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앨범

Paper G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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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an duran paper gods album artwork” by Source (WP:NFCC#4). Licensed under Wikipedia.

Duran Duran의 음악은 솜사탕 같고 그들의 잘 생긴 외모가 담긴 뮤직비디오는 MTV의 단골 레퍼토리였기에 80년대의 들뜨고 방정맞은 분위기를 비판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들의 음악이나 행동거지를 먼저 까면서 본격적인 비판에 들어가곤 했었다. 시절이 흘러 Rio와 같은 초기작도 흘러간 명반으로 인정받고 있는 21세기에 들어서도 이들의 미모는 – 생각만큼은 – 사그라지지 않았고 음악적 열정은 더더욱 전성기의 열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 징표의 하나로 Duran Duran은 바로 며칠 전인 2015년 9월 11일 이들의 열네 번째 신보 Paper Gods를 전 세계에 발표하였다. 밴드의 역사를 상징하는 입술, 호랑이, 스모 선수와 같은 아이콘들이 배열된 커버가 이색적이긴 하지만 앨범 수록곡들이 과거 회귀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역시 “Duran Duran표”임을 알려주는 고유한 특성을 담고 있긴 하지만 신세대 아티스트인 Mr Hudson과 관록의 Nile Rodgers 등이 프로듀싱에 함께 참여하여 신구(新舊)의 트렌드를 적절히 조합하였다는 느낌을 준다. 첫 싱글로 내놓은 “Pressure Off”에서는 요즘 핫한 뮤지션 Janelle Monáe가 함께 참여하여 신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미드템포의 “You Kill Me with Silence”와 “The Universe Alone”이 맘에 든다. “The Universe Alone”을 듣던 중 후반부에서의 소음을 집어넣은 효과에서는 마치 이륙한 우주선이 우주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영화 “Gravity”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이튠즈에서도 음원을 구입할 수 있지만 HDTracks와 같은 고음질 음원 판매 사이트에서도 이 앨범의 디럭스 버전을 적정한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다. 디럭스 버전의 곡들이 본 앨범 수록곡보다 더 과거의 DD 음악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디럭스 버전을 구입할 것을 추천한다.

Real to Real Cacoph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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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torealcacophony”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Arista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Real to Real Cacophony는 포스트펑크/뉴웨이브 밴드 Simple Minds가 1979년 내놓은 이들의 두 번째 정규앨범이다. 1979년은 소위 “포스트펑크” 밴드의 명반이 – 예를 들면 Joy Division의 Unknown Pleasures 등 – 많이 발표된 해고 이 앨범도 그 중 하나다. Simple Minds의 곡을 80년대 청춘 영화 The Breakfast Club에서의 Don’t You와 같은 뉴웨이브 사운드가 많이 가미된 곡에서부터 접한 이라면 이 앨범이 많이 낯설 것이다. Jim Kerr의 보컬은 이 당시 많이 날카로웠고 멜로디와 리듬은 언뜻 KraftwerkDevo를 연상시킨다. 가사는 의미를 모를 단어의 연결이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곡은 Citizen (Dance of Youth)다.

The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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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Springsteen의 The River는 ‘미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풍부한 시각적/청각적 이미지를 제공한다.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인한 급작스런 결혼, 경제침체 속에서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 미국적 삶의 상징 중 하나인 캐딜락으로 꾸며진 농장, 고된 일을 끝낸 후의 소녀와의 데이트,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여자에 대한 사랑, 오랫동안 반목했던 아버지의 죽음, 한때 사랑했던 아내와의 지쳐가는 관계, 고속도로 주행 중에 마주친 사고에서 홀로 목격한 낯선 이의 죽음 등등. 고달프지만 그 안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평범한 1970~80년대의 미국 노동자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자동차, 노동, 섹스, 가족, 고속도로, 사막, 락앤롤, 결혼 등등. 스프링스틴은 실제로 그가 그의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곡의 영감을 얻어서 썼기 때문에 평범한 표현으로 여겨질지라도 가슴에 와 닿는 가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스무 곡의 수록곡에 총 83분의 연주시간에 이르는, 정규 앨범 치고도 매우 긴 트랙리스트는 직선적이고 템포 빠른 락앤롤 곡에서부터 발라드풍의 어쿠스틱 곡이 고르게 섞여 우리 인생의 굴곡을 적절하게 상징하고 있다. 앨범의 제목이자 이 앨범의 대표곡의 제목이기도 한 “강(The River)”은 또한 이런 우리 인생을 의미한다. 잔잔하게 흐르며 존재감조차 비치지 않다가 어느 지점에선가 거칠게 흐르고, 심지어 마을을 덮치는 홍수가 되기도 하는 강. 개인적으로 위의 모든 풍경을 집약한다고 여겨지는 노래는 앨범의 마지막 곡인 Wreck On The Highway다. 고속도로 주행 중 낯선 이의 죽음을 목격한 화자는 때때로 어둠 속에서 잠을 깨어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랑하는 여인을 꼭 껴안는다. 고속도로에서의 그 사고를 생각하며.

