영상이 프랑스 영화 브레드레스를 활용한 것처럼 이 영상도 어떤 흑백 영화를 이용했다. 예전에 본 영화였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 이번에도 챗지피티, 딥씩, 구글이미지검색을 사용했는데 역시나 답은 구글이미지검색을 통해 찾아냈다. 해당 작품은 1960년 개봉된 영국 영화 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 소위 “키친싱크 사실주의(kitchen sink realism)“라는 영국식 리얼리즘 장르의 영화로 공장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주말에 빠를 전전하며 다른 삶을 꿈꾸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다. 키친싱크 사실주의 작품으로 가장 유명한 영화는 A Taste Of Honey라는 작품으로 The Smiths의 컴필레이션 앨범 Louder Than Bombs의 커버에 등장인물인 극작가 쉘라 델라니(Shelagh Delaney)가 원작자이다.

e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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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ZTT Records/., Fair use, Link

80~90년대 우리나라에 일렉트로닉 계열이나 인디락 계열의 음반이나 시디는 구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러한 면에서 808 State 의 음반은 더더군다나 눈에 띄지 않았다. 일단 지명도 면에서도 본국인 영국에서도 거물급이라기에는 부족함이 있었고 장르 역시 보컬을 배제한 연주 위주의 애시드하우스여서 메이저장르로 보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90년대 초반 즈음 압구정역 근처의 한 음반가게에서 이들의 시디를 발견하고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 시디를 구입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들의 음반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ex:el이다. 이걸 굳이 읽으려면 엑셀이라고 해야할 것 같은데 암튼 앨범명부터 조금은 난해한 일렉트로닉 계열의 앨범 이름답다. 앨범 커버아트도 808을 멋지게 디자인하여 배치해놓았다. 앨범은 ZTT 레이블을 통해 1991년 3월 4일 발매되었다. 올뮤직리뷰는 이 앨범이 “힙합과 인더스트리얼을 품은 좀더 강렬한 애시드하우스”라고 평하고 있다.

수록곡은 3분에서 5분 초반대에 이르는 길지 않은 길이의 13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앨범에는 뉴오더의 버나드썸너와 뷔욕이 객원싱어로 참여해서 각각 1곡(Spanish Heart)과 2곡(Qmart, Ooops)에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즉, 나머지 10곡은 순수한 인스트루멘탈이라는 의미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Nephatiti와 In Yer Face다. 여하튼 이 앨범을 통해 808 State는 The Stone Roses, Happy Mondays 등과 함께 이른바 매드체스터(Madchester)라 불리는 90년대 맨체스터 인디댄쓰씬의 정점을 찍었다.

Rave의 분위기가 한껏 살아있는 공연 장면이 담긴 비디오

C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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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ttp://www.discogs.com/image/R-766249-1173539286.jpeg, Fair use, Link

Crush를 감상하면서 위키피디어를 읽고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그룹 멤버들은 앨범 작업을 레이블이 강요한 한정된 일정 안에 마쳐야 했는데 이로 인해 밴드의 의욕이 많이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프로듀서를 맡은 Stephen Hague1“매끈한 프로덕션(sleek production)”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이 부분이 흥미로운 이유는 내가 이 앨범을 처음 들었던 때부터 지금까지도 이 앨범에 대한 느낌을 바로 그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끈함’. 그것이 이 앨범의 최고의 미덕이자 최악의 단점일 것 같다.2

OMD는 일렉트로닉 계열에서도 나름대로 실험적인 음악으로 정평이 나있었다.(그중에서도 백미는 1981년 내놓은 Architecture & Morality) 그런데 이 앨범은 첫 트랙 So in Love는 슈가팝 스타일의 감미롭고 “매끈한” 도입부에서부터 그들의 기존의 음악노선에 결을 달리하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그들의 음악은 Pretty in Pink의 삽입곡 If You Leave였기 때문에3 이러한 크루너(crooner) 스타일의 노래에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실험적인 사운드에 익숙했을 그들의 오랜 팬은 조금은 실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급기야 밴드의 창설 멤버 Paul Humphreys는 이 앨범을 만들 시기에 잠시 그룹을 떠나기까지 했었다고 하니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앨범이 된 셈이다. 하지만 앨범 작업을 마친 결과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비평은 호의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비평에 동의한다. “실험보다는 춤추기 좋은 일렉트로팝을 강조한다. Crush는 사람을 압도하지는 않지만, 우아함과 재치로 점차 유혹할 것이다.” OMD의 앨범 중 유일하게 빌보드 200의 탑40에 오른 앨범이 되었다. So in Love는 빌보드핫100 차트에 25위까지 오르며 그룹의 첫 미국 시장 히트곡이 되었다.