The River

Unknown Pleas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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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known Pleasures는 Joy Division의 스튜디오 데뷔앨범이다. 이 앨범은 스트로베리 스튜디오에서 1979년 4월 1일에서 17일에 걸친 짧은 기간 동안 녹음을 마치고 그 해 6월 15일 팩토리 레코드사를 통해 영국에서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앨범 수록곡 중에서 싱글도 발매되지 않았고 – 홍보를 위해 “Transmission” 싱글이 발매되긴 했다 – 차트에 진입하지도 못했다. 1976년 결성되어 Warsaw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 포스트펑크 밴드의 경력이 1980년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날 것 같은 불안한 출발이었다. 물론 정규 앨범을 두 개밖에 내지 못할 정도로 활동기간이 길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걸작으로 남게 되었고 Joy Division 역시 시대를 대표하는 펑크 밴드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 앨범 이전에 밴드가 내놓은 앨범은 자신들이 프로듀스하여 1978년 내놓은 EP An Ideal for Living이었다. 이 앨범 덕분에 그들은 Tony Wilson의 지방 뉴스쇼 Granada Reports에 1978년 9월 출연하였다. 그것을 계기로 밴드의 매니저 Rob Gretton은 Wilson에게 Factory Records 레이블에서 Joy Division의 앨범을 내자고 제안하였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영국 스톡포트에 있는 스트로베리 스튜디오에서 작업에 착수한다. 프로듀서는 Martin Hannett이었다. Hannett은 Peter Hook의 표현처럼 “최고의 요리사”로서 Joy Division의 뛰어난 재료를 가지고 솜씨 좋게 요리를 만들었다. 그는 유리병을 깨부수는 소리, 스낵을 먹는 소리 등 평범하지 않은 음향효과를 첨가하여 곡에 세련미를 가미했다.

Hannett이 창조해낸 “공간감이 넓은 광활한 사운드”에 대한 밴드 멤버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Sumner는 “우리는 흑백의 그림을 원했는데 마틴이 색깔을 집어넣었다.”고 비판했다. Hook은 “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음악이 마치 Pink Floyd같았다”라고 말했다. Morris는 이와는 다른 의견이었다. “Unknown Pleasures를 듣고 행복했다. 당시의 내 논지는 두 가지는 – 레코드를 듣는 것과 공연에 가는 것 –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Curtis도 프로덕션에 만족해했다. 2006년 인터뷰에서 Hook은 회고했다. “분명 당시에는 내가 원하는 사운드가 아니었다. 그러나 마틴이 일을 잘 했던 것은 이제 알겠다. 이에 관한 다른 대안은 없었다. 마틴 해넷이 조이디비전의 사운드를 창조하였다.”라고 인정하였다.

작가 Chris Ott는 앨범의 이름이 Marcel Proust의 Remembrance of Things Past에서 따온 것 같다고 말하였다. 앨범 커버는 Peter Saville이 맡았는데, 유명한 펄서 CP 1919의 전자파동의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Saville은 흑백의 이미지를 뒤집어 검은 배경에 하얀 선의 파동 그래프가 그려진 유명한 커버를 완성하였다. 앨범은 1쇄로 1만 장을 프린트하였다. 판매량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LP에 수록되지 않은 홍보용 싱글 “Transmission” 이 발매되자 앨범은 전량 팔렸다. 당시 총 판매량은 1만5천 장 정도였고 차트 진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1980년 5월 Curtis가 자살하고 두 번째 정규앨범 Closer가 발매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재발매된 앨범은 그해 8월에 차트 71위에 진입하여 한참을 머물렀다.

평론가들의 이 앨범에 대한 평이 “불투명한 선언(opaque manifesto)”이나 “황량한 악몽의 사운드트랙(bleak nightmare soundtrack)”이라 평할 만큼 이 앨범은 황량한 상실감으로 메워져 있다. 앨범 발매 이후 1년이 되지 않아 자살을 선택한 이언 커티스의 심신에 걸친 극도의 불안감이 앨범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Joy라는 단어를 밴드 명에 쓰고 Pleasures란 단어가 앨범 명에 쓰인 것 치고는 너무나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스터리하고 음습한 보컬이 조급증이 느껴지는 연주나 특수효과와 함께 공감감이 넓은 음악 안에서 메아리칠 때,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언 커티스의 거대한 공허감이라는 점이 이 앨범의 매력이자 – 결말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 가슴 아픈 부분이다.

Black Celeb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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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eche Mode – Black Celebration”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Black Celebration은 Depeche Mode가 1986년 5월 17일 Mute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한 그들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이 앨범은 밴드의 이전 앨범에 비해 한층 어두워졌지만 보다 성숙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채워져 있어 비평적으로도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Martin Gore는 이 앨범의 많은 트랙에서 리드 보컬을 담당했다. 이 앨범에서 싱글로 인기를 끈 트랙은 “A Question of Lust”, “A Question of Time“, ”Stripped“ 등이었다. Martin Gore가 리드 보컬을 담당한 아름다운 멜로디의 발라드 “A Question of Lust“는 “Somebody”이후로 Matin이 리드 보컬을 맡은 중 내놓은 두 번째 싱글이었다. 보다 빠른 템포의 “A Question of Time“은 Dave Gahan이 리드 보컬을 맡은 곡으로 아름다운 외모의 10대 여성을 향한 – 보호를 빌미로 하는 – 독점의 욕망을 드러낸 곡이다. ”Stripped“는 현대의 문명사회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 주로 안 좋은 방향으로 – 미치는지에 관한 노래다. ”네가 텔레비전의 도움 없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듣고 싶어“라는 가사가 특히 눈에 띄는 이 노래는 Depeche 특유의 미들 템포와 유려한 멜로디가 잘 조합된 노래다. 개인적으로 앨범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노래가 있다면 ”New Dress“다. 이 노래는 Depeche의 노래답지 않게 노골적인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노래다. 노래는 폭탄이 터지고 13살의 소녀가 칼로 습격을 받은 일이 있는데도 다이애나 공주의 새 옷에만 관심을 보이는 매스미디어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너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사실을 바꿀 수는 있다. 사실을 바꿀 수 있다면 관점을 바꿀 수 있다. 관점을 바꿀 수 있다면 투표를 바꿀 수 있다. 투표를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냉소 가득한 가사가 후렴구를 장식하고 있다. Depeche Mode의 디스코그래피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즈음에 발표한 이 앨범 다음으로 밴드가 내놓은 앨범은 Music for the Masses다.

Daydream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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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dream Nation은 미국의 얼터너티브락밴드 Sonic Youth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이 앨범은 1988년 7월에서 8월까지의 기간 동안 뉴욕에 있는 그린(Greene)스트리트 레코딩에서 녹음되었고, 이니그마 레코드사를 통해 1988년 10월 발매되었다. 밴드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하기 전의 마지막 앨범인 이 더블 앨범은 밴드의 작품 중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앨범이다. 스튜디오의 엔지니어인 Nick Sansano는 주로 힙합 뮤지션들과 작업을 해왔던 이로 Sonic Youth에 대해 아는 바는 별로 없었다. 그는 그가 했던 Public Enemy와의 작업 등을 보여주었고 밴드는 이 작업물의 사운드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1988년 7월 중순에 시작된 녹음을 위한 스튜디오 사용료는 하루에 1천 달러였고 총 비용은 3만 달러에 달했는데, 이러한 비용은 당시 밴드가 가지고 있던 거의 전 재산이었다. 작곡은 주로 Thurston Moore가 멜로디 아이디어와 코드 변화를 창작한 후 밴드가 전체 길이의 곡들로 완성해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앨범 전체 트랙들은 앨범 제목처럼 낮에 꾸는 꿈과 같은 몽환적인 사운드와, 초현실적이고 시적(詩的)인 이미지를 가진 노랫말로 채워져 있다. 이는 밴드가 곡을 만드는 영감을 주로 William Gibson의 소설이나 Andy Warhol의 영화와 같은 작품에서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True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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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Sire_Records” class=”extiw” title=”en:Sire Records”>Sire Records</a> – <a rel=”nofollow” class=”external text” href=”https://turnupthatvolume.files.wordpress.com/2017/09/theads.jpg”>Turn Up the Volume!</a>, Public Domain, Link