Early-sunday-morning-edward-hopper-1930.jpg
By Edward Hopperhttps://www.edwardhopper.net/, Public Domain, Link

한편 커버아트를 보며 자꾸 어떤 작가가 어렴풋이 연상되었는데 위키피디어의 설명을 보니 그게 누구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OMD는 애초에 에드워드호퍼(Edward Hopper)의 작품을 커버에 쓰려고 했었다고 한다. 앤디는 호퍼의 멜랑코리함이 앨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쓰고 싶었지만, 사용료가 너무 비싸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대신 폴슬레이터(Paul Slater)라는 작가에게 호퍼 스타일의 그림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는 호퍼의 Early Sunday Morning (1930)을 흉내내어 작품을 완성했다.

  1. 이 프로듀서의 다른 작업을 보니 Pet Shop Boys의 Please, New Order의 True Faith, Communards의 Red 등이 눈에 띈다. 대충 그의 성향이 짐작이 된다
  2. 이러한 상큼한 덕분에(!?) 앨범의 두번째 트랙 Secret은 80년대 당시 국내 한 비타민 영양제의 광고 배경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3. 그리고 많은 뮤지션을 파고들 때에 그러했지만, 음반을 거꾸로 후기에서 초기로 찾아듣는 시기를 거쳤다

Disintegration

A collage of overlapping photos, including a black-and-white, blue-tinted photo of Robert Smith's face looking upward to the camera
By [1], Fair use, Link

영국의 고딕락 밴드 The Cure가 1987년 일곱 번째 스튜디오앨범 Kiss Me, Kiss Me, Kiss Me는 빌보드200의 탑40에 오르는 등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상업적 성공의 배경에는 한 비평가가 지적했듯이 “Kiss Me는 큐어가 추구하던 실존적인 우울한 괴물(gloom-monster) 이미지에서 벗어난 시도”라는 점도 작용했다. 물론 큐어 특유의 우울함에서 환골탈태(換骨奪胎)한 것은 아니지만, 앨범명도 고딕락적이라기보다는 수가팝의 느낌이었고, Just Like Heaven이나 Why Can’t I Be You?와 같은 곡은 충분히 쾌활했고, 충분히 상업적이었기에 고딕락을 모르고 날씨도 영국의 그것보다 훨씬 좋아서 성격이 쾌활한 미국인들의 귀도 만족시킬 수 있었다.

2년 후 그들은 ‘붕괴(Disintegration)’라는 제목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으면서 다시 “우울한 괴물” 본연의 자세로 돌아온다. 전작의 엄청난 성공과 이로 인해 얻은 국제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밴드 내부의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창립 멤버로서 드럼을 맡았다가 당시 키보드를 맡고 있던 Lol Tolhurst의 음주벽은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그리고 끝내 그룹에서 방출됐다) 그리고 리더 로버트 스미쓰(Robert Smith)는 곧 서른살이 될 것이라는 우울한 현실과 국제적인 팝스타라는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LSD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에 영향을 받아서 앨범은 다시 비상업적인 우울모드로 전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번 국제적 명성을 얻은 밴드는 이 앨범을 통해 또 한 번 큰 도약을 하게 됐는데, 이 앨범이 결과적으로 그들의 가장 큰 음악적/상업적 성취를 거둔 앨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스미쓰는 여전히 우울한 괴물이었지만 팬들은 그러한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Lovesong이나 Lullaby와 같은 곡들은 여전히 충분히 싱글로 발매하기에 매력적인 곡들이었고 Fascination Street, Disintegration과 같은 곡들은 떼창이 가능한 하드락을 연상시킬 정도로 투어에서도 충분히 통할 레퍼토리들이 든든하게 장전되어 있었다. 물론 가사적으로는 여전히 죽음, 슬픔, 공포 등과 같은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등장한다.

앨범은 당시까지의 그룹의 상업적 성공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에서 3위까지 올랐고 빌보드 200에서는 12위까지 올랐다. Lovesong은 빌보드핫100 차트 2위까지 오르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앨범 판매량은 전 세계적으로 400만 장에 달했다. 비평가의 시선도 따사로웠다. 롤링스톤지는 “500개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순위에 이 앨범을 116위에 올려놓았다. 올뮤직의 Stephen Thomas Erlewine는 “80년대 내내 큐어가 추구했던 모든 음악적 방향의 정점”이라고 찬양했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이르는 수많은 슈게이징 음악의 이정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