Talking Heads가 1986년 같은 제목의 영화와 함께 내놓은 – 사운드트랙이라 하기에는 좀 애매한 – 스튜디오 앨범이다. Talking Heads의 스튜디오 앨범 중에서 비평적으로는 비교적 박한 평가를 받는 앨범이다. 하지만 다른 앨범이 그렇듯 이 앨범에도 그들의 쟁쟁한 싱글들이 포진해 있는데 대표적인 곡이 상업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Wild Wild Life(빌보드 핫 100 차트 25위)다. 이 곡 이외에도 수퍼밴드 Radiohead가 이름을 짓는데 기여한 동명의 곡, 사랑이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세태를 비판한 앨범 첫머리 곡 Love For Sale, 서정적인 컨트리 풍의 멜로디가 일품인 Dream Operator 등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앨범 전체적으로는 영화의 내용과 조응한다기보다는 앨범 자체로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는 등의 독립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Here where you are standing
The dinosaurs did a dance
The indians told a story
[중략]
The indians had a legend
The Spaniards lived for gold
The white man came and killed them
City of Dreams 중에서

Talking Heads의 가사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곡의 일부라서 소개한다. 공룡이 춤을 추는 우스꽝스러운 장면과 스페인 사람들이 인디언을 죽이는 장면이 거부감 없이 배치되어 오랜 기간의 수많은 역사적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듯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196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Robert Crumb의 만화의 한 에피소드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콘크리트 아래에 그러한 도시의 꿈을 묻어둔 채 살아가고 있다.

Strangeways, Here We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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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ths – Strangeways here we come”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The Smiths가 대중음악계에 – 특히 영국의 대중음악계에 –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활동한 시기는 실질적으로 80년대에 국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정규 앨범도 네 개뿐이다. Strangeways, Here We Come은 이러한 그들의 짧은 밴드 활동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다. 영국에서 1987년 9월 28일 발매된 이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2위에 올라 17주간 머물렀다.

The Smiths는 이 앨범을 1987년 3월부터 앨범 출시 전까지 영국 서머셋州 버킹턴의 울홀(Wool Hall) 스튜디오에서 녹음하였다. 모든 곡의 작곡은 Johnny Marr, 가사는 Morrissey가 맡는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Morrissey는 이 앨범에서 처음으로 악기를 연주하는데 “Death of a Disco Dancer“에서의 피아노 연주가 그것이다. 작업이 끝날 즈음 Johnny Marr는 그룹을 떠나고 밴드는 해체된다.

음악적으로 Marr는 이전에 그들의 음악을 특징졌던 “징글쟁글(jingle jangle)” 사운드를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예를 들면 The Beatles의 White Album 등으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했다. 밴드는 신디싸이저 섹서폰과 드럼머신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엔지니어 Stephen Street의 증언에 따르면 녹음작업은 늘 술파티로 끝났다고 하지만 Marr는 늘 그렇진 않았다고 변명했다.

리드 싱글은 “Girlfriend in a Coma“였다. Morrissey 특유의 냉소적 반전(反轉)이 녹아들어간 가사와 유머러스한 곡진행이 인상적이다. “Paint a Vulgar Picture“에서 Morrissey의 신랄함이 극에 달하는데 음반 산업의 상업성을 쌩얼 그대로 까고 있다. “I won’t share you with the drive and the dreams inside”라는 가사가 담긴 “I Won’t Share You”가 그룹의 마지막 앨범 마지막 트랙이라는 점도 시사적이다.

앨범 타이틀은 맨체스터의 악명 높은 Strangeways 감옥에서 따왔다(지금은 이름을 바꿨다). “Here we come”은 영화 Billy Liar의 “Borstal, here we come”이라는 대사에서 따왔다. 앨범 커버는 Morrissey의 작품으로 ‘에덴의 동쪽’의 출연배우 Richard Davalos가 James Dean을 바라보는 장면을 잘라내어 흐리게 하여 만들었다. 후에 WEA가 밴드의 컴필레이션을 만들 때에도 다시 이 배우의 사진이 쓰인다.

다른 앨범에 비해 음악적 평가가 좀 떨어지긴 하지만 이 앨범 역시 The Smiths의 레전드 필청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Slant 매거진은 “최고의 80년대 앨범”에서 이 앨범을 69위로 선정하였고, 나아가 뉴뮤직익스프레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개의 앨범”에서 이 앨범을 47위에 선정하였다. 그리고 Morrissey와 Marr는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이 앨범을 밴드의 최고의 앨범으로 여기고 있다.

Meat Is Mu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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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tMurder”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MorrisseyThe Smiths 멤버들이(나머지 멤버들이 자발적인 채식주의자인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락밴드임에도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은 락밴드에게 의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부순다. 이러한 편견을 파괴하게 되는 밴드의 가장 공공연한 선언이 바로 1985년 발표된 밴드의 2집 Meat is Murder다. Morrissey가 내한공연을 가졌을 적에 그는 앨범 명과 같은 제목의 노래를 연주 목록에 포함시켜 처연한 목소리로 불렀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커다란 눈망울의 소가 클로즈업 된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다. 육식을 좋아하는 스미쓰 팬들은 불편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이 노래를 들어야 했다.

이러한 다소는 마이너한 주장이 노골적으로 담긴 앨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eat is Murder는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밴드의 작품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이 되었다.(미국에서는 차트 110위까지 올랐다. 미쿡에서는 여전히 듣보잡) 하지만 Rolling Stone은 2003년 이 앨범을 The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296위에 선정하면서 그 뛰어난 음악성을 칭송하였다.(까탈스러운 평론가 Robert Christgau는 이 앨범에 C+ 등급을 매겼다)

1984년 데뷔 앨범의 프러덕션이 다소 실망스러웠던 Morrissey는 기타를 맡은 Johnny Marr와 함께 직접 앨범을 프로듀스하기로 결정하였다. 엔지니어링은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에서 처음 만났던 Stephen Street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정식 크레딧에는 프로듀싱을 “The Smiths”가 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Rourke와 Joyce는 자신들의 악기 연주의 믹싱 과정에서의 사운드레벨에 대한 조언을 하는 정도만 허락받았을 뿐이다.

앨범 트랙의 내용은 이전 앨범보다 더욱 더 정치적이고 직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Meat Is Murder”가 대표적인 작품이고 그 외에도 “The Headmaster Ritual”이나 “Barbarism Begins at Home”은 체벌에 대한 강한 혐오를 드러낸 작품이다. 음악적으로 밴드는 보다 실험적이 되었는데 “Barbarism Begins at Home”에서는 펑크(funk)적인 긴 후반부 연주를 시도하기도 했다.(베이스 Andy Rourke는 Level 42의 Mark King이라도 된 양 신나게 베이스를 연주한다)

Morrissey는 이즈음에서의 각종 인터뷰에서도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공격 대상에는 대처 정부도 있었지만 동료 뮤지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Band Aid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누구나 에티오피아인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걸 영국인에게 매일매일의 고문으로 주입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죠.”라고 대답하였다.

한편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싱글의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싱글로만 발표한 “Shakespeare’s Sister”는 차트에서 성공적이지 않았다. 앨범의 유일한 싱글 “That Joke Isn’t Funny Anymore”는 49위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How Soon Is Now?”는 원래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의 B면 수록곡이었는데 북미의 댄쓰클럽과 얼터너티브 래디오에서 인기를 얻어 북미에서 발매된 앨범에 함께 수록되었다. 결국 이 노래는 영국에서도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차트 24위까지 올랐다.

앨범 커버로도 늘 이야깃거리를 주는 The Smiths의 이번 앨범 커버는 베트남전에 참가한 군인인 Michael Wynn을 찍은 1967년 작품이다. 원래 그의 철모에 적혀 있는 글은 “Make War Not Love” 였지만 “Meat Is Murder”로 교체되었다. 오리지널 이미지는 Emile de Antonio의 1968년 다큐멘터리 In the Year of the Pig에서 빌려 온 것이다.

Combat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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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ash – Combat Rock”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어릴 적에 이 앨범을 처음 구입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 어쩌면 당연하게도 – 밴드 멤버가 찍혀 있는 앨범 표지였다. 한적한 시골의 철도변에 앉아 있는 반항적인 펑크족들의 사진은 밴드의 음악적 방향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뮤지션과의 작업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Pennie Smith가 찍은 이 사진은 밴드가 1982년 동남아 여행을 하던 중 방콕 외곽의 한 버려진 철도에서 찍은 것이라고 한다.

1982년 5월 14일 밴드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앨범으로 발매된 이 작품은 영국 차트 1위, 미국 차트 7위까지 오르는 등 The Clash의 작품 중에서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하지만 그 과정까지에는 어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애초 이 작품은 “Rat Patrol from Fort Bragg”이라는 이름의 더블 앨범으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Mick Jones의 믹싱에 불만을 품은 나머지 멤버들이 이 일을 Glyn Johns에게 넘겼고 작품 길이는 싱글 LP로 줄었다.1

앨범의 첫 싱글로 발표된 작품은 A면 첫 곡이기도 한 “Know Your Rights”다. “이것은 기타로 알리는 공공의 발표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세 가지 권리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이 권리들은 Catch22의 모순처럼 행사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당신은 발언의 자유가 있다. 실제로 그걸 행사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면 말이다.(The right to free speech, as long as you’re not dumb enough to actually try it)”

앨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세 번째 수록곡인 “Should I Stay Should I Go?”다.2 이 곡은 밴드가 영국 싱글 차트에서 유일하게 정상을 차지한 곡이 되었다. 이 노래의 제목 때문에 이 앨범으로 불화를 겪고 결국 그룹을 떠난 Mick Jones의 자조적인 내용이 아니냐는 소문이 있기도 했지만 본인은 부인했다고 한다. 롤링스톤은 “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이라는 차트에서 이 곡을 228위에 올려놓았다.

“Should I Stay Should I Go?”와 함께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또 하나의 싱글은 이어지는 곡 “Rock The Casbah”다. 이 곡은 빌보드 핫100 차트 8위까지 올랐는데 이는 밴드의 유일한 미국 차트 탑10 기록이다. 이 곡은 1979년 혁명 이후 서양음악을 금지한 이란 정권을 비꼰 내용이다. 이러한 상황은 실제로 이란계 프랑스 만화작가인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작품 “Persepolis”에서 자세히 소개되기도 했다.3

요즘 들어 이 앨범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곡은 제목처럼 펑키한 리듬으로 무장한 “Overpowered by Funk”다. 80년대 The Jam, Spandau Ballet 등을 통해 일반화될 백인 펑크(funk)의 유행을 선도했던 이 노래는 영국에서 작업을 시작해서 앨범 전체를 마무리했던 뉴욕에서 완성되었다. 이 곡의 랩 부분은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밴드의 “This Is Radio Clash” 등의 싱글 앨범 표지 작업을 맡기도 했던 Futura 2000이 맡았다.

앨범이 발표된 1982년은 영국 내부의 정치도 그러려니와 세계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The Clash는 이런 상황을 “전투 락”이라는 앨범 속에 진보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녹여냈다. 이 앨범의 미학적 가치는 또한 다양한 음악장르를 – 특히 랩이나 펑크(funk)와 같은 흑인음악을 –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밴드의 이러한 문화적 포용성은 펑크락(punk rock)이 단순한 백인 노동계급의 음악에서 머물지 않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 오리지널 믹스는 브트렉으로 팔리기도 했다고 한다
  2. 어릴 적 하숙집에서 이 노래를 내가 자주 들어 하숙집의 유행가가 되기도 했다
  3. 이란 정부의 풍속 경찰은 파티 등 서양의 문화를 단속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피하려다 지붕에 떨어져 죽기까지 하는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